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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책꽂이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7.



 내가 연 도서관은 내가 주머니를 털어 장만한 책으로 마련했다. 누가 거저로 준다든지 잔뜩 보내준 책으로 연 도서관이 아니다. 그러나 책꽂이만큼은 내가 장만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책꽂이를 장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책을 사느라 바빠 언제나 주머니가 쪼들렸으니까.

 인천집에 살던 고등학생 때에는 아버지한테서 얻은 책꽂이가 둘 있었다. 형이 쓰던 책꽂이는 형이 인천집을 떠나면서 나한테 물려주었다. 아버지가 쓰시던 장식장이나 책꽂이는 아버지가 인천집을 떠나면서 나한테 넘겨주었다. 내가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지내던 때에는 자전거로 신문을 돌리며 ‘버려진 책꽂이’가 있는지 눈여겨보았고, 제아무리 먼 데에 버려진 책꽂이라 하더라도 신문을 다 돌린 뒤 부리나케 달려가서 남들이 먼저 손을 쓰기 앞서 낑낑거리며 날랐다. 깊은 새벽, 신문배달 마치고 땀에 옴팡 젖은 후줄근한 젊은이는 무거운 책꽂이를 홀로 이리 들고 저리 지며 날랐다. 거의 다 혼자 들기 어려운 큰 책꽂이였는데, 서너 번쯤은 혼자서 한 시간쯤 낑낑대로 날라 오는 동안 팔뚝 인대가 늘어나서 자전거 타며 신문을 돌릴 때에 몹시 애먹었다.

 이러다가 두 차례 책꽂이를 여럿 얻는다. 먼저, 충북 충주에서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하던 때에 스무 개 남짓 얻는다. 다음으로, 인천에서 드디어 내 도서관 문을 열던 때에 헌책방 아주머니가 알음알음하여 장만한 미군부대 도서관 책꽂이를 서른 개 남짓 얻는다.

 날마다 책이 조금씩 늘어나니까 책꽂이 또한 날마다 늘어나야 하는데, 나는 책꽂이를 새로 살 생각을 늘 안 하면서 살았다. 인천에서 문을 연 도서관을 충북 충주 멧골마을로 옮기면서도 책꽂이를 새로 장만하지 못한다. 책짐을 옮기느라 돈이 무척 많이 들었고, 시골집 둘레에서는 책꽂이를 주워 올 데라든지 살 데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

 멧골마을로 도서관을 옮길 때, 멧골자락에 도서관 자리를 내어주신 분이 삼 미터 남짓 되는 벽을 따라 단단한 책꽂이를 가득 마련해 주었다. 이리하여 나로서는 또 책꽂이를 얻는다. 그런데 이 자리에 책을 꽂으면서 살피니, 이만큼으로도 책을 다 꽂아 놓지 못한다. 책꽂이가 모자라다.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이제껏 내 책을 책꽂이에 알뜰히 꽂은 채로 지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소리일까. 책꽂이가 조금은 빈 채, 그러니까 책들이 조금은 넉넉히 꽂힐 수 있도록 마음을 쓴 적이 없다는 이야기일까.

 그렇지만, 책꽂이가 꼭 모자라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못 꽂는다고는 볼 수 없다. 옆지기는 말한다. 내가 책을 이곳저곳에 늘어놓기 때문에 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도 하지만, 차곡차곡 제자리에 두지 않으니까, 이곳저곳에 잔뜩 쌓이기만 한다고.

 어서 날이 풀려 저녁나절에도 도서관에서 얼른 책 갈무리를 마무리짓고 싶다. 아직 저녁에는 손이 시려서 책 갈무리를 오래 하기 힘들다. 얼른 날이 풀려야 우리 집 물이 녹을 테고, 물이 녹아야 걸레를 빨아서 그동안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집이며 도서관이며 건사할 텐데. 이제는 부디 따스한 날이 온 멧자락에 가득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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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날 책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4.



 이오덕학교 어린이와 푸름이가 우리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온다. 아직은 만화책만 신나게 읽는다. 그러나 만화책만으로는 제 눈높이에 맞다 싶은 책을 찾기가 만만하지 않은 만큼, 다른 책을 바라기도 한다.

 나이가 가장 어린 아이는 그림책 꽂힌 자리에 가서 이것저것 살핀다. 나이가 조금 있는 아이는 이제 글책 있는 자리에 가서 이것저것 살피겠지.

 그나저나 지난겨울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그렇고, 한 주에 한 차례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가 찾아오는 때에는 한 주 가운데 가장 날이 춥다. 전기난로를 켜 놓지만 이 난로로 따뜻하기는 힘들다. 칸막이 있는 방이 아니라서 따스함이 고이 남지 못한다.

 그래도 차가워지는 손으로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글책이든 잘 읽는다. 아이들이 쥐는 책이 아이들한테 재미나지 않다면 손이 시린 데에도 읽을 수 없겠지. 손이 시려도 놓지 않을 만큼 재미나야 비로소 읽을 만한 책이라 여길 수 있겠지.

 나는 내 도서관에 갖춘 책을 겨울날에는 두 손이며 두 발이며 몸뚱이며 꽁꽁 얼어붙으면서 한 권 두 권 살피면서 장만했다. 책을 장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몸과 손발은 얼어붙었고, 집에서도 시린 손을 비비면서 읽었다. 맨 처음 책을 장만하는 사람부터 손발이 얼어도 꼭 사야겠다 느끼는 책이기에 장만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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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 빌려주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2.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이다. 중국에서 살았기에 중국말을 할 줄 알며, 조선족이니까 조선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살며 쓰던 조선말은 남녘나라 말하고는 적잖이 다르다.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이며 꽤 많이 다르다.

 중국 연변땅이나 북녘에서는 띄어쓰기가 퍽 홀가분하다. 남녘에서는 웬만하면 거의 모두 띄도록 하지만, 북녘에서는 남녘처럼 낱낱이 띄어서 쓰도록 하지 않는다.

 된소리를 적는 말값이라든지, ㄹ을 낱말 앞쪽에 둘 때에 적는 법이라든지, 이모저모 파고들면 꽤나 다른 말이라 할 만하다. 가만히 생각한다면, 남녘말과 북녘말은 독일말과 네덜란드말처럼 서로 이웃하면서 다른 말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 싶고, 북녘말하고 중국 연변말은 스웨덴말과 노르웨이말처럼 가까이 잇닿은 말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큰 테두리로 보자면 모두 ‘한겨레 말’이지만, 저마다 홀로서는 말로 삼아야 한다고 느낀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가 쓰는 말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녘과 북녘과 중국 학자는 ‘한겨레 말을 하나로 모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 한 가지 틀에 따라 말을 하거나 글을 써도 좋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서로 나뉘어 지낸 지 쉰 해 예순 해가 지났고, 일흔 해가 가까운데, 갑작스레 한 갈래 말로 모두기란 만만하지 않다. 또, 애써 모두어야 할까 궁금하다.

 남녘땅 말마디를 헤아릴 때에, 강원말과 전라말을 똑같이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다. 제주말과 부산말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다. 평안말과 해주말을 하나로 갈무리해야 할까. 함경말과 연변말을 똑같이 쓰도록 맞추어야 할까.

 고장에 따라 다른 말이요, 나라에 따라 다른 말이다. 한겨레이니까 한 가지 말을 써야 한다 외칠 수 있지만, 굳이 한 가지로 뭉뚱그리지 않더라도, 남녘사람이 북녘책이나 일본책이나 중국책을 읽을 때에 ‘아예 못 알아듣지’ 않는다. 북녘사람이나 중국사람 또한 남녘책을 읽을 때에 ‘영 못 알아채지’ 않는다.

 우리들은 슬프며 아픈 역사 때문에 이렇게 찢기거나 갈린 채 살아가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역사 그대로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겨레가 나아갈 새로운 말밭과 말삶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맞춤법과 띄어쓰기 공부를 할 만한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1970∼80년대에 미승우 님이 쓴 책은 있으나 1989년부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가 바뀌었다. 1989년에 바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풀이하거나 일러 주는 마땅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계몽사 편집부에서 ‘책 만들 때에 도움이 되도록 엮은 맞춤법·띄어쓰기 책’이 하나 있다. 아마 1995년 무렵에 나왔지 싶은데, 이 책을 빌려주면 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2002년에 찍은 《푸르넷 초등 국어사전》과 《뉴에이스 국어사전》을 빌려주기로 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다루는 책치고 쉬우며 알뜰히 풀어서 이야기하는 책은 아직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으리라 본다. 너무도 딱딱하며, 지나치게 골이 아프다. 사람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옳고 바르게 익히면서 즐겁고 신나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북돋우지 못한다.

 이런 지식책을 읽으며 억지스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외우도록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내가 아는 낱말’이든 ‘내가 잘 모르는 낱말’이든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읽을 때가 낫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국어사전이 말풀이라도 제대로 한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은 이들 국어사전을 바탕으로 쓴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국어사전을 읽으면 된다.

 국어사전을 어떻게 읽느냐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 그런데 국어사전 읽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초등 국어사전은 고작 1000쪽조차 안 되고, 어른 국어사전도 3000쪽이 안 된다. 웬만한 문학책이 300쪽 안팎이고, 초등 국어사전은 글씨가 크니까, 문학책 한 권쯤 읽는 품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어른 국어사전은 《태백산맥》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어렵잖이 읽는다.

 터무니없는 꿈일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국어사전을 한 번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다. 비록, 국어사전이 제대로 국어사전답게 엮이지 못했달지라도, 우리가 쓰는 말마디를 국어사전에서 어떻게 다루며,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낱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낀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살피거나 배우는 데에 우리들은 너무 모자라거나 사랑이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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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값과 살림돈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



 좋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망설이지 않는다. 살림돈을 덜어 책을 산다. 요사이는 썩 좋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사야 한다고 느끼는 책을 산다며 살림돈을 덜곤 한다. 지난 2007년부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도서관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진책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마땅히 없는 우리 나라인 만큼, 다른 개인 도서관보다 ‘사진책 도서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읽을 책을 사서 즐기는 삶이기도 하지만, 내가 꼭 읽지 않더라도 앞으로 사라지고 말 듯하다고 느끼는 책까지 살림돈을 털어 장만하는 삶이다. 개인 도서관을 꾸리기 앞서부터 이렇게 책을 장만했다.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면서 책을 사기 퍽 힘들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도서관을 꾸릴 때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일이 없었다. 늘 다리품을 팔아 책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을 샀고,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책을 사들여 집까지 낑낑거리며 날랐다. 시골집 가운데에서도 멧자락에 깃든 두메에서 지내다 보니, 책방마실이 몹시 힘들 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마실하기도 벅차다. 새로 책을 갖추자면 인터넷을 하는 수밖에 없다.

 시골집에서는 인천 골목집에서 살 때처럼 달삯 짐 때문에 버겁지 않다. 그러나 시골집에서 살아갈 때에는 인천에서 살아갈 때와 달리 ‘돈을 벌 일감’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면 ‘글 써 달라’는 일감이든 ‘몸을 써서 도와 달라’는 일감이든 흔히 있다. 시골에서는 이런 일감이 싹 끊어진다.

 마땅한 노릇이다. 몸을 써서 돈을 벌 일자리야 마땅히 도시에 몰리며, 서울에 가장 많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자리 또한 도시에 있으며, 거의 모두 서울에 몰린다. 서울사람들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서울 바깥 도시라든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서울사람은 시골사람 글을 좋아할 수 없다. 삶과 삶터가 다르기 때문에 ‘시골사람 글이 무엇을 말하거나 밝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시골사람이 ‘서울사람이 쓰는 글을 못 알아채는’ 흐름하고 똑같다. 시골사람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깨끗한 바람과 물을 마시면서 살아간다. 나무하고 멧짐승하고 벗을 삼는다. 시끄러운 노래가 아니라 멧새가 지저귀거나 멧쥐가 집구석에 기어들어 찍찍거리는 소리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풀어서 풀이든 벌레이든 스스로 잡아먹는 닭이 새벽마다 홰 치는 소리를 듣는다. 자동차 소리라든지 장사꾼 짐차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비가 오니 빗소리를 듣는다. 눈이 오면 온누리가 고요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인천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빗소리와 눈소리를 느끼기는 했다. 골목 안쪽에 깃든 집에는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거나 못 다닌 만큼 참으로 호젓하다. 그러나 이런 골목동네를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되게 시끄럽다. 전철길하고 맞붙은 옥탑집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소리에 시달렸다.

 억지로 사람이 만든 소리에서 풀려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듣고 눈소리는 눈소리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쓰는 글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골목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하던 사람이 쓰는 글하고도 다르다.

 우리 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지 않는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 가운데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맡기고 집에서 키운다는 사람은 요사이 본 적이 없다.

 모두들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으며 드는 돈’을 걱정한다. 정치하는 이들이 ‘어린이집 배움삯’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터에 어린이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바라거나 여러 가지 ‘아이돌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러한 바람은 옳다.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분들은 이러한 문화와 복지를 하려고 세금을 거두지,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대를 크게 부풀리려고 세금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이를 왜 어린이집에 넣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왜 우리 손으로 돌보거나 사랑하지 못할까.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고 돈을 버는 일터로 나가야 할까. 우리가 돈을 번다는 일터는 우리 땅과 삶터와 자연을 얼마나 아끼는 일터인가. 내가 버는 돈이란 어떤 돈인가. 내가 번 돈을 나는 어떻게 쓰면서 살아가는가.

 ‘사진책 도서관’을 시골로 옮긴 뒤 겨우겨우 버티는 살림돈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거나 몇 가지 세금을 내거나 기름값을 대다 보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래도 새로운 책을 사야 한다. 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사진책을 사야 한다. 사람들이 함부로 보는 바람에 다치고 만 책을 다시 사기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데에서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지만, 이 책들을 사다 보면, 우리 살붙이 이달치 살림돈은 거덜나겠다고 느끼며 선뜻 마지막 단추를 누르지 못한다.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하루만 지나도 이 책을 누군가 사 가리라 느끼지만,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지만 아무도 이 책을 사지 않을 때에 내가 사자고 생각한다.

 하루가 지난 뒤, 내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깔끔히 팔린다. 나는 또 장바구니에 걸쳐진 책들 이름을 지운다. 마음으로 사고 눈으로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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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진책 도서관 일기'를 다시 쓰기로 한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에 시달리거나 치이면서, 도서관 일기를 못 쓰며 지냈다. 이제부터 조금씩 써야겠다. 도서관을 꾸리며 지키는 사람으로서 도서관 일기조차 못 쓰면 어떡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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