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프로타코라스>는 소크라테스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로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간에 이루어진 '미덕(arete)'에 관한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었을 경우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묻고, 프로타고라스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대답을 한다. 같은 소피스트 였던 고르기아스는 이와 유사한 질문에서 수사학을 통해 성공시켜 주겠다는 대답을 하는(<고르기아스> 中) 반면,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적인 내면의 수양에 집중하고 있다.

 

'힙포크라테스는 그대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며, 그대의 제자가 됨으로써 어떤 이득을 보게 되는지 알고 싶답니다.'(318a)
'자네는 날마다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걸세.(318a) 내가 가르치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을 훌륭하게 판단하는 것이오.(318e)'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미덕은 가르칠 수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고, 프로타고라스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소양인 염치와 정의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대는 국가경영술에 관해 말하며 사람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 같은데,(319a)... 분명 그들이 그런 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가장 지혜롭고 가장 훌륭한 시민들도 자신들의 이러한 미덕을 남들에게 전수할 수 없으니까요.(319e).. 프로타고라스님, 나는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320b)

'인간은 생존을 위한 지식은 얻었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은 아직 갖지 못했소.(321d).. 제우스는 우리 인간 종족이 완전히 멸종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헤르메스를 인간에게 보내 염치와 정의를 가져다주게 했는데,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애를 맺는데 이것들이 원칙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소.(322c)...(정의와 염치를) 모든 인간이 나눠 갖게 하라. 다른 기술들처럼 정의와 염치가 소수의 것이 되면 국가가 생길 수 없을 테니까.'(322d)
'다음에 내가 그대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미덕이 타고난 것도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며 그것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애쓰고 노력하여 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오.'(323d)

 

또한, 프로타고라스는 정의와 절제와 경건함이 국가가 존재하려는 하나의 자질(미덕)이라고 말하고, 미덕의 부분들로 정의, 절제, 경건이 부분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이 서로 다르며, 각자 고유한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그대가 훌륭한 사람들에 관해 제기한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소. 국가가 존재하려면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하는 한 가지 자질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324e)... 만약 그 한 가지 자질이 정의와 절제와 경건함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모두 다 가져야 하는 자질이오.'(325a)
'미덕은 단 하나의 자질이고, 그대가 묻고 있는 것들은 미덕의 부분들이오.(329d)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경건함을 통해 부분들 간에 공통되는 요소가 있음을 보이며, 프로타고라스를 논박한다. 프로타고라스는 닮은 점의 정도 차이를 말하며 응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반대되는 요소들이 여러 개 있음을 보이면서 프로타고라스의 논리를 재논박한다.

 

'정의는 올바른 것이라고 대답할래요(330d).. 그렇다면 경건함은 올바른 것이 아니고, 정의는 경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경건함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이고, 정의는 불경한 것이라는 뜻인가요?'(331b)

'사물들이 닮은 데가 있다 해도 닮은 점이 적으면 닮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사물들이 다른 데가 있다고 해서 다르다고 해서도 안 될 것이오.(331e)'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데 동의했어요.(332d).. 어리석음은 분별력에 반대되겠지요? 그대는 우리가 앞서 어리석음은 지혜에 반대된다는 데 동의한 일이 기억나세요?(332e)...어떤 것이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주장을 포기할까요, 아니면 지혜와 분별력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미덕의 부분들인데, 둘은 서로 다를 뿐더러 얼굴의 부분들처럼 그 자체로도 그 기능에서도 서로 같지 않다는 주장을 포기할까요?'(333a)

 

 다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간에 미덕과 그 부분들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다. 프로타고라스는 모두 미덕의 부분이지만, 용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유사점이 있지만, 용기는 다르다고 말한다.

 

'지혜, 절제, 용기, 정의, 경건함은 하나에 대한 다섯 가지 이름인가요, 아니면 이들 이름 각각에는 어느 것도 다른 것과 같지 않은 고유한 기능을 가진 별개의 실체가 대응하고 있나요?'(349b)

'소크라테스, 내 주장은 그것들은 모두 미덕의 부분들이고, 그중 넷은 서로 상당히 닮았지만, 용기는 다른 것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오.(349d)... 대담성은 인간들에게 기술이나 분노나 광기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용기는 타코난 본성과 혼의 적절한 계발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라오.'(351b)

 

용기가 지혜의 다른 속성과 같은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논의가 시작된다. 즐거운 것과 좋은 것에 대해 대화가 시작되고, 두 사람은 쾌락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쾌락)의 측정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위한 지식(지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이룬다.

 

'즐거운 것들은 즐거운 것인 한 그것들에서 다른 어떤 것이 생기든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닐까요?(351c)...그대도 지식이 다른 모든 것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예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지식은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352c)
'지식과 지혜야말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주장하오'(352d)
'사실 여러분이 나쁘다고 여기는 것은 고통이고 좋다고 여기는 것은 쾌락이오. 여러분은 쾌락의 경험 자체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을 앗아가거나 그것이 주는 쾌락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주면 나쁘다고 부르니 말이오.(354c)... 쾌락과 고통의 올바른 선택에, 그러니까 그것이 더 많으냐 아니면 더 적으냐, 더 크냐 아니면 더 작으냐, 더 멀리 있느냐 아니면 더 가까이 있느냐의 올바른 선택에 우리 삶의 구제가 달려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일종의 측량술이 아닐까요?(357a)... 일종의 측량술이라면 필연적으로 일종의 기술과 지식이겠지요?... 지식보다 더 강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디서나 지식은 쾌락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357c)'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용기가 지혜의 부분임을 밝히면서, 용기가 미덕의 다른 부분과 차이있다는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를 최종 반박한다.

 

'겁쟁이들의 대담함이 수치스럽고 나쁜 것은 다름 아니라 무지와 무식의 소치인가요?(360b)... 그대는 무엇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고 말하시오?-비겁함이오.(360c).. 그렇다면 비겁함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이겠네요?(360c)..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는 지혜가 용기이겠네요?'(360d)

 

 이러한 논증 결과,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미덕이라는 입장으로 바뀌고, 프로타고라스는 지식(용기)가 미덕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어, 결국 '미덕을 가르칠 수 있는 가?'하는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된다.

 

'소크라테스여, 그대는 처음에는 미덕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더니 지금은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소. 그대는 정의, 절제, 용기 등 모든 것이 지식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그런 식이라면 미덕은 분명 가르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오.(361b)... 한편 프로타코라스는 처음에는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지금은 반대로 미덕은 사실상 지식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 경우 미덕은 사실상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되겠지요.'(361c)

 

<프로타고라스>의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간 문답식 대화를 따라 가다보면, 생각없이 대답하게 되고, 다 읽고 나면 멍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의 논의와 관계없이 생각해보자.
정의, 절제, 용기 등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가르칠 수 있지만, 모두가 배운 대로 실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보다 타당한 대답일 것이다.(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좋은 대답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흐지부지 된 것은 기본전제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알지 못하면 행위할 수 없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기 때문에 '지식(지혜)'에 초점을 두고 논의가 되었고, 결과는 위와 같이 난다. 그렇지만, 현실은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이들의 대화는 방향이 잘못 잡혀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을 읽으면서 생겼던 의문이 있었다. '과연 플라톤이 말하고자 했던 'arete'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덕(美德)과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다. 예를 들면, 영어로 honesty는 '정직'으로 번역된다. 그렇지만, hoensty안에 '공자의 정직'을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섭공이 공자에게 말씀을 건네었다. 제가 다스리는 마을에는 궁(躬)이라는 정직한 청년이 삽니다.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니 아들이 아버지가 죄인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공자 왈, 실망했소이다 섭공. 당신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정직이라는 핑계로 아들이 아버지까지 고발하게 하였소이까. 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르오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숨깁니다. 정직이란 그런 속에 있는 법이외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말하는 '용기', '절제' 속에는 한국인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보다 용어의 정확한 정의와 본문에서 쓰이는 의미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을 접하면서 내 자신의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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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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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는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 그리고 고르기아스의 숭배자들인 폴로스, 칼리클레스 간 이루어진 대화이며, 주제는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이다.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 간 이루어진 대화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에게 수사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이란 설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기술이라 말을 하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연설가들이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설득을 한다며 고르기아스를 비판한다.

 

'수사학은 무엇과 관련있는 지식인가요? 연설과 관련있는 지식이오.'(449e)
'고르기아스님, 수사학이야말로 모든 것을 말하기로 성취하고 달성하는 기술들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수사학에서 쓰는 이들 말하기들은 실제로 무엇과 관련있나요?' '인생의 가장 중대하고 가장 좋은 일들과 관련 있소.'(451d)
'고르기아스님,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그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답변해 주시오.' '인류에게는 자유의 원천이자 개인에게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오. 나는 그것이 설득이라고 주장하오.'(452e)
'그렇다면 수사학은 정의나 불의와 관련하여 확신을 낳는 설득의 생산자이지, 사람들을 가르치는 설득의 생산자는 아닌 것 같군요.'(455a)
'연설가는 사실 자체가 어떠한지는 전혀 알 필요가 없고, 대신 비전문가들에게 전문가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득의 묘안을 생각해내기만 하면 되니까요.'(459c)
'그대가 누군가를 연설가로 만들 경우, 그는 미리 알고 있건 나중에 그대한테 배워서 알고 있건 올바른 것들과 불의한 것들을 반드시 알고 있겠군요.(460b) 이 논리대로라면 올바른 것들을 배운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기도 하겠네요? 그렇다면, 연설가는 반드시 올바른 사람이고, 올바른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것들을 행하려 하겠지요?'(460c)
'그러나 잠시 뒤 그대가 연설가는 수사학을 불의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대가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소.'(461a)

 

소크라테스와 폴로스 간 이루어진 대화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이란 혼이나 몸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인 척 하는 아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내가 보기에 수사학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림직작에 능하고 조금은 용감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재주를 타고난 혼의 활동인 것 같소. 나는 그것을 한마디로 아첨이라고 부른다오.'(463b)
'혼을 돌보는 [기술]을 나는 정치학이라고 부르지만, 몸을 돌보는 [기술]은 체력단련과 의술이라는 두 분야가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니까요...그리하여 이들 네 가지 기술이 두 가지는 몸을 돌보고 두 가지는 혼을 돌보며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자, [아첨]이 이를 눈치채고는, 자신이 바로 그 분야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오.'(464b)
'나는 수사학이 아첨의 한 분야라고 말했네, 폴로스.'(465a)

 

폴로스는 그럼에도 연설가들이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항변을 한다. 그런 폴로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힘은 좋은 것이며, 불의를 행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불의를 당하는 것이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좋기 때문에, 자기의 즐거움으로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연설가들도 참주들도 그들의 나라에서 가장 힘없는 자들이라는 게 내 주장일세.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기 떄문일세.'(466e)
'자네 말처럼 힘은 좋은 것이지만, 지성없이 아무거나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은 나쁘다는 데 자네도 동의하고 있네.'(467a)
'누가 다른 것을 위해 무엇을 행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의 목적이 되는 것이겠지?(467d) 사람들이 이런 모든 행위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을 위해서네.'(468b)
'참주든 연설가든 누군가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은 더 나쁜데도 자기에게는 더 좋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처형하거나 국외로 추방하거나 재산을 몰수한다고 가정해보게. 그런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468d)
'그대는 불의를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의를 당하고 싶으시겠네요?' '나는 어느 쪽도 원하지 않네. 하지만 불의를 행하거나 불의를 당해야 한다면,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택하겠네.'(469c)
'불의를 행하는 불의한 자는 아주 비참한데, 불의를 행하고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더 비참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신들과 인간들에게 처벌받는 다면 덜 비참하다는 것이 내 의견일세.'(472e)
'두 개의 훌륭한 것 중에 어느 하나가 더 훌륭하다면, 즐거움과 이익이라는 두 측면 중 한 측면에서 또는 두 측면 모두에서 다른 것을 능가하기 때문에 더 훌륭한 것일세.(475a)
'불의를 행하는 것이 더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고통의 측면에서 또는 나쁨의 측면에서 또는 두 측면 모두에서 불의를 당하는 것을 능가하기 떄문이 아니겠는가?'(475b)
'올바른 것은 훌륭한 것이라는데 우리는 동의했지? 훌륭한 일을 당하는 것은 좋은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좋은 일을 당하는 것이겠지?'(477a)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은 불의를 행하지 않을 때만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폴로스, 불의를 행하는 것은 온갖 나쁨을 가져다주기에 사람은 무엇보다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하네. 그리고 자신이든 자신이 돌보는 다른 사람이든 불의를 행하면 최대한 빨리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자진해서 가야 하네.(480b)...나는 수사학이 불의를 행할 의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네.'(480b)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 간 이루어진 대화

 

카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폴로스간의 대화에서 자연과 관행이 혼동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자연속에서는 불의를 당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연 속에서 대다수가 개인보다 강하며, 대다수에 의해 제정된 법은 자연에 맞는다고 반박한다.

 

'자연과 관행은 대게 서로 상반되지요. 자연에서는 불의를 당하는 것처럼 더 나쁜 것은 무엇이든 더 수치스럽지만, 관행에 따르면 불의를 행하는 것이 더 수치스럽기 때문이지요.(483a).... 내 생각에 법을  제정하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 즉 대중인 것 같아요.(483b)... 그러나 내 생각에 더 나은 사람이 더 못한 사람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 더 무능한 사람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자연 자체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483d)
'그런데 자연에서는 대다수가 개인보다 더 강하지 않은가?(488d) 그렇다면 대다수의 법은 더 강한 사람들의 법일세... 대다수의 법은 동등한 몫을 갖는 것은 옳고, 불의를 행하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다는 것 아닌가?'(488e)

카리클레스는 사치와 무절제 등이 미덕이라고 주장하고, 소크라테스는 좋은 것과 즐거움은 다른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단순히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아첨이라는 폴로스와 대화 결론(수사학은 아첨이다)으로 돌아간다.

'나는 더 훌륭하고 더 지혜로운 사람이 더 열등한 사람들을 다스리고 이들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자연의 정의라고 믿어요.(490a)... 그럴 재력만 있다면 사치와 무절제와 자유야말로 미덕이자 행복이죠.'(492c)
'결핍과 욕구는 모두 괴로운 것이라는데 자네는 동의하는가?(496d)... 마시는 것은 결핍의 채움이자 즐거움이겠지?(496e)... 목마를 때 마신다고 자네가 말할 때, 그것은 누군가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네.(496e)... 그러면 좋은 것들은 즐거운 것들과 같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들은 괴로운 것들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기 때문이지.'(497d)
'이런 즐거움들 가운데 몸에 건강이나 힘이나 몸의 다른 미덕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좋은 것이고, 그와 정반대되는 것들을 가져다 주는 것들은 나쁜 것인가?(499d)... 그 대상이 몸이든 혼이든 그 밖의 다른 것이든 이처럼 더 좋은 것인지 더 나쁜 것인지는 따지지도 않고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아첨이라고 주장하네.'(501c)

 

카리클레스는 이후 논쟁을 중단하고, 소크라테스 혼자 대화를 이어간다. 좋은 것을 위해 즐거운 것을 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건하고 불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것을 위해 즐거운 것을 행해야 하네.(506c)... 인간들에 대애서 적절한 것을 행하는 것은 올바른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신들에 대해서 적절한 것을 행하는 것은 경건한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네.(507b).. 부당하게 따귀를 맞거나 몸이나 지갑이 잘리는 것이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세. 나는 정당한 이유 없이 나를 치고 나를 자르고 내 자신을 잘라가는 것이 더 수치스럽고 더 나쁘다고 주장하네.(508e)... 신들께서 오늘날까지도 승인하시는 그 법이란 다름 아니라 올바르고 경건한 삶을 산 사람들은 죽은 뒤 축복받은 사람들의 섬들에 가서는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 속에 살게 되지만, 불의하고 신을 부인하는 삶을 산 사람은 타르타로스라 불리는 응보와 심판의 감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네.'(523b)

 

제목은 고르기아스지만, 주된 대화는 오히려 카리클레스와 이루어진 대화편이었다. 수사학이 당시 아테나이 청년들이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요즘사법고시, 로스쿨 정도의 위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공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심지어 인문학도 성공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하는 시대다. 그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원론적이지만, 의미있는 대답을 한다.

 

'우리는 불의를 당하지 않기보다는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하며, 특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누군가 어떤 점에서 나빠진다면 처벌받아야 하며, 처벌받고 응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올바르게 되는 것이 본래 올바른 것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이며, 모든 아첨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남들이든 소수이든 다수이든 피해야 하며, 수사학은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정의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말일세.'(527c)

 

진부한 이야기같지만, 같은 이야기가 2500년에 걸쳐 계속 나오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이루지 못한 목표이기 때문 아닐까. <고르기아스> 전편에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을 위해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는 세상. 우리는 그런 세상을 언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것'은 무엇이고, '즐거운 일'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ps. 소크라테스는 제화공, 축융공, 요리사, 의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대화편의 거의 모든 논증에서 이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에, '소크라테스의 4대 천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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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세트 - 전10권 (꼴 1~9권 + 신기원의 꼴 관상학)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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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은 제목 그대로 `관상`에 관한 책이다.

몇 년전에 읽어 내용이 상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관상 중에서 저자가 `코`의 생김새와 `눈빛`을 강조한 것은 기억이 남는다. 또, 얼굴의 특정부분이 잘 생긴 것보다 얼굴전체와의 조화를 더 중요하게 강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상에 대해서는 시각적인 설명이 서술설명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전체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에 허영만화백의 상세한 묘사가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 다만, 관상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터득될 수는 없기에, 책의 풍부한 내용이 하루 아침에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한계가 아닌 내 자신이 담을 수 없는 한계. 그렇기에, 전문가가 아닌 이 책만 접한 초보독자가 자신이 잠시 접한 짧은 지식만으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편견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살필 때 이용하면 좋를 것 같다.

`매일 매일 새로워져라`는 「대학」의 경구처럼 매일 자신의 기색을 살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작은 표정과 행동이 나를 만들고, 주변 사람과 나를 조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 그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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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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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은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간 이루어진 '에로스(Eros)'를 두고 이루어진 대화편이다. 논의가 끝난 후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잠시 등장한다.

 

 모임에서 파이드로스가 '에로스'에 대한 각자의 찬가를 대화주제로 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신들에게는 시인들이 지어 바친 찬신가와 송가들이 있는데, 유서 깊고 그토록 강력하신 시인 에로스에게는 그토록 많았던 시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찬가 하나 지어 바치치 않았다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177a)

 

 파이드로스의 찬가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되고 인간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신이라고 찬미한다.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들 가운데 한 분이기에 존경받는데, 에로스에게는 부모가 없으며, 산문에서도 운문에서도 그의 부모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라네.(178b)... 그리고 에로스는 가장 오래되었기에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다네.(178c)'
'게다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남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네.(179b)... 그래서 내 주장인즉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존경스러우며, 인간들이 생전에나 사후에 미덕과 행복을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네.(180b)'

 

 파우나시아스의 찬가
파우나시아스는 연인과 연동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에로스만이 찬미받을 자격이 있는 에로스라고 에로스를 구분한다.

 

 '하지만 에로스는 사실은 한 분뿐이 아니며, 한분뿐이 아니라면 먼저 어떤 종류의 에로스를 찬양해야 할지 규정하는 것이 더 타당할 걸세. 아프로디테는 실은 두 분이니 에로스도 필연적으로 두 분일세... 두 번째 아프로디테와 협력하는 에로스는 당연히 만백성의 에로스라고 불려할 것이고, 다른 에로스는 우라노스의 에로스라고 불려야 할 것이네.(180d)'
 '어떤 행위든지 행위 자체는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네. 오히려 행위가 행해지는 방법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네.(181a).. 그런데 만백성의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는 말 그대로 만백성의 것인지라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일을 해치운다네... 그와는 달리 우라니아 아프로디테에게 속하는 에로스에게 영감을 받은 자들은 본성상 더 강하고 더 지성적인 것을 좋아하여 남성적인 것을 지향한다네.'(181c)
'연인은 연동이 더 지혜롭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게 도와줄 수 있고 연동은 배워서 지식을 증진하기를 열망할 때, 이처럼 두가지 원칙이 완전히 일치할 때에만 연동이 연인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고, 다른 경우에는 절대로 그럴 수 없네.'(184e)

 

에뤽시마코스의 찬가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가 보편적인 현상이며,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를 구분하고, 나쁜 에로스를 경계할 것을 이야기한다.

 

'에로스는 인간의 혼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현상이네.'(186a)
'절제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이나 그런 사랑으로 더 절제 있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은 우라니아 무사(Mousa)에게 속하는 아름다운 천상의 에로스라네. 반면, 범속한 사랑은 폴륌니아 무사에게 속하는 사랑으로..(187e).. 모든 몸에는 이런 이중적인 에로스가 내재한다네.(186b).. 간단히 말해서, 의술이란, 몸을 채우거나 비우는 것과 관련하여 에로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학문이라네.(186d)..음악은 간단히 말해 조화와 리듬에 미치는 사랑의 영향에 관한 지식이라네.(187c)...예언술이 하는 일은 이들 두 에로스를 감시하고 치유하는 것이네.'(188d)

 

아리스토파네스의 찬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가 원래 '남녀추니'였던 인간이 완전해지기 위해 반대편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인간들은 에로스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는데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아.(189c).. 처음에 인간의 성(性)은 셋이었고, 지금처럼 남성과 여성 이렇게 두 성만 있었던 것은 아닐세. 이 두 성의 결합체인 세 번째 성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고 그 자체는 사라져버렸네.'(189e)
'이렇듯 우리 각자는 넙치처럼 잘려 하나가 둘이 된 만큼 온전했던 한 인간의 부절(符節)이며, 그래서 저마다 늘 자신의 부절을 찾는 것이라네.(191d)..우리는 본래 완전한 전체였기 때문에네. 그리고 사랑이란 완전한 전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에 붙여진 이름이라네.'(192e)

 

아가톤의 찬가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외적으로 완벽하고, 내적으로도 정의, 절제, 용기, 지혜를 갖춘 최고의 신이라고 찬미한다.

 

'나는 신들께서 모두 행복하지만 에로스야말로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바일세. 그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니까.'(195a)
'그분은 젊으며, 젊은 데다 부드럽기까지 하다네.(195d).. 누구나 인정하듯 우아함은 에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세.(196a)...에로스는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불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네.(196b)...에로스는 정의뿐 아니라 절제에도 누구보다 많이 관여한다네.(196c)...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자를 제압하는 에로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분이네....에로스가 남까지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지혜로운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겠네.'(196e)

 

소크라테스의 반론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해 찬미하는 대신, 에로스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이 결여된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원하는 에로스는 아름답지 않다고 다른 이들을 논박한다.

 

'에로스가 어떤 것을 원하고 사랑한다면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인가?(200a) 반드시 원하는 주체는 자기에게 결여된 것을 원하고, 결여되지 않으면 원하지 않을 걸세.(200b)'
'그러니 갖고 있지 않는 것, 그 자신이 아닌 것, 결여되어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욕망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네.(200e)...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지, 추함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지?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자네는 아름답다고 말할 텐가?'(201b)

 

만티네이아 여인 디오티마의 에로스

디오티마는 에로스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신(神)도 아니고, 정령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에로스는 중간적인 존재로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통해 불멸을 꿈꾸는 혼의 노력으로 정의된다.

 

'그대는 지혜와 무지 사이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요? 옳은 의견이야말로 그처럼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는 것이라오... 마찬가지로 에로스도 아름답거나 좋지 못하다고 그대가 동의한다고 해서 그분이 추하고 나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것들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202b)'
'에로스는 위대한 정령(daimon)이에요.(202b). 방편이 없던 페니아[가난의 여신]가 포로스[방편의 신]의 아이를 갖기로 작정하고는 포로스 옆에 누워 에로스를 잉태했지요.'(203b)
'지혜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이고 에로스가 아름다운 것에 관련된 사랑이라면,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분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분으로서 필연적으로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204b)
'사랑하는 자들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행위를 통해 사랑을 추구하기에 그들의 열성과 노력이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거죠? 그러한 활동의 목적은 몸과 관련해서도, 혼과 관련해서도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식(生植)하는 것이라오.(206b).. 필멸의 존재는 본성상 가능한 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는 원칙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적용되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 이런 현상은 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혼에도 일어나요.'(207e)
'신들의 사랑을 받고 불사의 존재가 되는 일에는 인간의 본성에 에로스보다 더 훌륭한 조력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네.'(212b)

 

 소크라테스의 말 중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결여했을 때, 그것을 욕망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주변에는 결여되지 않았음에도 욕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우리집 딸아이의 경우 자신이 사탕을 10개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 아빠에게 사탕 1개 나누어 주지 않는다. 혼자 먹는다....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도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며, 수탈을 통해 확대재생산하려는 본능을 가진 거대자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반드시 '결핍'이 욕망의 전제조건은 아닌 듯하다.

 

 욕망의 전제조건은 '결핍'보다는 '탐욕'과 '이기심'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잘못된 전제하에 논의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은 잔치집에 찬물붓는 느낌을 준다. 그 외에 마치  '깔대기'처럼 무슨 이야기로 시작을 해도, 나중에는 '지혜사랑'으로 끝나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이제는 어느정도 뻔한 스토리가 되버린 것 같다. <향연>을 읽고나서, 소크라테스처럼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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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01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향연................심포지움...^^..술이 있는 대화.어울려 마시는 거 ..좋쵸.ㅋ

겨울호랑이 2016-07-01 14:27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yureka01님 마침 불금이네요..ㅋ 비도 오고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오거서 2016-07-01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돈 있는 놈이 돈 걱정을 더 한다잖아요. 탐욕의 예가 되겠지요. 결여된 상태에서 욕망은 본능이겠지만 만족을 모르는 탐욕은 병이 아닐까요.

겨울호랑이 2016-07-01 20:34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오거서님 말씀하신대로 일반적으로는 결여의 상태에서 욕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이겠지만 탐욕으로 인한 욕망은 비정상인 상태, 병인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히 욕망의 원인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원인의 상태까지는 고민을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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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전 케베스와 심미아스와 논의한 내용이 담긴 대화편이다.

케베스의 질문 :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

'소크라테스 선생님,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거죠?'(61e)
'신들은 우리의 수호자들이고, 우리들 인간은 신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옳은 것 같아.... 소유물이 죽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자네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자네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죽인다면 자네는 화나지 않을까?'(62c)

케베스의 재질문 : 철학자들의 죽음

케베스는 철학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순된다며,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철학자는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죽음이 철학자들이 추구한다는 반론을 편다.

'하지만, 그럴 경우 철학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가장 훌륭한 감독자들인 신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나면서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으니까요.'(61d)
'그렇지만, 잘 알아두게, 내가 선하디선한 주인들인 신들 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있네..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후에는 어떤 미래가, 오래전부터 전해오듯 악인들보다는 선인들에게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낙관하는 것이라네.'(63c)
'죽음은 다름 아니라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것이겠지?(64c) 대체로 자네는 철학자가 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되도록 몸에서 떨어져 혼을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64e)
'혼은 언제 진리를 파악하는가?(65b) 어떤 실재가 어디에선가 혼에게 명확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유(思惟)속에서가 아닐까?'(65c)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순수한 지식을 갖고자 한다면 몸에서 벗어나 대상 자체를 혼 자체로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제로 밝혀진 셈이오.'(66d)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혼이 몸에서 풀려나고 분리되는 것, 바로 그것일세.'(67d)

케베스의 질문 : 혼에 관하여

케베스는 혼이 육체를 떠나면 사라진다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죽음과 생성이 순환되며, 이러한 순환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 이후의 '되살아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이 몸을 떠난 뒤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죽는 그날 혼이 몸을 떠나자마자 파괴되고 해체된다고, 말하자면 혼은 몸 밖으로 나오면 숨결이나 연기처럼 흩어져 날아가버려 더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70a)

'죽은 사람들의 혼은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 있다가 이승으로 돌아와 다시 태어난다는 거야.(70d)...그래서 대립되는 것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대립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필연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는 말일세...(70e)... 자고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것에서 생기고 깨어 있는 것은 자고 있는 것에서 생기네.(71d)... 되살아남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사람에게서 살아있는 사람으로의 생성과정이겠지?(72a)..만약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죽고, 죽은 뒤에는 죽은 상태로 머물며 되살않는다면, 종국에는 필시 모든 것은 죽어 있고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72d)

이 부분은 플라톤의 창조신인 '데미우르고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절대신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아닐까 생각된다. 유대교의 창조신 '야훼'는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상태 변화'만 시켰기 때문에, 모두 죽으면 결국 순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데미우르고스'는 <티마이오스>에서 좀 더 자세히 봐야겠다.

심미아스의 질문 : 상기(想起)에 관하여

심미아스의 '상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지식'을 선천적으로 이미 가지고 있다는 논의를 편다.

'우리가 지금 상기하는 것은 언젠가 전에 우리가 배웠던 것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의 혼이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요.'(73a)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식을 얻었다가 태어나는 순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적절한 감각 훈련을 통해서 전에 갖고 있는 지식을 되찾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75e)
'그렇다면 심미아스, 우리의 혼은 사람의 모습을 취하기 전에도 몸과 떨어져 존재했고, 지혜도 갖고 있었겠구먼.(76c)'

소크라테스의 논리에 따르면,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가 있어서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고, 배움을 통해 회상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화한다.

'이제는 우리의 혼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못지않게 우리가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하네.'(77c)

소크라테스는 혼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항상 '지혜'라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혼은 지혜로운 신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불멸인 신에게 가게 되고, 이에 따라 불멸한다고 주장한다.

'결합된 것과 본래 합성된 것은 합성된 부분에서 쉽게 분해될 것이네. 반면 합성되지 않은 것만은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네.'(78c)
'존재하는 것들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두 종류로 설정하기를 원하는가?(79a) ...혼은 몸보다 비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고, 몸은 가시적인 것을 더 닮았네.(79b)...혼이 혼자서 고찰할 때는 순수하고 항상 존재하고 죽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의 영역으로 건너가서 이런 것과 동류인 까닭에 혼자 있거나, 혼자 있을 수 있을 때마다 늘 이런 것과 함께 한다네. 그러면 혼은 헤매기를 멈추고는 동류의 것과 접촉함으로써 변함없이 항상 같은 상태에 머문다네. 그리고 혼의 이런 상태가 '지혜'라고 불리겠지?(79d)'
'그러나 비가시적인 부분, 즉 혼은 그 자체처럼 고귀하고 순수하고 비가시적인 다른 곳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비가시적인 하데스의 나라로, 선하고 지혜로운 신의 면전으로 가게 되는데, 그런 자질과 본성을 지닌 혼이, 대중의 말처럼 몸을 떠나자마자 곧장 흩어지고 소멸하게 될까?'(80d)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은 영혼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편다.

'오히려 철학자의 혼은 이성을 따르고 언제나 이성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의견의 대상이 아닌 참되고 신적인 것을 정관하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감정들에 초연해야 한다고 믿는다네. .. 그런 식으로 수련을 쌓은 혼이라면 몸에서 분리될 때 바람에 날려서 흩어져 없어지고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걸세.'(84b)

심미아스와 케베스의 혼에 대한 의문

이에 대해 심미아스는 혼은 조화라고 주장하며, 케베스는 혼의 소멸이 죽음이라고 주장한다.

'심미아스는 혼이 비록 몸보다 더 신적이고 더 아름답긴 하지만 일종의 조화인 만큼 몸보다 먼저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네. 한편, 케베스는 혼이 몸보다 더 오래간다는 점에는 나에게 동의하지만, 혼이 수많은 몸을 잇달라 닳아 없어지게 한 뒤 결국에는 마지막 몸을 뒤로하고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몸은 계속해서 소멸하기를 멈추지 않는 만큼 이러한 혼의 소멸이야말로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네.'(91d)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 혼은 조화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조화라면 구성요소들간에 상충되거나 부조화가 될 수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혼은 조화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조화가 그 구성요소들과 상반되게 움직인다거나 소리를 낸다거나 그 밖의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네.(93a).... 혼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어떤 혼은 미세한 정도로나마 다른 혼보다 더 혼이거나 덜 혼일 수 있을까?(93b)... 그렇다면 혼이 조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혼 안에 있는 미덕이나 사악함 같은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까?(93c) 혼이 만약 조화라면 올바른 추론에 의해 사악함을 전혀 내포하지 않을 걸세... 모든 생물의 모든 혼은 똑같이 선량할 것이네.(94a) 우리는 혼이 몸의 본능에 반대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네. 혼이 조화라면 긴장, 이완, 진동 등 구성요소들의 조건들과 상충되는 소리를 낼 수 없어 구성 요소들을 따를 뿐 지도하지는 못한다고 합의하지 않았던가?(94c) 호메로스는 틀림없이 혼을 몸의 느낌들을 지도하고 통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조화보다 훨씬 더 신성한 것으로 여겼을 걸세.'(94e)

케베스에 대한 반론 : 혼은 불멸한다.

케베스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이데아'에 대해 정의한다.

'몇몇 경우 형상(이데아)이라는 이름은 형상 자체뿐만 아니라, 형상은 아니지만 형상의 특징을 띨 수밖에 없는 다른 것에도 영원히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네.'(103e)
'대립되는 것만이 대립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점유하는 것 속으로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도 있는데, 대립되는 것과 동행하는 것 역시 자신이 동행하는 것에 대립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 5는 짝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수인 10은 홀수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105a)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이라는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혼은 불멸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케베스를 반박한다.

'무엇이 들어 있기에 몸이 살아있는가? 혼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혼은 무엇을 점유하든 항상 그것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가? 생명에 대립되는 것은 뭐지? 죽음이지요. 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네,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렇다면 혼은 죽지 않네.' (105d)

<파이돈>에서는 영혼불멸, 상기론, 이데아론이 종합적으로 제시된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맞는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정의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심미아스에 대한 반론 (혼은 조화다) 중 소크라테스는 '모든 혼은 선하다'라고 말하며, '미덕은 조화로, 사악함은 부조화'로 해석한다.(93d) 그렇지만, 만일 혼의 속성을 말한다면 '미덕과 사악함의 조화'라고 정의하는 편이 보다 더 정확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내용 - 혼의 단일한/절대적 속성- 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다.

케베스에 대한 반론(혼은 불멸한다) 중 소크라테스는 '혼'은 생명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한다. 이미 '혼'안에 생명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전제 속에 더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혼과 몸이 결합되어 활동하는 상태'라고 합의하고 논의를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더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당부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미덕과 지혜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네. 그 상(賞)은 아름답고, 희망 또한 크기 때문일세.(114d) ... 절제, 정의, 용기, 자유, 진리 같은 혼 자체의 장식물로 장식한 다음 운명이 부르면 언제든 저승으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네.'(115a)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나타난 대화편으로, 초기 대화편들의 핵심요약정리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층 플라톤 사상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갈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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