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18.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묻는 말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길은 여럿입니다. 사진에 찍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몰래 찍는 길이 있을 테고, 사진에 찍힐 사람한테 알리고 찍는 길이 있을 테지요. 사진에 찍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몰래 찍더라도, 미리 ‘찍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은 뒤 허락이나 동의를 받은 뒤에 가만히 기다리다가 찍을 수 있어요. 그리고, ‘찍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은 뒤에 곧바로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에 찍힐 사람한테 알린 뒤에도, 막바로 찍을 수 있지만 며칠이나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찍을 수 있어요.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허락을 안 받고 몰래 찍는 사진이 가장 살갑거나 자연스러울까요? 허락을 받고 슬그머니 찍어서 ‘찍히는 사람이 못 알아챈’ 사진은 어느 만큼 살갑거나 자연스러울까요? 허락을 받기는 했으나 ‘찍히는 사람이 자꾸 사진기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쑥스러워 할 적에 찍는’ 사진은 얼마나 살갑거나 자연스러울까요?


  흔히 ‘초상권’이라고 하는데, 초상권을 쓰도록 허락을 받는 일은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허락을 받고 나서 1분만에 찍어야 하거나 10분 뒤에까지 꼭 찍어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락을 받고 나서 ‘사진을 찍고 싶은 내 마음이나 눈길’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어요. ‘이야, 바로 저 모습이야!’ 하는 모습은 1초 사이에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언제이든 다시 찾아옵니다. 딱 한 번 아니면 못 보는 모습이 있다고도 할 터이나, 우리 삶에서 딱 한 번 아니면 못 볼 모습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딱 한 번 아니면 못 볼 모습이라서 미처 허락이나 동의를 안 받고 찍었으면, ‘미리 허락이나 동의를 안 받고 찍었습니다’ 하고 알린 다음 미안하거나 죄송하다고 말씀을 여쭐 수 있어요.


  사진찍기는 ‘내 소유물 만들기’가 아닙니다.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들 얼굴이나 모습을 ‘내 창작품’이라고 함부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초상권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과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마땅합니다. 허락과 동의를 받지 않고 사진을 바깥으로 드러내려 한다면 ‘내 사진기로 찍은 사진은 내 소유물’이라는 얕은 생각을 어설피 보여주는 셈입니다. 지난날에는 필름사진뿐이었기에 ‘사진에 찍힌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찍혔는지 알기 어려웠다면, 오늘날에는 디지털사진이 널리 퍼졌으니, ‘사진에 찍힌 사람’한테 디지털파일을 보여주면서 허락과 동의를 받으면 아주 손쉽습니다. 이만 한 허락과 동의를 받지 않고서 사진기 단추만 눌러댄다면, 우리는 ‘사진 창작’이 아니라 ‘인권 침해 폭력’을 저지른다고 하겠습니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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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17. 하루 내내



  하루 내내 사진만 찍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늘 바라보는 모습은 언제나 ‘사진이 될 만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좋은 데’에 가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햇살을 찍을 수 있고, 햇살이 스미는 방문이나 창문을 찍을 수 있으며, 햇살을 받고 깨어나는 살림살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아침을 차리려고 부엌에서 일을 하며 부엌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도마질을 하다가 사진을 찍을 만하고, 잘게 썬 당근이나 무를 찍을 만해요.


  내 움직임을 따라서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어도 됩니다. 또는, 우리 집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살피면서 하루 내내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움직이는 모습이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든, 모두 ‘그림이 되’니까요.


  그림이 되는 모습이란 ‘삶이 되’는 모습입니다. 삶이 되는 모습이란 ‘이야기가 있’는 모습입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이나 괜찮아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놀라워 보이는 모습이나 멋있어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나 웃음이 묻어나는 모습이 바로 사진으로 담을 만한 모습입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마음속에서 웃음이 피어날 때까지 가만히 바라봅니다. 무언가 ‘사진으로 찍을 만한 모습’을 찾지 말고, ‘삶을 즐기는 노래가 흐르는 하루’를 누리면서 가만히 마주합니다. 사진으로 안 찍어도 되기에 가만히 바라보고, 사진으로 찍어도 즐거우니 가만히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아름답구나 하면서 노래할 때에 웃음이 피어나니 가만히 마주합니다. 4348.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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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하루가 세상의 종말. 이라는
책이 있는데 ,곧 멸망을
앞 둬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하던 스피노자가 생각나며..함께살기 님의
삶이 가르키는 방향이 스피노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느끼고 갑니다.
미래에 어떤 향을 가질지 ..모든 사과는 같으나..그 사과는 이 사과와 다를 것인데..
지상에 남을 그 향기로운 사과의 말간 모습..을 미리 당겨 보니..좋았네라...

숲노래 2015-01-05 13:11   좋아요 0 | URL
사과나무뿐 아니라 배나무도 감나무도...
나무를 심는 사람은 지구별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구나 싶어요.
나무를 심지 않기 때문에 지구별이 무너지는구나 싶고요 ^^
 

사진 찍는 눈빛 116. 어제와 오늘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오늘’이지만, 종이에 앉히거나 파일이나 필름으로 아로새기는 모습은 언제나 ‘어제’라 할 만합니다. 사진기를 놀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오늘’이어도, 이 오늘은 곧바로 ‘어제’가 되어, 바로 오늘 찍은 사진조차 “아, 아까 그랬었지!” 하는 생각을 자아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어제를 사는 사람일까요?

  아침에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신나게 일하거나 논 뒤, 저녁에 밥을 다시 먹습니다. 저녁에 밥을 먹다가 “아, 아까 아침에 밥을 먹었지!” 하고 떠올립니다.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아침은 그야말로 ‘흘러간 이야기’나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아침과 저녁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바로 이곳에 있는 오늘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겁지 않은 오늘이라면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앞으로 즐거운 오늘이 되기를 바라면서 힘껏 갈고닦아서 바야흐로 즐거운 오늘이 되면 신나게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은 흘러간 어제나 지나간 어제를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한 오늘을 즐겁게 누리면서 삶을 지었기에, 이렇게 지은 삶을 찬찬히 되새기면서 ‘어제’와 ‘오늘’을 한 자리에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싶으며, 어제와 오늘은 같다고 느끼고 싶고, 어제와 오늘은 늘 고이 이어진다고 느끼고 싶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꼬맹이도 나요, 거울로 비추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나 아주머니도 나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갓난쟁이도 나요, 거울로 들여다보는 젊은이나 푸름이도 나입니다. 얼굴빛이나 몸집이나 살결은 달라집니다. 옷차림이나 목소리도 바뀝니다. 그러나, 옷과 몸에 깃든 넋과 숨결은 한결같습니다. 어제를 살던 나와 오늘을 사는 나는 언제나 같습니다. 스무 해나 마흔 해가 지난 일이지만, 사진을 보면서 ‘쉰 해가 지난 일’조차 ‘바로 어제’나 ‘바로 오늘’인듯이 느낍니다.

  사진은 무슨 일을 할까요. 사진을 찍어서 무슨 일이 생길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까요. 오늘을 찍어서 어제를 드러내는 사진은 우리 앞날에 어떤 빛과 이야기와 노래와 숨결이 될까요. 사랑스러운 손길로 오늘을 다스리기에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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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15. 사진에 파묻힌다



  사진을 하루에 오백 장쯤 찍든, 사진을 하루에 다섯 장쯤 찍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루에 오백 장을 찍기에 많이 찍는다 여길 수 없고, 하루에 다섯 장을 찍기에 적게 찍는다 여길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나 스스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오백 장씩 찍는 사람이 있다면, 날마다 오백 장에 이르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사진을 다섯 장씩 찍는다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사진을 한 달에 다섯 장 찍거나 한 주에 다섯 장 찍는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는 사진을 한 해에 다섯 장 찍을 수 있고, 사진을 다섯 해에 한 장 찍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숫자만 놓고 ‘많이 찍는다’고 여길 수 없고, 숫자만 살피면서 ‘남길 이야기가 많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하루에 오백 장이 아닌 오천 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을 내가 모두 찬찬히 돌아보면서 건사한다면, 하루에 오백 장이 아닌 오천 장을 찍어도 ‘많이 찍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알뜰살뜰 건사하는 사진이라면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나 스스로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진이라면 ‘파묻히는 사진’이나 ‘휘둘리는 사진’입니다.


  하루에 오백 장, 또는 삼백 장, 또는 백 장, 또는 쉰 장, 또는 서른 장, 이렁저렁 찍기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한 주에 한 장만 찍더라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는 모습이나 몸짓’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야기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나눌 이야기는 ‘사진으로 아로새기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으로 갈무리하는 사랑과 꿈’입니다.


  사진을 왜 찍느냐 하면, ‘마음으로 갈무리하는 사랑과 꿈’을 ‘그림과 같이 아로새긴 모습’으로도 살며시 옮겨 빙그레 웃고 넌지시 노래하며 싱그러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면 이야기할 틈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열 일을 젖힌다면 웃거나 노래할 겨를이 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길에서 사진을 찍을 뿐, 사진을 누리는 길에서 삶을 곁들이지 않습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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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32. 너와 내가 나란히



  두 사람이 나란히 걷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 섭니다. 앞에서 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되고, 뒤에서 보면 오른쪽과 왼쪽이 됩니다. 두 사람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쪽에 있다고 하든 저쪽에 있다고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란히 걷기에 즐겁습니다. 나란히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나들이를 하면서 즐겁습니다.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아야 신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자전거에 태워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어버이와 손을 맞잡고 걸어도 신이 나고, 어버이와 달리기를 하면서 땀을 흘려도 재미가 있습니다.함께 있는 자리가 즐겁고, 서로 웃으며 마주볼 수 있으니 기쁩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안 쥔 사람은 사진기를 바라봅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이녁 눈길로 동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나 남깁니다. 사진에 찍힌 사람은 앞에 마주하던 사람이 찍은 모습에 따라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내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내가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요모조모 이야기를 그립니다. 네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네가 이야기를 담고, 네 앞에 있던 내가 이모저모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한테는 이 느낌과 생각이 있을 테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한테는 다른 느낌과 생각이 있습니다. 둘은 틀림없이 한 자리에 있었으나, 둘이 느끼거나 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는 살짝 다르거나 사뭇 다릅니다. 그리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겼다고 여길 수 있고, 잊고 싶은 지난날을 되새긴다고 여길 수 있으며, 가슴속에 꿈을 품은 젊은 날을 사진으로 아로새겼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사진 한 장으로 새롭게 만납니다. 너와 나는 여태 다른 곳에서 나고 자라 만났지만, 마음이나 뜻이 만나서 함께 사귀거나 어울립니다. 사진 한 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만나도록 잇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너와 내가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도록 이끄는 징검돌이 됩니다.


  나는 너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는 나한테 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이 피어오르고 믿음이 자라며 꿈이 몽실몽실 부풉니다. 사진 한 장을 다르게 바라보는 두 눈길은 어깨동무하는 손이 되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눈빛이 됩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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