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15 아이말·할매말



  말꽃을 짓는 길은 아이랑 할매를 보면 어림하기 쉽습니다. ‘어린이’는 배움터에 드는 나이요, ‘아이’는 아직 배움터에 안 드는 나이입니다. 이제는 가시내도 스스럼없이 배움터에 다니지만 지난날에는 가시내를 안 가르치려 드는 갑갑한 얼개였어요. 자, 봐요. ‘배움터에 들지 않거나 못한 아이하고 할매가 쓰는 말’은 더없이 쉬워요. 어렵거나 딱딱하거나 갇히거나 위아래를 가르는 말씨가 없습니다. 아이하고 할매는 책이 아닌 온몸에 아로새긴 삶을 일놀이로 그려요. 아이랑 할매는 낯선 살림을 만나면 말을 스스로 즐겁게 짓습니다. 남이 지어서 외우라고 시키는 말을 도무지 안 받아들여요. 저도 어릴 적에 그랬는데요, ‘자동차’ 아닌 ‘씽씽이’라 했고, ‘기차·열차’ 아닌 ‘칙폭·칙칙폭폭’이라 했습니다. 저만 ‘씽씽이·칙폭’을 쓰지 않았어요. 아이라면 으레 이런 말을 써요. 자, 더 생각해요. 아이 아닌 어른은 왜 ‘씽씽이’를 ‘자동차’를 풀어낼 우리말로 못 삼나요? ‘칙폭나루(←기차역)’나 ‘칙폭길(←선로)’처럼 쓸 만하지 않나요? ‘바람칙폭(←KTX)’처럼 써도 재미있어요. ‘따르릉·따릉’을 아이나 할매는 ‘전화·전화기’로 삼으니 ‘집따릉·손따릉·똑따릉·아침따릉·일따릉’처럼 써 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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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숲노래 우리말

나는 말꽃이다 14 빨래하고 밥하고



  빨래를 하지 않고서는 ‘빨래’라는 낱말을 풀이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배를 엮다》를 읽으면, 말꽃지음이(사전편찬자)가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풀이할 수 없다고 느끼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말꽃지음이는 빨래도 사랑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미움·시샘’이라든지 ‘골부림·짜증’도 낼 줄 알아야 하고 ‘삿대질·닦달’이나 ‘싸움·겨루기’도 해봐야 하더군요. 이러지 않고서는 이 낱말을 제대로 풀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보기글이나 쓰임새나 말결을 찬찬히 못 밝혀요. 아기를 낳아 돌보지 않은 말꾼이라면 ‘아기’를 풀이하지 못할 테고, 밥을 짓지 않은 이라면 ‘밥·부엌칼·도마’도 풀이하지 못하겠지요. “빨래 : 1. 더러운 옷이나 피륙 따위를 물에 빠는 일 ≒ 세답 2. 더러운 옷이나 피륙 따위. 또는 빨아진 옷이나 피륙 따위 (국립국어원 말꽃)” 같은 말풀이를 보고 끔찍했어요. 그래서 저는 “빨래 : 몸을 즐거우면서 깨끗하고 가볍게 누리고 싶어서, 몸에 걸치는 여러 가지를 즐거우면서 깨끗하고 가볍게 다스리는 길. 흔히 물·비누·솔을 써서 때·먼지를 씻어내고, 바람·해를 써서 말린다 (숲노래 말꽃)”처럼 뜻풀이를 갈아치울 생각입니다. ‘빨래’가 뭔지 밝혀야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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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숲노래 우리말

나는 말꽃이다 13 왜 읽을까 ㄴ



  ‘말에 깃든 삶’을 알려고 읽는 낱말책이니, 낱말책을 엮거나 지을 사람은 ‘낱말 하나마다 어떤 삶이 깃드는가’를 꼼꼼히 두루 널리 골고루 찬찬히 짚어서 담아낼 노릇입니다. 안타깝다면, 우리말꽃 가운데 이렇게 살핀 책은 아직 드뭅니다. 다들 낱말 부피를 더 늘리는 데에 치우치면서, 서로서로 베끼고 말아요. 이러다 보니, 글꾼도 처음에는 낱말책을 읽으려고 곁에 두다가 이내 밀치지요. 낱말책다운 낱말책이 없다고 여겨 아예 안 쳐다보기까지 합니다. 글꾼만 나무랄 수 없습니다. ‘말꾼(국어학자)’을 나란히 나무라야 합니다. 스스로 낱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새롭게 붙일 뿐 아니라, 쓰임새하고 말결을 깊게 짚어서 글꾼이 기쁘게 읽을 만하도록 엮는 길을 아주 벗어나 버렸거든요. 무엇보다도 오늘날 웬만한 말꾼은 열린배움터를 마치마자마 일터에 깃들었을 뿐, 정작 스스로 삶을 지은 나날이 없다시피 합니다. ‘말을 다루지만 말에 깃든 삶을 손수 지은 나날이 없이 달삯쟁이(월급쟁이)’ 노릇만 하는 말꾼이 너무 많다 보니, 낱말책이 하나같이 엉성하겠지요. 말꾼은 말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말에 깃든 삶’을 알아야 하고 ‘삶이 깃든 말’을 알아야지요. 낱말책은 이런 두 얼거리를 슬기롭게 읽어서 새롭게 가꾸려고 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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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12 왜 읽을까 ㄱ



  지난날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낱말책을 안 읽었습니다. 아니, 지난날에는 낱말책이 없습니다. ‘지난날’이란 1940년까지를 말합니다.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어사전》을 냈고, 제임스 게일 님이 1890년에 《한영사전》이란 이름으로 낱말묶음(단어장)을 내놓았으나, 그때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책을 곁에 안 두었어요. 저마다 스스로 나고 자란 터전에서 익힌 사투리·고장말로 스스럼없이 글꽃을 지폈습니다. 1940년까지만 해도, 또 그 뒤로 한동안 글꾼은 ‘몸으로 익힌 삶말’을 마음껏 펼쳐 보였어요. 이러다가 배움터 틀이 서고, 열린배움터가 늘어나고, 글을 가르치는 데가 늘면서 차츰 ‘삶을 짓지 않고 글만 쓰는 사람’이 덩달아 늘고, 삶이며 살림을 모르기에 낱말책을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람이 생겨요. 지난날에는 글만 알고 삶을 몰랐기에 낱말책을 곁에 두었다면, 오늘날에는 글만 알더라도 낱말책을 곁에 안 두는 글님이 대단히 많습니다. 손수 밥옷집을 짓지 않으면서 낱말책마저 곁에 안 두면 어떤 글을 쓸까요? 두루 보면 오늘날 글꾼은 ‘열린배움터에서 배우고 책으로 읽은 글’을 이녁 글로 고스란히 옮깁니다. 삶이 없이 글만 쓴달까요. 낱말책은 ‘말에 깃든 삶’을 알려고, 또 ‘삶으로 지은 말’을 익히려고 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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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11 스펙



  저는 쓰는 낱말도 많으나, 안 쓰는 낱말도 많습니다. 제가 안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는 ‘스펙’입니다. 이 말씨는 일본을 거쳐 들어왔을 텐데, 영어로는 ‘qualification’이라 할 뿐이라지요. 한자말로 하자면 ‘자격’쯤 되리라 봅니다만, 우리말로 풀자면 ‘감’이나 ‘밑·바탕’이나 ‘밑틀·밑거리·밑솜씨’쯤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중에 어디에서 쓰려고 다지기에 ‘밑’이나 ‘감’인데요, 요새는 열린배움터(대학교)나 일터(회사)에 잘 들어가려는 뜻으로 차곡차곡 모은다고들 합니다. 가만 보면 딱한 노릇입니다. 스스로 새롭게 빛나면서 즐겁게 하루를 누리려고 차근차근 갈고닦는 길이기에 밑감이요 밑솜씨예요. 어디에 내다팔려고 쌓을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가 뒤숭숭할 뿐 아니라, 먹고살려는 싸움판이 되니, 말마저 일그러져 일본영어(재패니쉬)라는 ‘스펙’을 아무렇지 않게 끌어들여 아무 데나 쓰는 셈일 텐데, 참말로 우리말꽃을 뒤적이면 일본말·일본 한자말·일본영어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널리 쓴다면 ‘뜻풀이보다는 쓰임새를 제대로 알려주’려고 낱말책에 실을 수 있습니다만, 이때에는 “스펙 → 감, 밑, 밑감, 밑거리, 밑길, 밑바탕, 밑밥, 밑절미, 밑받침, 밑틀, 밑판, 밑솜씨”쯤으로 다루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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