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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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이라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평은 과했다. "기이하고, 재미나고, 당혹스럽고, 불손하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예기치 못한 통찰을 주는 영감 넘치는 탈선"니라는 철학자 레이 브래시어의 지적은 적절하다. 지젝이라는 이름의 무게 덕에 다른 방향의 책을 상상했다. 알 필요가 있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 '마르크스'와 그의 저작 『자본』을 논리적인 저술이 아닌 서사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시작부터 기대와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이택광 교수가 쓴 '책머리에'는 어찌보면 이 책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인물을 평면화하지 않'았다는 점, 마르크스라는 거인을 그저 우러를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놀라운 점이므로.


납작하게 눌렸던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 바커의 소설은 자칫 이런 역사소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미분방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든가, 아버지의 유령을 조우하면서 자신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독백하는 장면들은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단순히 평면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미덕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적 집적물이 눈앞에서 서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p.10




때는 1849년, 사람이 살기에 몹시 부적합한 환경의 런던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런던은 공장지대 한 복판이다. 매연이 공기를 대신하고 바람엔 공장 폐기물 찌꺼기가 날아다닌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은 맹렬히 돌아가지만 환경도 사람도 생(生)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풍경이다. 그 도시에 마르크스가 있다. 그의 모습도 도시의 모습과 과히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혁명이 실패한 후 런던으로 망명했다. 친구 엥겔스와 동료들의 지원 외에는 경제적으로 기댈 데 없는 처지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걸치고 가족들과 단칸방에 산다. 그 와중에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집대성한 책을 쓰려고 고투중이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 해도 아이 셋이 뛰어 놀고 가족 전체가 돌아다니는 와중에 저작에 몰두한다는 일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동료들의 지원도 믿을만하지 않다. 마르크스가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당은 혁명 추구 방식에 대한 생각 차이로 붕괴 직전이다. 그는 분열된 동지들을 하나로 모으고 노동자들의 혁명 의지를 일깨울 책을 쓰고자 했다. 그 일은 생각처럼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저술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료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의문을 품는다.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자네에게 어떤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이제 이 당의 정치적 노선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걸세. 자네의 대안은 무언가, 마르크스? 난 정말 모르겠어. 대체 자네는 정확히 무얼 바라나?"

p.115


마르크스의 런던 생활은 온통 『자본』에 대한 생각뿐이다. 『자본』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아마도 마르크스는 미분을 통해 자본의 수학적 분석을 시도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 수학 수식들을 동원해 자본과 노동을 해설하려는 그의 의도는 번번히 생활의 고난에 가로막힌다.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산책은 채무자들을 피하는 길이어야하고 휴식을 위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집주인의 눈길을 살펴야 한다. 사상가의 지적 위대함은 현실의 궁핍에 가려졌다.


"사실이 그렇죠! 본인 꼴을 좀 보세요. 나리 이름의 재산은 한 푼도 없어요.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징징대고 끙끙대는 거밖에 없잖아요. '내 원고! 내 잉크! 내 똥구멍!' 아내한테는 쉬지 않고 불평을 해대죠. 전 아주 노예 취급을 하고요. … 애들한테는 잔뜩 겁을 주고요. 일은 절대 안 하고, 술은 진탕 퍼마시고, 냄새 풍기고, 친구들한테 빌붙고, 그 머냐… 경제,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개똥 같은 소리를 쓴다고 허송세월만 하잖아요."

p.188


마르크스의 저작은 그 한 사람의 노고가 아니었다. 그의 생계를 잇기 위한 엥겔스의 노력이 있었고 유명했다는 그의 악필을 대필한 아내 예니가 있었다. 가사를 전담해준 헬레네가 있었고 곤궁한 생활을 온몸으로 버텨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가난을 버티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에게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가 해낸 일은 가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집은 기름칠 잘된 기계였다. … 그래도 꽤 효율적인 그 기계는, 우선 엥겔스가 자기 면직 공장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전용하게 한 후, 엥겔스 자신에게 월급을 주고서, 나머지 돈 일부를 빼돌려 마르크스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그 돈을 자기 공장의 고정비와 변동비를 내는 데 썼다. 마르크스의 공장은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생산성만큼은 뒤떨어지지 않았다. 공장 철폐를 목적을 하는 공산주의 공장.

p.301


저술에 몰두하는 마르크스는 광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일상 생활 모두를 책에 대한 생각에 쓸어 넣은 것도 모자라 발상의 전개를 위해 아이의 장난감까지 전당포행을 면치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형상화할 증기기관차 모형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집안을 둘러보며 돈과 바꿀 물건을 찾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린 자본주의의 이탈과 우회에도 그 본질을 간파해야 해. 더 나아가, 불규칙한 등락과 선회 속에서도 그것이 미래로 전진하는 경로를 그려내야 해. 동지들, 그걸 달성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더 긴 철로야."

그가 집 안의 물건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자, 뭐가 남았지?"

p.330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책 『자본』도 그러한 논리로 쓰여졌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자본』을 출판한 직후의 마르크스가 그려진다. 그는 유산 상속과 엥겔스의 지원으로 살만한 집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의 예언을 실현한 듯 프롤레타리아 정부인 파리코뮌이 (잠시 동안이지만) 파리를 통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겐 인생 마지막에 비친 서광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시대가 변했어, 프레드. 우린 새 시대의 시작을 맞고 있어. 이젠 과학이 세상을 지배할 거야. 부르주아의 과학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과학.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 마침내 그들의 진정한 이익에 복무하도록 준비된 과학."

p.438


마르크스도 인간이었다. 약점도 있고 실수도 했다. 평전이 아닌 소설이지만 작가 제이슨 바커는 마르크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만큼 연구가 깊은 사람이다. 소설 내용 모두가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닐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세상을 바꿀만한 사상을 제시한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종기로 고생하고 여색을 탐하며 술집을 전전하는 가운데 자식이 아사하도록 실질 경제 관념이 부족한 사람, 작가가 그린 마르크스다. 주변의 희생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은 그의 사상적 성취는 주변 모두를 잊을 만큼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도 그려냈다.


읽는 내내 마르크스의 '불손'한 '탈선'쪽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작가가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를 묘사한 방식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예니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고 생활고를 견디며 저술 활동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다. 현실 감각없는 귀족 영애의 모습만 그려진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예니와 마르크스를 다룬 다른 독서로 메워야할 빈 구석이다.


소설 『마르크스의 귀환』으로 철학자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상을 얻었다. '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기 위해선 또 다른 (많은) 독서가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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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혼자 살아갈 너에게 - 서툰 오늘과 결별하기 위한 엄마의 지혜
다쓰미 나기사 지음, 김윤정 옮김 / 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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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혼자서도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는 걸까. 붉은 해를 향해 물을 저어가는 인물의 뒷모습을 담은 책 표지를 보며 든 생각이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의 생활을 꾸리는 일, 그것도 안으로나 밖으로나 말끔한 생활을 만들어가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혼자이게 되면 간섭없이 자유로운만큼 게을러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진실을 깨달은 건 내 살림을 시작하면서다. 그 전에는 사람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일에 그렇게 자디잔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전혀 몰랐었다. 내 살림을 꾸린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살이에 필요한 실전 기술을 자연스레 익혀뒀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혼자 간단히 밥을 차려먹는 방법이라던가, 주변을 깨끗이 유지하는 법, 의류 관리의 기술 같은 것 말이다.


『인생을 혼자 살아갈 너에게』의 저자 다쓰미 나기사는 생활의 기술을 이른 시기에 익혀두기를 권하고 소소한 기술들을 전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자립해서 살기 시작한 아들을 염두에 둔 책이다. 자신이 아들에게 생활의 기술을 찬찬히 알려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저자는 이 책을 미리 준비해 놓고 세상을 떠났다.(불의의 사고였다.)




젊은 시절 몸에 밴 나의 삶의 공간을 꾸려가는 능력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테니까요. 집안일을 소홀히 여기거나 귀찮은 일로 치부하지 말고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소중한 작업으로 삼아 일상 속에서 계속 활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32


참 자상한 책이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까지 표시되어 있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었을까 편집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일까 싶다. 읽다보니 내라도 줄을 치고 싶은 대목들이었다. 독자의 손품을 덜어주는 책 만듦새다.


귀찮고 하시 싫더라도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믿음직한 어른'으로 키워줄 겁니다. 편하다고 생활을 대충대충 하면 인생도 대충대충 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p.53


좀 대충 살면 안되나요, 하는 질문이 밀려올라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바른 길을 알려주려는 어르신의 말씀이시니 인정할 건 인정하는 걸로. 어른이 되는 건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냥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다운 삶을 꾸리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른의 삶이 심오하고 풍요로운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가끔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해서 살고 있구나 싶고 그게 나름 대견할 뿐.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랍니다. 누군가 시간과 관심을 들여 보살피고 키웠던 어린아이에서 스스로 처신할 수 있는 자랍한 어른이 되는 거지요. 나아가 누군가를 지키고 키우는, 어른의 심오하고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p.95


내 살림을 살면서도 우왕좌왕하는 때가 대부분인지라 다른 이의 살림 기술이 궁금해지곤 한다. 아무것도 없이 깔끔한 거실이나 정확하게 각이 잡힌 집안까지는 언감생심, 그저 지금의 상태를 얼마간 개선하는 방법 정도를 알고 싶다. '누가 밥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이라는 제목이 내 마음같았다. 청소나 빨래는 미뤄도 한 두끼도 아니고 먹는 걸 미루는 건 어렵다. 저자가 제시한 기술은 특별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식재료를 갖추라는 것. 다만 끼니 챙기기에 대한 일침만은 따끔하게 받아들였다.


당장 고픈 배를 채우고 귀찮음을 덜 수 있겠지만 그뿐이랍니다. 손쉬운 것만 선택하는 생활이 습관이 되면 삶의 리듬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먹는다는 건 자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먹는 일을 통해 내 몸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요.

p.59


저자는 이 책을 막 독립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썼다. 내가 그 나이의 청년이 되어 이 책을 지침 삼아 자립하는 하루하루를 꾸려보려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싶다. 그랬다면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본 적없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내 살림을 시작하고 멘붕에 빠지지는 않았을테니. 이 책의 제안들이 꼭 자기만의 생활 공간이 있어야 실천해볼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때를 생각해서 누구나 혼자 사는 기술을 터득해 놓아야만 한다.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보듬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함께하기 위한 준비로도 자립의 기술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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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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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를 읽고 알게 된 책이다. 원제는 『wHY READ MOBY-DICK?』, '왜 모비 딕을 읽는가'이다. 어쩌다 한국판의 제목은 『사악한 책, 모비 딕』이 되었을까. 책 소개를 읽지 않고 제목만 봤다면 그냥 스쳐 지날뻔 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저자다. 너새니얼 필브릭. 멜빌이 '뮤즈'로 삼고 숭배했던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과 이름이 같다. 저자도 적시하고 있는바다. 저자는 "이 책 자체만큼이나 이 책이 쓰이기까지 일어난 일들에도 관심이 많"았다. 『모비 딕』을 "여남은 번 읽고 관련된 사실들을 수집하고 연구한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멜빌과 호손의 만남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에서 '발견'했다. 호손에 대한 멜빌의 마음, 멜빌을 대하는 호손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 멜빌은 숭배하고 호손은 마뜩잖아했다. 『사악한 책, 모비 딕』 에는 멜빌이 호손을 만남으로써 『모비 딕』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설명되어 있다.


호손의 차분함에 영향을 받아 멜빌은 고래잡이를 주제로 한 평범한 피카레스크 소설을 쓰는 도중에 손을 멈추고 이 이야기를 호손의 단편에서 읽은 어둠의 힘의 관점에서 통째로 새로이 생각하게 되었다.

p.53


저자는 『모비 딕』을 이해하기 위해 두 작가가 주고 받은 "편지들을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멜빌은 책을 쓰는 동안 호손에게 그때 그때의 진행 상황과 자신의 상태 등을 써서 보냈던 모양이다. '사악한 책'을 써내는 동안 예술적 영감에 휩싸인 멜빌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 두 작가가 나눈 서신의 번역본이 있는지 모르겠다.


호손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역작을 쓰는 동안과 다 쓰고 난 뒤 멜빌의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모비 딕』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만들어낸 개인적 예술적 힘을 이해하려면 이 편지들을 꼭 읽어야 한다.

p.111


멜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호손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모비 딕』의 "진정한 시작점"이었으며 성서도 영향을 미쳤다고 쓰고 있다. 멜빌은 셰익스피어와 성서가 주는 고전의 힘과 호손의 문학적 영향력을 뱃사람으로서의 경험에 녹여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멜빌이 살았던 19세기 중반의 미국이 담겨 있다. 피의 폭풍을 10여년 앞둔 미국이다.


셰익스피어가 『모비 딕』에 비판적 영향을 미쳤고, 또 멜빌이 젊은 시절 태평양에서 한 경험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상상한 성서도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p.69


『모비 딕』의 서사에는 미국의 형이상학적 청사진이 담겨 있다. 거의 내내 바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효과적인 비유와 은유를 집어넣어 1850년대 미국의 풍광과 정서를 담아냈다.

p.69


저자는 멜빌의 창작 과정을 따라간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애식스 호 사건과 멜빌의 포경선 승선 경험을 말이다. 당시 포경선을 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고래 백과 사전이라고 불릴만큼 고래와 포경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이유도 밝혀준다. 『모비 딕』의 시작 부분은 소설의 도입으로 읽기 어려울 만큼 지리한 고래 관련 어원과 발췌문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부분을 읽어냈을 때에야 『모비 딕』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서사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모비 딕』을 읽는다는 것은 포경선에서 여러 해 동안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자기가 본 것 전부를 마음에 새기고, 7년쯤 더 지나 셰익스피어, 호손, 성서 등등을 읽고 흡수한 다음, 젊은 시절의 경험을 앞날에 공포할 목소리와 방식을 찾아낸 작가를 마주하는 일이다. 결국 바로 여기에서 『모비 딕』이라는 소설의 위대하고 탁월한 힘이 나온다. 그 힘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가 보는 것의 경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포용력있고 감수성 예민한 영혼을 가진 작가에게서 나온 것이다.

p.77


소설의 3분의 2 지점을 지나고 나면 독자들은 고래의 해부학적 구조와 고래잡이의 세부적인 내용을 낱낱이 알게 된다. 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래의 신비와 아름다움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면, 멜빌은 에이해브와 모비 딕의 최종 대결을 당당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신빙성이 없고 과장되었다고 느껴졌을 최후의 대결이 그래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인다.

p.78


소설을 완성한 후 멜빌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반응을 마주한다. 불멸의 기억으로 남을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 작가를 알아보는 독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 필브릭은 『모비 딕』 이후의 멜빌이 "회의와 희망이 뒤섞"인 "극기심"을 찾았다고 말한다. 불멸의 책을 쓴 소설가가 마지막에 손에 쥔 것은 삶을 견디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것이 『사악한 책, 모비 딕』의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이 밝힌 『모비 딕』을 읽는 이유라는 것이다.


『모비 딕』을 창작할 때의 흥분감이 가라앉고 나자, 멜빌은 사악한 신과 같은 에이해브가 아니라 실망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익힌 조용하고 과묵한 생존자에게 감동한다. 자신의 불멸성을 더이상 믿지 않게 된 사람에게(곧 보겠지만 멜빌은 그런 상태에 다다랐다) 삶은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삶이다.

p.126


결국 멜빌은 『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지지한 입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천상의 것에 대한 직관, 이 조합으로 신자가 되지도 불신자가 되지도 않고, 양자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회의와 희망을 뒤섞는 데서 오는 구원, 짧고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삶 앞의 온화한 극기심, 이것이 내가 『모비 딕』을 읽는 이유다.

p.130


역자 홍한별의 요약은 이 책의 내용과 의미를 한 단락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모비 딕』을 바로 읽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이고 있는 셈이다. 너새니얼 필브릭의 책이 아직 읽지 못한 벽돌 책 『모비 딕』을 읽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한편 『모비 딕』을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책 『모든 것은 빛난다』를 검색하고 있는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뿐만 아니라 저자는 멜빌이 『모비 딕』을 쓸 당시 미국의 상황, 위대한 작품을 쓰려는 멜빌과 그를 말없이 지켜본 작가 호손의 일화, 그리고 출간 당시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던 『모비 딕』이 훗날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과정 등을 엮어 넣으며, 『모비 딕』에 켜켜이 쌓인 깊고 다양한 의미를 읽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모비 딕』이 시대를 뛰어넘는 식견과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는 정신을 담아낸 책이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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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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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이어 『누가 봐도 연애소설』까지. 소설가 이기호의 책은 제목에서부터 코믹한 뭔가가 내장되어 있을 것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라니, 이렇게 연애소설임을 강조하는 소설은 왠지 연애소설이고 싶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일 것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도 연애소설이고 싶은 책을 연애이야기겠거니 하고 읽는 것이 이기호 작가의 책을 읽어본 독자의 자세라고 하면 과한 것일까.


이기호 작가를 알게 된 건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때문이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가 않을 수가 없는 삶이 계속 되던 때가 있었다. 꼭 집어 말하라면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심신이 피폐해지는 그런 시기였다. 작가의 소설 제목을 듣자마자 무슨 얘기로 아무렇지 않음을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책의 어떤 부분에서 아무렇지 않을 가능성을 발견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능청스런 유머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게 풀어내지만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것만 생각난다. 정색하고 쓴 소설의 문장을 쓴 작가의 표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에 이은 세 번째 짧은 소설을 모은 책이다. 십여 장이 넘는 단편도 아니고 정말 책 서너 장에서 끝나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심오한 단편 읽기에 미숙한 독자지만 이기호 작가의 짧은 소설에는 적응하기 쉬웠다. 작가의 글 재주 때문인지 친근한 소재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책 읽는 속도 보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멍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해야하는 아빠, 돈에 집착하는 치매 할아버지,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별거 부부, 아무데로나 가달라는 손님을 태운 택시 운전기사 등. 이야기의 등장인물의 면면도 이걸 어쩔까 싶다. 매우 특수한 경우를 잡아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독박육아'를 담당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치매로 인한 집착은 흔한 일이다. 별거하는 부부도 다반사고 술 취한 손님을 태우는 택시도 별난 일은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이기호 작가의 시선이 특별하다. 일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을 묘하게 전복시켜 독자의 기대를 벗어난다. 잘 보이고 싶었던 여성에 대한 호감이 강아지에 대한 애정으로 급선회한다던가.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연애와 사랑이다. 독감을 나누고픈 초등생의 사랑도 있고 치매여도 좋은 노년의 사랑, 내놓고 말 못하는 옆집의 짝사랑, 술마시면 생각나는 미련, 오래전에 지나간 사랑도 있다. 각각 한편의 기나긴 소설감이 될 만한 이야기 30개가 모여 있다. 틈 날때 마다 천천히 한 편씩 읽고 싶은 책이다. 읽을 때마다 솟아나는 미소가 있고, 마음을 울리는 연민이 있다. 한 번에 꿀꺽 삼키듯 읽기보다는 한 모금씩 음미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웃음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작가의 전작에서 혼자 낄낄거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변함없이 혼자 폭소하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지리한 장마 안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큭큭거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근래 누가 이렇게 사람을 웃게 만들어줬나 싶다. 아래는 그 결정적 대목의 일부. 궁금하시면 이기호 작가의 신작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어보시길.


"하하하, 이게 참. 제가 이사 가려고 급히 물리치료실을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하하하."

이 사람아, 그게 말이야, 방귀야…….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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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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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태양열이 끓어오르는 여름 풀밭, 까만 눈의 사마귀 한마리가 나를 바라본다. 창을 곧추든 흰색 실루엣의 고대 전사가 망토자락을 날리고 있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의 표지다. 역대 최장의 장마를 맞은 올해 읽기엔 좀 아까운 표지의 책이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앉아 작렬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읽어야 할 듯한데 말이다.


예년같았으면 한 여름에 웬 '호메로스?'했겠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코로나로 인해 선뜻 움직이기도 꺼려지는 이 때 그리스 고전을 읽으며 지중해로 책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다. 실뱅 테송의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아직 안읽은 독자에겐 호메로스를 소개하는 책으로 이미 읽은 독자에겐 호메로스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기회를 만들어 준다.


책은 2018년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2013년에 시작한 <ooo와 함께하는 여름>시리즈의 일환이다. 지금까지 몽테뉴·프루스트·보들레르·빅토르 위고·마키아벨리·호메로스·폴 발레리·파스칼 등을 다뤘다. 이중 국내에 출판된 책은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이렇게 세 권이다. 한 작가를 여름 내내 다루는 프랑스의 방송 기획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그 방송을 정리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니 또한 번 놀랄 뿐이다. 문화적 토대가 두껍기 때문일까. 문학과 책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걸까.


저자는 호메로스를 입체적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2800년전에 쓰인 고대의 이야기로 읽을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세계에 비춰 읽어보자고 말이다.


21세기를 보라. 중동은 분열되고 있고, 호메로스는 전쟁을 묘사한다. 여러 정부가 잇달아 이어지는데, 호메로스는 인간의 탐욕을 그린다. 쿠르드 족은 그들 땅에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고, 호메로스는 찬탈당한 권력을 되찾으려는 오디세우스의 싸움을 이야기한다. 생태학적 재해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데, 호메로스는 인간의 광기를 마주한 자연의 분노를 그린다. 요즘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이 시 속에서 메아리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역사적 요동이 호메로스의 예감을 반영한다.

p.12


머리말 끝에 저자는 이 책에서 호메로스의 시를 "호메로스의 눈처럼" "파란색으로 인쇄"했다고 썼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본은 시구들이 초,록,색이다. 원본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아마존에서 미리보기를 찾아보니 원서는 저자의 말대로 '파란색'의 시가 있었다. 원서와 번역본의 차이, 저자가 파란색으로 시를 인쇄했다고까지 적었는데 굳이 초록색으로 바꾼 이유는 표지와의 통일성때문일까. 국내본의 표지도 좋긴 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조금 더 반영하는 디자인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책은 호메로스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한다. '호메로스'의 정체성부터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 전반을 이야기한다. 말하듯이 씌여진 문장 덕에 책의 가독성이 높다. 어렵게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만한 고대 서사시를 "바다 앞에서, 방 창문 앞에서,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몇 구절 읽어보자"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자질구레한 근심 따우니 떨쳐버리자! 설거지는 내일로 미루자! 모니터를 끄자! 젖먹이 아기들이 울어도 내버려두고" 당장 호메로스의 "노래가 우리 안에서 우러나도록" 해보자고 말이다. 누군가 이렇게까지 읽자고 하면 도리가 없다. 읽는 수밖에.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키클라데스 제도의 티노스 섬에 머물렀다고 한다. 에게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거처를 정하고 바다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호메로스를 느꼈다고 한다. 작가가 살았던 장소에 가서 작품의 "물질적 본질"에 다가갈 수 있었고 "고대 문장紋章의 메아리를 감지"했다고 말이다. 다른 빛깔의 바다와 다른 질감의 바람을 알아야 호메로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좌절했다. 호메로스의 바다, 지중해에 언제 가본단 말인가.


빛과 파도 거품, 바람의 젖을 먹고 자란 늙은 젖먹이, 맹인 예술가의 영감을 이해하려면 그곳은 작은 섬에 머물러 봐야 한다. 장소의 정기가 인간을 기른다. 나는 우리 영혼에 지리의 링거가 꽂혀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풍경의 자식들이다."라고 로렌스 더럴Lawrence Durrell은 말했다.

p.40


책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소개로 이어진다. 작품의 주요 내용을 짚으며 저자의 해설과 현대적 해석이 곁들여진다. 예를 들면 『오뒷세이아』 세이렌을 '빅 브라더'에 빗대는 식이다.


그들의 잔학함은 폭력성에 있지 않다. 그보다 더 지독하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감시하므로 각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안다. '빅 브라더'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그들은 마치 빅 브라더의 화신처럼 맴돌면서 우리를 감시했다.

p.136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의 주요 테마를 소개한다. 영웅에 대해여, 신들에 대하여, 전쟁에 대하여, 히브리스에 대하여. 호메로스를 읽을 때 알고 있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제들이다. 인상적으로 읽은 대목은 신들에 대한 부분이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무슨 신들이 이럴까'싶을 때가 있다. 그리스의 신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시대가 일신교 이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 인들은 신에게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다.


신들은 인간에게 어떤 교리를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신화의 세계는 도덕적이지 않다. 덕성은 회교도들이 하듯이 적법한지 적법하지 않은지로 평가되지 않고, 기독교인들이 하듯이 선한지 악한지로 평가되지 않는다. 고대의 하늘 아래선 모든 것이 솔직하다. 신들은 개인적인 용무로 인간들이 필요했다.

p.228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시대를 읽다보면 이질감만 남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미리 그 시대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고 있다면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년전 두어달에 걸쳐 호메로스를 읽었었다. 무턱대고 잡았던 터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잔혹한 전쟁 장면을 세밀화 그리듯이 반복하는 『일리아스』, 아들이 먼저 등장해 어리둥절했던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속의 두 작품은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실뱅 테송의 가이드에 따라 호메로스를 다시 읽는 여름을 맞이해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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