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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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에 대해 다룬 책은 참 많. 한국에서 소설이 시작된 그 시대에, 소설가는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쓸 수밖에 없었다. 농촌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던 무대였고, 따라서 글쟁이들은 공감을 얻기 위해서든 비판을 하기 위해서든 땅에 뿌리를 내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적 발전시기를 지난 이후, 사람들의 삶의 무대는 점점 도시로 옮아갔고, 글쟁이들 역시 흙 대신 아스팔트를 밟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시의 생활, 도시의 감수성, 도시의 빛깔이 소설에 녹아들었다.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고, 도시에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반면 농촌은 도회의 부정적 분위기를 씻어낼 수 있는 곳으로 타자화되었다
. 순수함, 근대적이지 않음, 한적함, 복잡하지 않음, 사람에 치여 살지 않을 수 있는 곳하지만 결코 농촌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시백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잘 보여준다. 지은이는 글에서, 전면적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 맺은 관계와 대화를 통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라고 피력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노상 고민하는 것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골칫거리 삼는 사항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며, 묘하게 겹친다. 게다가 도시가 주체가 되어 암묵적으로 타자화된 상황에 대한 수용과 거부에 대한 입장이 한 겹 더 덮어지면서,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자신들의 주름 만큼이나 더욱 깊어간다.


   지은이는 이런 갈등구조가 등장한 원인을 대개는 외부에서 찾고 있다
. 면사무소 일로 대변되는 이런저런 국가정책,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비쳐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새마을 정책,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필연적으로 가져다줄 수 밖에 없는 금전숭배경향, 자신들의 개발방식에 세계를 끊임없이 편입시키려는 의도, 그 갈등 사이를 다시 돈을 매개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 또한 사람들은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이 토대로 삼는 생각을 똑같이 체화하고 있다. 땅을 지키는지 파는지 고민하다가도 단번에 돌아서는 사람, 단 한번도 나서서 무언가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 자식에게는 더 이상 이런 환경을 물려주기 싫다는 생각,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는 떠날 궁리를 하는 사람들, 그것을 보면서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탓하며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


   지은이는
, 이런 개인과 정치-사회 요소들을 소설 곳곳에 두텁게 배치해놓았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온 적이 없는 50대 촌부들의 대화 속에서 이런 배경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런 배경 없이 할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는 대화가 나오는 이유는, ‘체화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멋대로 배치시켜 엉뚱한 인과를 만들어낸다. 분명 합리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을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저 촌부들의 넋두리라고 함부로 웃어넘길 수도 없다. 여기에는 체화하며 얻어낸 직관 내지는 그를 통한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 학문적으로는 개인의 행동에 경제가 가장 깊은 이유로서 토대를 이루기는 하지만 결코 경제 하나만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 알튀세르의 중층결정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이 다루고 있는 소재나 주제들과 맞닿은 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한결 속이 편하다. 그리고 아주 일치하지는 않지만, 골프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부풀려서 찍으면 나올 것 같은, 류승완 감독이 만든 영화짝패를 떠올리며 글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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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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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태의 소설 늑대, 제목에 걸맞게 늑대에 대한 상징과 비유로 가득 채워져있다. 그 상징은 각자 다른 성격의 인물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엔 명확하고 뚜렷하게 그 대상이나 함의가 드러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을 통해 이야기가 이끌려나갈 때에는 전혀 다른 말로 늑대를 채운다. 이것이 중첩되는 면모를 해석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것이 이 글을 읽는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우선 이 소설의 배경인 몽골에 이미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늑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존에 영위하던 생계를 위협하는 어떤 세력, 하지만 그 앞에서 언제나 희생양을 만들 수 밖에 없으며 순응하도록 강제하는 폭력적인 성격. 촌장으로 불리는 사람에게 자본주의란 이런 모습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폭력적인 낯선 것과의 마주함 속에서, 특정한 삶의 형태를 강요당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모습은 촌장의 애매모호한 태도 뿐만이 아니라
, 늑대를 대한 승려의 태도에서도 다소 엿볼 수 있다. 승려는 이를 어떤 자연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듯한 말을 내뱉는다. 따라서, 수행자들은 이를 막을 수도 없고, 그러나 불행하고 옳지 않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는 가운데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다. 어쩌면, 고대적 사고관 내에서 지식인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을 종교인들이 이런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늑대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자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 늑대의 이런 지위는 화자가 서커스단장으로 바뀜에 따라 완전히 뒤바뀐다. 기존에 살고있떤 사람들에게 늑대는 경외 -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운명 정도로 간주되었다. 그에 비해 서커스단장에게는, 포획과 정복, 피랍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서 늑대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상징이 아닌, 더욱 철저한 자본주의적 개체에 희생되는 어떤 것 내지는 먹잇감 정도의 지위로 전락한다. 중립적 용어로는 미개척 시장 정도 될 것도 같다. 서커스단장이 늑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경제적-금전적인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종합해볼 때
, 늑대는 결국 자본주의에 포섭당하기 전의 사회 그 자체이다. 이행에 있어서는 전통을 뒤흔드는 기제임과 동시에, 더욱 발달된 자본주의 앞에서는 끝내 신흥시장 정도의 위치로서만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는 그 사회의 불안한 위치를 반영한다. 야생에서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는 것으로서 어떤 우위를 유지한 채로 살아가다가, 먹이사슬을 규정하는 자연-사회의 체계가 변화함에 따라 쓸쓸하게 기존의 위치와 전통을 버리도록 강요당하는, ‘늑대로서의 국가에 관한 기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는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 하나는 왜 검은 늑대는 죽었는가?’하는 점이다. 늑대 가운데도 가장 대표성이 강한 검은 늑대(아스팔트 색깔과 같다)는 모종의 경위를 거쳐 죽은 채로 발견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히 자본주의로 전환한 사회의 종말이라 보기엔, 그 깊이가 너무 얕을 뿐만 아니라 많은 반례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둘째는
, 가장 마지막 사건의 화자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사회 변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어쩌면 치정극으로 마무리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긴다. 내게는 이 부분이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이야기인지 서사조차 읽을 수 없는 장소였다.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고 나서야 이 부분을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함도 감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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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
라나지트 구하 지음, 이광수 옮김 / 삼천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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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적 전통 발제문>

  라나지트 구하 개관

 

  라나지트 구하(1923~현재)는 지식인과 엘리트 등 특권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얻은 인도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사회 하층부를 일컫는 개념인 ‘서발턴subaltern’에 대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이며, 잡지 『서발턴 연구』(1982~),  『서발턴과 봉기』(1983),  『헤게모니 없는 지배』(1998), 『역사 없는 사람들』(2002), 『역사의 작은 목소리The Small Voice of History』(2009)등을 썼다.


  그는 서발턴 연구를 통해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운동의 흐름을 발굴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학계가 설명하던 인도 역사의 흐름 – 식민지배에 맞선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이념에 기반한 엘리트주의적인 서사를 해체하였다. 또한 역사적 운동의 주체로, 민족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이념, 그리고 이념을 수입-전파하는 엘리트들 대신 민중의 자발적 행동을 강조하였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반식민지 투쟁으로서의 민족주의 이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주의적 서사라는 서양의 역사서술 방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하는 식민지배자와 민족주의자는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일종의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런 비판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연구대상인 서발턴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여, 실제로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 등으로 동일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운동의 주체로서 이러한 특징은 근대적 의미의 정치적 운동과 조직의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이 자체가 서발턴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서발턴들의 정치적 운동의 동력이기도 하다. 구하의 연구 속에서, 그들은 식민지배와 엘리트들의 지배, 물리적 폭력과 이념적 훈육 속에서도 여기에서부터 자유로운, 현실의 정치체제로부터 이른바 ‘탈주할 수 있는’ 주체들로 그려진다.

 

 

  구하의 헤겔 역사철학 비판

 

  이렇듯 역사학자인 구하가 헤겔의 역사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가능하게 해준 많은 기술과 학문들이 있지만, 그것을 가장 추상적이고 완결된 형태로 제시해주는, “이성이라는 준거 아래 식민주의와 연계된 모든 다층적인 행위와 이데올로기를 조합하고 배치할 수 있”(p.15)는 체계가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헤겔이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에 ‘세계사’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수립하고 그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구하는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영어제목에서 보듯이 ‘세계사의 경계’, 즉 헤겔이 세계사로 선포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사이에서 헤겔의 세계사 개념을 통찰해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 경계에 대해 사유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계사’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유럽-영미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집단, 또 곧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집단이었다. 구하와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역사가로 평가받는 월터 미뇰로 Walter Mignolo(1947~현재)는 이들을 ‘역사 없는 민족’으로 개념화한다. 여기에는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열등한 민족이고, 역사가 없는 민족은 열등한 인간이”(p.25)라는 사고관이 깔려있다. 헤겔 또한 이런 점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인도(를 비롯한 비유럽세계)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으므로”(p.26) 결핍된 민족, 열등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헤겔은 역사와 국가(민족국가)의 상호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역사는 민족국가에 의존적이다. 역사가 진정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에 의존해야 한다.


  구하는 이 지점에서 영국 식민지배자의 기획에 따라 쓰여진 람람 바수의 인도 역사를 언급한다. 그의 역사서술은 단순히 연대기, 전설, 신화에 준하는 그 이전의 서사와 다르다. 그 핵심은 “지속성과 완전함”(p.31)으로, 따라서 “바수에게는 분명히 근대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이런 지속성과 완전함은 제대로 된 역사 이야기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기에 전근대적 연대기와는 완전히 달랐다.”(p.31) 구하가 보기에 이 역사책은 인도가 헤겔이 말하는 ‘세계사’를 확립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람람 바수의 인도 역사를 포함해, 헤겔이 체계를 갖춘 유럽의 근대적인 역사서술방법 그 자체다.


  헤겔의 역사서술방법론에 따르면,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두 가지, 즉 서술의 형식과 서사의 내용이다. 서사의 내용은 국가이다. 서술의 형식은 산문이다. 민족을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언어적 표현은 시로 시작된다. 산문은 그 뒤에 나온 형식이다. 헤겔에 따르면, 뒤에 오는 것은 앞에 오는 것보다 진보되고 발전된 것이다. 산문은 경험에 기반한 사건을 기술하는 데 더욱 용이하고, 사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문은 시보다 발전된 형식이며, 그러므로 역사는 산문으로 쓰여져야 한다.


  이 산문도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세계의 산문이다. 세계의 산문은, 단적으로 말해 이것은 시간에 따라 이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 전체를 뜻한다. 헤겔에 따르면 세계의 산문은 그 자체로 역사성을 띄고 있다.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건들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역사로서 의식한다. 그러나 이런 의식은 다른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들이며, 따라서 모든 사건은 개인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관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든 사건이 역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건이 인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산문은 근원적으로 역사성을 띈다.


  하나는 역사의 산문이다. 세계의 산문은 역사성을 띄지만, 그 자체로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세계의 산문은 역사의 산문이 되어야지만 역사가 된다. 하지만 헤겔은 세계의 산문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역사의 산문이 될 수 있는지 기준을 설정하고, 역사의 산문을 조직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그 역사적 사건들이 최종적으로 ‘자유의 실현’을 향하여 나아가는 ‘정신’의 작용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세계사’, ‘보편사’, 즉 역사를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사철학은 일종의 역사서술방법론이다. 역사서술방법론은 “첫째, 역사화의 수단으로서 일련의 기초적 ‘원리들’에 대한 선택을, 둘째, 자연과 역사의 변화에 대한 몇몇 일반적인 고려를, 셋째, 역사라는 것으로 인정해야 하거나 또는 인정해서는 안 되는 여러 조건들의 공식화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특정한 방법론에 따라 도출된 특정한 ‘역사’의 서사를 헤겔이 ‘보편사’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에 있다. 그 역사는 결국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벗어날 수 없다. 방법에 의해, 그 방법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것들은 역사의 밖으로 밀려난다. 다시 말해, “세계는 절대정신이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실현시키는 것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결국 그 자체의 서사를 위한 근거를 제공해준다.”(p.71)는 순환에 빠져든다.


  이 순환의 허점은, 헤겔의 역사적 편향에 의해 메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구하는 그 증거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비유럽 지역의 철학과 사상, 문화에 대한 헤겔의 전반적인 평가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그들의 의견을 ‘확정 내용’이 결여된 추상이라고 혹평하였다.”(p.82) 또한 인도의 서사시가 그리스-로마의 비극시처럼 발전하지 않고 인간을 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혹평한다. 다른 하나는 비유럽지역과 유럽지역의 서사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보편사’ 서술에서, 유럽지역을 중심에 놓기 위해 자신의 역사서술방법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개념마저도 유동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일부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유에 대한 규정이 조절되었고, 발전된 자유에 대한 규정에 의거하여 그리스와 로마는 포함되었다.”(p.89) 자신이 자유가 가장 확대된 정신사적 형태로 제시한 게르만-기독교문화에서도, 그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비게르만-기독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헤겔에 따르면 게르만-기독교 문화는 인간의 정신이 완전히 발현된 역사적 ‘단계’이다. 이 ‘단계’ 개념은 이러한 차별적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이다. 단계 개념은 단계와 단계 사이가 질적으로 다르며, 그 발전의 양상이 불연속적이라는 것을 내포한다. “끊임없이 진행하는 운동을 중단시키는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절대정신이 이 세계 안에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한 단계는 이전에 얼마나 멀리까지 갔는지, 아니면 얼마나 더 멀리까지 갔어야 한 건지, 또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갔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념 아래, 비유럽적 지역은 보편사의 발전단계에서 인도-중국적 ‘단계’라는, 저발전 단계로 묶이고 말았다. 이런 보편사적 이념이 식민지배의 이념적 기초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도의 서사 전통과 대안적 역사서술

 

  이러한 유럽중심적 역사서술에 대비해, 구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역사서술 ‘이띠하사’를 거론한다. 이것은 ‘서사’라는 개념에 가까우며, 따라서 인도인들은 영어의 역사(history)를 이 말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 개념을 통해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이띠하사에 이미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의미와 비슷한 역사 개념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번역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띠하사는 히스토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구하의 분석에 따르면, 이띠하사는 더욱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이띠하사의 특징적인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서사의 줄거리가 고정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띠하사와 비교했을 때, 유럽의 역사가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일회적인 이야기를 본 그대로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서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직접적 경험의 명확성, 역사적 사건의 일회성, 그리고 그것의 정확한 재현이다. 그러나 이띠하사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고려되지 않는다. 줄거리는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그 이야기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또한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아무도 증명해줄 수 없으므로, 정확한 재현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기억이 나는 대로 이야기를 수시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재구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띠하사의 두 번째 특징이다. 즉, 이띠하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서사가 재구성된다. 이띠하사가 시행되기 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또한 이야기 중간에 듣는 사람이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도 있다. 이 자체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띠하사는 서사의 화자조차도 단일한 인격체가 아니다.


  위와 같은 두 가지 특징에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 특징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서사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띠하사에는 원본이 없으며, 따라서 복사본도 없다. 말하는 사람을 둘러싼 맥락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말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높이기 위해 서사 속에 자신의 경험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실제 서사와 말하는 사람의 경험을 구분한다는 것이, 이띠하사의 특성상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이띠하사 속에 결합한다. 따라서 이띠하사는, 헤겔의 역사성 개념을 그 자체로 드러내주는 산물이며, 그러므로 더욱 본질적인 의미의 ‘역사’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말년의 비평에서 이러한 역사의 개념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서술에서 나타나는 식민주의적 특성, 즉 역사서술방법론에서의 헤겔적 경향을 극복하고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역사는 공식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분인 문학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식적인 역사와 문학은 상호보완적 관계로, 서로가 서로에게 ‘세계의 산문’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서술된 역사는,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개인들의 일상성이 창조적으로 표현된다. 타고르는 실제로 역사비평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읽어왔던 인도의 기념비적 신화와 전승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구하는, 이런 태도로 역사에 접근한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좀 더 풍부하면서 동시에 단순한 재현이 아닌 역사적 체험의 표현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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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아이티, 보편사 엑스쿨투라 1
수잔 벅모스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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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적전통 발제문>

 

  이 책의 저자인 수전 벅-모스 위키피디아 Susan Buck-Morss는 미국의 비판이론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발터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 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이 책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벤야민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자본주의 도시의 문화적 구조’인데, 이 프로젝트는 그 주제에 대한 연구의 결과이다. 벅-모스는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고, 이에 대한 해설서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The Dialectics of Seeing : Walter Benjamin and the Arcades Project』(1989)를 출간하였다. 그 외에도 『부정변증법의 기원』(1977), 『무릉도원과 파국 : 동서양의 대중적 유토피아 가로지르기』(2002), 『테러 이후』(2003) 등의 저서가 있다.

 

  「헤겔과 아이티」

 

  벅-모스가 「헤겔과 아이티」에서 다룰 주제의 모티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헤겔이 아직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다 정리하지 못한 시기, 즉 예나 시기에 초기 자본주의의 성장을 날것으로 지켜보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 뿐만 아니라, 분명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은 흔적이 발견된다는 데서 증명된다. 홉스, 로크, 루소 등 헤겔 이전의 사회철학자들은 인간의 조건을 고립되고 혼자뿐인 자연상태와 다양한 개인들 간의 상호 교류로 얽혀있는 사회상태로 양분하였다. 또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진보해간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헤겔은 이와 다르다. “헤겔의 근대적 주체는 상품 교환으로 인해 이미 사회적 의존의 망 안에 존재하고 있다.”(p.24)

 

  그렇다면 이 사회적 의존의 망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이것이 두 번째 모티프이자 벅-모스가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하는 핵심적 주제인 주인-노예 변증법, 그리고 여기에 얽힌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아이티 혁명이다. 벅-모스가 보기에 주인-노예 변증법은 자본주의적 사회의 관계를 묘사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인정하는 자인 주인과 인정받는 자인 노예로 나뉜다. 그러나 주인과 노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며, 게다가 변화를 추동하는 진정한 원천은 노예의 노동으로부터 나오며, 오히려 주인은 노예의 노동에 의존한다. 이 관계가 역전되어 노예가 자신의 주체를 위한 인정투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예속 상태를 뒤엎고 법치국가를 확립하는 노예들의 혁명적 투쟁”(p.26)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주인-노예 변증법에 대해 내놓은 해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존의 철학의 전통 안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들로 환원시키는 것이다.(p.76) 이들은 이 변증법의 기원을 찾기 위해 가깝게는 피히테,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머지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으로, 이것을 계급투쟁에 대한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p.86) 하지만 벅-모스가 보기에 이 둘은 모두 헤겔이 놓인 역사적 조건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해석들로, 이 변증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헤겔이 살던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발견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아이티 혁명이다. “헤겔의 분석을 무한히 팽창하는 식민경제에서 떼어내, 그가 자유의 실현으로 규정하는 세계사의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이론적 중심점을 제공”(p.26)하는 그 사건은 “바로 그 순간 아이티에서 현실화되고 있었다.”(p.26) 하지만 “헤겔이라 불리는 현상과 아이티라 불리는 현상은 그 시작 지점에서는 서로에게 스며들만큼 연관되어 있었지만 전수의 역사를 거치면서 서로 분리되었다.”(p.27)

 

  이 지점에서 이야기의 주제는 노예제에 대한 당대의 시각과 담론의 변화를 보여주며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노예제는 분명히 존재했고,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는 상품의 상당수는 노예노동에 의해서 생산되었다. 당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외면하거나 철학적으로 교묘하게 정당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홉스는 이것을 ‘자연상태의 투쟁에서 발생한 산물’이라고 말하고, 로크의 경우 노예를 다루는 것은 노예의 주인과 노예 사이에 관련된 사적인 사안(다시 말해 사적 소유)이므로 국가가 법으로 관여할 분야가 아니라는 논증을 폈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노예제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정치적 혁명의 시기에 모든 혁명적 팸플릿들은 자신들이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은유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의 상황이기도 했는데, 프랑스 식민지인 생도맹그의 흑인 노예들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그것을 은유가 아닌 실제로 받아들이고, 그 노예제를 ‘실제로’ 철폐하려는 봉기를 일으켰다. 투생 루베르튀르, 장-자크 데잘린 등이 주도한 봉기세력은 생도맹그에서 백인들을 쫓아냈고, 그 지역을 점령하려는 여러 식민 열강들에 맞서 긴 전쟁을 수행한 끝에 아이티라는 독립국가를 건립할 수 있었다.

 

  계몽주의 이념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그것이 전혀 실천되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발생한 실천이었기 때문에 아이티 건국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헤겔은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고 있었다. 헤겔은 이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고, 그와 교류했던 주변의 많은 인물들이 아이티에 직접적인 소식통(프리메이슨)을 가지고 있었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적 입장과 이 사건이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고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벅-모스는 주장한다. 헤겔은 “마치 은현 잉크처럼 자신의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역사적 현실을 텍스트 안으로 들여온다.”(pp.80-81)

 

  또한 벅-모스는 헤겔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거론한다. 주인-노예 변증법이 반영하는 (당시의 시각에서) 급진적인 평등사회를, 그들이 이미 집단적 이념의 차원에서 이미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직공들이 공동체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상업적 관계망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유럽의 상업적 범위가 대서양 전체로 넓어지면서, 상업적 관계망으로서의 프리메이슨은 문화적 교합의 공간도 제공하였다. 입회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내부적으로는 모두 평등하다는 강령이 프리메이슨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헤겔의 주변 인물들, 헤겔이 보던 신문을 제작, 인쇄하고 배포하는 과정들은 모두 일정부분 프리메이슨의 세계시민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이 사건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적 팽창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역사철학자로 변모한다. 벅-모스는,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조차도)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독립국가로 출범한 아이티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이티 혁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독립 이후 긴 전쟁과 경제정책의 실패는 독립국가 내부의 인민의 삶을 전혀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그 혁명이 자유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해냈는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벅-모스의 표현처럼, 그는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더욱 어두워졌다.

 

 

  보편사

 

  벅-모스는「보편사」가 「헤겔과 아이티」에 대한 호응 및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 기획된 논문이라고 말한다. 이 논문의 중심주제는 ‘과연 아이티 혁명이 보편사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그게 가능하려면 ‘보편사는 어떤 개념이어야 하는가?’ 라는 두 가지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벅-모스는 아이티 혁명의 주변을 둘러싼 정치, 경제적 상황와 그 속에서 아이티 혁명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그런 아이티 혁명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당시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여 해석한다면 보편사 개념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상기해야 할 것은, 아이티 혁명이 그 사건 이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며, 그것이 정말 의미있는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당대의 사람들이 회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벅-모스는 그 이유를 경제적인 상황에서 찾았다. 루베르튀르를 비롯한 혁명 주도세력은 정치적인 기획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경제적인 조건과 얼마나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따라서 정치적 기획의 모델을 그대로 경제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른바 ‘농-군 체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아이티의 산업기반은 식민지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부는 농업으로부터 창출되었다. 그러나 노동의 양식은 정치체제의 변화 때문에 이전과 같아질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아이티 혁명 세력이 고안해낸 노동의 양식은, 군에서 하는 것과 같이 강력한 규율에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일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 이후 한동안 노예제는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그 존재가 긍정되어왔다. 그러나 노예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노예제가 공론화되면서, 사람들이 노예상태에 대한 언급을 부정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 노예상태는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상황으로 대치될 수 있는 상태였다. 규율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자유로운 노동이란 무엇일까?

 

  벅-모스는 바로 여기에 아이티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노예노동과 자본주의적인 임금노동, 즉 ‘자유로운 노동’ 사이의 관계를 성립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아닌 독립한 아이티였다. “개혁가들이 범죄, 빈곤, 노동 규율 등의 문제와 씨름할 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노예 대농장의 이미지에 사로잡혔던 듯 하다. (...) 노예주와 산업가는 모두 자기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뿐 아니라 그들의 성품과 습성을 개조하는 데 점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p.137) 흑인 노예들의 해방공간, 즉 아이티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양식 – 자유민들이 규율에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착취가 이루어지는 노동 - 은 자본주의, 산업혁명 시기 노동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아이티 혁명이 정치적 혁명이었으나 경제체제에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유럽의 자본주의적 착취의 모델로서의 의미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아이티 혁명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아이티 혁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실제로 그들이 혁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적 임금노동 양식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유럽 자본주의의 역사적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설명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분석 대상은 실제 여기에 노동력을 제공한 사람들, 즉 잡색무리가 되어야 한다.

 

  유럽의 발달한 항구도시에는 흑인, 크레올, 혼혈, 백인 극빈층 등이 섞여서 하나의 정치적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파업이나 반란 등을 통하여 어떤 정부에도 종속되지 않는 “다인종·다민족의 “히드라 정체”로서, 법을 집행하고 부를 나누며 전쟁을 벌이는 자치적 대항정권이 되었다.”(p.146) 이들은 유럽의 사람들에 의해 “공산주의적 수평파, 종교적인 도덕률 폐기론자, 반란을 일삼는 노예, 혁명적 급진주의자”(p.147) 등으로 묶여 히드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제멋대로 나간 민주주의를 함축했다.”(p.147)

 

  그러나 벅-모스가 보기에 이들은 “본래 의미에서 ‘세계시민적’이었다.”(p.147)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보편주의’를 주창한 이들은 혁명의 시대에 인류라는 하나의 인종에 대해 말했으며, 당대에 이 이념은 후대의 역사적 흐름이 보여주려 한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표현되었다.”(p.149) 이것을 더욱 확대해서 해석하면, 현대로 들어오기 이전의 거의 모든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은유다.”(p.156) 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집단적 의미의 모든 기존 질서를 위협했다.”(p.158) 헤겔은 ‘보편사’라는 개념을 고안해냈을지는 몰라도, 이런 다중적인 정체성에 대한 통찰을 보편사 개념에 집어넣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다시 강조한다. 이런 다중적인 정체성을 당대에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프리메이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모든 인간의 지식을 집대성하고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 접근한다는 프리메이슨의 이념과, 여기에 가입되어있는 여러 종류의 흑인들의 문화적 전통이 그 단체 속에서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 잘 모르는 개인들은 상징과 기호를 사용하여 소통한다. 다른 하나는 여기에 가입하고 의식을 치르는 흑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존재를 박탈당하는 경험을 한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습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었음을 인식한다. 이 두 요소가 뒤섞이면서, 벅-모스에 따르면 “여기서 출현하기 시작한 보편사의 규정은 이렇다. (...) [문화적] 파열 지점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출현한다. 자신의 문화가 무리한 압력을 받아 붕괴될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문화적 한계를 뛰어넘는 인류를 표현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불연속성 속에서다.”(p.184)

 

  물론 벅-모스도 아이티 혁명 전체가 이것을 온전히 성취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노예제를 그대로 이식한 노동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아이티라는 국가를 수립함과 동시에 다중적인 정체성은 사라지고,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회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혁명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혁명의 순간에 세계시민주의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사적 성향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보편사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재서술함으로써 발견해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적인 이념으로서의 ‘보편사’로부터 보편사를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획에는 끝이 없으며 다만 무한히 고리들을 잇는 작업만이 있다. 고리들이 지배 없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종합적이기보다 측면적이고 부가적이며 혼합주의적일 것이다. 보편사의 기획은 종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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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손
존 어빙 지음, 이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신간평가단 9월 주목신간> 

  단적으로 말해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얽힌 이야기들을 대체 내 나름대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만든, 그야말로 조금 이상한 소설이었다. 내가 그의 작품 스타일 또는 현재 미국에서 쓰여지는 소설의 경향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고, 요즈음 소설 자체를 멀리한 탓도 있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는게 자존심은 상해도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

  제목에서 바로 보이는 바와는 다르게, 사실 이 소설 전체를 전개해나가는 힘은 손에 관련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이 이런저런 여자와 겪어나가는 성관계들이다. 물론 소설에서 꼭 이해되는 것만 보여져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왜 관계를 맺는가? 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가장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 모든 국면에서 주인공은 수동적이다. 책에도 직접 그런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여성의 말을 거절하지 않는다.’ 는 식으로. 그렇다면 반대로, 이런 사람과 관계를 맺고싶어하는 그들의 생각은 대체 무엇일까? 단지 그가 매우 겉보기에 매력적이라는 것만으로 설명이 되는 것일까?

  이 소설의 제목이 네번째 손인 관계로, 성관계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어쨌든 손 또한 중요한 소재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특정한 페티시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특히 손에 대한 페티시즘이 강하다. 손이 없는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그 없는 손에 대해 호기심을 표하는 많은 여성들이 그렇고(그래서 그들은 주인공을 볼 때마다 꼭 그 쪽을 건드려본다! 고 언급되어있다), 특히 남편의 손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주고싶다는 이유로 남편의 손을 기증한 도리스에게 이런 손 페티시즘은 아주 결정적이다.

  사실 그리 바람직한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소설을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이 사람이 이런 소재를 떠올리는 데 어떤 다른 문화상품을 소비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국 작가이기에 그럴 일은 없겠구나 싶으면서도,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나름의’ 성장과정은 일본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이른바 미연시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정신적 변화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자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에 의해 주변의 여자들이 그에게 구애를 하고,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모든 이와 성관계를 맺다가 결국에는 엔딩 부분에서 한 여자에게 달려가는 식의 구도는 동급생 이후의 미연시에서 흔하다 못해 진부해 빠진 공식 같은 서사이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긍정적 전환’, 또는 ‘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미연시와 이 소설의 작가는 교집합을 형성한다. 이런 캐릭터를 그저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로 보아야 할지. 그렇다면 이는 젠더 평등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여러모로 바람직하지는 않아보였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도 없고 덧붙일 것도 없다. 모든 인물은 내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그래서 내 머리속에는 이 모든 사건들을 묶을 수 있는 몇 가지 유형화된 서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글에 대한 독해에 실패했음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바이며, 앞으로도 다시 이 작가의 소설을 볼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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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ishheaven 2011-12-0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한번 들어와봤는데 와.. ㅋㅋ 리뷰 진짜 솔직하게 썼닼ㅋㅋㅋ 다시 볼 일이 없을거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킁킁 어디서 쿨워터 냄새 나요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