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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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이 차단되어 캄캄한 암실은 비밀이 봉인된 곳이다. 그 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애초부터 규칙이 그랬다. 금단의 열매는 탐스럽게 익어 향기를 뿌리지만 먹을 수 없다는 것, 먹으면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 모든 금단의 구역, 금단의 열매에 대한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하지 말하야 할 것을 말함으로써 비극적 신화가 완성된다. 그녀들이 암실에 들어서는 순간은 마지막 절제된 욕망의 끝에서 금단의 열매를 향해 손을 뻗치는 행위였다. 누구나 그것을 알지만, 그곳은 어서 들어오라고, 어서 먹어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구역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알고도 문과 문 사이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녀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암실에 갇힌다. 허락되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비극이 잉태된다. 비밀은 지켜져야 안전하다. 사랑도 거리가 유지된다. 규칙을 어기는 것은 신뢰를 깨는 것이고, 신뢰를 깨는 순간은 사랑이 깨지는 순간이자, 망상적 변태 귀족 돈 엘레미리오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딱 세 사람. 사튀르닌의 친구 코린이 한 번 깜짝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튀르닌과 돈 엘레미리오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지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대화다. 배경은 역시 돈 엘레미르오의 식탁으로 제한된다. 외부 출입을 20년간 하지 않고 은둔해서 살고 있는 스페인 귀족 출신의 부자 독신남이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사는 여성과 식탁에서 대화하는 내용이다. 대화가 스토리를 이끌고 대화가 스토리를 끝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요원한 일인 듯하다. 벨기에 출신의 이 여자는 일자리를 찾아 파리까지 와서 비정규직 보조교사 자리를 하나를 따낸 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보조 교사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파리의 높은 방세를 지불하는 대신 담배냄새 쩌는 코린의 소파에서 지내던 사튀르닌은 월 오백 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40제곱미터의 환상적인 방 광고를 발견한다. 파리에선 방을 얻기 위해 인터뷰도 하는 모양. 그러나 인터뷰장에 모인 사람들은 연쇄살인범이자 스페인 귀족인 돈 엘레미리오의 면상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다. 인터뷰 대기실에서 그녀는 그 호화로운 주택에 세들어 살았던 8명의 여성이 모두 사라졌으며 아마도 살해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개의치 않고 세들어 살기로 결정한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을 들어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욕실이 딸린 호화로운 방과 매일 저녁 초대되는 만찬, 샴페인으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 매일  뽀송뽀송한 새 시트로 갈아지는 침실과 암실을 제외하고는 어느 공간이든 마음대로 사용하고 둘러볼 수 있는 자유. 게다가 돈 엘레미리오는 첫눈에 이미 그녀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당돌한 그녀의 조롱과 멸시에 찬 독설을 더욱 매력으로 수용한다. 그녀를 향해 퍼붓는 뜨겁고 달콤한 애정 공세 속에, 사튀르네는 절대 넘어가지 말리라 다짐했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가는 걸 느낀다. 

 

당신에겐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은 해서는 안되는 암실이 있어요. 결혼할 마음이 없는 것. 그건 제 암실이에요.

 

누구나 자신의 비밀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갔다 놔요 62

자. 여기 평생 보장되는 호화로운 생활과 감미로운 사랑이 있다. 젖과 꿀이 넘쳐나는 천국 같은 곳, 아늑한 경제적 환락과 자신에게 도취된 남자의 헌신이 보장된 곳이다. 암실 문만 열지 않으면 된다. 암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 만큼의 거리만 지켜준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남자가 지어준 마치 금으로 된 것과 같은 황금색 벨벳 치마를 두르고 그의 구석구석 치마 안감을 세심하게 손질한 손길을 느끼며 포옹과도 같은 안락함에 젖어들면서,  그녀는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암실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돈 엘레미리오인데, 비밀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튀르닌이다. 그녀는 진실을 마주치기가 두렵다. 사라진 8명의 여자들은 죽지 않았을꺼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함으로써 돈 엘레미르오에 대한 달콤한 시간을 연장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아하는 돈 엘레미르오. 그에게서 죽음이란 단어가 나오자, 이제 다시 그녀는 그 남자가 죽인 것은 아닐 거라는 소망을 만들어낸다. 사튀르닌은 자신을 위해 금빛 벨벳 스커트를 지어주고, 최고급 샴페인을 냉장고 가득 채워넣고, 최고급 요리로 매일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돈 엘레미리오가 살인자가 아니기를 소망했기에, 그의 비밀, 그의 암실, 자신처럼 그의 방에 세들었다가 사라진 8명의 여자들에 대해 외면하지만, 진실은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현대판 성인 동화같은 소설이다. 마지막 순간 사튀르닌은 금으로 변한다. 사랑의 완성을 뜻하는 걸까. 사튀르닌은  돈 엘레미리오가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남겨놓았던 마지막 색깔 황금의 노란색이다. 그는 금을 찬미했고, 사튀르닌을  그녀를 영원히 품고 싶어했다. 그렇게 금으로 변하는 순간 사튀르닌과 돈 엘레미르아는 동화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푸른 수염 원작의 현대판 동화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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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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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할까. 1992년 올림픽. FC 바르셀로나, 세르반테스의 돈키오테와 피카소,  한 때 세계를 손에 쥐었던 화려한 영광 뒤에 패전과 연이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스러져가던 스페인에 세르반테스와 피카소와 말고도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 19세기 급격한 산업화가 도시에 몰고온 혁명적 변화를 시민들의 삶의 공간 속에 예술로 새겨넣은  가우디다.


바르셀로나의 관광산업은 가우디로 시작하고 가우디로 끝난다.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흔적이 있다. 가우디의 정신, 가우디의 영혼, 가우디의 천재성, 가우디가 서거한지 10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가우디의 공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다른 안내서와 여행 책자는 필요 없다. 특히나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계획이 라면 굳이 다른 여행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다른 많은 볼거리가 있더라도 그 곳에서 시간과 일정이 허락하는 가장 긴 시간 동안 머물고 느끼고 체험하고 싶은 공간은 가우디가 설계한, 아직도 진행중이거나 혹은 미완으로 종지부를 찍은 가우디의 창조 공간이 될 가능성이 많다. 책의 제목 스페인은 가우디다. 참 적절하다. 바르셀로나에 가서, 바글거리는 그룹의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느라 놓쳐버릴 소중한 공간 체험의 기회를 만끽하기 위해, 가우디를 읽고 공부하고 가는 게 좋다. 


이 책은, 가우디에 바치는 찬사와 가우디에 대한 숭배로 가득한 건축가 김희곤님의 작품이다. 전작으로 스페인은 건축이다 라는 책을 썼다. 가우디의 생애와 가우디 건축의 정신, 그리고 가우디 건축에 대한 칭송과 애찬에 가까운 설명을 자세하고 풍부한 사진과 곁들이고 있다. 


132년간이나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 있다. 설계했던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가까이되도록 숱한 역사의 질곡을 겪으며 일시정지와 계속을 반복하며 언제까지고 현재진행형으로 지어지고 있는 건물, 우리에겐 그냥 가우디 성당으로 알려진 건축물,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다.  누구든 바르셀로나 에 가게 되면 첫번째로 보게 될 건축물이며, 그 복잡하고 경이로운 건물의 형태에 맥이 풀리듯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다. 가우디는 독실한 신앙심으로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만년을 오로지 성당을 건축하는 데에만 온힘을 기울였다. 건축비로 받은 모든 자신의 재산을 성당의 건축비에 털어넣었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건축비 모금을 하러 다녔으며, 나중에는 아예 침실을 거처를 그곳 지하로 옮겼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평생을 신뢰하고 일을 맡겨줄 재정적 후원자를 갖는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된다. 많은 예술가들과는 달리, 가우디가 대학 때 출품한 작은 유리 전시장을 보고 그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구엘은 가우디에게는 인생의 출발부터 건축비에 옭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재능을 싫컷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마치 커다란 보석 조각처럼 느껴지는 구엘의 궁전은 한마디로 화려함의 극치이다. 구엘을 위한 가우디의 초기작품이다. 대장장이 가족에게서 자란 가우디는 철을 자유자제로 다루어 건축물의 곳곳에 종이띠를 말아 놓은 것처럼 유려한 철제 장식을 수놓았고, 전통적인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아치와는 다른 가우디 고유의 포물선 아치를 개발하여 지지기반을 단단히함과 동시에 새롭고 신비로운 공간을 창조하였다.


성가족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우디의 또다른 작품은 구엘공원이다.책을 보고 동영상을 찾아보니 오래전 바르셀로나 방문 당시, 구엘공원을 다녀오지 못한 게 한이다. 그는 인공적인 건축물을 만들면서 언제나 자연의 형상을 본땄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창조해내었다. 구웰이 주거단지를 위해 사들인 구웰공원의 부지는 대형 주택단지를 짓기 위해 밀어버리지 않았다. 등고선 그대로 길을 내고, 심어진 나무 그대로 베어내지 않고 기둥과 어우러지게 하였으며, 터를 닦으며 나오는 그곳의 재료를 그대로 건축물의 재료로 이용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연의 환경에 길과 모양을 맞추어나갔다. 그래서 어떤 것이 자연인지 어떤것이 인공물인지 분간이 무의미할만큼 그대로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지만, 그 속에는 무한한 상항력으로 창조한 경이로운 세계가 기능적으로 동작했다. 신전의 옥상을 통해 스며든 물은 돌기둥 속에 파여진 구멍을 타고 내려와 저수조에 담겨 그대로 분수가 된다. 


스페인의 근대 건축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역시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다. 재건축 바람이 불던 당시 남들과는 다른 주택을 갖고 싶었던 한 섬유업자의 의뢰를 받아 재건축한 카사바트요는 자신만의 건축기법과 아이디어로, 획일적이고 반듯하게 세워진 거리의 풍광을 카사바트요로 황홀하게 바꾸어 놓는다. 이로써 가우디는 당대 건축가들과는 점차 멀어져가고 자신만의 건축 세계에 빠지게 된다. 


호화로운 화려한 구엘궁전과 카사바트요와는 달리 카사밀라는 육중하고 웅장한 석조 건물이다.카사밀라다. 이 석조건물은 파도처럼 층층히 출령거리는 모양을 하고 있다.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껍데기 처럼 돌을 입힘으로써 건물 전체가 원만한 곡선으로 일관성을 이룬다.


가우디의 건축은 카사밀라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끝까지 완성된 것이 없다고 한다. 100여년 가까이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고, 또 미완인 채로 그대로 기능하기도 한다. 


일반 교양서적으로서, 혹은 여행을 목전에 둔 참고소러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한 가지 주제넘은 지적질을 한다면, 작가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너무 많이 가우디에게 이입시키고 미사여구가 많아 집중이 방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가우디의 생각에 감정이입을 해서 전달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대자연에 펼친 상항력과 호기심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때로는 숲 속에서 발가벗은 채로 우두커니 서서 숲을 기고 달리는 날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 자신의 리듬과 질서와 형식에 맞추어 생명의 진리를 말없이 실천하고 있었다. 

가우디가 어떤 역사적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을 전할 때는 어떤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어떤 것이 가우디의 생각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 견해다.  만일 가우디가 남긴 자료를 통해 남겼다면 출처를 명확히 남겨야하고, 문맥상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추축이라면 자신의 생각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전기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또한 건축 관련 다른 책들과  비교해봤을 때 예외적으로 유려하고 때로 가우디의 장식처럼 호화롭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의 가우디에 대한 진정어린 찬사를 언어적으로 감성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였다고 느껴지는데 간혹 내게는 공허한 메아리 혹은 관광 홍보 책자에 등장할만한 근사한 광고카피처럼 읽혀지기도 했다.  유려한 문장도 좋지만 편집부에서는 출간 전 비문과 오타를 세심하게 골라내었으면 한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그것 때문에 독자들은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있으므로..


이런 찌질한 지적질을 뒤로 하고 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다. 저자가 그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은 가우디의 공간에 대해 함께 감동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공간과 예술에 대한 건축적 이해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창조한 모든 공간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구석구석 포인트를 잘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어, 가우디에게 쉽게 접근하면서도 또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언어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작게라도 사진을 함께 작은 구석까지도 실어 놓치지 않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더 가우디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책의 내용이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부축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바르셀로나에 갈 계획을 세우게 되는 독자들이 많게 될 것 같다. 나는 EBS 다큐프라임으로 감상한다. 더운데 다니려면 다리아픈데 앉아서 자근자근 설명들으며 잘 안보이는 곳까지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일일히 링크따다 붙였다. ==> 가우디 동영상 감상(ebs 다큐프라임)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물론 압도적인 건물, 세심한 조각상과 그 화려함에 누구라도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접하는 순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지만, 이해하게 된다면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더 머물고 싶고, 더 경험하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 혹은 가우디와 관련된 책자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기 전에 꼭 읽고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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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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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무의미한 것들이 내겐 모든 의미가 된다. 내게 무의미한 것들이 당신에게 때때로 의미있듯이. 그러므로 당신에게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서 내게도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의미의 갭이 그 갭의 두께가 그렇게도 무의미하기에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세상이 의미있다고 규정한 것들은 이미 무의미한 것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진 지식과 명성과 권력과 부, 에고와 같은 것들이 당신의 말, 행동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의 척도를 규정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짧다. 짧은 한 권의 책. 정확하게 149쪽만큼의 종이 즉 75장의 종이 위에 씌운 것 치고는 엄청나게 두꺼운 양장표지를 입혀 11,700원이라는 정가를 달고 나온, 거장의 14년만의 작품에는 나에게는 그리고 또다른 누구에겐가는 무의미한 공간들이 1/3 정도는 채워져 있다. '허공을 날아 잡힐 듯 테이블 위를 떠도는 깃털처럼' 그토록 가볍고, 그토록 무의미함을 이 책의 공백과 가격에서 보았다라고 한다고 비뚤어진 독자라고 한다면, 나는 최대한 비뚤어질테다.  그토록 차기작을 기다려온 충성스런 밀란 쿤데라 팬들을 대하는 책의 공백과 그것의 가치. 쿤데라는 이런 약간의 기만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무의미를 전달하고 싶어했는지 혹시 아나.  소비와 공급의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면 잘 팔리는 책들, 잘 팔릴 것 같은 책들이 저렴해야 한다. 챕터와 챕터 사이 장과 장사이의 공백, 제목과 본문 사이의 공백 이런 것들이 때때로 1부, 2부 등등 7부까지 사이의 빈 페이지. 이런 것들에 가격이 매겨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의미하는 무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어쨌거나 공백은 무의미하다. 그 무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작품의 가격에 포함된 공백은 <무의미의 축제>가 의도한 무의미의 공간이다. 

 텍스트 속에서의 무의미는 가령 이런 것들인 것 같다(짧으니 망정이지 제길 너무 어렵다. 그래도 찾아보자). 알랭은 배꼽에 대해 생각한다. 남자가 여성의 매력을 배꼽에 둔다면 한 시대 혹은 한 남자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뤽상부르크 공원을 거니는 라몽은 샤갈전을 보고 싶지만, 저 끝쪽까지 뻗어있는 줄들 속 지루함으로 경직 되고 굳은 얼굴들을 보며 몸을 돌려 공원의 조각상들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암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들은 다르델로는 행복감에 젖어 길거리 여인들에게 손을 흔들지만, 공원에서 라몽을 만나자, 프랑크 부인의 부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자기 안에 깃든 죽음의 비애, 마법처럼 그 비애를 품고 있는 달콤한 기분, 묘하게 아름다운 그 기분을 즐기기 위해 자신이 암이라고 곧 죽는다는 거짓말을 한다. 카클리크는 말을 하면서도 주의를 끌지 않는, 자신의 말에 의해 거기에 존재하면서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절묘한 솜씨를 이용해(?) 여자를 낚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그들 네 명의 친구 라몽, 샤를, 알랭, 칼리방은 스탈린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숱한 피를 뿌린 스탈린을 알랭의 24살난 여자친구는 누구인지 모른다. 샤를이 들려준 스탈린의 하찮은 일화는 칼리닌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의 유래다. 스탈린이 그 유명한 도시에 별 실질적 힘도 없던 죄없는 꼭두각시 칼리닌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줌을 참는 칼리닌에게서 고통받는 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 자기 눈앞에서 자기를 위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의 충성에 감사를 표하고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딘다는 것.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은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리는 우선 살아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 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스탈린 그들이 그 숭고한 가치로 뿌리고 간 숱한 피의 대가는 세대가 세대를 기억하는 동안에도 이미 잊혀졌다. 우리는 그 역사 속 아주 작은 티끌과만 의사소통을 할 뿐이다. 여기서 샤를이 발견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진실, 오줌 참음에 대한 대가로 결정지어진 한 도시의 이름과 스탈린의 잔인성 혹은 다정함이다. 

 알랭과 네 명의 어울려다니는 친구들의 대화는 이토록 무의미하지만 그무의미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칼리방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직업은 배우지만 일감이 없다. 칵테일파티에 서빙을 하면서 그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파키스탄인으로 분한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파키스탄 언어를 연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 내 청각적 신뢰감을 부여한다. 이 작업은 특별한 음성학을 창제해야 하고 음절의 강세가 주어지는 지도 정해야 하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들 배후에 어떤 문법적 구조를 고안해서 단어와 명사등으로 구조화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며, 또한 응급상황에서 친구들끼리 프랑스어 한 마디 없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창조한 언어 몇 개를 알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스스로를 그렇게 신비화하려고 기를 써봤자 칵테일파티의 손님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관객없는 배우가 되었다. 김영하의 <보다>에서 본 산문이 생각난다. 모든 인간에게는 연극적 자아가 있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 가장 자연스러워보인다는 <시저가 죽어야 한다>는 영화에 대한 도발적 발견. 적어도 웃을 수는 있는 부분이었다. 연극적 자아에 대해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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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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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방법은 때로 독자를 기만하는 듯 말장난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게 동어 반복적이다. 그러나 그 반복적인 문장을 계속 읽다보면 그것이 기만이 아니며 기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쓴 것은 아니지만 기만인 것처럼 보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기만인가 기만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꼼꼼하게 읽도록 유도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어떤 때는 기만인지 아닌지가 오리무중 그 문장과 그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반복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기만하는 듯한 문체를 유지함으로써 독자들이 그것을 기만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없다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좋다. 기만이든 아니든.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기만이냐 아니냐보다는 보다 은밀한 내면, 감추어진 욕망, 비뚤어진 마음을 오히려 명징하게 해부해 내는 도구로 너무나도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만인 듯하지만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이 만드는 문체. 그것이 이승우 문학의 특징이다. 이승우의 문장을 읽으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본성의 욕망을 아주 아주 작고 날카로운 칼로 일일히 도려내어 세부적으로 자세히 해부하고는 적확한 언어의 유희적 문장에 유려하게 담아내는 것이 그의 소설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편은 좀 다를까 생각했는데 단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여러 스토리를 통해 다중적 인격의 내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체만이 전부일까? 이야기는 없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단편을 그닥 즐겨읽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돼먹지 못한 내 관점에서 볼때, 현대 단편들의 특징은 어떤 모호함을 통해 돼먹지 못한 진실을 숨기고, 나 찾아봐라는 듯이 독자를 농간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명쾌하고 또렷하기만 하다면 그게 무슨 문학이겠느냐만 지나친 상징성과 모호성은 문학이라는 것이 나를 문학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열등감을 주기도 한다.<리모컨이 필요해>에서는 여관방에서 매일 새벽 다섯시 반마다 알람처럼 켜지는 TV와 다섯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윤락녀와의 관계가 그렇다. <신중한 사람>에서는 귀에 이상이 생겼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정말로 미칠것 같은 순간 그 증상이 한 번 나타나는 일이 그렇다. 이미를 떠나 어디로 가려고 여관방을 잡고 물가를 산책하는 <이미, 어디>의 사람들이 안개속으로 사라져간 곳은 어디일까.<딥오리진>의 망상속의 그녀는 자기 자신일까, 다행히 <신중한 사람>에 실린 단편들은 때때로 몽환적 암시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어떤 사람들, 특히 그가 '신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형성하는 그 배경과 사건들에 집중한다. 속터지고 억울하고 재수없는 일의 연속이다. 


이야기 속의 개인에 집중해보자. 신중한 신형철은 단편을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 나름대로 이승우 단편에서 발견되는 진실이라면 어떤 개인, 어떤 타자를 통해 투영되는 나 혹은 나의 일부, 혹은 나의 가능성의 일부일지 모르겠다. 결국 문체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진실을 끝까지 탐구하는 그의 해부적인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속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밀어내는 것도 아닌데 밀려나기 싫은 마음이 어처구니 없긴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존심을 지켜낸다는 생각에는 근거가 없었다. 그렇게해서 지켜질 자존심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허물어지도 않을 것이다. <리머컨이 필요해> 30

그렇게 해서 지켜질 자존심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허물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켜질 자존심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허물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반복)(반복)(반복).이승우는 초라한 시간강사의 내키지 않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건네고 그것을 반복한다. 쳇 자존심 따위. 허물어진 자존심 따위....


소설집에 수록된 여러 단편들이 이승우 특유의 문체 외에 주목할만한 점이 또 있다. 표절과 망상에 대한 주제 의식이 그것이다. 한 일년 되었나 그의 소설 지상의 노래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기사와 소설이 등장했었다. 표절이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되고 sns가 자극적인 이슈라면 티클 하나라도 순식간에 세계 곳곳을 덮치는 세상임에도 그것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었다. 다행히도 정말로 다행히도 표절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원소설에 프레임을 몇겹 입혀 쓴 소설을 통해, 그가 표절의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원소설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승우 작가를 향했던 실망감이 일소에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이승우 작가는 그 일을 통해 엄청나게 마음 고생을 한 듯, 이 소설집에 그 일과 관련된 내면과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한 작품이 무려 서너편이나 되었다. <오래된 편지>는 한 때 망상적 자신이 동료가 다른 동료의 대학 습작을 표절했음을 주장하는 잊고 있던 자신의 오래된 편지를 지도교수의 유고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내용이다. <딥오리진>은 자기 때문에 커피숍에 매일 오는 걸로 착각하는 어떤 여자가 화자의 내면 깊숙이에서 질투하고 있던 어떤 작가의 소설을 자신이 다 썼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그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과정을 그린 약간 으스스한 추리소설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하지 않은 일>은 표절에 휘말린 이승우 작가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그려낸 작품으로 보인다. 


두 소설 모두 읽어본 내 입장에서는 길고 긴 장편 소설에서 한두 페이지에 주인공의 직업이 본인이 쓴 소설의 주인공과 같다는 점 이외에는 유사성조차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값싼 노이즈 마케팅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생긴 중견 작가의 치명적 입지보다는, 무심히 무시하는 편이 사태의 현명한 선택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옥같은 마음을 그대로 칼날을 들이대고 낱낱이 해부하였다. 


난해하지도 몽환적이지도 않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놓인 참담한 관계와 그것을 극복하는 도구로서 칼을 품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 <칼>이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공감되었다. 


언제나 무시하고 경멸하고 비난해. 아버지에게 나는 쓰레기거나 깡통이거나 돌이거나 똥이야. 중략. 칼을 품고 마주 앉으면 옷 속의 칼이 방탄조끼나 방패처럼 여겨진다고 그래서 웬만한 공격을 받아도 끄떡 없을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고 아버지가 하는 모든 험한 말들을 옷 속의 칼이 막아주는게 느껴진다고 그러면 쓰레기나 깡통이나 돌이나 똥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중략. 쓰레기나 깡통이나 돌이나 똥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걸 주기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든 깡통이든 돌이든 똥이든 상관 없다는 생각을 주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칼은 나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게 할뿐 남을 위협하지는 않는다고. 중략. 칼이 없으면 벌써 오래전에 아버지에게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이어서 말 했다 그런데도 칼의 도움 없이 가야 했다면 자기는 불안과 절망 때문에 아마 죽었을 거라고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칼 덕분이라고 칼은 불안과 절망과 죽음을 이기고 그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누군가를 해지고 위협하고 죽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칼은 아버지에게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라고 그런데 아버지는 그걸 꺼꾸로 알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지닌 칼을 아버지를 해치기 위해 일부러 마련한 것으로 오해 한다고 그는 말했다. 같은 말의 반복에 불과한 그의 장광설이 길게 이어졌다 - <칼> 중에서

상징적 의미의 칼. 살짝만 갖다 대도 스윽 하고 베어질 것 같이 날카롭고 잘 갈아진 칼. 불안과 절망으로 점철되었지만 끊을 수는 없는 어떤 관계의 지속을 위해서 우리는 값비싼 명품 칼을 하나씩 마음에 품자고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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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창업가 바이블 - 전 세계 창업가들의 27가지 감동 스토리
다니엘 아이젠버그 & 캐런 딜론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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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털이가 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창업하라.  정신나간 아이디어라며 빈정대는 투자자를 만나서 설득하고, 와이프와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에까지 돈을 빌리다가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결국에는 빈털털이로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창업하라. 지하경제 시스템에서 지상경제를 움직이는 손들과 맞잡고, 정책 결정자들을 온갖 재주와 심지어는 뒷거래를 통해서라도 구워삶아 제3국의 보호된 시장의 문을 열고, 틈새를 삐집고 들어가기 위해 온갖 협잡을 견딜 수 있으면 창업하라. 내팽겨쳐진 시장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기회를 인식하고 자신이 가진 총 역량과 인맥을 동원하여 세계 각국의 파트너들을 연결하여 드디어 기업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 막강한 금융 자원, 인적 자원 내부 역략을 갖춘 투자자나 대형파트너에게 모든 걸 빼앗기는 경험을 해도 좌절을 이길 수 있다면 창업하라.

 

 

성원해 주신 분들께
일년 넘도록 애썼지만 우리는 페업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우리는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 3 자로부터 자금을 끌어다 쓰기 전에 이런 결정을 하게 되어 오히려 기쁩니다. 분명히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였지만 더 늦기전에 일찍 회사 문을 닫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어느 순간 사업이 독자적으로 생존하지 못할 거라는 현실을 깨닫는데, 그 때는 이미 너무나 많은 돈이 투자된 상태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상태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든요...201

 

매일 아침 이런 종류의 편지를 돌려야 하는 위치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날카로운 모서리를 한장 한장 넘기며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그들의 정신이 창업가 정신이다.  창업을 성공하기는 어렵다. 통계적으로 창업가가 비범한 가치를 창조하고 획득하는데 성공할 확률은 10분의 1에서 2분의 1사이라고 한다.창업가들 대부분이 기업을 운영하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실패를 경험할 거라는 뜻이고 성공하는 소수 창업가들도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죽음의계곡이라는 말이 있다. 신생 기업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창업자들의 사업계획에는 자신의 저축액과 가족의 지원 혹은 엔젤투자자들을 통해 초기자금 확보하고, 소박하게 사무실을 마련하고 직원들 몇명을 채용하여 아이디어의 현실성을 증명하겠다는 것 등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실제적인 매출로 연결되는 생존확율은 너무나 낮아서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은 돈과 희망을 모두 날려버린 채 고사하고 만다.  저자 역시 그런 일들을 수없이 많이 목격했고 위대한 기업이 될 뻔한 회사들이 그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지 못해 망하고 말았다는 전설을 수없이 많이 전해 들었다고 말한다.

 

시장의 실패는 자유시장의 효율적이지 못할 때 즉,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가격이 잠재적으로 일치하면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 상품과 서비스를 서로 교환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가격이 높거나 제품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면 시장의 실패가 아니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초기 투자 자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과연 시장의 실패를 나타내는 신호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어려움은 비범한 가치를 창조하고 획득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경쟁시장에서 죽음의 계곡은 창업가정신을 위해 기능상 불가피하고 유익하지까지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역경은 창업자를 강하게 만들고 창업과로서의 용기가 없는 사람들을 제거한다. 또한 역경은 새롭고 직관에 반하고 역발상적인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따라서 죽음의 계곡은 사실 효과적으로 최고만을 선택하는 메카니즘이라고 보아야 옳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창업가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경을 기회로 만드는 힘, 사소한 데서 가치를 끌어내는 능력, 자본을 끌어모으고, 때로 정부 단체에 로비를 하고, 노조와 대립하고, 끝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최고 가치를 이윤이라는 정확한 목표에 두지 않은 한 말이다.

 

 창업과 정신은 혁신과 동일어가 아니다. 우리나라 티브이 프로그램 중 달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들이 각 부분에서 하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허드렛일이라 하더라도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을 통해 두 세배의 생산성을 낸다. 창업가 정신이란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년동안 똑같애 해왔던 허드렛일이라도 새롭게 더 나은 방식을 통해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창업가정신은 역발상적인 프로세스다.  보통사람들이 쓸데없고 불가능하고 멍청해 보인다는 이유로 묵살하거나 간과한 곳에서 잠지력을 발견하고 비범한 가치를 독특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수확하는 프로세스다.

 

SABIS는 교육에 대해 널리 퍼져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에 대한 믿음 즉,  1) 학급당 학생수가 적은 수의 교실에서 최상의 교육이 나온다는 것, 2) 교육이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3)  정부가 학교에 돈을 많이 투자할 수록 좋다는 것 4) 암기를 중요한 전략으로 보지 말라는 것 등의 미신을 떨쳐내고 교육 전반에 필요한 표준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시장을 개척했고,  레바논으로부터 출발해서 세계 15개국 에서 74개의 학교를 운영한다. 흔한 귀공자들의 사립 고등학교와 달리,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 저소득 소수 인종 출신을 대상으로 한다. 아이들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고, 커리큘럼을 조정하고 매순간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학습하는지를 세세하게 신경쓰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더 낮은 가격으로 관리하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다.

 

로저스는 자동차 산업이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해가는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DIY를 자동차 산업에 끌어들이고 SNS와 연계해 디지털 커뮤니티를 구축해 소비자 혹은 잠재적 소비자들이 직접 디자인한 자동차를 주문생산하는 방식의 로컬모터스 라는 회사다.

 

복제약 생산 전문 회사인 엑타비스는 이미 초과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복제약은 특효가 끝나 공식적인 '혁신'이 사망한 시점의 약이다. 아이슬랜드의 로버트  웨스만은 무자비한 경쟁으로 망해가는 작은 기업인 액타비스를 인수해 인수합병을 계속해 회사를 키우고 가격과 대량유통이라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전에 누군가 올려놓은 포스트에 좋은 리뷰는 책 제목이나, 문체 같은 문제에 찌질하게 걸고 넘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제목은 맘에 안든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가르치는 교수라는 점을 빼고는 책 제목에 하버드가 들어갈 이유가 없어보인다. 딱딱하고 센스없는 목이지만, 창업가 정신, 그리고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창업에 성공하기 까지 많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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