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왕녀 - 상
신일숙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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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줄거리를 그래도 베낀 만화이다.

데뷔 초기라 줄거리에 자신이 없었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아테네도 하이틴 로맨스에서

줄거리를 그대로 따왔다. 처음 출판 당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던 내용이다.

이후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정말 칭찬할 만했지만,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____-;

너무 거창하게 초기에 힘을 주다가 끝에 밋밋해지는 단점을 극복하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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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4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름다운 지옥 1
권지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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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 작가도 그렇구나. ㅎㅎ (무슨 말이냐면, 또 한명의 작가도 -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신경숙이 그렇다는 뜻이다. 이미 같은 제목으로 그녀의 소설 하나에도 댓글을 쓴 바있고.)

하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이 작가는 난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신경숙을 너무도 싫어하는 건 자기연민이 도가 지나쳐서 역겹기 때문이다.  권지예가 마참가지로 나르시시즘 이건 맞지만, 역겨운 자기 연민은 아니긴 한다.

작가를 떼어놓고 본 뱀장어 스튜는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글을 읽고나니 범생으로만 살아온 지식인 여성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구나, 하고 주억거리게 되더라. 욕구는 인정하면서도 결코 자연스레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안지 못하는 구나......머리만 커서 바퀴벌레라도 들여다 보듯, 그 알집과 바동거리는 다리들을 이질적으로 내려다 보듯 자신의 욕구를 내려다보는 구나..싶었다.

'아름다운 창틀'이 결국 '관'이었음 까지 인식하면서도, 고루한 윤리의식에 갇혀있고 스스로도 걸어나가지 못하는 갇힌 욕구는 결국, 자의식과 동일시 못되고....그렇게 그저 pierced 당하는 것 같은 '피동'형의 침탈로 해소되는 구나..말이지...

중년의 여성 작가가 글쓰기를 하며 담아내는 이런 해소되지 못하는 리비도는 보기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이키 광고문구라고 귀에 닳도록 들으라고 틀어주면 나르시시즘적인 마스터베이션은 끝낼 수 있으려나? - Just Do it!이라고 말이다.

후후 (이 웃음은 자조이다...)

뭐 귀에 닳게 되뇌어도 나도 안되더라.  권지예 세대는 아니자만, 비스무리한 배경을 가진 나로서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공적인 글은 안쓸란다. 마스터베이션은 혼자 해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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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양말 2006-03-2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근래 보기 드문 훌륭한 리뷰였습니다.
신경숙 얘기도 그렇구요......(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함)
사실 신경숙 때문에 아예 한국여성작가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니....
이런 훌륭한 리뷰에 추천이 하나도 없어 꾹 누르고 갑니다.
2년이나 지났지만 말이죠.....
 
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피붙이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극복할 지 말입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이해한다고 사랑하는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냥하는 거다.라고 말하고 있지만...함께 자라고 피를 나누었다는 단지 그 이유 만으로 미운정 고운정이 든 형제들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은 힘든일이지요. (하하..제가 그랬다는 소리이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다른 형제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책을 재킷 속지 까지 다 보는데, 이책은 앞쪽 속지는 왼쪽에 공, 오른쪽에 책이 따로 떨어져 있다가 얘기가 다 끝난 뒷쪽 속지에는 공과 책이 함께 놓여 있는 것 보고 빙긋 웃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빨간 모자 이야기 와 병치되는 이야기의 구조와, 어두운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잘 구성한 작가의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동생이 자는 방을 잘 들여다 보면, 벽에 그린 그림도 빨간 모자 이야기이고, 동생 침대 옆 등불도 빨간 모자에 나올법한 집에다, 옷장 옆에는 똑같은 빨간 후드도 걸려 있습니다. 오빠는 빨간 모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동생에게 늑대 가면을 뒤집어 쓰고 동생의 세계에 기어들어오는 '야수성'을 지는 이질적인 피붙이일 뿐이였지요.

터널은 일종의 통과의례입니다. 어둡고 긴 '차이'와 '몰이해'의 터널 저쪽에서 동생은 야수성의 실체는 오빠가 아니라, 나무를 괴물로 보는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투사한 결과라는 걸 깨닫지요. 그리고 그러한 투사의 결과, 자신의 세계에서 오빠는 돌처럼 의사소통이 결여된 존재 였을뿐이구요. 누가 오빠를 돌로 만들었냐구요? 물론 그런 마법을 사용한 건 '상상력'이란 마법을 지닌 여동생이지요. 내 세계에서 당신은 nothing이다, 돌과 마찬가지로 - 이보다 더한 타인에 대한 부정은 없을 테지요.

여동생은 터널 저쪽 세계에서 결국 자신 속의 오빠를 찾아내고, 눈물을 흘림으로써 오빠를 껴안아 다시 오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사랑'하는 피붙이로 받아들입니다.

터널 이전과 터널 이후의 차이가 뭐냐구요? 사실 겉보기엔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죠. 오빠는 여전히 공차기를 좋아할거고, 동생은 차라리 집에서 책만 읽을 거예요. 오빠는 여전히 때때로 늑대 가면쓰고 동생을 놀래키는 장난을 할테죠. 하지만, 가장 큰 차이 무엇보다도, 동생은 이제 자신의 공포를 깨뜨릴 수 있는 마법과 같은 내적의 힘을 얻었다는 거지요. 오빠는요? - 동생의 세계를 정말로 체험했다면, 믿는대로 실현되는 동생의 상상력의 세계가 어떤 힘을 지닌 곳인지 정말로 알았다면, 언명와 무의식적 소망이 가진 엄청난 힘을 깨닫고 조금이나마 공차기 이외에 다른 세계도 기웃거려보지 않을지요.^^;  (아..저는 또 제 소망을 투사하고 있군요. 이런 이런.)

모든 사람에게 이 터널과 같은 극적인 순간이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차라리 대부분 천천히 나이들면서, 자신이 보지못했던 삶의 이면을 긍정하게 되는 건 아닐지요. 그렇다고 언이처럼 동생처럼 될수는 없을테지만, 왜 언니가 동생이 나와는 그리도 달랐는지는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말입니다.

형제없이 외동으로 자라는 울 아가에게는, 타인과 어떻게 융합하는 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긴 말로보다는 이미지로 알려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사실 우리 아가도 아주 좋아합니다. 단, 늑대로 보이는 나무들이 아가의 원초적인(?) 공포심에 상당히

자극적인지 그 부분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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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한글떼기 엄마 글방 12
김효정.김미랑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 아이가 한글을 시작할 때쯤 되었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보다가 이 책 리뷰를 읽고 사게 되었다. 읽다가 첫장에서부터 질렸고, 내팽개쳤다가 틈틈히 화장실서 다 읽었다.

음. 첫째.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결함은 기본적으로 이론적 뒷받침이  허구,라는 점이다.앞 부분에 보면 조기 문자 학습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유명 석학들의 글들을 인용해 놓았는데, 여기에는 너무나도 큰 loophole이 있다. 인용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석학들은 유아 '언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단, 이들은 절대로 '문자언어'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저자는 문자언어, 한글의 교육에 이들의 인용을 끌어다 쓰며 한글 교육의 이론적 기반으로 '오용'하고 있다.

실제 Young Learners 를 위한 영어교육 수업을 듣다보면, 문자 교육에 적합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만 3세반이라고 나온다. 그 이전의 유아를 대상으로 한 언어교육은 문자언어가 아니라 총체적인 언어교육을 말하는 거다. 저자가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자'라면, research를 하는 기본 자세는 알고 있을 것이다 - 남의 이론을 문맥도 도외시 하고 내 주장을 뒷반침하기 위해 어거지로 끌어 맞추면 안된다는 점 말이다. 그럴싸한 석학들의 이론을 인용해서 교육 신화를 맹신하는 일반 어머니들을 오도(misleading)해서는 안된다.

이책의 결말은, 저자 중 한명의 구태의연한 자식 자랑으로 끝나고 있다. 뭐 '자랑'이라고 까지 말할 필요는 없겟지만, 이러한 에피소드식 결말은 단 한가지 사례의 성공(?)을 일반화하게끔 오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간에 언어 영재라며 영어를 어린 나이에도 잘하는 아이들도 꽤 되지만, 그 아이들 중에는 유사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도 있다는 정신과 의사 출신 저술가의 지적도 놓쳐서는 안될 듯 싶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자음 모음 결합 식의 한글 접근법이 아니라 통문자 중심의 학습법을 (섹니에서 많이는 들어봤지만) 아이의 인지 구조를 설명해가며 짚어준 점이다.

한 마디만 더하고 리뷰는 끌내련다. 사실 조기 문자 교육에 대한 비판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경험, 인식들이 수없이 많다. 문자 언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이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되면서 말을 넘어서는 경험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즉, 삳부른 문자 교육은 창의력을 말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가 논리이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직관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껴안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문자의 세계에 너무 아이들을 일찍 들여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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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5-1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관한 다른 분들의 리뷰와 판이하게 달라서 혼란스럽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무례한 말씀이지만... 톡톡캔디님은 자신의 서평이 옳다고 믿으시는지요?!
그러니까, 지나치게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말입니다.
7편의 리뷰들 중 가장 논리적이고 인상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혹시 다른 추천해주실만한 책이 있는지요?! ^^;

톡톡캔디 2004-05-2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객관성을 스스로 평가하라고 하신다면 그건 참, 어려운 요구이시군요.^^; 저는 영어교육학(TESOL)을 공부하면서 '어린이 영어' 수업에서 어린이 학습의 특징들을 배웠습니다. 제가 배운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른 학자들의 글을 인용한 방식은 분명히 학자로서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실제 학자들이 말한바가 절대 '문자 언어'가 아니라 '총체적인 언어' 를 말하는 글들이고, 제가 읽어본 몇몇 학자 분들의 글 또한 그러한데,, 마치 '문자언어' 교육에 대해 그리 말한 것처럼 인용을 한 것은 학자로서의 기본자세에 중대한 결격 사항입니다. 뒷장의 구체적인 실례들은 읽어볼만합니다. 한글 학습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살이전에 문자 교육에 대한 타당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아마 이 책 앞 부분을 번역해서 영어 교육이나 조기 교육 해외 저널 등에 실으면 상당한 지탄을 받을 겁니다. 판단은 스스로 하시기 바랍니다. 조기 어린이 교육은 제 전공 분야가 아니라 저도 추천해 드릴 만한 책은 모릅니다. 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얻으시는 게 어떨지요.
 
너는 펫 8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상은 똑똑해고 지혜롭게 겸손할 줄 알고, 자신을 드러내는 법없이 그림자처럼 보필을 하며, 필요할때면 또 튀어나와(?) 귀엽게 굴어야 하는 존재 아니던가. 그러면서 꼬리 흔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남자를 조종한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혼자 흐뭇하게, 더불어 보는 남자 역시 흐뭇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여자가 아니던가 말이다.

꿈이 있다면,
골치아픈 전통이나, 아들로서의 의무니 입에 달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법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하고 들어온 피곤한 몸을 마사지 해주다가 귀찮다고 하며 알아서 찌그러져서 혼자 게임을 하던가 종이 상자 속에 들어가 버리던가...그러면서 스미레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모모 같은 남자를 본다면, 내 아주 흐뭇할 것이다.^^;

성정치학이라는 표현들을 쓰더만,
그 잘난 쬐~그만 masculinity를 위협하는 여성들이 싫으냐? 그래, 나도 내 평온한 feminity를 위협하는 니네들이 싫고 니네 시스템이 싫다. 동물학적관점에서 인간을 조명하자면, 넘쳐나는 공격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평생 파워 다툼과 위계가 아니면 관계속의 사람은 도통 보지 못하는 남자들이 싫다. 얘기를 통하는 남자를 찾는 건 포기했고, 글쎄, 하나 키우고는 있다. 호호호~~~

펫은 아니고, 울 아들내미 ㅎㅎㅎ (허무개그같다 --__--;)
인간이 얼마나 생물학적 기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 사회화 기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내 아들을 통해 보고 싶다고 한다면,
난 내 아들에게 너무도 거창한 역할 기대를 하는 걸까?

고학력? 고신장? 고수입?의 스미레?

그건 꿈같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소수자인 직딩 엄마로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경제력은 힘이라는 거다. 펫은 그래도 키우고 싶은 맘은 없다.

모모는 꿈같은 대상이다. 그렇게 내 삶의 영역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 남자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내힘으로 내 삶의 영역을 지킬 뿐이다. 남들 눈에 강하게 보여도, 스미레처럼 무수히 상처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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