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장편 소설.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법원통신원으로 17년간 일하면서 취재했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다. 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다니엘 글라타우어만의 타고난 글재주와 치밀함이 더해져 이야기의 흥미를 더한다." -출판사 소개글


아직 접해보지 않은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내 아내에 대하여>를 감명깊게 읽었고, <캐빈에 대하여>도 좋은 평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작품이라 추천














144쪽으로 신간 평가단으로 선정하기에는 너무 얇은 것 같으나, 코멕 매카시의 신간을 어찌 신간 추천도서로 빠뜨리는 데 동의할 자가 있을까














읽고 리뷰까지 쓴 책이지만,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책이어서 추천.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뉘어진다. 
















소개글을 읽어보니 한국 문학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새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선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의딸 2015-02-0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모노프>가 궁금하네요.

CREBBP 2015-02-03 13:41   좋아요 0 | URL
완전 강추해요. 요 밑쪽에 리뷰 써놨는데 길긴하지만 읽어보시면 대략 어떤 책인지 아실거에요
 
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일할 수 없는 역사적 경험이 모든 글자에 동일할 수 없는 기억의 각인을 남겼고, 동일할 수 없는 온도와 색체 그리고 의미의 층차를 형성했다. p10


한글의 과학적 아름다음에 어릴적부터 노출되어 살아온 나는 항상 중국 글자가 비과학적이고 까탈스러운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해왔다. 회의문자가 갖는 최대 이점은 말이 달라도, 시간이 지나도 뜻의 전달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불과 한세기 전만해도, '우리말이 듕국과 달라' 불편했던 우리 민족은, 말은 달라도 뜻이 통하는 중국말로 된 글자를 읽고 공부를 하고, 그걸로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공무를 보고, 시와 책과 일기들을 남겼다. 거대 중국과의 유교적 학문적 문학적 경계를 히미하게 색칠한 장본인도 한자였다. 모든 인류 문화 유산은 위대하다. 한자도 그렇다. 한자의 위대성은 그것이 품고 있는 길고 긴 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거북이 등껍질과 소의 뼈에 남겨진, 갑골문자,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인 한자가 어떻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구체적인 사물과 무한 번성하는 관념들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3천여년의 장구한 세월속에는 처음 문자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문화와 생활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것이 시간을 따라 변천해온 역사까지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 일상의 모습, 개념들이 물체의 형상을 본뜬 기호 속에 담겼기에 중국의 문자학자들은 당시의 풍속과 속속 발견되어 온 갑골문자들의 변천사를 통해 선인들의 사고방식까지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긴 시간적 공백이 진정한 의미의 해독을 막고 있다고 해도, 그림으로 표현된 유물은 최소한 무얼 그렸는지까지는 추측 가능하다. 그러나 오래된 글자들은 다르다. 고대 이집트 글자를 해독하는데 800년이 걸렸다. 언어는 시간과 함께 빠르게 변하므로, 수천년전 소리를 기호로 바꾼 글자가 기원을 찾을 길은 그 때의 소리를 복원하는 길 뿐인데, 수천년 전에는 녹음기가 없었다. 예를 들어 새모양의 고대 문자가 알파벳 a와 같은 발음을 갖는 병음 문자일거라는 생각을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새모양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물을 본뜬 모양의 기호들이 표의어가 아닐 거라는 상상, 야만적인 고대인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잘게 나누어 모음 자음을 구분하여, 기호의 조합으로서 모든 소리를 모방하는 문자를 완성했을리 없다는 근거없는 오만심이 고대어의 해독을 그토록 지연시켰을런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렇다. 늘 그래왔다. 언제이고, 지금 가진 생각이 가장 완성된 사상, 완성된 철학인 것이다. 


수천년의 시간동안 변화하며 글자에 새겨 놓은 인류 문명의 흔적들과 생각의 단초들은 경이롭다. 저자는 글자 하나하나들을 요리조리 살피고 굴리고 흔들고 어루만지며 그것들이 만들어져서 갑골에 새겨지고 뜻이 변형되고 글자가 변형되면서 사라지고 또 살아남은 과정들을 추적한다. 


이제까지 발견된 갑골문자는 5천자. 그중 뜻을 알아내고, 현재 쓰는 한자의 원형으로 발견된 글자들은 약1천자 가량이라고 한다. 일부는 사멸의 과정을 거쳤다. 수천년동안 대다수의 갑골문자는 한약재로 소화되었다고 한다. 몸에 좋은 거라면 개똥이라도 주워먹는다더니, 실제로 그랬단다. 시간의 축적이 언어의 변천 과정에서 수많은 신조어와 사어들을 만들어 내듯,  뜻을 가진 중국 문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쳐 전주와 가차라는 성부와 의부의 조합과 지사자들과의 조합에 의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 수많은 헌 문자들을 버렸다. 저자가 그의 딸과 함께 발견해 낸 말(동물)에 대한 한자어만 18가지였다. 그들 중 일부 문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문자가 가진 문화의 흔적은 때로 아프다. 노인 살해와 영아 살해의 흔적을 고스란히 상형화한 갑골문자 해(육장, 젓갈)는 윗부분은 절구공이를 두 손으로 잡고 아랫부분은 절구공이에 있는 사람을 산 채로 내리쳐 그 피가 튀고 있는 모습이다. 손에 밧줄을 들고 간난 아기를 교살한 뒤 삼태기에 담아 피묻은 영아의 시신을 쏟아버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기(버리다)자도 제한된 식량과 초과 인구의 억제책으로 노인과 영아 살해라는 것이 일상화된 문화적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글은 한글대로 정교하고 과학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한자 역시 그 장구한 세월동안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중화권 및 주변국들의 문화를 이어주고 지식 탐구의 확대에 크게 이바지한 글자이다. 그 글자들이 가진 낱낱의 사연들을 '대만 최고의 지식인'이 전방위적인 지식과 문학작품과 예술가와 철학사이를 오가며 흥미롭게 기술한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떠오르는 지적인 문체가 (때로 산만하게 느껴졌으나) 매혹적이었고, 새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2-0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한글은 실용성면에서 어느 글자에게도 지지 않지만, 한자도 묘한 매력이 있어요 압축미? 외우기 힘든것만 빼고요 ㅋㅋ 다시 한자 공부 하고 싶지만 아..게을러... (ㅋㅋㅋㅋ 앞으로는 이렇게 댓글을)

CREBBP 2015-02-02 18:24   좋아요 0 | URL
다른 공부 안한 건 별로 후회 안되는데, 살면서 느끼는게 어릴 때 한자를 제대로 달달 외우지 못하고 포기한 게 후회돼요 마이 불편해요.ㅎ(이에는 이ㅋㅋㅋ)
 
[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련일 때 나라를 떠나, 소련이 없어진 우크라이나 시골 집으로 부모를 찾아간 리모노프는 추운 겨울 난방이 안되는 집에서 가스렌지를 켜둔 노모에게 끄라고, 프랑스에서라면 가스비 폭탄을 맞았을 거라고 말한다. 몽상으로 끝났다고 말하기엔 유례없는 숙청과 학살과 공포로 얼룩졌던 유토피아 실험. 나는 그 곳에 적응하고 숨쉬던  1억 5천만명의 실존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초라한 단칸방에서 구차하고 옹색한 살림들을 떨그럭거리며 사는 춥고 배고픈 삶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면, 그 절대적 빈곤이 일부만 엄청 부자인 사회보다는 정신적으로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게 그리 낯선 생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의 엄마는 20년만에 서방세계에서 돌아온 아들이 가스비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찢어지듯 마음이 아파온다. 아니 그 나라(프랑스)는 나라가 얼마나 가난하면 국민에게 가스비를 대주지도 못하는게냐. 여기도 곧 그렇게 한다는구나. 


진실이 완벽하게 은폐된 사회에서 바깥 세상의 움직임에 전혀 동요되지 않고 산다면, 그것이 설령 거짓일지라도 바깥 세상이 안쪽 세상보다 더 못살 곳이라고 안다면, 경험해보지 못한 부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 모두가 공평하게 못산다면, 현실이 차라리 유토피아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난방조차 되지 않는 추운 겨울 단칸방에서 지내면서 난방기가 없어 하루 종일 빈 공기에 가스 렌지 불꽃이 일게 하는, 다같이 배고프고 똑같이 궁색한 사회에서 뼈가 묻힐 것을 행복으로 아는 노파는 가스비를 걱정하는 서방 세계에서 온 아들이 진실로 진실로 안타깝고 메어진다. 돌아와라 따뜻한 고향으로.


다시 은폐된 진실에 대해 얘기해보자. 서방 세계 정치 역사에도 관심 없는 내가 그쪽 동네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 리 만무인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많은 사실 중 주목한 건 소련의 급작스런 해체와 공산주의의 붕괴가 사실은 고르바초프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시류에 편승해서 약간 자유의 제스처를 쓰던 그는 단지 완벽하게 은폐된 사회에 봉인을 조금 해제했을 뿐이었다. 그 작은 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지식들이 순식간에 사회를 해체시켰다. 금서였던 책이 풀리면서 서방세계에서 들어온 정보들, 이제껐 공산주의 사회에서 진실로 알고 살았던 그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명나는 순간 이미 학살과 공포와 파시즘으로 버텨가던 거짓된 유토피아의 실험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리모노프. 이 사람은 전기로 읽을만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한마디로 개자식이고 상종못할 인간인데, 그의 표현을 빌지 않아도 위험천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분명 그를 혐오하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쓰는 저자, 역시 그의 본성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환기시키며, 그의 매력에 빠질까봐 경계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무엇이냐, 전기냐 소설이냐, 다 읽었어도 잘 모르겠다. 앞날개 뒷날개 뒷표지에 역자 노트까지 다 읽어봐도, 한마디로 소설이라는 건지 다큐라는 건지 어떤 장르적 정의에 딱 들어맞는 게 없는 듯하다. 팩션이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소설인 드라마틱함과 다큐적인 현실 고발 참여적 성격이 혼재되어 있으면서,   한 인물이 살아온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펄펄 살아 날뛰고 있으니, 어떤 장르에서 읽더라도 만족X2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만은 누구라도 공감할 책이다. 


지난 주 주말부터 틈틈히 읽었는데 평소 읽는 속도보다 서너배는 더 걸려서 이제야 끝냈다. 사진에서 보면 알록달록 스티커를 잔뜩 붙여놓았는데 에쁘라고 붙여놓은 게 아니다. 이 3M 태그 스티커는 책의 난해함 때문에 도입해야 했다. 형광색은 주요 인물이 나타나는 곳에, 오렌지 색은 주인공이 다리를 불태우던 수많은 전환의 순간에, 파란색은 저자가 생각을 정리할 때, 또다른 색은 주요 역사적인 지식이 설명되어 있을 때, 또다른 색은 주인공의 생각과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글들. 안그러면 계속 누적되는 새로운 이름들, 지식들을 연결해서 다음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도입된 나만의 책읽기 시스템이다.  이사람 아까 나왔던 사람인데 누구더라 싶으면 뒤적이기 쉽게 표시해 둔 거다.   누구라도, 심지어는 역자조차도 학을 떼며 인정한 사실이지만, 러시아 사람과 지명 및 도시의 사건들의 이름이 길고 비슷비슷한데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나 연극으로 치자면 지나가는 행인 1, 지나가는 행인 2에 불과한  그의 주변부에 있던 인물들이지만, 저자의 눈을 통해 아주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그들이 실존인물로서 좋게든 나쁘게든 세계사에 나름대로 한 획씩 그어왔고 그의 인생을 이해함에 있어 시대적 배경 삶의 환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물론 줄리안 반스 같은 대문호에게조차도 이름이 생소한 리모노프의 삶에 조연으로 등장한 이들이 솔제니친, 브로드니스키 등의 노벨상 수상자에서부터 미국의 대부호와, 20세기의 끝날과 21세기의 첫날을 피로 물들여온 세르비아 전범들, 여가수와 모델 등 다양한 부류의 유명인들이며, 그의 삶 자체를 설명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술집의 바텐더를 비롯한 책 속의 다른 모든 인물들처럼, 모든 인물들은 실존 인물 아니면 중간에 죽은 역사적 인물이고, 어떤 식으로든 그의 인생 행로에 영향을 주고 받았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 사건의 단서를 잡기 위해 꼼꼼히 읽듯 그가 걷고 있는 길 자체를 그의 철학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즉, 역사 속에서 때를 다르게 만났다면 난폭한 지도자 혹은 학살자로 존재했을 수도 있었을, 그런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단서로서 그를 이해해기 위해 그의 주변 인물들을 역사의 한 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권의 민중 역사서로 읽을 수도 있겠다. 책을 오래도록 읽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 배경에 대한 저자의 저자의 평론이 빼곡히 전체를 관통하며, 그것이 꽤 읽을만하고 흥미롭다.


또한 이 책은 흥미로운 소설책 이상 흥미롭게 읽히는데 그 이유는 물론 드라마틱한 리모노프 실존의 삶 자체가 몇 권의 연작 소설 분량만큼 역동적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저자의 문체 자체도 한몫한다. 복잡한데 유려하다. 문장 하나를 읽으려면 일단 주어찾기부터 해야 되고 문장 내에 모르는 러시아어의 단어, 사건명, 인명, 지명, 책이름 등등을 해독해야 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다. 여기서 독자는 가끔 갈팡질팡한다. 주인공 리모노프의 입장과 그를 기술하는 저자의 입장 즉 서방 세계에서 태어났고 러시아를 연구하는 엄마를 둔 저자가 그를 보는 입장이 번갈아가며 한 사람의 인생을 양쪽에서 조명하기 때문이다. 영웅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죽는 것보다 무명으로 안락하게 사는 것이 더 싫었던 리모노프에게 이입되려고 움찔거리는 사이 저자가 나타나서 서구 민주주의에서 교육받은 한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그를 평가하고, 주변 인물들을 탐색한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주인공, 그 주인공과 교감하지 못하도록 독자를 괴롭히고, 또한 그 스스로를 괴롭히는 저자. 이러한 삼각관계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형성하며 속도감있는 한 사람의 실존적 역사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학창시절 <베르사이유 장미>라는 만화책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상의 인물과 역사적 인물들이 마구 섞여 온갖 로맨스와 시련을 겪는 이야기인데 주요 관심 사항인 로맨스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역사를 A부터 Z까지 이해해야 했다. 따로 공부를 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배경 자체가 역사이므로 루이 14세인지 16세인지하는 왕과 마리 앙뜨와네트의 모습, 스페인과 프랑스 서유럽 국가들의 각축전, 혁명의 열기와 가난한 민중의  생활상 등, 세계사 시간에는 배우지 않은 역사의 안쪽 진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싸고, 생각하고 했는지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라는 것이 암기를 통한 지식의 습득에 불과할 때에는 앵무새처럼 의미없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작은 부분의 역사라도 이해 속에 편입되었을 때, 앎이 감정과 교감하면서 파생되는 효과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의 배경은 우크라이나 시골에서 리모노프의 삶이 시작된 1930년대쯤의 러시아로부터 시작해서 공산주의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현재까지를 배경으로 그가 지나온 공간, 오크라이나, 모스코바, 뉴욕, 파리, 보즈니아, 다시 러시아까지 광범위하다. 스탈린의 망령을 쓰고 반체제 세력을 규합하여 권력을 꿈꾸는 희극적이리만큼 어리석고, 희극적이리만큼 명민한 인물 리모노프를 이해하려면 그가 거쳐간 수많은 실존인물, 그가 살았던 시대를 통치했던 권력자들, 세계사의 흐름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를 통치 권력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맨 밑바닥 맨발로 서 있는 사람들,  그 짐승처럼 딱딱하고 우악스러운 민중의 발끝으로 만나는 생생한 경험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에는 깡패로, 그 다음에는 조폭 지망생으로, 그리고는 뜬금없이 시인이 되었다가 미국 이민후 '검둥이 노숙자와 붙어먹는 호모'에서  부잣집 집사를 지내고,  미국에서는 출판사를 찾을 수 없어 버려진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 프랑스에서 출간되는 계기를 따라 파리로 가서 문인 대접을 받게 된다.  스탈린주의자인 리모노프는 과거 소련의 영예(?)를 회복하고자 옐친과 고르바초프에 반대하는 반체제인사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과 서가 선택한 시스템이 가져온 크나큰 경제적 낙폭, 허접 쓰레기같은 생활용품들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며 아귀다툼을하는 모습을 지켜보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단 하나 영웅이 되는 길이었다.  영웅이 되려면, 다른 영웅 밑에서 얼쩡이기 보다는 스스로가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그 무모한 선택, 세 사람으로 출발한 민족볼세비키당과 창당신문, 그것을 역에서 배포하여 시골로 실어나르면서 형성된 추종자들. 그는 그렇게 파시즘과 반체제인사, 부카상 후보 문인과 락스타와 히피족 이미지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대중을 선동한다. 대소련으로의 귀환이라는 허황된 구호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꽂힌 이유는, 그들을 절망시킨 자본의 논리였을 것이다. 여전히 못살지만, 대부분은 구체제소련에서보다 더 못살고 아주 극히 일부는 상상도 못하게 잘살게 된 현실.


러시아의 근대사를 불꽃처럼 살고 싶었던 어떤 개자식의 이야기. 만일 그가 가진 열정이 시대를 조금 달리 만나고, 조금 더 운이 좋았더라면 제2, 제3의 히틀러와 스탈린이 또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 그런 본성은 우연히 작가의 눈에 띈 리모노프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우매한 민중은 자신이 누구를 향해 표를 찍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지를 모른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스탈린 집권 25년동안 숙청으로 살해된 사람의 수는 2천만명이라고 한다. 그 전에 독일과의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수도 2천만명이라고 한다. 불과 십이십년 전 우리나라의 총 인구수가 4천만이었던 때를 회상한다면 저 숫자가 엄청난 과장이라고 쳐도, 상상도 불가능한 숫자다. 명민하고 의리있는 리모노프가 그 숫자를 모를 리 없다. 웃을 수도 없게 어리석은 리모노프는 그 시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왜. 영웅이 되는 더 가까운 길이라서.


이 책이 슬픈 건 그 이후다. 스탈린의 망령이 사라지고, 자유가 오면 무엇이 복구될까. 쥐어 보면 한 줌도 안될 보상은 조지 소로스 같은 엉뚱한 대자본가에게로 흘러가고, 소련 붕괴후 단 몇년만에 옐친은 서기관 몰래 연방을 해체하고 공산당도 무효화시켰지만, 그 지겹도록 굴려온 파시즘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역사의 희극이 있다. 러시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나라. 한 어린 소년의 꿈이 마피아인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 안락한 삶이 보장될 때마다 절망하고, 수도 없이 다리를 건너고 그 건너온 다리를 불태웠던 사람. 이 책을 통해 참으로 인생동안 모르고 지나갔으면 아찔했을 뻔한 많은 역사를 배웠고 느낀 것도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만나는 새롭고 짜릿하고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 러시아 혁명기를 거쳐 살아온 한 실존인물의 이야기의 홍수.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리모노프의 삶을 추적한 전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가 죽음을 의식하게 될 때는 언제부터일까. 10살 정도의 아이에게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내 친정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아버지를 잃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슬픈 날에 엄마는 막내 이모인, 막내 동생을 업고 친구들이랑 고무줄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와서 손을 붙잡고 울면 따라 울고 또다시 고무줄 놀이를 계속하고. 지금 보면 초등학교 아이라면 똑똑하기가 어른보다도 나은 아이들도 많은데, 죽음의 의미가 영원히 떠남이란 걸 알고 앞으로 펼쳐질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알기에는 미성숙한 나이인가보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라면 어떨까. 죽은 후에 어디론가 가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믿는다면 죽음이 아직 두렵지 않을 나이일까?


책을 읽으면서 많이 찔렸다. 사실 내가 자랄 땐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 없었고, 그래봤자 형제들끼리 기를 쓰고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싸움이라는 것의 정의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걱정은 없이 자라놓고도 막상 내 아이 앞에서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애한테 자주 보여줬다. 사실 부부가 싸운다는 것이 애매해서, 한 사람이 조금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빈정대거나 냉전 분위기 속으로 몰고가는 일이 아이에게는 그냥 자연스런 삶의 한 형태로 받아지려니 라고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더더군다나 늘 무심하게 때로는 눈치없이 싸우는 데 끼어들어 이것 저것 요구하고 참견하던 아이가 어느날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어서 둘다 몹시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또 언젠가 하루는 아이가 엄마랑 아빠랑 이렇게 매일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말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도 적지 않게 놀랐다. 그렇게 아이에게 조금씩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구나. 얼마나 그런 분위기가 싫었으면 그런 말이 나올가.. 그렇다고 핏대를 올리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래 대화 중 흥분을 잘하는 타입이어서 조금 흥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나름대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이었다. 


10살 정도의 태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바람은 부모가 싸움을 멈추는 일이다. 태오의 부모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싸운다. 계란이 익었네 안익었네로 시작해서, 그럼 니가 해라 마라. 아이는 부모들의 전투가 둘 다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전투에서 승리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한다. 아이는 나폴레옹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죽었다. 죽으면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다. 나폴레옹을 만나리라, 나폴레옹을 만나, 부모의 전투가 승리로 끝나는 방법, 그래서 두 사람이 이제 사이좋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방법을 물어보리라. 


10세 정도라면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동화처럼 쓰여진 글이지만 우선 그런 의문이 들었고, 자꾸 10세때 쯤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노력해봤는데, 오래 전 친정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막내 동생을 업고 친구들이랑 고무줄 놀이를 하며 뛰어 놀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니 그 나이에 죽음이란 게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고, 또 그 때까지도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믿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죽은 후의 세계가 그렇게 공포스럽지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을 양보했다. 


우리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자살'이 틀림없는 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가는 과정이 파국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닌 희망과 바람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믿는 아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과정은 안타깝다. 그리고 그 과정과 따뜻한 결말을 통해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장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어른이라고 해서, 아이를 낳아서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하는 양육의 전과정이 희생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의 눈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른들에게 만성적으로 부딪치는 일상 중 어떤 작은 결함이라도 그 작은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금씩 행하고 아이에게 투영된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교감하면서 부모와 자식과 부부 가족 모두 함께 조금씩 더 자라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