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버지니아 울프 산하작은아이들 40
쿄 맥클레어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노경실 옮김 / 산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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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 바네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린 버지니아를 옆에서 보살피고 위로했던 바네사의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읽는다,

내 아이 하나는 무던한 사춘기를 겪었다,

다 지나고 보니 무탈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한 순간 순간 살얼음같고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무능한 내모습을 마주하면서 절망하고 그저 이 시간이 흘러가주기를 눈감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간도 있었다,

그게 지속된게 아니라 어느 순간 순간 터져주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그리고 한 아이는 막 이 문턱에 섰다,

어쩌면 제 언니보다 조금 더 지독하게 하겠다는 예감이 들어 불안하다

그러면서 어떤 예감이 - 아무리 우울한 예감이라도- 든다는 건 그래도 견딜만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느 순간 사랑스럽던 내 동생이 늑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내 아이가 낯선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답은 없다,

알지만 해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알면서도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고 알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이성이 먼저 켜지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 그저 지켜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말고는 답이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풀어가는 해답을 통과하는 것이 힘들다,

사실 책을 읽으며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앞 부분에서 금방 화사한 색채감을 드러내는 중반 이후가 조금 억지라는 생각도 한다,

현실은 쉽지 않다고,,,

이렇게 세상에 빛을 넣기까지 바네사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 노력이 고작 한 페이지뿐이라는게 화가 난다,

단 한 페이지로 바네사는 버지니아의 마음을 돌리고 풀어준다니,,, 이런 된장스러운 일이,,,

 

말은 쉬운데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고 기다려주는 일은 의외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다,

나를 잠시 퍼스 시켜두고 타인에게 몰입해야하는 시간이다,

지루하고  저리고 더딘 시간이다,

에민해진 아이는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는 순간을 귀신처럼 캐치해낸다,

내게 관심도 없지?

금방 화살은 날아온다,

그래서 자꾸 관심을 켜두려고 예비 베터리까지 꺼내 들지만 그동안 일단 멈춤 된 나 자신은 점점 굳어져 가고 시들어간다,

내가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랑 이야기하나 싶은 .....

그래도 상대가 , 아이가 다시 예쁜 버지니아로 돌아오면 모든게 덮히고 잊히지만

그 날이 영영 오지 않을거 같은 불안감도 늘 함게 한다,

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 투성이지만

지나기 전 그 안에서는 그게 전부고 고통이고 별천지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힘

그걸 기들 수 있는 건  결국 나를 채워서 단단하게 해 두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단하고 강한 바네사로 살아갈것

그것이 버지니아처럼 약해지는 누군가를 함께 지탱하는 일이다.

기다려 주는 것 함께 있어주는 것

내가 무능하고 무능하게 여겨저서 더 힘들지 않게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그럼 언젠가 버지니아도 바네사를 기다려 줄 때가 오지 안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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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일공일삼 94
황선미 지음, 신지수 그림 / 비룡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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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드러내면 누군가 상처를 받지만

 진실을 덮어버리면 모두가 상처를 받는다'

미미여사가 솔로몬의 위증에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한 말이다,

 

주경이는 혜수네에게 늘 당하는 입장이다,

한 번의 실수로 초콜렛 셔틀을 하게 되고 늘 전전긍긍 눈치를 보며 얼른 혜수네의 눈깔이 자기를 비껴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기회가 온거 같은데 ... 하필 누군가의 구두를 던져야 하는 시험에 빠진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되뇌이면서 눈을 질끈 감고 신발을 던져버린다,

일은 그렇게 꼬여버렸다,

주경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사실 주경에게 기회가 없던 건 아니다,

싫다고 안한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주경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혜수네 눈깔들의 마음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눈깔들이 향하는 곳을 자기가 아닌 명인으로 돌리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경은 점점 더 괴롭다,

모두가 아는 게 아닐까 뒤에서 수군거리는게 아닐까하는 불안감

그리고 스스로 점점 커지는 죄책감

쟤들 때문이라고 혜수네 눈깔들을 향한 분노

주경은 그래도 아무 내색을 못한다.

모든 감정이 뒤엉키면서 주경은 점점 쪼그라든다,

절대 안보고 살겠다는 명인이와는 자꾸 얽혀들고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버린다,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진실을 드러내고 사과하면 주경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명인이나 정아가 자기를 어떻게 볼지 알 수 없다,

이제 혜수를 넘어 명인이와 정아까지 자기를 이상하게 볼 것이고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덮어버리면... 역시 그것도 상처다,

아무도 모른다고 상처가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니까

아이들 이야기답게 이야기는 잘 흘러가고 마무리 되었다,

주경이는 용기를 내어서 사과를 하고 상처를 드러내면서 더 많은 상처가 번지는 것은 막았다,

 

명인이가 받은 아픔 그동안 정아가 받았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주경이의 상처에 딱지가 앉으며 그렇게 성장 할 것이다,

다만  주경이가 당한 일들은 구두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억울해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잘못일거라고 스스로 도닥거릴지도 모르겠다,

 

결말을 그렇게 행복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이 책을 읽은 나는 마무리가 자꾸 미흡하다는 생각을 한다

고지식한 나 는 사과가 있고 용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상처를 받고 아팠을 때 어떤 위로나 공감보다

미안해. 많이 아팠니 잘못했어

이 한마디가 더 절실할 때가 있다,

명인이의 마음을 헤아린 주경이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냥 혼자 정리하고 해결하는것

그리고 친구로 남아준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것

혼자 결심하게 하는 것

그게 자꾸 잔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나도 사과받고 싶다고 말하기엔 너무 치사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언젠가 다시 올라올 서러움이다,

작가는 주경이가 아픔을 통해 변하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주경이도 받아야 하는 것이 필요한 나이이다,

여자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싸움은 보이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아서 더 상처가 되는데  혼자 씩씩하게 이겨낸다는 결론이 자꾸 걸린다,

주경이가 그냥 착한 아이로만 자랄 거 같아서...

어쩌면 주경이 마음 속에 그늘이 이제 막 생겨버렸는데

그냥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고 주경이가 명인이나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이유로 그게 그냥 넘어가버릴까 하는 노파심이 자꾸 든다,

주경이의 욕구는 마음을 말하면서도 그게 그냥 넘어가는 거 같아서 걸린다,

용기없는 주경이가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도 자꾸 주경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프다고 해도 괜찮다고

나도 사과받고 싶다고 해도 괜찮다고,,

진실을 드러내서 혼자 상처받는 쪽을 택하겠다고 한 주경이등을 자꾸 쓸어주고 싶다

그렇게 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웃어야 괜찮아야 지금 이 순간의 평화가 깨지지 않는거라고 그래서 참는 거라는 생각이 자꾸든다,

 

어른들은 항상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아이가 웃기 시작하면 다 괜찮다고 믿는 모양이다,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도 자꾸 주경이가 걸린다,

 

황선미도 참 좋은 작가지만

미미여사가 만져주는 그 지루하지만 세세한 마음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별을 두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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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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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고민이 있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 꼭 목소리가 떨려나왔고 말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사실 편한 자리에서도 목소리가 떨려 나올때가 있고 속도는 늘 빨랐다

가끔은 내가 긴장을 해서 목소리가 떨리는 건지 아니면 목소리가 떨리는 걸 신경쓰다보니  긴장이 되는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내 소리가 떨리는구나를 깨닫는 순간 속도는 내가 제어할 수 없이 빨라진다

내가 남들앞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가 내 목소리에 대한 컴플렉스때문인건지도 모르겠다

뭐 두셋이서 수다를 떨때는 떨리는 일이 없지만  사람수가 조금 더 많아지고 조금 더 낯선 타인이 섞이면 늘 목소리가 점점 떨려온다,

어떤 이가 농담삼아,,, 내가 말하는 걸 듣다 보면 이 사람 말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게 아닌가 걱정될 때가 있다고 할 정도로,,,

집단 상담을 경험하면서  진행자샘이 내 목소리 이야기를 했다,

왜 떨리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나는 그저 사람앞에서 말하는 것이 긴장되어서 떨리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내 유년의 어떤 기억이나 경험과 관계되거나 어떤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거란 생각을 못했다,

생각해 봐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잊었다,

대신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 좀 떨리면 어떠랴,,

떨리는 염소소리를 가진게 나인걸,,,

그냥 그러려니 하는 배짱이 생겼다,

내가 누군가 대중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강의를 할 일은 아마 절대 없을 것이고 그저 몇몇과 대화를 나누거나 좀 더 많은 사람과 토론 같은 걸 하는게 전부일텐데,,, 그때 좀 떨리는 목소리가 나온들 어떠랴 싶었다,

이게 나이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그때 집단 상담덕인지는 모르겠다,

의외로 사람들은 교양있어서 내가 떨리는 염소소리를 내거나 말이 빨라지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모른 척 해준다,

다만 말이 너무 빨라서 못알아들을 땐 다시 해달라고 하고 나도 신경 써서 말하면 속도정도는 조절이 가능해졌다,

기왕이면 부드러운 음색으로 조곤조곤하면서도 강단있게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또 그렇게 하려고 흉내를 내지만 뭐 나도 모르게 염소소리가 나고 속도가 빨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책속의 소년은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안면홍조증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린 소년의 얼굴이 빨개진다는 건 무리에서 다르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아이는 그걸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그렇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나의 염소소리처럼,,

물론 그 아이의 심리를 해집어 들어가보면 무언가 원인이 있을 수도 있고  병리학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남들이 수군거리는 것 가끔 무리에서 도드라지는 것 말고는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시도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소년을 만난다,

그 재채기는 감기도 아니고 알러지도 아니고 그냥 무심코 나오는 재채기다,

물론 둘다 늘 얼굴이 빨개지거나 재치기를 쏟아내는 게 아니다.

내가 늘 염소소리를 내며 말하는게 아닌것처럼

둘은 서로의 다른 점을 알아보고 친해진다,

더 이상 얼굴이 빨개지거나 재채기를 하는 일은 별일이 아니다,

책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의 열등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열등감이 아닐거라고 말해준다,

뭐 나의 염소소리도 나름 나혼자는 인정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적어도 나는 내가 말을 오래하다간 심장이 멈춰서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 않은가

다만 남들이 좀 더 오래 염소소리를 들어야 하는 고통은 있겠지만....

말은 내용이 중요하지 그 소리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듣기 거북하고 불편한 소리를 내는 건 아니라고 믿으니까,,,,,

 

살면서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참 어렵다는 거다,

서로 공감해야한다, 다름을 이애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다 다 다르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나와 다른 것에는 거부감이 들고 불편함이 생긴다,

틀렸다는 문제보다 다르다는 문제가 어쩌면 더 어렵다,

틀린건 틀렸다고 하고 고치면 되는 일이지만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르다는 건 계속 다른 것을 보고 겪고 함께 해야하는 것이다,

틀린건 아니지만 불편하고 거북한 것 그것이 서로에게 있어서 서로 어색해지고 서로 조그쌕 모른 척 하고 등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자라면서 늘 상식적인 것 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 예의고 교양이라고 배워왔으니

조금만 다르면 이상하고 비정상적이고 불편해지는 건 당연하다,

나 역시 공감과관용을 이야기하지만

또 누군가 나와 다른 타인을 만나면 여전히 불편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든다,

그리고 나랑 닮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하소연하며 안전감을 느낀다,

 

이야기속의 두 소년은 그래서 용감하다,

정말 다른 이를 재미있어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리고 친구가 된다,

어쩌면 아이들은 아직 편견의 틀이 말랑말라해서 충분히 넓히거나 바꿀 기회를 가지고 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 교양을 덜 쌓고 상식이 많지 않아서 다르다는 걸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데 요즘의 영악한 아이들은 많은 학습과 커진 두뇌로 이미 교양과 상식이 풍부해져서 단단하고 멋진 틀을 가져버렸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아직 남은 순수함이 때때로  가식적인 어른들의 교양보다 더 무섭고 공격적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 아이들에게 다름은 거의 죽음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아이에게 다른 것을 인정하자 내 열등감을 들여다 보고 인정해보자고 이야기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다름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나 시도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랑 혹은 우리와 많이 닮아보이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다른 모습들

약간의 엇갈림을 오히려 우리는 더 견디기 힘들다,

같은 학연 같은 혈연 같은 지연에 그렇게 매달리는 건 다른 것은 불편해서 악착같이 같은 걸 찾아내야 마음이 편해지는 속성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같다는 건 편하다

다르다는 것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굳이 불안과 불편을 안고 싶지 않다,

그래서 편하고 좋은 것에 안주하고 다른 건 모른 척 하고 싶다, 없었으면 좋겠다, 내 눈앞에 안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편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도 사람이고 같은 나라 사람이고 나랑 마주쳤다는 건 나와 공통점이 무언가 있다는 것인데

그들이 불편했다는 건 많은 공통점을 잊을 만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일테다,

나도 아직 나와 다른 사람은 불편하고 힘들어서 피하고 싶다,

아마 누군가도 내가 불편하고 싫을 것이다,

굳이 편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맞추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냥 아 다르구나,, 세상은 다양하니까  다른 사람도 보고 사는 거야 겪고 사는 거야

나도 누군가에겐 타인일테니,, 하는 마음은 잊지 말아야겠다,

자꾸자꾸 생각하고 연습하는 것  그리고 변해보려고 시도하는 것

그게 살아있는 이유라는 생각을 한다,

 

 

노안이 와서 글씨가 너무 읽기 힘들었다,

그림도 글씨도 뭔가 너무  작아서,,,,,

그 불편함이 슬펐다,, 아 나도 나이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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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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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대로 트라우마의 행심은 시간이 그 순간에 멈춰버리고 그 경험이 아주 생생하게 반복되는 거니까 그 생탕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여러가지가 있어요, 내 아이의 모습이보이기도 하고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그때의 친구의 눈빛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요 . (중략)

그런데 트라우마의 증상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은 치유받지 않으면 그런 감정과 억압이 서로 싸우는 강도가시간이 지나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심지어 수십년이ㅇ 지나도 똑같아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5,6년후에 봐도 똑같고 지금 세월호 트라우마를 겼는 사람들도 100일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5.18 광주의 피해자분듣ㄹ도 30년 후에 봐도 똑같고요 어떤 고문 피해자분은 자기를 고문했던 수사관이 30년동안 어디로 이사를 가는지 계속 추적하고 있어요. 심지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테니스 가방에다 칼을 넣고 그 사람 퇴근시간에 가서 기다려요 내가 이번에는 반드시 죽인다, 이렇게 30년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고는 아무것도 못하고 오죠  그러면 다음에는 꼭 와서 죽인다 이러면서 30년전으로 계속 도돌이표인거예요. 치유가 되지 않으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그 강도나 밀도가 전혀 줄어둘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해요.   p 74

 

ptsd의 증상에 해당되는거죠 침입 억제 과잉각성이라고 하는

일상생활을 하는 내내 자꾸 트라우마의 기억이 끼어드는 것이 침입이고 선생님은 튀는 레코드판으로 이 고장난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주셨죠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온 아이가 친구ㅇ들의 마지막 눈빛이 자꾸 떠올라 고통받는 것과 같은 상황말이예요 반면 장례식에서 히죽거리는 아이는 억ㅈ를 겪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생각과 그 느낌을 회피하는 중상을 보이는 것이 억제니까요 또 5,18 피해자들처럼 계속 불면에 시달리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경계하는 탣와 가튼 것들이 과잉각성이구요 이런 용어들은 증상을 분류하는 범주입니다, 우리가 억제니 침투니 과잉각성이니 하는 단어들을 모른다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아나ㅣ죠 그렇지만 이런 분류 범주가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의지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도저히 피해가 수 없는 고통의 보편적 증상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p 76

 

 

(중략) 저는 그게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후유증입니다, 어린 나이에 어먼와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잃은 거잖아요 그럿도 거의 신과 같았던 앙버지를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를 잃은 뒤로 18년 동안 칩거하면서 쓴 일기들이 있는데 그걸보면 자기 아버지를 거의 신처럼 대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 것을 보고 느낀 배신감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자신은 하루아침에 세상에 내팽개쳐져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혼자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ㄱ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할 리가 없죠 세월호 유가족들이 엉엉 울어도 가소롭게만 보이는 거예요 '나는 당신들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나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신들 정도의 고통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거다, 엄살떨지 마라'하ㅓ는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ㅓ 그렇게 유가족들에게 차갑게 대했을거라 생각해요  (중략)

그래서 트라우마를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아진다는 것은 굉장히 끔찍한 일이예요. 말하자면 냉혈한을 양성하는 거죠 겱ㄱ은 그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사회적 비용을 다 우리가 치러야 하는 거예요, 상처입은 개인을 혼자 내버려두면 상처가 계속해서 번져나가니까요, 그러니까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우리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 는 겁니다,

                       p 79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닜으려면 먼저 자신이 존중받고 주목받아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에 대해 질문하는 법을 알지 못하죠.  (중략) 마음에 대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 거죠. 저는 그것이 질문한 사람도 누군가 자기 삶에 주목해주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 알지 못하는 것을 물어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기게 되요  (중략)

어버이 연합같은 극우노인단체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마 그분들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자기마음 자기 삶 자기 존재를 존중받다보면 약한 사람을 공격하고 상처주는 일을 조금씩덜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중략)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치유적인 거예요 한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거기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사회적인 의식은 그 다음 단계의 일이고 먼저 그런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저는 일베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 자살이 많은 것도 결국 핵심은 주목받고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고 모두 도구화되고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 못하는 아이는 존중받지 못하고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핵심은 우리 사회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한 인간을 존중하고 집중할 줄 아는 사회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 정말 지옥같은 사회인거죠.    

                                                                    p 124 

 

 

저는 치유라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을 찾고 아는 과정에서 치유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지나고 생각해요. 자식을 키울 때도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찾아다니다 보면 자꾸 각론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부모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할 수 밖에 없고 개념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을 하게되거든요.

(중략)

비싼 요리를 못 먹는다고 결핍이 생기지는 않지만 집밥을 못 먹으면 치명적인 결핍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제가 말하는 일상이예요. 삶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 인간의 생존과 안정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지만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는 것 그런 기본적인 것을 다시 구현함으로써 자기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느지를 성찰하게 하고 삶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래야 건강한 삶으로 나갈 수 있어요

 

심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요소가 바로 일상이죠 다른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이것이 결여되면 망가지고 비뚤어지는 거예요. 반대로 다른 것이 없어도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안정적이고 빛날 수 있고요.  

 

 

그 막대가 치유의 핵심이고 본질인거죠. 예를 들어 제가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ㄴ 것과 선생님이 치유 활동가가 되는 과정을 거쳐서 프로그래을 진행하는 건 다르겠죠. 선생님의 프로그램에는 선생님의 색깔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모레를 빼더라도 막대기만 쓰러지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 방식이 저와 똑같을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돼요. 막대기를 넘어뜨리지 않는 한에서 무엇이든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이 해야한다는 건 과대망상일 수 있어요.

저는 모든 인간이 치유적 존재이고 그것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치유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이란 건 결국 그 사람 안에 있는 치유적 요소들 그 사람이 지닌 온전성 ,건강성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것일 뿐이예요그래서 과정이 끝나면 ' 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가아니라 '내가 참 괜찮은 데가 있나봐 라고 할 수 있어야 온전한 치유인 거예요. 거기까지 나아가면 그 사람은 제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자기안에 있는 힘을 확인하고 그 힘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그러지 못하면 의존적인 관계가 됩니다,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

사람에 대해 사람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

어쩌면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강한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

너무 흔해서 무심하게 지나는 일상의 힘

상처가 힘이 될 수 있는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트라우마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정도로 무시하지 않은 기다려 주어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된 것

 

모든 책에 밑줄을 칠 수 없었다, 빌려 본 책이라,,,

그래서 사야할 거 같다,

 

트라우마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무심코 자나치면 사회 모두가 병들 수도 있다는 것

알아야 힘이 된다고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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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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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

그저 내 세계가 확장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계기로 언어를 배운다

이탈리아어...

젊은 시절 여행했던 이탈리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이탈리아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몸으로 체감하기 위해 로마로 이주한다

작가가 자기가 쓰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택한다는 건 모험이다.

어쩌면 작가로서의 생명을 걸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다

그녀는 기꺼이 그걸 선택한다.

뒤에 역자의 말에도 있듯이 번역되어 읽기에도 이 에세이의 문장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대신 새로운 언어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묻어있다,

왜 이탈리아어냐고 묻지는 않겠다

무어라 이유를 댈 수 없는 연결이 있으리라

 

그녀는 인도인이다, 부모 세대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뱅골어는 부모의 언어였고 그녀에게 생활의 생존의 언어는 영어였을 것이다, 부모와 통하기 위해 뱅골어를 말하지만 세상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달라보이지 않으려고 영어를 더 많이 익히게 되고 더 익숙하게 된다, 중간에 뱅골어를 쓰고 영어를 못하리라 편견을 갖게 하는 부모의 외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또 그런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끼던 소녀는 자라서 이번엔 이탈리아 어로 바꾼다,

자기의 외모때문에 이탈리아어를 못하리라 편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남편의 언어에 찬사를 보내며 자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이탈리아 인들을 보며 어릴 적 부모를 생각하고 절망하고 벽을 느낀다,

그런 수모를 겪으며 그녀는 이탈리아 어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 무엇을 알고 경험했을까?

불완전하고  채 익지 않은 것이 주는 긴장감과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이 낯선 언어로 쓴 소박하고 짧은 문장들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여과없이 드러난다,

익숙한 언어로 썼던 소설에서 느꼈던 삶의 불안 그럼에도 살아가려는 모습들이 이 얇은 책에서도 드러난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긴 아닌가 보다

어떤 도구를 쓰든 문체에서 글과 글 사이에서 그녀가 느껴진다,

그래서 대단하다,

 

오래전에 사둔 저지대를 읽는 중이었다,

사 놓고 너무 두꺼워서 모셔만 두다가 왠지 여름에 읽으면 축축 처질거 같아서 또 미루었다가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책장을 폈다,

어쩌면 익숙한 관계 익숙한 인물설정 익숙한 사건 전개가 그려진다

뻔해.....

그런데 그 뻔한 것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책을 덮었다,

뻔해서라기 보다 그 뻔한 것임에도 내게 줄 어떤 감정의 파도를 미리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고

책을 미루는 중에 이 에세이를 발견했다,

일단 이것 부터 읽자....

낯선 언어로 쓰였을 이 얇은 책에서도 그녀는 쉽게 비춰진다,

언어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외로워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힘이다,

이제 나도 다시 저지대를 펼쳐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미루어둔 영어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영어로 소설을 못쓰겠지만 책은 읽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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