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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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씨가 발견한 행복의 조건 

 

1.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것이다. 

2. 행복은 때떄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않는 산길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가족에게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10.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는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사는것은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렯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행복은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있다. 

21.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다른 사람의 행복에 더 배려할 줄 안다. 

23.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위 사항들 중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 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참 많이 불행했고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는가 하는 불안과 화가 난 상태가 계속되고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기 이전에 내 아이들의 엄마였기에 나의 불행속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을 여유조차없었다. 그게 정말 싫었다. 

난 이렇게 힘든데,.. 누구에게 알릴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않기 위해 늘 웃고 외로움을 고통을 감추어야 한다는 내 고민 테두리에서 한치도 나갈 수가 없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양면과 같다. 행복조건 20번 처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에 달려있는 것인데.. 그게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꾸뻬가 세상을 돌면서 얻어낸 여러 배움들은 사실 모두가 알고 있고 참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게 진정한 보물이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거다. 나역시 

아이를 행복하게, 그늘없이 키우려고 내 고통이나 힘듬을 감추어야 하는 걸 불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게 잘못된 것이었다. 

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흔한 말로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지금 이시간 여기서 행복을 찾아가야 하는 것.... 

거기서 나의 행복이 시작되고 내 아이들의 행복이 시작된다. 

참 쉬우면서 어려운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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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봄날은 간다를 본게 결혼 후였고 30대 중반즈음이었기 때문일까? 

상우의 행동들이 그저 귀엽고 그땐 그럴때다 하고 덤덤하게 넘기기 쉬웠다. 안절부절하고 불안하고 지나치게 진지하고 열정적이던 그의 사랑방식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저러다 제풀에 지치지 싶은 안쓰러움마저 느끼면서  

그저 계산적이고 주춤하고 이기적인  그 여자의 사랑법이 참 와닻았다.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망설이고 이리저리 재어보고 변덕부리는 것... 가끔 그렇게 사랑도 계산되어야 한다는 게 그때의 나의 생각이었다. 

사랑도 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살아가다보면 사랑 그 열정만으로 되는 것보다 그 이사의 것들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알게 되었고.. 이젠 뭔가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쯔쯔쯔 저럴때가 있긴하다만 다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들.."이런 오만스러운 생각도 있었던거 같다. 

그러나 그때부터 10년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무작정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내 모든것을 쏟아보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는 것..그럴 수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이상 쏟아 부을 것 없이 내속의 열정 힘 애정 믿음 등등 모든것을 쏟아내고 텅 비어 껍데기만 남은 나를 보면서 지치고 허탈해지고 배반감 마저 느끼는 것....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깊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만 남은.. 어쩌면 그 순간은 올라올 기력마저 없어 그대로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가기만 할듯한 절망 불안들이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자라서 스무살이 되고 상우의 나이가 된다면 .... 이영애같은 영악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영화속 상우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실패를 했으면 한다. 시대가 바뀌어서 지금은 영악하고 계산을 해야하는 시대이긴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랑을 그 불안한 열정을 믿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하고 맹목적인 사랑도 언젠가 변한다는 걸 알아버리는 성숙이랄까... 체념도 배웠으면 한다. 시간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주위도 변한다.. 

어떻게 그 속에서 사랑이 그때그대로 있을 수 있을까? 변하는게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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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이라는 여자가 있다. 14살에 아이를 낳고 바로 입양을 시켰다. 그리고 누구와도 마음을 열지않고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떠난 딸에게 쓰면서 벽속에 자신을 가두고 산다. 

 엘리자베스라는 여자가 있다. 태어나서 바로 입양되었고 양부모의 사정으로 17세부터 혼자 살면서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랑따위는 믿지 않고 필요할때 욕구를 해소하면서 한곳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떠돌면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산다고 믿고 있다.  

또 다른 여자 마리아는 불임이다. 그녀는 간절하게 아이를 원하고 엄마가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입양을 결심하지만 마지막 순간 남편은 망설이고 입양이 어ㅡ긋한다. 그래도 우여곡절끝에 엄마가 되지만 그 길도 쉽지만은 않다.  

모성이란 저절로 생기는 걸까? 어떤 글에서 보면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자체가 여자를 구속하고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 그것이 없다는 게 결코 죄스러운 것이 아닌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사람을 옥죄는 것이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렇게 이해했다)  

카렌도 자기가 입양보낸 아이에겐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구구절절 쓰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자에게는 면박을 주고 마음을 닫고 매일 집에 오는 가정부의 아이를  귀찮아한다.  혼자 외롧고 힘들다고생각하고 스스로를 가두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고 그제사 엄마가 자신보다 가정부 모녀를 더 끔찍히 생각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는 걸 알고 오열한다. 왜 내게 직접 미안하다 내탓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의 상처에 갖힌 카렌은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다.  

엘레자베스 그렇다. 버림받았다. 세상엔 나뿐이다.. 라는 생각으로 독하게 살아오면서 사랑을 비웃고 애정받기를 두려워한다.  임신을 하면서 자신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엄마도 그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고 공감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참 신비하고 경이롭고 축복받는 일인 동시에 굉장히 불안하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 일이다. 더구나 아버지 없이 싱글맘이 되어야 한다는 상황이란  더욱 그럴것이다. 

영화는 참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짜내게 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신을 돌아보게한다. 관객이 여성이라면... 그는 누군가의 딸이면서 또 누군가의 어머니일테니까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는데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엄마가 죽고 마음을 열고 결혼을 한 카렌은 용기를 내어 딸을 찾고 임신을 한 엘리자베스도 몸의 변화를 느끼면서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작은 실수로 둘은 만나지 못하고 결국 엘리자베스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마리아를 매개로 카렌은 자신의 손녀를 볼 수 있게 된다. 

엄마가 된다는 것 나도 경험한 일이지만 그건 그저 행복하고 경이로운 일만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엄마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딸이 둘이나 되고 엄마경력이 10년이 되었지만 나도 아직은 딸들이 무섭고 버겁고 귀찮을 때가 있다. 한때 그 아이가 내 몸속에 있다는 이물감에 힘들었고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게 또 힘들었다. 하지만 잠든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아니면 그 아이들이 내게 보여주는 한없는 사랑과 애정을 느끼면서 내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또 두려웠다. 자식때문에 살고 자식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또 반대로 자식이 눈에 밟혀 함께 죽어버리는 여러가지 엄마들의 사연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엄마가 딸을 그리워하고 딸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그건 어쩌면 사람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나누었기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또 경험을 나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배속에서 함께 한 그 10개월의 시간이 예사로운건 아닐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우리 엄마 내 딸들이 떠올랐다. 나를 통해서 관계를 가지게 되는 여자들의 관계 .. 엘리자베스를 통해 카렌과 엘자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처럼.. 여자들간의 처연한 공감대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를 통해 내가 있고 나를 통해 세상에 있는 딸들 서로에게 감사하면서도 애증의 관계가 미묘한... 그런... 

다행히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고 참 쿨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끈다.  카렌이 가정부를 통해 죽은 엄마의 마음을 알고 우는 장면외에는 참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사실 요사이 여러가지 주체못할 감정들 사건들로 울고 싶은 마음으로 갔었는데 울기는 커녕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호통만 듣고 나온 느낌이다. 내가 엄마라서 어쩌면 세상을 더 품으면서 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든다.  

엄마라는 거 참 그리운 말이다. 그리고 참 따뜻한 느낌인데.. 

우리딸들이 부르는 엄마라는 이름에도 그런 것들이 들어있기나 할까? 

모성이 별게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용기,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함 그리고 자신의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그게 결국은 모성이 아닐까 싶다. 

사족... 아네트버닝... 예쁜 사람은 늙어서 꾸미지 않아도 무지 예쁘다. 질투나게... 

         내 딸이 엘리자베스 처럼 독립적이고 강단있었으면.. 단 그렇게 쓸쓸한 속내는 닮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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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이해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한 아이돌 소녀의 동영상.... 그걸 보면서 참 맘이 짠하다. 

그아이가 뭘 잘못했느냐 아니냐.. 다 아는 나이에 한 행동이 이해받을 수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 

서 그냥 그 아이를 만난다면, 아니 내가 아는 아이라면 그냥 꼭 안아주고싶다. 

그저 꼭 안아주고 말없이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혹자는 14살이면 아직 어린애가 그냥 호기심에 남들이 다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번 한일로 

너무나 마녀사냥처럼 몰아간다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그 나이면 알거 다 알고 옳은거 그런거  

아는 나이에 그런 짓을 한다는건 싹수가 노랗다고도 한다. 

양쪽 다 틀린 일은 아니다. 만일 내 딸이 그런 짓을 해서 그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고 남들입에  

오르내린다면 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수치스러워 일단 내 딸을 무지몽매하게 잡을 거같다. 

먼지나게 두드려 패고 너죽고 나죽자고 무식하게 난리칠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서는 부둥켜 안고 괜찮다 괜찮다고 해줄거같다. 

남들은 손가락질 하고 비웃고 남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까발리듯 들여다보고 여기저기 돌려보고 쉽게 욕하고  비난해도  괜찮다고.. 

니가 좋은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들이 너의 그런 생활을 엿볼 권리는 없다.  

한번의 실수로 (의도했든 모르고 했든) 그렇게 누군가를 매장할 수는 없다고.. 

용기를 내라고 말해줄것이다. 

내딸이든 남의 딸이든  그 아이가 어떤 짓을 했건.. 잘못은 벌을 받고  교정해야겠지만...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도저히 티비에서  볼 수가 없고  내 아이가 따라할까 없애고 싶은 마음을 이해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사생활 대단한 사건이냥 돌려보고 어머머 어머머하며 호들감떨고 엿보고  이렇게 저렇게 비난하고 비판하고 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짓이 아닐까? 

놀라고 충격적인 일이긴 하나 당사자만금일까? 

상처받고 화나고 부끄러운 마음이 당사자 만큼이나 할까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그걸 느꼈다면 그걸로 그 아이는 충분히 벌을 받는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 든다. 

걱정하듯 놀란듯 관심을 가지고 더 뭐가 없나 하고 수군대고 기웃거리지  말았음 좋겠다. 

길가다가 바람에 누군가의 치마가 뒤집어 질때 그냥 모른 척 안 본척 하는 게 젤 좋은 매너가 아닐까 한다. 

섯불리 다가가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행동이 어쩌면 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은 모른 척 무심한 척 해주자. 

그러면서 앞으로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범위가 어디까지 갈건지.. 그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 소녀가 이 시기를 잘 견디길 바라고.. 

언젠가 다시 브라운관에서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봐주기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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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밉고 싫은 것들은 직접적인 가해자들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무난한 추임새를 넣으며 구경한 자들.. 용인한 사람들. 작은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고통과 비탄을 못 본 체한 ㅜㅇ분히 ㅊ자들, 요컨데 츙분히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피해자에게 있어 잉여가 아니라 결정적인 존재들이다. ..... 남은 해치지 않으나  아마도 귀찮아서 오판의 가능성을 방치하는 행동.악행을 한 것도 아니지만 선하게 행동하려 들지도 않은 것들이다. .....<시네21 771 김헤리> ㅇ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그렇고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도 그렇고.. 여타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듯이 소위 말하는 피해자가 고통을 받는 것은 직접적으로 해악을 가하는 가해자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악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워하고 증오할 만하다는 공감대라도 얻을 수 있지만 그 옆에서 말없이 동조하거나 무시하거나 섣부르고 오만한 충고나 위로를 건네는 이들..그들이 어쩌면 피해자들에게 더 아픔이 되고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된다. 

임계점까지 다다르면서도 참았고 참을 수 있을거 같았던 고통위에 단지 한방울을 더한 것 뿐인데그 무심한 한방울이 사람을 폭발하게 하고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수치감을 자극하면서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선한 의도이든 무심하고 위선적인 행동이든... ㄴ"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렇게 이름없고 얼굴없는 대중의 시선이고 눈빛이다. 

인터넷공간에서 별명이라는 무명의 댓글로 한두마디 휙 던지는 말들이나 글들 

당사자앞을 혹은 옆을 지나치며 무심히 내뱉은 한마디가  

어쩌면 독사의 독처럼 온몸으로 펴져 낭뜨러지 끝으로 사람을 몰 수도 있다. 

적극적인 표현과 관심... 조금은 주책맞고 까탈스러운 행동들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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