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재 선생은 좋은 선생인가 좋지 않은 선생인가?

정인재 선생의 수업은 영우나 남순이나 기타 수업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다.

하지만 송하경이나 지혜 경민과 같은 수능시험으로 마음이 급한 아이들에게는 불안감만 주고 불신을 갖게 한다,

정인재 선생은 옳은가 그른가?

 

강세찬 선생님의 수업은 재미있고 핵섬만 짚어준다. 수능공부대비에는 더할나위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대학을 갈 수없거나 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는 딴세상의 이상한 이야기들이다

강세찬선생은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간다.

하지만 민기나 하경이나 경민에게는 성적을 올려주는 구세주같은 존재다

강세찬 선생은 옳은가 그런가?

 

교장은 학교 발전에 온힘을 쏟는다.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얻기위해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성적과 상관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내고 시험위주의 수업을 원하고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들을 중심으로 계확을 세운다,.

좋은 학교를 위해 종호나 남순같은 문제아들은 알아서 나가주길 원하고 민기나 하경처럼 우수한 아이들의 학부모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스스로 더 강해져야한다.

학교의 발전은 곧 아이들을 위한것이고 학교 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이다

교장선생님의 노력이 졿은가 그른가?

 

남순은 흥수에게 큰 빚을 졌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축구선수가 꿈인 흥수의 다리를 못쓰게 만들었고 그의 꿈을 빼앗아버렸다. 절망한 절친의 모습을 보기 두 려워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그 빚을 갚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흥수가  원하는게 아니다. 남순의 호의가 계속될 수록 아이들 사이에 흥수의 소문은 부풀려져가고 모함을 받고 누명을 쓴다.

남순의 행동은 옳은가 그런가?

 

흥수에게 남수는 또다른 나였다. 둘이 함께여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고 서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너때문에 더 이상의 나쁜 짓을 할 수없고 너도 절대 양아치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고로 남순은 흥수를 다치게 했고 두려움에 도망갔다.

꿈을 잃어버린 것보다 나자신이었던 남순의 부재가 더 큰 절망이었다.

미워서 죽이고 싶도록 미워서 더 못되게군다.

그런데 남순은 나를 거슬리게아이들은 남순편만 든다.

남순의 호의를 무시하는 흥수는 옳은가 그른가?

 

 

내 아이가 서울대 경영을 가서 로스쿨을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충분히 가능성도 있는 아이다.

큰 아이의 실패를 두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는 가능성이 있고 나도 밀어줄 능력이 되는데 학교가 걸림돌이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내 인생에 아이 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가 요즘 이상하다 자꾸 딴 말을 한다.

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하는 나를 부끄러워한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민기엄마의 마음은 옳은가 그른가? (이건 답을 알 수도 있겠다...)

 

나는 좋은 대학을 가고싶다.

수능에 필요한 수업만 듣고 싶고 학교도 교사도 대입에 충실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뒷자리에는 깡패들이 위협하고  성적도 뭣도 안되는 것들은 떠들고

부모가 받쳐주는 민기나 하경은 쑥쑥 성적이 올라간다.

나는 뭐든 내힘으로 내노력으로 해야하는데 모두가 나를 방해한다.

심지어 교사도 수능과 관계없는 수업으로 시간을 빼앗는다.

나는 가장 만만한 교사가 싫다 밉다. 제일,...

 

하경은 내가 버선발로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고 깡패는 무섭고 아이들은 이들은 웃기지도 않는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그것도 듣보잡이 아니라 제데로 괜찮은 곳을 가려면 죽을둥 살둥해야한다

그런데 선생은 꿈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한다. 웃기지도 않아

누가 그런거 몰라서 안해?

내 발등의 불은 대학이니까 수능이니까 난 그런걸 봐서도 들어서도 안된다.

이런 경민은 지혜는 옳은가 그른가?

 

 

나는 꿈이 없다. 아니 없었다.

부모는 아프고 돈은 없고 나는 실력이 없다.

학교는 답답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없고 학교밖 형님들이 좋

았고  아이들ㅇ르 협박하고 그 녀석들이 내 앞에서 벌벌기는게 좋았다.

종호를 따라다니며 힘쓰는걸 알았고 협박하는 걸 배웠다.

그런데 꿈이 생겼다. 성적이 올랐다고 하니 기분 나쁘지 않다.

지금이라도 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희망이 생기지는 않을까

대학은 아니라도 직업학교정도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결석이 너무 많아서 그것조차 안된다.

이제 마음잡고 제대로 살고 싶은데 역시 사방은 막혀있다.

한번 낙인 찍힌 놈은 실수한 놈은 엇나간 놈은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러나 다시 종호에게 가고 싶지않다.

나는 이미 늦어버릴ㄴ걸까

지훈이 옳은가 그른가?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갔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나를 때린다.

친구도 없고 정붙일 곳도 없다.

내 힘만이.. 나를 무서워하는 친구들을 보는 것만 유일한 낙이고 그때만 살아있는 걸 느낀다.

강한 놈 앞에서는 대충 기다가 약한 놈에게는 사정없이 밟아버린다,

학교따위는 포기한지 오래다

수업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고  아무도 내가 어디가 아픈지 고민이 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른다,

똘마니들 데리고 힘자랑하고 돈뜯고 개기다가 졸업하면 뭐가 될까

졸업은 가능할까 그까짓거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다.

돌아가기도 싫고 돌아갈 곳도 없다,

막살아도 누구 뭐라하지 않고 피하기만한다.

삐뚤어지고 싶다.

종호는 옳은가 그른가?

 

 

물론 정확히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옳음이 정말 옳은가

그 그르다는 것이 저 개인만의 탓이라고만 해도 될까

남들은 안그런데 너는 왜 그러니?  너만  왜 별나게 구니?라고 몰아버리면 될까?

 

학교란 통제하기 편한 인간들을 길러내는 곳

모두가 비슷해져서 사회에 큰 분란을 만들지 않고 모든 행 불행은 개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며 개인의 능력 책임에만 따른다.,

내가 이모양 이꼴인건 내탓이고 내가 성공한 것도 내 덕이다.

경쟁에서는 이겨야 ㅎㅏ고 패배하거나 실수하면 되돌아 갈 지점은 없다.

그대로 주저앉거나 삐뚤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단다,

사회가 틀렸다고? 그럼 성공한 사람들은 순응한 사람들은 뭐가 되는데?

저들은 왜 성공할수  있고 불만이 없는데?

 

드라마 하나를 보며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의도치 않았을 선한 이들이 주는 상처들

위악을 떨지 않으며 상처입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들

그리고 순순히 받아들여지는 경쟁들

개인책임들

 

연초부터 마음이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청소년기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선 순간을 알아차릴때 부모는 어떤 표정을 어떤 몸짓을 해야하는 걸까

세상에는 사춘기에 대하여 통과의례에 대한 책은 많은데 그에 대처하는 부모에 대한 책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알라딘만 해도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많은 서적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말고.. 자연스럽게 내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책은 없을까?'

성장기의 바이블같은 데미안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부모는 아무런 역활을 하지 않는다.

아니 주인공이 부모의 개입을 원치않고 더 나아가 부모를 부정한다.

그밖에 많은 성장소설에서 영화에서 부모는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 자식을 믿는다는 맹종적인 부모가 나오거나 아에 부모존재가 부제하거나 오히려 없으니만 못한 상황까지 있다.

마틸다에서도 그렇고 우리 소설들에서도...나의 아름다운 정원,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너도 하늘 말라리아 유진과 유진등등의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책들을 봐도 부모가 무슨 역활을 했을까

그저 살아가기 바빠서 무심했거나아이가 아직 어리다고만 치부했거나  하면서 그 성장의 주변부에서만 얼쩡거리고 있었던 거같다

도무지 그런 식으로 내가 반면교사를 삼을 게 없다.

내가 아직  독서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순간순간 감정이 바뀌고 여러가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퍼붓는다.

왜? 왜? 어째서 ? why not? 

세상이 부조리하고 나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부모는 더이상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는 막막함속에 서 있는 아이에게 내가 어떤 역활을 해야할까

좋은 부모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이런 경우에는 이런 대처법을 저런 경우에는 저런 대처법을  .. 그렇게 끼어맞추면서 해법을 찾아가고 성경을 암송하고 108배를 해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런것들밖에 없을까 싶다

책속에서 근사한 부모는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아이가 사춘기를 맞아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고  내 가슴에 화살을 마구 쏘아대고 있어도 담담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엄마 그녀가 내게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을까 괜찮은 주인공의 엄마를 작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역활을 하는 부모를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때의 아름다운 청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때를  추억할거리가 달라진다.

지금 악마가 내게 다가와 다시 빛나는 청춘으로 되돌려 줄터이니 딱 한가지만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왜 악마가 이런 제안을 하냐고 묻는다면 천사는 이런 유혹을 절대 하실 분이 아니시라 믿어서지요..)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잘 한것 혹은 가장 후회되는 것을 꼽으라면? 이라는 질문을 보면서 후회되는 건 정말 열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도 다 못 헤아릴 만큼 많지만 내가 잘 한것은? 이  질문에는 그만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내 인상을 돌아봐서  후회되는 것들이 없진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래도 그 중  잘 한게 무어냐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늘 답이 궁하다. 그렇다면 잘 산게 아니란 뜻일까

 

다시 청춘이 되면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조금은 영리하고 영악하게 돈문제에 대해서도 깐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보다 연애를 하고 싶다.

무어그리 박복했던지  80년도 국민학교에서 5학년부터 남녀를 갈라놓는 학교를 나와서 중간 전학으로 한학기 남자구경했다가 주욱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게다가 직장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 더 많은 곳을 다녔다. 몇번을 바꾸어도 계속....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절세 미인도 아닌 까닭에  변변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연애를 하려면 누구나 돌아볼 만큼 미인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붙임성이 좋고 낯을 가리지 않거나  내세울것도 없으면서 아집만 가득한 헛된 자존심같은건 없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외모도 성격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결국 연애를 안한것도 아닌 못하고 젊은 시절이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한두번 해프닝같은 만남, 친구도 아니고 원수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의 동문들  타학교와 함께 했던 동아리 친구 선배들이 전부고 그나마 알던 남자들도 졸업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다지 아쉬운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았던거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뻘짓을 하고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해야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든 주사든  뭐든 젊었을때 치기어린 마음으로 해버려야 하는 걸  제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순탄하게 지나는게 아니라 나중에 늙어서 조금은 추하게 그런 뻘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20대초에 하지 못한 연애가 결국은 서른을 바라보는 느즈막에 찾아와서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얼굴 벌개지게 할 거 다하고 추태를 부렸구나 싶은  기억들도 함께 생겼다. 

밤늦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행복해도 해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억지부리고 땡깡부리렸던건 받아도 받아도 자꾸 기갈나던 내 속의 허전함을 나도 어찌할 수 없어서 애정을 갈구했던것같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된 연애에도 남들이 할건 다하고 싶어서 함께 해돋이를 보러가고 차안에서 음반하나가 몇번을 반복하도록 음악을 들으며  침묵을 함께 하기도 했다.

뭐랄까 내 곁에서 얼마이상 떨어지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내곁에 얼마이상 다가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만큼 내 곁에 있어주기를.. 하지만 요만큼의 내 공간은 인정해주기를..  늦도둑이 무섭다고 연애에 미쳐서 할일을 내팽개치기도했고  계속 빼삐를 들여다보며 연락이 오기를 뭔가 메세지가 담겨있기를... 있지도 않을 메세지를 찾아서 공중전화에 매달리거나 혹시 그의 비밀번호릉 알게되지 않을까 음흉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기도 하고 어이없는 행동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에 취에 첨본 운전기사에게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으니까 짧은 기간동안 할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늦은 연애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든 그 짓을 할 때 이뻐보이고 용서가 되는 시기가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조금 추했을지라도 그게 늦은 나이지만 내게는 처음이었으니가 다 이해가 되고 나름 용서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이라는 게 그런게 아닐까

좀 유치하고 어이없고 억지부리는 것이라도 다 통하게되는것

그러려니 하고 이해되고 오히려 익숙하게 능숙하게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무모하고 철이없고 서툴러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상처가 많아서 기억에 오래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베르테르도 로테에 대한 마음이 첫사랑이어서 그렇게 열정적이고 무모했고 급했다.

물론 제 격정과  무모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기 정수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빠져서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상대방에서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용기.. 그것이 첫사랑의 특원이다.

비슷한 청년이 이탈리아 베로나에도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 가족도 원수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매달리고 함께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는 것...... 그것도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이란게 처음 하는 사랑이라는게 아니라 첨으로 눈이 멀어질만큼 집착하고 몰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미쳤다 싶을 만큼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혼자의 시간이 되면 내가 미친게 아닌가... 아니 미쳤구나 이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하지 않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었으니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맹목적으로 눈멀고 집착하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품위를 생각한다는게 조금 우습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 헤사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다 보니 너도나도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고 순수청년이 되고 말아  "순수"라는 말이 오히려 상업적으로 들리는 판이다 심지어 송중기의 늑대 소년 이후로는  반인반수의 저 철수마저 저렇게 아름답다면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으랴 싶게 열광하고 있는 형편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어리석고 서투른 첫사랑에 빠진 청년은 "봄날은 간다"의 상우였다.

라면먹고 가라는 말에 헤벌죽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녀의 전화 한통화에 서울에서 강릉까지를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 커다란 키마저도 너무 서투르고 어설퍼서 맘이 갔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그녀와의 지금이 소중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청년.. 사랑하므로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고 있던  소년같은 청년이 상우였지만  그의 그 서투르면서도 집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은 세상을 알만큼 아는 속물같은 사람에게는 많이 두렵고 벅찬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상대 은수도 막 20대가 된 순수하고 서툰 처녀였다면 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쩌면 어린나이에 덜컥 살림을 차리고 지금껏 행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열렬했던 기억은 남아있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절절히 공감하며 느낀게  역시 연애도 해야할 나이가 있구나

철없는 시절 이런 남자가 내게 있었다면  ,,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상대가 좋아서 정신을 못차릴 만큼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 그런것도 때가 있구나..

어쪄면 여자가 남자보다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먼저 성숙해지는 존재라 이런 상우같은 남자는 뭘 모를때 만나는 것 그래서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조금은 서글픈 교훈을 얻는다.

내 남동생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으면서 여자에게 그렇게 빠져들면 안된다. 더구나 은수같은 닳고 세상을 잘 아는 여자라면 더욱 전략이 필요하고  전술을 잘 짜야 한다고 아는 척 충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 초 새로운 첫사랑의 순수청년이 나타났다.

"건축학개론"속의 승민

나이든 엄태웅의 승민말고 절은 이제훈의 승민이다.

그는 그래도 상우보다는 조금 세상을 많이 알고 계산할 줄 알았다.

첫눈에 서연에게 끌리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연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먼저 지킨다. 정신없이 상대에게 빠져들고 배신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돌아서버리는 현실감도 가지고 있다.

예전 상우가 남자와 모텔에 들어간 은수를 어찌 할 수 없어서 찌질하게 그차를 키로 그어버리거나 화를 내며 돌아와 달라고.. 사랑이 어찌 변하냐고 징징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승민은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여자는 더 좋은 조건의 남자에게 끌리는 거고 내게 상처를 줄 여자라면  상처받기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주겠다는 계산까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년을 마음에 품고 잊지못하고  현실에서 어정쩡하게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상우는 떠난 여자에게 징징거리며 매달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모텔을 가는 것까지 뒤쫒아 확인하고  홧김에 그 차를 확 그어버릴만큼 유치하고 무모했고 승민은 용기있게 고백할 타임도 번번히 놓치고 선배에게 대놓고 서연을 좋아하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상처를 준다.

내 온 영혼을 바쳐서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연인의 배신이 그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도 첫사랑이어서인가...

나름 계산한다고 해도 그 계산에는 사칙연산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내마음에 상대의 마음을 더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사랑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변해서 사라진다고 해서 고스란히 내것만 남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나라의 계산법 처럼 뭔가를 더하고 뺐어도 원래보다 더 많이 허전하고 더 많이 충만한기분 그게 첫사랑이니.. 아무리 영민한 머리더라도 계산이 쉽지는 않다.

 

그 첫사랑을 통해 상우나 승민이 얼마나 성장통을 겪고 성숙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두번 사랑이 덧입혀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속되게 되거나 익숙해지면서 변해갈것이다.

아쉽게도 서양의 두 청년은 그렇게 성숙해질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말았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이기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고백하자면 헤어지고 얼마간 세상에 그렇게 나쁜놈도 없고 죽일놈도 없었다.

그래도  내게 좋은 추억을 주고 경험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것도 몇년되지 않으니까...

 

언젠가 상우에게 은수가 웃으며 기억될 수 있을까

승민에게 서연은 그렇게 한채의 집을 남겨놓고이제 마무리가 가능했을까

베르테르도 살았다면 나이먹고 늙어가는 로테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로미오도  뱃살이 늘어나고 잔소리가 늘어가는 줄리엣을 그러려니하고 바라보는  체념을 배웠을지도...

 

그때 그랬더라면..

이런 결심을 했다면.. 하는 후회와 가정법은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에도 적용된다.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갈 수 이다면

이것저거 재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남의 눈에 미쳤구나 싶어도 상관없이 나혼자 충만하고 행복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담담하게 이 엄마도 한때는 빛나고 환하던 때가 있었단다..

하고 조금은 뻐기면서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

 

이 가을

그냥 넋두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언젠가 내가 이름만을도 책을 고른다면 당연히 이 이름이 아닐까

"구병모"

 

 

드디어  "고의는 아니지만"을 다 읽었다.

내내 찜찜하면서도 감동한다. 아니 감동이라는 말은 틀렸다.

뭐랄까 이 작가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다.

현실을 상황을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비틀어볼 수도 있는거구나  계속 감탄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왜 첨 샀을 때는 이 책이 그렇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넘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글속에는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 아닌 것이 없다.

비유가 사라져버린 언어의 도시. 늘 뭔가를 공평하게 해야하고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강박증에 갖혀버린 유치원 교사 육아가 너무나 고달픈 엄마. 곤충으로 변하는 성폭력자 등등

내가 일상을 살면서 한번은 스쳤던 생각들 순간순간 느낀 분노 절망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절망했다. 아이는 육아책에 등장하는 메뉴얼대로 절대 진화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면서 내가 어디가 부족한가 모성이 부족한가 엄마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 끊임없는 죄책감이 시달렸다. 그리고 나의 욕망과 상반되는 육아법들은 끊이없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죄의식을 만들고 내 속을 갉아먹어갔다.

"어떤 자장가"를 읽으면서 나는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나만이 아니다.

적어도 난 아이를 세탁기나 오븐 냉장고에 넣지는 않았다,

어두운 방에 그냥 내버려둔 적도 있었고 아이가 눈을 떠서 혼자 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몸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그냥 모른 척 한 행동들은  이 여자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혼자 위안했다.

그리고 나도 이 여자처럼 아이를 사랑했노라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선명하게 체득하게 되는 것

진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들이다. 착한사람의 착한 행동은 우리가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다. 그저 그 행동과 비교되어 내가  조금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내가 이상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될 뿐이다. 내가 논리적이지 못해서 지식이 딸려서 반박할수도 없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함이 하나구석에서 스멂수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착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악한 나도 "고의는 아니었"다. 아니었을 것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의 유치원교사 f처럼 항상 공정하고 누구라도 상처없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불평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공정함이 주는 냉정함 무심함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베이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새 상처가 생기고 붉은 피가 배어나온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순간이다. 상처가 생기는 그 순간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상처를 가진다.

사실 F가 잘 못한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공명함이 선함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모른다. 난 늘 아이들을 사랑하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순간 힘든다는 것 그리고 내 사비를 들여서가면서 나는 노력하고 있다고... F는  그렇게 항변할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받는 상처가 가치없거나 잘못된 것도 아니다.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대항마저 할 수 없는 아이들은 마지막 F의 불운앞에서 "미농지같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누구를 탓할것인가...

세상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더구나 배경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어떤 억울함도 부당함도 없는 인큐베이터 속같은 무균질의 사회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누군가는 상처받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감정선들으르 그렇게 드드럭 박아버리는 일도 옳지는 않았다. 그렇게 감정을 죽이는 것이 살아가는데 부당함을 받는 것이라 믿고 밀어버린다. 그로인해 우리가 잃어야 하는 것 그런것 까지 헤어리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언제나 후회는 나중에 문이 닫히는 순간 쑤욱~ 들어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서서히 고문에 익숙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조장기의 그 학생처럼 모든 나의 불행이 오로지 나만의 책임이고 나만의 문제로 귀착된다. 내가 못나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차라리.. 불행의 냄새를 풍김으로 새들의 공격대상이 대기를 갈망하게 되는 이 현실이 슬프고 무섭다.

이미 새들에게 공격당한 인간의 살덩이에 부러움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 단지 이야기속의 것일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딸아이를 키우면서 무서운게  행여 아이의 동심에 순수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성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려서 가지는 상처들이 미루어서 여전히 두렵고 무서웠다.

세상을 흉흉하게 하는 여러 사건사고를 보면서 이러한 언제든 호르몬의 작용으로 악마로 변하는 인간들을 격리시키고 혼내줄 방법을 상상하게 한다. 사형집행이라든가 종신형 거세법을 떠나서 아예 이사람들이 단한번의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않도록 강학 독하게 하는 무슨 방법을  간절히 바라는 지금 "곤충채집"을 읽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나는 이 방법이 몹시 맘에 든다(어쩌면 내 속의 악마가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으로서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던가..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던가 그들에게도 인권은 있다는 말들은 다 개소리라고 생각케 하는 요즘세상에 이보다 더 단순하고 위협적이며 모든 잠재적 범죄자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책속의 이야기는 허구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환상이지만  더불어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상상하고 내머릿속을 스쳐갔던 것들이 이야기속에 들어있다.

누군가를 향해 마구 찔러대고 싶은 칼날들 가끔은 나를 향해 휘두르는 몽둥이가 이 속이 있다.

읽고서 작가의 부족함인지 나의  아둔함인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결말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이런거지... 이럴때가 있었고 이런 순간이 있었고 이럴 필요가 있다고.. 함께 동조하고 함께 날카롭고 반짝이는 것을 휘두르고 싶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에 있다.

 

이 작가의 생각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웃의 소음에 대해 너무 짜증만을 내지 말라

어쩌면 짜증나고 내 신경을 긁어대는 그 소음속에 그 이웃의 처절한 삶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그 소움이 이웃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작은 고리가 될 수도 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사실 그 이웃간의 소음에서 시작된다.

이웃에서 들리는 소음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다시 살게 만드는 희망이 되기도 했다

또 그 소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알고 도와주면서 혼자만 간직했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책의, 혹은 영화의 작은 미덕은 이웃간의 소음을 짜증과  감정폭발로 연결시키지 않고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혹은 공동주택에서 이웃의 소란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받고 고통받는 이웃도 있지만

이웃에서 한두번 항의하러 온 경험만으로도 온 신경이 곤두서고 나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되새김질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이웃도 있다.

아주 독한 소음만 아니라면

아 내 이웃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구나

아직도 그 이웃이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으로 넘어가주는것이

함께 사는 에의라고  주장해본다.

 

설령 내 이웃에 나의 삶의 희망이 되는 존재가 살고 있지는 않아도

누군가  내 곁에 살아있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나에게 항의했던 누군가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