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집 예찬
김병종 지음, 김남식 사진 / 열림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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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두고도 계속해서 딴 쪽을 기웃거리다가 그 딴쪽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 딴 쪽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원래 하던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경우 그 사람은 참 성공적이다. 하고 싶은일 잘하는 일 그것 사이의 큰 구분이 없이 두 영역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말이다. 화첩기행을 쓴 김병종님은 원래는 화가였는데, 글을 잘 써서 십여년전? 아니 그 훨씬 전에 쓴 몇 권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계속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이 분, 알고보니 글을 그냥 조금 잘 쓰는 정도가 아니라 서울대에서 각종 문학공모전에 글 써서 내고 수상받은 상금으로 용돈과 그림도구까지 벌어쓰신 모양이다. 그러니까 리뷰대회 나가서 10만원짜리 상품권 하나 달랑 받아가지고 좋아라 방방뜨는 사람이랑은 글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뭐, 이 글만 읽으면 크게 김훈님이나 김연수님의 산문집과 비교해봤을 때는 딱히 글 자체만으로 크게 감동이 되거나 어떤 정보가 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은 이유 첫째, 텍스트와 사진이 조화있게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대개 이런 종류의 책은 크게 사진 위주의 책과 산문 위주의 책으로 나뉘어지는데, 전자의 경우 사진에 대한 설명 위주라서 텍스트는 사진을 보조해주는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 폼으로 독자의 감성에 부합되는 이런 저런 사진들과 그림들을 첨가하는 경우라서 때로는 별 의미도 없이 장수만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면서 텍스트가 없다면 사진을 보면서 제대로 느낌을 갖지 못했을 것 같고, 사진이 없다면 존재감없을 평범한 글이 되었을 뻔한 둘 사이를 서로가 살려주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긴 인생의 여정의 어느 순간 어떤 기회, 알고보면 선배의 압력으로 퇴촌의 남의 땅 위에 얹어져 있는 작은 집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땅주인이 성화를 해서 집이 깔고 앉은 땅을 사게 되었고, 땅과 집이 내 소유가 되니, 집이 허접하다며 다시 지으라는 주위의 권유와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런 저런 집들을 지을 생각을 하던 중, 왕십리에 재개발지구 한 가운데 있던 작은 한옥집을 옮겨짓게 되는 과정이 주내용인데, 그렇다고 딱히 집을 짓기 위한 실용적인 정보는 없고 집에 대한 예찬, 그 집을 만든 예술가들에 대한 예찬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역시 예술가시라 눈썰매와 인맥이 있어서, 국내에 내놓으라 하는 권위있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묵묵히 지키며 가꾸어온 아주 소수의 몇몇 장인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들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나무로 된 집 한 채를 짓고 함양당이라 이름짓는다. 책 제목이 예찬인데 예찬 맞다. 그 과정에서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사진작가 김남식님이 함양당의 구석구석을 사진찍어 주었는데, 그가 찍은 나무집의 표정들을 홀로 보기 아까운 이유도 이 책을 내게 되는데 한몫 했다는 설명이다. 


뉴욕 타임스의 객원 사진기자인데 한옥 사진을 찍는 것은 아마도 함양당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함양당의 사계절 모습과 아침저녁, 그리고 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 기자재를 들고 수시로 한옥에 들락거렸다. 뚝심과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수도 없이 찍어 댔다. 


그의 사진은 다분이 시적이다. 고무신에 떨어진 은행잎 하나나 장독대에 고인 빗물에서도 이야기와 정감을 이끌어냈다. 세계 최첨단의 도시에서 살다온 그가 한국의 전통 공간에 대해 찰나적인 직관을 동원하는 것을 보며 역시 실력자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의 렌즈 안에서 함양당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났다(p85)

어릴 때, 비록 전후 막 지은 집이긴 하지만 너른 마당에 과일 나무가 가득하고 꽃밭이 있던  한옥집에서 자랐다. 그 작은 꽃밭에  아빠가 봄이 되면  아이들을 목마 태워 데리고 동네 화원에 가서  모종을 사다 함께 심고 물 뿌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샐비아와 키작은 꽃들이 가득했던 꽃밭 앞 마당 한 가운데는 개집과 개와 수도와 펌프물도 있었던 한옥집에서 자란 기억을 간직한 나는 한옥집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사진만 봐도 아늑하고 그리운 느낌이 든다.  무슨 까닭인지 집에 식구도 많았음에도 햇빛이 말갛게 비치던 날 대청 마루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책을 보던 기억이 풍경처럼 되살아나곤 하는데, 2층 양옥집으로 이사 가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현관문으로 들어와 버리면 바깥 공간과 단절된 그 벽돌집이 답답했고, 끝까지 별로 애정을 갖지 못했었지만, 다시 눈오는 추운 겨울 신발을 챙겨신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그 불편한 나무집에 살라고 하면 노노. 그럴 순 없음이다. 


아마도 나무집 예찬, 이 책은 대청 마루에 누워 쏟아져 들어오던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뒹굴거리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리만족으로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일 것이다. 가끔 사진은 실제 풍경보다 더 많은 서정을 이끌어낸다. 그 사진에 화가의 글, 집안 구석구석 목수, 철물공, 골동품 고미술가, 등등 여러 분야의 숨겨진 장인들이 만들어낸 소품들이 '시적인' 사진가의 눈에 잘 포착되었고, 또한 미술가의 글로 잘 포장되어 있다. 시집같기도 하고 선물같기도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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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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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는 것은 잘 사는 것

잭 니클라우스가 1964년 유에스 오픈 대회에서 평소의 감각을 잃고 강력한 우승 후보에서 23위의 초라한 성적으로 돌아온 후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계속 슬럼프에 빠질뻔한 위기를 구해준 건 자기 자신의 꿈이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꿈속에서 완벽하게 쳐낸 스윙 포지션이 최근 슬럼프에 빠진 이후에 했던 자세와 조금 다르다는 걸 잠에서 깬 순간 알아낸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클럽 잡는 방식의 미세한 차이가 문제였던 것을 꿈속에서 성공한 스윙을 통해 알아내고는 한밤중에 일어나 곧바로 골프 코스로 갔고 꿈속의 스윙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다음번 대화에서 준우승함으롯서 재기에 성공했다. 화학자 케쿨러는 꿈속에서 뱀이 스스로의 꼬리를 잡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벤젠 분자의 육각형 구조 모형을 생각해냈다.  그 발견으로 케쿨러는 귀족 작위까지 받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릴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둔 트와일라잇 시리즈 역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스테페니 마이어의 꿈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꿈속에서, 아름다운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뱀파이어는 소녀의 피를 빨아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썼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한국의 스테파니 마이어가 될뻔했는데. 간단히 적으면 이렇다. 어느날 꿈속에서 미래의 어떤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밤에 일어나 스토리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sf 소설을 쓰면 J.K 롤링과도 같은 세계적인 대성공을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어 불을 켜고 연필과 종이를 찾아들지 않고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스마트폰이 이룩한 사소한 경이이다. 아직도 내가 스테페니 마이어가 되지 못한건, 몇 페이지를 적다가  스토리를 채 적기도 전에 다시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잠에 들면서 남겨진 스토리는 낮에 계속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 다음 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초고가 아직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전개지만, 그 다음 스토리는 나도 궁금할 뿐.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이 있다. 내 직업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이라는 걸 하(했)는데, 수많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 중,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사흘 낮과 밤을 모니터만 들여다봐도 안풀릴 때가 있다. 밤낮으로 생각한다는 건 실제로 꿈속에서도 그 생각을 한다는 거다. 물론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다. 낮에 일하고 나면 밤엔 달콤하고 로맨틱한 꿈을 꾸고 싶지 누가 꿈에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꿈을 꾸고 싶을까. 하지만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실제로 꿈속에서도 모니터와 늘 씨름하고 있고, 깨어났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나 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 적은 SF 소설의 경우처럼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정상적인 뇌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꿈이 현실의 문제(Problem)를 해결하는 이 문제(Issue)를 연구하기 위해 1960년대 심리학자들이 했던 창조성의 정의를 살펴보면, '연합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해 특정 요구 조건을 충족 시키거나 어떤 면에서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크릭과 미치슨의 이론에 따르면 뇌가 버릴 것과 저장할 것을 선별하는 작업 즉, 마음의 서류함을 정리하는 작업은 램수면 동안에 일어나는 데 이것은 꿈의 무작의성을 설명한다. 다시 내 식대로 말해보면,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것은 뇌 속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의 꼭지점들을 서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조합하는 과정인데, 잠이 중요한 이유는 잠자는 동안 뇌는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어질러진 책상과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오래된 정보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꺼집어 내고 분류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저장할 것은 저장하고 하는 정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꿈은 무의식속에 묻혀 있던 아주 오래된 기억들, 생각지도 못했던 욕망들을 표출하는 것이고, 또한 하루 종일 이루고자 간절히 원했던 어떤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식대로 해석하면 학생들에게 잠을 4시간만 자고 죽어라고 공부하라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의 갈래를 합치고 조합하고 하면서 창의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여러가지 실험에서 보면, 어떤 신체적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나 일을 배울 때에도 잠이 가져오는 효과가 컸다. 단순 암기가 아닌 여러 분야의 지식과 통찰을 토대로 풀어야 하는 시험(수능이 그런 것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을 잘 보려면 잘 자야 한다. 잠을 24시간만 안재워도 전쟁을 하는 군인들은 아군을 적군으로 알고, 파일러트는 수백명의 승객과 함께 엉뚱한 곳에 이륙을 시도한다. 미국에서는 피로관리라는 분야가 이미 인력관리 차원에서 여러 산업에 필수적으로 도입되었고 생산성에 있어서도 큰 효과를 보았다고 전한다. 어떤 문제가 안풀리면 새로운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마옆앞겉껍질(전전두엽피질)이 그것을 관리하고 잠은 이 부분의 활성화를 돕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

졸피뎀이라는 수면제가 있다. 부작용이 없어서 의사들도 곧잘 처방해주는 이 약은 약을 복용한 이후 잠이 들었다가 깨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불면증이 몇일간 계속될 경우 이 약을 한 알 먹으라고 처방받았지만, 너무 조금밖에 안주기에 반알만 먹어도 효과가 있기에 1/4알을 먹으면서도 몇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불면증 기간동안 매우 큰 효과를 본다. 그런데 내가 이 약의 효과에 대해 맹신한 한 가지 이유는 내가 밤에 잠을 잘 잤건 잘 못잤건 머리 속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채 완전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그 텅빈 머리가 가진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고 믿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약의 위약 대비 효과는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20분 단축시켜줄 뿐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잠을 더 잔 시간이라고는 고작 11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긴 시간동안 자신이 얼마나 잠을 자기 위해 애썼고 깨어서 뭘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잠잤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약효를 맹신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어처구니없음의 절정인데, 의사의 말이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수면과학 전문 의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가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맞다. 내가 새벽이 가까와오는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다면 기억이건 잠이건 그 잠못드는 힘겨운 시간을 여전히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것이고 그약을 계속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한 것 같은 인생의 나쁜 기억들도 그렇게 지울 수 있으면 좋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어차피 싸울 땐 흠뻑 취한 경우이고 기억도 대체로 지워져있기 때문에 뭘했는지는 잘 모르므로..


잠과, 꿈, 몽유병, 불면증과 그 치료 방법 등 온갖 종류의 잠에 대한 지식이 총망라된 책이다. 기자가 썼기에 잠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과 이야기들이 가득하고, 쉽게 잘 읽힌다. 잠이라는 주제가 한정된 것 같지만 사실상 파고 들어가면 인지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수면과학, 행동과학, 불면증, 기면증, 수면치료,수면 보조 장비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는 만큼 그 깊이가 깊지는 않다. 뇌과학이나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전혀 필요치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쓰인 책이라는 뜻이다. 의료 장비 회사의 별로 궁금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인물 묘사나 매출 같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흥미면에서, 재미면에서 기대에 부흥하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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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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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책 제목 중에서 이렇게나 책 내용을 잘 설명하면서도 명쾌하고 센스있고 진부하지 않은 책 제목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번역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 한국 사람이 쓴 것인지 모르고 읽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번역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명료한 문체도 특징이다. 쟝르로 봤을 때, 내게 경제 서적은  경제 정치를 같이 묶어서 답없는 탁상공론이라는 부류로 분류해 놓고 가끔 뭐 그런 게 있나부다 하는 부류의 회피 대상 서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읽을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여진 책이었다.  



<빚으로 지은집>은 미국 경제가 2000년부터 2006년 사이에 역사상 유례없는 부동산 경기의 호황을 누리면서 소비 확대, 대출확대로 이어지고 그 이후의 거품붕괴로 인한 대침체기를 겪은 현상을 가계대출의 측면에서 통계적으로 분석해, 경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 문제들을 고쳐나갈 수 있는지를 아주 친절하고 분석적으로 쓴 책이다. 원제는 <House of Dedt)이고 부제는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인것처럼, 왜 가계 부채가 위험한지에 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문체 자체가 읽기 쉽게 잘 쓰여졌고(번역체 냄새도 전혀 안나고), 기초적인 용어에 있어서도 본문 내에 설명을 적어 놓고, 영문과 번역을 함께 표기하기 때문에 나같이 문외한인 사람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내 식대로 더 쉽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거다. 우선 주목할 내용은 현재와 같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 내에서 주택시장의 붕괴는 그 피해를 가장 가난한 층에게 가장 먼저 전가시킨다는 거다.  주택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 그 하락에 따른 손해는 전적으로 대출자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금융 시스템의 신용 등급이 높은 저축자들은 선순위가 되어 집갑 폭락에 대한 손해를 거의 받지 않지만, 돈이 없이 주택을 구매했던 대출자들은 그동안 몇년간 빚을 갚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깡통주택 소유자나 마이너스 상태가 되어 주저 앉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뭐 대충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IMF를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낮은 대출 금리를 끼고 집을 산 사람들이 금리가 높아지고 집값이 하락하자 전재산을 잃게 되는 일들이 주위에서 속출했었다.  IMF 시절에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높은 금리를 이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벌었고 하락한 주택을 구매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 경제에서는 자주 시스템이 붕괴하고 대침체기니 침체기니 하는 기간을 자주 겪게 되는데, 그 원인을 이 책에서는 대출의 증가로 명료하게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의 급증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공황때와 대침체 때에도 그랬고, 지난 10년간 유럽의 최악의 경제 위축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빚을  모든 경제 위기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여러 나라들에서 발생했던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들에 대한 객관적 자료들을 분석해서 매우 명쾌하게 설명한다.

보험이 위험을 분산시킨다면 빚은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위험을 증폭시킨다. 한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이끄는 주범인 부채는 한사람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소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재앙적인 피패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우리 금융 시스템에서는 채무자가 단순히 금융권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우리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고 일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주택담보 증권 및 채권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2007년에 발생한 주택시장 버블 붕괴 현상의 이면에는 그런 다양한 종류의 채권들이 존재했다. 당연히 주택 담보 대출을 받으려면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선별하는 작업이 철저하게 선행되어야 했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이러한 자정과정이 무너지고 자들이 채무 불이행이 확실한 사람들에게까지 모기지 상품을 팔고 있었다. 주택 시장의 과열을 부축이는 주택 증권들의 이면에는 그 이전 1997년 우리나라에게도 몰아닥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와 그것을 낳은 1990년대초에 광풍처럼휩쓸고간 주택시장의 버블과 붕괴를 통한 달러화의 급격한 유입이 있었고 경제위기 기간동안 썰물처럼 급격히 빠져나가던 외국 투자자들로 인해 우루루 도미노처럼 도산해가던 자국 경베 시스템들을 지켜보던 동아시아국가들이 경제 위기를 보낸 후 배운 값비싼 수업 달러 비축이라는 것을 실천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위기를 겪은 아시아국가들이 달러들을 사들이자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현금이 흘러들어왔고 그것은 주택담보대출 상품에 투자처를 확보한 것이다.  은행들은 혈안이되어 모기지를 팔고 있었고 주택가격은 승승장구했으며 순자산의 증가는 더큰 빚과 더 큰 소비를 불러왔다.


거품이 꺼지자  빚은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자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소비 감소를 확대시킴으로써 대재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위험으로 작용했다. 이 때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직접 빚을 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무언가가 불공평하다고 느껴지고 웬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 전체에 만연된 개개인의 빚은 개인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과 또 한가지 그러한 빚들은 소비를 감소시키고 실업을 증가시키고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은행과 채권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분담모기지와 같은 구체적인 모기지 상품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 책은 단순히 날로 심화되어가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의 이면에 있는 경제 체계를 이해하고 분개하라고 있는 책이 아니라, 그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고 약간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하지만, 국내 현실을 생각해보면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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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 음악의 기쁨 1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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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애호가들에겐 필사까지 한다는 책이다. 클래식 음악의 커다란 줄기를 차근 차근 훑으며 대담 형식으로 쓰여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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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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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처에서 가난과 억압의 쇠사슬을 끊고 이상향을 꿈꾼 순수하고 젊은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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