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자신이 왜 느긋할 수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기본값을 싸그리 무시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유배반적이기까지 합니다, 핼조선이라는 과격한 단어 대신 온건한 말을 쓰자는 말에는 격하게 반발했던 이도 동시에 다른 상황에서는  '아니 좋게 대화로 풀어야지 뭘 그렇게 화를 내?'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온건한 헛소리는 겉보기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평화로워서 문제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쓴느 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힘을 가지고 있는 편에 섰기 때문에 소리지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p 80

 

 

상황은 비슷합니다, 자식과 교수으ㅟ 말 자체에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가저의 평화 청년의 패기라는 가치는 아름답고 이때 분노하는 사람들이 좋게 넘어가면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누군가가 좋게 넘어가자 며 분노하는 이들을 온화하게 타이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분노할 필요가 없는 기듣권이기 때문일뿐입니다,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독권이 설파하는 아름다운 의도는 무의미하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좀 깨닫고 예쁜 헛소리는 넣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의도는 좋고 아름다울지언정 기득권의맥락에서만 가능한 많은 말이 별 여과 없이 매체에 실리고 또 한 번 파급력을 갖습니다, 문제없어 보이거나 듣기 좋은 말이 오히려 위험한 이유는 이겁니다,   (중략)   그러나 학식있고 교양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성찰 없이 뱉는 말은 말 자체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나아가 바람직한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불균형에 히을 실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건 청년들이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바람직한 의도의 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말은 왜 '아프면 환자자 뭔 청춘이냐'는 빈정거림을 낳았던가요?  

                                                                                    p 83

 

물론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이르는 결말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값이 여성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쪽에 맞추어져 있을 경우 다른 선택지를 확보하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청년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독려하는 팔자 좋은 태도를 취하기 이전에 청년의 열정에만 기대게 된 현 상황의 문제점을 개선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사랑으로 포용하고 이해하기를 강요받아온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미명으로 포장된 사랑이 아니라 설득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자유입니다.

여성에게는 상대를 이해시키거나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지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정말로 미미합니다, 눈치없다는 소리가 듣기 싫다면 성대결이 아닌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기 전에 여성의 선택지를 사실상 박탈하고 인내와 수용응ㄹ 여성의 당연한 속성인 양 착취해온 현실부터 직시해야합니다, 여성에게 실제로 어떤 선택지가 있으며 각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얼마만큼 실현 가능한지에 집중해야 그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p 86

 

 

당신을 오독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그때의 어조는 당연히 온화해야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면 당신은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받아들여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얻기위해 목소리를 냈을 뿐 당신에게 상대를 설득할 의무는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야할 의무는 더더욱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내킬 때에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이가 너무도 많은 상황이기에 상대가 당신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음을 다욱 강조하게됩니다, 

 

                                              p87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소란한 이유는 '여성혐오범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것이냐 묻지마 범죄라는 기존의 이름을 쓸것이냐로 주장이 양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이름인 묻지마 범죄는 살인처럼 태초부터 있었을 것 같은 죄명과느 ㄴ달리 생겨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입니다, 찾아보니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처음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역시 이름은 필요에 의해 임의적으로 생겨납니다,

 

 

이름이 생기면 부를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실질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낱낱이 흩어진 경험을 한데 모음으로써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 가시화되므로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단초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름이 없어서 사건마저 지워졌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름이 생기더라도 그 이름을 붙이는 기준은 게속 논란이 될 것이고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만사가 단번에 해결되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혐오범죄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사건이 없다머 개별 사례를 부정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분명히 뭔가를 모르고 있거나 잘못알고 있는게 분명한데

입이 딱 막힐때가 있다,

머리가 순간 정지되고 모든 것이 얼음 ! 이 되어버리는 상황

순간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올라오기시작하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감정싸움으로 심지어는 개싸움으로 번질거같은 위기감

 

상대는 실실 웃으며 여유를 갖기시작하는데

나혼자 바짝 약이 올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

저 말을 확 받아서 뭐라도 치고 나가고 싶은데 머리속은 하얗고

 

"저러는거 보면 남자한테 완전히 채였나봐"

" 그러다가 시집 못간다"

"남자들 보라고 입고 다니는거지 봐달라는데 봐줘야지"

" 너무 똑똑한 여자도 피곤하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남자도 살기 피곤한 세상이야 여자들만 그런거 아니야"

"여자가 대통령이 되니까 이모양이지"

"

등등등

 

그 중에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이

"좋은게 좋은거 아니야?"

누구한테? 무엇이? 왜? 어떻게? 얼만큼? 좋은지

단지 너한테만 좋은거?

웃기고 있네...

그런데 이런건 전혀 이성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상대를 당혹하게 하지도 못한다,

좋은거.. 좋지

근데 그게 누구한테 얼마나 좋은건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본적은 있는지?

누군가가 좋기 위해서 세상의 가정의 직장의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하는게 당연한거? 

그저 만사 아무렇지 않고 무탈하기만 하면 그 밑에서 어떤 지지고 볶는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거?

떠들고 따지고 반박하고 행동하는거 그거 다  시끄럽고 별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방에 일축해버리는 일?

그것들 앞에서 푸들도 아닌데 늘 부들부들거리기만 하고 에베베하다가 말았던 슬픈 기억....

이겨도 찜찜하고 지면 더 억울한 기분,,

 

사실 책 속의 모든 메뉴얼이 다 와닿는건 아니다.

근거가 희박하고 많이 주관적이고 반박당할 여지도 많다

그러나

내가 설명할 필요가 없지

모르는 건 너희 잘못이니까

그 좋은 머리 어디다 쓰겠니 미리미리 공부좀 하지

이렇게 속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으니까 그걸 알아줘서 고맙다

 

어쩌면 시비든 건성이든 이렇게 물어보고 질문해오는 이들이 그나마 나은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틀린건가?

세상엔 아직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가 가부장적이라는 것 이사회가 아직은 자신들이 기득권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채 그때보다 전에보다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것에만 더 골골하는 족속이 아직도 많다,

 

 

이 책의 장점은 딱 페미니즘을 논할 때 뿐 아니라

어떤 분야건 갑의 입장에서 꼰대의 입장에서 가르치려고 들고 바뀌고 싶어하지 않고

나대고 떠드는 것들이 너무 싫은 누군가를 대할 때도 좋은 메뉴얼이 될 것이다,

 

앞에서는 어버버하며 얼음이 되었다가 집에 돌아와서 양치질하는 순간 대꾸했어야 할 말이 떠올라서 혼자 머리를 찧으며 방방 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시길,,

그렇다고 나아질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읽는동안은 통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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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12-2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님의 책 추천 방법은 완전 매력적이십니다.
‘그렇다고 나아질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읽는동안은 통쾌합니다,‘라니,
저도 읽는동안의 ‘사이다‘를 위하여~^^

푸른희망 2016-12-21 14: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사실 책을 많이 읽는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나 어떤 가치가 있나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저 머리만 커지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읽는동안의 즐거움이나 통쾌함도 포기할 수 없거든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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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홉을 많이 몰랐구나
그는 근엄하다기보다는 유머를 즐길 줄 아는 작가다
밋밋하고 이게 뭐지 싶은 짧은 이야기인데 읽다보면 빠져든다 그냬나 러시아 이름은 보기에도 소리내보아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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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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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별 거 아닌 도시락인데 꽤 뭉클합니다.
도시락이 싸는 입장과 펼치는 입장이 참 오묘해요
별거 아닌데 감동하고 힘들게 만들었는데도 실망되기도 하죠
나도 누가 싸준 도시락 받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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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렸을 때 소풍 가면 먹을 수 있었던 엄마의 김밥. ^^

푸른희망 2016-12-15 17:17   좋아요 0 | URL
님의 김밥은 엄마가 사준것이 아니라 싸준 것이겠지요^^전 김밥만은 사주는 엄마거든요 ~~ㅋ

cyrus 2016-12-15 17:18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 썼군요.. ㅎㅎㅎ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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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주 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래되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이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말  오늘도 무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집 밖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곳인지 아니까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다시 집 밖을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말고는 할게 없더라구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미취학 그것도 기저귀를 달고 있거나 막 떼었거나 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

집 밖에 두려우면 얼마나 두렵고 학교가 힘들면 저 혼자 힘들까 싶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왕따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거 같고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학교가 위험하다는 표현은 듣기 거북했다,

너무 애를 감싸는게 아니야?

내 애를 위해 내 아이 내 가족을 제외한 모두를 나쁜 편으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정의감도 들었다,

 

#  2

 

아이를 키우면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우스개소리로 하고 혹은 심각하게 알게 되는 것이

내 아이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있는 곳에서 행동하는 것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특히 엄마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어야 한다

라는 아주 모순된 두 문장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를 믿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심해서도 안된다,

그건 늘 모순이지만 진실이었다,

 

 

#  3

 

몇번 썼던 적이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들이 순진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정의롭게 흘러가고 어른들 말을 잘 듣고 쉽게 반성하는 건 동화나 영화속의 이야기일뿐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로 말갛게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입히고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무탈하게 견디는 공간과 시간은 누군가는 어렵고 힘들게 견디기도 한다, 같은 대상 같은 공간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가 힘들었을 때 너무 좋은 엄마처럼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거웠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내 아이가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문제를 크게 만든다고도 생각했고

아이들의 문제는 누군가가 가해자고 누군가가 피해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는 부분도 있어서 우리아기가 전적으로 피해만 보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위축되기도 했다,

솔직히 그런 아이가 부끄럽기도 했고 왜 남들처럼 무탈하게 살아주지 않는지 표나지 않게 원망도 했고 아이때문에 내가 움츠려 드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도 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아 한다는 걸 알지만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았지만

내가 힘들고 내가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한 적도 많았다,

말하지 않으면 더 묻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들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는데 싶기도 했고

어쩌다 아이가 보여주는 밝은 모습이나 학교 생활을 재미나게 들려줄 때는 그래 이렇게 괜찮은 걸 괜히 걱정했구나 스스로 다독이면서 이게 원래 모습이라고만 믿고 싶었따

어쨌든 나의 태도는 두려워서 무능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머리 큰 자식 문제를 부모가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모른 척하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이 순간만 잘 모면하길 바랬던 것이 내 솔직한 태도였다,

 

 

#  4

 

지금도 아이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떨 때는 친구랑 어떻게 지냈는지 막 조잘거리다가도 어떨 땐 친구가 없어 외톨이라고 했다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다가

다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치받으면 또 자기가 친구도 없고 힘든데 왜 집에서도 가만두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내고 말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고 자주 배가 아프고 편두통이 나는 것이 사춘기 아이의 특징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우울증의 한 특징이라는 걸 이 책을 읽기전에 어디서 보긴 했다,

아 저게 다 우울증이구나...

아이가 우울질이 큰 성향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고 본인도 인지하고 있으니 더 크게 번지지는 않을거라고 몰라서 대처못하는 상황은 없을거라고.. 그리고 누구나 조금씩의 우울한 기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나도 설마 우리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아이들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버릇없다고 종종 생각될 만큼 솔직하게 감정이나 욕구를 드러내니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고 나를 위안하고 있었다,

가끔은 살얼음 위를 지나는 것처럼 불안해서 이러다 내 명에 내가 못살겠다 여기다가도

이정도이기만 해도 감사다하다는 나날들이 번갈아 온냉탕처럼 지나가면

서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과 살고 있다,

 

 

#  5

 

우스개로 넘기기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작고 여린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학교에서 맞고 다니진 않은지 혹시 덩치 큰 녀석들이 내 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은지 아버지는 늘 아들을 염려하고 관심을 가졌다, 혹시 누군가가 괴롭히지 않은지 때리지는 않은지 늘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염려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부모호출이 왔다,

아버지는 아 내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았구나 큰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학교로 달려갔더니

세상에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고 또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한탄 하는 아비에게 아들이 그랬단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가에게 맞고 다니는지 괴롭힘을 당하는지만 물었지 내가 누군가를 때렸냐고 누구를 괴롭혔냐고는 한번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답할게 없었다고....

누구나 부모라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전전긍긍하지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염려를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평범하고 그래도 잘 컸다고 믿는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학교폭력 실태나 사례를 볼 때도 피해를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만 눈여겨 보고 일반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싶에도 누구가가 피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만 소문처럼 떠돌 뿐이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그 부모도 똑같고 그렇게 키웠으니 그런 자식이 나왔다고 그러게 철석처럼 믿으면서 나는 나쁜 부모가 아니니 내 자식이 나쁜 자식일리 없다고 믿는다,

 

 

#  6

 

어릴 적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억에 가장 어릴 적 죽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였고 내가 잃어버린 우산만 5개가 넘어가서 늘 그 문제로 혼나곤 했는데 드디어 6개째 우산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면 혼날 게 뻔하고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어쩌면 우산분실은 핑계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언가로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모든게 그 모든 괴로움은 내탓이었고 나만 없으면 다 괜찮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굳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했던거 같다

그 때 나를 살린건 나의 소심함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자니 떨어지는 순간이 두려웠고 칼로 자해하지니 그 고통이 끔찍했다, 목을 매달까 했지만 숨막히는 순간의 고통이 느껴져서 싫었다,, 결국 어떤 방법도 무서워서 그냥 엄마에게 야단맞는게 가장 덜 아프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야단을 맞았는지 어땠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때 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그때도 그 이후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도 내가 그랬다는 걸 절대 모른다,

나 역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이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죽는것 보다 더 싫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잘 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런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마음  알아봐도 소용없을거라는 마음이 뒤섞여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더 웃고 더 활발했던 걱 타았다,

결국 그렇다 책에도 나오지 만 속이려 들려면 누군든 속일 수 있다,

다만 모든 사건 이후 결국 그때 그런 행동이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그때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숨겨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른바 '완벽한 아이들" 이야기가 무척 많아서 놀랐다, 과학박람회에서 상을 받고 육상대회 메달도 휩쓸고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성생활이나 약물에 탐닉하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빛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한 만큼 부모가 가지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숨기는 일도 잘 했다.,

 

 

 

토맘스 조이너 박사는 심라학자이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사람으로서 꼼꼼한 자료조사는 물론 공감과 개인적 관점이 담긴 아름다운 책을 쓴다, 세걔의 원이 겹쳐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조이너 박사의 자살 이론이 이 분야를 새로이 정의했다,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했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 (나는 혼자야) 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거야) 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 위험에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번째와 두번째 심리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몇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였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명을 살려주었습니다,

 

                         피터 레먼 박사의 이메일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에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느 ㄴ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공부를 할수록 딜런에게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것들을 배워나간다,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되나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 딜런에게 집중하고 캐묻고 다그쳤더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밀착했더라면 조핬을 것이다,

이런 후회를 하지만 딜런이 파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뚜렷한 징조는 전혀 없었다,

 

 

모든일이 지나고 나면 명확하게 보인다,

저자 수 클리볼드도 컬럼바인 사건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계속 딜런을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생각하면서 조각들을 맞추어간다,

그때 그런 행동이 징후였을까 그때 나는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그때 그렇지 않았떠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그때 그 아이의 행동을 그냥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넘기지 말았더라면 뒤늦게 모든 것이 뿌엏게나마 보이고 모든 것이 회한이었다,

 

자기 자식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관심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수 클리볼드도 그렇다,

책을 보면 그녀도 최선을 다했다,

딜런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모의 모습도 있겠지만 누구나 그만큼 하고 누구나 그만큼 무지하고 무심하다, 내가 그때 다가갔더라면 내가 그때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었더라면 하는 회한속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빈공간에 내 이야기로 채우지 말고 가만히 옆에 있어줄걸. 이라는 거였다,

나역시 그렇다,

내 아이가 잘못될까봐 손가락질은 당하지 말하야지 무시당하거나 잘못 컸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어쩌면 대화의 70퍼센트는 잔소리인지도 모르고 타이르고 가르치고 주입하는데 보냈던거같다, 아이가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는 것

그 당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고 내키지 않은 마음이 있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을 수도 있고

죽기보다 하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모든 걸 해야하고 좋게 보여야 한다는 걸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주입하면서

사실 나는 내 아이가 잘 컸다는 것으로 내가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거 같다,

어쩌면 수 클리볼드도 그런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동동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모습이 내 자부심이기도 한 법이ㅏ,

 

아이는 잘 못된 부모탓이 아니고 총기 사용의 문제 왕따문제 사춘기 감정의 문제 뇌건강의 문제(이 책에서는 정실질환이 아니라 뇌건강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복합적이었다, 어는 것 하나가 원인이가고 당위성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문제이며 동시에 모든것이 문제가 아닐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볼 때 명확한 대답이 나오면 모두가 편하다,

부모의 방치나 폭력이라고 나오면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니까 하고 안심하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라고 하면 내 아이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 아이의 피해만 살펴보게 되고

불안한 사회 경쟁의 심화라고 나오면 사회탓 시대탓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대상을 정해 화풀이를 하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안도해버리는 일

그것은 아니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인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한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것 그때읙 정서와 뇌건강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우리가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

더 크게 확장해서 사람이 누군가 타인을 이해하고 완전히 안다는 것

그건 불가능 한 일일것이다,

내 자식이라 가장 가까워서 늘 함꼐 하니까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속기 쉽고 속이기 쉬운 존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철석같이 믿으며 전혀 의심하지 않은 그 절대성의 틈을 비집어 틈은 내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아니었을까

무조건적인 믿음 그리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동시에 갖는일 ..

그것이 관계에 대처하는  어쩔 수 없는 자세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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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결점은 곧 부모의 결점,
자식의 좋은 점은 곧 부모의 좋은 점

대부분 부모가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저희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너무 집착하면 자식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은 점만 보려고 합니다. 자식이 결점이 곧 부모의 결점에서 비롯한 일로 받아들이니까요. 제가 부모가 되지 않아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결국 부모를 닮지요 보웬의 다세대 전수과정 이론이 괜한게 아니거든요 자기를 닮아서 애틋하다가 밉다가해서 마음이 더 복잡할지두요^^

hnine 2016-12-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더 잘하고 못하고는 그야말로는 번호 붙이자면 5번이나 6번쯤 순서에 있을까요? 그보다 더 신경써야하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에 비하면 저는 공부와 성적은 한참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라서요.
내가 보는 아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은 고개 끄덕여지면서도 또 한편 마음이 서늘해지네요.
저자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만 아무튼 자식 키우는 엄마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자식 얘기라고 흘려듣게 되지도 않고요.

푸른희망 2016-12-13 17:28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답이 없는 일이라 늘 어렵지요

머리로 아는것도 몸으로는 영 움직이지않은것도 많구요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가거나 어리숙해뵈서 만만하게 본 상대에게 살해당하거나
술자리에서 분위기에 집중시키기 딱 좋다는 느낌?
엉뚱하고 고약하고 심술궃지만 미워하기엔 또 애매한
딱 로알드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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