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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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장의 벽은 굉장히 얇아서 모두의 삶이 나아가는 것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들을 수 있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환상문학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우주의 알>을 가제본으로 읽었다.

이 이야기는 한 소녀의 영혼이 유체이탈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죽음일 수도 있고, 하나의 성장과정의 끝일 수도 있다.


토끼장이라 불리는 빈민가의 닭장 아파트는 옆집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머리 좋은 소녀는 장학금을 받고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한다.


연고 없는 아이.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

그러나 어딘지 외계인 같은 아이.

어른스럽지만 결국 아이인 소녀.

그런 소녀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선생.


아역 배우로 성공한 어머니의 아들은 버림받은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다.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었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들은 기행을 벌인다.


한 소녀와 동거 중인 세 명의 소년들

배우가 꿈인 소년과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소년과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에겐 그들만의 취미가 있다.

그들 중 두 명은 소녀의 관심을 끌고 싶어 안달이지만 소녀는 본체만체한다.

선생님을 사랑했던 소녀에게 그 소년들은 너무 어리다.


"난 승인의 형태로 가장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말 지긋지긋해요." 블랜딘이 말한다.



티퍼니였던 블랜딘은 한때 사랑이었다고 믿었던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학교를 자퇴하고, 이름을 바꾸고 세상으로 숨어든다.


화려한 도시와는 동떨어진 쇠락한 동네.

재개발에 들썩이는 개발자들과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마감하기 위해 토끼장이 필요한 사람들.

불공평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는 어떤 시도.

사춘기 소년들의 빌어먹을 일탈.

유명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손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선생.


익숙한 플롯의 이야기지만 색다르게 엮어내는 작가 테스 건티.

티퍼니와 제임스의 사랑 이야기는 빤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 간단하면서도 신랄한 사랑의 요약은 읽는 동안 가슴이 일렁였다.

아슬아슬하지만 다가가고 싶고,

서로를 꿰뚫어 보지만 이해하고 싶고,

전부인 거 같지만 얻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나조차도 속은 이야기.


그러나 소녀는 여성이 되고, 선생은 자신의 수를 들키고 만다.

커 보였던 남자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비명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무심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또 그러는 게지...


그러나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조앤 같은 사람이 있어 단절된 관계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


그게 시작이다.

잘못되어 버린 이 세계를 다시 잘 돌아가게 만드는 에너지는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으로부터 불꽃이 된다.






조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말한다. "깨어 있네요."

방 안에 기묘하게 번쩍이는 빛이 스친다.

"네." 블랜딘이 말을 잇는다. "당신은요?"





이 책을 읽은 나는 깨어있을까?

당신은...?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던 이야기.

그래서 한 장 한 장 뒤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던 이야기.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삶이 하나의 시간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


미국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해석되는 <우주의 알>...


이 세상 모든

블랜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렴.

조앤, 화이팅~

모지스, 이제 좀 성장하면 안 되겠니?

소년들, 니들이 그럴 줄 몰랐다.. 정신 차릴 거지?

제임스, 지구를 떠나거라~ 




캐릭터들의 감정을 몰입감 있게 묘사한 작가의 시선이 즐거웠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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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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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전자책으로 읽으면서 종이책이 갖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종이책을 구매하고 언제 읽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독파챌린지 에 올라와 있길래 이때다 싶어서 재독했다.

몇 년 사이에 내 마음이 변했을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절절함과 애절함 대신에 그들이 처한 현실에 더 관심이 갔다.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감옥에 있는 연인에게 쓴 아이다의 편지와 그 편지 뒷장에 쓰인 남자의 메모가 대조를 이룬다.

아이다의 절절한 그리움에 대비되는 남자의 글들은 정치적이고, 이성적인 생각들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점에 스스로 상처를 받았던 거 같다.

아이다에게 너무 이입이 됐었나?


재독하면서 사비에르가 처한 상황에 좀 더 몰입하면서 그가 남긴 메모들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는 거 같았다.

독방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다그쳐야 했던 사비에르는 아이다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만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믿는 신념들을 적어갔으리라...



존 버거는 이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소설적 장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현실처럼 느껴진다.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어딘가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재독 후에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어느 시대에 살았었다고 생각하니 정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잘못된 리더의 신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넘쳐나야 하는 세상.

<A가 X에게>를 다시 읽으며 단순히 절절한 연애편지로 대했던 첫 번째 읽기를 업데이트한 기분이다.



불의를 합법화하는 악법들이 있다. 그런 법은 어설프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법들이 적용되면 그 법들이 가용하려는 바로 그것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법들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무시하고,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물론, 동지여, 그런 법들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어설프다!



그때 당신의 그 손등만큼 나에게 확신을 준 말은 없었어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어떤 역사도 침묵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역사를 아무리 많이 점유하고, 깨부수고,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하더라도, 인간의 역사는 입을 다물기를 거부한다. 무관심과 무지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간은 현재의 시간 속에 계속해서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아는 건 나의 인생이 온통 나를 당신에게로 이끌었다는 것.




존 버거를 처음 만난 작품이기도 한 <A가 X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온전히 그들의 감정을 혼자 음미해 보며 그들의 고통과 희망과 애정과 용기를 느껴보는 시간이 좋았다.


종이책의 물성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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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척의 배 - 트로이아 전쟁의 여성들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 돌고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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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가 없으리란 걸 알았다. 전쟁이 끝나면 남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목숨만 빼고 모든 걸 잃었다.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한 트로이아 전쟁의 서사는 웬만하면 모두 꿰고 있을 것이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남자들의 전쟁담과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트로이아 전쟁.

<천 척의 배>에선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져서 한 문장으로 표시되었던 <여자>들의 시선으로 트로이아 전쟁을 그려낸다.

트로이아 전쟁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앞으로 황금 사과를 던지면서 시작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여신의 고달픔에서 비롯되었다면?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인간들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인간들은 대지 위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던 가이아는 더 이상 인간들의 파괴와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자신의 고통을 덜어달라 말했다.

모든 신들의 왕 제우스는 그의 첫 번째 아내 '테미스'와 계획을 짰다.

"인간이 너무 많아."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많지."

"가이아가 당신한테 고통스럽다고 했군." 테미스가 말했다. "인간의 무게가 가이아가 지탱하기에 너무 버거워."




대지에서 인간들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다.

가이아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의 기운은 '황금 사과'로 장전되었고, 왕자로 태어났으나 트로이아를 멸망시킬 거란 예언 때문에 양치기의 아들로 자란 파리스는 권력과 지혜 보다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아가멤논이 이끌고 온 그리스 대군은 철옹성 같은 트로이아를 바로 함락 시킬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전쟁은 10년을 끌게 된다.

트로이아가 불타는 광경으로 시작한 <천 척의 배>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이야기한다.

스파르타의 왕이 왕비를 잃었다는 이유로, 100명의 왕비가 왕을 잃어야 했다.

"메시지를 들었잖아, 안테노르. 오늘 밤에 활동을 개시할 걸 알잖아."

"아닐지도 몰라." 안테노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고만 했어."

"어딘지 알잖아." 테아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목마 안에 있어. 틀림없어."

안테노르가 테아노의 말을 들었다면,

프리아모스가 헤카베의 의심을 받아들였다면,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긴 세월을 신들에게 놀아났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노예가 되어 트로이아를 떠나야 했던 여자들.

헬레나 하나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야 했던 여자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아들을 가진 여자들.

외간 남자랑 바람난 여동생 때문에 전쟁의 제물로 바쳐진 딸을 가진 여자.

오랜 세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여자.

아폴론의 수청을 거절함으로써 능욕 당하고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지만 아무도 예언을 기억하지 못해 미친년처럼 살게 된 여자.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여자.

님프였지만 양치기 남자를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에게 미쳐서 버림받은 여신.

모든 신들에게 왕따 당해서 속상했던 여신.

인간을 품고 풍족하게 해주었지만 인간들의 탐욕에 지쳐버린 여신.

아들 하나 때문에 많은 아들과 남편과 딸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여자.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영웅의 아내였지만 자기 부모를 죽인 남자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잃고, 그 남자의 노예가 되어야 했던 여자.

수많은 여자들의 목소리로 듣는 트로이아 전쟁을 읽는 내내 깊은 슬픔과 상실감이 느껴졌다.

끝없는 인내와 고통을 느끼게 되는 <천 척의 배>

그 어떤 트로이아 전쟁을 그린 이야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천 척의 배>로 느꼈다.

목숨 빼고 모든 것을 다 잃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트로이아 전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신들의 안배에 놀아난 인간 남자들.

현명한 여인들의 말을 새겨 들었다면 이런 전쟁은 없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신들의 뜻을 어찌 꺾을 수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은 현명한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의 엇박자의 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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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약 금지 -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의 변화하는 한국을 읽는 N가지 방법
콜린 마샬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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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의 시선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시선을 궁금해한다.

밖에서 한국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상 '그것이 궁금하다'

이유가 뭘까?

한국에서 유행이 얼마나 빨리 자나가는가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그 유행에 얼마나 민감한가일 수 있다.

한국인들은 늘 어느 정도 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 것 같다.



토종 한국인들보다 더 많이 한국의 다양한 면에 관심을 가진 저자 콜린 마샬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들까지 깊이 있게 알게 되어 우선 놀라웠다. 저널리스트라는 그의 직업정신도 있었겠지만 얼마큼 관심을 가져야 이런 사실들까지 꿰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한국에서 살아온 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기고했던 글들을 책으로 엮으며 편집부는 이 책의 제목을 <한국 요약 금지>로 정했다.

제목 때문에 궁금했던 책이었다.

과거부터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서 그런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보다는 외부의 칭찬이나 믿음을 더 중요시 여기며 산다.

지금 한국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국가이며 문화강국의 토대를 쌓는 중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며 그 토대 위에 새로운 것을 쌓기 보다 다른 나라의 것을 차용하고 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콜린 마샬은 정곡을 찌른다.

이탈리아 카페를 모방한 스타벅스를 모방한 카페들이 즐비하고, 국산 자동차 보다 외국제 차들이 넘쳐나고, 전통 가옥들보다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모든 인구와 문화가 서울 중심인 나라다.

이런 모습은 부정적이고 안타까운 모습이자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 가야 할 구시대의 산물들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미디어가 파악한 트렌드를 보면 한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개인의 자살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자살이 있다. 그건 바로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자살'이다.



많은 사회는 인류가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여러 요구가 갑자기 그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버릴 때마다 어려움에 직면했다. 대한민국은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국에 살다 보면 이전에 살던 나라에서 사용하던 모든 물건이 한국판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신 K-pop보다는 80~90년대 가요를 좋아하고, 일본과 한국과의 오랜 감정싸움도 잘 알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인 신촌에서 생활하며 여러 독서모임에도 참석하고, 우리말 겨루기를 즐겨 보고, 떡튀순을 좋아하며, 한국 영화와 책에도 조예가 깊다.

나보다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인데도 나보다 한국의 정세를 잘 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국은 이런 나라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우리가 잘해낼 거라는 것도 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우리가 외국인들의 시선에 왜 그리 신경을 쓰는 건지, 왜 그들의 반응에 민감한지에 대해 마음이 쓰였었다.

<한국 요약 금지>를 읽으면서 그 답답함에 대한 답을 얻은 거 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검증하기 보다 다른 나라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5천 년 역사를 이어 온 대한민국인들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한반도의 좁은 시선이 아닌 세계인의 시선으로 검증받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잘 해나가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 것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 것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잘 섞어가며 살고 있는지.

이 좁은 땅에서 태어난 수많은 재주꾼들이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잘 넓혀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콜린 마샬은 이런 한국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 같다.

그의 글은 무조건 비판적이지도 않고, 무조건 칭찬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걸 예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몰랐던 우리를 만났던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친하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변인에게 정확하게 확인한 기분이다.

그래서 마음이 즐겁다.

문제가 많고, 화나는 일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옳은 길로 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임을 <한국 요약 금지>로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지인이 있다는 사실이, 그 지인이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한국은 긴 역사 너머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끈기와 인내와 재주가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라다.

그러니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것을 잘 넘어갈 수 있는 생존의 기술을 가졌다.

이 스킬을 발전시키고자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갈구한다.

단 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만큼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들도 빠르게 바뀌었다.

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대립은 우리가 쌓아온 스킬로 잘 넘겨야 하는 고비다.

한국에 오래 살수록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이 나라가 마침내 스스로의 힘을 깨달았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이다.

나도 이것이 궁금하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힘을 깨달아가는 와중에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견뎌낼 것이다.

한국인은 위기에 강한 민족이니까.

한국을 겉만 훑고 쓴 글이 아니라 뼛속까지 우려낸 느낌의 글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 어떤 곳인지 다른 나라 사람의 눈으로 검증받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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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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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작가는 내면의 귀로 자신의 글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쓰면서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의 불꽃을 일으켰다면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로 글쓰기의 기술을 연마하면 좋을 것이다.

 

이 글은 르 귄이 진행했던 글쓰기 워크샵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르 귄의 글쓰기 조언과 가이드, 연습 문제와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들 그리고 합평회에 관한 가이드북이다. 게다가 이 책으로 열심히 작법한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한 스토리텔러를 위한 작법서다.

단, 영어로 쓰는 작법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글쓰기와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핵심만을 뽑았기에 군더더기 없이 바로 실전에 응용하며 글쓰기 연습을 하기에 좋은 작법서다.

 

들리는 글을 써라.

시대에 맞는 문법을 공부해라.

문장 길이를 조절하여 리듬과 속도를 다양하게 바꾸어라.

형용사와 부사 없이 간결하게 쓰기.

정보를 보이지 않게 설명하는 법을 연습할 것.

초고는 꽉 메워 쓰고, 퇴고는 대담하게 건너뛰어라.

 

위 글은 내가 참고하기 위해 요약한 것으로 책을 읽은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혼자 독학하기보다는 글쓰기 모임에서 교제로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연습문제를 써서 서로의 글을 읽으며 문장을 다듬어 보면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 같다.

책 마지막에 있는 합평회에 관한 부록 글도 있으니 뜻이 맞는 사람들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거 같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 있는데, 이 작법서가 영어로 쓰기에 관한 것이라 우리말로 쓰기에 대한 예시문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챕터에서부터 리듬감 있는 글의 예문이 번역본이라서 영어로 읽었을 때의 그 리듬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우리글에 맞는 예문들이 담겨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항해하는 글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첫 번째 "들리는 글을 써라" 이다.

잘 읽히는 글은 소리가 탁월하기 때문이라는 르 귄의 말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요즘에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건 곧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고 묘사가 탁월하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르 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미지가 아닌 소리를 지닌 작품이었다.

영상미가 있는 글은 급 피곤함을 주지만 영롱한 소리를 가진 글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문법과 도덕성은 연관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도덕적 의무란 언어를 사려 깊게 잘 사용하는 것이다.

 

 

 

규칙을 깨기 위해서는 규칙을 알아야 하듯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문법을 알아야 한다.

기본이 없는 글은 진정한 글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문법도 모르면서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없다는 르 귄의 말이 가슴에 탕탕 총알처럼 박혀왔다.

 

나는 '글쓰기의 항해술'이라는 내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 사실 스토리란 마법의 배다. 자기가 갈 경로를 알고 있다. 키를 잡은 사람이 할 일은 배가 자기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뭔가 글감이 떠오르면 무턱대고 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쓰다 보면 원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렇게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다.

플롯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에 몰입하다 보면 내 아이디어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르 귄의 이 한 마디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에게 맞지 않는 짓을 하다가 그대로 멈춰 버린 이유를 이 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무조건 쓰기만 했어야 했다. 삼천포로 빠졌어도 계속 쓰고 또 써서 결말을 내야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읽어가며 수정하고, 구두점을 잘 찍고, 리듬과 속도를 맞추며 간결하게 다듬고, 과감하게 건너뛰기를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뭐라도 한 편 완성을 했을 텐데...

 

새해 들어 글쓰기 책을 두 권 읽었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는 내 안에서 꺼져가던 불씨를 어렵사리 살려냈고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는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줬다.

 

뭐든

그냥 닿는 법은 없다.

이 두 권의 책이 내게 같이 도달한 이유가 있을 거 같다.

 

수많은 플랫폼이 열려 있고

이제 뗏목을 띄우는 법을 알았으니

그저 나아가는 길 밖에...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되겠지.

 

작법서, 글쓰기 책 백날 읽어봐야 소용없다.

써봐야 한다.

 

뭐라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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