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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이라는 곳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16.


 살림을 시골자락으로 옮긴 지 한 해가 가깝다. 책짐은 살림을 옮기고 나서 두 달 뒤에 옮겼으니 시골자락 도서관이 된 지 한 해가 되려면 조금 더 남은 셈이기는 한데, 꽤 오래도록 책살림을 알뜰히 갈무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날마다 조금씩 갈무리하면서 차츰차츰 꼴이 나고, 오래도록 바라보며 천천히 갈무리하기 때문에 이 책들 한 번 더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

 언제쯤 여느 바깥사람한테까지 도서관을 열 수 있을까. 여느 바깥사람은 시골자락 사진책 도서관으로 찾아왔을 때에 무슨 책과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건져올릴 수 있을까. 사진을 보는 눈길과 삶을 붙잡는 손길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도서관이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책을 나누는 일이 된다기보다, 이 도서관을 마련한 사람 스스로 제 삶을 책과 엮어 한결 사랑스레 돌보고프다는 뜻이 되지 않느냐고 느낀다. 도서관이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 책 저 책 그저 잔뜩 들여놓아도 될 곳인가. 널리 사랑받는 책을 갖추어야 하는 곳인가. 온누리 모든 책을 건사할 만한 도서관은 없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부질없는 막공사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이렇게 막공사를 하는 데에 들일 돈과 품에다가 건물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면, 온누리 모든 책을 알뜰히 갖출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 스스로 돈과 땀과 품과 겨를을 어디에 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같은 책을 백 번쯤 되읽거나 즈믄 번쯤 곱새기며 읽을 수 있을 때에 넋이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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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못 읽는 책들을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4.15.



 날이 제법 따뜻해진데다가 집에서 물을 쓸 수 있는 터라 모처럼 서너 시간 도서관에서 책 갈무리를 합니다. 아이는 이오덕학교 언니 오빠 들을 따라 조잘조잘 혼자서 노래하면서 학교로 올라갑니다. 널찍한 데에 자리를 얻어 넉넉하게 꽂아 놓는 책들인데, 집일과 학교일과 책 내는 일에 얽히다 보니 막상 도서관 책들을 찬찬히 꽂은 다음 자질구레한 짐을 치워 문간에 간판 하나 달고는 두루 알리는 일은 하나도 못합니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아기 돌보랴 집일 하랴 하면서 도서관 살림 돌보기는 더 못할 텐데, 겨울이 지나갔기에 이불 빨래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만큼, 도무지 어느 하나 갈피를 못 잡는구나 싶습니다.

 그저 쌓인 채 겨울을 보낸 책을 뒤늦게 끌릅니다. 아직 못 끌른 책이 좀 있습니다. 끌렀으나 제자리에 못 꽂은 책이 꽤 됩니다. 책꽂이 바닥에 신문지를 한 장 깔고 책을 차곡차곡 얹거나 세우거나 눕힙니다. 오래도록 둘 책이라면 세우지 말고 눕히라는데, 눕히면 꺼내어 읽기가 좀 번거롭습니다.

 첫째가 조금 더 크고, 둘째가 곧 태어나서 첫째만큼 나이를 먹어야 이 도서관을 제대로 꾸린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 하루부터 제대로 꾸리지 못하면 앞으로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셈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엇일까요. 집일을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은 무엇일까요. 애써 내 도서관까지 찾아올 사람들은 무슨 책을 집거나 살피거나 돌아볼까요. 사람들은 무슨 책으로 마음밥을 삼을까요. 사람들은 딱히 마음밥으로 삼을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나부터 내 삶에 마음밥 하나 살포시 놓는지 헤아려야지요. 나부터 바쁘거나 고되다는 삶 탓이나 투정만 하지 말고, 이렇게 바쁘거나 고된 나날에 어떠한 책을 손에 쥐면서 내 마음밥으로 삼는지 살펴야지요. 심심풀이 책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마음밥 책도 어김없이 있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를 모두 보살피면서 살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까지 손에 쥐려 한다면, 집식구들 사람책 아닌 뭇사람 종이책에서 무엇을 느끼거나 얻거나 받아들일 만한가를 깨달아야지요.

 오늘 읽을 수 있으면 오늘 읽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못 읽고 나중에 아이들이 대여섯 살 열대여섯 살 스물대여섯 살 즈음 될 때에 읽을 수 있다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내 마음도 한결 자라면서 더 깊이 읽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는 어느 새책방이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도 만나기 힘들 책을 이렇게 일찌감치 장만해서 시골마을 도서관을 꾸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자고 고개를 끄덕이며 봄날 한 자락 땀을 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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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하나 건사하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9.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태어나는 책입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에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이야기를 담아 책 하나쯤 될 만한 부피로 빚습니다. 모든 책마을 일꾼이 알아보지는 못하나, 누군가 한 사람 알아보아 주기 때문에 종이에 이야기 하나 얹고, 이 종이얘기꽃은 책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우리 앞에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라밖 그림책이나 사진책은 누군가 나라밖 마실을 다녀온 다음 즐거이 사서 읽고 나서 어느 때인가 스스럼없이 내놓은 책입니다. 또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학교나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입니다. 어느 책이건 누군가 기꺼이 ‘좋은 책이라 여기며 장만’했기 때문에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만들고, 알아보는 사람이 읽으며, 알아보는 사람이 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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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24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사람만큼이나 책들도 많잖아요.
사람과의 만남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과의 만남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1-04-24 08:34   좋아요 0 | URL
모두들 좋게 만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책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8.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즐겁게 찾아 읽습니다. 나는 내가 즐겁게 찾아 읽은 책으로 내 도서관을 열었기 때문에, 내 도서관 책꽂이 짜임새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틀에 맞춥니다. 십진분류법이라든지 여느 사람들이 바라는 찾기법에 따라 책을 꽂지 않습니다. 더욱이, 십진분류법으로는 사진책을 갈무리하거나 가눌 수 없어요. 사진책을 알맞게 나눌 만한 나눔법이란 아직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 도서관에 찾아와서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혔는지 모르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도서관이 지식 책터가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이름난 사람들 책만 보면 된다거나, 널리 알려진 책을 보면 즐겁다고 하는 틀이 슬픕니다. 왜 우리는 틀에 갇힌 넋으로 책을 만나려 하나요. 왜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놓치며 딱딱한 틀에 따라 책을 사귀려 하지요.

 그러나 목록 없이 꾸리는 도서관이기 때문에, 나조차 내가 좋아하는 책이 어디에 꽂혔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책이 그럭저럭 있던 때에는 목록 따위야 없어도 돼, 하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들어서는 책꽂이마다 목록표를 붙여야 하나 생각해 보곤 합니다.

 목록표 붙일 힘이 있으면 새로운 책을 하나 더 사서 읽거나, 못 찾은 그 책을 다시 사서 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보스러운 생각이고 바보스러운 삶인데, 거듭 생각하면, 참 바보스럽게 살아왔으니 내 돈으로 장만한 내 아까운 책으로 누구나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열었겠지요.

 아직 많이 추워 도서관에서는 손이 얼어붙으니 책 보러 마실 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많이 추우니 도서관 책이나 짐을 살뜰히 치우지도 못했습니다. 삼월을 넘었는데 이렇게 손가락이 얼얼해도 되나 생각하지만, 시골이요 멧자락이니까 마땅한 노릇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얼얼한 손가락으로 ‘일본 보육사(保育社)’에서 펴낸 손바닥책인 ‘color books’를 만지작거립니다. 이 조그마한 손바닥책을 예나 이제나 도서관 한켠 썩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기쁘게 알아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쥐어서 내밀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일본사람은 “빛깔 있는 책들”을 이처럼 앙증맞으며 값싸게 꾸준히 내놓으면서 일본 책밭을 일구었습니다. 이 책들은 책밭뿐 아니라 사진밭까지 알뜰히 일구는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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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1.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한 뒤부터 그림책에 눈을 떴습니다. 그림책을 처음 알아본 때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살던 1999년 봄이었고, 이무렵 나온 그림책 하나를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받아보고 넘기면서 ‘우리한테도 이만 한 그림책이 있구나.’ 하며 놀랐고, 내 어릴 적에는 왜 이만 한 그림책을 이 나라 어른들이 안 그렸는가 싶어 슬펐습니다.

 어쩌면 고작 몇 해 사이라 할 만하지만, 몇 해 사이를 두고 누군가는 퍽 괜찮은 그림책을 전집으로라도 만날 수 있었으나, 누군가는 낱권으로든 전집으로든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만날 길이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좋은 그림책을 읽는다 해서 좋은 마음이나 좋은 사랑이 싹트지는 않아요. 그러나 좋은 마음과 사랑을 담은 좋은 그림책을 어린 나날 가까이하면서 ‘그림으로 담는 우리 삶자락 이야기’에 찬찬히 눈길을 둘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으로 움직이거나 부대끼며 배우지만, 몸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왜 부대끼면 즐거울까를 헤아리는 길에 좋은 그림책은 아름다운 길동무 노릇을 합니다.

 스물대여섯 살 나이부터 혼자서 그림책을 읽으니, 둘레에서는 아이라도 낳았느냐고 묻지만, 혼인을 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이무렵부터 그림책을 즐거이 찾아 읽었습니다. 혼인을 한 뒤로는 더 자주 찾아 읽으며,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때부터는 퍽 많이 찾아 읽습니다.

 잘 빚은 그림책은 그림책답습니다. 잘 빚지 못한 그림책은 ‘사진을 찍어 옮긴 티’가 물씬 드러납니다. 사진을 볼 때에도 잘 찍은 사진은 사진다운 사진이지만, 엉성하게 찍은 사진은 ‘그림 느낌을 흉내낸다’든지 ‘글이 붙지 않고서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좋은 그림책을 좋은 사진책과 함께 꾸준하게 만나야 참 즐거웁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림을 보는 눈이란 그림으로 어느 한 가지 모습이나 어느 한 사람 삶을 담을 때에 아주 오래도록 살가이 바라볼 뿐 아니라 구석구석 그림쟁이 손길이 닿아야 하는 만큼 아주 따사로우며 넉넉해야 합니다. 사진은 기계 단추만 누른대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에요. 구석자리 자잘한 모습까지도 사진기를 손에 쥐어 단추를 누르기 앞서까지 모두 살피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찍을 때에는 눈썹떨림이나 손끝떨림이라든지, 손톱에 햇볕이 튕기는지, 눈알에 어떤 그림자가 어리는지,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을 샅샅이 느껴야 합니다.

 살내음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받아들이며,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는 흐름을 좋은 그림책 하나에서는 짙고 구수하게 담습니다. 좋은 그림은 좋은 사진을 도와주고, 좋은 사진은 좋은 그림을 이끕니다. 좋은 글은 좋은 그림이 태어나는 밑거름이 되며, 좋은 사진 때문에 좋은 글 하나 태어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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