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나 번스라는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 별 다섯개 중 여섯개. 어느 해 1월 첫 날 '밀크맨'을 읽고, 정말 너무 좋아서, 올해의 책이다. 냅다 질렀던 기억이 있다. '밀크맨'이 만들어지기 전 애나 번스의 데뷔작 '노 본스' 를 읽었다. '밀크맨'을 좋아했던 많은 독자들의 평은 엇갈린다. 매 챕터 읽으면서 이게 뭐야? 뭐라고? 맙소사! 정말?! 의 연속이다. 끝도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때까지. 구병모 작가는 이 책이 "살과 피와 뼈를 지닌 언어가 멱살을 잡고 흔든다." 고 평했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벨파스트 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 지역 분쟁시기를 '트러블 The Troubles' 라고 부른다. 이 시기 그 중심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가족과 마을의 이야기이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폭력의 광기에 점령당한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시체더미를 넘어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 문화와 민주주의, '국가' 라는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지 읽는 내내 섬뜩하다. 짐승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숨죽이고 살아남기에 급급한데, 한편으로는 또 안전감이 무너져서 그런 환경에서도, 아니, 그런 환경이라서일까, 먹고, 마시고, 논다. 살아남는 법, 싸우는 법, 도망가는 법, 무시하는 법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 들이받는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살든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엄청난 텐션을 유지하며 끝까지 읽는데, 마지막이 어이없게 안심된다. 밀크맨도 그랬던듯.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난다고? 안심되고, 좀 귀엽기까지 하게. 그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책 덮자마자 얼른 밀크맨 다시 읽어야지 찾아두었다. 그리고 또 노 본스 다시 읽어야지. 


이 책을 읽는 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소영'을 읽었다. 더 트러블과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씨받이의 딸로 태어나 노동운동했던 '소영'의 이야기이다.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폭력'과 '무질서'와 '부조리'가 있다. 불평할 수 있는 일상이 언제라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애나 번스는 196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보고 겪은 것들을 '노 본스'와 '밀크맨'으로 녹여냈다. 주요 배경인 아도인은 저자가 실제 자고 나란 동네이다. 부커상 수상 당시 소감에서 "나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가능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 고 말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책은 어둡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밝은 부분을 찾기는 힘들고, 블랙 유머라는 평에 어디가 웃긴가 싶긴 하지만, 현실감이 없을 정도의 폭력을 묘사하는 작가의 글이, 작가의 힘이 이 이야기가 밑으로 가라앉지 않게 위로 띄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멀지 않은 과거와, 현실과, 앞으로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탑의 살인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넨 미키토의 '유리탑의 살인' 을 읽었다. 신본격 추리소설 작가들과 팬들의 평이 아주 좋았던 책이다. 5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재미만 있었다. 미스터리 장르 오타쿠, 아니, 마니아들이 모인 유리탑에서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딱히 그 장르의 마니아가 아니라서 그런지, 소설을 읽을 때는 캐릭터의 감정이나 스토리의 의외성, 등등 뭐라도 의미를 찾고 싶은데, 등장인물들은 감정이라고는 없는 게임 캐릭터같이 사건과 사건에 휘둘리고 사건을 좇는 무개성으로 느껴졌다. 장르 클리셰가 극으로 표현된 그런 인물들. 분위기나 개성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캐릭터의 비인간성을 작품의 일부로 봐야할까, 여기서 비인간성이란 인간이 어떻게 그래? 할 때 비인간이 아니라, 미연시 게임 캐릭터 같은 그런 비인간성이다. 인물의 '드라마틱한' 과거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 같은 것들의 개연성이 단순하고 와닿지 않는다. 


그러니깐, 이 책은 그런걸 보라고 쓴 글이 아니라, 사건과 해결과 반전과 장르 클리셰인 인물들을 보고 즐기라는 책이다. 이전에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책소개가 있는 책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것도 의사가 쓴 책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표방했지만, 전문분야를 살려서 의료 관련 사회파 소설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치넨 미키토도 의사이고, 주인공도 의사지만, 전문분야를 잘 살렸다는 느낌은 안든다. 미스터리 마니아였다면 (당연히 마니아겠지만) 그건 잘 살렸다. 


요즘은 예전같이 다 잡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좋다는 책들만 읽어보는데, 누가 좋다는 책이냐면, 미스터리 마니아 독자들이 좋다는 책들이다. 올해의 1위 같은거. 지난 번에 영매탐정 책 읽었다가 라노벨스러움에 대실망했고, 이번 책도 대실망까지는 아니라도 많은 생각이 든다. 내 취향이 변했나, 미스터리 커뮤니티가 변했나, 추천도서들을 보니, 남초 추천이라는 느낌이 팍 든다. 전혀 읽고 싶지 않은 카테고리, 남초 추천 1위. 그게 뭐든. 



".... 기뻐 보이는군. 이런 현장을 보고 웃다니, 정신줄이 몇 가닥 끊어진 거 아니야?"

카가미가 내뱉듯이 말하자 츠키요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칭찬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주말이면 도서관을 가면서 새로운 동네를 밟아본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로 기억되는 동네들이 늘어간다.
  • 아무렇지 않다최다혜 지음씨네21북스 2022-02-16장바구니담기
  • 수면의 과학헤더 다월-스미스 지음, 김은지 옮김시그마북스 2022-01-20장바구니담기
  • 엿보는 마을리사 주얼 지음, 안은주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2022-05-30장바구니담기
  • 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이야기장수 2022-04-14장바구니담기
  • 제로의 책강현석 외 지음돛과닻 2022-04-08장바구니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콤 글래드웰의 책은 재미있고, 앞으로도 계속 읽을테지만, 이번 책은 잘 안 읽혔다. 

말콤 글래드웰이 전쟁 이야기 좋아하고 (싫어라..) 거기서 뭐 좋은 점을 찾고, 꾸며서 이야기해봤자 좋아하기 힘들지. 

광기 또라이 집단이었다는 공군내의 전설 같은 두 명의 파일럿을 통해 '어떤 선택의 재검토'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든 전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서로를 없앰으로써 불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서로를 제거하지 '않을' 때에는 '다음' 기회에 확실히 서로를 제거할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과심을 투자한다." 


비행기가 전쟁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 비행기로 전략요충지만 폭격하면 민간인은 덜 죽을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한 이야기가 주인데, 군인은 죽어도 되나? 군인들이 전쟁 일으켰나? 


르메이와 헤이우드로 나뉘는 인간 부류에 대한 이야기는 볼만했다. 실용적 인간과 돈키호테적 인간. 그런 인간들이 전쟁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서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 군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 전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 뭐를 위해서 죽으라고 사람들을 출동시키는건지. 이기기 위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는 대의가 우스워 보일만큼 말도 안 되는 죽을자리로 군인들을 보낸다. 


현재진행형중인 러시아 전쟁에서 네이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에 네이팜의 발견과 그것을 어떻게 썼는지 나온다. 

꺼지지 않는 불꽃. 일본의 서민들 (민간인)이 모여 사는 곳은 목조주택과 다다미로 화재에 취약했다. B-29에서 네이팜 폭탄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도시가 불탔다. 네이팜으로 도시들을 파괴하며, 원자폭탄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 그랬다면이라는건 소용 없는 가정이다. 어떤 좋은 의도라도 인간을 거치면 파괴적인 결말로 가는 것이 역사에 반복되고 있지만, 뭘 배우겠어. 또 반복이나 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라는 제목과 표지의 풍선 유니콘이라니. 반칙이다. 너무 기발하고 멋지잖아. 

시간이 지나서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이 책에 나온 신조어들처럼 말이다. 


금정연의 이번 책은 재미있었다. 주제를 잘 잡고, 그에 따른 리서치도 잘 되어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재미 없는 경우도 많지만, 이번에는 재미있었다. 24개 신조어와 그 신조어가 나타내는 한국 사회의 트렌드와 병폐를 잘 풀었다. 


존버, 금수저, 흙수저, 플렉스, 취준생, 홧김비용, 가성비, 비혼, 국룰, 뇌피셜, 맘충, 틀딱, 노키즈존,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남. 


개인적으로 맨날 궁금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았던 '스불재' 의 뜻을 알았다.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라고 한다. 


홧김비용에서 저자가 아는 어느 훌륭한 소설가가 일이 바쁘면 바쁠수록 옷을 더 많이 사는 바람에, 한 번도 못 입고 나간 옷이 옷장에 그득하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뒤에  으이고, 지돈아.. 하는거 보니 ㅇ지돈인가봐) 신조어, 유행어가 사람들을 '밈'에 갇히게 하는 걸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홧김비용' 이란 말이 특히 그렇다. (정화한 말이고, ㅅㅂ 비용이 라고 하지 보통. 요즘은 금융 치료라고 하기도 하고) ㅇ지돈 작가님,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입지도 않는 옷을 그렇게 많이 사서 쌓아두십니까. 2022년 방통위 방송대상 수상작인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를 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책에 쓴 금정연 작가님도 함께 보면 좋겠네요. 스트레스를 왜 지구에 풉니까. 


'홧김비용' 에 대한 사회학자 구정우의 말 " 요즘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현재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는 욕망이 담긴 것 같다. 저축해 봤자 집 못 사잖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봤자 평생 다닐 수 있는 것 아니다. 갑을관계로 드러나는, 계급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젊은 청년층일수록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반영한 신조어가 나오는 거다." 


분석은 알겠지만, 아, 나는 너무 아닌 것 같다. 홧김비용은 악순환의 강력한 시작인 것 같단 말이지. 그것이 유행어가 되고, 전시가 되고, 점점 더 말의 힘이 쎄지고. 없어져도 되는, 없어지고 있는 말들 중에 하나다. 그러고보니, 다른 단어들도 없어져야 하는 단어들 많다. '존버' 라는 단어, '존버씨의 죽음' 읽은 후에 더 이상 가볍게 봐지지 않는다. 금수저, 흙수저, 플렉스, 스블재, 밈, 가짜뉴스, 뇌피셜, 틀딱, 맘충, 노키즈존, 휴거,엘사,빌거, 민식이법 놀이 등등. 


'홧김비용'을 읽으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다른 챕터들은 고르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