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강의
가토 신로 지음, 장윤선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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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듯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관한 해설서이고, 일본 카톨릭 방송이 평신도를 대상으로 마련한 강의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것은 아닌데, 깊이있는 독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견해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고백록>의 서사를 선형이 아닌 원형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즉, 불신자가 신자로 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태어난(즉 존재하게 된) 내가 하나님을 떠났다가(존재를 망각하고) 다시 돌아가며 진정한 나로 존재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고백록은 신앙고백이 아니라 존재증명의 과정이 되며, 입으로 신앙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뼈로" 실존을 말하는 책이 된다.


두번째는 "장소로서의 신"이라는 개념과 신이 머무르는 장소로서의 기억(메모리아)이라는 발상이다. 신이 어떤 존재인지 본질을 밝히는 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밝힘으로써 존재와의 관계를 밝힐 수 있다. 신이 어딘가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것은, 머무르는 존재와 머무름을 알아채는 존재 모두를 가정함으로써 존재는 관계를 전제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드러나는 장소가 기억이다. 기억은 나의 존재의 흔적이다. 즉, 내 존재의 이유인 신의 역사하심의 증거다.


그 기억 속 사건들이(즉 역사하심이) 현재의 나를 만들고, 또 지금의 내가 기억이(즉 역시 역사하심이) 되어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기억은 과거이며 현재인 동시에 미래다. 그게 하나님이 세계를 관장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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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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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전체를 "수양"이라고 하는, 실천의 관점으로 일관되게 정리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시도는, 신화적/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얽혀있는 고대철학의 특성상 신비주의와 영성이라는 (아주 왜곡된) 시선을 드러낼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함정을 아주 절묘하게 피해가면서, 고대철학자들의 말이 어떤 실천적 지침을 제공할 의도로 쓰였는지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의 수양 개념은, 글로 쓰고 보면 대단할 것은 없다. 말과 행동을 같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선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말로 내뱉고, 그 가르침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조금 더 고양된 자신의 몸 전체로써 세계에 스스로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스토아 철학자들도, 에피쿠로스학파도, 회의주의자들도, 나아가 이 세계에 "철학자"로서 존재했던 모든 개인들도 바로 이런 "수양"을 목표로 살았기에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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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박승찬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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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신학자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다. 마음같아선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으나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아 개설서를 읽어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카톨릭 방송에서 진행된 평신도 대상 강연을 옮긴 책으로,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철학의 눈으로 신앙에 접근하다보면 벽에 부딪힌다. 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 이 단계에서 믿음의 논증을 비철학적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대체로 무신론자들이고, 나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가 "철학적으로" 무례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거나 없다는 믿음은 철학적 문제가 아니다. 있다면 왜 있는지, 없다면 왜 없는지 주장하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발상이 진짜 철학적 문제다. 신학을 공부하는 건 그래서 신앙인에게도, 비신앙인에게도 의미있는 일이다.


신이라는 무게와 더불어,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건질 수 있는 주제와 신기한 발상은 다음의 개념들과 연관된다: 존재, 자아, 시간, 자연재해를 수용하는 태도, 도덕적 악의 기원, 자유의지의 본질, 전쟁의 정당성, 역사의 의미.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이들 개념에 관한 그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가 우리에게 준 영향력 때문이고, 독창적으로 느껴진다면 그의 사상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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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 미국의 뉴딜 연합 (1928~36년) 정당론 클래식 3
크리스티 앤더슨 지음, 이철희 옮김 / 후마니타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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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선거와 관련된 장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1930년대 뉴딜 시기 민주당의 우위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분석하는 책이다.


제1당이 되려면 표를 많이 얻어야 한다. 표를 많이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당 표를 빼앗아오거나(전향), 새롭게 유권자가 되거나 투표를 안하던 사람이 우리 당을 찍게 만드는 것이다(동원). 이 책은 이전까지 공화당이 쥐고 있던 미국 정치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간 이유가 동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 선거제도의 변경으로 유권자의 숫자가 기존의 선거 구도를 흔들 만큼 충분히 폭증했고, 첫 투표의 성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데 바로 이 "폭증한 유권자"들이 첫 투표에서 민주당을 찍었기 때문이다. 즉, 승리하는 정당이 되려면 동원에 중점을 두고 선거 전략을 짜야한다는 주장이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만 선거 데이터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어떤 선거전략과 어떤 이슈가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분석엔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다. 또한, 유권자의 숫자가 더 이상 폭증하지 않고 또한 적극적으로 동원 전략에 포섭되길 거부하는 유권자층이 상당히 두터운 2019년 우리나라에서 유효한 이론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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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 상 - 고대와 중세 서양 철학사 - 상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지음, 강성위 옮김 / 이문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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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중에 나와있는 철학사 책 중에 여러 가지 의미로 가장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철학의 본령으로서의 형이상학 부분에 충실하다는 점은 다른 어떤 철학사 책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철학 안에서도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많은 설명이 필요한 역설적 분과가 바로 형이상학인데, 그 부분을 이만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세철학의 현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신"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형이상학이라는 분야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형이상학에 충실한 이 책의 성향과 잘 들어맞는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철학적 "활동"이 과거의 철학자들이 남긴 유산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빚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변용)됐는지를 강조하는 철학"사"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철학적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왜 반드시 철학의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아주 길고 상세한 답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장점을 뛰어넘는 단점이 있다면, 어렵고 낡았고 무성의하다는 것. 원본 독일어 초판이 1948년(...)에 나왔고 첫 번역은 1983년(...), 물론 분야 특성상 오래 읽히면 일단 클래식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 있는 책이긴 한데... 흠.


형이상학에 치중하는 서술 스타일 또한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거대한 장벽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기에서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라질텐데, 좋아하는 사람은 무척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철학에 질려서 다시는 안보게 만들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성의 문제. 번역의 개정판은 1999년인데 대체 뭘 개정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타, 오역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문장들, 일어번역본을 베낀 것이 거의 확실한 이상한 표기법 등등 완성도 측면에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인데, 앞으로 사람들에게 계속 읽히려면 언젠간 통으로 새로 번역/출판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안 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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