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는 프리다 브란덴펠트와
약혼했지 프리다는 게오르크의
약혼녀가 되었지 카프카의 선고는
그렇게
시작하지 내게는 약혼녀가 없었네
세상엔 미혼녀와 기혼녀 사이에
약혼녀가 있었지 비혼녀와 기혼녀
사이에서 약혼녀는 미소 짓고 있다네
약혼녀는 손수건을 물고 있다네
약혼녀는 운동화를 들고 있지
약혼녀는 거울을 본다네
약혼녀는 어제 귀가했지
약혼녀는 정숙하다네
약혼녀가 자네에 대해 물어보더군
약혼녀가 감기에 걸렸어
약혼녀라니
게오르크는 러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약혼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망설였어
당신은 약혼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프리다가 말했어
약혼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게오르크는 프리다 브란덴펠트와
약혼했지 하지 말았어야 했을 약혼
소식을 러시아 친구에게 전하려 했지
편지를 썼지
편지를 주머니에게 찔러넣고
아버지에게 갔지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는 역정을 냈지
네게는 러시아에 친구가 없잖니
하지만 게오르크
난 네 친구를 오래 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단다 나의 진짜
아들이지 너는 나를 깔아뭉개려고
하지만 말이다 그 여자가
치마를 걷어올리더냐
이렇게 들어올리더냐
오 게오르크!
넌 친구를 배반했지
이 세상에 약혼녀란 없단다
약혼녀는 정숙하지 않아
약혼녀는 사탕을 물고 있지
약혼녀는 네 눈치를 보고 있어
약혼녀의 침대를 너는 보지 못했지
약혼녀는 네 이름을 부르지
약혼녀는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게오르크
나는 네게 익사형을 선고하는 바이다
그렇게 카프카의 선고는
끝나지 게오르크는 다리 난간에
매달려 사랑을 고백한다네
사랑하는 부모님, 약혼녀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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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약혼녀
그러나 그 약혼녀를 찾아 헤매지 않는
카프카란
앙꼬없는 찐빵~

로쟈 2018-05-11 08:07   좋아요 0 | URL
^^

sunday 2018-05-1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인한 선고,
매일을 그런 선고 속에서 살지

로쟈 2018-05-11 08:08   좋아요 0 | URL
매일이 죽음인가요?^^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눈밭에 처음 발자국을 찍는 것처럼
오늘이 모든 하루의 첫날인 것처럼
미체험 행성에서의 첫 인생인 것처럼
백지처럼 백치처럼
그렇게 살기
사랑도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처음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처럼
처음 강물에 자맥질하는 것처럼
대본 없이
처음 키스하는 것처럼
처음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기

오늘 강의에서 두 번 말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그렇게 살기
전생은 다들 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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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5-1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시인가요?!

로쟈 2018-05-10 09:56   좋아요 0 | URL
네. 시 카테고리에 있는 것들요.

two0sun 2018-06-1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의 질타?처음의 복수
(감히 처음인척 했다고)
처음처럼은 처음이 아니라고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처음처럼은 처음부터
가능한것이 아니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뼈아픈 경험이~~~

로쟈 2018-06-10 21:26   좋아요 0 | URL
주종을 바꿔보심이.~
 

이팝나무가 알고보니 이밥나무라는군
경력조회로는 말이야
이밥나무 쌀나무 쌀밥나무
이팝나무 꽃그늘을 지나다
이 얼마나 근사한 호강인가 생각하다가
이밥나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 근사한 꽃그늘에서 밥 생각이라니
경력은 때로 세탁이 필요한 법
이팝나무는 이팝나무여서 근사한 나무
조팝나무도 좁쌀밥나무 조밥나무였다지
너도 개명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조팝나무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눈감아 주기로 했다
이밥나무 조밥나무 틈에서 봄을 나느니
이팝나무 조팝나무와 한 시절 누리기로
이팝나무 꽃그늘에서 한 시름 잊기로
이 봄날 밥 생각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팝나무 꽃그늘에 봄밤도 근사하여라
이팝나무가 그대인 듯 근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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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5-0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그늘 아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팝꽃잎은 조팝보다
둥글게 생겼지 라며 읊던 날.
읽다만 프루스트. 며칠전 신간 코너서 본 새번역의 피네간의 경야. 옛날 그 율리시즈 독후의 여운이 남은 상태서 신기하게 읽은 요약본 피네간. 흠, 이렇게 두꺼웠어?
사? 말어? 옆에는 몇년전 산 새
번역 율리시즈가 몇 페이지째 북마크
가 고정되어있고. 모든 호기심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며, 맘 다잡는 봄밤~^^*

로쟈 2018-05-09 23:29   좋아요 0 | URL
제가 전염시킨 건가요?^^

로제트50 2018-05-09 23:32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watchway 2018-05-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에 따라 이야기는 맹글어 가죠.
이밥의 간절함이 이밥나무로
뭔가 세련된 것처럼 말하고 싶을 땐 이팝나무로.

길상사를 고향 초등 친구에게 안내하면서
백석자 자야.
길상화와 법정스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동창넘이 어느날
˝길상사는 자야와 법정스님의 사랑하던 곳˝
이라고 멋진 이야기를 맹글어 내었지요~~~

로쟈 2018-05-09 23:28   좋아요 0 | URL
널리 알릴 이야기는 아닌듯하네요.~

가명 2018-05-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로쟈님 시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로쟈 2018-05-09 23:28   좋아요 0 | URL
네 지난달부터요.~

2018-05-15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자가 된 청소부보다 늘
청소부가 된 성자가 되고 싶었지
까지는 아니어도 더
감동적이라고 느꼈지 요즘은
환경미화원이 된 성자라고 불러야 할까
예전엔 쓰레기 치우는 성자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마다
대견하게 느껴졌어
고등학교 때 우리반은 소각장 당번반
소각장 쓰레기를 태우고 재를 퍼 날랐어
어디로?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여하튼 날랐어 그리고
묻었어
(그럼 뭘 하겠어?)
자원하진 않았어
다들 겸손해서 성자를 자처하진 않아
성자 콤플렉스란 말을 어디선가 들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어
우리는 그냥 청소 당번
성자도 당번제야
아무나 할 수 없어도
닥치면 해야 해
네댓 명이 리어카를 몰았어
빗자루와 삽을 들었어
화장실 똥을 푸는 건 우리 일이 아니어서
우리는 소각장으로 가
아직도 냄새가 나는군
옷에 배도 할 수 없지
그렇지만 대견하게 느껴지는군
나도 한때 소각장 당번이었다는 거
청소부였다는 거
쓰레기 좀 태워봤다는 거
내가 성자라는 얘기는 아니야
기분 좀 냈다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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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설마 이런 게 노안인가
잠시 흐릿해 보여서 울고 있는 것도 아닌데
흐릿해 보여서
남들 다 왔다는 노안이 내게
찾아온다고 대수는 아니겠지만
방안 가득 책들을 보니 눈물이
나는 건 아니고 영화가 생각난다
굿바이 마이 칠드런
아이들 입양 보내는 영화가 있었지
노동자 아빠가 손을 다쳤던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고
엄마는 또 무슨 병이 있었나
하여간에 아이들을 다른 집에 보내야 했지
아홉이었나
하여간에 눈물 쏟으며 보내야 했어
이불 뒤집어 쓰고 중학교 때
훌쩍거리며 본 영화
늦게 잔다고 혼나면서 본 영화
누가 이 아이들을 사랑해줄까
누가 이 책들을 읽어줄까

갑자기 눈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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