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입니다
김효은 글.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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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뚜벅이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가끔 탑니다,

지하철은 서울로 진학하면서 처음 타봤습니다,

어리버리한 촌년이 서울 친구 뒤를 바짝 쫓아가며 지하철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2호선을 반쯤은 돌아서 다니던 등교길

어느날은 3호선으로 갈아타는 코스를 친구따라 쫄래쫄래 가보기도 하고

이대입구역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지레 멀미가 났던 기억도 있고

충무로의 에스컬레이트는 어디를 타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나 한참을 망설였는데 알고 보니 같은 방향이라는 거...

막차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교문에서 뛰어오던 기억

시끄러운 나이트에서도 시계는 열심히 봤던 기억

한때는 땅속으로만 다니는게 너무 지겨워서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타야지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타인에게 부끄러움도 없이 몸이 밀착되는 경험도 지하철에서 처음이었고

대학이 밀집한 지역을 지나면서 척척 내리는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네요

서울대랑 한참 멀리 있는 주제에 서울대역이라는데 사기당한 기분도 들었고

잠실사는 친구네 간다고 성내역에 내렸다가 강바람에 놀라기도 했었지요

시청앞 지하철역만 지나면 동물원의 노래가 기억나 혼자 맬랑코리해지다가

출퇴근길 늘 내리던 을지로 입구역의 지하상가들은 늘 신기했었고

평화시장간다고 동대문 운동장에서 내려서 한참을 돌아가던 기억

유난히 간격이 긴 압구정에서 신사 신사에서 잠원

월미도까지도 지하철이 되는구나 신기해하며 탔던 길고도 긴 여행길

복잡한 용산역에서 어느방향으로 타야할지 가늠이 가지 않아 서너대는 그냥 보냈던 막막한 날도 있었는데

참 처음오로 변태를 본것도 지하철안에서였군요

이젠 지하철 타는 건 누워서 떡먹기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언제부턴가 정면을 보지 않습니다,

앞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어색하고

이젠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힘들어져서 그냥 눈을 깔고 있거나 감고 있는 게 편하더군요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사실 지하철에서 앉아 갈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독서환경입니다,

적당히 흔들리고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당히 개인적인 공간

함께 있으나 혼자인 공간

다른 할 게 없으니 책읽기 딱 좋은 공간입니다,

앞에 누가 있던 상관한 적도 없네요

한 때는 눈치가 빤해서 누가 어디서 일어날지 감으로 잘 찍었었는데

이젠 누군가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무척 미안해집니다,

나 무지 멀리가요~~~

잘 찍었다고 내 앞에 섰을 텐데 꽝이야요

 

그림책은 별 거 없는데  울컥한데가 있네요

지하철이 주인공이고 지하철을 타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올해 나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닐 테지요

그림책 한 페이지에 슬그머니 내 이야기도 집어 넣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같은 이웃을 찾아 보려고 지하철에서 고개를 조금 덜 숙여야 겠다는 마음도 먹습니다

올해도

지하철을 타고 달리는 모두가 조금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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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울에 왔을 때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봤어요. 제가 사는 대구에도 지하철 3호선까지 있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해서 지하철을 타본 적이 거의 없어요. 사실 지하철 좌석보다는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버스 좌석이 편해요. ^^

푸른희망 2017-01-06 11:49   좋아요 0 | URL
서울로 진학하면서 첨 배운게 지하철 타는 법이었어요 지금은 왠만한 광역시에는 다 있는 지하철시지만 닟선 땅에서 낯선 지하철
그래서 지금도 지하철을 기다리면 막막하고 외로워진답니다~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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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시국이 어수선하다,

  텔레비젼에서는 무얼 상상하든 그 이하가 터져나오고

  이젠 어떤 일이 벌어지건 놀랍지도 않고 점점 자극에 무뎌간다

 "아직은 여자가 대통령을 할 때가 아니지 . 여자는 아직 한참 멀었어"

 '여자라서 그렇지 뭐"

 이건 주요 논점이 아니다,

제 딴엔 농담이라고 했을 거다,

 그냥 웃고 넘기자고 한 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말에 웃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웃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까?

 

 치사하게 나가자면 할말이 없지 않다, 아니 쌓여있다,

 김모시기가 우모시기가 악독하고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남자가 그렇지 뭐... 남자라서 그래

남자가 정치를 하면서 잘 된게 뭐가 있어?

라고 하지는 않는다,

함께 촛불을 들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화를 내다가도

무심하게 나오는 한마디에  분노의 표적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좌절한다,

 

 

 

#  "어떤 흑인은 우리 사회에서 '흑인은 이러저러해야한다'는 문화적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면 온갖 종류의 문제가 불거진다, 그 남자나 그 여자의 진짜 흑인다움 여부가 심판대에 오른다, 우리는 흑인스러워야 하지만 너무 흑인스러우면 안되고 너무 말 많고 시끄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부르주아를 따라해서도 안된다, 흑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온갖 종류의 선입견이 있고 이 선입견들 또한 자꾸 변한다,"

 

위 단락에서 '흑인'을 '여자'로 바꾸어도 하등 이상할 것없는 문장들이다,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

여자에 대해 기대하는 것

여자라는 대상

딸 아내 며느리 동료 친구 후배 선배  뭐가 되었던 여자라서 기대되는 것은 남자보다 쪼금 더 많다, 남자니까 기대되고 당연시 되는 것 보다 여자니까 이러이러해야한다는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입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든다,

자고로 여자라는  건..... 블라블라,,

제각각 다른 기대 제각각 다른 기준앞에서 여자들은 몹시 당혹스럽다,

남자라면 응당,,, 이것도 없지는 않지만 당혹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라서 응당 이러이러해야하는 것들은 눌러지고 만져지고 맞춰져야 하는 것들뿐이다,

정상의 기준은 너무 좁고

이상한 여자  파렴치한 여자  부도덕한 여자 나대는 여자 무시해도 그만인 여자

부담스러운 여자  껄끄러운 여자는 너무 많다,

그것도 제각각의 기준에 따라

 

# 사실 책속의 모든 에피들이 다 좋은 것 아니었다,

어쩌면 저자가 너무 흥분해서 중언부언하고 있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고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어쩌면 조리있게 이론적으로 매끈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어서 남같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부족하고 많이 흔들리고 때때로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기본적으로 남녀는 평등해야하고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 위에서 여자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다,

길거리에서, 익숙한 학교나 회사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여자들에게는 모두 위험한 공간이다

동시에 그 모든 공간에서 위험을 느끼고 불안해 하는 여자들은 이상한 존재다

이렇게 안전하고 익숙하고 잘 아는 곳이 잘 아는 사람들을 위험하다고 경계하는 것이 또 남자들을 타인들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지적받는다,

여자들이 느끼는 본능적인 불안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구나 싶으니 씁쓸하다,

 

 

# 페미니즘 이외 인종문제도 잘 읽었다,

  여성뿐 아니라 누구든 소외받는 이가 있는 것은 부당하다,

  나만 피해자라는 생각이상으로 내 주변의 누군가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다시 돌리게 된다,

  또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도 어딘가에서는 차별받는 존재지만 또 어딘가에서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묶여서 누군가를 배척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영웅을 찾아서> 와  <미국인 테러리스트와 흑인청년 두 프로필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깊은 공감을 주었다,

 

#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편들이 그렇다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삶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떤 반박도 없을 만큼 완벽해야한다

  여자다운 옷차림이나 말투 를 지양한다

  모든 일은 분담해야하고 여자라고 더 희생하고 더 많이 일하는 것을 거절해야한다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다,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나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짐을 떠맞기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고

  지금 상황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적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샬라라 한 차림을 원하지만 이젠 어울리지 않은 체형과 나이가 되었다, 슬프게도

   에휴 까짓거 내가 하고 말지 하고 내가 일을 다 해치울 때가 있고  그게 편할 때가 있다,

  매우 자주 이기적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고 모른 척 여자인 걸 내세울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까

 이중적인 가식일 뿐일까

  록산 페이는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남자 여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함께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것 그 명제를 기억하고 늘 행동하기전 생각한다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 이 책의 좋은 점은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페미니즘 책들을 보는 이유는 알고 싶어서이다,

  이론적으로 알고 싶고 더 잘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움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늘 누군가에게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면 너무 주눅드는 일이다,

  모르니까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낮추고 배우는 것이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지만

  가끔 과부하가 걸리면 (내 능력치에 비해 많은 것이 들어오면) 그대로 포기하고 싶어진다,

  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어떡할거야?

  그냥 생긴대로 살래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해?

 그렇게 고집피우고 드러눕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록산 게이는 가르치지 않았따,

 그냥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털어놓는다,

  사실 모든 글들이 다 좋지는 않다,

 나도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경험을 했고 이런 짓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 라고 자신있게 드러내는 글들이 좋았다,

 어쩌면 어려워서 두려워서 나는 저기 속할 수도 없을거야 하고 지레 겁먹는 사람들에게

 너도 나도 다르지 않다고

우리도 함께 일 수 있다고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다,

 페미니즘이 어렵지 않다,

 그냥 삶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다,

모두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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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 백인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습니다. 록산 게이가 이 책에서 지적한대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성 차별의 원인을 이분법적인 남녀 차이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인종, 계급 등의 다른 변수를 보지 못합니다. 여성 차별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의 페미니즘을 꾸준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른희망 2017-01-06 11:50   좋아요 1 | URL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심리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 대한민국 대표 마음주치의 열 명의 따뜻한 상담실
경향신문 기획, 권혜경 외 강연 / 해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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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심리학 책을 읽을 때면 늘 누군가를 생각하며 읽었다,

누군가 타인을 분석하고 헤집고 지적질 해대며 읽었다면

이 책은 오롯이 그 대상을 나를 두고 읽었다,

나도 참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아직도 내 속의 어린아이는 징징대고 있고 또 한편에서 나는 징징대는 꼴을 못보고 있고

내 감정을 나도 자꾸 속이면서 남에게는 지적질하고 있고

누군가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어쩌면 이제 조금 자라서 남이 아닌 나를 들여다 보는 걸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10명의 정신과의사 심리학자가 각각 마음을 만져주는 글을 썼다,

다들 조금씩 저서를 읽었던 분들도 있고 이름을 들었던 분도 있고 처음인 분들도 있고,...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어서 일까

내용은 뻔하다,

사실 안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가가 중요한게 아니겠는가?

 

상담을 한다거나

아파서 병원을 가야한다거나

하다못해 학원을 선택할 때도

그 사람의 명성이나  능력보다 중요한것이 나와의 합이다,

얼마나 나와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천하에 없을 명의거나  일타 강사라고 하더라도

나하고 수준이 안맞거나 서로 합이 맞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그저 상가 귀퉁이 간판없는 보습학원이라도 내 아이와 맞고 격려해주며 키워주는 선생님이 더 낫다는 걸 이젠 안다,

 

책을 통해 열명의 전문가를 만난 뒤 내게 필요한 선생님이 누군가 알게 되었다는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작은 성과다,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이지만

 

정헤신 박사는 글이 따뜻하다,

이전에 다른 저서를 읽었는데 쉽게 읽히고 읽는 동안 위로받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읽고 금방 잊어버린다는 게 그의 한계인지 나의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주로 이야기하는 공감이라는게 글에서 팍팍 느껴진다,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읽었던 권헤경의 <감정조절>을 참 좋게 읽었다,

빌려 읽은 책인데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너무 오래전에...)

이 책에서도 앞의 저서와 내용이 많이 겹쳤다,

주제가 같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싶었고 그래서 다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감정이라는게 내것이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거 같다,

화가 나고 기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일들이 그저 순간 화라락 지나가지만 하거나 그저 꾹꾹 눌러 담아지기만 했던 것인데 그걸 꺼내서 가만히 눈을 맞춰보라는 거다,

나에 대해 내 감정에 대해...

책을 읽으면 알고 있지만 엉켜있던 것들이 하나하나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

 

누구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저자라면 나랑은 안맞겠구나 싶은 분들도 있고

아는 건 많은데 참 안 와닿는다는 분들도 있고

뭐 개인적인 의견이다,

올해는 <나>만 많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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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전에 다른 이웃님의 서재에 심리학 관련 책 리뷰를 읽었어요. 그 글을 보면서 심리학 책들 대부분은 내용이 흔하고 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심리학 책을 많이 읽지 않아요. 어쩌다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 삶에 적용되기 어려운 내용을 만날 때가 있어요. 책으로 고민을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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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씩 골라먹는 초코렛 상자 그 속에서 무얼 골라도 맛있을 수밖에..... 무엇을 읽든 괜찮다
크리스마스이고 미스터리가 있고 서점이 있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책 씁쓸하고달콤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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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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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략)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영감을 기닫리고 지적 자극을 위해 벤야민을 읽고 벤야민을 읽다보면 마르크스가 궁금해지고 마르크스를 공부하려면 자본론을 펴야하고.... 무능력에서 출발하면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일단 써봐야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지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좋은지를 볼 수 있다, 글쓰기의 초기과정은 '질''보다 '양'이다,

 

                  -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덮는 것은 일기다, 글쓰기가 아니다, 비밀이 한 사람에게라도 발언할 때 생겨나는 것이듯 글쓰기라는 것에는 어짜피 '공적; 글쓰기라는 괄호가 쳐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곧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 해석당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고 다그치듯 말할 수도 없다, 몸에 들러붙은 그것이 쉬이 떨어진다면 왜 고민이겠는가 고통이란 원래 사회적 의미망에서 생겨난다, 타인의 시선이 감옥이 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중략)

 

또 한가지 명심할 것은 '과도한 주인공 의식'을 글쓰기에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 문제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기고  '색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볼 만큼 부지런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자신의 현아에 가려 남의 일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의 개방 수위를 고민하다보면 자기 몰입이 어렵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ㅇ르 쓰기 어렵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만약 누군가 자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가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 고통쓰기 혼란과 초과의 자리 -

 

 

나는 성폭력 피해 경험자의 글쓰기를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노동자의 심정을 자본가가 장애인의 집장을 비장애인이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성애자가 대신 말할 수 없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시킬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고통 성폭력의 피해자의 고통을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아픔을 나누고 의미를 발견하면서 ' 피해자의 언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자기 고통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질 때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사람 곁에 사람 자신의 복받치는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사실파악과 증거를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편들어주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질문을 만들어보았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느냐? 이것은 자신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기다리고 들어줄 수 있느냐? 물음을 바꾸었을 때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자는 누구나 약자다 -

 

 

'과제의 결과물이 지금 없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뭘 쓸까 고민하고 썼다 지우고 하는 과정이 있었을 테니 그것도 소중한 게 아닐까요"

그 분의 혜안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용감하게 글을 쓰면 쓴 대로 못 써내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무언의 글로 우리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받았다, 각자의 글ㅇ르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내고 눈물 훌리면서도 낭독을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는 말은 밖으로 나오려 하고 고통은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남의 이야기는 자기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같은 성폭력 피해자로 만났지만 그 안에서도 차이는 존재했다, 그래도 저마다 상황의 특수함 사건의 각별함 실존의 절실함을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피해 경험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얻게 된 것, 자신의 아픔으로 꽉 찼던 자아에 타인의 아픔을 들여놓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고마운 선물이다, 우리 품은 넓어졌다, 자아가 확장되면 상대적으로 고통은 줄어들게 마련이니 일석이조다,  (중략)

 

우리는 ㄴ책과 사람 그리고 글쓰기라는 이전에는 없던 세 친구가 생겼다, 인생이라는 책에서 한 페이지만 찢어낼 수 없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품고 가야 하는 것 아픈 채로 불편한 대로 안고 같이 살아갈 힘이 길러졌다, 삶이 다소 견딜 만해진 것이다,

 

                                  - 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하기 -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여거지는 시 암송을 통해  '안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그동안 오직 쓸모를챙기기 위해 이루어진 지식의 축적에 물음표를 남겼다, 이것이 문학 평론가 김현이 말한 문학의 쓸모 -없음의 쓸모-있음으로의 이행이 아닐까 잘 알려졌다시피 , 김현은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내 남없이 그렇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의 척도는 물론 화폐다, 내 앎이 내 삶이 교환가치가 있는가 잉여가치를 낳는가 제도 교육은 남보다 교환가치가 있는 인간 곧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육과정이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보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태 로 일상이 굴러간다, 그런데 유용하지 않아서 억압하지도 않는시 이 새디에 쓸모없다고 취급받는 시 언어들의 낯선 조합으로 정신을 교란시키는 시 가장 간호한 물성을 가진 시를 통화하며 학인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을 자각한다,

나는 궁금했다, 시 혹은 시적인 것은 왜 존재를 흔들고 지나가는 걸까

  (중략)

시집은 나의 변화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때는 도저히 감각의 주파수가 안 맞던 시가 계절이 바뀌고 나면 읽힐 때가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 책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사이 나는 살았고 뭐라도 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혹은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제쳐두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 사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살겠다는 이상한 다짐이다, 그 해 여름 나를 밀어내던 시가 이듬해 겨울에 조금씩 스며들고 문장들이 마음에 감겨오면 그 기쁨은 무척 크다,

 

                                                      -쓸모 -없음의 시적 체험 -

 

 

합평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읽는 사람은 불쾌감없이 자신을 부그러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듣는 삶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말하는 깋술을 익힌다, 합평은 그렇게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서로의 말을 참조하는 공론의 장으로 기능했다,  (중략)

나는 이것을 역지사지의 신체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의 자리에 자기 몸을 들여놓아 보는 상상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관점 하나 바꾸기도 얼마나 어려운가 관성적 사고와 법칙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을 촉구하는 어떤 강력한 긴장이 합평 시간에 자연스레 조성된다, 세상에 알려진 유명 작가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만큼이나 학인들이 쓴 글 서툰 글을 읽고 서로에게 최초의 독자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도 값진 독서 체험이다,

 

                                - 합평 역지사지의 신체 변용 -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구조주의'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 자유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 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제도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슬프게도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상식 통념이라고 부르는 가치 체계는 워낙 당대의 것일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어떻게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 지 알려고 해야한다,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상식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 tv에서 커트된 무수한 삶을 감히 알려고 하는 자가 작가이다,

 

(중략)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마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때로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의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일상의 평균치만을 관성적으로 고집하며 살아가는 순치된 개인을 길러낸다, 하지만 평군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율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개여야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느 ㄴ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그럿을 촉발해야한다,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차이를 보편적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글이 생명력을 갖는다, 내가 쓴 글이 숨 막히는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 위안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막을 옥토를 만들 물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왜라고 묻는 글 자신을 다양한 존재로 개방하도록 등 떠미는 글 도덕 위에서 춤추도록 깨달음의 오르가즘을 선사하는 글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신체가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  자명한 것에 물음 던지기 -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창작자의 임무이다, 창작 분야 종사자중 '대체 가능한 존재;는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아니어도 남이 할 수 있으면 그건 누구나 할 수있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어야 한다, 박완서의 글은 김훈이 흉내낼 수 없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것을 삼갔을 뿐이다"라고 했다, 내가 글응ㄹ 쓸 때 꼭 염두에 두는 말이고 학인들에게도 자주 당부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이다,

 

                                -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 

 

 

좋은 글에는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 있다, 나는 왜 언제부터 그 일을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갖게 되었는지 일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일에 대한 환상이 어떤 지점에서 깨졌는지 이 일을 계속 할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느낌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더 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업 그게 문제의식이다, 우선은 나를 향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 말이다,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돋는가? 꽃들이 피거나 폐허가 되거나 돌이 굴러와 뿌리를 내리거나 할 거싱다, 관찰하면 신비롭다, 살면서 무수히 겪게 되는 별의별 일들 소소하든 대수롭지 않든 그것을 통화한 시체는 변화를 겪는다, 이같은 잀강의 풍경과 생각과 느낌이 별처럼 은은히 차오른 글은 구체적인 한 사람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럴 때 그 글이 다른 이의 경험이나 감정과 겹치고 공감을 낳는다,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았던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 아니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두려워서 아니면 막막해서 마처 들쳐보지 못한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 살뜰히 드러내주면 덩달아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 다른 무음표가 된다, 내게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안의 사유를 낳는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 사유하기 -

 

 

한 사람의 독특한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가늠한다, 직업과 취향 인생관을 파악한다, 긍정적으로 사는지 부정적으로 사는지를 단어와 말투로 짐작한다, 그러니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는지 욕설을 자주하는지 간결한 화법을 좋ㅇ하는지 말끝마다 부연 설명을 붙이는지 심지어 문법적으로 수동형을 좋아하는지 능동형을 좋아하는지 사투리를 쓰는지 말끝을 흐리는지 그대로 전하는게 좋다, 또한 무의식적인 몸짓과 행동마저도 성격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말을 하면서 헛기침을 해대는지 어렷이 걸을 때 앞서 걷는지 뒤로 쳐지는지 아시다시피나  사실 가령 같이 자주 사용하는 말버릇이 있는지 그러한 디테일을 살피면서 글의 생생함을 더할 수 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유쾌한 농담에서 진지한 토론까지 하나도 놓칠게 없다,

 

 

인터부이가 될 수 있는 사람과  못되는 사람의 구분은 자기 표현의 능력이 아니었따, 사회적 관계의 여부다, 보이는 존재인가  보이지 않은 존재인가  관계의 끈이 없으면 자기를 규정할 수도 없고 존재가 드러날 수도 없다, 백 세 어르신에게 반찬봉사를 다니던 한 사람이 어른신의 누워 있는 등을 보고 삶을 읽어내고 번역했듯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보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느낀다, 가장 큰 가난은 관계의 빈곤이다, 관계가 줄어들면 자아도 쪼그라들고 관계가 끊어지면 자아도 사라진다,

 

 

                    -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

 

 

책을 사야하나 잠시 고민한다,

무심하게 읽다가 순간순간 멈추는 지점이 점점 많아졌다,

빌려온 책에 줄을 그을 수도 없고 포스트 잇을 붙일 수도 없다,

그저 기록할 수 밖에....

 

글쓰기가 자기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건 충분히 알 고 있었다,

자기의 내면을 직시하고 응시하는 것 그건 어떤 힘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을 용기라고 할 수도 있고 솔직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기의 감정과 내면 생각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어떤  감찰자도 없이 솔직히 드러낼 수 있을 때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간다,

내가 가진 것이 상처라는 걸 안다는 것 그리고 마주보고 드러낼 줄 아는 것

그게 결국은 치유의 전부이다,

그 과정에 읽기 말하기 쓰기가 있다,

글이 두서없고 너무 허황될만큼 추상적이고 몽롱해지는 건 자기를 드러낼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드러낼 자기가 없다는 변명속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뭘 써야 할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과도 통한다,

얼마를 살아왔건 살아온 시간에는 제각각의 무늬가 있다,

그 무늬를 손가락으로 그려보고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직시할 수 있는 힘다,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글이었다,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게 아니었던가

풀이든 돌멩이든 동물이든 하늘이든 심지어 기계나 상점이라도

그것이 사람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쓰는 것이기에,,,,

 

글쓰기로 나를 표현할 줄 알게 되면

다음은 타인을 들여다 봐야 한다,

타인의 글 타인의 말 타인의 아이기

그것이 나를 퐉장하는 일이고 나를 조금은 다르게 만드는 일이다,

 

읽고 말하고 쓰는 일,,

그건 결국 살아있다는 것이고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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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북플이 합평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