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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이서정은 같은 회사에 사표를 3번씩이나 냈다. 약속이란 이서정이 일하는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믿음 없는 부도수표와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정직하게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없고 멋진 외모의 대상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해야 하고, 자신의 공적을 빼앗기고, 소문에 시달리며, 이상이나 꿈과는 전혀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현실에서 그녀는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오해 뒤에 감추어진 진실들을 하나 둘씩 접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만큼 다른 사람 또한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해와 갈등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깨닫게 된다.
7년 전 맞선자리에서 그녀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깔아뭉개고 나가 버린 남자에게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 수술실패의 아픔이 있었고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던 선배가 베란다에서 개를 던졌다는 소문은 발달장애의 자식 대신 뒤집어 쓴 것이었다. 성수대교를 지날 때 음악을 크게 틀어야만 했던 그녀에게는 13년 전 죽은 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과거를 마주보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꺼려한다.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내릴 것인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고통과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고, 어떤 이는 피해서 돌아가기도 한다. 이처럼 ‘진실’과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닌 20대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것도 아닌 30대의 여자라고 해서 완전히 성장한 것은 아니다. 싱그러운 풋사과에서 빨갛게 무르익는 시기, 달콤한 향기를 머금게 되는 시기, 벌레 먹은 자국이 군데군데 늘어나는 시기, 과육이 알차게 여물어 가는 시기. 뜨거운 햇빛과 비바람을 지나쳐 인생의 쓴맛 단맛을 제대로 겪게 되는 시기. 그런 시기의 기로에 선 30대의 여성,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를 이제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꿈과 현실을 어떻게 조합시켜야 하는지, 자기 자신을 어떤 방법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습득해나갔다. 자신 안에 나이를 먹지 않고 있던 성수대교위의 18세의 소녀를 두려움으로부터 구출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낸 사표를 취소하고 다시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또한 두려움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