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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받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
[시골사람 책읽기 005] 이희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청년사,2003)

 


  만화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청년사,2003)는 바스콘셀레스 님 글에 이희재 님이 그림을 붙였습니다. 만화책 끝자락에 “전 아이들에게 가끔 딱지와 구슬을 나누어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별로 위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전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났습니다(370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소설책으로든 만화책으로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책이 우리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란 바로 이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누구나 삶에 사랑이 있어야 빛납니다. 누구라도 삶에 사랑이 없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찾아 이 지구별에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누리려고 이 지구별에서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을 쓰려고 삶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을 얻으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을 떨치려고 삶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사랑을 받아 태어나는 사람이요, 오직 사랑을 즐기면서 하루를 빛내는 사람입니다.


  갓난쟁이한테뿐 아니라 어린이한테도 돈은 덧없습니다.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푸름이한테도 돈은 부질없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돈이 있으면 과자를 산다든지 피자를 산다든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든지 여길는지 모르나, 이런저런 주전부리나 피시방 게임이란 사랑하고 동떨어집니다. 콜라 한 병을 사다 마신대서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초콜릿 하나를 사다 먹는대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아요. 한동안 배가 부르다 하지만, 사랑으로 빚은 밥 한 그릇이 아닐 때에는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따스해지지 않아요. 따순 손길로 어루만지는 어버이가 반가운 아이들이에요. 고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른이 좋은 아이들이에요.


.. ‘히히히, 아무도 너(라임오렌지나무)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을 몰라. 식구들이 우리가 얘기를 하게 된 걸 알면 까무라칠 거야.’ ..  (98쪽)


  우는 아이한테는 젖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냥 젖이 아닌 사랑이 담긴 젖을 주어야 합니다. 아픈 아이한테는 몸을 다스리는 약을 주든 누워서 쉴 자리를 주든 해야 할 텐데, 약이든 무엇이든 처방전 아닌 사랑이 깃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감돌지 않으면 밥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서리지 않으면 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어리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없는 채 이루어지는 교육은 교육 아닌 훈육이나 지도편달이 될 뿐입니다. 훈육이나 지도편달로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꿈이나 슬기를 빛내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공부 여섯 해를 보내면서 대학교에 붙는들 무슨 보람이 있을까 생각해야 해요. 대학교에 붙으려고 보내야 하는 여섯 해 푸른 삶이어야 할까요. 참으로 푸르게 누리면서 빛낼 여섯 해 삶이 아닐까요. 어른들은 돈을 많이 벌면 즐거운 삶일까요? 돈을 벌려고 태어나서 돈을 쓰면서 살아야 하는 어른일까요?


  아침에 씩씩하게 일어난 우리 집 다섯 살 아이가 어머니랑 뒷밭으로 가더니 까마중을 따서 먹습니다.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12월이 코앞이라 하지만 빈 들과 빈 밭 한켠에 까마중이 자랍니다. 곱게 둔 밭자락 한켠에는 가을쑥이 아직 푸른 빛 마음껏 뽐내며 자라다가는 잎 끄트머리가 붉게 물들며 쑥꽃을 피웁니다.


  마을 어디를 가도 쑥을 잡풀로만 여겨 베어 없애거나 약 뿌려 죽이려고만 합니다. 쑥내음 맡으며 예쁘게 바라보다가 쑥꽃 곱다라니 줄지어 달린 모습을 지켜보기란 참 힘들어요.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하더라도 풀꽃 한 송이 살뜰히 구경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망초를 보면 밭 다 망가뜨린다고 얼른 잡아서 뽑으려고만 하지, 달걀처럼 하얗고 노란 봉우리를 느끼려 하지 않아요. 아이도 어른도 너무 바쁩니다. 아이도 어른도 느긋한 마음이 못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너무 한 가지만 바라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삶을 누리는 기쁨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 “이대로는 학교에 갈 수가 없으니 집으로 데려다주마. 며칠 쉬면 금방 아물 거야. 정말 잘 참았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용기가 있는 아이인 줄은 몰랐다.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정말로 커서 내게 앙갚음을 할 생각이니?” ..  (207쪽)


  시골마을마다 따로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빈 논자락에 유채씨를 뿌려야 예쁜 꽃을 구경할 수 있지 않습니다. 아무 돈을 안 들이고 아무 품을 안 들여도, 빈 들을 가만히 두면, 온갖 들꽃이 저마다 다른 빛과 무늬를 뽐내며 얼크러집니다. 들에 잡풀 많이 자라 걱정스럽다고요?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아요. 어차피 요즈음은 경운기나 트랙터를 써서 논갈이를 하잖아요. 외려 온갖 풀 잔뜩 자라면 온갖 풀이 저마다 다른 거름 노릇을 해요. 괭이밥풀은 괭이밥풀대로 거름이 됩니다. 씀바귀는 씀바귀대로 거름이 됩니다. 냉이는 냉이대로, 보리뺑이는 보리뺑이대로, 지칭개는 지칭개대로, 미나리는 미나리대로, 고들빼기는 고들빼기대로 저마다 거름이 되어요. 논갈이를 해서 거름으로 바뀌기 앞서는 맛난 풀이 됩니다. 맛있는 봄나물 봄풀이에요.


  유채는 잎이란 줄기를 맛나게 먹을 수 있기는 한데, 유채만 먹고는 어떻게 살아요. 유채도 먹고 비름나물도 먹어야지요. 갓도 먹고 돗나물도 먹어야지요. 쌀밥만 먹고는 못 살잖아요. 국도 먹고 김치도 먹으며 무랑 배추랑 시금치랑 골고루 먹어야지요. 보리밥도 먹고 수수밥도 먹어야지요.


  도시 한복판에 애써 나무를 심거나 꽃을 심어야 예쁜 길이 되지 않습니다. 관청에서 돈을 들여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능금씨 하나 심고, 배씨 하나 심으며, 감씨 하나 심으면 돼요. 빈터를 마련하고, 도시에서도 동네마다 곳곳에 마을밭이 있으면 됩니다.


  능금씨 한 알은 천천히 자라 처음에는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라고, 이윽고 어른 팔뚝만큼 자라다가는, 열 해쯤 지나면 어른보다 키가 클 테고, 스무 해쯤 되면, 또는 열다섯 해쯤 되면 열매를 내어줄 수 있겠지요.


  하루아침에 뚝딱 우지끈 짓는 건물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할 수 없어요. 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로 집을 지으면 오백 해를 가고, 이천 해를 살아온 나무로 집을 지으면 이천 해를 간다고 해요.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은가를 헤아리며 집을 지을 노릇이요, 나 스스로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가를 헤아리며 살림을 꾸릴 노릇입니다.


.. “푸른 이파리가 낙엽이 되어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해에 싹으로 되살아나는 것처럼, 무엇이든 사라지는 것은 없단다. 하잘것없는 풀이 겨울엔 건초가 되어 치즈를 만드는 데 쓰이지 않니? 제제, 기운을 내렴. 누구라도 서로 잊지 않고 가슴속에 깊이 품고 있으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단다.” ..  (322쪽)


  사랑받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자라는 풀입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아침마다 해가 새롭게 뜹니다. 사랑받고 싶어 들새와 멧새는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받고 싶은 가을바람이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따사롭게 붑니다.


  고흥 어른들은 고흥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가 궁금합니다. 고흥 아이들은 어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가 궁금합니다. 고흥이라는 마을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사랑이 넘치는 곳인지 궁금합니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바스콘셀레스 글,이희재 그림,청년사 펴냄,2003.3.25./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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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3-06-12 15:22   좋아요 0 | URL
뽀르뚜까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제제는 어찌 할 줄을 모르죠. 너무 슬퍼해서 저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네요. 몇년전인데 아마도 제 딸아이가 제제 나이쯤이었을거예요. 그래서 제제의 슬픔이 그리 크게 느껴졌을까요?
 
인간의 벽 3 - 변화의 물결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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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서울로만 보내는 어른들
[시골사람 책읽기 004] 이시카와 다쓰조, 《인간의 벽 (3)》(양철북,2011)

 


  이원수 님이 쓴 동시 〈자두〉를 읽으면 “자두밭에 가면 달큼한 자두 냄새” 하고 첫머리를 엽니다. 더없이 마땅한 소리이지만, 이 마땅한 소리를 어린이시로든 어른시로든 쓰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자두밭에 가니 자두 냄새가 날 텐데, 이 마땅한 이야기를 시로도 소설로도 쓰지 못해요.


  겨울날 멸치를 말리는 바닷마을에 간다면 멸치 냄새가 널리 퍼지겠지요. 가을날 나락을 베어 말리는 시골마을 고샅에 서면 나락 냄새가 골고루 퍼질 테고요. 그런데, 멸치나 나락에서 풍기는 고소하며 흐뭇한 냄새를 노래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아주 드뭅니다. 멸치나 나락 냄새를 노래하는 가수는 몇이나 될까요. 아니, 있기나 할까요.


  아이들과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서 지내면 아이들 목소리를 스물네 시간 듣습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하노라면, 아이들 살내음을 스물네 시간 맡습니다. 이원수 님이 〈자두〉라는 동시를 써서 “자두 냄새”를 노랬다면, 나는 ‘아이’라는 동시를 써서 “아이 냄새”를 노래할 만합니다. 참말, 아이들 자장노래를 부르는 깊은 밤에 “착한 아이 예쁜 아이” 소리를 끝없이 되풀이합니다.


  2012년에 다섯 살 두 살인 아이들은 2013년을 맞이하면 여섯 살 세 살이 됩니다. 큰아이는 이제껏 보육원이건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안 다닙니다. 어버이 두 사람이 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기고 싶지 않으니 안 보냅니다. 아이들이 받아야 할 것이라면 ‘교육’과 ‘훈육’이 아닌 ‘사랑’과 ‘믿음’이라고 느껴요. 아이들은 ‘영양’을 먹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 담긴 ‘밥’을 먹어요.


  참 많은 어버이들은 아이들한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베푼다면서 서울로 가려 합니다. 서울로 가면, 서울에서도 강아랫마을로 가려 합니다. 또 강아랫마을에서도 어느 학군에 들어가려고 용을 씁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모여 지나치게 시끌벅적한 서울에서 지내는 어버이와 아이는 즐거울까요? 한 해에 거의 천만 원쯤 들여 유치원에 보내는 서울마을 어버이는 즐거운 ‘교육’을 아이한테 베풀까요? ‘더 나은 교육 환경’이라는 데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서울마을 아이는 즐거운 ‘삶’을 누릴까요?


.. 점수가 떨어졌으면 떨어진 만큼 성적으로 환산해 버리면 되는 것인지, 또 점수보다는 더 실력이 있었을 텐데 점수가 안 나온 학생에게 오직 점수만으로 성적을 평가해도 괜찮은 것인지 …… 성적표를 받고 나서 성적이 떨어진 아이와 그 부모들이 실망할 것을 생각하면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크나큰 죄악처럼 생각된다. 한 아이의 지식과 재능, 성격, 품행을 두고 ‘너는 이만큼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다.’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불순한 행위가 허용되어도 괜찮을 것일까 ..  (3권 25쪽)


  나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맹자 어머니’를 배웠습니다. 흔히 어려운 한자말로 ‘맹모삼천지교’라 읊지만, 나는 그저 ‘맹자 엄마 얘기’로 떠올립니다. 맹자를 낳아 돌본 어머니는 ‘아이가 지내기에 가장 좋은 터’를 찾아 집을 옮깁니다. 세 차례 옮긴다지요.


  맹자 어머니는 어디에 집을 마련할까요. 맹자 어머니는 어떠한 곳이 가장 좋은 터라고 여길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은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옵’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생태를 맛보’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적어도 주말이면 공원에라도 가려고 애를 씁니다. 동물원을 찾아가 동물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아이들이 미치’고 말리라 생각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는 틈틈이 ‘시골마을 숲’으로 찾아가서 한숨을 돌리며 맑고 푸른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는지 몰라요.


  거꾸로 시골마을 삶을 떠올려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시골에서 지내며 숨이 막혀 죽을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시골에서 지내며 답답하거나 갑갑해서 미칠까요?


.. 부모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내 자식만 안전하게 교육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콩나물 교실도 고통스럽지 않다. 교사가 부족해 선생들이 과로로 결핵에 걸려도 어머니들은 관심이 없다. 글쓰기 대회는 1년에 한 번뿐이지만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는 것을 어머니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근본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교사들의 투쟁에는 ‘선생들이 학교를 쉬고 파업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린다 ..  (3권 237쪽)


  오늘날 한국을 살펴보면, 어느 시골마을이든 지자체에서 ‘아이들한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베푼다고 하면서 하는 일이란 고작 ‘서울에서 이름난 학원 강사를 큰돈 들여 부른 다음 입시공부 시키는 짓’에서 머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시험성적 잘 나온 몇몇 아이들을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 같은 데로 영어 연수 보내 주기’쯤 해 줍니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시골아이가 시골아이답지 않게 크도록 밀어붙이는 꼴입니다. 시골아이가 도시아이로 바뀌도록 닦달하는 꼴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기쁨과 보람과 재미를 잃어버리도록 내모는 꼴입니다.


  도시아이들은 바다도 모르고 숲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갯벌도 모르고 들판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나락도 모르고 마늘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바지락도 모르고 갑오징어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은 쭈꾸미도 모르고 전어도 모릅니다.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무엇을 알까요.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무엇을 누리는가요. 고흥에서 나고 자라며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가요. 시골마을 고흥에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분은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가르치는가요.


  서울에서 고흥으로 찾아온 도시내기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가릴 줄 모릅니다. 그런데, 고흥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가릴 줄 아는지 궁금해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와 유자나무와 탱자나무와 석류나무와 매화나무 앞에 서서, 앙상한 나뭇줄기만 보면서도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 줄 알아볼 고흥아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해요. 아니, 아이에 앞서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고흥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은 ‘겨울날 앙상한 나뭇줄기’를 살살 어루만지며 ‘너 참 씩씩하게 겨울을 잘 나는구나.’ 하고 노래할 수 있는지요.


.. 민들레의 흰 씨가 날아간다. 도랑에서 송사리가 헤엄친다. 황매화 나무의 노란꽃, 보랏빛을 띤 제비꽃. 보수파도 없고 개혁파도 없다. 소란을 떠는 이들은 어른뿐이다. 아이들 세계에는 일교조도 없고 문부성도 없다 ..  (3권 426쪽)


  일본사람 이시카와 다쓰조 님은 195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를 《인간의 벽》이라는 소설책 세 권으로 갈무리했습니다. 관료주의에 물들고 찌든 교육부(문부성)에서 아이들을 오직 숫자(성적)로만 옭아매며 바보처럼 길들이려 하는 모습을 《인간의 벽》 세 권을 읽으며 하나하나 느낍니다. 그런데, 1950년대 일본 교육밭 이야기라고 하나, 어째 1990년대 한국 교육밭하고 똑같으며 2010년대 한국 교육밭하고도 똑같습니다. 앞으로 2030년대나 2050년대 한국 교육밭은 어떻게 될는지요. 아니, 2030년쯤 되면 시골마을 고흥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한 군데라도 남아날까 궁금합니다. 2020년만 되어도 고흥군 면소재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몽땅 문을 닫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죄 서울로만 보내려는 교육정책인걸요. 허울로는 ‘지붕없는 미술관’이지만, 막상 시골마을 고흥아이는 고흥이 얼마나 ‘지붕없는 미술관’인 줄 못 느끼는걸요. 기숙사에 틀어박혀 시험공부만 하느라 바쁜걸요. ‘지붕없는 미술관’을 누리거나 돌아볼 겨를이 없는걸요. 주말에는 ‘서울에서 찾아온 입시학원 강사’한테서 ‘대학입시 특강’을 받느라 부산한걸요.


  고흥아이는 서울아이가 되어야 아름다울까요. 고흥아이는 고흥아이로 살아가면 불쌍하거나 안쓰러운가요. 숲이 아름다운 고흥에 ‘숲학교’가 없어요. 바다가 예쁜 고흥에 ‘바다학교’가 없어요. 들이 어여쁜 고흥에 ‘들학교’가 없어요. 온통 입시학교만 있고 방과후교실만 있으며 입시특강만 판쳐요. 고흥아이는 어디에서 숨을 쉬면서 숨통을 틀어야 할까요. 고흥아이는 푸른 숨결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요. (4345.11.19.달.ㅎㄲㅅㄱ)

 


― 인간의 벽 1∼3 (이시카와 다쓰조 씀,김욱 옮김,양철북 펴냄,2011.3.30./권마다 14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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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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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 느낌글은 한 권씩 따로 쓰지만, 시골 누리신문 <고흥뉴스>에 책소개를 하려고 4~6권에서 한 대목씩 뽑아서 새롭게 소개하는 글을 씁니다.

 

..

 

이 땅은 ‘대통령 것’도 ‘군수 것’도 아니다
[시골사람 책읽기 003]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1∼7)》(길찾기,2012)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대통령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곳 고흥 땅은 ‘군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국회의원 것’도 아니요, ‘재벌 우두머리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우리 것’도 아닙니다. 땅은 ‘아무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땅은 ‘이 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입니다.


  숲속에서 새들이 살아갑니다. 크고작은 짐승이 살아갑니다. 범이나 늑대나 여우나 이리는 모두 씨가 말랐다고 하며, 곰도 살아갈 만한 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숲속에 토끼가 살든 노루가 살든 고라니나 삵이 살든, 숲은 토끼 것도 노루 것도 고라니 것도 아니에요. 어느 누구 것도 아닌 숲이요,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짐승으로서는 이녁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일 뿐입니다.


  숲에서는 나무가 살아갑니다. 꽃도 풀도 살아갑니다. 돌멩이도 살고 벌레도 삽니다. 숲에서 흐르는 냇물에는 물고기도 살아갑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예쁘게 누리며 삽니다. 또한, 사람도 숲에 나란히 깃들며 사람답게 보금자리를 곱게 일구어요.


  사람만 살겠다며 숲을 밀면, 사람을 뺀 다른 짐승은 그예 죽어야 합니다. 사람이 돈을 꾀하며 숲을 밀어 공장을 세우거나 고속도로를 놓거나 발전소를 짓는다면, 사람을 뺀 풀과 꽃과 나무는 몽땅 죽어야 합니다.


  사람만 남고 다른 짐승이 사라진다면, 사람만 있고 다른 푸나무가 없어진다면, 이러한 데는 사람 스스로 얼마나 살아갈 만할까 궁금합니다. 짐승은 소우리나 돼지우리나 닭우리에서 고기짐승으로만 키우면 될까 궁금합니다. 푸나무는 농장이나 과수원이나 비닐집에서 ‘먹는 풀과 열매’로만 심으면 될까 궁금합니다.


.. 불도저로 파헤쳐진 논밭과 삼림은 이미 공단이 매수한 땅이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집과 논밭, 그리고 우리 마을과 이어져 있었다. 거칠게 파헤쳐진 붉은 땅을 보면, 우리의 땅이 투영되어 보였다. 우리들이 엄연히 여기 살고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 산리즈카는 이미 ‘공항 용지’일 뿐이었다 ..  (4권 162쪽)


  학교라는 곳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을 골고루 아끼고 사랑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어느 한 아이를 남달리 아낀다든지, 어느 한 아이한테는 등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시험성적 잘 내는 아이들을 모아 특별반을 마련하는 일이란, 시험성적 잘 내는 아이들한테조차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시험공부를 하는 데가 아니거든요. 삶을 배우고 삶을 가르치며 삶을 누리도록 이끌거나 돕는 데가 학교예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스스로 학교 구실을 잃어요.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만 바라보고, 중·고등학교는 대학교만 바라봐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며 그저 대학바라기만 해요. 삶바라기를 하지 못해요. 사랑바라기나 꿈바라기하고는 아예 동떨어져요. 교사부터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지 못하기에,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꿈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주지 못해요.


  학교는 누구 것일까요. 학교는 ‘교장 것’일까요. 학교는 ‘이사장 것’일까요. 학교는 ‘교육감 것’일까요. 학교는 ‘학생 것’도 ‘교사 것’도 ‘학부모 것’도 아닙니다. 학교는 ‘삶을 배우고 나누며 즐기는 사람 스스로 보살피는 곳’입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삶을 누리도록 돕고, 저 아이는 저 아이대로 삶을 빛내도록 거들어야 비로소 학교라 할 수 있어요.


.. “그래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해진다면, 공항 같은 건 만들면 안 돼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건 공항을 만드는 인간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  (5권 212∼213쪽)


  일본사람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는 모두 일곱 권입니다. 1960∼70년대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을 만들려 하면서 ‘산리즈카 시골 작은 마을’을 어떻게 망가뜨려서 없애려 했고, 산리즈카 시골 작은 마을 사람들이 ‘일본 정부 공권력 몽둥이와 언론조작’에 맞서 어떠한 슬기를 빛내고 싸우면서 이녁 보금자리를 지키면서 돌보려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산리즈카 사람들 싸움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간추려 말한다면, ‘나리타 공항’이라는 이름처럼 공항은 들어섰습니다. 모진 몽둥이질과 꼬드김과 괴롭힘에 못 이겨 고향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많아, 이들이 떠난 자리에 공항 활주로가 몇 군데 섰어요. 그렇지만, 숱한 몽둥이질과 꼬드김과 괴롭힘에도 씩씩하게 맞서면서 시골살이를 아름답게 즐기는 사람들은 오늘도 산리즈카에 튼튼하게 남아서 살아갑니다. ‘나리타 공항’은 공항으로서 들어서기는 했지만, 처음 설계대로 공사를 마치지 못해요. 반쪽짜리 공항이에요.


.. “텔레비전 따위 안 봐도 돼. 신문 따위 읽지 않아도 돼. 너희들, 한 번만이라도 우리 마을이랑 공사현장에 와 봐. 공항 만드는 곳에 민주주의나 주권재민 같은 건 요만큼도 없어. 있는 건 기동대의 폭력뿐이다! 우리는 가족이 총출동해서 3일 동안 싸웠어. 공단은 측량을 전혀 못 하고 돌아갔어. 하지만, 아무리 날림으로 한 측량이라도, 이게 끝나면 다음에 오는 건 강제수용이야! 땅을 빼앗는 거란 말이다! 강제수용이란 건!” ..  (6권 114∼115쪽)


  곰곰이 살피면, 민주주의 나라에서 정부 공권력이 ‘폭력 주먹질’이 되어 날아듭니다. 공항을 지으려 하든 발전소를 지으려 하든 고속도로를 지으려 하든 골프장을 지으려 하든 관광단지를 지으려 하든 우주기지를 지으려 하든, 무엇을 지으려 하든, 공무원과 건설업자와 재벌기업은 ‘책상머리에서 펜대를 굴리며 서류를 꾸밉’니다. 지도를 책상에 쫙 펼치고는 금을 그으면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고흥은 ‘고흥 군수 것’일까요. 한국은 ‘대통령 것’일까요. 아니, 고흥은 ‘고흥 공무원 것’일까요. 한국은 ‘정부 공공기관 공무원 것’일까요. 시골마을 고흥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왜 당신 아이를 학교에 넣어 ‘공무원이나 회사원 되는’ 교육을 시킬까요.


  대통령 한 사람이 꾀해서 밀어붙이는 4대강사업이 아닙니다. 대통령부터 여러 장관과 공무원이 똘똘 뭉치고 건설업자와 재벌기업이 손을 맞잡으며 함께하는 4대강사업입니다. 4대강사업을 꾀하며 밀어붙이는 일꾼 가운데에는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 밀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 원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을 테지요. 다들 돈을 벌 생각으로 이 나라 이 땅을 저희 것이라도 되는 양 망가뜨리며 무너뜨립니다.


  논밭에는 왜 농약을 쳐야 할까요. 바다에는 왜 염산을 뿌려야 할까요. 이 땅은 누구 것일까요. 이 바다는 누구 것일까요. 농약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됩니다. 염산은 물고기가 마시며 다시 우리 밥상에 오릅니다. 항공방제를 하며 뿌리는 농약이 댐에 가둔 물에 스며들어 수도물에 섞입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나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는 빗물과 섞여 숲과 논밭으로 떨어집니다. 이 땅은 누구 것일까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는가요. 대통령과 군수가 ‘바보짓’을 한다지만, 우리들은 우리 보금자리에 어떤 ‘사랑짓’이나 ‘꿈짓’을 하면서 삶을 빛내는지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4345.1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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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16 20:07   좋아요 0 | URL
"염산은 물고기가 마시며 다시 우리 밥상에 오릅니다."
- 이 평범한 진리를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2-11-16 21:08   좋아요 0 | URL
바다에 염산을 뿌리는 까닭은 '김' 때문이에요.
'완전한 유기농 생협' 매장에서 제법 비싼 값으로 다루는 김이 아니면,
시중에서 파는 모든 김은 '염산'으로 씻고 헹구어서 만들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비자'가 '시중 일반 염산 소독 김'을
안 먹고 '생협에서 제값 치르고 사다 먹는 염산 안 쓴 김'만 먹는다면,
바닷마을 김 양식장도 달라지겠지요.

시골사람한테만 바꾸라 하면 바뀌지 않는 일이랍니다.
도시사람 스스로 삶과 버릇을 바꾸지 않으면,
시골 바닷마을 분들은 바다에 하염없이
염산을 부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도시사람 스스로 '값싼 김'을 먹겠다고 하니까,
다들 염산을 바다에 퍼부어요.
도시사람이 제발 좀,
그러니까 도시에서 '지식 좀 있다는 사람들'이 부디
'참과 거짓을 깨우치'기를 빈답니다......
 
숲유치원 - 설립에서 프로그램까지
장희정 지음 / 호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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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는 밤하늘을 볼까
[시골사람 책읽기 002] 장희정, 《숲 유치원》(호미,2011)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는 가끔 읍내로 마실을 다녀옵니다.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딱히 읍내에 볼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면내 가게에서는 안 파는 곤약을 사거나, 안경을 바꾸거나, 고무신 한 켤레를 사거나(플라스틱신 아닌 고무신으로), 갑오징어를 먹고 싶거나, 순천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오려고 하면 읍내에 찾아갑니다.


  때때로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읍내마실을 하곤 합니다. 한창 봄이 흐드러지고 여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질 때에는 아이들과 자전거마실로 읍내를 다녀와도 즐겁습니다. 쌀쌀한 바람 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읍내로 자전거마실을 하지는 않습니다. 식구들 다 같이 군내버스를 탑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을 지나 봉서와 봉동과 고당을 지날 무렵, 이웃마을 들판과 멧자락도 동백 못지않게 예쁘다고 느낍니다. 철마다 다른 모습으로 푸르고 싱그럽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세동세거리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마복산 모습을 보면서 푸른 숨결을 헤아립니다. 포두로 접어들 무렵 바라보는 팔영산을 구경하고, 늦가을인데 아직 거두지 않은 수숫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이제 고흥 가을들은 거의 모두 텅 빕니다. 빈들 가운데에는 관청에서 ‘경관사업’으로 꾀하는 ‘유채씨 뿌리기’를 하는 데가 있고, 빈논을 갈아엎은 다음 비닐을 씌우고 마늘 심는 부산한 데가 있습니다. 보기 좋으라며 유채씨를 뿌린다고 하지만, 봄철을 맞이하면 유채씨를 안 뿌린 자리도 무척 보기 좋습니다. 노란 꽃송이가 흐드러지는 유채밭만 예쁘지 않아요. 온갖 풀꽃이 알록달록 피고 지는 빈논도 예뻐요. 호덕마을 어느 논에는 자운영씨를 잔뜩 뿌려 자운영 꽃빛이 흐드러지기도 해요. 시골에서는 굳이 경관사업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구태여 하자면 유채씨 한 가지만 뿌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여쁜 풀씨와 꽃씨는 사람 눈에는 안 보인다 하더라도 시골 들판 곳곳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깃드는걸요.


  냉이씨가 날고 부추씨가 날아요. 산초씨도 날고 느티씨도 날아요. 솔씨도 날고 후박씨도 납니다. 모시옷 지어 입는 모시풀 모시씨도 들판마다 한들한들 날아다니며 곳곳에서 줄기를 올려요. 들과 멧기슭으로 딸기풀이 이어지며 봄이면 들딸이 소담스럽습니다. 국화잔치를 따로 벌이지 않아도 시골마을 가을들마다 노랗고 하얀 꽃송이가 활짝 웃습니다.


.. 숲에 가서 활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육 장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교사와 부모의 생활 습관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실마리가 된다. 부모는 아이의 숲 활동을 돕기 위해 날씨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흙이 더러운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  (26쪽)


  읍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에 곧잘 ‘읍내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타곤 합니다. 퍽 먼 시골에서 읍내까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입니다. 가까운 면에도 중·고등학교가 있으나 이 아이들은 애써 읍내까지 학교를 다녀요. 교육청에서 중·고등학교 통폐합을 하는 바람에 고흥에서는 앞으로 금산고등학교와 나로고등학교마저 문을 닫는다지요? 면내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 일이란, 면내 아이들이 몽땅 읍내나 이웃 도시로 빠져나가며 시골을 무너뜨리는 일인 줄 깨닫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읍내까지 학교를 다니는 ‘더 깊은’ 시골 아이들은 군내버스에서 창밖 가을 모습을 구경하지 않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더러 바깥 들과 메와 바다와 내를 구경하지만, 거의 다 손과 손에 전화기 붙들고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봄에 새 잎과 꽃이 돋으며 봄빛이 흐드러지든, 여름에 잎사귀 푸르게 빛나고 논마다 싱그러운 사름빛이 물들든, 가을에 누렇게 무르익는 들판이 차츰 비면서 새 이야기를 들려주든, 겨울에 조용히 잠들며 포근히 쉬는 숲바람이 흐르든, 시골아이가 시골사람답게 시골내음 느끼는 일이 퍽 드물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읍내에서 지내는 분들이 우리 식구 지내는 동백마을에 찾아왔다가 저녁에 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고는 ‘고흥에 별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씀하기도 해요. 고흥은 틀림없이 시골이지만, 읍내에서도 별바라기 하기란 만만하지 않아요. 읍내도 면내도 ‘도시를 닮’으니까요. 한국에서 그 어느 곳보다 미리내를 또렷하게 보고 밤하늘 별잔치를 실컷 누릴 수 있는 고흥인데, 고흥 어른들은 스스로 별과 달을 얼마나 누리고, 고흥 아이들은 스스로 해와 들과 메와 바다를 얼마나 즐길까요.


..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과 멀어져 있어서, 자동차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비해 흥미나 가치 측면에서 뒤떨어진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가치는 물론이고, 자연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찬찬히 보여준 적이 없다 … 숲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고,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놀이를 끝없이 제공한다 ..  (70, 233쪽)


  물질문명이 앞선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숲 유치원’을 마련해서 엽니다. 도시는 ‘길’도 ‘살 길’도 ‘참 살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자연그림책이나 생태환경책이 쏟아집니다. 도시물질문명으로는 사람이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 어버이들은 한 달에 다문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숲을 느끼도록 하려고 발버둥입니다. 이와 달리 시골 어버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시골을 벗어나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려고 발버둥입니다.


  어른 스스로 숲을 모르면 아이 또한 숲을 모릅니다. 어른 스스로 숲을 안 즐기면 아이 또한 숲을 안 즐깁니다.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가 있어도, 이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는 어른들만 고흥에 있으면, 이곳에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하나도 안 남겠지요. 모두 도시 학교와 도시 회사와 도시 공장으로 떠나겠지요. (4345.11.12.달.ㅎㄲㅅㄱ)

 


― 숲 유치원 (장희정 씀,호미 펴냄,2011.12.1./18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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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을 바라보다 -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삶
엘린 켈지 지음, 황근하 옮김 / 양철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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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갈한 시골숲이 키우는 사랑
[시골사람 책읽기 001] 엘린 켈지, 《거인을 바라보다》(양철북,2011)

 


  시골마을에 가을이 흐드러집니다. 시골사람은 가을이 되어 가을을 삶으로 읽습니다. 도시에서는 가을이 어떻게 찾아올까요. 이른바 ‘백화점 가을 에누리 광고 걸개천’으로 가을이 찾아올까요. 텔레비전 날씨 방송에서 ‘이제 가을입니다’ 하는 말을 읊어야 가을이 찾아올까요.


  어느 도시를 가나 가을이 되어도 무엇이 얼마나 가을다운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넘치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길가에 심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떨구고, 청소 일꾼이 힘겹게 은행잎을 모아 푸대에 담는 모습으로 가을이 찾아올까요.


  가을은 무엇보다 시원스러운 바람입니다. 새벽과 밤에는 좀 스산하달 수 있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산들산들 살랑살랑 고운 바람이 붑니다. 가을바람에는 무르익는 곡식 내음이 물씬 뱁니다. 마을마다 나락을 베어 길가에 널고는 햇볕으로 말릴 적에는 그야말로 온 고을이 나락내음으로 물듭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나락내음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햇살은 따사롭습니다. 어느 풀밭에 드러누워도 솔솔 잠이 잘 오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가을이 되면 잎이 지고 꽃도 시든다지만, 가을이 되어 피는 꽃이 있습니다. 가을에 노랗게 피어 숲과 논둑을 밝히는 꽃이 흐드러지고, 나무마다 발그스름한 감알이 꽃송이처럼 여물고, 노르스름한 유자가 꽃덩이처럼 알찹니다.


.. 캘리포니아 만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고래 종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지만, 그것이 단지 먹이 때문만은 아니다. 고래들이 이곳으로 돌아오는, 혹은 긴수염고래의 경우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조용하다’는 것이다 ..  (63쪽)


  전라남도 아랫녘이라 할 고흥은 가을로 물듭니다. 군청과 포스코에서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고흥 시골마을에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여 목돈을 만지려고 했지만, 시골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시골흙에서 정갈한 먹을거리를 얻고, 어여쁜 시골바다에서 깨끗한 먹을거리를 누립니다. 돈 몇 푼 때문에 ‘도시 한복판에는 들이지 않는 위험·위해시설’을 시골 한복판에 들여놓을 까닭이 없습니다. 발전소도 고속도로도 공장도 골프장도 없는 고흥은 한국땅에 몇 안 되는 푸르게 빛나는 예쁜 시골마을입니다. 천 억 아닌 천 조를 주더라도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과 고운 물을 즐길 수 없어요.


  바다에서 살아가는 젖먹이짐승 고래는 ‘첫째, 먹이가 넉넉한 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먹이가 넉넉하더라도 시끄러우면 살아가지 못해요. 고래는 군함이나 고기잡이배에서 쏘는 저주파 소음 때문에 귀청이 찢어져서 죽기까지 해요. 고흥 나로섬에는 우주기지가 있는데, 우주기지에서 로켓을 쏘면 어마어마하게 큰 진동이 생겨 여러 날 바닷물고기가 송두리째 사라져요. 고래가 고흥 앞바다까지 찾아오는지 안 찾아오는지, 바닷속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으니 모를 노릇이지만, 나로섬에서 로켓을 쏘면 숱한 바닷물고기와 함께 고래는 이곳으로 올 생각을 안 할 테지요.


  생각해 보면, 고흥 앞바다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에요. 들판은 누렇게 익고, 하늘은 파랗게 빛나며, 한겨울에도 씩씩하게 잎사귀 틔우는 동백나무랑 후박나무는 푸르게 빛나면서, 맑은 바닷물은 파랗디파랗습니다.


  곧, 이 시골마을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합니다. 한국땅은 대륙과 붙은 반도라 하는데, 고흥은 한국땅에서도 반도입니다. 고흥사람 아니면 고흥으로 들어올 일이 없고, 고흥사람 스스로 자동차 몰아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드뭅니다.


.. 고래들은 내가 발견한 바로는 지극히 헌신적인 어미다. 그들은그래야만 한다. 그 넓은 바닷속에는 새끼를 쉬게 하거나 먹일만한 안전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고래는 보통 24년 7개월 정도 어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종은 어미 역할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  (14쪽)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흔 살 나이에 ‘젊은이’ 소리를 듣습니다. 여든 살 나이에 씩씩하게 들일을 합니다. 아흔 살 나이에도 꿋꿋하게 바닷일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도시로 나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 노릇 하는 아이들한테 ‘깨끗한 시골 먹을거리’를 보내 줍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이라 하는 목숨은 ‘늙어서 죽는 날’까지, 또는 ‘늙고 늙어’도 새끼(아이)를 돌보는구나 싶어요.


  그렇겠지요. ‘자식 부양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품고 돌보니까요. 아름다운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름다운 사랑을 날마다 숲에서 읽고 숲에서 느끼며 숲에서 새롭게 쓰니까요. (4345.11.10.흙.ㅎㄲㅅㄱ)

 


― 거인을 바라보다,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삶 (엘린 켈지 글,황근하 옮김,양철북 펴냄,2011.4.29./13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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