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조관우가 떨어졌다. 그동안 누구 말마따나 간당간당 너무 간떨리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가고 있었다만 이렇게 뚝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실 오늘 실수도 무딘 내가 알아 볼 만큼 확실했긴 했지만 그 실수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정말 화난다. ' 

어쩌면 그에게 나가수 같은 무대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잘은 모르지만 수줍고 내성적이고 예민한 그에게 이런 간떨리고 피말리는 경쟁은 어울리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강하게 내지르지 않아도 확확 뽑아내진 않아도 마음을 툭 하고 건드리고 나도 모르게 내 감성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음색을 그 노래를 어떻게 남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예전에 정말 미친듯이 콘서트를 다닐때의 그 자신만만한 모습이 아니라 쭈그리지고 늘 종알거리면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오긴 했어도 너무너무 안쓰럽기도 했으니까..  

이제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노래를 하고 싶은 방식으로 부르는 그를 기대해본다. 나가수 덕에 매주 텔레비젼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옛음반이나 컴으로 노래를 찾아들어야 겠구나. 

그의 콘서트를 다니면서 노래를 들었던 20대의 나를 기억하면서 그의 탈락이 이제 그를 편안하게 해주길 빌어본다. 

 

그리고 나의 청소년기를 도배했던 조용필.. 그때는 그냥 1등 많이 하는 가수 유명한 가수 인기있는 가수로만 알았던 그의 노래를 40에 다시 들으면서.. 그가 왜 가왕이라고 칭해지는 지 이제야 알았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고 리듬 선율이 지금 어떤 노래에 뒤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경험치가 늘어나고 나이를 먹어서 그 정서를 공감하게 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노래들이 참 아름답다는 걸 이제사 느낀다. 그때는 유치하다고 느낀 못찾겠다 꾀꼬리가 참 쓸쓸하고 아름다우면서 아픈 가사라고 느껴지고 단발머리나 창밖의여자에서 느껴지는 정서들이 그저 부르는 사랑노래나 그저 그런 것들이 아닌 삶의 뒷면을 놓치지 않고 소담스럽게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가 바로 우리 시대의 시인이 아니었을까..  

왜 나는 좋은 걸 나중에 알게 될까...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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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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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방금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내가 커피를 내려서 먹는 머그잔이 캔 맥주가 딱 맞게 들어간다는 거.매번 맥주를 마시고 싶을때마다 내가 알콜릭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고 가족에게 미안했었는데 이렇게 몰래 따서 머그잔에 마시면 남들은 내가 식은 커피를 마시는 줄 알거 아니야.. 꽤 괜찮은걸,, 

대신 좀 맛이 좋은 맥주가 나오면 좋겠어. 카스는 뒷맛이 너무 소주스러워서 싫어했거든.. 남들은 다 카스가 좋다던데 남들이랑 마실땐 특별한 주장없이 같이 마시지만 늘 뒤가 안좋아서 내가 선택할때는 오비를 마셨는데 그게 자꾸 마시다 보니 맛이 아니더라구.. 사실 아사히가 젤 맛있긴 한데 주머니 사정이 어렵고 그렇게 일제를 자꾸 마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씁슬하고 맛있는 맥주가 있음 좋겠어.. 딱 두잔이 정량이라 그만큼 마셔서 아 맛있다 싶은거.. 

아 오늘 쓸건 그게 아닌데...  

김선우가 시인인지 소설가인지는 헷살렸지만 그녀의 글을 나는 신문에서 칼럼에서 많이 보았다. 젊고 당차고 예쁜 얼굴만큼 글도 딱부러지게 잘 쓴다 싶었다.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당당한 젊은 여자로 생각했는데.. 에구.. 나랑 한살밖에 차이가 안나.. 아 속상해.. 

8년 촛불집회때 이야기들을 여성성이 가득한 신화같은 이야기랑 맞물려 풀어진다, 그때 딱 하루 광장에 나갔다. 9세 6세 딸내미들을 데리고 나갔었는데 큰애는  그날 일기장에 " 사람들이 자기가 뽑은 대통령을 욕하는게 이상했다. 누군가를 욕하는게 슬펐다"라고 썼었고.. 둘째는 그날의 일을 축제의 한 장면처럼 기억했다. 촛불과 간식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과의 행진들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그때의 일들이 주역이었던 학생들 소녀들 젊은 사람들 자유롭게 모이고 자유롭게 외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들 새로운 집회문화라고 일컬었던 장면들이 이야기속에 담겨있다.  

이게 뭐야 하면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고 조금 생뚱스럽다 싶은 이야기들도 그렇게 이어져가면서 쉽게 읽었다. 

희영 연우 수아 지오 등등 아직은 소녀들 (나이를 떠나 감성이나 순수함에 있어서) 의 성장과 소통 그리고 배려가 책에 잘 버무려져 있다. 촛불도 언젠가 후일담 소설로 등장할 거란 생각은 했었는데 의외로 일찍(?) 나왔다.  하지만 너무 힘주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스케치하면서 그 속에서 한 소녀의 성장담이 같이 버무려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희영이가 옛애인을 만나서 사랑하는 부분만 없다면 딸아이에게도 한번 읽어 보라고...3년전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나는지 그리고 이렇게 지오처럼 혹은 다른 등장소녀들처럼 그렇게 조금은 발랑 까져보이면서도 단단하게 스스로 여물어갈 줄 아는 소녀로 자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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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상으로 나아가야할때.. 

두렵고 겁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렇게 계속 외면하고 모른척 숨어 있을 시간도 없다.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비루하고 험하고 막막하여도 일단  나가서 부딪칠 수밖에 

아,,, 숨 고 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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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받아놓고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첫 장을 넘기고 읽기 시작했으나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었다. 자꾸 같은 문장을 반복하게 되고 좀처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덮어놓고 다른 것들을 먼저 해치우고,, 그리고 늦게 손을 잡아든다. 이전 사놓고 읽지 못하던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다시 읽으면서 그제사 그의 미사여구 없이 단정하고 깔끔한 문체의 맛을 알게 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미쳐 다 읽지 못하고 다시 남한산성을 들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남한산성에 꼭꼭 숨어서 하릴없이 견디기만 하는 인조와 조정대신들이 남같지 않았다. 청이면 어떻고 명이면 어떤가 어짜피 우리가 아닌 남을 사대해야하는것 자체가 치욕이 부끄러움인것을 무엇이 도리이고 무엇이 오랑캐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고로 왕이라고 하면 아니 지도자라고 하면 백성들을 살피고 이끌고 그들이 겪어야 할 곤궁을 최소화하면서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게다가 세상은 바뀌고 있었고 명은 쇠약하고 청은 강대해지고 있는데.. 무엇이든 어떠한가 스스로의 실리는 살피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존하는 길을 모색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답답한 임금은 그렇게 성에 머무르면서 시간만을 견디고 혼자 고뇌하고 슬프한다. 그동안 백성들은 죽고 다치고 배반하는데... 그저 혼자 서글프고 힘들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한 건 바로 그 답답하고 찌질한 왕이 나랑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저 혼자 견디고 내가 제일 아파.. 하고 세상을 향해 응석부리고 종주먹이나 날리면서 숨어있는 사람.. 그게 나라는 생각이 자꾸든다. 청의 칸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저렇게 꼭꼭 숨어서 도데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하는 것 그게 바로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랄까.. 

인조도 결국 남한산성을 떠났다. 그게 치욕이고 굴복이더라도 그렇게 발걸음을 내디뎌버리자 다시 시간이 흐로고 세상으 흐로고 사람들이 숨을 쉰다. 나도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내가 지은 성안에 숨어서 주위사람들을 무기삼아 고뇌하고 견딘다고만 할게 아니라.. 그냥 발을 내디딜 용기가 필요하다. 설령 그 앞에 치욕이 두려움이 부끄러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견디어야지 그냥 웅크리고 견디기만 하면 서날쇠의 독에 묻어있는 똥물처럼 그렇게 독기만 올라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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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가마에서 흔들리며 칸은 이 무력하고 고집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을 깊이 근심하였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었다. 송파강은 날마다 부풀었다,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칸은 답답했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를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 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대처를 지날 때에도 관아와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선의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 댈 뿐이었다. 도성과 강토를 다 비워놓고 군신인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주겠다는 것인지 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이런 역사소설을  더우기 치욕적인 상황을 그려낸 역사소설을 읽고 나서는 비분강개하거나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백성으로 살지 않기위해 무엇을 해야겠다거나 하는 다짐을 해야하는게 교과서적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너무나 비루하고 찌질하고 찌질하구나.. 그러나 다시 봄은 오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희망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삶은 영욕을 떠나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인지 황망스러웠다.  

꿩도 아닌것이 얼굴만 묻고 엉덩이는 하늘로 쳐올리고 숨어버리면 아무도 모를거라고 그렇게 남한산성에 들어앉아서 대책이 없는 각론을 벌이며 시간을 죽이고  도를 따지고 예를 따지고 길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홍상수영화만큼이나 찌질하고 어이없음이다. 아무런 감정없이 마르고 간략한 문장속에서 느껴지는 비루함이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에 묻어나올만큼 흘러남친다.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위에서 인용한 문구처럼 청의 칸이 보기에(그러니까 제삼자가 보기에도)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런 행동과 결단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왕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대신들은 논쟁만 벌이고 백성들은 긂어 죽고 치욕스럽게 도륙당하고 군사들은 비바람과 배고품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치욕스러운 역사적 묘사앞에 치를 떨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결심을 해야하는데 그것보다 어이없고 황망하여 어쩔 줄 모르겠다. 

이렇게 치욕을 남기고 삶을 택한 왕은 훗날 자신의 아들을 의심하고 자신의 선택한 화친과 동맹의 굴욕이  다 남탓이라 그 화살을 아들에게 돌리고 무언가 희생양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자리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면서 지금의 치욕을 그렇게 덮어버리고 싶었을까... 

조선의 가장 찌질한 왕중에 하나라고 하는 인조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할 건 없지만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무언가를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도 신료에게 묻고 책임지우게 하고 그와중에 신하들의 대책없는 도타령에는 한마디씩 일침도 가하는 왕.. 그사이에 백성들은 굶고 빼앗기고 죽어갔다. 왕이 대신들이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천민에 가까운 대장장이 서날쇠는 결단을 내리고 가족을 챙기면서 자리를 지키고 목숨을 하나 거두고 심지어는 밀명까지 행한다. 그렇게 아랫사람들은 치열하게 자신을 지키고 무언가를 지키고자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청의 역관이 정명수 마저 가족의 죽고 의탁할 곳없이 청까지 흘러가서도 치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백성들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최명길과 김상헌도 치열하게 성문을 열것인가 말것인가로 다투고 대신들도  조금이라도 도리에 법도에 어긋나는 말이 나오면 목을 쳐라 도를 세우라 하면서 침을 튀어가며 탁상공론을 치열하게 한다.그러나 그 치열함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감 아니면 치욕을 견디고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자함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견디는 것 도저히 저런 오랑캐와는 대면할 수 없응니 이렇게 버티고 보자는 것 그 이상이아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누가 옳다 그러다 할 수 없는 것이 누구나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그동안 몸에 익힌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우물속의 개구리처럼 그것이 자신이 아는 세상이치의 전부인지라 그 자리에서 관료는 관료대로 왕은 왕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정명수는 정명수대로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도 어리석은 뀡처럼 머리만 숨기고 엉덩이는 세상속에 치켜올린채로 귀막고 눈막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이치로는 알지만 그렇게 행하기가 막막하고 두려워 지금 나도 견디기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행하지 아니하고 이리저리 말만 하며 미련하게 견디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여서 일까...

칸이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느끼는 저 위의 인용들은 바로 나에게 들려주는 것 같아서 조금 뜨끔하다. 

김훈의 문체가 참 읽기 힘들었는데.. 한권을 떼고 나니.. 참 단순명료하고 정갈하다 꾸미지 않아도 적재적소에 알맞게 들어앉은 단어단어들이 어쩌면 이렇게 딱맞게 배치되었는지.. 그의 글이 좋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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