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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탐정 조즈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평점 :
추리소설가 고게쓰는 후배 유이카에게 함께 영매사를 만나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는다. 유이카의 말인즉슨, 한 달 전쯤 친구와 점술을 보러 갔는데, 그때 점술가가 유이카에게 이상한 말을 했다. 웬 여자가 유이카를 보면서 울고 있다는 것! 그후 유이카는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집 침대 옆에서 훌쩍이는 여자를 보게 된다. 불길한 기분에 다시 점술가를 찾아가니, 점술가는 그 이상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으면 유명한 영매사를 소개해 줄 테니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유이카와 고게쓰는 영매사 조즈카 히스이와 만난다.
2019년 연말 일본 미스터리 상을 휩쓴 아이자와 사코의 '영매 탐정 조즈카'. 워낙 일본 현지 독자의 평이 좋아 국내 출간을 손꼽아 기다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회자가 된 것은 작품 후반에 폭발하는 '역대급 반전'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반전이기에 일본 열도가 그토록 들썩거렸는지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아이자와 사코는 '오전 0시의 상드리용'으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주로 라이트 노벨을 써온 작가다. '영매 탐정 조즈카'도 라이트 노벨의 느낌이 물씬 나는 본격 미스터리인데, 어떻게 보면 작가가 작정하고 이 장르의 벽 몇 개를 허물며 거기서 새로운 색깔을 뽑아냈다고 볼 수 있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이 이 작품을 새로운 미스터리 걸작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미모의 영매사 조즈카와의 짦과 강렬한 만남 이후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여러 살인사건의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되는데... 워낙 복선 지뢰밭이고 전체를 뒤집어버리는 반전이 핵심인 작품이라 줄거리를 더 언급하기도 어렵다. 책의 구성은 네 개의 커다란 옴니버스 사건과 그 막간을 관통하는 어느 연쇄 살인마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구조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사건은 각각 '우는 여자에 얽힌 살인사건', '별장에서 벌어지는 작가 살인사건', '여고에서 벌어지는 연속 교살 사건', 그리고 전체 스토리에서 내내 언급하는'연쇄 살인마와의 최후의 대결' 이렇게 나누어진다. 언제나 조즈카가 영능력으로 범인을 직감하면 고게쓰가 증거를 모으고 범인이 범인이 될 수밖에 없는 추리를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 워낙 기대감이 컸기에 첫 에피소드를 읽을 때만 해도 '뭐 재미는 있지만, 그냥 이 정도였던 거야?'라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각각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럭저럭 논리적이었지만 묵직한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라이트 노벨 느낌이 생각보다 강했고, 내가 기대했던 '호러+추리'의 조화로움은 약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챕터, 'VS엘리미네이터' 편에서 완전히 허를 찔려버렸다. 일본 현지 홍보 문구였던 '모든 것이 복선'이라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라 정말 딱 맞는 표현이었다! 뭐랄까,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여가던 세계가 폭발하듯 무너져내리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듯한 쾌감이었다.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내가 그때 그 대목에서 좀 짜증을 냈고, 왜 라이트 노벨처럼 쓴 거야, 뭐야 이게~ 라고 혀를 찼던 것까지- 작가의 계산이었고, 그 계산 위에서 이렇게 뒤통수를 내려친 것이구나, 하는 경탄마저 들었다. 내내 작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던 것)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반전의 충격도 놀라웠다. 어디 내가 속아넘어가나 보자, 하고 눈에 불을 켜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상상도 못할 반전에 두 손 다 들었다.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는 독자도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도 모두 만족할만한 작품이다. 이 두 독자층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려운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된다. 거기까지~ 작가가 다 계획했던 부분이라는 것을! 라이트 노벨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최종 라스트에 이르면 이 작품은 어딘지 이야미스 계열의 느낌을 풍긴다. 잔인한 묘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내내 사람들이 엄청 죽어나가고 연쇄 살인까지 겹쳐져 인간의 어둡고 비틀린 부분을 많이 조명한다. 생각 이상으로 어두운 작품이니, 예쁜 표지에 속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