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단순하고 별 일 없이 영화가 흘러간다. 

핀란드에서 한 일본인 여자가 일본 가정식 식당을 열었다. 아직 낯선 이방인이라 손님이 없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청년이 매일 와서 커피를 마신다. 그러나 첫손님이라는 이유로 그건 공짜다. 아직 실제 매상은 없는 상태 그래도 주인여자는 태평하다. 

우연히 여행온 키큰 여자와 함께 지내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기내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안경낀 여자가 와서  다시 같이 지낸다.  

일본요리를 해보라는 권유에도 따뜻하고 일상적인 음식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식당을 하고 싶다고 한다.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이 와서 따뜻한 밥 한끼에 먹게 해주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것 

영화는 보는 내내 나도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이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 다소 지루한 일상만 나열될 뿐이지만 그들의 넉넉하고 태평한 모습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 편안함이 위로가 된다. 

일본의 오니기리는 참 특이한 음식이다. 그저 간해서 꾹꾹 다져만든 주먹밥안에 작은 반찬 한가지만 넣고 만든것,,, 별것 아니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거 같지만 그 속에 정성이 있고 만들어  주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우리나라 예전 주먹밥이 그런 거였을까 

영화속에 나오는 말중에 커피는 남이 내려주는 것이 맛있고  오니기리도 남이 해주는 게 맛있다는 말이 나온다. 주부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늘 가족에게 누군가에게 밥을 차려내야하는 입장에서 누군가가 초라하고 서툴지만 나를 위해 만들어 주는 밥은 세상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잇지 않을까 .... 영화는 그렇게 여자들이 공감하고 특히 결혼하고 나이 먹고 조금 지치고 세상에 찌들었지만 마음속에 아직 허전한 희망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준다.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래... 하는 마음이 드는.... 

정갈하고 햇살이 드는 식당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조금 무료한 표정, 하나하나 살펴보며 장을 보는 모습 한적하고 보잘것 없는 항구  야외카페에서 햇볕을 쬐는 모습 등등등...하나하나가 참 여유롭다, 

음식을 만든다는 것 누군가에거 무얼 먹인다는 것 그건 말없는 위로이고  배려이다. 뭔가 도움되는 말을 해줄 수는 없고 등을 두들겨주고 도닥거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지치고 힘들고  막막한 이들이 먹는 밍밍한 오니기리는 큰 힘이 된다.  

배고플 때 봐도 기분좋은 영화... 심심한 듯한 일본 영화가 나름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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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극적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면 하루가 갑니다 하루가 모여 일년이 되고 일년이 모여 십년이 되고 십년이 모여 일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일생은 평범한 하루의 합인 것입니다.  

비범을 꿈꾸었던 삶이 평범으로 귀착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려의 글또한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 자ㅣ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지켜보며 글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 하찮은 미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실은 일상에서 도 닦는 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ㄹ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려의 삶은 평범함 속에서 마침내 비범함에 도달한 삶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지기때문에 놀러왔지... 의 작가의 말 중에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모여 그 사람의 전기가 됩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거 만들어내는 조화 그 하루하루를 야물고 꽉채워서 살아내는 것 

또한 아름답습니다. 

큰 계획을 세우고  뜻을 품어서 그에 맞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하루하루를 모아 큰 그림을 만드는 것 또한 아름답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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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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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남은 언제나 설렌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서 설레일 수도 있고 전혀 정보가 없는 낯선 사람이라도 설레일 수 있다. 

그가 아주 악한이거나 나에게 해를 끼칠 인물이라면 예외이겠지만 

누군가를 새로 만난다는 건 새롭게 알게 된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그건 책속의 누군가 인물을 만나는 일에도 적용이 된다.  

요즘 역사속의 인물에 관심이 생긴다 그 

그전에 그저 이름만 알고 역사시험용으로 그의 업적이나 상황을 암기하고 지나갔던 인물들에 

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 일이 있다. 

명색이 역사를 전공했음에도 그 분야에 너무나 무지했던 나였는데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예전 이 땅에 살고 숨쉬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했던  

어떤 인물들에게 관심을 갖는 내가 참 대견하기도 하다. 

 

이 책은 김려와 이욱 두 친구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사람은 성균관시절 친구로 둘 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재주가 있었다. 이욱은 자기가 쓴 글때문에 평생을 고초를 겪었고 벼슬 

에 나아가지 못했고 운명이 꼬여왔다. 김려는 그러한 친구 이옥을 보면서 글쓰기를 자제하고  

몸을 사리고 벼슬에 나아갔지만 결국은 이옥과의 관계와 글쓰기로 인해 귀양을 가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옥은 여러 고초를 겪으면서도 문체를 바꾸지 않고 자신의 글쓰기를 고집스럽게  

이어나간다. 반면 김려는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자신의 글을 어찌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꾹꾹 누르고 참고 감추면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왔다.  

이 책에서 정조의 또다른 면을 보게된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개혁을 논하는  새로운 군주가  

아니라 성균관 유생들의 문체를 감독하고 통제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절대적 군주이다 

그렇게 고초를 겪은 이옥이 죽고 김려는 여러 고난끝에 한고을의 현감이 되었을때 이옥의 아들 

인 우태가 아비의 글을 가지고 김려앞에 나타난다. 

우태의 등장으로 김려는 그동안 꽁꽁 숨겨만 두었던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난 추 

억 자신의 비겁한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고 친구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이 감추기만 했던 

지난 유배시절의 글을 기억하고 그때처럼 자유롭게  눈치보지 않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위로했 

던 시절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벼슬을 버리고  가장 비참한 시절인 동시에 자유롭게 글을 썼던 시절인 부령 유배지를  

돌아보기로 하고 친구의 글을 작품집으로 묶기로 결심한다.  

책속에서 우태가 묻는다. 

"일찌기 정조임금이 글쓰기 문제로 아버지를 몰아붙였을때 아버지를 변호하고 나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생각이 그렇다면 왜 글쓰기는 죄가 아니다. 이렇게 소리치고 맞서지 못했조?" 

김려는 두려웠다고 했다. 글쓰기가 인생을 망칠까봐 두려웠노라고   

벗과 함꼐 새로운 글쓰기를 하며 기쁨을 느꼈으면서도 막상 그 벗이 글로 인해 고초를 당하고  

그 불똥이 나한테 튈는 것이 두려웠다고 ,,내 속에서 차고 넘치는 글들을 주체할 수 없어 글을 

쓰면서도 그 글들이 세상으로 제멋대로 돌아다닐까 두려워 꼭꼭 감추고 살았다는 것..  

글을 쓰고 옮는 일은 죄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은 바꾸어 놓는다면 누구나 두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옥처럼 미련하게 글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김려처럼 너무 

나 현실적으로 알아버려서 스스로의 끼와 흥을 누르기만 하는 것이 된다. 

새로운것은 늘 경계를 받는다.  정조도 그렇게 새롭게 들어오는 문물이 자기의 통치를 벗어나 

신분질서를 사회를 의심케 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이 두려웠나보다.   

다른 것이 들어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기고 그 속에서 흥을 느끼고 위안을 느끼 

거 힘을 얻어서 현실을 돌아보고 알게되고 힘을 합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고.. 

그 모든 것이 그때는 죄였던 모양이다. 

지금운? 

이 책을 통해서 김려와 이옥이란 인물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그시절에 정조나 정약용이나 박제가 이덕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글을 잘 쓰고 그 글로 사람들 

을 즐겁게 했던 이옥이 있었고 김려가 있었다. 

끼와 제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죽어고 죽여도  튀어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해 매일 사쇠하듯 조금씩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살아온 이가 있다 그들은 친구였고 두 친구의 우정이 두 사람의 글을 세상에 드러냈고  

그리고 지금 나는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책 말미에 인용된 글에서  

"멋지기때문에 놀러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게야" 

멋지다는 말.. 이말이 진정 어울리는 두 사람과의 유쾌하고 의미있는 만남이었다.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멋진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읽은 이가 동감하고 느끼고 혹은 반대하는 생각조차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글쓰기 아닐까 한다. 

사족... 폴 오스터가 그랬던가 .. 작가는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아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어서 하게 되는 직업이다. 이옥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글쟁이였던 거 같다. 

정조의 문체반정이나 이젠 8-90년대의 금서들 언론탄압들.. 모두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새로움 에 대한 두려움. 다른 것은 모두 틀리다고 해야 마음이 놓이는 불안감.... 그런것들 속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생각은 나오고 나는 다르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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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이 되려면 복권을 사야하고  

누군가를 만나려면 집을 나서야 한다. 

돈을 벌려면 일단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꽃을 보려면 씨를 뿌리고 부지런히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한다. 

뭔가를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달인데 아직도 서성이고 망설이고 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라는 건 결국 다 핑계일 뿐...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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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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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는 글을 참 잘쓴다, 

잘 쓴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참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조용히 세심하 

게 들여다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꾸미고 그리고 쉽게 읽히게 쓴다. 

그러면서 책장을 덮으면 잔잔한 물결이 일게 만든다. 

이 이야기도 단숨에 읽힌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참 세심하게 그려졌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공부이외엔 관심도 없고 미숙하기만 한 아이들 

감정 조절도 호기심도 욕구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모르면서 오로지 성적 공부와 입시만이 

전부인 아이가 있고 부모의 기대밖에서 힘들어하고 시니컬해지고 스스로 단단한 고치를 만들면 

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왕따문제 청소년의 성폭력 있는 집 자식들의 알리바이 만들기 부모의 그릇된 애정과 과잉보호  

아이들 세계에서도 정의나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고 권력이 먼저고 힘이 있으면 모든것이 

덮혀지고 묻힌다. 

나약한 아이들만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자해한다.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까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나비 이야기가 나오고 친부모가 아닌 

밖에서 나은 아이라는 설정이 조금 억지스럽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충분하고 사연이 많지만 앞에서 엮어놓은 오빠의 일탈과 친구의  

성폭력 모범생들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마무리가 좀 그렇 

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설속의 이야기와 현실이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게 더 두렵다. 

한사람의 작가로서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쉽지않다는 것도 한사람의 어떤 결정이 

무언가를 바꾸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 읽고 나면서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반발심도 함께 

든다. 아이랑 함께 읽을까 했지만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괜히 두려움을 느끼거나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할까봐 권하기는 그렇다. 

한사람의 힘없는 소시민으로써 가능하면 나와 내 아이들이 소설속의 상황과 부딪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만 간절한다. 

상황을 견디고 결국 평화를 얻고 행복하다는 것.. 그건 그냥 소설속 허구일 뿐이란 생각만 든다 

현실은 상황을 견디는 자체로서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기에... 

아름답지 않는 결론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게 씁쓸하다.  

상처받은 아이들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아이들이 그 한번의 실수 상처가 영원으로 낙인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할 과제가 아 

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아이로 살기도 어른으로 살기도 참 힘든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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