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유독, 시작 문장이 강렬하게 사로잡는 소설이 있다. 두고 두고 회자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칼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그 때, 작가 김훈은 '꽃은'과 '꽃이'의 단어 하나, 모음 하나와 받침 하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우주를 찾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다는 그 다음 줄,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와 '나는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가 더욱 신비하다. 


인간의 기억이란 한낱 수없이 스쳐 지나간 더없이 많은 시간 중의 아주 미세한 조각 연기처럼 흩어져 없어질 약하디 약한 것이다. 영겁의 시간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없어지고 말, 실루엣처럼 살짝 드러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자신의 사라진 기억 대신 실존하는 현재를 만들어준 흥신소 사무실이 문을 닫고 사장이 은퇴를 하자, 기는 사라진 자신을 찾아 나선다. 수십년 전의 자신을 기억하는 폴 소나쉬체를 만나면서 그의 기억 되살리기 여정은 시작된다. 그가 찾아가는 것은 기억인지, 그의 상상력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몰락한 러시아 망명 귀족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쓸쓸한 망명 귀족의 최후를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사진 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친구였다. 그는 망명귀족 같은 멋진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 그 해의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어떤 가문의 아들이 아니라, 그 자취를 찾아내기가 한없이 더 어려울 남아메리카 사람이었던 것이다. (p96)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데, 이상하리만치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갑작스런 방법으로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찾아오는 일들이 종종 있다. 아빠가 편찮으셔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10여년전 할머니가 편찮으실 때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의 기억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희미한 순간적인 것들이라,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려고 언어가 되는 순간 기억이라는 불확실하지만 진실에 더 가까운 것에서 확실하지만 디테일이 가미된 어떤 허구에 더 가까운 것들로 왜곡되는 것을 느낀다. 어떤 장면 장면들 스치듯 지나가지만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갔다 하며 때로 자신과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것 사이를 방황하는 것들 말이다.  
태어났을 적에 내가 얻은 그 이름을, 내 생애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불렀던 그 이름을, 어떤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환기시켜주었던 그 이름을 스스로 되뇌어 보았다. 페드로(p101)

그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가 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130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일... 이라는 공상에 자주 빠졌다. 내가 만일 모든 기억을 잃고 갑자기 거리의 한 복판에서 아무 것도 없이 덩그마니 남겨졌다면 이라는 상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혹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기억은 어떤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들일까 하는 것까지...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나를 기억하는 방법이 기가 막혔다. 너~ 미스김 싫다고 교과서를 창 밖으로 다 던져버렸잖아 널 어떻게 잊겠니. 내가 기억하는 나는 조금 철없긴 했어도, 어른에게 찍 소리 저항 한 번 못해봤는데.. 그녀가 기억하는 내가 내가 아니라 그녀 자신일지,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내가 내가 아니라 남일지 아직까지 의문이다. 떠들다가 칠판에 이름이 적히거나 지각해서 벌스곤 했지만, 그렇게 불손한 짓을 하다니. 게다가 던져버린 책은 내 손으로 다시 주워서 올라왔어야 했을 것 아닌가. 3층이었는데.. 참으로 가지가지다. 

골목들과 대로들의 저 미궁속에서 어느날 드니즈 쿠드뢰즈와 나는 서로 만났던 것이다. 거대한 전기 당구대 위에서 때떄로 서로 마주쳐 부딪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당구공들처럼 파리 시내에서 오가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저도정들 가운데서 서로 마주치는 도정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이제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하나의 반딧불이 지나가면서 남기는 저 가느다란 빛의 줄무늬조차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이었다. 156

그러나 소설은 그렇게 천진하게 옛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있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은 일상을 삼켰고 불안과 망명과 도피와 같은 불안 속에 삶을 던져버렸고, 망명귀족이든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이민자이든 속이고, 숨고, 쫓기고, 도망 속에 가둔다. 잃어버린 것은 기억 뿐만이 아니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삼켜버린 전쟁은 포화가 없어도 이미 상실을 의미할 뿐이다. 

이 도시 안에서, 발걸음을 서둘러 걷고 있는 그 모든 그림자 같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서로 길을 잃은 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190

내가 그날 저녁에 지미 혹은 패드로, 스테른 혹은 맥케부아 중 어느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191

찾은 기억은 온전히 나의 것일까. 잘못된 판단으로 눈덮인 알프스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사라져갔을 연인들. 그 기억이 역사의 전부라고 해도,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무엇을 잃지 않았으며, 무엇을 남겨놓았을까. 어쩌면 그의 기억은 힘겨운 현실을 외면하고자 스스로 지워버린 것일까. 그리하여 기억이 없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는 일이 유일하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점차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어쩌면 마침내 증발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유리를 뒤덮고 있는 저 수증기, 손으로 지울 수도 없을 만큼 끈질긴 저 증기에 불과한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2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물의 공식 - 우리의 관계, 미래, 사랑까지 수량화하는 알고리즘의 세계
루크 도멜 지음, 노승영 옮김 / 반니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알고리즘은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말한다. 물론 컴퓨터는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알고리즘은 인간이 컴퓨터에게 지시한 대로 문제를 해결한다.  애초에 컴퓨터가 만들어진 이유는 인간이 하기엔 단순하고 까다롭고 지루한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대로 저장용량이 커지고 성능이 발달한 오늘날 알고리즘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인간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고유의 가치에까지 깊숙히 치고 들어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튜링은 컴퓨터가 인간을 자신이 컴퓨터가 아닌 인간이라고 속일 수 있으면 컴퓨터에게 지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튜링테스트가 시작된지 64년 만에 유진이라는 기계가 인간을 속여 스스로 지능을 가진 컴퓨터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역사는 새로 씌여졌다. 이제 더이상이 튜링 대회는 없다. 더 이상 기계가 인간 심사위원에게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사람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컴퓨터 체스 플레이어가 한 번 이긴 후로 이제 체스  챔피언은 인간이 아닌 기계라는 사실이 굳어진 것처럼, 미국의 유명 퀴즈 대회 제퍼디의 우승자가 인간을 한 번 누르자 이제 제퍼디의 우승자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라는 사실이 굳어진 것처럼, 컴퓨터가 인간처럼 대화한다는 사실을  더는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십년전의 기술과 십년전의 안목으로 무인 자동차는 요원한 기술이었다. 인간이 가진 무한한 인지 기능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순간적 판단 기능을 컴퓨터로 구현한다는 것은 무모할만큼 복잡한 것이었다. 이제 구글의 무인 자동차는 50만킬로미터 이상을 사고 없이 달렸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주제가 연결된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우연에 의한 자기 암시 효과일 것 같은데.  얼마전에 김중혁의 메이드인 공장을 읽고,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공장견학기가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는 공장이라기보다는 미래사회처럼 기계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공장 내 사람들은 그 기계의 속도에 맞춰 보조적인 일을 하거나 관리 차원에서 드문드문 서있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책 바로 전 읽은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자동화 기술이 인간 사회의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다.  지금 읽은 <만물의 공식>은 디지털 시대를 움직이는 알고리즘 즉 만물의 공식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며 바꾸어나가고 있는지를 매우 실제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생동감있게 재현해낸다. 그런 면에서 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책으로, <유리감옥>에서 강조한 자동화 기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탐색한다. <메이드인 공장>이 실제로 공장을 탐방해 보고 그 그 모습을 스케치했다면  <유리감옥>은 자동화된 공장의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지고,  <만물의 공식>에서는 니콜라스 카가 <유리감옥>에서 제기하는 디지털시대의 매우 구체적인 사례들이 철학적 사고 위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된다. <유리감옥>이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결론은 향해서 사물과 현상을 분석적으로 대하는 것과 달리 만물의 공식에서는 어떤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여 일일이 그 실례들을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치관의 변화와 관련지어 탐구한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들은 주로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지만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다가와서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알고리즘에 대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범죄 예방 시스템에 기록된 알고리즘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때 오류로 선량한 이용자를 테러범으로 인식하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나 역시 알지 못하는 이유로 공항의 검색대에서 한참을 붙들려 있다가 다른 방으로 옮겨져서 영문도 모르는 채 세세한 질문 공세에 답하며 오랜 시달렸던 기억이 있는데 마약 밀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찾기 위해 짜여진 알고리즘의 타겟이었는지 아니면 인상착의가 비슷한 테러범을 안면인식 카메라가 잡아낸 것인지 그냥 랜덤으로 지목한 묻지마 검문 같은 거였는지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아무 단서도 없다. 다만 이제 다 끝났으니 가봐도 된다라는 말을 듣고 휴 한숨을 쉬고 나오던 순간 들었던 오싹함, 그 알지 못할 블랙박스가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프로그램되어 있는 대로 처리하는 결과에 대해 어떤 피해자가 발생해도 그 누구도 책임지는 않는 살벌한 긴장감은 트라우마처럼 기억에 남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의 범죄자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잠재적 범죄자를 모두 잡아 가두는 방법으로 범죄율 제로라는 완벽한 사회에 도전한다. 위대한 과학 소설은 섬뜩하리만큼 우리의 현실이 미래를 향해 가는 방향과 닮아있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운전자는 갑자기 운전 면허가 취소되어 오랫동안 곤혹을 치렀는데 이것은 살인에 연루된 다른 운전자를 찾는 과정에서 안면인식 알고리즘이 잘못 식별해낸 결과로 인해 차량등록국에서 자동으로 보낸 통보였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실수가 벌어졌을 때 혐의를 받는 것은 운전자 본인의 책임이라며 대중을 보호하는 유익이 소수가 부당한 혐의를 받는 불편함보다 중요하다는 차량등록국의 주장이다. 이러한 공리주의 원칙은 소수의 피해자를 대책없이 만든다. 매주 1500명 가량의 공항 여행객이 테러 범으로 오인되고 한 조종사는 한 해에 80 번이나 데이터 대조 오류로 구금되었다. 이것은 예산삭감으로 인력이 감축되면서 자동화된 시스템이 단순한 관리 도구에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로 탈바꿈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지극히 일부의 예이다.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에서 지적한 이러한 자동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빙자한 인간 말살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서 신뢰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사실 인간이므로 온갖 편견과 관점이 알고리즘에 스며 들 수 있어요. 대디엘 시트런 본문 재인용 185


한 흑인 박사는 구글 검색창 결과 옆에 '체포된 적이 있나요'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놀랐다. 흑인에게 흔한 이름을 체포 기록 광고와 연결함으로써 무심결에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구글의 검색광고 알고리즘의 예이다.


만물의 공식이 적용되는 예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활 곳곳에 파고 들어 있다. 이미 빅데이터와 판단 알고리즘을 통한 온라인 맞춤형광고 및 맞춤형 뉴스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의사와 변호사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던 전문가의 두뇌를 대신하여 더 많은 데이터로 더빠르게 전문가가 해내던 일들을 대신해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하모니와 같은 차별적 매치메이커들은 파트너 선택의 바닷속에서 가장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파트너를 물을 길어올리듯 끊임없이 건져올릴 수 있으며 이제 섹스와 사랑도 알고리즘과 나누는 시대로 향해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기계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아직까지도 굳게 믿어지고 있는 예술영역에서도 가차없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영화, 회화, 미술평론, 문학평론,영화 분석, 자동작곡 등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빠른 분석력을 토대로 정확하게 예술 속에 내재된 수량화가능한 특성들을 수집하여 고도로 정확하게 분석하고 창조한다.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질적 분석을 수량적으로 계량하기 위한 단계를 프로그램 단계에서 인위적 콜렉션을 통해 이루어지고 취향의 표준화라는 오싹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근심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블랙박스 상태로 그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맺어준 파트너가 나의 어떤 면과 상대방의 어떤 면을 고려해서 맺어준 것인지 왜 어떤 사람은 매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가 힘든 건지.. 그런 것들을 결정하는 만물의 갱식 속에는 어떤 한 인간의 취향과 편견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고 앞으로 이런 기계 중심의 삶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는 사실이 더욱 근심을 키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 뿐인 인생은 불리해지면 다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일어나라, 다시 시작하라 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실패해서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실패한 기간만큼 내 삶도 지나간다. 실패가 거듭되면, 실패의 흔적과 상처가 쌓여, 고스란히 앞으로 남은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의 빚이 된다. 사람의 인생에는 순차적으로 나이가 쌓이고, 두뇌의 세포가 변화하고 경험의 크기가 달라지고 생체적 특징과 정서적 변화도 겪기에, 어떤 나이에는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 뒤로도 앞으로도 마음대로 성급하게 방향을 틀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라는 책 제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이 조금 안된다. 인생은 한 번인데 '한 번'은 필요없는 말 아닌가,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두 번 정도는 부모가 각각 원하는 인생을 살고, 또 한 번은 나라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읽고 나니 뜻을 알겠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커리어 디자인'을 하라는 거다. 커리어 디자인은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이다. 커리어의 출발점은 인생의 오전이고,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등이다. 커리어 디자인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마다 지속적으로 디자인의 내용을 업데이트해가면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얼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커리어 디자인은 직업 원, 인생테이블, 인생조감도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백지에 내가 원하는 직업 세 개를 원 세개에 그리고, 서로 관련이 있는 만큼 원과 원 사이를 겹치게 그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라 그 직업 내에서의 본질이다. 두번째로 연도별로 테이블을 그리고 왼쪽에는 연도를 적고 그 다음 컬럼에는, 중요 이벤트, 플랜 A, 플랜 B,  중요한 사람의 이름과 그들 각자에게 예상되는 미래의 갈림길을 적는다. 세번째는 첫번째 원들과 두번째 테이블들을 가시화한다. 이것은 인생의 조감도에 해당된다. 


인생 테이블에는 갈림길을 앞에 두고 어떤 준비를 했는지, 갈림길에서 결과적으로 어떤 플랜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등을 기록한다.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인생 테이블에 적는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은 항상 내 곁에 두고 고쳐나가는 것이 좋다. (p174)


그러나 10년 후의 세상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세운 계획이 10년후에까지 비전이 보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에 가까운 기간은 구체적으로 세우고 긴 미래는 내가 원하는 것의 본질적인 것이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정의는 19세 때 이미 인생의 각 10년 주기마다의 엄청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이루었다지만, 그런 황당한 숫자들을 채우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을 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인가, 혹은 나를 완전히 소모시켜 버릴 종류의 일은 아닐까 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면 성공 그 자체가 주는 명예와 돈 외에도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품화할 수 있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별 시답지않은 신변잡기에서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인생철학을 활자로 엮어내도 되는 자격을 가지니까 말이다. 고로 성공담을 말하려면 성공해야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성공담을 먼저 말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는 것을 원하고, 또 그 성공의 뜻이 명예와 부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성공을 쫓는 사회 자체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행복도, 사랑도, 자존감도 모두 어느 정도는 최소한의 부가 뒷받침되어야 쫓을 수 있는 게 인류니까 말이다. 


나의 취미인 지적질을 좀 하자면, 커리어 디자인에 대한 설문 조사를 인용했는데, 출처가 없다. 시간을 잘게 쪼개어 관리하고 쓰라는 충고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독서의 예는 적절치 않아보인다. 매일 하루 10분씩 독서라니, 다음날 10분 읽기 위해 책을 꺼내 펼쳐 들고 어디 읽었는지를 찾아 어제까지의 내용과 연결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릴 뿐더러, 10분동안만 할 수 있는 독서라는 것의 얕음이 눈에 선하다. 독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시간관리가 중요하므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사이에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넣으라고 했는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저자의 쉬는 시간이란 등산이나 운동 심지어는 책을 번역하는 것과 같은 취미생활에서부터 직업적인 일이 아닌 모든 걸 말하는 거였다. 이런 말장난은 큰 도움이 될 듯하지는 않다. 커리어디자인을 할 때 쉬운 방법으로 롤모델을 만들어 따라하라고도 했는데, 이렇게 시시각각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무턱대고 따라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작가인 윤태성 교수의 경우처럼 대기업을 나와 유학을 갔다가 일본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벤처도 설립했다가 들어와서 교수가 되는 것 같은 화려한 커리어는 본인의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인 상황도 반영된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번역 자체가 휴식이라는 말에 선뜻 공감이 안가겠지만, 나로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그가 책에서 누누히 이야기했던 시간 쪼개기 신공과도 통하는데, 어떤 일이 잘 안풀리면 과감히 접고 뭔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나면 다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만일 번역은 하고 있던 번잡한 생각들로부터 머리를 말끔히 비워주고 다시 그 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다. 전공서적은 세 번은 읽으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전공을 빼도 이 말에는 공감한다. 별 내용도 없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정독하면서 세 번 정도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니까 좋은 지식은 반복해서 읽는 도중 휘발되는 양이 줄어들 것이다. 


* 리뷰를 위해 다산북스에서 제공한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소 100원 200원 티클만 들어와도 히죽히죽 뿌듯했는데, 

오늘 보니 6,520원이다. 

TTB2는 티스토리에 추가로 올리면서 책 이미지를 따로 찍어 올리기 귀찮아, 상품코드 복사해갔었는데, 그 링크가 적용된 모양이다.

아마도 15일이 정산일인 것 같다. 

보통 광고 수익이라고 해서 20원씩 들어왔었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전에는 TTB2 어쩌구 저쩌구 해서 마이너스 금액으로 포인트를 빼가는 일도 있었는데,

이러다가 슬쩍 사라지는 금액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가 궁금한 건... 매우 궁금한 건 판매수익(001-A...)로 시작되는 번호가 있는데,

그게 상품 코드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그러니까 나의 어떤 리뷰를 읽고 들어와서 저렇게 많은 책을 산 건지

그것이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쏟아져나오는 신간과 쏟아져 나오는 저자와 원래 유명했던 저자와 작품, 재조명되고 저자와 작품, 새롭게 노벨상, 퓰리처상, 맨부커 상등을 받은 작품 등 소설은 읽어도 읽어도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것 같다. 평가단 추천 도서가 월에 딱 2 개만 선정되는게 아쉬워서 개인적으로 하나씩 세어보았다. 이번에 결정된 플래너리 오코너와 지평 외에도, 간발의 차이로 선정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14기 때에는 내가 추천한 것중 하나는 선정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없다. 별 아쉬움은 없다. 다수의 선택은 자주 옳으니까.



플래너리 오코너 총 7표

단편집












총 9표













총 6표














총 5표














총 4표















총 4표














총 4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1-1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신간 서평단 되면 맨날 튀고 소수의견이겠는데요 ㅋ

CREBBP 2015-01-17 13:37   좋아요 0 | URL
북플은 카톡처럼 실시간 답글놀이가 가능하군요. 가끔 1개씩만 올라오는 추천들이 있죠. 취향 위주의 장르 소설도 있고.. 여러가지

이섬 2015-01-1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제 짬밥이 쎄져 소설 서평단을 해볼까요. 저! 기네스님 알라딘 말고 한군데서 더 뵌 적 있어요ㅋ 우찌 저 같은 우주먼지가 기네스님 눈에 이곳저곳에서 보였는지 아직도 미스터리군요.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15기 1차 책은 소설이 제일 탐 나더라구요. 서평도 기대하겠습니다!

CREBBP 2015-01-18 14:34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카페에서도 뵌 듯하고 네이버 오늘의책 선정단에서도요. 네이버 오늘의 책 카페에서는 맥주. 과학쪽 담당이고 다른 카페는 가입시마다 그때그때 아이디를 아무거나 써서 뭔지 들어가봐야 안다는 ㅎㅎ
네이버에서 얼마전에 선정하신 심리학 책이 이슈?던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