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반가운 작가의 반가운 작품입니다. 이미 국내에 [사라진 이틀]과 [클라이머즈 하이]가 소개된 요코야마 히데오의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으로 미스터리 팬이라면 아주 반색을 할 만한 작품이라고 보증합니다. 사실 요코야마 히데오가 일본에서의 명성이나 판매에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평가절하된 게 사실인데, 앞서 나온 두 작품이 미스터리보다는 '감동'에 무게가 실린 작품이고, 또 중반부까지의 놀라운 재미에 비해 결말이 좀 급작스럽고 서둘러 감동 한 마당으로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어 시작부터 결말까지 완벽하게 뛰어난 작품만을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의 한뼘 높은 눈높이를 통과하지 못한 경향도 있긴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멋진 작품'에서 '앞부부만 완벽한 작품'. '끝이 좋으면 다 좋은 작품', '끝은 아쉽지만 정말 재미있는 작품'까지 전부 좋아하는 제게는 요코야마 히데오는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남아 있지만 말예요. 결말이 좀 아쉽더라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비할 데 없이 재미있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결말만 약간 시시하다고 "쓰레기네, 형편없네" 하고 말아버린다면 끝까지 책을 읽느라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너무 비참해질 테니까요.

 

[종신검시관]을 읽고 든 생각은 어쩌면 요코야마 히데오는 단편에 더 맞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것과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의 단편이 더 먹히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편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주체 못해 다소 작위적인 감동으로 맺는 것보다, 짧지만 집중력 있는 이야기를 스트레이트하게 펼쳐 보이며 완벽하게 마무리짓는 단편들은 작가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결말의 약점을 지적할 수 없게 만듭니다. 더구나 [종신검시관]은 우리 미스터리 팬들이 무척 좋아하는 퍼즐 풍의 본격 미스터리죠. 예전 좋았던 시절의 명탐정의 풍모를 재현하는 검시관 구라이시 요시오가 시체 검시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를 바탕으로 명추리를 전개해 수사관들이 내놓은 결론을 뒤짚고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 구성으로 전개되는 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종신검시관' 구라이시는 L현경 수사과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입니다. 경찰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보직 변경을 피할 수 없지만 그만은 예외입니다. 경찰 생활의 시작부터 끝까지 검시관으로만 활약해 명예로운 종신검시관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워낙 검시 능력이 뛰어나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동안 맡은 사건을 퍼펙트하게 처리해낸 게 종신검시관이 된 가장 큰 이유지만, 상사한테도 거침없이 반말을 날리며 말도 안 되는 명령은 그냥 무시하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안하무인에 독불장군이라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야쿠자 같은 행동에 보스 기질이 있어 젊은 수사과들이 그를 선생님처럼 몹시 따라 별명도 '교장 선생님'이고 그 구라이시 스쿨의 수많은 제자들이 몸바쳐 그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또 높으신 분들도 그를 아끼기 때문에 그의 위치는 여지껏 무풍지대입니다. 이 작품집에서는 구라이시와 함께 일하게 된 다른 등장인물들의 눈을 통해 그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몇몇 단편에서는 거의 몇 장면 나오지도 않지만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라 그의 카리스마가 작품 전체를 압도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8편의 미스터리는 일본어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암호나 트릭을 만들기 위해 다소 억지스런 상황을 설정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무리없이 짜여져 있습니다. 첫번째 수록작인 <붉은 명함>은 고전기의 본격 미스터리가 연상되는 단순하지만 깔끔한 트릭이라 권할 만한데, 무엇보다 최고작은 4번째 작품 <전별>입니다. 이야기는 은퇴를 며칠 앞둔 형사부장이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십여 년 전부터 여름과 겨울에 날아오던 연하장이 갑자기 끊기자 궁금해한다는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형사부장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를 바탕으로 구라이시가 조사해 밝혀낸 진실은 절로 눈물이 터지는 감동스런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면모가 슬쩍 나타나는 이 단편은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을 봉사한 노형사들의 우정과 애틋한 모정이 함께하며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이 단편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독자들이 많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결코 편견에 휘둘리지 않은 채 양옆 시야가 가려진 경주마처럼 증거만 주시해 진실과 대면하는 구라이시의 전문가적인 면모에 빠질 수도 있고, 거칠과 투박한 말과 무뚝뚝한 행동으로 속마음을 감추지만 큰 못이 언젠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어느새 작품 전체를 포근히 감싸는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매력에 포로가 될 수도 있으며, 책 속에 제시된 단서를 잘 분석해 범인을 맞추는 순수한 추리소설적인 즐거움도 얻을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범주 안에서 이렇게 만족스런 단편집은 근래 별로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꼭 구라이시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리뷰를 읽다가 왔습니다. 정말로 제가 참조할 만한 글들이 많이 있어서 즐찾 등록합니다. 다시 와서 찬찬히 읽겠습니다 ^^

jedai2000 2007-07-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저도 즐찾 등록할게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을 만한 것들이 몇 개는 될 거예요.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리얼 월드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혜원 옮김 / 마루&마야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미미즈(지렁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등학교 3학년생 소년이 찌는 듯 무더운 여름날 충동적으로 어머니를 죽이고는 세상의 분기점에 놓이게 된다. 매일같이 밥을 먹고 학교를 가서 공부하며 다른 아이들처럼 살아가는 세계와 엄마를 죽인 패륜아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경찰을 피해 한없이 도망쳐야만 하는 '앞으로' 겪을 세계는 분명히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미미즈에겐 그 '앞으로'의 세계가 현실, 즉 리얼 월드다.

 

미미즈가 저지른 모친 살해사건에 우연히 엮이게 된 네 명의 절친한 여고생. 그중 가장 평범한 축인 도시코는 여고생을 상술의 대상이나 성욕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에 지쳐 '호리닌나'라는 가명으로 리얼 월드에서 도피하며 살아간다. 호리닌나가 미미즈에게 보이는 반응은 대다수의 평범한 여고생들처럼 '나와는 상관없어.' 성적 정체성 문제로 고통받는 유잔은 어머니를 죽인 미미즈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를 포기한 자신을 동일시해 그를 도우며, 두뇌 명석한 데라우치는 손쉬운(?) 해결을 택한 미미즈를 경멸하고, 친구들 사이에선 요조숙녀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 노는 여고생인 기라린은 살인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의 신나는 모험에 동참하고 싶어한다.

 

적당히 웃고 떠들며, 그럭저럭 우정을 나누던 네 소녀가 한 살인자 소년의 범죄에 맞닥뜨림으로써 어두운 마음의 그늘을 가진 소녀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고 그토록 애써 유지했던 가짜 세계가 산산히 조각나버린다. 바야흐로 그들은 압도적인 현실감이 넘치는 리얼 월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다섯 명의 소년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것은 각자 비밀을 갖고 있는 네 소녀가 자기는 그 비밀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들 이미 그 비밀을 알고 모른 척 해주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들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그들 사이가 사실은 한쪽 발은 차도에, 한쪽 발은 인도에 걸치고 걷는것마냥 간신히 유지되는 위태로운 친구 관계였다는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작품 맨 뒤에 실린 작품 해설을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기리노 나쓰오는 여성들의 4인 구도를 즐겨 사용하고, 거기에 한 명의 남자를 더한다고. 그러고 보니 <아웃>도 네 명의 주부가 주인공이었고, <그로테스크>도 네 여성들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였다. 작가가 주로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에 천착하는 '관계 문학'을 하기 때문에 가장 역동적으로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4자 구도에서 작품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설자는 적었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좋든 싫든 다른 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러한 인간 관계의 본질, 심연 그리고 파국을 냉혹한 심리 묘사로 묘파하는 데는 이미 대가의 경지에 오른 작가다.

 

<리얼 월드>는 어린 고교생들의 이야기다 보니 다른 기리노 나쓰오 작품들보다 더 빠르고 역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등장인물들 개개인이 점차 정신의 균형을 잃어가는 과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에 작품 전체에 어딘지 요사스런 기운도 감돌고 있으며 여전히 빈틈없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로테스크>나 <내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같은 최고 수준의 작품들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는 면이 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니만큼 평소처럼 인간의 병든 마음을 극한까지 후비고 파내기는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작품을 기리노 나쓰오가 아닌 다른 신인 작가가 썼다면? 대단한 찬사가 쏟아졌을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군에서 약간 처지는 수준이라는 것이지 일반적인 잣대에서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가작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끝을 보아야만 했다. 이 정도의 작품도 기리노 나쓰오가 쓴 것 중에선 비교적 무난하다, 는 평가를 받는 이 작가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p.s/ 지나가는 디자인학원 수강생을 붙잡아놓고 시킨 것 같은 표지와 거의 직역에 가까운 번역, 최소한의 편집 과정만 거친 듯한 만듦새는 아쉽다. 기리노 나쓰오가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작가는 절대 아닌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5-0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해설이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보는 기회를 줘서 좋았습니다^^

jedai2000 2007-05-0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과 의사가 한 평론이라 그런지 제게는 사용된 단어들이 어렵더군요. ^^ 그래도 <대답은 필요없어>에서 미야베 해설한 사람같이 내용없지는 않았으니까 좋았습니다.

nemuko 2007-05-0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s에 절대 동감.

jedai2000 2007-05-09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무코님...이 마야라는 출판사는 국내에 <범인에게 고한다>의 시즈쿠이 슈스케나 이 작품처럼 좋은 작품은 소개하면서도 완성도에는 의문이 들어 항상 아쉬움이 남네요. 기왕 돈들여 소개하는 책 잘 좀 만들어서 내면 판매도 더 좋아질 텐데 말입니다.

oldhand 2007-05-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출판사 책들 번역은 다 직역인건가보네요.

jedai2000 2007-05-0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윤혜원이라는 분께서 모두 맡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주변의 번역 잘 된 책들을 좀 찾아보고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군: 나 왔다. 오우, 뭐냐? 너 공부하냐?
강군: 응. 왔냐. 오랜만이다.
공군: 오랜만이나마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니가 책상에 앉아 있다니.
강군: 어, 잠깐 뭐 좀 할 게 있어서. 다 됐다. 거기 앉아 있어라.
공군: 아냐, 아냐. 뭘 하는지 봐야겠다. 뭐 쓰는 거야?
강군: 하하. 우리가 사는데 그냥 막 살아서 되겠냐. 계획성 있게 살아야지. 그래서 백년지대계를 세웠다.
공군: 계획은 우리랑 안 어울리는 단어잖아. 너 뭐 잘못 먹었냐?
강군: 임마, 너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나를 본받도록 해라.



공군: 그래, 뭔 계획이냐.
강군: 응. 서지혜랑 사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봤다.
공군: .......
강군: 어, 듣고 싶다고? 하하. 이거 비밀인데.
공군: 그런 말 안 했는데...
강군: 네가 그렇게 성화니 말해줘야지 뭐.
공군: 어이, 나 암 말도 안 했거든.
강군: 녀석, 호기심도.



공군: ......말해봐라.
강군: 먼저 서지혜를 만나. 그런 연예인들은 보통 주변에 떠받아들어주는 사람만 있을 거 아냐. 그럴 때 오히려 신선하게 한 마디 하는 거지.
공군: 뭐라고?
강군: "야, 이 X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공군: 그 다음에...
강군: 그리고 헤어지는 거지. 물론 그 당시에는 기분이 되게 나쁘겠지. 그런데 이제 그날 밤에 서지혜가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는 거지. "누구도 나한테 그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어."
공군: .......
강군: 그 다음엔 가만히 앉아 소식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 3일 안에 연락 온다니까.
공군: ....... 책 이야기나 하자.
강군: ....... 그러자.
공군: 거기 책상 위에 서지혜 사진이나 좀 치우고. 아주 입술이 하얗게 바랬구나. 얼씨구, 모니터에 침 덕지덕지 묻은 거 봐라. 니가 중학생이냐.



강군: 최근에 읽은 책은 <오듀본의 기도>야. 이사카 코타로 책이지.
공군: 왜 말을 돌려.
강군: 주인공은 이토라는 이십대 후반 남자야. 이 남자는 매사 도망만 치는 의욕이 없는 남자인데 최근에 눈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고, 좋아하는 여자랑도 깨졌어.
공군: 신세 처량한 건 우리랑 비슷하네.
강군: 그렇지. 암튼 충동적으로 편의점을 털다가 경찰한테 딱 걸린 거야. 이 경찰은 이토의 중학교 동창인데 경찰복으로 사람을 현혹시킨 다음에 재미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게 취미야. 경찰이지만 강간, 마약, 살인 뭐든 다 하는 악인이지.
공군: 너처럼 악독한 놈이구나.
강군: 암튼 호송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고 눈을 딱 떠보니 낯선 섬인거라. 알고보니 웬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토를 데리고 어떤 섬으로 옮겨논 거지. 그런데 그 섬은 일본 지도에도 없고 150년 넘게 일본 정부와 단절된 그야말로 환상의 섬이야. 하여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걸작이야. 무엇이든지 반대로만 말하는 화가. 자기 멋대로 사람을 죽이는 게 허용되는 권총을 든 미남자. 너무 뚱뚱해서 한 자리에서만 20년을 산 여자. 게다가 사람 말을 할 줄 알며 과거와 미래 모든 걸 보는 허수아비까지.


공군: 무슨 <오즈의 마법사>냐.  
강군: 일종의 판타지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네. 그런데 그날 밤에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고가 살해를 당해. 아니, 기술 파손을 당해. 산산조각난 시체, 아니 잔해로 발견되지.
공군: 오, 허수아비를 파손한 범인을 잡는 거야?
강군: 그런데 그게 아냐. 생각해봐. 허수아비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섬이니까 살인사건이 나도 범인을 허수아비가 다 말해줄 거 아냐.
공군: 일종의 명탐정이군.
강군: 칼이네. 바로 그거야. 그런데 그 명탐정이 죽었으니 또 다른 살인을 꿈꾸는 사람은 실행에 나서기가 쉽겠지. 그래서 또 한 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거야. 이제부터는 허수아비 유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인공이 추리를 해야 하는 거지.



공군: 아주 독특한 내용이구나.
강군: 응.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실질적인 데뷔작인데 처음부터 그 사람 작품의 특징이랄까 원형이랄까 다 들어 있더군. 다소 과장된 듯한 묘한 인물들과 기묘한 사건, 재치있는 대사와 시원한 전개, 상쾌한 끝맺음과 무언가 담아갈 수 있는 여운까지 말야.
공군: 네 말만 들음 아주 신선한 작가일 것 같구나.
강군: <오듀본의 기도>는 미스터리 작가로 원래 출발한 이사카 코타로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것 같아.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굳이 미스터리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거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주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하는 허수아비, 뭐든지 반대로 말하는 남자 같은 기묘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통해 미스터리 장르를 비틀고 꼬는 재미가 있거든. 특히 흔히 추리소설의 핵심이 되는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허수아비의 역할과 일치시켜서 담론을 이끌어내는데,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명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명탐정이 있어서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뭐 이런 식이지.
공군: 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해라. 힘들겠다.
강군: 처음에 그저 스치고 지나갔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합쳐져 진실이 밝혀지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도 있고, 산뜻한 이사카 코타로 풍미도 있지. 데뷔작이지만 그닥 쳐지지 않는 것 같다.




공군: 오늘 빌려가서 한 번 봐야겠네.
강군: 이사카 코타로도 초기작과 요즘 작품이 좀 다른 느낌이라 팬층이 각각 양분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초기작들이 더 좋아. 최근 너무 다작해서 신선도가 떨어진 감이 많거든.
공군: 잘 될 때 빠짝 버는구나.
강군: 다 그런 거지. 뭐, <오듀본의 기도>는 작가가 아직 절정에 오른 상태가 아니니까 약간 산만한 감도 있고, 멸종한 새를 통해 한 종이 절멸하는 순간의 쓸쓸함이나 그 많던 새를, 너무도 많으니까 내가 몇 마리 죽여도 표도 안 나겠지, 하며 멸종시켜버린 인간에 대한 회의, 그러면서도 인간들의 의지와 서로간의 교감, 우정, 뭐 그런 것들로 인간성 회복을 꿈꾸는 등 주제적으로는 약간 거창한 면도 있는 것 같긴 하다. 데뷔작으로 너무 나간 감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처녀작이니까 소박하게 써야겠다,는 사람보다는 패기있고 좋지 않니?
공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꼭 읽어보겠다.
강군: 아, 읽어볼 때 웬만하면 옮긴이의 글은 건너 뛰어라. 후기 쓰기 싫어하는 역자에게 글을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옮긴이가 쓰고 싶을 때 써야지 안 그러면 이 책 옮긴이의 글 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거란다.  
공군: 잘 알겠다. 그나저나 실컷 떠드니까 목 마르지? 맥주나 한 잔 사라.



강군: 장난하냐. 돈없어서 밥도 못 먹고 있는데.
공군: 헐. 나도 얻으먹으려고 왔는데. 야, 그럼 집에 있는 기물이라도 팔자. 냉장고 같은 거. 들여놓을 것도 없는데 있어서 뭐하냐.
강군: 네 거 팔아라. 그럼.
공군: 좋아. 그럼 내기를 하자. 지는 사람 기물 팔아서 맥주 사기. 사자성어 끝말잇기 대결.
강군: 오케이. 시작해라.
공군: 양상군자.
강군: 자축인묘.
공군: 너 대학 나왔잖아. 어떻게 두 번을 못 돌아 이 자식아.
강군: 야, 이 X아. 네가 그렇게 잘났어.
공군: 암튼 뭐 팔 거냐.
강군: 냉장고.




공군: 그래도 둘이 같이 드니까 좀 낫지.
강군: 그래.
공군: 우리 신세도 참 거지 같다. 이 나이 먹어서 맥주 마실 돈이 없어 집기를 팔다니. 이것 참.
남보기 부끄러워서 원. 인생 헛 살았네. 정말 자괴감이...
강군: 마찬가지다. 에효, 우리 몇 살?
다같이: 서른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5-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군 공군이 서른이라니 오^^

jedai2000 2007-05-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밝혀지는 강군 공군의 비밀이라죠. 일단 나이는 서른살, 대학은 나왔고, 백수 상태 ^^
 
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빈스 캠든에 대해 알아보자. 시민 빈스는 워싱턴 주 스포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당신을 허기지게 만드는 도넛' 가게에서 지배인 겸 수석 제빵사로 일한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 출근을 하고 점심 시간까지 근무하는 그는 출근하기 전에 온갖 인간 쓰레기, 낙오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포커를 하는 '샘스 피트'라는 술집에 들른다. 샘스 피트의 전 주인이 샘이라 샘스 피트지만, 현재 주인은 에디다. 하지만 다들 그를 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르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빈스지만 사실 어두운 과거가 있었으니, 알고 보면 그는 뉴욕에서 마피아와 손을 잡고 일하던 카드 사기 전문가였다.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죽이려는 마피아에 대한 폭로 증언을 하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마티 하겐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스포캔에 숨어 빈스 캠든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빈스는 스포캔에서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여전히 카드 사기와 마리화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어느 날 자신의 동업자가 얼핏 봐도 무시무시한 인상의 한 사내를 데리고 나타난다. 음험한 분위기의 이 남자, 레이는 수 틀리면 다짜고짜 사람을 쏴 죽이는 흉악한 범죄자인데 빈스를 노리고 있다. 빈스는 생각한다. 마피아가 내가 사는 위치를 알아냈구나, 레이는 나를 죽이려는 킬러고. 사기꾼 잡범에 불과한 빈스에겐 마피아의 해결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빈스에게 의혹의 눈을 거두지 못하는 듀프리 형사와 킬러 레이의 총 앞에서 간신히 몸을 빼고 결자해지하러 뉴욕으로 떠나는 빈스의 운명이 어떻게 풀릴지 관심이 가지 않는가?



전반적으로 풍부한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빈스의 심리 상태를 기술할 때도 자잘한 유머가 많고, 가끔 한 번씩 기가 막히게 웃겨주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믿지 못할 테니 예를 들어볼까. 레이에게서 도망가려는 빈스가 짐을 싸고 있는데, 레이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다. 무기가 될 거라곤 납 파이프 하나뿐.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고 대통령 후보(그러나 레이건과 카터에 비하면 지지율이 형편없는) 존 앤더슨의 홍보원 셜리가 들어온다.



셜리는 무척 불안해 보였다. "그만 가봐야겠어요."
이건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빈스는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았지만, 이미 머릿속에 다른 방법이 떠오를 수 없을 만큼 이 생각 하나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셜리에게 파이프를 건넨 뒤 현관문에서 무릎 높이쯤에 나 있는 우편물 수신용 함을 가리켰다. (...)
레이와 레니는 빈스의 시선을 따라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총신으로 보이는 물건이 우편물 홈 밖으로 나와 레이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레이는 총이 맞는지 확인을 하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총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



"파이프 아냐?" 레이는 실눈으로 현관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레니 역시 실눈을 뜨고 있었다. "저걸 총이라고 믿으란 말야. 빈스?"
레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릴 포위하려고 배관공을 불러모았군, 형씨?"
바로 그 순간 총신은 큐 사인을 받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셜리 스태퍼드가 활짝 웃는 얼굴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손에 든 파이프를 흔들고 있었다.
"친구 분이 속아 넘어갔나요, 캠든 씨?"




위에서 얼핏 레이건과 카터의 이름이 등장했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두 사람이 격돌했던 1980년 대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티 하겐이라는 이름으로 살 때는 쉴새없이 감옥을 들락거리느라 선거권이 박탈되었지만, 빈스 캠든은 새로 태어난 사람이나 다름없으므로 물론 선거권이 있고 선거용지도 배달되어 온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와 감동은 여기에 있다. 마티로는 밑바닥 삶을 살았지만 빈스로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 빈스는 한 사람의 훌륭한 시민으로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다시 없을 인생의 기회가 이번 선거에 걸려 있음을 직감한다.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선거에 광적으로 몰두하다시피 하는 빈스의 집착은 물론 우습지만 어느 순간 그 진심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여기서 한 인간의 반성과 회오, 다시 시작하기 위한 굳은 의지와 열망이 한 순간에 교차하고 독자들은 진한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져게 되는 것이다.



작가 제스 월터가 비교적 경험이 일천한데도 작년 미국추리작가협회 최우수상 수상작을 받은 작품으로 당시 경쟁자가 미국추리작가협회 회장 마이클 코넬리, 미지의 거장 토마스 쿡, 최근 국내에 두 작품이 소개된 조지 펠레카노스, 메디컬 스릴러의 신성 테스 게리첸으로 쟁쟁했음에도 수상의 영광을 이뤄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막상 읽어보니 탈 만한 작품이 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내 유쾌하며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커다란 감동까지 아울러 느낄 수 있었기에. 미스터리 장르라는 기준으로 보면 사실 근사한 트릭이나 반전 등이 없고 어떻게 보면 일반 소설에 더 가깝다. 빈스가 레이의 위협에 맞서 좀더 머리를 굴려 기발하게 끝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책 자체가 워낙 좋아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는 한 동안 여기저기 추천하고 입소문을 낼 작품으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부동산 중개인이 되려고 공부하는 중이예요.'하고 말하는 게 좋았고요."
베스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빈스..., 칫! 정말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내가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어쩌죠? 그럴 만한 머리가 안 되면 어떻게 해요?"
"베스..."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요. 그런 것에 이렇게 목매달다니 정말 바보 같죠?"
빈스는 마침내 팔을 내밀어 베스의 부러진 팔을 잡았다.
"베스, 지금보다 나은 걸 원하는 건 바보 같은 게 아니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20세기의 최초 10년 동안 사람들은 향후 역사를 바꿀 천재들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파블로 피카소는 현대 미술을 다시 그렸고, 특허청에서 일하던 독일인 아인슈타인은 현대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1900년에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 박사는 정신분석학이라는 혁명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니, 가히 천재의 시대라 할 만하다. <살인의 해석>에서도 세상을 바꿀 천재는 세기초의 10년 안에 등장한다고 지적하면서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의 예를 들고 있는데, 2007년 현재 전 세계를 놀래킬 천재는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들고 나올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살인의 해석>은 정신분석학의 태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이자 '컴플렉스'라는 말을 만들어낸 또 다른 심리학의 거인 카를 융이 살인사건을 수사한다면, 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으로 출발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기틀을 닦아놓은 심리학의 방법론을 이용해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이 오늘날 각광받고 있으니 아주 허황된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한 것은 생전에 단 한 차례, 미국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강연을 부탁했기 때문에 1909년에 배를 타고 건너온 것이 유일했다고 한다. <살인의 해석>은 이때 미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프로이트가 참여한다는 일종의 팩션 미스터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1909년, 프로이트와 수제자 융이 뉴욕의 항구에 도착한다. 젊은 정신과 의사 스트래섬 영거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성심성의껏 모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 그날 호화찬란한 발모럴 아파트에서 한 젊은 여인이 넥타이에 목이 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온몸에는 채찍과 면도칼로 난자당한 상처가 가득한 채. 공교롭게도 다음날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또 한 번 뉴욕 시내에 울려퍼진다. 또 한 명의 여인이 살해당할 뻔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살아났지만 역시 채찍과 면도칼에 당한 상처가 났으며, 넥타이로 졸린 목은 피멍으로 얼룩졌다. 열여섯 살에 불과한 소녀, 노라 액튼은 충격으로 말을 잃었으며 사건 당일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심리적인 원인으로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해본 경험이 많은 프로이트가 사건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와 융을 내세웠지만, 사실 주인공은 영거 박사와 리틀모어 형사다. 영거 박사는 프로이트를 대신해 노라 양을 치료하는데, 그녀는 곧 영거 박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사실 이것은 환자가 의사에게 보이는 무조건적인 숭배 현상을 뜻하는 전이에 다름아닌데, 영거 박사 역시 노라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역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인지 마음의 장난인지 반신반의하는 영거 박사와 노라의 이야기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또한 이 사건을 심리학이 아닌 증거 제일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경찰의 입장에서 수사하는 리틀모어 형사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아직 젊기에 뇌물을 안 받아먹고 때가 덜 탔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담당 수사관이 된 것인데, 의외로 명탐정을 방불케 하는 뛰어난 추리력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진상에 점차 접근해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배경이 20세기 초반이라서인지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빠른 템포의 스릴러 식이 아니라 엘러리 퀸 풍의 클래식 미스터리 형식으로 사건을 풀어가서 일단 반가웠다. 유전자나 다른 과학 지식 난무로 머리 아플 일도 없고. 하지만 확실히 미국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양식이 사양길이고, 쓰는 작가도 거의 없기에 참조할 작품이 별로 없어서인지, 고전 미스터리의 맛을 썩 잘 내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고전 미스터리의 맛은 매력적인 탐정이 단서를 잘 조합해낸 다음 명추리를 전개해 용의자 인간군상들 앞에서 트릭을 확 폭로하며 한 방을 멋지게 터뜨려야 맛이 사는 법인데 <살인의 해석>은 대체로 밍숭맹숭하다. 가장 중요한 단서인 목에 새겨진 머릿글자를 둘러싼 공방도 이게 뭐 어쨌다는 건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별로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한 가지 더 실망스러운 점은 프로이트와 융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홍보 문구와는 달리 프로이트가 약간의 조언을 해주는 정도고 융은 작품 내내 방황만 할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성실하게 씌어진 점은 마음에 든다. 작가 제드 러벤펠드는 당시의 시대상을 꼼꼼이 조사해 독자들이 마치 1900년대 초반 뉴욕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실성을 덧입혔다. 그가 아니었다면 맨해튼을 잇는 다리를 건설할 때 아래가 뚫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상자 모양의 '잠함'을 강 속으로 투하시켜, 그 안의 물을 빼고 공기를 주입한 다음 인부들이 작업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밖에도 프로이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당대 미국의 지식인 계층(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컴플렉스는 따지고 보면 근친상간의 욕망인데, 은근히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그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의 배척과 탄압, 살인 사건의 해결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프로이트와 융의 대립과 결별 등의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심리학이 태동하던 당대의 공기를 잘 잡아내고 있음은 칭찬할 만하다. 

 

작가 제드 러벤펠드는 프로이트를 오래 연구한 사람이라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프로이트의 대사는 거의 실제 그의 학설, 발언, 논문 등을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아주 허투로 쓰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그다지 어렵지도 않아 프로이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상식만 있다면 누구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이고. 미스터리로서도 적당히 재미있고, 시대를 초월한 프로이트 이론의 매력도 잘 살려내 누가 읽어도 그다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4-2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님도 엘러리 퀸을 느끼셨군요^^

jedai2000 2007-04-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리 퀸이 이런 소재를 가지고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더 잘 했을텐데 ^^

2007-04-23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7-04-23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글쎄, 뭐 읽을 만은 합니다. 뒤의 설명이 좀 부실해서 그렇지,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몰입감이 있고 재미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