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송곳니의 정체는...

얼어붙은 송곳니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는 1996년, 즉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해에 나오키상을 수상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10여년이 지나서 선보인셈. 무엇보다 여성작가답게 심리묘사와 장면묘사가 탁월하다. 500여페이지가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계속되는 세부적인 심리묘사는 읽는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는 첫장면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밤중 레스토랑에서 의문의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한 남자의 몸에서 불이 붙어버린것. 결국 건물 대부분을 태우고 가까스로 진화가 된다. 왜 한남자는 불에 타 죽었을까? 자살일까, 아니면 타살일까? 주인공은 바로 여형사 -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는 기동순찰대 소속 - 오토미치 다카코. 그녀는 특별수사팀에서 베테랑 형사와 한조를 이루어 사건을 쫓는다. 보이지 않는 남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시선.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대놓고 남녀 성차별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군데군데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깔아놓는다. 작가의 심리묘사가 잘 드러나있다.

사건은 해결될 기마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무엇엔가에 물린듯한 흔적을 남긴 시체가 발견된다. 화재와 물린 흔적사이엔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 치밀한 구성과 전개가 돋보인다. 물론 중간에 지리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흥분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남자형사와 여형사와의 심리적 갈등. 여형사라는 이유로 무시해버리는 오랜 경력의 선배형사.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또다른 따뜻함이 담겨있다. 얼어붙은 송곳니는 이렇게 곳곳에 긴장과 인간내면의 갈등, 관계가 잘 배치되어있다. 이러한 것이 이 책의 최고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숨가쁘게 펼쳐지는 추적장면도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것이다. - 생각보다 찌릿하지는 않았지만...

여형사 오토미치 다카코가 나오는 소설이 몇권 더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곧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최근에 노나미 아사의 다른 작품'죽어도 잊지 않아'가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고 한다.  장바구니에 살짝 끼워 넣었다

슈카와 미나토식 이야기

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몽롱한 느낌이 든다. 말도 안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밥, 새빨간 거짓말로 우리에게 알려진 슈카와 미나토의 그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첫작품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꽃밥과 새빨간 거짓말보다는 조금 덜하다는 생각은 든다. 아주는 아니고...개인적으로 다섯편중에서 두번째 '어제의 공원' 과 다섯번째 '월석'이 마음에 들었다.

'어제의 공원'에서 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의 멋진결말과 함께 '월석'은 죽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평범한 마네킹이 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가 보인다는 설정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살아생전 진 빚이 마음속에 남아있어 느끼는 환상같은 것...어쨋든 이 작품을 읽고 이 생각 저 생각 하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을까에 대해서... 두 작품외에 세번째 이야기인 '아이스맨'은 섬뜩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정도 예측은 되었지만 말이다.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은 제목에서 주는 늬앙스처럼 어릴적 도회지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형이나 할머니에게 듣던 약간은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를-달걀귀신도 좋고 방울귀신도 좋고- 듣는것같아 귀를 쫑긋거려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릴적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늦은밤 집에가는 것조차도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경험과 자면서 화장실도 혼자 못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어릴때 그의 이야기들를 들었다면 똑같이 그랬을 것이다.

일탈을 꿈꾸는이 들에게...

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30대는 어땠는지...정신없이 일을 하던 그 시절. 결혼은 다른 사람들의 일인양,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 일에 미쳐 매일 매일 밤을 지새던 나날들. 언젠가 문득 떠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다. 대낮에 회사를 나와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학창시절은 공부하느라,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일에 치이다 보니 정작 가본곳도 없고, 생각나는 곳도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곳은 경춘가도 - 경춘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산소가 있어 버스타고 몇번 가본것이 생각나 선택한 곳이다. - 가속패달을 밟았다. 정신없이. 계기판은 18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작정 떠날때는 '에이, 될대로 될라!' 라는 식이었다. 한참을 달리면서 회사가 떠올랐다. 동료가, 선배가,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찾고 난리가 났을터 - 당시야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다 -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떠나왔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날 사표를 낸다거나 하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일상이 싫었다. 춘천 어디쯤에서 한참을 해메다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을 걱정하며...내 단한번의 일상탈출은 이렇게 끝이났다. 다음날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출근을 했고, 나를 많이 생각해 주던 상사는 아무것도 묻지않았다. 거짓말조차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도 그런 상사가 되고 싶었다. 멋진 상사가, 선배가...

'거짓말의 거짓말'속 주인공의 일상탈출도 그러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속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말이다. 때로는 이해못할 일을 우리는 하게된다. 어떤 말로서도 설득할 수 없는 그런 일. 주인공은 정신없이 달려 한 호텔에 도착해 아무생각없이 멍하니 몇시간을 호텔로비에 앉아있는다. 그리고 늦은 시간 -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여기는 어디의 호텔이라고...곧 돌아갈 것이라고...

얼마후 호텔지배인이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방금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호텔을 예약해 놓았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편하게 쉬라'는 말을 전한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설명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아내는 묻지않는다. 단지 호텔을 예약해줄 뿐...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때가 있다. 때로는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때가 있다. 때로는 멀리 떠나고 싶을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하게된다. 묵묵히 기다리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된다.

나에게 과거에는 기다려줄 사람도, 맞이해줄 사람도, 호텔에 전화를 해서 가슴뭉클한 감동을 전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다. 굳이 일상에서 탈출을 하지 않아도 좋을 가족이 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질 때 - 내가 아닌 아내여도 좋다 - 가슴찌릿한 감동을 선물해 줄지...

P.S. 책은 생각보다 얇다. 넓은 행간에...페이지를 늘리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냥 얇으면 얇은대로 솔직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차피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구입하게 될 텐데 말이다. 그나마 요시다 슈이치의 매력이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영화를 볼까? 원작을 볼까?

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책을 한참 읽다가 "에이 네비게이션 하나면 유괴범의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를 찾아보았다. 대유괴는 작가가 1978년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 작가가 1915년생이니 거의 60이 넘어서 썼다는 말이 되는데...그당시야 당연히 핸드폰도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니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수긍을 하게 되었다.
 
'대유괴' 일본 주간문추 선정 20세기 미스테리 베스트 1위 작품. 최근 우리나라에서 영화화(권순분 여사 납치사건)한 작품으로도 더 유명하다. 어마막지한 재산을 갖고 있는 82세의 할머니. 어느날 그 할머니가 3인조 유괴범에게 유괴를 당하게 되고 그들은 작은 액수의 금액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존심의 문제라며 100억엔을 주겠다고 나선다. 그러면서 3인조 유괴범을 직접 진두지휘를 하며 대 유괴작전을 펼친다. 치밀한 짜임새와 당시로서는 신선했을 내용, 읽는 내내 '왜 할머니가 100억엔을 주겠다고 했을까?'에 초점을 맞춰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대유괴'라는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작품이라는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같다면야 별로 신선할 것도 없고, 유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점과 1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무리 소설이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그 당시에 이같은 책을 쓴다는게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작가의 나이 60이 훨씬 넘어서 쓴 작품이라 완성도나 완숙미가 더 돋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면에 일사천리로 할머니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설정이나 유괴를 정당화 내지는 눈감아 주는 모습등은 지금이라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일 것이다. 분명 유괴는 어떠한 경우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용서받지 못한 행동이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좋은가 소설에서는 무슨일이든지 가능한 일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않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중간 중간에 지루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멋진 결말를 위해서는 그정도 감수를 해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영화를 먼저볼까 원작을 먼저볼까 고민하다가 원작을 먼저 집어들게 되었는데, 영화도 꼭 보고 싶을 정도로 원작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연 원작을 우리영화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게다가 이 작가의 작품이 약 17편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대유괴'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머지않아 그의 다른 작품들이 속속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요즘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 '대유괴'. 영화를 볼까 원작을 볼까 행복한 고민을 해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아홉가지 별난 요리 같은 책

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단편이 주는 묘미는 역시 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장편은 장편나름대로 진득함과 서서히 빠져드는 맛이 있는 반면, 단편은 별식(別食)처럼 하나하나 색다른 맛이 있어 좋은 듯 싶다. 딱히 어느것이 좋다고 결정하기 힘든것이 바로 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게다가 장편인 줄 알고 읽었는데 그것이 단편이었을때 느끼는 기분은 또다르게 다가온다. 바로 '벽장 속의 치요'가 나에게는 그런 류의 책이었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이 상당히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고, 무엇보다 책의 가격이 일반 시중 서점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대부분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고 있다. 시중 서점은 그저 친구들 만날 때나 시간을 보낼때 가끔 들리는 곳 정도. 얼마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서두르다 보니 약속시간이 한참 남아 서점을 찾게 되었다. 워낙 일본소설을 좋아하다보니 가장 먼저 들린곳이 일본소설 코너.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일본소설을 보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많던 소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어 무심코 집어 들게 되었다. 귀여운 계집아이가 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 스럽기도 했지만 왠지모를 쓸쓸함이 전해졌다.

약속시간도 충분해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펼쳐들었다. 마침 첫번째 이야기가 '벽장 속의 치요'여서 당연히 장편인 줄 알았다. 첫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단편인 줄 알게 되었고, 이후로 'call' 과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네번째 이야기 '예기치 못한 방문자'를 읽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시간이 흘러 약속시간이 한참 지난던 것. 부랴부랴 책을 덮고 제자리에 두자니 표지의 치요가 쳐다보는 듯 싶어 책을 놓아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은 구입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머리속에서는 온라인 서점에서 사면 할인에 적립까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읽고 싶은 것을...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 호러와 미스터리와 유령이야기등 9편의 이야기 중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첫번째 '벽장 속의 치요'와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 '살인 레시피', '냉혹한 간병인' 그리고 '늙은 고양이'였었다.

첫번째 이야기 '벽장 속의 치요'는 슬프면서도 아쉬움과 함께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고, 두번째 이야기 'call'은 슬픔과 감동이, 세번째 이야기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는 섬뜻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네번째 예기치 못한 방문자'와 '살인 레시피'는 이전의 작품에 비해 다소 가볍고 코미디스러움이 있어 살짝 웃음이 묻어나오는 작품이었다. 다음 '냉혹한 간병인'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그린 듯 하면서 마지막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늙은 고양이'는 어디서 들은 듯한 이야기 이지만 앞의 '어머니와 러시아 스프'처럼 섬뜻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의 작품이었다. 그외의 두작품도 앞의 작품들 못지않게 재미를 주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었다.

'벽장 속의 치요'를 읽으면서 '바로 이런 맛 때문에 일본소설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 9편이 담겨있는 '벽장 속의 치요'는 좀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절판에 잘 담긴 9가지 별난 요리처럼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것도 그동안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기에 그 새로움이 더 했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오기와라 히로시. 그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있는 또다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