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가 마음을 만지다 - 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최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가끔 시를 읽다보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때가 있다. 그것은 미처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인 것 같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을 시인과 나의마음이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타인을 만나는 경험처럼 시는 혼자 고독히 즐기는 문학이 아니라 타인과 속 깊게 소통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 중의 한편이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단 5분 .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맨 마지막 구절이 참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엉엉 울겠다. 이 얼마나 단순한 구절인가. 하지만 또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면 아이처럼 목놓아 엉엉 울겠다고 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 들에게 하소연 할 수 도 없고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 할 때가 많다. 저자는 이럴 때 울어야 한다고 한다. 참으려고 안감힘 쓰지 말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지도 말고 큰 소리로 엉엉 목놓아 울라고 말이다.울고 싶다는 감정은 마음의 용량이 초과되었으니 바깥으로 배출 흘려보내라고 몸이 마음에게 주는 신호기 때문에 이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이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 시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소개했던 시라 기억에 남는다. 연인과 이별하고 이 시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했다는 선생님. 꽃이 지고 사라진 빈 자리에서 그녀가 얼마나 그 꽃을 잊기 위해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별의 순간은 짧아도 지우기 위한 시간은 오래 걸린다는 걸 담담한 넋두리처럼 한탄처럼 잘 표현한 것 같다.
안기기, 안아주기 / 이병철
포용이란 포옹이다 닭이 알을 품듯
다만 가슴을 열어 그렇게 품어 안는 것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심장에 심장을 포개고
저 간절한 눈동자 묻어둔 저 그리움
가슴으로 품어 환히 꽃피우는 것
저자는 자신의 문제를 입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으로 이미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고 말한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카운슬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것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들지도 말고 충고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이 시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빗장 문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안기고 다른 사람을 안아주고 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교감하고 치유될 수 있는 힘,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치유 하는 힘이 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시가 마음을 만지다를 읽다보면 심리 상담을 받는다기 보다 조용한 까페에 앉아 아는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머리 아프게 싸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힘이 들어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지친 사람이 있다면 한 장의 메모와 함께 이 책 한권을 가방속에 넣어주고 싶다. 얼마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책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나타날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