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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정신세계
뤼시앙 레비브륄 지음, 김종우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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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신- 신의 부재는 입증되지 않는다
앤터니 플루 지음, 홍종락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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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농업위기와 농업경기- 유럽의 농업과 식량공급의 역사
빌헬름 아벨 지음, 김유경 옮김 / 한길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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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전환
루이스 멈퍼드 지음, 박홍규 옮김 / 텍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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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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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듯, 데리다는 이 시대에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 이를테면 뜨거운 감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를 현재 철학사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가로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적절한 단어들의 무의미한 조합으로 정말 자신의 철학이 추구한 목표라는 해체를 몸소 보여주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그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아마도 두 극단적인 평가 가운데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편적인 소개나 다른 비평의 도구나 이름의 차용으로서만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 데리다에 대해 이만한 연구서가 소개되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신간평가단으로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읽고 싶은 책으로 이 『데리다 평전』 을 골라주어, 꽤 무게와 값이 나가는 이 책을 신간평가단 명목으로 받아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론으로서만 알려진 데리다에 대해, 이 책은 원제 ‘Jacques Derrida : A Biography’ 가 말해주듯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히 끼어있어 (데리다를 다룬 다른 책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조금이나마) 편하다. 당연하게도 그도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면서 철학을 시작한 것이 아니므로, 분명히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성장의 과정을 엿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데리다를 다룬 책 치고는 매우 쉽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서 책장 위를 한 발 한 발 밟아나갔다. 

  하지만 이런 일종의 ‘착각’은 몇 페이지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문학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논문을 쓰기 시작한 이후의 부분은, 전기라는 제목이 무색하리만치 그의 저작에 대한 압축·요약에 숨이 가쁘다. 본격적으로 철학적 저작이 등장한 이후 그의 삶은, (이 책만 보았을 때는) 고민과 저술, 그리고 정말 피곤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고 여러 운동들에 참여한 내용만이 간간히 언급될 뿐이다. 대개 전기라 함은 그 책에서 다루는 사람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 주로 다루게되며, 따라서 주변인물의 인터뷰나 뒷이야기 등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전기라기보다는 데리다 입문서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정도로 학술적 내용에 비중이 치우쳐져 있다. 따라서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사상의 편린을 엿보고자 하는 의도로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사실 ‘평전’이란 이름에서 기대하는 내용은, 전기적 사실들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그의 저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책에 매우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제목을 평전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야말로 ‘데리다’ 라는 이름만 붙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제목으로는 이미 여러 책이 나왔기 때문에 메리트가 없는 것일까.


관계

  이 책의 표지에는, ‘데리다는 탁월한 문화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오랜 전통의 연속이다.’ 라는 말이 써있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데리다의 인상은, 철학사의 가장 마지막 언저리에서 모든 이론과 학설에 대한 해체와 파괴를 기획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해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은 현재까지 세워진 여러 체계들에 대해 그 정합성을 아주 면밀하게 검토해보는 일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사실 이런 분석의 다른 이름이다. 이 방법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그는 (분석철학의 논리적 연결 검토와는 달리) 어떤 이론에서 제기하는 세계를 그에 따라 아주 크게 그려본 뒤에, 그것이 정합적이지 않고 언제나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데리다의 이런 철학사적 위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말이지만 아마도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가 겹쳐있다. 하나는 데리다가 연구하고 분석했던 여러 입장들과의 관계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니체를 언급하고 있다. 이 관계는 데리다가 자신의 기획을 펼치는 데 기초가 되며 따라서 그를 규정하는 어떤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또 다른 대적자이기도 했던 구조주의가 세계에 대한 과학의 대상, 세계의 본질로서 제시하는 바로 그 관계이다. 그의 대적은 위에 말한 선배 철학자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온 구조주의 학자들이기도 했다. 여기서의 관계는, 그가 해체하고 싶었던 종류의 그런 관계이다.

  이 두 관계는 서로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하며 그의 작업을 구성해나간다. 그의 해체란 사실 후설이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의 목표, 바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의식 자체로부터 길어낼 수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의 기나긴 여정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단순히 해체라는 파괴적 어감으로만 길어낼 수 없는 그의 철학‘함’은, 후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어떤 지점에서,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동의 원동자를 가정한 것처럼 후설은 현상학이라는 체계에서 완결의 지점을 상정했다면 데리다는 같은 탐구의 과정을 밟아가면서 그 상정이 없었을 뿐인 것 아닐까? 적어도 이 책은 데리다의 해체에 대해 이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듯 하며, 설득력있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니체와 하이데거는 미완의 대가들이다. 그들이 미완인 이유는, 데리다에게 와서야 완결되는 해체의 프로젝트를 아직 다 꽃이 피지 않은 형태로 철학의 역사에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입장과 해체의 연걸고리는, 사실 다른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매우 직관적이기까지 하다. 데리다가 ‘유럽적인 것’이라고 통칭하는 여러 속성들 – 이성, 남자(남근)적, 비혁명적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것들은 역사적으로 완결된 것으로 보여졌다. 그것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석철학과는 달리, 니체는 시적인 강론을 통해 그것이 내적 공백으로 인해 무너질 것임을 예언자적으로 선포했다. 물론 이것은 해석에 따라 그 공백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기에, (데리다조차도 여기에 해당할) 끊임없는 오독과 왜곡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유럽적인 것의 파괴라는 주제로 전유한 데리다 또한 어느 정도의 오독일지도 모른다.

  이 유럽적인 것과 관련해서, 하이데거는 후설의 적통이면서 일종의 이단이다. 인식론에서 출발해 인식의 종착점을 존재의 근원으로 삼은 후설과는 달리, 하이데거는 물구나무선 현상학을 존재론적으로 전회시킨다. 인식(론)의 근거는 결국 존재의, 존재자의 문제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존재의 현상, 존재자의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현상학의 제1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이데거 현상학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이 존재는 결국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통찰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가 끝내는 기초로서의 존재론을 정초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존재론이 은근하게 감추어진 독일 민족의 존재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이데거가 부활시키고 싶었던 ‘위대한 본질 연구의 전통’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이것이 더해져서, 그는 그리스-로마적 철학, 즉 유럽적인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타자

  데리다를 어느 정도 규정지을 수 있는 학문적 위치라는 의미에서의 관계와는 달리, 그가 명시적으로(또는 암묵적으로) 부정하고자 했던 구조주의 학풍에서 쓰는 ‘관계’라는 말의 의미는 필연적으로 타자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들에게 타자란 중첩적 관계의 총체이다. 소쉬르에게는 각 기호들이 차이에 의해서 맺는 관계들의 총체이며, 푸코에게는 다양한 사회적 권력 관계들의 총체이다. 이 책에 따르면 데리다와 평생동안 인연이 있었다는 알튀세르는, (그가 분석한 마르크스의 교설에 따라) 최종심급의 수준에서 구조화된 경제적 관계의 총합으로서 타자를 규정한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를 논할 때는 반드시 그 관계의 목표이자 대상으로서 타자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데리다가 타자에 대해 논할 때는 이들의 연구성과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성과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데리다의 존재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널리 알려진 ‘차연’이다. 차연의 개념은 구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반구조주의적이다. 구조주의자들이 부정하였으며 부정하고 싶었던 전통은, 구체적 존재자로서의 타자 그리고 그 타자의 존재(성)을 규명해내는 것을 타자 자체가 발현하는 여러 속성들에 대한 명석판명한 인식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던 순진함이다. 타자는 관계들의 총합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알튀세르의 개념을 빌리자면, 철학은, 그것이 세계를 올바로 통찰하는 철학이라면 더 이상 철학일 수 없으며, 과학 – 구조에 대한 과학, 관계에 대한 과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구조의 과학은 세계로부터 시간을 축출해낸다. 시간이 빠진 세계는 변화하지 않고 그 모습을 영원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태적으로 구조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데리다가 구조주의로부터 얻어낸 결론은 바로 이 지점이다 - 시간의 배제는, 관념으로 세계를 붙잡으려는 고대 그리스 특히 플라톤의 부활이다. 세계는 곧 주체에게 타자인 모든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명백하게도 시간이 있거나 변화가 있다(사실 이 둘은 동의어이다.) 존재자 자체의 변화만큼이나 구조의 변화도 너무나 뚜렷하다. 따라서 존재자 자체로부터 인식을 구하던 전통만큼이나, 구조주의의 과학도 그 실패가 필연적이다. 존재자에 의해서든 구조에 의해서든 그 존재자 자체는 명확하게 밝혀질 수 없다는, 데리다가 내세운 대표적인 학술적 개념인 ‘차연’은 여기에서 탄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데리다에 따르면) 이미 하이데거에 의해 어느 정도는 예언적으로 선포되었다.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란, 타자란 관계든 의식이든 1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속성에 의지한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의 목소리로 타자에게 웅변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이성이나 합리 같은 분석의 방식이 아니라,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공표하는 것과 같이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데리다의 수사법에 따라, 타자에게 닿을 수도,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잘못 배달될 가능성이 있는 우편의 은유는 이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닿는 사건에 더 힘을 주어 말하고 있다면, 데리다는 필연이 아니가 우연에 달려있고 핵심은 그것이 ‘우연’이라는 점에 무게를 싣는다.

  이와 같은 서술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는 것은 데리다가 그 스스로가 고유한 철학의 구축자이자 동시에 ‘충분히 급진화된’ 하이데거 또는 후설이라는 점이다. 그는 앞에서 살펴보았둣 구조주의에 의지하면서 그것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결론은 그가 하이데거에서 종결되는 타자에 대한 의식철학의 전통에 충분히 기대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동시에 그 전통으로부터도 이탈한다.


글쓰기

  규명할 수 없는 타자라는 존재론적 결론은 수사학으로 넘어오면서 확정될 수 없는 텍스트의 의미라는 것으로 그 위상이 변화한다. 어떤 기호는 그것이 담지하는 의미를 그 어떤 순간에도 불변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기호를 읽으며 떠올리는 그 의미는, 이미 내가 읽은 그 시간의 의미이며 따라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전혀 현재적이지 않은 ‘과거’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호의 해석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실수를 범한다. 즉 그 ‘과거’의 기호가 과거로서 종결되지 않고 현재에도 동일한 의미를 계속 지니고 있다고 간주하는 습관이다.

  하지만 의미가 현전하지 않았다고 그것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존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미의 현전 또한 우연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끝없는 표지판으로서 의미를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을 지속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데리다는 ‘말소 하에 두기’, 즉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간주되는 기호 위에 X 표시를 함으로써 드러낸다. 무의미하지 않기에 종이 위에서 말끔히 지워서 드러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의미를 현전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것이 문학이든 철학이든 관계없이 이런 의미론적 상태에 대한 지속적 실천이다. 다시 말하면, 현전하는 의미를 향한 무한한 접근의 실천이다. 의미론과 존재론을 넘나들면, 글쓰기는 차연의 길을 따라 현전하는 존재를 향해 무한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다른 학자들에게도 그들에게 철학을 하는 고유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데리다는 글쓰기라는 아주 평범하지만 복잡한 방법을 철학의 ‘방법’으로서 제시한다.

  그가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글쓰기라는 테마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평생동안 철학을 하는 동시에 문학에 대한 주제 또한 지속적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철학에 대한 글 이외에도, 문학과 그 비평에 대한 글 역시 지속적으로 생산해내었다. 그가 후설을 자신의 첫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도, 문학 – 넓은 의미에서 기호에 드러나는 의식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을 택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에서 그가 주로 문학비평의 방법론으로서 인용되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 아닐까. 이것은 이 책의 목차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평론가에 가까운 폴 드 만과 친교를 유지했고, 그에 의해 미국에 소개된(?) 데리다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평론가였다. 이것은 (아마도) 현재의 경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이 어느 정도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래서 데리다의 이름을 철학서적보다는 문학서적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는 사실 한 가지는, 이 주제 또한 하이데거를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후기의 주제는 다름아닌 시학이다. 철학의 방법이 데리다에게 있어서 글쓰기라면, 그에 비견될만한 하이데거의 방법은 시쓰기, 즉 시학인 것이다. 시는 영원히 드러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알레고리라는 특성 때문에 모든 주체들에게서 다르게 현전한다. 타자는 그 알레고리를 매개로 드러나는 바로 그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주체들이 대면하는 각각의 타자들의 총합 또는 그 이상이다. 일면 데리다적인 이 이야기는, 사실은 데리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이데거의 이야기이다.

  그만큼 이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데리다와 하이데거와의 학술적 관계가 매우 강조되어 있다. 물론 20세기 전체를 뒤흔들었던 철학자이니만큼 그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특히 강조되는 것은 데리다가 어떤 면에서 ‘하이데거의 적통’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히 그의 연구는 데카르트-베르그송이라는 프랑스적 전통에서도 벗어나있고, 당시의 주류라고 할 레비나스에게서도 조금 비켜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이데거는, 그 스스로가 거장이면서 동시에 데리다를 예견한, ‘신화-문학적 선구자’이다.


『데리다 평전』

  이 책을 읽었으면서도, 데리다는 여전히 모호한 존재로 내게 남아있다. 그 스스로가 의미를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결과일지도 모르고, 또는 이 책이 데리다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유령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현전하지 않았지만 현전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러나 막상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한들 결코 파악되지 않을 존재자들의 본성에 관한 은유로서 쓰이는 듯하다. 데리다는 그 스스로가 유령이면서, 유령을 좇아 자신의 철학을 펼쳤지만 그것은 유령을 유령이라고 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으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을까?

  당대의 분위기와 데리다의 저술을 천천히 따라서 밟아나간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 아쉬운 것은, 어느 정도의 편향이나 내용의 누락이 보인다는 것이다. 데리다에 대한 평전이니 어느 정도 그런 면을 감안하기는 해야하겠지만, 대립점을 명확히 소개함으로써 데리다의 입장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낼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구조주의와의 화합과 갈등 같은 국면이라든가, 후기의 대담집인 『테러 시대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하버마스부분을 건너뛴 것 같은 부분이 그렇다.

  헤겔 이후 대륙의 철학이 그렇듯 모순어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질적 변화와 다층적 세계를 지지하는 이론의 구조는 분석철학의 방법론에서는 수용되기가 약간 힘들고,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서로의 언어로 번역되기는 힘든 것인지, 이 책은 아예 그것에 대해 포기하고 있으며 (데리다 스스로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분석철학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군데군데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이렇게 치부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닌데, 하는 불만 또한 드문드문 들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데리다는, 특히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류의 철학 – 분석철학 – 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내겐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다. 대륙의 철학의 어법에 익숙하다면, 이 책은 데리다의 일생과 그 저서에 대한 좋은 압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주로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만큼 데리다의 저서가 어렵다는 것, 어려운 책을 압축해놓으니 그것이 결코 쉬울 리는 없으며 오히려 앞뒤의 맥락이 빠져있어 더 어려워진다는 것, 그리고 작업의 양이 워낙에 많으니 그것을 머리에 다 새겨넣기가 어렵다는 것이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내게는 공부를 하도록 이끄는 자극이 되었지만, 다른 이에겐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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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리 2011-07-2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 메인 신간 안내에 떠서 리뷰를 보는데 또 선배님의 글이. 아 저는 05 ㅈㅇㅈ이에요.

박효진 2011-07-23 20:4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알라딘이 지금 나한테 공부시키는 중... 매달 마감 다가올 때마다 죽겠다 ㅠ.ㅠ
 
[불안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의 시대 -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
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의 잘못

  이번 달에는 내가 선정한 관심도서 가운데 두 권이나 선정이 되어서 무척이나 뿌듯했다. 특히 전공분야에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에 골라보았던 『데리다 평전』 과는 달리, 내게는 새롭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인 경제나 국제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곁들여져 있을 것 같은 이 책은 내 눈길을 더 끌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 달의 신간평가단 관심도서 두 권 가운데 이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제목과 책 소개에서 짐작할 수 있었던 이 책의 내용은,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지, 그리고 그런 경향은 어떻게 확산이 되었으며 그런 시대에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등의 내용들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좌파적 성향을 가진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을 넘기면 넘길수록,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불안은 사람들의 불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환호하고 있었고,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앞쪽 절반을 ‘세계는 좋아지고 있(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불안한가? 이쯤에서 우리는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Zero Sum Future : American Power in an Age of Anxiety. 이 긴 영어가 이 책의 원래 제목, 『제로 섬 미래 : 불안의 시대 속 미국의 힘』 이다. 이왕 영어 제목을 본 김에 책 표지를 좀 더 깐깐히 훑어보기로 했다. 책의 저자는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즈』 의 저널리스트이다. 이쯤되면 점점 (내 입장에서의) 혐의가 짙어진다. 다름이 아니라, 이 두 잡지는 경제적인 정책에서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경제잡지이다. 또 책의 뒷면에 있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는 니알 퍼거슨의 추천사. 이 사람은 공화당 성향의 네오콘이라고 부르기는 무엇하지만, 시장경제의 힘을 신뢰하며 그 힘을 상징하는 미국의 제국적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한 지식인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후반부가 되면 이 책이 강조하는 ‘불안’이란 누구의 불안인지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가 말하는 불안의 시대란, 국제사회의 불안인 동시에 미국의 불안이다. 더 과장해서 저자의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불안이 곧 국제사회의 불안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 국제질서를 주도했던 미국이 더 이상 그 역할을 자임하지 않으려 하고, 또한 그 역할을 떠맡는데 힘이 부치자 그 역할을 대신하려고 하는 여러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국제적 춘추전국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미국의 역할 약화가 곧 국제사회의 불안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불안한가

  ‘아차, 내가 헛다리를 짚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이 ‘불안’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이 책을 뜯어보자.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은, 책 저자인 래치먼이 긴 시간동안 기자로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분석한 내용,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까지 종합하여 정리한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국제정세와 그에 대응하는 미국의 외교정책이다. 이들을 종합했을 때, ‘불안’은 현재 미국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압축적인 단어이다.

  이것이 왜 불안인지는 이 이전의 시대와 대비시켜서 보아야 한다. 래치먼은 불안 이전의 시대를 ‘낙관’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이 낙관의 시대의 경향은 자유민주주의, 즉 시장경제와 인민주권적 민주주의가 결합한 특정한 정치적 형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이었다. 냉전시대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이념적 성채로서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소비에트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가 무너진 이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전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국가가 미국이었다. 실제로 이 이념의 확산을 위하여 걸프 전쟁에 개입하는 등 무력정책도 여러 차례 감행하였으며, 이런 활동에서 얻어낸 긍정적 결과들을 토대로 미국은 세계를 거시적으로 움직이는 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그에게 불안이란 미국이 이런 지위를 잃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이 지위를 잃어가는 일국패권주의의 후퇴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염려하는 바는 미국이 상징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쇠퇴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경제와 정치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이다. 이것의 쇠퇴는 곧 인간의 자유의 쇠퇴와 직결되며, 이는 곧 인간의 행복의 쇠퇴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미국의 쇠퇴에 국한되는 것인지 혹은 진짜 인간의 행복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이 글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매우 모호한 형태로 나타난다.(이렇게 이 책이 읽히는 것을 보면, 나도 래치먼이 이야기하는 반동적 ‘반세계화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가보다.)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는 독재의 부흥과도 연결된다. 세계를 미국과 양분하려는 야심을 지니고 자신만만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래치먼의 분류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독재 국가이다. 이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미국이 예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조차 반미국적인 국민들이 성향 등등을 이유로 독재 국가들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념적 이분법이 적용되는 시기, 즉 냉전의 시대와는 다른 불안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이런 국제정세가 형성되기 이전, 그러니까 저자가 ‘낙관’의 시대라고 부르던 시기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세계가 경제적인 통합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경제의 통합은 좁게는 자유로운 무역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인류가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운명공동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전보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불안의 시대의 국제정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더욱 힘든 구조로 재편되어가고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미국이(또는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매 순간이 바로 ‘불안’의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게 래치먼의 경고이다.

  이러한 분석에, 미국인이 아닌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포함된다. 물론 래치먼의 분석은 한국에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된다. 표면적인데다가 군부정권의 연장이었다고 하더라도 1987년 한국 국민들은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았다. 또한 1992년 우루과이 라운드를 시작으로 세계시장에 편입하였고, 모두가 즐겁게 기억하는 1990년대 초반의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것은 1998년으로 끝난다. 그 이후의 한국사회가 자유민주주의의 확장이었는가 생각한다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마 저자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체적인 경향’이다 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한 이런 경향에는 빈부격차의 확대도 포함되어 있고, 그 또한 이를 시인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말한 ‘낙관의 시대’ 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어두운 특징이다. 미국과 유럽 또한 예외일 수 없고, 미국의 추진하는 세계화 - 즉 자유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은 거의 모든 국가들은 빈부격차의 확대라는 수순을 밟아나갔다. 래치먼은 전지구적인 정치적 통합, 그리고 시장의 통합이 희망적인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을 들어 이 시기를 ‘낙관’으로 정의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 필연적인 빈부격차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충격을 들어 이 시기를 ‘불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세계를 진짜로 지배하는 것은 신념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경제와 정치, 외교의 이야기의 저변에 깔려있는 심리상태를 드러내어 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널리스트로서의 태도일 수도 있고, 동시에 그가 실제로 이 세계를 여러 사람들의 신념과 심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 - 혹은 그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를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빌려온 듯 하다. 그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자주 등장할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쿠야마의 생각에 따르면 따르면, 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모습을 규정하기 위해 여러 이념들이 등장해 각축을 벌였지만 최종적인 승리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주어졌다. 그 이유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개인의 의지를 가장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정치-경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나치와 파시즘의 붕괴, 소비에트 연합의 해체는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들이다.

  이 생각의 핵심은, 이것이 실제 ‘정말 그렇더라.’ 라는 사실판단이 아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준 일종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래치먼의 말대로, 그는 정치학이나 경제학보다는 헤겔의 철학을 기반으로 ‘역사의 종말’이라는 담론을 완성시켰다. 그것은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담론이 책과 사상의 형태를 갖추고 나온 뒤에 많은 정치가들의 지향점을 지배했기 때문에 실제로 효력을 발휘했다. 미국에 한정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국은 당시에 정말로 역사의 종말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이념적 힘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팽배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러했고, 미국을 바라보는 다른 국가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담론이 힘을 발휘한 세계가 바로 ‘낙관’의 시대이다. 조금만 면밀히 이 책을 들여다보면,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경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거나 전쟁에서의 구체적인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이끌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정치적인 지도자, 그리고 그 밖에 어떤 시대를 이끌어갔던 미국 외의 몇몇 국가들의 정치적 지도자나 관료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일관된 생각들은 세계를 실제로 그런 형태로 구획해나갔다. 다양한 인종과 국가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강조했듯이 낙관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모든 국가의 자유민주주의화라는 말로 표현되는 세계화이다.

  불안의 시대를 움직이는 주체도 역시 어떤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일종의 신념들이다. 물론 그러한 신념이 어느 정도는 물질적인 기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념의 진폭은 경제의 진폭보다 크다. 경제위기와 실패에 가까운 경과를 보여주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그 밖에 미국 외적인 많은 징후들은 미국의 정치인과 미국 국민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혼자서 지구를 짊어진 거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미국 국민들은 점점 그 역할을 포기하라고 정부에 종용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 외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던 ‘반미국-반제국’이라는 말을 경제위기 이후에는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런 자신감은 곧바로 국제정치 무대에서 반영되었고,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와 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높아진 신념의 진폭이 경제의 진폭의 크기를 더욱 배가시키는 셈이다.

래치먼의 관점에 대한 의문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반세계화주의자’로서 그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자유민주주의는 승리를 구가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전도사로서 실제로 세계의 부를 늘리는 데 기여하였는가? 설령 정말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미국의 역할로서만 파악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이런 질문들에 나는 반쯤은 회의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아주 매력적인 이념이자 동시에 정치, 경제적인 체제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는 이중적이다. 이 이중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의 금융위기 때였다. 저자도 인정하듯, 여러 구조조정과 흑자정부 같은 것들을 강요하던 IMF와 세계은행 같은 기관들은 미국에게만은 예외를 허가하였다. 세계경제에 미칠 파급력이 굉장하다는 이유였다. 이 행동은 미국 스스로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포기하며, 지금까지 넓혀왔던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정당성을 상실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사실 이 대목은, 비슷한 금융위기로 가장 혹독한 시절을 견뎌낸 한국의 국민인 나로서는 억울하기까지 한 대목이다.

  저자는 낙관의 시대에 미국의 중흥을 이끌었던 핵심적인 요소로 기술의 발전을 미국이 주도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 기술은 한 편으로는 금융공학의 발전이고, 나머지 한 편으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기술의 발전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이것의 실체는 실물생산 즉 제조업 없는 성장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가 주식시장을 통해서만 거래되고 불어났는데, 이것은 저자가 파악한대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어떤 물리적인 힘을 가진 존재나 계획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신념이었다는 것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입증한다. 왜냐하면, 숫자의 장난은 심리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물건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닷컴 버블의 붕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로 또 다시 증명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그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낙관’의 시대 전체가 사실은 불안의 시대의 연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 같은 것들이다.

  실물생산 없는 성장의 실물을 메꿔준 것은 결국 미국이 각국을 상대로 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이다. 미국의 투자자, 미국의 거대 금융기업의 흑자는 미국 국가재정의 흑자로 연결되지는 못했으며, 미국 재정의 유지를 위해서 그리고 금융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정부 재정에서 흑자를 기록해 미국의 국채를 사들였으며 주주인 대형펀드에게 배당금을 쥐어주었다. 저자가 불안의 시대의 특징이라고 강조하는 제로섬게임은 이미 낙관의 시대에서부터 이런 형태로 시작되고 있었다.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인 미국이었지만, 결국 그 형태가 채무로서만 가능했고 다양한 기법으로 그것을 메우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설령 세계의 부는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전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빈부격차가 늘어난 것은, 낙관의 시대에 불어닥친 여러 국면의 경제위기들이 그 위기를 맞이한 당사자들에게 부자와 빈자로 갈라설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본토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상징성은 적었고, 그것은 주변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저금리정책의 주역인 그린스펀은, 본토에서의 위기를 여러 정책적 수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연시킨 훌륭한 학자로 둔갑한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이 책의 관점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는 미국적이다, 너무나도 미국적이다. 낙관은 미국의 낙관이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세계의 낙관이었는지는 의문이 먼저 앞선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그가 낙관의 시대라고 제시한 기간의 절반 동안에 결코 ‘낙관’이 지배한 적이 없었으니까. 

 덧댐. 신간평가단 분위기를 보아하니 절망적인 평가들이 오고가는 듯 합니다...만, 사실 썩 읽을만한 책이긴 합니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시각이긴 하지만 그걸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도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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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숙제> 

1. 들어가는 말

  낭만주의 시기는 회화의 역사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이 때를 거치면서 회화는 형식과 내용, 즉 기법과 주제가 큰 폭으로 확장되었으며, 그 깊이를 더해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제의 확장은 매우 눈여겨볼만한 현상인데, 이것은 회화가 무엇을 그려야하는지에 대한 답변의 변화, 즉 회화의 대상에 관해 던지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따라 이 바뀐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하게 되고, 그것은 곧 회화의 본질을 변화, 확장시키는 작업에 다름아니다.

  특히, 미술사적으로는 이 시기에 풍경화가 특히 대두되는 시기였다. 이전에 풍경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머무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켜주는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었다.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을 모티프 삼고 있는 작가의 주제의식 같은 것들이었다. 그마저도 매우 한정되어 있어, 성화나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옮겨놓는 고전주의적 경향은 그림 속의 세계를 그림 안에 한정시킴으로써 그림의 세계와 감상자의 세계를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그것이 설령 원근법과 명암법을 준수하여 아무리 세밀하게 그려졌다고 하더라도, 회화에 의해 묘사된 것들은 분명히 환상적인 무엇인가였다.

  반면 풍경화의 대두는 이러한 회화의 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인간의 인지 구조를 반영하여 그리는 기법 - 즉 원근법과 명암법은, 개발 당시에는 환상적인 소재들을 실제이게끔 보이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는 점점 변화하였고, 끝내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을 실제로 보고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게끔 하는 국면 또한 열어주었다. 그래서 회화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 가운데, 묘사의 대상을 인물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 또한 행해졌다. 풍경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험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하였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낭만주의 시기 이전까지도 풍경화는 그것을 연구하는 소규모 집단만이 있거나 혹은 화가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화가들의 소일거리로서만 의미를 지닐 뿐이었다. 낭만주의 시기에 와서야 이런 노력들이 표출되어 풍경화가 회화의 하위 장르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영국의 풍경화는 주목할 만하다.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고 그런 경향을 띄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매기던 프랑스의 아카데미 비평계와는 달리, 영국의 아카데미 비평계는 풍경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미학적 개념과 논의를 생산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논의에 힘입어, 또 그렇게 생산된 풍경화들이 다시 그 논의들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영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빠르게 풍경화를 비평적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인 터너와 컨스터블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최고의 풍경화가로서 회화의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렇듯 풍경화를 빠르게 수용한 것은, 풍경화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거나 그것을 폄하했던 예술선진국 - 예를 들어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매우 특기할만한 것이다. 풍경화가 회화의 주제가 아니었던 것에서 회화의 주제로서 편입되는 낭만주의적 경향이 회화의 대상의 확장이라는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때, 영국의 풍경화를 둘러싼 환경을 알아보는 것은 회화의 본질에 대해서 사고하는 과정의 한 가지 양태를 고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회화라는 개념 자체가 일견 무의미해진 현대의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적 배경

  예술사적으로 낭만주의가 발흥한 시기인 18세기 후반은 두 가지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첫째는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충격은 다른 무엇보다도 삶의 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인간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였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점점 수공업에서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로, 그리고 다시 대공장제로 바뀌어갔다. 런던 근교, 그리고 주요 항구도시에는 하루가 다르게 대형공장들이 들어섰고, 사람들 또한 도시로 몰려들었다. 공장은 증기기관으로 가동되기 때문에 매일 많은 양의 석탄이 태워졌고, 밀집한 인구들이 배출해내는 폐기물 또한 자연이 스스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도시적인 환경오염은 자연스럽게 초래되었다.

  반면 대도시 이외의 지역은 아직 산업혁명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목가적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중세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양식을 영위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수확한 것을 먹으며, 자신들의 배경과 자연스럽게 섞여서 살아가는 어떤 전형적인 모습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비도시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덧씌운 것이긴 했지만, 도시의 사람들에게 불어닥친 급격한 변화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데 충분한 조건이었다.

  둘째는 시민혁명이다. 프랑스처럼 순식간에 체제가 뒤바뀌는 급진적 혁명은 아니었지만, 영국 또한 긴 기간에 거쳐 많은 피를 흘린 끝에 시민혁명을 달성해냈다. 산업혁명을 이끄는 계층들도 사실상 이 시민혁명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은 부르주아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예술소비계층으로 떠올랐으며, 예술가들은 이들의 취향을 잘 배려한 작품을 생산해내야 했다. 따라서 예술작품에는 이들이 생산해내는 담론이 충실하게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보다 예술사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의미는 모든 인간들이 인식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고대와 중세에 철학적 보편자는 곧 정치, 사회적인 권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통치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그가 옳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학적인 맥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은 더 이상 이와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모든 이들의 인식의 위계를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바꾸어놓았다. 따라서 대상의 본질을 바라본다거나, 그것을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뚜렷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방법은 보편의 재현에서 개별의 재현으로 점점 옮아갈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이 두 측면에서 모든 유럽국가보다 앞서있었다. 산업혁명과 그에 따르는 경제, 사회적 변화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또한 시민혁명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산업혁명과 함께 두터운 부르주아지 계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들은 풍경화의 탄생 자체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풍경화의 소재와 기법, 그리고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화가의 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당대를 대표하는 여러 작가의 작품 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3. 풍경화를 위한 이론적 도구들

  3.1. 18세기 영국 경험론과 그 미학적 경향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평등한 인식주체들은 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여기에 대한 가장 영국적인 답변은 홉스-로크-흄으로 이어지는 경험주의 인식론이다. 인간은 언제나 경험을 통해서만 타자를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는 경험 이외에 외부에 다가갈 수 있는 매개 또는 능력이 없다. 물리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감각기관에는 어떤 것이 맺히는데, 이것이 인상(impression)이며 경험의 시작이다. 이 인상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상태를 관념(idea)라고 한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희미해지기 때문에 한 번 얻은 관념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념을 다시 떠올려보는 행위는 반성(refletion)이다. 인상과 관념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결합시켜서 인간은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주의적 인식론에서 핵심은 바로 관념이다. 이 관념은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인 절대자 혹은 보편자, 보통 명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관념은 개인에게 고유하다. 그 이유는, 어떤 관념은 그 관념을 만들어낸 인과관계를 거슬러 올라가서 만날 수 있는 외부의 대상과 아무런 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빨강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외부의 대상 안에 빨강이라는 관념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의 구조가 그 인과관계가 빨강이라는 관념을 생성하게끔 이뤄져있기 때문에 나는 빨강이라는 관념을 갖게 된다. 따라서 외부의 단일한 대상을 같은 장소와 시점에서 보더라도, 인식주체가 다를 경우 그것은 다른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경험주의자들에게 미학, 즉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에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것은 바로 관념들이다. 회화 역시 인간의 외부에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경험을 통해서만 접하게 되고 그것을 관념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실제에 가장 가까운 그림이란, 다름 아닌 직접 경험의 순간에 가장 가까운 그림, 최대한 인상에 가까운 관념을 그려낸 그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무엇을 그리는 행위일 수 있을까. 경험주의자들은 단연 ‘관념들을 그려내는 행위’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리는 것은 끝내 내가 경험한 것에 구속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오히려 경험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직접성이 떨어지므로, 점점 허구에 가까워진다. 이전의 회화들이 추구했던 이상성이란, 경험주의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허구 내지는 관념들의 연합에 따른 상상적 사고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미학적인 경험주의자들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개념은 취미(taste, 취향)다. 취미는 미학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가치적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인간이 ‘좋다/싫다’를 판별할 수 있는 근거이다. 물론 이 취미도 경험에 따라 형성된다. 특정한 경험에 반복적으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 관념은 좋은 것이 되고, 그 반대라면 그 관념은 나쁜 것이 된다. 취미에 대한 위와 같은 개념화에서, 자연스럽게 취미는 상대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낭만주의 이전에 고전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의 이상성은, 취미 판단의 상대성으로 말미암아 낭만주의적 경향에서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모든 인식주체들에게 이상적인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즐거움과 기분나쁨으로 환원될 수 있거나, 또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무엇일 수밖에 없다.


  3.2. 자연에 대한 두 가지 시선 - 무관심성과 숭고

  그러나 경험주의 인식론에 기반한 미학적 입장만으로는 풍경화가 미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말 그대로, 경험주의 인식론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이 경험을 통해 인식되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인식되는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인간도 인식되고, 풍경이 아닌 사소한 사물들도 경험을 통해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풍경화이다. 풍경화의 미학적 기반을 찾기 위해서는 경험주의 인식론 이외의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18세기 영국에서 자연에 대해서, 또는 미학적인 감흥을 일으키는 특별한 느낌에 대해서 제시되었던 대표적인 두 가지 개념이 바로 무관심성과 숭고이다. 미학적인 감흥은 인식을 통해 인간에게 느껴지는 여러 즐거움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종류의 것인데, 무관심성과 숭고는 이같은 즐거움을 다른 감각적 즐거움과 구별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된 개념들이다. 특히 이 두 개념은 풍경에 대한 미학적 해석, 즉 자연에 대한 입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관심성이란, 대상을 바라볼 때 자신의 관심사, 즉 자신의 이익과 결부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관조하는 상황을 뜻한다. 근대적 인간, 특히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의 전통에서 자연 혹은 대상은 주체의 행복을 위해 주체의 세계에 편입되고 이용될 수 있는 대상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홉스가 근본적 심리적 이기주의의 형태로 제시한 이래, 경험주의의 전통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기능해왔다.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었을 때 대상은 미학적 대상이 아닌 다른 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줄 수 있는 대상 또는 그 매개체로서 보이게 된다. 아무리 좋은 회화 작품이라도, 그것을 감상하려 하지 않고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 작품은 미학적 감흥이 아닌 다른 감각적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관심성은 미학적인 감흥과 여타의 감각적 쾌락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풍경화에 등장하는 나무는 의자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림 속의 증기선은 인간이 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는 자연을 무관심적으로 포착해내어 그것을 캔버스에 옮긴다. 따라서 그 풍경 안에 등장하는 사물들 또한 무엇인가의 수단이나 매개로서 표현되지 않으며, 그저 그 자체로 그림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며 존재한다.

  이와 같이 표현된 그림을 감상자는 작가의 의도와 기법에 따라 무관심적으로 읽어내고, 그 가운데서 미학적 감흥을 즐기게 된다. 이 감흥은 단순히 예쁜 색깔이 쓰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색깔들이 전형적인 어떤 배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 그림을 통해 생성되는 관념들은 그 그림의 여러 배치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순수하게 인지적인 유희의 상태이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무관심한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18세기 전반에는 무관심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면, 에드먼드 버크가 ‘숭고’를 또 다른 표준으로 제시한 뒤에는 논의의 중심이 자연의 숭고함으로 옮겨갔다.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무관심성 개념과는 다르게, 숭고는 그림 앞에 압도당하며 감상자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는 감흥을 일컫는다. 즉, 자신의 존재와 그림 사이에 밀접한 연관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같은 숭고함은 사실 그림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인데, 화가는 이러한 자연의 숭고함을 캔버스에 옮겨놓고 감상자들이 이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 그것이 더 잘 느껴질수록 좋은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숭고의 핵심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수많은 자연재해들은 그 자체로 아주 역동적인 숭고함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이며, 그 앞에 인간은 자신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또한 이것은 그림으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직접 그림 속에 들어가야만 체험할 수 있는 효과이다. 아무리 압도적인 자연재해라도 그것이 그림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면 감상자는 안심하고 그것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곽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비정형적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감상자에게 그 역동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효과를 낳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된다.

  다른 종류의 숭고함도 있는데, 그것은 아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모든 대상을 인식하지만, 숭고한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인식에 모두 담기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지속적으로 그 모습을 담으려는 시도을 좌절당한다. 인식의 실패에서 느껴지는 이같은 숭고 또한 캔버스에 표현되어야 하며, 그런 감흥을 감상자에게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이 감상자와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두 개념이지만, 그 시선이 자연, 인간의 외부 그대로의 모습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개념에 대한 논의는 인물과 시공간을 설명하는 장치에 불과했던 배경을 회화의 전면으로 이끌어냈다. 풍경, 자연은 그 자체로 충분히 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충분히 느끼게끔 잘 조직된 그림, 즉 풍경화가 미학적인 감흥을 극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림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3.3. 픽처레스크picturesque 유행

  경험주의 인식론, 무관심성, 그리고 숭고 개념은 풍경화의 미학적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론이다. 이같은 개념들은 이후 영국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의 미학 이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무관심성과 숭고 개념은 칸트에게 계승되어, 칸트 미학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 이외에도, 18세기 영국 특유의 풍경화에 영향을 미친 개념은 또 있다. 이를 픽처레스크라고 하는데,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이 말은 일종의 반-프랑스적인 조경 양식을 가리켰다. 당시 프랑스 궁전의 조경은 인위적이고 그것을 잘 관리할수록 좋은 조경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있었다. 풀이나 꽃을 자르고 깎아 일부러 기하학적인 구성과 패턴으로 모양을 냈다. 여러 대칭과 비례들이 엄격하게 지켜졌으며, 그런 조경으로서 그 조경을 관리하는 자의 위대함, 그리고 자연을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양식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도 처음 조경을 알아갈 때에는 이러한 프랑스적 양식을 따라했지만, 점점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식물들을 꺾고 관리하기보다는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두어 기하학적이지 않은 모양을 하도록 일부러 내버려두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방법을 일컬어 픽처레스크라고 했다. 이와 같은 풍경에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들이 17세기 프랑스의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양들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그 어원에서부터 이미 풍경화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 말이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자연스럽고 불규칙하며 곡선적인 모든 예술작품, 특히 회화작품의 특성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물론 이런 뜻 또한 반-프랑스적인 조경양식의 형태에 포함되어있는 의미이기도 했다. 픽처레스크는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졌으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의 예술계를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말이 되었다.

  픽처레스크의 여러 의미 가운데서도, 풍경화와 관련이 있는 것은 역시 자연에 대한 주목이다. 자연을 그려내더라도 그것을 꾸며낸다거나 수식하는 것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것이 이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그림이었다. 영국의 비평계에서 이것은 하나의 미학적인 또는 예술적인 표준이었고, 사람들은 이 의미에 따라서 그림의 완성도와 의미를 읽어냈다.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짜여진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드러냄으로써 감상자 스스로가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픽처레스크적인 성향은 도시의 풍경을 그려내는 것보다는 비도시의 풍경, 흔히 도시인들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그 풍경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도시의 구조물들은 이 세계에서 가장 인위적으로 기획되었고, 그것은 곡선적이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않았다. 반면에 자연은, 마치 클로드 로랭의 그림에서처럼, 매우 아름답고 유려한 존재들의 결합체였다.

  따라서 이 유행은 단순히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도 아니었고, 숭고가 가져다주는 위협감에 시달리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경향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둘 모두와는 다른, 어떤 제 3의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서 픽처레스크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가들은 픽처레스크한 풍경을 찾아서 여행을 다녔고, 그 풍경에 대한 감식안을 높이기 위해 귀족와 부르주아의 자제들도 여행을 자주 다녔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유행뿐만이 아닌, 일종의 사람들의 생활의 방식이기도 했다.


4. 숭고와 픽처레스크의 실제

  4.1. 터너와 숭고

J.M.W. Turner, "Snow Storm".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터너의 후기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함.

  터너의 풍경화는 후기로 갈수록 역동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기법의 측면에 있어서, 후기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사물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고, 전체적인 구도가 닫혀있지 않고 열려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르네상스 시기부터 발전되어 온 원근법을 강의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은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무시하고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으로부터 탈피했다.

  또한 주제의 측면에 있어서, 그는 조난당한 배, 알프스를 넘는 병사들에 대한 묘사 등 인간이 직접적으로 자연의 위엄에 노출되어있는 상황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실제로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 여행의 중간 과정들을 수많은 스케치로 남겨두었다. 그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스케치들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여러 작품들은 실제로 그가 다녀갔던 곳, 그가 보았던 곳들을 그림의 전체적인 주제로 삼거나 시선에 가장 잘 들어오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런 특정한 상황들은 숭고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터너는 숭고 미학에 많은 영향을 받고 그 기준에 충실했던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터너의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숭고의 감정을 캔버스에 보이는대로 그려냄으로써 마치 동떨어진 세계가 아닌, 감상자가 직접 그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물들의 경계가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시각적인 인과의 결과는 그러할지 몰라도 관념의 속성은 아니다. 관념들은 언제나 모종의 혼란에 의해 뒤섞일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으며, 그 형태가 뚜렷하게 기억에 남지 않을 때도 있다. 오히려 단지 스쳐갔을 뿐인 풍경들을 명확히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감행하는 일종의 환상이다. 환상이 아니게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풍경화의 임무라면 터너의 풍경화는 그것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가 숭고를 드러내기 위해 선택하는 대상들은 단순히 자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는 전원적 풍경 못지않게 도시의 풍경 또한 많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그의 도시생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그가 눈에 보이는 존재들을 뿌옇게 처리하여 그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 것은 도시오염의 정확한 결과물이다. 스모그는 항구를 가려버리고 자신의 눈 앞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기법이라기보다는, 대상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감상자의 미학적 감흥을 자극하려는 고도의 계산이다.


  4.2. 컨스터블 - 무관심성과 픽처레스크의 경험

John Constable, "The Hay Wain". 터너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컨스터블의 대표작.

  도회지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터너와는 다르게, 컨스터블은 비도시의 풍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비도시에서 성장하였으며, 어른이 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자신의 고향을 방문하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는 이러한 풍경들을 그의 그림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 실제 그림이 될 만한 곳을 찾아 여행을 다니면서 풍경을 수집하는, 어떤 면에서 전형적인 픽처레스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란 여러 자연물들이 그대로 녹아들어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거나 혹은 그 대상에 자신을 이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전원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감상자에게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미적인 감흥을 일깨워주는 것이 그 그림이 의도한 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터너의 그림에 비해서는 역동성이나 위기감은 덜하며, 대신에 정적인 분위기가 많이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대표작들에 담긴 전원의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하며, 이전에는 그림의 주체로 등장했던 인물들마저 그림 - 그 인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전원 안으로 녹아들어가 있다. 이전의 전통적인 화법에 대한 일종의 역전인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전원은 비-도시의 전형들이다. 도시와 비도시의 구분이 확연히 생겨나기 시작했을 무렵, 도시의 부르주아들에게 자연은 반-도시적인 개념이 중첩되어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곳은 쉬는 곳이고, 나를 편안히 안겨주는 곳이고, 분과 초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며 하루하루 급변하는 도시적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픽처레스크란, 도시 부르주아들의 반도시적 욕망의 표상이다. 컨스터블의 회화는 정확히 그 지점을 재현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반영한다는 의미가 있다.


5. 나오는 말

  낭만주의 시기 이전까지 풍경은 회화에서 독립된 주제가 될 수 없었다. 풍경은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도구일 때도 있으며, 회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몇몇 인물들이 위치한 시간과 공간을 가르쳐주는 역할만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또는 그들이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의 역할만 하기도 했었다. 풍경은 풍경이 아니라 배경이었고, 회화 속의 주인공은 어떤 인물이어야만 했다. 풍경화는 독립된 장르로 자리잡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무르며 회화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기에 들어오면서 배경은 풍경으로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개체로서, 혹은 풍경 그 자체를 드러내어 특별한 미적 감흥을 일궈내기 위해 새로운 주제로서 도입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유럽 전체에서 진행된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영국의 풍경화는 특기할만하다. 주목받는 계기와 그 시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고, 미학적으로 정당화되는 과정도 매우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정치, 경제적 혁명이라는 사회상과 더불어 세 가지 미학적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경험주의 인식론을 미학적으로 변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보이는 것을 인식주체의 내부에 새겨진 그대로 그리는 것이 미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고전주의적인 이상적 형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예술적 대상은 더 이상 캔버스에 담길 수 없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자연에서부터 느껴지는 다른 감각적 쾌락과 미학적인 감흥을 구별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무관심성과 숭고라는 개념이 제시되었다. 자신의 이익에서부터 나오는 어떤 관심사를 적용시키지 않고서 바라보았을 때 순수한 미적인 쾌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무관심성 개념의 핵심이며, 반대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 그리고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장엄함으로부터 느껴지는 인식적 혼란과 충격이라는 자연과의 깊은 관계맺음이 숭고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당대에 영국의 예술적 취향이었던 픽처레스크는 영국 특유의 풍경화 화풍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히 기여하였다.

  이같은 개념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 작가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터너의 경우 숭고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고 구도를 일부러 어그러뜨리거나 열어놓는 방법을 사용하여, 그리고 자연 앞에 무력해진 인간들을 소재로 택하여 그림을 통해 숭고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반대로 컨스터블은 픽처레스크의 전통을 자신의 화풍으로 승화시켜 반-도시적 이미지의 전원 풍경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서 재현한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상, 그리고 컨스터블 스스로가 의도한 자연에 대한 경외와 맞물려 풍경화를 미학적 가치가 있는 회화로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풍경화는 낭만주의 시대의 의미 있는 발견이다.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적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통해 아름다움 이외의 다양한 미학적 감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영국의 풍경화는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아카데미 비평의 여러 개념들과 맞물려 스스로의 미학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대표적인 화가인 터너와 컨스터블은 자신의 시대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여 회화의 주제와 기법을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참고문헌 

마순자, 『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 - 서양 풍경화 전통에 관한 연구』, 아카넷, 2003
미학대계간행회, 『미학의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미하엘 보케뮐, 『윌리엄 터너』(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6
윌리엄 본, 『낭만주의 미술』(마순자 옮김), 시공사, 2003

김한결, 「관념으로서의 미 - 허치슨 취미론의 로크적 토대에 관한 고찰」, 『미학』 37집, 한국미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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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2011-07-17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험주의 철학과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지녔던 '자연의 낭만성' 사이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선생님의 평... 이 있었으나 수정, 보충 없이 그냥 제출... ㅠ.ㅠ
 

<프랑스 문화와 예술 숙제> 

  『어린 왕자』는 자신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알게 되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그래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은 자신의 세계 밖으로 언제나 내쫓아버리는 존재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순수함으로 덧씌워진 가장 근원적인 이기심이다. 이야기의 중심인 어린왕자가 거쳐온 여러 별의 독특한 존재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듯이 보게 되고, 그것이 결정적으로는 지구에 다다라서 완성된다.

  등장하는 존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읽어보면, 어린 왕자를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전달할 뿐이다. 글쓴이의 질문에 어린 왕자는 전혀 대답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 또한 지구 이전의 다른 행성을 여행하며 여러 존재들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도, 사실은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뿐 대화라고 보기엔 힘든 수준이다. 강조되는 것은 오로지 어린왕자의 느낌, 그리고 그 느낌에 의해 비친 그들의 모습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철저하게 소통이 부재된 세계의 모습이다. 대화를 배우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설령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자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데, 이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안되는 페이지에 압축해놓았기에 그 여행이 길어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어린왕자는 정말로 먼 거리를 돌아서 온 것이다.

  따라서 어린 왕자가 ‘어른들’이라고 표현하는 많은 존재들은, 사실 어린 왕자와 구별된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왕자 자신의 거울들이다. 자기 생각, 자기 말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어린 왕자와 동급이다. 그래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은 왜곡되며, 어린 왕자와 꽃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조차도 그 마음을 그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은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 왕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그래서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별에서는 자기 이외의 그 누구도 살 수 없다.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말은, 소통을 배우지 못한 왜곡된 성장들, 실제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정신적 아이들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어린 왕자가 그토록 싫어하는 숫자에 대한 집착 또한 이해할 만한 것이다. 숫자란, 다름 아닌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표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은 두번째 별에서 보듯이 허영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충족적이지 않으며, 상대적 격차에 따라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에 화폐-숫자와 같은 공통된 표준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의 방점은 소통에 찍혀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서로 같은 것들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고, 그것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타자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내야만 한다. 그것이 숫자로는 환원되지 않는 그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물론 이것은 영원 - 즉 보편을 찬양하는 지리학자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정체성은 개별적이며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만, 우리는 타자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더 이상 예전의 아이와 같은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온전히 자신을 보전하는 것에서, 자신을 세계로 - 타자로 확장시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짜 ‘자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장 뒤의 어린 왕자는 더 이상 어린 왕자가 아닌 ‘그’라고 지칭된다. 어른이 되는 것이란, 어린 왕자가 어른들의 세계라면서 배척했던,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아이들의 세계를 가만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표현처럼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술주정뱅이이고 왕이며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고 지리학자로 살아가는 지구라고 할지라도, 결국 어린 왕자가 그랬듯이 지구에서 어른이 되는 이유는 혼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사막에서조차도 왕자는 글쓴이를 만나지 않았던가! 어린 왕자가 배운 것이란 바로 그 공존, 그리고 그들과 말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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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2011-07-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아이/숫자-어른의 구도로 뻔하게 읽는 법을 택하지 않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감행.

육호수 2011-08-26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명/

박효진 2011-08-28 02:3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