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치마 마트료시카 오늘의 청소년 문학 27
김미승 지음 / 다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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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예쁜 마트료시카 인형이 한복을 입었다. 마트료시카는 인형 속에 작은 인형 그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얼마나 작은 인형까지 나올까 하며 계속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러시아 전통 인형이다. 마트료시카는 행운을 상징한다. 한복 입은 마트료시카 인형에는 어떤 행운이 깃들어있을까.


『검정 치마 마트료시카』는 김미승 작가의 세 번째 청소년 역사소설이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가수의 꿈을 쫒는 소녀의 이야기 『저고리 시스터즈』와 궁녀에서 혁명가로 변신한 여성을 소재로 한 『세상에 없는 아이』를 앞서 발표했다. 작가는 처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여성의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손을 거쳐 한줄의 역사로만 기록됐던 인물들이 생생한 이야기로 살아났다. 『검정 치마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의 고려인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와 사할린(가라후토) 강제 징용 노동자 김윤덕의 삶을 담고 있다. 러시아 국적을 가졌음에도 천대받았던 카레이스키와 일제에 의해 강제 납치 감금된 노동자의 삶이다. 힘없는 나라는 국민들의 고난을 막지 못했다. 그들은 나라없는 국민, 아무도 그 존재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민족을 보듬고 서로를 일으켜 세웠다.


책은 쑤라의 졸업식에서 시작한다. 최우등 졸업자인 쑤라는 카레이스키라는 이유로 시상에서 제외된다. 쑤라의 아버지는 러시아로 귀화한 조선인이다.


아버지는 조선 태생이지만 지금은 러시아에 귀화해 러시아 이름을 가졌다.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건가. 예전부터 카레이스키('고려인'을 이르는 말로, 러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를 뜻한다)라는 말에는 왠지 억울함과 불안이 함께 느껴졌다.

p.14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가 불안정해지면서 일본 식민지 조선인의 지위도 덩달아 흔들렸다. 연해주의 조선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의 밀정노릇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조선인은 이중고를 감당해야 했던 거다. 식민지로 일본에 착취당하는 와중에 일본의 동북아시아 지배 야욕에 동조하지 않을까 하는 주변국의 의심을 받았다. 쑤라가 '카레이스키'라는 호칭에 '억울함과 불안'을 함께 느낀 이유일 게다. 가난을 피해 만주로 러시아로 전전했던 쑤라의 아버지는 타지에서 딸이 느낄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때문에 아버지는 딸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기죽지 마라. 항상 당당해야 해.'

p.14


기댈데 없는 조국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러시아인이 되기 위해 귀화했으면 그만이지 생사가 오가는 조국의 독립에 매달리는 걸까. 지금의 우리에게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조국을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분들과 그 가족들,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됐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쑤라와 그 아버지는 미래를 몰랐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러나 쑤라는 아버지가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러시아 통역관으로서 인정받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빼앗긴 지 수십 년이 넘은 나라를 되찾겠다고 어려움을 자초한 것일까.

p.42


쑤라는 밀정 노릇이 탄로난 아버지가 멀리 사할린 땅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늘 아래 단 하나의 혈육인 아버지를 따라 쑤라의 여행이 시작된다. 아버지에게 혹독하게 교육받은 외국어 실력을 밑천 삼아 일본에 점령된 극동의 섬으로 향한다. 쑤라는 아버지를 만나게 될까.

마트료시카에는 '행운'의 의미와 함께 '어머니'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속에 작은 아이를 품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를 일찍 잃은 쑤라에게 아버지가 선물한 마트료시카 인형은 아버지마저 잃은 아이에게 중요한 의미가 된다. 겹겹이 감싸는 부모를 의미하기도 하고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미처 알지 못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쑤라의 여행은 마트료시카 인형의 의미를 찾는 여행이기도 하다.


쑤라는 마트료시카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왜 마트료시카를 졸업 선물로 주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지금처럼 슬프로 막막한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또 다른 나를 꼭 찾아야겠다.

pp.106-107


아버지를 찾는 길에서 만난 조선인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쑤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패망한 일본인이 철수하고 사할린 섬의 노동자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었을 때다. 쑤라는 조선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 러시아에서 카레이스키라고 멸시당하는 처지지만 낯선 조선에서 사는 일도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누구일까. 조선인 부모에게 태어났으니 조선인일까. 아니면 러시아 땅에서 태어나 러시아 국적을 가졌으니 러시아인일까. 쑤라는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p.182


귀국선은 오지 않았고 사할린의 강제 징용 노동자의 삶도 바뀌지 않았다. 착취자의 얼굴색만 바뀌었을 뿐. 일본인에서 소련인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된 노동자의 삶 속에서 쑤라는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조선어 학교를 세워 노동자 아이들이 우리글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쑤라의 마트료시카가 첫 번째 뚜껑을 연 것이다.


쑤라는 이제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어디서 살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버지, 이제 내 안에 있는 나를 하나 꺼냈어요.'

p.193


실존 인물 김알렉산드라도 강제 징용된 벌목공 노동자들을 위해 일했다. 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직업으로 한 평단한 삶을 버리고 노동자와 조국을 위한 삶을 살았다. 책을 읽으며 여성 혁명가의 생애와 함께 사할린 강제 징용 노동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접할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그런 답답함때문에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에도 자주 읽게 되지 않는다. 이 책으로 사할린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시간의 더께 속에 뭍힌 인물들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일, 역사에서 배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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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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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다.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묘한 책이다. 젊은 작가들을 언급할 때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었지만 실제로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작가가 초대된 모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 작가의 작품은 내 이해 정도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작가의 책을 만났다. 반 정도는 이해한 것도 같고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반 넘어인 것도 같기도 하다. 작가가 젊기 때문일까 추측도 했지만 이해의 어려움은 꼭 세대 차이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작품 해설에서 힌트를 얻었다. 박솔뫼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이상한 것을 써야지. 예쁨 받을 수 없는 것을 써야지. 나는 그런 마음을 가졌다. 금요일 밤의 마음. 차가운 한밤중 홀로 어딘가를 달려 나가는 마음. 내가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는 것은 아무래도 그뿐이었다.

p.241, 박솔뫼, 「수상소감ㅡ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상」, 《자음과 모음》, 2009년 겨울호, 23쪽


'이상한 것', '예쁨 받을 수 없는 것'을 쓰겠다는 작가였다. 작가로서 그런 작품을 작정하고 쓰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작품을 쓴다는 것,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으려한다는 것은 독자를 전제한 일일테다. 그런데 이상하고 예뻐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 봐주길 바라며 만들어낸다니 작가의 책이 묘한 이유가 있다 싶었다.


더 이상한 일은 책장을 넘겨가면서 일어났다.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사과와 오렌지를 깎으며 삼각형을 꿈꾸는 바 직원 이야기, 원인과 결과를 도무지 이어붙일 수 없는 노래방 납치 사건, 서커스단 단장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이 테이블이 되어가는 이야기 등을 '읽을 수' 있었다. "납득할 수가 없군"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다음은, 다음은" 책장을 넘겼다. 이런 일이 작품 해설에서 말하는 '사건적 성격'의 시작일까.


작가와 이야기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서로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박솔뫼의 글이 문예지에 발표되는 소설의 형태로,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것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건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것이다.

p.240, 작품 해설 中


책에 실린 7편의 단편 중 흥미를 끈 것은 「해만」, 「해만의 지도」, 「그럼 무얼 부르지」 세 편이었다. 해만이라는 이름의 섬을 방문한 나의 서술로 이어지는 앞의 두 단편은 여행이라는 모티브가 친근했다. 여행지에서 있을 수 있는 목적없는 그러나 기억을 남기는 만남이 그려진다. 


해만에서 우리는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그러다 말이 없고 흔들흔들거리고 떠나고 돌아가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 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뿐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p.94, 「해만」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 살인범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서사의 큰 줄거리와는 관계없다. 등장 인물들이 대화하는 소재로 쓰일 뿐이다. 정해진 목적없이 그냥 떠나는 여행에 대한 느낌, 여행지의 환경과 사람에게 느껴지는 낯섦과 호기심같은 것들에 공감해서 이해해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쉬운 단어들로 쓰여진 다른 단편들이 어렵게 생각됐던 것은 작가가 가진 생활의 배경과 나의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은 생활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여러 감성의 자장을 나와는 아주 다르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 무얼 부르지」는 광주 태생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광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교토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광주'를 소재로 타인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이야기는 보통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나'는 광주의 역사성을 모호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광주'와 '나' 사이에는 '장막'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 마치 아주 복잡한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기는 어디지? 하고 들여다보아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사자는 아니며 또한 명확한 세계의 시민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었으므로.

p.145, 「그럼 무얼 부르지」


광주를 보는 지금의 시점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광주는 아픈 과거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나 그 역사를 '당사자'로서 느끼기 어렵게 됐다.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죄스러운 일이라 또 솔직하기 어렵다. 작가는 그 어려움을 담담히 쓴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나'에게 '광주'의 시간들은 "내가 모르는 시간으로 내가 더하거나 내게 겹쳐지지 않는 시간들'이다. 주인공은 애써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광주'를 기억하는 실마리가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내게 너도 광주 사람이지 하고 말했는데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아득함을 느끼고 고개를 휙 돌리고 반응도 하지 않고 맥주만 마셨다. 반대편의 말끔한 중년 남자는 매실이 들어간 술을 금세 비웠으며 몇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매실이 들어간 술을 마신 적이 없다.

pp.150-151, 「그럼 무얼 부르지」


'매실이 들어간 술'을 마지지 않는 것,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런 행동이 지금 광주에 대한 기억을 고통스러워하는 것 아닐까. '80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본 매실이 들어간 술을 피하는 일 말이다.


소설가가 말하고자 했던 어떤 것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만 같은 책읽기였다. 이해의 정도를 신뢰할 수 없으니 참신하다고도 신선하다고도 말할 바가 못된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의도 언저리에 닿기라도 한 것이길 바란다. 부디 그 의도에서 그린 먼 곳은 아니었길.


우리는 어디에 닿았을까? 거기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면 결국 그리 먼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겠지 그곳은.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

p.202, 「안나의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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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소원 - 제1회 나다움어린이책 창작 공모 대상 수상작
김다노 지음, 이윤희 그림 / 사계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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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이와 미래는 열한 살 '절친'이다. '절친'은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만큼 친한 친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로만 듣던 절친의 뜻을 새삼 알고 나니 그런 친구가 과연 가능할까 싶다. 운명적으로 만나야 하는 절친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을 수 있는 나이가 또 열한 살 즈음부터일게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때 말이다.


미래와 이랑이는 유치원부터 4학년인 현재까지 같은 학교, 같은 반이다. 매일 등하교도 같이하고 심지어 생일이 같은 것은 '결정적인' 절친의 이유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런 친구 사이다. 그런데 요즘 이랑이가 달라졌다.

이야기는 미래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미래는 친구가 학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랑이의 문제는 집안에 있었다. 이랑이의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헤어지는 일은 과장을 좀 보태자면 세상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일로 느껴지지 않을까. 더구나 이제막 사춘기를 앞 둔 아이라면 더더군다나. 미래는 어떻게 이랑이를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절친의 고민은 미래가 함께 고민하기엔 너무 컸나보다.


사실 가족 문제라면 미래도 '보통'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형사였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 이모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는 그늘 없는 모습이다. 미래의 말과 행동은 '보통'의 가족에 대한 기준을 생각해 보게 했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돼 있을 것이라는 환상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만들어진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대할 때 '다르다'는 편견을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건 아닌지. 부모가 없는 미래가 어딘가 그늘이 있는 아이로 묘사되리라 나의 (잘못된) 추측처럼. 비혼주의자인 미래의 이모가 조카에게 해준 말처럼 우리가 가진 행복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나이 들면서 좋은 게 뭔지 알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거야. 난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늙은 엄마와 어린 조카와 사는 게 더 행복한 사람이야.…"

"꼭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행복한 건 아니야, 미래야."

p.72


미래는 이랑이를 <소원이 주렁주렁>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싶어한다. 이 프로그램에 나가서 소원을 말하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때문이다. 이랑이는 방송에 나갈 수 있을까, 카메라 앞에서 가족의 비밀을 말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문제에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휘둘리게 된다. 아이들은 작기 때문에 같은 상처도 어른보다 더 크게 받아들일텐데.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른답게 좀 더 아이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용기를 내서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또 그런 일들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른의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아이라도 자신에게 이야기해주려는 어른의 마음은 깨닫지 않을까.


우리는 아직 어리지만 바보는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해 준다면 답답함이 덜할 텐데. 어른이 아이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용기가 없어서다.

p.68


이랑이는 자신의 상처보다 부모의 마음을 더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도 부모님이 속상할까봐 참는다. 촬영나온 PD가 아이들에게 해 준 말이 이랑이에게 용기를 줬을까.


"물론 오늘 촬영한 것이 모두 텔레비전에 나가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텔레비전에 나간 소원이 더 귀하고, 못 나간 건 덜하다는 뜻도 아니에요. 소원은 입 밖으로 꺼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발휘하거든요. 우리가 친구들의 소원을 듣고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응원해 줍시다.

p.94


소원을 말해보는 일, 바라는 일이 이뤄지기를 원해서 하는 행동이다. 소원을 말하려면 먼저 생각을 해야한다. 한 가지의 소원만 말할 수 있다면 무척 고심해야 할 듯하다. 그 고민이 소원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일, 시간이 가면 이뤄지는 일인지 혹은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해야할 노력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동안 우리는 소원에 한 발 가까워지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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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마술 클럽 - 아웃사이더 마술사들의 카니발 대소동
닐 패트릭 해리스 지음, 최민우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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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춤추는 마술 클럽일까. 흥겨운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여야 하는 책인줄 알았다. 붉은 카펫이 연상되는 제목 띠 위로 장난기 가득한 다섯 아이와 근심어린 얼굴의 남자 아이가 있다. 띠 아래에는 실크해트롸 얼굴을 반쯤 가리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스페이드 에이 카드를 끼운 미스테리한 남자가 있다. 마술의 세계, 아웃사이더들의 마술은 다른 모양일까. '아싸'는 요즘 말로 '아웃사이더'의 줄임말이었다. 책의 원제목은 'The Magic Misfits'.


작가에게 홀려서 붙잡은 책이다. 배우로 (잘) 알려진 닐 패트릭 해리스다. 근래에 영화 활동을 많이 했지만 내게 남은 그에 대한 기억은 드라마 <천재 소년 두기>와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다. 장난기 가득한 영재 소년 두기를 좋아했고 SF에 나온 코믹한 젠킨스 박사의 모습도 좋았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입장이 됐다. 그는 배우, 프로듀서, 감독 등의 활동에 작가의 면모를 더했다.

책의 시작은 스릴러였다. 안개 가득한 도시의 철도역, 도망치는 아이와 아이를 쫒는 남자가 있다. 잡힐 듯 잡힐 듯 간신히 기어오른 기차는 아이를 다른 세상으로 싣고 간다. 밝은 햇살 아래 도착한 마을은 미네랄 웰스. 소년의 이름은 '카너 로크'. 아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손길과 친구를 만나는 기쁨을 알게 된다.


우연한 만남과 약간의 웃음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정말로 굉장했어요. 그건 마치 거의…….

카터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마치 마술 같았답니다.

p.139


언제나처럼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의 빠른 손을 눈여겨 본 서커스단의 우두머리가 카터에게 은근한 제안을 건넨다. 의지할 데 없는 카터를 자신의 소굴에 끌어들이려고 말이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들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카터는 조금 다르다.


"나는 너 같은 아이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단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어. 갈 곳도 없고. 아마 걔들은 자기가 아웃사이더라고 느낄 거야. 그래서 내가 뭘 하는지 아니? 걔들에게 일거리를 줘. 살아갈 목적을 준다고. 걔들은 날 위해 일하는 걸 무척 행복해한단다."

p.83


카터는 마술을 가장해 속임수를 일삼던 삼촌과 살면서 손재주를 배웠다. 그러나 자신의 욕삼만을 채우는 삼촌의 심성을 배우진 않았다. 카터에게 마술은 사람을 속이는 트릭일 뿐이었다. 아이는 삼촌의 나쁜 짓을 못 본 척한 자신을 자책했다. 미네랄 웰스 마을에서 만난 친구들들과 서커스와 연관된 사건에 휘말린 카터는 이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동안은 오로지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살았죠. 슬라이 삼촌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모면하는 걸 방관했고요. 하지만 바로 지금,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내가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요.

pp.232-233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특별한 아이들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라 입양된 레일라, 다리가 불편한 리들리, 턱시도만 입고 다니는 테오, 사람의 눈길을 끄는 재주가 있는 쌍둘이 올리와 이지. 아이들은 자신의 특별함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카터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했다. 모두가 '아웃사이더'지만 아이들에겐 스스로를 '멋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왜 나한테 잘해 주는 거야?"

"그래야 네가 우리랑 같이 놀 수 있으니까, 바보야. 우리는 모두 그 반대일 때 어떤 기분인지 알거든."

p.152


『아싸 마술 클럽』에는 작가가 많이 투영돼 있었다. 아이의 모습에도 그랬겠지만 두드러져 보이는 건 아이들의 보호자인 버넌씨의 모습에서였다. 작가 닐 패트릭 해리스는 동성연인과 아이들을 입양해 살고 있다. 레일라의 양부인 마술사 버넌씨는 최고의 셰프 버넌 아저씨와 함께 레일라를 입양했다. 작가는 아이들의 모험을 다룬 동화에서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환기해주고 싶었던 거다.


책에는 마술의 비법들이 소개돼 있다. 비밀을 공유하는 일은 더 나은 도전의 밑바탕이 된다는 믿음에서다. 작가가 생각하는 마술의 가치는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것'이다. 카터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마술은 행복에 관한" 것이라고 "웃음에 관한 거고. 사람들이 내면에서 느끼는 감정에 관한" 것이라고.


마술사의 비밀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들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대들이 더 놀라운 위업과 도전을 성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제가 마술의 비밀을 여러분과 나누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미소를 짓도록 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마술의 트릭이라는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p.15


'아싸 마술 클럽' 여섯 아이의 모험은 이제 시작됐다. 이미 4편까지 나온 시리즈의 나머지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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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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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이라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평은 과했다. "기이하고, 재미나고, 당혹스럽고, 불손하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예기치 못한 통찰을 주는 영감 넘치는 탈선"니라는 철학자 레이 브래시어의 지적은 적절하다. 지젝이라는 이름의 무게 덕에 다른 방향의 책을 상상했다. 알 필요가 있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 '마르크스'와 그의 저작 『자본』을 논리적인 저술이 아닌 서사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시작부터 기대와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이택광 교수가 쓴 '책머리에'는 어찌보면 이 책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인물을 평면화하지 않'았다는 점, 마르크스라는 거인을 그저 우러를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놀라운 점이므로.


납작하게 눌렸던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 바커의 소설은 자칫 이런 역사소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미분방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든가, 아버지의 유령을 조우하면서 자신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독백하는 장면들은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단순히 평면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미덕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적 집적물이 눈앞에서 서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p.10




때는 1849년, 사람이 살기에 몹시 부적합한 환경의 런던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런던은 공장지대 한 복판이다. 매연이 공기를 대신하고 바람엔 공장 폐기물 찌꺼기가 날아다닌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은 맹렬히 돌아가지만 환경도 사람도 생(生)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풍경이다. 그 도시에 마르크스가 있다. 그의 모습도 도시의 모습과 과히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혁명이 실패한 후 런던으로 망명했다. 친구 엥겔스와 동료들의 지원 외에는 경제적으로 기댈 데 없는 처지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걸치고 가족들과 단칸방에 산다. 그 와중에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집대성한 책을 쓰려고 고투중이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 해도 아이 셋이 뛰어 놀고 가족 전체가 돌아다니는 와중에 저작에 몰두한다는 일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동료들의 지원도 믿을만하지 않다. 마르크스가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당은 혁명 추구 방식에 대한 생각 차이로 붕괴 직전이다. 그는 분열된 동지들을 하나로 모으고 노동자들의 혁명 의지를 일깨울 책을 쓰고자 했다. 그 일은 생각처럼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저술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료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의문을 품는다.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자네에게 어떤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이제 이 당의 정치적 노선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걸세. 자네의 대안은 무언가, 마르크스? 난 정말 모르겠어. 대체 자네는 정확히 무얼 바라나?"

p.115


마르크스의 런던 생활은 온통 『자본』에 대한 생각뿐이다. 『자본』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아마도 마르크스는 미분을 통해 자본의 수학적 분석을 시도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 수학 수식들을 동원해 자본과 노동을 해설하려는 그의 의도는 번번히 생활의 고난에 가로막힌다.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산책은 채무자들을 피하는 길이어야하고 휴식을 위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집주인의 눈길을 살펴야 한다. 사상가의 지적 위대함은 현실의 궁핍에 가려졌다.


"사실이 그렇죠! 본인 꼴을 좀 보세요. 나리 이름의 재산은 한 푼도 없어요.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징징대고 끙끙대는 거밖에 없잖아요. '내 원고! 내 잉크! 내 똥구멍!' 아내한테는 쉬지 않고 불평을 해대죠. 전 아주 노예 취급을 하고요. … 애들한테는 잔뜩 겁을 주고요. 일은 절대 안 하고, 술은 진탕 퍼마시고, 냄새 풍기고, 친구들한테 빌붙고, 그 머냐… 경제,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개똥 같은 소리를 쓴다고 허송세월만 하잖아요."

p.188


마르크스의 저작은 그 한 사람의 노고가 아니었다. 그의 생계를 잇기 위한 엥겔스의 노력이 있었고 유명했다는 그의 악필을 대필한 아내 예니가 있었다. 가사를 전담해준 헬레네가 있었고 곤궁한 생활을 온몸으로 버텨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가난을 버티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에게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가 해낸 일은 가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집은 기름칠 잘된 기계였다. … 그래도 꽤 효율적인 그 기계는, 우선 엥겔스가 자기 면직 공장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전용하게 한 후, 엥겔스 자신에게 월급을 주고서, 나머지 돈 일부를 빼돌려 마르크스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그 돈을 자기 공장의 고정비와 변동비를 내는 데 썼다. 마르크스의 공장은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생산성만큼은 뒤떨어지지 않았다. 공장 철폐를 목적을 하는 공산주의 공장.

p.301


저술에 몰두하는 마르크스는 광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일상 생활 모두를 책에 대한 생각에 쓸어 넣은 것도 모자라 발상의 전개를 위해 아이의 장난감까지 전당포행을 면치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형상화할 증기기관차 모형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집안을 둘러보며 돈과 바꿀 물건을 찾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린 자본주의의 이탈과 우회에도 그 본질을 간파해야 해. 더 나아가, 불규칙한 등락과 선회 속에서도 그것이 미래로 전진하는 경로를 그려내야 해. 동지들, 그걸 달성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더 긴 철로야."

그가 집 안의 물건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자, 뭐가 남았지?"

p.330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책 『자본』도 그러한 논리로 쓰여졌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자본』을 출판한 직후의 마르크스가 그려진다. 그는 유산 상속과 엥겔스의 지원으로 살만한 집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의 예언을 실현한 듯 프롤레타리아 정부인 파리코뮌이 (잠시 동안이지만) 파리를 통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겐 인생 마지막에 비친 서광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시대가 변했어, 프레드. 우린 새 시대의 시작을 맞고 있어. 이젠 과학이 세상을 지배할 거야. 부르주아의 과학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과학.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 마침내 그들의 진정한 이익에 복무하도록 준비된 과학."

p.438


마르크스도 인간이었다. 약점도 있고 실수도 했다. 평전이 아닌 소설이지만 작가 제이슨 바커는 마르크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만큼 연구가 깊은 사람이다. 소설 내용 모두가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닐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세상을 바꿀만한 사상을 제시한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종기로 고생하고 여색을 탐하며 술집을 전전하는 가운데 자식이 아사하도록 실질 경제 관념이 부족한 사람, 작가가 그린 마르크스다. 주변의 희생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은 그의 사상적 성취는 주변 모두를 잊을 만큼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도 그려냈다.


읽는 내내 마르크스의 '불손'한 '탈선'쪽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작가가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를 묘사한 방식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예니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고 생활고를 견디며 저술 활동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다. 현실 감각없는 귀족 영애의 모습만 그려진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예니와 마르크스를 다룬 다른 독서로 메워야할 빈 구석이다.


소설 『마르크스의 귀환』으로 철학자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상을 얻었다. '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기 위해선 또 다른 (많은) 독서가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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