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에 새로운 '사진이야기책'을 내놓을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읽어 보시고, 이래저래 도움말 베풀어 주소서. 고마운 도움말 하나를 얻어 책 하나 한결 알뜰히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이란
― 삶을 밝히는 밑거름, 길을 이끄는 길동무
‘사진책’은 국어사전 올림말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날 맞춤법으로는 ‘사진 책’처럼 띄어서 적어야 바르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진책’을 한 낱말처럼 붙여서 씁니다. 왜냐하면 ‘이야기책’과 ‘그림책’은 일찌감치 한 낱말이었고, 그림을 그려 엮은 책인 ‘그림책’이든 글을 써서 엮은 책인 ‘글책’이든 노래를 지어 엮은 책인 ‘노래책’이든 사진을 찍어 엮은 책인 ‘사진책’이든 한결같이 책이요,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결로 이야기를 일구어 담은 책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 엮은 책이 사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없이 이루어지는 사진책도 있습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일 때에도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이리하여, 사진이 다문 한 장 깃들었어도 사진책이요, 사진 몇 장 살포시 담았어도 사진책으로 넣습니다.
문학은 시와 소설과 수필과 희곡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사진책은 작품모음과 화보와 사진이야기와 사진비평과 사진수필과 사진교재 들로 나눌 수 있고, 이밖에 숱한 갈래를 촘촘히 가를 수 있습니다. 사진책이라 할 때에는 으레 ‘작가가 내놓은 작품모음’ 한 가지만 떠올리곤 하지만, 사진작품을 모은 책만 사진책 갈래에 들지 않습니다. 지자체나 나라마다 지자체나 나라를 안팎으로 알리려고 내놓는 화보라든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촛불집회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엮은 화보라든지 얼마든지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야구단이나 축구단에서 당신 구단에 몸담은 선수들 얼굴이나 경기 모습 들을 담아 내놓는 ‘팬북’이라는 책 또한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학교나 회사가 스무 돌이나 쉰 돌이나 백 돌을 맞이했다면서 기리는 뜻에서 내놓는 ‘이십 년 사·오십 년 사·백 년 사’ 같은 역사책을 사진을 바탕으로 엮었으면 이 또한 남다른 사진책이 됩니다. 또한 졸업사진첩도 사진책이에요. 학교마다 해마다 쏟아내는 졸업사진첩은 한 학교를 다닌 모든 사람들 얼굴이나 몸차림 모습을 보여줄 뿐더러, 학교 안팎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돕습니다. 제대로 못 엮은 따분한 졸업사진첩이라 할지라도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가 지나는 동안 새삼스레 지난 한 삶 발자국을 톺아보는 자료가 돼요.
그림책 갈래에 드는 어린이책 가운데에도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쓰레기 산에 핀 꽃》(재미북스,2002)이나 《내 이름은 민들레》(소년한길,2007)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 마련한 어린이책이자 그림책입니다만, 다른 눈길로 바라보면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린이책을 사진으로 엮는 일을 퍽 일찍부터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보는 도감이라든지 자연책이라든지 이야기책에 사진을 꽤 많이 써요. 어린이책을 내는 한국 출판사는 이와 같은 일본 ‘사진 어린이책’을 퍽 많이 옮기곤 합니다. 웅진출판사에서 1984년에 우리 말로 옮긴 ‘일본 아카네 쇼보’ 여든네 권짜리 《과학 앨범》은 사진으로 일군 놀라운 과학 전집이에요. 웅진출판사에서 1994년에 우리 말로 옮긴 ‘일본 가이세이사’ 서른네 권짜리 《세계의 어린이》 또한 사진으로 빚은 아주 알찬 인류학 전집입니다.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말하는 분들은 이러한 어린이책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만, 이들 ‘사진으로 일군 일본 어린이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사진 찍는 매무새라든지 넋이라든지 손길을 곰곰이 받아들이거나 배울 만하다고 느껴요.
영국에서는 어린이책을 만드는 ‘D·K’라고 하는 ‘돌링 킨더스리’사에서 거의 언제나 사진으로만 이야기를 엮어 책을 내놓습니다. 이런 책들도 사진밭 사람들은 제대로 살피지 않는데, 어른이 보는 책에 사진을 넣든 어린이가 읽는 책에 사진을 넣든, 모두 어른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깊이 헤아리며 익혀 가다듬은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습니다. 더욱이, 여느 어른책이라면 ‘사진을 읽을 사람이 스스로 헤아리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할 테지만, 어린이책에 넣는 사진은 ‘이 사진을 읽을 어린이 누구나 꾸밈없이 헤아리고 아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알뜰살뜰 찍어서 내놓아야 해요. 훨씬 땀을 들이고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이루는 ‘어린이책 사진’입니다.
다음으로, 사진이야기란 노익상 님이 내놓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청어람미디어,2010)이나 이용남 님이 내놓은 《어머니의 눈물》(민중의소리,2003)이나 권철 님이 내놓은 《우토로》(민중의소리,2005) 같은 책들입니다. 이러한 사진이야기는 다큐사진이라 할 수 있는 한편, 사람사진이나 삶사진이라 할 만합니다. 다큐사진이라 할 때에는 으레 사진이야기 자리에 깃들고, 모델이나 연예인을 담은 사진일 때에는 화보나 작품모음에 깃듭니다.
사진비평이란 사진을 말하거나 사진책을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어느 사진책보다 이 사진비평이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교수나 전문가가 아닌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든 섣불로 사진을 말하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이 사진을 이렇게 보았어요.’ 하고 말해야 하고, ‘나는 이 사진이 이리하여 좋고 저리하여 슬퍼요.’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 하나를 놓고 온갖 이야기가 쏟아지면서 넋과 얼을 나누어야 좋습니다. 이야기를 넉넉하고 꾸준하게 주고받아야 우리네 사진밭이 알차게 자라납니다.
우리들 살림집을 떠올려 보셔요. 집에서 식구들하고 말을 않는다면 집안이 어떻게 되나요. 집에서 식구들끼리 서로 칭찬을 해야 더 좋다지만,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타이르거나 나무라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마구 어지르거나 짓궂은 짓을 일삼을 때에 아무 소리 안 하거나 모르는 척을 해도 될는지요. 기쁜 일도 이야기하고 슬픈 일도 이야기할 집식구입니다. 사진밭을 일굴 일꾼이라면 ‘이 사진은 참 아름답네요.’라는 말과 함께 ‘이 사진은 참 아쉽군요.’라는 말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이런 말을 나누어 온 발자국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비평이 태어납니다.
사진수필은 사진이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하고 어울려 태어나는 문학책입니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넉넉히 문학이지만, 다른 문학하고 어우러 놓으면서 남달리 일구는 책이에요. 그런데 사진은 사진 그대로 문학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따로 글줄이나 그림을 살포시 얹는 까닭은 사진 한 장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데, 사진수필을 어여삐 엮지 못하곤 합니다. 《골목 안 풍경》을 내놓은 김기찬 님이 돌아가신 뒤, 김기찬 님 사진에 글을 덧다는 틀로 해서 나오는 책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2006)나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샘터사,2005)인데, 모양새는 퍽 그럴싸하다 싶으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러한 책들은 글은 글대로 옹글지 못하거나 사진을 사진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아귀가 안 맞기 때문입니다. 글이 모자라거나 사진이 어수룩하기에 아귀가 안 맞을 일이란 없습니다. 이 사진수필에서는 무엇보다 사진이 한복판을 차지하는데, 사진을 옳게 읽지 않고 ‘추억’이나 ‘애틋한 그리움’을 떠오르도록 이끌려는 생각으로만 끼워맞추기를 하고 말아, 정작 ‘사진을 찍은 사람이 나타내려 하던 넋이나 얼’하고 동떨어집니다. 김기찬 님 골목 사진 한켠에는 틀림없이 ‘추억’이나 ‘애틋한 그리움’이 있기도 하지만, 김기찬 님 골목 사진은 오로지 추억으로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이곳에 이 사람들이 오늘 하루도 어여삐 살아가는 자락과 무늬와 결과 내음과 빛깔을 곱다시 맺어 놓은 열매가 《골목 안 풍경》이에요.
마지막으로 사진교재인데, 케네스 코브레 님이 엮은 《포토저널리즘》(청어람미디어,2005)이나 필립 퍼키스 님이 내놓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눈빛,2005) 같은 책입니다. 임응식 님이 엮은 《사진사상》(해뜸,1986) 같은 책 또한 사진교재로 넣을 수 있습니다. 《사진사상》은 나라밖 손꼽히는 사진쟁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에 담은 넋을 풀이하는데, 사진을 처음 만나거나 사진을 바야흐로 익히려 하는 새내기한테 길잡이처럼 베푸는 책이기 때문에 다른 갈래보다 사진교재 갈래에 넣을 때에 잘 어울립니다.
사진책 갈래를 더 잘게 나눈다면 이밖에 숱한 갈래를 더 나눌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책’을 나눌 수 있고, ‘상업사진책(모델사진)’이라든지 ‘동인지’라든지 ‘사진잡지’라든지 ‘여행사진책’이라든지 ‘연감’이나 ‘도감’을 들어 볼 수 있어요.
아직 사진책 갈래를 나눈 사람이 딱히 없을 뿐더러, 알맞게 나누었다 싶은 이야기를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진책을 한 권 두 권 장만하여 갈무리하는 동안 ‘사진책을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대로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책을 하나둘 마련하여 그러모으는 가운데 ‘내 나름대로 이렇게 나누어 보자’ 하면서 나누면 됩니다. 도서관 분류법대로 나누어야 하는 사진책은 아니요, 남들이 하는 대로 그예 따르기만 할 내 삶이 아니니까요.
사진책을 얼추 천 권쯤 건사했다 싶을 무렵부터 이 사진책들을 책꽂이에 차근차근 나누어 꽂아 보셔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쟁이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쟁이’ 이름을 따로 한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에서는 좀 성기기는 하지만 ‘임응식’이나 ‘전민조’나 ‘김기찬’이나 ‘구와바라 시세이’나 ‘세바스타앙 살가도’ 같은 갈래를 따로 나눕니다. ‘로베르 드와노’나 ‘안셀 아담스’ 같은 갈래도 마련해 놓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 작품모음을 차곡차곡 그러모으다 보면, 이분이 어떠한 사진길을 걸었고, 사진밭을 어떻게 일구며, 사진눈길이 어떠한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좋은 모습을 익히는 가운데 슬픈 모습을 느낍니다. 훌륭한 손길을 살피는 가운데 씁쓸한 뒷모습을 읽습니다. 사진책이 이천 권을 넘고 삼천 권을 넘어서며 자꾸자꾸 늘어나는 동안 ‘한 번 읽은 사진책’을 열 번 백 번 즈믄 번 다시 넘깁니다. 이때에는 되풀이해서 보는 동안 새삼스레 맞아들이거나 비로소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진을 비평하는 분이나 그냥저냥 사진이 좋아서 들여다보는 분이나 엇비슷하게 잘못을 저지른다 할 만한데, 다들 사진 한 장을 너무 얼핏 스쳐 읽기만 합니다.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합니다.
참말 좋은 사진이라면 오래도록 자꾸 들여다보아야 하고, 더없이 훌륭한 사진이라면 예배당 다니는 분들이 ‘똑같은 기도글’을 아침·낮·저녁으로 끝없이 되풀이할 뿐더러 달달 외우며 살아가지만 거룩한 뜻이 날마다 새롭다고 말씀하시듯, 똑같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이 언제나 새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때마다 새삼스러우며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새롭지 못하거나 선물을 얻지 못한다면, 아직 내 눈이 영글지 못한 탓이거나 내가 좋아한다는 사진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탓입니다. 두 가지 모두일 수 있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자라는 사람입니다. 열다섯 살에도 자라고, 스물다섯 살에도 자라며 쉰다섯 살이나 일흔다섯 살에도 자랍니다. 제가 ‘내 책을 그러모아 내 살림돈으로 연 도서관’에 전민조 님이라든지 구와바라 시세이 님 같은 분들 갈래를 따로 마련한 까닭은, 이분들 사진을 들여다보면 나이 스물이나 서른에만 온힘 바쳐 사진밭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마흔이나 쉰에도 한결같았고, 나이 예순이나 일흔에도 한결같습니다. 흔한 말로 ‘어르신 대접’을 받을 만하다 싶어도 스스로 어르신 대접을 손사래칩니다. 당신들이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노상 사진기를 단단히 움켜쥐어 ‘현장을 누벼야’ 하고, ‘사진 한 장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 일하는 사진쟁이만 이렇게 나이 예순이나 일흔에도 나이 열이나 스물이나 서른과 같은 마음결이어야 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즐기는 우리들 또한, 내 나이가 열다섯이든 서른다섯이든 쉰다섯이든 언제나 싱그러우며 푸른 넋을 건사하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걸어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사진책 하나 가슴에 안는다면, 이 고운 사진책은 내 삶을 곱게 일구는 밑거름이 되거나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4343.12.2.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