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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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인생은 불리해지면 다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일어나라, 다시 시작하라 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실패해서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실패한 기간만큼 내 삶도 지나간다. 실패가 거듭되면, 실패의 흔적과 상처가 쌓여, 고스란히 앞으로 남은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의 빚이 된다. 사람의 인생에는 순차적으로 나이가 쌓이고, 두뇌의 세포가 변화하고 경험의 크기가 달라지고 생체적 특징과 정서적 변화도 겪기에, 어떤 나이에는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 뒤로도 앞으로도 마음대로 성급하게 방향을 틀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라는 책 제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이 조금 안된다. 인생은 한 번인데 '한 번'은 필요없는 말 아닌가,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두 번 정도는 부모가 각각 원하는 인생을 살고, 또 한 번은 나라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읽고 나니 뜻을 알겠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커리어 디자인'을 하라는 거다. 커리어 디자인은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이다. 커리어의 출발점은 인생의 오전이고,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등이다. 커리어 디자인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마다 지속적으로 디자인의 내용을 업데이트해가면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얼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커리어 디자인은 직업 원, 인생테이블, 인생조감도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백지에 내가 원하는 직업 세 개를 원 세개에 그리고, 서로 관련이 있는 만큼 원과 원 사이를 겹치게 그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라 그 직업 내에서의 본질이다. 두번째로 연도별로 테이블을 그리고 왼쪽에는 연도를 적고 그 다음 컬럼에는, 중요 이벤트, 플랜 A, 플랜 B,  중요한 사람의 이름과 그들 각자에게 예상되는 미래의 갈림길을 적는다. 세번째는 첫번째 원들과 두번째 테이블들을 가시화한다. 이것은 인생의 조감도에 해당된다. 


인생 테이블에는 갈림길을 앞에 두고 어떤 준비를 했는지, 갈림길에서 결과적으로 어떤 플랜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등을 기록한다.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인생 테이블에 적는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은 항상 내 곁에 두고 고쳐나가는 것이 좋다. (p174)


그러나 10년 후의 세상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세운 계획이 10년후에까지 비전이 보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에 가까운 기간은 구체적으로 세우고 긴 미래는 내가 원하는 것의 본질적인 것이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정의는 19세 때 이미 인생의 각 10년 주기마다의 엄청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이루었다지만, 그런 황당한 숫자들을 채우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을 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인가, 혹은 나를 완전히 소모시켜 버릴 종류의 일은 아닐까 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면 성공 그 자체가 주는 명예와 돈 외에도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품화할 수 있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별 시답지않은 신변잡기에서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인생철학을 활자로 엮어내도 되는 자격을 가지니까 말이다. 고로 성공담을 말하려면 성공해야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성공담을 먼저 말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는 것을 원하고, 또 그 성공의 뜻이 명예와 부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성공을 쫓는 사회 자체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행복도, 사랑도, 자존감도 모두 어느 정도는 최소한의 부가 뒷받침되어야 쫓을 수 있는 게 인류니까 말이다. 


나의 취미인 지적질을 좀 하자면, 커리어 디자인에 대한 설문 조사를 인용했는데, 출처가 없다. 시간을 잘게 쪼개어 관리하고 쓰라는 충고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독서의 예는 적절치 않아보인다. 매일 하루 10분씩 독서라니, 다음날 10분 읽기 위해 책을 꺼내 펼쳐 들고 어디 읽었는지를 찾아 어제까지의 내용과 연결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릴 뿐더러, 10분동안만 할 수 있는 독서라는 것의 얕음이 눈에 선하다. 독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시간관리가 중요하므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사이에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넣으라고 했는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저자의 쉬는 시간이란 등산이나 운동 심지어는 책을 번역하는 것과 같은 취미생활에서부터 직업적인 일이 아닌 모든 걸 말하는 거였다. 이런 말장난은 큰 도움이 될 듯하지는 않다. 커리어디자인을 할 때 쉬운 방법으로 롤모델을 만들어 따라하라고도 했는데, 이렇게 시시각각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무턱대고 따라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작가인 윤태성 교수의 경우처럼 대기업을 나와 유학을 갔다가 일본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벤처도 설립했다가 들어와서 교수가 되는 것 같은 화려한 커리어는 본인의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인 상황도 반영된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번역 자체가 휴식이라는 말에 선뜻 공감이 안가겠지만, 나로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그가 책에서 누누히 이야기했던 시간 쪼개기 신공과도 통하는데, 어떤 일이 잘 안풀리면 과감히 접고 뭔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나면 다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만일 번역은 하고 있던 번잡한 생각들로부터 머리를 말끔히 비워주고 다시 그 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다. 전공서적은 세 번은 읽으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전공을 빼도 이 말에는 공감한다. 별 내용도 없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정독하면서 세 번 정도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니까 좋은 지식은 반복해서 읽는 도중 휘발되는 양이 줄어들 것이다. 


* 리뷰를 위해 다산북스에서 제공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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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100원 200원 티클만 들어와도 히죽히죽 뿌듯했는데, 

오늘 보니 6,520원이다. 

TTB2는 티스토리에 추가로 올리면서 책 이미지를 따로 찍어 올리기 귀찮아, 상품코드 복사해갔었는데, 그 링크가 적용된 모양이다.

아마도 15일이 정산일인 것 같다. 

보통 광고 수익이라고 해서 20원씩 들어왔었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전에는 TTB2 어쩌구 저쩌구 해서 마이너스 금액으로 포인트를 빼가는 일도 있었는데,

이러다가 슬쩍 사라지는 금액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가 궁금한 건... 매우 궁금한 건 판매수익(001-A...)로 시작되는 번호가 있는데,

그게 상품 코드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그러니까 나의 어떤 리뷰를 읽고 들어와서 저렇게 많은 책을 산 건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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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나오는 신간과 쏟아져 나오는 저자와 원래 유명했던 저자와 작품, 재조명되고 저자와 작품, 새롭게 노벨상, 퓰리처상, 맨부커 상등을 받은 작품 등 소설은 읽어도 읽어도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것 같다. 평가단 추천 도서가 월에 딱 2 개만 선정되는게 아쉬워서 개인적으로 하나씩 세어보았다. 이번에 결정된 플래너리 오코너와 지평 외에도, 간발의 차이로 선정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14기 때에는 내가 추천한 것중 하나는 선정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없다. 별 아쉬움은 없다. 다수의 선택은 자주 옳으니까.



플래너리 오코너 총 7표

단편집












총 9표













총 6표














총 5표














총 4표















총 4표














총 4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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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1-1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신간 서평단 되면 맨날 튀고 소수의견이겠는데요 ㅋ

CREBBP 2015-01-17 13:37   좋아요 0 | URL
북플은 카톡처럼 실시간 답글놀이가 가능하군요. 가끔 1개씩만 올라오는 추천들이 있죠. 취향 위주의 장르 소설도 있고.. 여러가지

이섬 2015-01-1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제 짬밥이 쎄져 소설 서평단을 해볼까요. 저! 기네스님 알라딘 말고 한군데서 더 뵌 적 있어요ㅋ 우찌 저 같은 우주먼지가 기네스님 눈에 이곳저곳에서 보였는지 아직도 미스터리군요.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15기 1차 책은 소설이 제일 탐 나더라구요. 서평도 기대하겠습니다!

CREBBP 2015-01-18 14:34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카페에서도 뵌 듯하고 네이버 오늘의책 선정단에서도요. 네이버 오늘의 책 카페에서는 맥주. 과학쪽 담당이고 다른 카페는 가입시마다 그때그때 아이디를 아무거나 써서 뭔지 들어가봐야 안다는 ㅎㅎ
네이버에서 얼마전에 선정하신 심리학 책이 이슈?던데요.ㅎㅎ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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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 반전도 스토리도 사연도 없는 균일한 인류는 얼마나 지루한 곳일까. 진화는 돌연변이로부터 왔다. 태초 균질한 상태에서 발생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작은 실수, 작은 우연, 작은 차이였다. 완벽하게 아무 변화도 없을 그 무로부터 유가 발생했던 순간, 그리고 적응을 위해 작은 차이들이 이루어낸 기적들을 생각한다면, 쓸모없어 보이는 차이라 하더라도 평균의 인간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에 불편한 차이를 가지고 있더라도 태초 생명의 탄생과 진화와 같은 커다란 차원에서 볼 때, 그 차이는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다양성임을 인정해야 한다. 


배우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면서 우리는 대개 자신과 비슷한 2세를 기대한다. 사실 비슷한 것으로는 모자라고, 자신보다 더 나은 2세를 원한다. 나의 장점과 배우자의 장점, 그리고 양가의 혈육에서 가장 우월한 유전자만을 물려받기를 소망한다.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치마바람과 바지바람같은 이해집단을 형성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부모들의 심리 밑바닥에는 환경적 제약과 몰이해와 무지 등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내 아이를 통해 실현하고자 부모들의 원초적 욕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은 그 누구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기대하지, 평범에서 벗어난 일반인과 다른 적어도 부모와 매우 다른 아이를 원하지도 기대하지는 않는다. 


장애, 혹은 다른 정체성으로 불리우는 차이를 가진 아이를 내 아이로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이가 부모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출산과 동시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몇주, 몇달 혹은 수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부터 부모의 삶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남은 인생을 완전한 절망과 약간의 희망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온 몸과 온 마음으로도 모자라 모든 재산과 직업마저도 죽을 때까지 남은 한 줌의 숨마저 아이에게 헌신하고 걱정하며 가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867페이지의 두꺼운 책, 그것도 모자라 두 권 한 세트로 구성된 이 책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전작 <한낮의 우울>은 퓰리처상 파이널에 오른 우울증에 관한 방대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 2001년 출판되어 우울증 학회 및 영국과 미국의 각종 상을 휩쓸었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 특히 1권에서 다루는  장애인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스스로 동성애자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특수한 정체성을 장애 혹은 질병으로 인식하는 부모와 사회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위치에서 '치료'라 불리우는 이상한 행위를 강요받기도 했다.


두 권 세트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 서문에 해당하는 아들, 청각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의 총 7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2부는 신동, 강간, 범죄, 트랜스젠더, 아버지의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만 읽었다. 솔로몬은 이 책을 쓰기 위해 10여년에 걸쳐 300여 가정을 인터뷰해왔으며 인터뷰 기록만도 거의 4만 페이지에 육박한다. 책의 내용은 해당 주제에 대한 학술적, 통계 자료를 포함하지만 주로 관찰과 인터뷰 기록과 조사 내용, 심리적, 의학적, 사회적, 역사적 문헌에서 가져온 인용 및 요약문 등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며, 때로 개인의 의견과 생각이 뚜렷이 전해지지만 내가 느끼기에 특히 감상적인 견해를 극도로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부모들을 만난다. 주로 미국과 영국의 부모들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비용문제와 사회적 완충 시스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라고 해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장애인에 대해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로지 부모만이 그들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는 듯하고, 또한 적어도 출산시, 출산 후의 부적절한 조치에 의해 장애가 초래된 경우에는 그 흔한 소송을 통해 아이의 평생이 보장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 중복 장애가 있는 경우나 자폐아의 경우 80% 이상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40 이후가 되어 부모가 죽기 직전까지 그 자식을 보살핀다는 사실을 보면,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장애를 그 어떤 사회 시스템에 기대할 수 없다고 보인다. 

 

장애? 정체성


사실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 사람, 애초부터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문제로 인해 겪는 고통이란 건 그들과 다른 일반인들이 만들어놓은 덫에 있을 뿐 본인 스스로 불편하지 않다. 올리버 색슨의 <화성의 인류학자>에 보면 50년간 시각장애자로 살던 사람이 의학의 힘으로 다시 시력을 찾았을 때의 혼란을 잘 보여준다. 그는 노력했으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 세상을 눈으로는 다시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켄트는 자신의 시각 장애를 자신의 갈색 머리 만큼이나 가치 중립적인 특징으로 생각한다(p67)


2부에서 다루는 청각장애인들은 이 정체성 이론이 특히 강한데, 그들의 언어인 수화가 그들 상호간의 소통에는 너무나 완벽할 뿐만 아니라, 단어의 순차적 배열로 이루어진 음성 언어에 비해 수화는 몸짓의 사소한 차이, 크기가 나타내는 의미의 변화와 동시다발적인 동작으로 다채롭고 풍부한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만일 청각 장애인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거나 불편하지 않으며, 단지 그들에게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만이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인인가 정체성인가의 논란은 소인(난쟁이), 자폐증, 다운증후군에게까지 확대되고, 그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커뮤니티가 소개된다. 


농문화는 하나의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며, 언어이면서 미학적 특징이고, 신체적인 특징이자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지식이다... 이들에게 언어란 단지 혀와 후두의 제한된 구조가 아니라 주요한 여러 근육 조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인 까닭이다. (p119)


부모들이 해야 할 일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다른 자식을 둔 부모라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소수자로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단체 결성의 필요성이다. 그것이 정체성이든 장애든 상관없다. 어쨌든 다르지 않은가, 어쨌든 소수이지 않은가. 소수에게도 소수로서의 권리가 있다. 소수가 다수에 의해 받는 차별을 이기적인 다수가 알 턱이 있는가. 알려야 한다. 다수가 차지하는 소수의 몫의 일부를 되찾으려면, 그리고 소수가 다수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만으로 가득찬 지식의 세계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같은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동족을 형성해야 한다. 이곳에서 인터뷰한 미국 및 영국의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스스로 돌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동종의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교류를 했다. 특히 아이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면서 스스로의 직업이 바뀌거나 자긱에게 해당한 장애에 대한 의료나 교육에 지대한 공을 세워 학계나 의료게에서까지 알아주게 되는 케이스도 보았다. 청각장애인의 부모는 수화를 배워 농아학교의 교사가 되고 수화 통역을 하였으며, 자폐증 부모는 아이의 교육 방법을 연구하여 수많은 교재와 방법론을 동종 커뮤니티에 퍼뜨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중도 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실태가 이렇게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구되었는지 의문이지만, 아이를 감추고 가두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한 경우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어디든 무엇을 하든 비슷한 길을 조금 먼저 여행한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한 번 빠진 늪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와 수용 사이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경험을 어떤 다른 삶과도 절대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차피 삶이란 바꿀 수 없으므로, 장애인을 키우는 경험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영미인들의 사고 방식에 찬사를 보낸다. 힘든 경험이지만 아이와의 끈끈한 유대관계에서 삶의 목표를 재정립하고 도전과 시련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뜻일 것이다. 때론 견디지 못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부모도 있었다. 영국의 중도 복합 장애인의 부모로 아이는 의식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두뇌 피질이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법적으로 아이를 포기하는 게 가능한 나라였다. 그냥 그렇게 병원에 아이를 두고 걸어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후에 위탁부모에 맡겨지는데, 그 위탁부모와 친부모는 서로 왕래하며 지내게 된다. 친모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글로 썼으며 아이를 버렸다는 비난에 정면으로 맞섰지만,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한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의 경우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도 다수 소개되어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하고 참아내는 충동과 아이를 밀어내는 충동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솔로몬과의 인터뷰에서 대다수의 부모는 만일 다른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면, 그러니까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되더라도 절대 아이를 포기하거나 다른 정상인 아이와 바꾸지 않겠다고,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한다.


두꺼운 책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설렁설렁 읽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저자가 다방면에서 활동하기기 전에 소설가이기도 한 까닭에 문장이 명료하고, 깨끗하며, 자칫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매우 객관적이면서도 뚜렷한 자기 생각을 훌륭한 문체 안에 담고 있기 때문에, 문장 하나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라고들 외치고 있지만, 그 차이의 이면에는 이런 두꺼운 책 두 권에도 다 담을 수 없어서 웹 버전의 참고 인용 내용을 추가해야 하는 수많은 디테일이 있다. 인간의 다양성, 인간의 본성, 인간의 양면성 그런 모든 것들을 다채로운 시각과 입장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너무나도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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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섬 2015-01-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하필 바쁜 1월에 읽고 있다는 게 얼마나 한스럽던지요. 얼른 2권도 완독하고 싶어요!ㅎ

CREBBP 2015-01-20 18:02   좋아요 0 | URL
길게 길게 답글달다가 날아가서 좋아요만 누르고 왔는데 반가와요. 안그래도 책의 두께와 판형 밀도 이런 얘기를 날아간 댓글에 썼었어요. ㅋㅋ 2권도 읽으신다고 해서. 저는 좀 쉬었다가 나중에 읽으려구요. 전 한 보름 걸렀어요.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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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도 건져 올려보면 문학의 씨앗이 있다.  인생을 한 반 쯤만이라도 살아왔다면 흔히들 두팔을 한껏 벌려 이만큼 써도 모자란 두께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허세부릴 만큼 드라마틱한 삶의 전환을 경험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살아온 시간이 얼마인데. 그 사랑, 상처, 바람과 절망 사이, 생고생,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떠나온 그 곳과 불타버린 다리, 그리고 우리의 생 반대쪽, 다리 건너편엔 가지 않았던 길들이 있다. 그 숱한 사연들을 어찌 소설 책 한 권에 다 구겨넣을 수 있을까.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소설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의 일부를 소설로 바꾸는지 구경하고 싶을 때가 있다. 김연수 작가는 그 비밀을 이곳에 풀어놓았다. 삶의 일부가 소설이 되는 비밀, 생각들이 세상에 나가 독자의 생각들 속을 파고들게 하는 과정. 


소설가는 일생에 딱 한 번 자기 이야기로 자전적 소설을 쓴다지만, 모든 소설은 자전적 요소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내면에서 탄생된 모든 것들이 작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 탐구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아무리 완벽한 신이라고 해도, 인간이 뇌와 심장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능력은 결국 우리에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 전혀 존재하지 않을 인물을 창조해 냈다고 해도 작가의 자아가 투영되지 않고서야 책 속의 문자로 박혀질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일생에 한 번 쓴다는 자아가 가장 많이 투영된 자전적 소설 하나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소설들은 어쩌면 작가의 또 다른 길,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일 것이다.  순간의 다른 선택과 순간의 다른 우연들이 조합된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똑같은 평행 우주 속의 자신, 다른 버전의 작가의 자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인생은 연속적으로 단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상에 있기에 가지 않은 길과 불태워버린 다리는 운명과 만난다. 절망적 낭만과 아련한 그리움, 아쉬움이 있는 곳이 다리 건너 저쪽 편, 반대쪽 세상, 가지 않은 곳, 미지의 세계다. 시간이 인생과 함께 흐르고, 내가 선택해온 나무 가지는 점점 가늘어 선택의 폭이 적어지지만 작가라면 내가 불태워버린 내 인생의 어떤 다리 건너편 세계로 성큼성큼 걸어가 단단하고 두꺼운 나무 밑둥부터 새롭게 생을 창조해나갈 수 있다. 그것이 소설이다. 소설을 쓰는 것이 길거리에 발가벗거진 채로 서있는 같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은 소설 속 인물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자아를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 각인된 이 책의 키워드로 '토고', '생고생', '다리를 불태우는 행위' 가 있다. 순수 문학을 좋아하는 우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가 하는 일의 첫번째가 '토고'를 쓰는 일이라고 했다. 토고는 토나오는 초고다. 궁색하고 초라한 어휘, 유치하고 감상적인 표현, 진부한 상상력..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이란 걸 진지하게 써본 사람이라면 어젯밤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 만인의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있는 김연수 작가 자신조차도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아침 다시 들여다보면 이런 토나오는 느낌을 갖는다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이런 위안이 또 있을가. 그러나 모든 훌륭한 글은 그 토고에서 시작된다. 


토고조차 우리는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른다. 김연수는 설명한다. 우리는 머리속에 어떤 생각, 어떤 스토리들을 풀어내기 시작해야 단단하게 갇혀진 그곳을 빠져나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고. 폴 오스터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는 작품의 탈고가 끝나기 전까지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지정된 시간에 골방 책상에 앉아 펜을 꾹꾹 눌러 생각이 시키는 대로 적고, 그것을 원고지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고치고, 더이상 못알아보면 새 원고지에 수정된 원고를 다시  꼭꼭 눌러 적고 그 작업을 몇차례씩 거치면서 고쳐나간다고 했다. 이야기의 탄생과 소설의 완결은 그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일찍이 미켈란젤로는 돌 속에 들어 있는 조각 작품을 정으로 쪼아 끄집어 내는 것이 조각가의 할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작품의 시작은 돌을 고르는 일이다. 여기서 날 꺼내줘 라고 그를 향해 소리치는 조각품들이 숨어 있는 돌들을 찾아 다니는 일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미켈란젤로 돌에서 작품을 꺼내는 작업은 삶의 시간이 적재해준 다양한 경험을 상상력과 결합해 소설로 풀어내는 소설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이 됐든 머리 속이 됐든 그 속에 내재된 것들을 끄집어내는 행위가 예술 행위라는 데에 두 예술 사이의 합의다. 


추리소설이나 장르 소설의 경우 반대로 이야기와 인물 성격 등을 완벽하게 구상한 후 거기에 맞춰서 글을 채워나가야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다빈치와 비슷한 걸까. 반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풀어나간다는 김연수 작가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시작해서 주인공의 성격도, 이야기의 전개 방향도, 그 아무것도 모른 채 빠르게 글을 적는 일이 새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실제처럼 잘, 정말로 일어난 일처럼 믿어지고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도록 핍진성있는 글을 쓰는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 예를 들어 모든 문장에 '왜?'와 '어떻게?'라는 의문사를 붙여서 해답을 구하고 '왜?'를 통해 알아낸 대답은 백스토리로,  '어떻게?'로는 디테일이 된다. 토고가 소설이 되어 가는 과정의 일이다. '왜?'라는 질문은 주인공의 동기를 강조하는 캐릭터 중심의 소설인 본격문학의 장르가 되고 '어떻게?'라는 질문은 플롯이 이끄는 대중문학 장르가 된다. 


소설가가 아닌 사람이 소설을 쓰는 일. 이 일은 작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소설 속 주인공이 강을 건너 돌이킬 수 없도록 다리를 불태워 버리는 행위와도 같다. 작가라는 직업을 지배하는 생고생의 길로 접어드는 첫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수십권 책으로도 모자라는 자신의 얘기, 수많의 선택의 순간에 어쩌면 평행 우주의 다른 세계였다면 자기가 선택했을 수도 있었던 또다른 이야기, 바다만큼 넓은 유전자의 조합 속에서 어느 하나의 위치나 순서가 바뀜으로 해서 뒤바뀐 성격이 행할 수 있는 기이한 행동들, 상상 속에서 자라나고 숙성된 이야기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오고, 토할만큼 역겨운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맑은 정신으로 고치고 또 고치고는 행위를 끝도 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소설가의 일은 토고가 나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장 찢어버리고 싶은 원고를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끝에 탈고와 탈고를 거듭한 끝에 다음 날 아침 읽어봐도 더이상 토가 안나와야 원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이제까지 왔던 길의 끝에서 강을 건너고 건너온 다리를 불태우는 일이다. 단, 소설가의 생고생은 소설 속 주인공의 생고생만큼이나 고생스럽지만 그리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외롭기만 하다. 그렇다고 공인된 작가가 되어 그걸로 밥벌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보장은 눈꼽만큼도 없는 세계로 발돋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꿈을 한 번이라도 꾼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깥 밥벌이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연 소설이 출판될 수 있을까, 인정받을 수 있을까만을 의심한다. 먹고 사는 건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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