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주제로는 집요하게 여러번 올리고 있지 않나? 전략적 목표가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검찰개혁 관련 글을계속 올려서 당내 강경파를 조용하게 했듯이 말이다. 대통령이 정병하 특사를 이란에 보낼 때는 구체적 목표를 줘서 보냈다고 봐야 한다. 이번 경우의 목표는, 이란의 동의하에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우리 배들을 빼내려는 거다. - P23

캡슐호텔은 일반 숙소보다 밀도가 높고단위 공간당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건물 용도를 숙박시설로 변경한다고 해도 소규모 시설의 경우 소방시설을 따로점검하지는 않는다. 추가적인 안전조치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 P27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경쟁개방과 혁신 창출에 집중하는 체제로 급격하게 전환했다. 후발 국가의 고도성장보다 더 희소한, 중진국의 선진국 따라잡기가 이 시기 한국에서 일어났다. 이 ‘두번째 도약‘은 고소득층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중산층까지 폭넓게 끌어올렸다. - P34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빠지라는 신자유주의 교리와, 정부 역할의 본질은 재분배라는 분배주의, 양쪽 모두를 거부한다. "국가란 혁신을 지원하는 나라여야 합니다. 경쟁력의 핵심은 혁신입니다. 혁신은 기업 몫입니다마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연구개발, 교육훈련, 인재 육성은 정부가 뒤를 밀어줘야 되는 것이지요."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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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십시오! 저로서는 올바른 것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_ 《국가 정체》 (플라톤, 제1권 338c)


 트라시마코스는 '정의(正義)란 강한 자의 편익'으로 규정한다. 강한 자는 자신의 편익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운용한다. 현실적인 모습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법이라는 제도를 유용하는 모습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본성이니까. 이 지점에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떠올리게 된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단순히 권력을 탐하는 욕망이라기보다, 세계를 해석하고 자기 삶에 형식을 부여하며 가치를 창조하려는 근원적 충동에 가깝다. 그럼에도 트라시마코스의 '강자의 편익'은 니체의 문제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양자는 모두 도덕과 정의의 배후에서 힘의 작동을 본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오랜 역사 속에서 귀족이 권력을 가진 강한 자였고, 이들에 의해 도덕 등 자신들의 가치관이 법제화되어왔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은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이 있으며, 주인의 도덕은 귀족의 도덕이다. 왜 역사 속 지배자들의 입법은 주인의 도덕을 곧장 드러내기보다, 때로는 약자 보호·평등·죄책·의무·금욕의 언어, 곧 르상티망의 도덕을 통해 정당화되어왔는가? 트라시마코스에 따라 강한 자에 의한 입법은 '좋음'의 도덕이 보편화되는 최선의 정체가 되는 대신 노예의 도덕을 지속시키는 '르상티망의 입법'이 되었는가.


 이것은 트라시마코스의 강자는 입법 권력의 소유자이고, 니체의 강자는 가치 창조의 유형이기 때문일까. 현실의 지배자인 트라시마코스의 강자는 법을 만들 만큼 강할 수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도덕 언어는 이미 르상티망의 산물일 수 있다. 반면 니체의 강자는 사회적 신분으로서의 귀족이 아니라, 자기 안의 혼란을 지배하고 자기 삶에 형식을 부여하는 내적 지배자에 가깝다. 그는 '푸른 피'가 흐르는 혈통 귀족이 아닐지라도, 자기 가치의 입법자라는 점에서 도덕의 귀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법의 귀족'과 '도덕의 귀족'의 차이가 아닐까. 아니면, 이는 이데아로서의 '정의'와 현실적인 '법' 사이의 괴리일까. 《국가 정체》가 선의 이데아를 본 철학자의 통치를 꿈꾼다면, 《법률》은 왜 법과 습관과 교육을 통해 인간을 다스리는 현실적 질서로 내려오는가? 이것은 선의 이데아를 향한 정의와 현실의 법 사이에 놓인 간극일까.


 그렇다면 그 어떤 전문적인 지식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를 받는 자의 편익을 생각하며 지시하오. _ 《국가 정체》 (플라톤, 제1권 342d)


트라시마코스는 강자가 법을 만든다고 말하고, 니체는 도덕이 힘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강자가 반드시 니체적 주인의 도덕을 입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지배자는 법을 만들 만큼 강하면서도, 그 법을 정당화하는 언어에서는 이미 르상티망의 도덕을 내면화했을 수 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스쳐간다. 그는 도덕의 귀족은 아닐지라도, 법과 힘과 명분을 운용하는 법의 귀족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이 질문은 마키아벨리 사유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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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이후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에너지안보‘ 개념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나온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복잡하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난다 해도 전력망건설이 뒷받침되고, 시민들이 전기요금 개편을 포함한 ‘불편한 에너지 전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산업구조 개편으로 인한 일자리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 P12

 "청소년과 성인은 완전히 다른 존재다. 청소년은 보호처분을 통해 잘 가르치고 관리하면 달라질 수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소년들에 대해 부정적 인식만을 가지기보다 이웃으로 살아갈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아이를 다 교화하기는 어렵겠지만, 10명의 아이 중 단 3명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일이 아닐까."  - P27

물론 정부 주도의 공공투자와 민관협력을 통해 기업 투자를 촉진하려는 다카이치 정부의 시도는 의미심장하다. 아베노믹스 이후 기업들의 이윤 증가에도 투자는 지지부진했던 상황에 대한 성찰이반영되어 있다. 이는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후퇴하고 국가가 복귀하는 글로벌 경제질서의 흐름을 반영한다.  - P43

한국의 대립적인 정치 구도의 돌파구가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독이 찾은 답은 뭘까. 이들이 지는 싸움을 하는 이유는첫째, 자신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고 떠났다가도 돌아온곳이다. 또 하나는 이게 옳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깨달은 건 희망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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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사주지 등운 스님은 사찰 주변의 초록을되찾는 방법으로 인공조림 대신자연 복원을 택했다. "고운사의 주변산은 매우 가팔라서 사람의 힘으로조림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연의 힘에 맡기는 게 가장지혜로운 방법이다."  - P43

 다른 하나는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변화다. 25년동안 우리 곁에 있었지만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추격형에서 혁신형으로의 전환-이것이 외환위기가 낳은 두 번째 자식이다. 위기가 기득권의 손발을 묶어 혁신형 전환이 너무 늦지 않게 일어났다. 200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의 32%였다. 2024년에는 112%다. 최근25년 동안 한국의 1인당 GDP는 2.9배 커졌다. 일본은 0.83배로, 오히려 줄었다. - P47

이건 본질적인 질문이다. 아프고,
힘들고,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쏟아부어야 하는 현실의 연애, 돈만 내면 완벽한 배려와 설렘을 제공하는 가상의 연애 중 무엇이 더 나에게 가치있을까? 상업적 게임으로서의 연애는 우리에게 감정의 가성비는 물론 짜릿한 도파민을 제공하지만, 진심은 무엇이고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묻게 만든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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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17
리 스핑크스 지음, 윤동구 옮김 / 앨피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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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에 관한 일을 배운 자는 의술에 능하지요? 그리고 그 밖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같은 논리에 따르자면 각각 관련 분야의 것을 배운 자는 그 분야의 앎이 각자에게 부여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자지요? 그러니까 이 논리에 따르면 정의로운 것들을 배운 자는 정의로운 자이기도 하지요? _ 《고르기아스》 (플라톤, 460b)

의료로부터 도출된 정의로운 자. 플라톤 대화편의 많은 논리들은 유비로부터 도출된다.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차이, 행위와 상태의 혼용을 통해 쏟아지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설득당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니체가 문제 삼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수많은 상대적인 지식들을 하나로 묶고 속성을 전이시키며, 그 결과가 시간의 흐름과 다수의 인정 속에 굳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 부른다. 《고르기아스》 안의 논의에서 의사가 사라지고 정의가 남았다면, 역사에서는 개별 사건이 사라지고 추상화된 ‘명사로 응결된 진리’만이 남는다.

진리란 그 기원이 잊혀진, 오래되어 마모된 동전과 같다. 《도덕 외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中

니체에게 '진리'는 처음부터 순수한 실체가 아니다. 저자 리 스핑크스는 이 점을 '진리'와 '은유'의 관계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니체는 진리와 은유 사이의 관습적 구분을 다시 사유하면서, 순수한 진리라는 관념은 그 자체로 은유의 형식이자 삶에 부여된 특정한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_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리 스핑크스, p.111)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선악의 이면에 놓인 의미와 그것을 결정짓는 힘의 계보를 추적한다. 니체는 지금의 '진리'가 중립적 사실의 축적이 아니라, 해석을 강제할 수 있었던 힘의 승리임을 밝힌다. 계보학이 드러내는 것은 명사로 굳어진 '진리' 뒤편에서 작동하던 힘과 해석의 역사다.

계보학적 읽기는 어떤 실천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서사를 제시하기에 앞서 그 실천의 기원에 자리한 '목적'과 '의미'를 확인한다고 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도 계보학적 읽기는 '의미'와 '목적'을 지배적인 힘들의 요구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_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리 스핑크스, p.143)

니체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도덕의 계보학》이라는 하나의 축을 세웠다면, 다른 하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하는 위버멘쉬와 영원회귀의 문제로 이어진다.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지만, 이번에는 《도덕의 계보학》을 읽기 위한 자리에서 멈추기로 한다. 대신, 원전에서 풀어야 할 과제 하나를 안고 가자. 강한 힘들이 '진리'를 전승해 왔다면, 왜 약자의 도덕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는가. 노예들의 가치 전도의 성공 때문일까, 아니면 금욕주의 사제들의 해석 권력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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