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아이들
- 지은이 : 야누슈 코르착
- 옮긴이 : 노영희
- 펴낸곳 : 양철북(2002.12.18)
- 책값 : 8500원



'아이들'을 돼지우리에 가두는 어른들
- 야누슈 코르착 지은 <아이들>



<1> 1942년 8월 6일, 고아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은 코르착


유럽에서 큰 전쟁이 다시 터지고 유대인이 하나둘 끌려가던 1942년 8월 6일,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들 손을 잡고 폴란드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 뒤에는 스테파니아라는 고아원 교사가 마찬가지로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나라가 보살피지 못하고, 사람들이 내버린 고아들 200명 남짓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손에 들고 단출하게 옷을 차려입은 채 트레블링카 가스실이 마지막역인 화물차에 올랐습니다.

코르착을 아는 동무들은 독일군 손아귀에서 코르착이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애를 썼지만, "당신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 아이를 버리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하면서 폴란드 거리 곳곳에 버려진 고아들을 거두어서 보살피다가 가스실로 갔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904년에 의사 자격을 얻은 뒤 러일전쟁 때 군의관으로 징병된 코르착은 전쟁을 겪은 뒤, "전쟁은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학대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국가든 참전하기 전에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고아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빼앗기고 잃어버린 '존중', '사랑', '관심'을 되돌려 주고자 애쓴 사람이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폴란드사람입니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양철북(200)> 35쪽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앞서 자기 자신을 알려고 애쓰라"고 말하는 코르착입니다. 세상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으나 의술만으로는 아픈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서 교육자가 되고, 고아원장이 된 코르착입니다. "비밀을 캐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 어린에게 지켜줘야 할 권리를 말하고, 몸으로 지켜주려 애쓴 코르착입니다.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38쪽>



우리들은 아이들이 누리고 얻을 권리도 지켜주지 못하지만, 자기 감정을 나타낼 숟가락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고 주먹을 들어 머리통을 내갈기거나 손바닥을 펴서 뺨따귀를 때리죠?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팔뚝이나 옆구리에 멍이 들 만큼 세게 꼬집기도 하고요.


<2>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주 정성스럽게 '좋은 책'을 기꺼이 사 줍니다. 돈이 얼마가 들던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 책을 다 읽어내고 속으로 삭여내느냐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깜냥으로 끝없이 책을 사 줍니다. 그런데 이런 '책 사주기'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부터 끊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학원교재, 문제모음, 참고서, 학습지뿐입니다. 이제는 과외비에 돈 대느라 바쁩니다.


무슨 놀이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놀이를 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42쪽>



제 어릴 적 기억으로, 어머니가 책을 사 주신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얼마 안 읽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노느라 바빴거든요. 놀이란 놀이는 다 하면서 놀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에 갇힌 돼지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좁은 우리에 틀어박혀서 주인이 주는 밥만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돼지와 요즘 아이들이 무엇이 다를까요? 좁디좁은은 우리에 갇힌 돼지는 자기 생태와 달리 '사람 눈에는 더럽게 보이고 살도 디룩디룩 찝'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머릿속에 지식은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답게 자라나는 마음과 생각은 익히거나 배우지 못해요.

책을 푸짐하게 사 주는 부모들이 그 책을 아이와 함께 읽고 즐기나요? 아닙니다. 그런 부모는 아주 드뭅니다. 어린이책에 담긴 깊고 너른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부모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아이가 어리니까 사서 읽히게 하는 것'뿐인 부모가 거의 모두입니다. 그러니, 그런 부모들이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사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이가 사람답게 크고 곧고 튼튼한 생각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일에는 털끝만큼도 눈길을 보내지 못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참으로 중요한 걸 모릅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힐 줄'은 알지만 '아이가 사람답게 자라도록 가르치고 이끌 줄'까지는 모릅니다. 밥과 옷과 집은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요즘 부모는 '돈'으로 할 줄 아는 것만 생각할 뿐, 돈 없이, 아니 돈을 넘어서 온몸과 온마음으로 부대끼며서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하면서 나눌 수 있는 것은 도통 모르고, 알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다른 난제이고,
서로 다른 과업이며,
서로 다른 염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58쪽>



<3> 어린이에게도 '사람 권리'가 있다


국제연맹은 1924년에 어린이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1959년에 2차로 선언문을 다시 만들지만 '말'뿐인 선언문이었답니다. 코르착은 국제연맹 선언문이 있기 앞서부터, "선언문은 선의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강요해야 한다. 호의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989년, 비로소 '어린이 인권협정'이 나와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 인권' 문제를 법으로 강제할 장치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이런 인권협정이 있어도 우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자라는 어린이들 모습은 '인권을 누리는 모습'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중고등학생은 중고등학생대로,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들대로 온갖 짐과 굴레에 갇힌 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고 있어요.

"사실은 어린이들은 인류,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67쪽>"라는 걸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일까요?


"엄마는 어른이 차를 엎지르면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엎지르면 화를 내요!"
아이들은 불공평한 대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종종 울음을 터뜨리지만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고 성가신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시할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칭얼거리고 징징대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쓰려고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53쪽>


어린이가 어른의 잘못을 따지는 것을
우리는 싫어합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눈치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56쪽>



돈이 있고, 얼굴이 예쁘고, 권력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값을 받지 않고 뒷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듯, 우리들은 '어른'이라는 엄청난 권력으로 '어린이'를 차별하고 괴롭힌다고 봅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네 학교를 생각해 봅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체벌'해야 하느니 마느니, 회초리를 어떤 것으로 써야 하느니 마느니를 따집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들이 잘못했을 때 교사에게 체벌을 받아야 한다면, 교사들이 잘못했을 때는 학생에게 체벌을 받으면 될까요?


<4>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겠죠?


코르착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예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말이 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윗물, 그러니까 어른들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아랫물은 아이들은 그런 어른을 보고 배우고 따르고 우러르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청소년범죄는 청소년이 못나고 문제가 많아서 일으키는 범죄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흉내내고 따라하는 범죄입니다.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들고 만 어른들 탓입니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재산차별, 생김새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이 곳곳에 퍼진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느끼면서 자랄까요? 이렇게 '차별 넘치는 세상'에서 동무들끼리 따돌리고 괴롭히는 '왕따'라는 게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 안타깝게도, 무심한 어른은 화가 났거나 기분이 좋지 않
을 때, 이 물건들을 꺼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머니
가 늘어진다거나 서랍 속에 복잡하다는 이유로요. 다른 사
람의 소중한 재산을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다룰 수 있나요?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아이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존중하
는 마음을 배우겠어요? 그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휴지 조
각이 아니라 소중한 물건이고, 눈부신 꿈의 조각입니다 .. <131쪽>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받아들이고 껴안고 토닥거리면서 감쌀 수 있는 마음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런 마음을 지니면 우리 사회에 차별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면서 '틀림'과 '잘못됨'을 하나씩 고치고 다듬어 나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다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낮과 밤, 여름과 가을,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고,
뜰에는 나비가, 하늘에는 새가 있고,
꽃 색깔이나 사람들 눈 색깔이 저마다 다르듯이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차이를 싫어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다양성을 불편해 합니다. <146쪽>



<아이들,양철북(2002)>이란 작은 책에는 코르착이 우리에게 건네는 속깊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길 바라는 이야기,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말없이 있는 아이들 이야기, 사랑이 있으면 곧바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아이들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 '야누슈 코르착'은 어떤 사람? (제 나름대로 갈무리해서 적어 봅니다) ===

1879년 7월 2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자기 이름은 '헨리크 골드슈미트(Henryk Goldszimt)'인데 스무 살이 되던 해 폴란드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파데레프스키(Paderewsky)'상을 받으면서 글이름(필명)인 '야누슈 코르착'을 쓴다. 이 문학상은 응모자에게 글이름을 쓰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공모하기 바로 앞서 글이름을 '야냐슈 코르착'이라 지었다는데, 식자공이 잘못해서 '야누슈'로 쓰는 바람에 그 뒤로 이 이름을 그대로 쓴단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의사가 된 코르착은 부유한 환자에게는 돈을 많이 받고 가난한 환자에게는 돈을 한 푼도 안 받고 돌봐 주는 한편 약 살 돈까지 주고 가기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의술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풀 수 없음을 느끼고는, 새로 세워진 유대 어린이 고아원 원장이 되며 아이들 문제를 부대끼고 고쳐 나가게 된다. 이때부터 코르착은 고아원 다락방에서만 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평생을 바친다.

코르착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한편 <매트 1세>, <내가 다시 어려진다면> 같은 작품을 쓰고 <작은 평론>이라는 어린이 주간지를 만들고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의사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어린이와 보육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그러던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마침내 1942년 8월 6일, 고아원 아이 200명 남짓과 평생 고아원지기로 함께 일한 교사 스테파니아 들과 함께 가스실로 가는 기차에 당차게 오르며 삶을 마친다. 1989년에 국제연합에서 내놓은 어린이 인권협정은 바로 코르착이 쓴 어린이 인권에 얽힌 글을 바탕으로 썼으며 1979년 '세계 아동의 해'는 코르착이 태어난 지 100해를 기려서 '야누슈 코르착의 해'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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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어린이문학
우에노 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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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지난해에 썼습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은 제가 아끼고 좋아해서 늘 곁에 두고 틈틈이 다시 보는 책인데, 이 책 이야기를 다른 자리에 쓰려고 잠깐 알라딘에 들어와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또 댓글은 얼마나 올라 있는지 보다가, 아무런 독자댓글이 없음을 보고, 두 해 앞서 쓴 글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보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걸쳐 놓습니다.

 

 - 책이름 : 현대 어린이문학
 - 글쓴이 : 우에노 료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사계절(2003.1.28)
 - 책값 : 7500원


 어린이문학 비평으로 읽는 우리 삶
 [책읽기가 즐겁다 82] <현대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1> 현실과 동떨어진 평론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요즘은 평론책을 안 읽습니다. 평론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지만, 평론처럼 작품을 자기(평론가) 눈과 입맛에 따라 칼질하는 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론을 쓴다고 하면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서, 평론가가 어느 영화를 아주 비판하고 나무라면, 평론과 영화를 잘 모르는 여느 관객은 "그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안 보기도 해요. 그러다가 얼결에 '혹평 받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 재미있던데 평론은 왜 그래?"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태까지 읽은 평론책도 참 많았지만, 더는 읽을 만한 글이 눈에 잘 안 띄기도 하고, 저도 게을러진 한편으로, 시인 김남주 씨 말마따나 "그 따위 평론이라면 나도 쓰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김남주 시인은 "창비에 실린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써 보았다 /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린 나의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노동자와 농민이 또는 전사가 / 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 보았으면 한다 / 그것이야말로 나의 보람이고 나의 자랑이다......" 하고 노래했거든요.

 우에노 료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지은 평론, 그것도 어린이문학을 평론한 글은 남달랐습니다. 그저 어린이문학 흐름이나 어린이문학에 담는 줄거리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겉핥기가 아니라, 어느 한 나라 문화와 교육과 사회와 정치와 역사와 예술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이 책 하나에 담았어요. 그래서 두어 달에 걸쳐서 차근차근 꼼꼼하게 곱씹으며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평론책을 다 읽어냈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꽝입니다(줄거리는 좋지만).


 .. 어른이 무서운 이유는 회초리를 휘두르기 때문이 아니라
 회초리를 휘두를 수 있는 입장, 휘둘러도 괜찮은 입장이기
 때문이며 어린이에 대한 절대성 때문이다 .. <11쪽>


 우에노 료는 "문제는 어른과 아이 중 누가 더 훌륭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인간으로서 유연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발휘하느냐이다<16쪽>"라고 말합니다. 머리말에 적은 이런 말을 보고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기보다 어린이'문학' 비평


 "어린이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도 있다<18쪽>"고 말하는 우에노 료. "성인용 잡지에 범람하는 '성'은 어른들이 '민주적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 해방을 체험하지 못했음<21쪽>"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히는 빼어나 작품 열 편을 대상으로 어린이문학에 제대로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우리들이 함께 느끼면 좋을 것이 무엇인지, 어린이문학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갈 길은 어디일지를 찬찬히 살핍니다. 우에노 료가 말하는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가장 중요한 길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어떤 형태로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어린이의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할 것인가<21쪽>"입니다.


 .. 어린이는 이러한 주제를 알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점
 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언급했다. 어린이는 이야기 자체
 를 즐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독서 태도이다. 만약 이야기 속의
 주제나 의도만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육의 일부로, 국어 공부나 독서 감
 상문을 작성하는 일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 <95쪽>


 어린이가 읽는 책뿐 아니라 어른이 읽는 책도 같습니다. "주제를 알고자" 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재미'만 얻고자 읽지도 않아요. 주제와 재미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재미'에 대한 판단은 어린이가 내린다 해도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상상력은 제한되고 좁은 틀 속에 갇힌다<187쪽>"고 말해요.

 일본은 우리보다 상상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는 책을 많이 펴냅니다. 하지만 그 일본에서도 "토미 융게러가 지은 <머신 섹스>나 <포니콘>이라는 책은 낼 수 없을 것-<포스터의 위력,시각문화사(1979)>이라는 책에서-"이라고 했어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멋진 어린이 그림책을 그렸다는 '토미 융게러'라는 이름에 억눌려 버리거든요. 토미 융게러는 어린이 그림책만 그리지 않고, 사회와 정치와 모든 것을 풍자하고 비꼬기도 한 <머신 섹스>나 <포니콘>도 그리지만, 이런 책을 토미 융게러가 사는 나라와 유럽에서도 거절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내동댕이친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토미 융게러가 지은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성과 섹스'를 다룬 그림책은 들어오지 못할 뿐더러 들어올 수도 없게 막습니다. '유익'한가를 따지거든요. 어른들, 그것도 관료주의와 제도권에 있는 어른들이 따지거든요.


 .. 어린이 독자들은 자기가 속한 일상적 세계에서 살면서 항상
 일상성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미지의 것에 대한 발견과 모험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 <85쪽>


 이런 꿈과 설레임은 어린이만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여기서 우에노 료는 어른들이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주제에 짓눌린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재미가 그저 재미로만 그쳐서는 안 되는 대목도 말합니다.

 우에노 료는 '놀이'를 중요하게 여겨서 책을 읽을 때에도 '놀이' 성질을 얼마나 담아내느냐고 말하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문학 평론가들이 이 대목을 곧잘 따와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어린이문학 비평가들이 따오기는 많이 따오면서도, 정작 우에노 료가 중요하게 말한 다음 대목은 일부러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에노 료라는 사람이 '놀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만큼 '일'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어른들이 지나치게 '주제'에 짓눌린다고는 하지만 '주제'를 완전히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습니다.


 <3> 놀이와 일, 일과 놀이는 한 동아리


 .. 어린이는 많은 것을 기대한다. 많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공상을
 부풀린다. 공상을 부풀림으로써 인생을 생각한다. 자신 속에 인간
 을 완성시켜 간다.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
 다. 마법의 램프나 하늘을 나는 융단에 어린이가 매료되는 것은
 현실 도피의 표현이 아니다. 일상 세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공상
 이야기에 보내는 어린이들의 갈채와 박수는 반대로 일상 세계에
 대한 무한한 기대의 표현이다 .. <86쪽>


 어린이는(또는 어른은) '꿈'만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꾸면서 '현실'을 삽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즐기며 꿈을 즐겨요.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와 신비한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기보다 이어져 있다"고 느끼는 어린이들은 "자기가 참가할 수 있는 재미"를 바랍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재미를 기대"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가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보여주는 '공상과학만화'나 '환상동화'를 어른들이 쥐어 주었을 때, "에이, 재미없어"라고 집어던지는 까닭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상상은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어른들끼리 즐기는 용두질(자위행위)일 수도 있고요.

 민화나 옛날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듣고 읽는 어린이들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자기 삶과 이어진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또 다른 세계가 주는 재미"로 여겨요.


 ..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콩나무에 올라간 잭이나 엄지
 동자(공상 이야기)보다 톰(현실 이야기)을 훨씬 친근하게 느낀다.
 자신과 톰의 입장을 동일시한다. 이윽고 신비한 일들이 벌어진다.
 자신과 톰을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생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일상 세계에서 기대하
 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먼 옛날, 먼 곳에서 일
 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자기 앞에 또 하나의 세계가 나타나는
 즐거움이다 .. <87쪽>


 자기 또래 어린이가 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들입니다.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걱정도 하고 즐거워도 해요.


 <쥐 - 조혜영, 1985년 12월 9일 / 경상도 울진 온정국 3년>

 마루 위에
 메주가 있어요.
 밤에만 쥐가 와서
 깕아먹어요.
 엄마는 매일
 고노무 쥐
 고노무 쥐.
 할아버지가
 찬깨(덫)를 놓았어요.
 쥐가 꼬리에 찡겨서
 피가 묻었어요.
 쥐는 가만히
 눈만 감고 있어요.  <큰길로 가겠다,한길사(1987)>에 실린 시 가운데 하나


 자기 또래가 쓴 이런 시를 읽고 함께 걱정하고 마음을 쓰는 어린이입니다. 나도 알고 내 동무도 아는, 나도 살고 이웃도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바탕으로 펼쳐내고 이어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가 발 딛고 선 땅'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끝없는 상상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 자신에게 남다르게 소중한 세계가 있음을 느끼는 동안, 자기 삶을 사랑하고 더 나은 재미와 보람과 즐거움과 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과 꿈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 그것은 바로 놀이와 일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입니다.


 <4> 전쟁 어린이문학


 마지막으로 "전쟁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귀담아듣고 생각해 볼 만한 말이 있습니다. 전쟁 어린이문학은 그냥 '전쟁문학'이라 하여 어린이와 어른 모두 깊이있게 돌아보고 살피면 좋을 비평이기도 해요.


 .. 인간성은 어제 일어난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내일 일어날 비인간
 적 행위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체 그런 인간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과거의 학살을 돌이켜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전쟁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전쟁 자체를 그렸다기보다 전쟁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 나약한 인간
 을 그린 어린이책은 무수히 많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전달
 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닿아 있다. 그것을 밝혀 냄으로써 현재 속에서 어제에 대한 책임,
 또는 내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거기에 있다 .. <163쪽>


 얼마 앞서 <나스 마사모토 그림-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이 하나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책방에서 서서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닫았습니다.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일으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받게 했는지"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일본사람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상투성 짙은 교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자는 일본사람만이 아닙니다. 그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한국사람도 있고 중국사람도 있고 동남아시아사람도 있어요. 더구나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로 '한국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가 2002년에 와서야 겨우 인정했지만, 국가 차원 배상이 아닌, 지금도 일본에서만 사는 피폭자만 대상으로 삼고, 그것도 몇 사람에게만 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은 '전쟁 자체'만 말할 뿐, 전쟁 때문에 비틀리고 뒤틀리고 괴롭고 힘겨운 사람들 삶을 담아내지 못해요. 아예 안 한달까요? 나아가 자칫하면 역사 왜곡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맨발의 겐>이라는 만화책에서는 그나마 '한국인 피폭자'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도 그저 겉핥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란 그림책엔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런 '전쟁 어린이문학' 비평을 읽다 보면, 이것은 어린이문학에만 할 말이 아니라 어른문학에서도 할 말이에요. 그러니까 '문학'으로 할 말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헤아릴 일이고요.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사람입니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문학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문학비평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비평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네 문학과 문학비평은 나날이 사람과 멀어져 가지 싶어요. '재미(놀이)' 한 가지로만 치닫거나, 무거운 '주제(유익)'에만 푹 빠져요. 재미와 주제는 둘 가운데 한 가지만 있을 때는 참 심심하거나 따분합니다. 함께 있어야 가장 좋아요.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이 두루 읽을 만한 책은 못 되겠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사람 삶을 사랑하는 이라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낱 '어린이문학 비평'만 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을 글감 삼아서 인생론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말하고 사람과 삶과 사랑을 보듬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 형편없고, 우리 말법과 말투하고는 동떨어져 있어서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런 책을 펴낼 때는 부디 '우리 말 다듬기'라도 좀 해놓고 내놓으면 좋겠습니다. (4337.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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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서 온 편지
서원희 지음 / 내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아기에게서 온 편지
- 글쓴이 : 서원희
- 펴낸곳 : 내 출판사(2006.1.17.)
- 책값 : 8500원


 - 불편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
 : … 엄마는 거짓말쟁이예요. 제가 힘들어도 잘 참고 태어나면 모두 기뻐하고 좋아할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지금 너무 힘든데 저만 모르는 또 무슨 큰일이 일어난 느낌이어서 정말 외롭고 무서워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어요. 뱃속에서처럼 엄마가 저를 한없이 사랑해 주면 정말 좋겠어요. 〈68쪽〉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라는 책을 썼던 서원희 님이 《아기에게서 온 편지》라는 책을 새로 냈습니다.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살림’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가난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돈은 적지만 삶을 즐길 방법은 훨씬 많을 수도 있음’을 몸소 펼치면서 살아가는 어머니로서 아이들한테 다가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참 수수하면서 멋있게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이 책을 좋아했는데 안타깝게도 판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해 뒤인 2006년 1월, 아마도 서원희 님 스스로 셋째 아이를 낳은 뒤이지 싶은데, 그러면서 돈벌이로 산모조리원과 놀이방 들을 하면서 겪고 느낀 여러 가지를 바탕으로 ‘막 태어난 아기가 어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아기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책을 펴냈습니다.


.. 아이 낳는다고 애썼다며 푹 쉬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친절하게 저를 갓난아기방(신생아실)으로 데려가고 이상한 젖꼭지 주고 하루에 엄마 한두 번 보게 하고 또 엄마 건강 되찾는 곳(산후조리원)도 만들어서 엄마를 쉬게 하고…….
 그저 제가 엄마 옆에 없어야 엄마가 잘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며 “태어난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태어난다고 정말 애 많이 썼다. 또 태어나서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 좀 하면 좋겠어요.
 저 태어나면서 너무 힘들었고 무서웠는데, 그래서 위로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데……. 엄마 아빠라도 애썼다고, 장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  〈43쪽〉


 가만히 돌아보면, 저는 여태껏 성교육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교육뿐 아니라, 제가 혼인해서 살아갈 때 낳을 아기 이야기와 얽혀서 무엇 하나 배워 본 적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찌 지내는지, 또 어떻게 혼인해서 지내는지 따위도 배워 본 적 없습니다. 세상엔 책도 많고 ‘선생님’이란 이름 내거는 사람도 많건만, 왜 이런 이야기는 배우기 어려울까요? 아니, 가르쳐 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귀고 지내는 일은, ‘누구한테나 똑같이 하는 일이지만, 좀더 마음을 쓰는 일’이지 않겠느냐고,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둘레 사람 모두한테 따뜻하고 살갑게 다가서면서 살아야 알맞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남녀가 얼우는 일을 배우는 것보다도 ‘남녀가 사랑놀이를 해서 태어날 아기’를 어떻게 키울는지를 배워야 알맞겠다 싶어요. 나아가, 막 태어난 아기는 어떤 마음이며 몸은 어떠한지도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고요. 이런 일은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벌써 예전에 혼인을 해서 아이가 다 커서 제금난 자식을 둔 사람들도, 처녀 총각들도 알아야겠다 싶어요.

 

 이웃 소중한 줄 알아야 사랑스러운 님이 소중한 줄 알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목숨)가 소중한 줄 알아야 사랑놀이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39.6.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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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 서해역사문고 7
김태웅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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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 글쓴이 : 김태웅
- 펴낸곳 : 서해문집(2006.6.20.)
- 책값 : 5900원


 우리가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서해문집’ 출판사에서는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여러 권 펴냈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뜸해서 더 안 내는구나 싶었는데, 모처럼 다시 몇 권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책, 우리 삶과 삶터와 사람들이 지내온 이야기를 담은 책은 우리 형편에서는 팔리기 힘들어서 더 못 내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펴낸 책을 보면,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우리는 조센진이 아니다》가 있습니다. 그 뒤로 뜸하다가, 이번에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우리 헌법의 탄생》, 《장례의 역사》를 한꺼번에 펴냅니다. 손바닥책으로 내는 만큼, 한 권씩 내기보다는 여러 권을 한꺼번에 내야 눈길을 받기 때문일 테지요.

 저는 이번에 새로 나온 책 가운데에서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를 먼저 골랐습니다. 다른 책들도 눈길이 가지만, 아직 손길까지는 안 갑니다.


.. 이 시기에는 회초리를 교육상 필요하다고 여겼으므로-오늘날과 달리- 아무 논란이 되지 않았다. 학습목표 역시 개인별로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설정되었고, 먼저 주어진 학습목표가 완전히 성취되어야 다음 목표가 주어졌다 ..  〈39쪽〉


 ‘서해역사문고’를 처음 읽을 때, 퍽 눈길이 쏠리는 이야깃감을 다루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이야기를 참 어렵게 풀어나가는구나, 좀더 깊숙하게 파고들 수는 없을까, 그냥 사실만 죽 늘어놓으면 무슨 재미로 책을 읽나, 지난날 역사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하고 딱히 이어지는 생각거리를 건네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를 읽으면서도 이런 느낌을 또렷이 받습니다.

 171쪽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을 49쪽까지 읽었으나 책겉에 적힌 “소학교 풍경, 조선 후기에서 3ㆍ1운동까지”에 걸맞는 이야기를 못 찾았습니다. 어쩌면 제 책읽기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러는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아직 1/4 조금 더 읽었을 뿐이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마음과 생각을 잡아채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글쓴이는 머리말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자그맣게 줄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그맣게 꾸민 책에서는 줄거리라든지 ‘글쓴이가 읽는이한테 들려주려는 생각’이 좀더 뚜렷하고도 환히 드러날 수 있어야지 싶으며, 사실 풀어놓기보다는 사실을 풀어내고 헤아려 내는 이야기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쪽수를 넉넉하게 둔 두꺼운 학술책으로 낸다면야 이런저런 사실관계를 줄줄줄 늘어놓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자그맣게 엮어내는 책이라면 더 꽉 짜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 훨씬 읽는이들 마음에도 와닿고 ‘지난날 우리네 교육마을과 지금 우리네 교육마을을 견주면서 우리가 느낄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이며 거듭나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 하는 대목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39.6.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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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w7707 2006-06-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적입니다. 좀더 서술자의 목소리가 확실히 들려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를 계몽의 수단이 아니라 같이 나누며 되돌아보는 자료로서 보는 것은 어떨지. 옛 것과 오늘 것을 대비함으로써 지나친 계몽으로 흐르기 보다는 그 시대의 일상과 역사적 조건을 같이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어린이책 이야기 -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어린이책 이야기
- 글쓴이 : 이오덕
- 펴낸곳 : 소년한길(2002.7.30)
- 책값 : 13000원


.. 쫄아들고 찔리고 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감옥살이다. 그까짓 대학교 졸업을 하면 뭣 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모두가 잘 어울려 같이 살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나? 이 훌륭한 말, 훌륭한 철학, 아이 입에서 나온 이 귀한 말을 모든 어머니들이 듣고 깨달아야 하겠다 ..  〈35쪽〉


 이오덕 선생님이 쓴 어린이문학 비평에는 ‘작품 소개’나 ‘작품 비평’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 사회, 문화, 삶터 이야기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면 좋을 모습, 우리 스스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비틀리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안타까운 모습 이야기가 함께 있습니다.


.. 좋은 말이란 것은 아이들도 잘 알 수 있는 말, 아이들의 말이란 뜻이다. 동화나 소년소설은 아이들의 말로 쓰는 문학이다 ..  〈100쪽〉


 문학은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평도 말로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말로 가르칩니다. 그래, 우리 삶에서 ‘말’이란 아주 중요해요. 무슨 일을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하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바로 이렇게 중요한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찬찬히 가려서 쓰려고도 않습니다. 너무 엉뚱하게, 잘못되게 쓰고 있습니다.


.. 아이들에게 주는 작품을 제대로 보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잘 알아야 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어야 하나 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없이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품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도 된다. 그리고, 문학작품에 관한 이론을 늘어놓은 글을 읽는 것은 참고가 될 수도 있지만, 어려운 말로 된 논리를 머리에 놓어 놓는 것은 대단히 해롭고 어리석은 일이다 ..  〈163∼164쪽〉


 어른문학 비평이든, 어린이문학 비평이든 누구나 해야 합니다. 문학을 읽은 사람이라면, 문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수만이? 전문비평가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야지요. 문학을 즐기는 사람 모두, 글을 읽을 수 있는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학도, 문학비평도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삶을 찬찬히 담는 아름다운 자리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곧, 문학을 빚어내는 사람은 자기가 쓰려는 작품을 왜 쓰고 누가 읽도록 쓰며 쓰는 자신은 얼마나 즐거운가를 깨닫고 느껴야 합니다. 문학을 읽히는 사람은 왜 읽히려 하고 무엇을 어떻게 누구한테 읽히려 하는지를 생각해야겠지요. 비평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덧붙여, 어른문학 비평이나 어린이문학 비평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루는 작품’만 다를 뿐이지, ‘문학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문학이 우리한테 어떤 값어치를 하고 어떤 즐거움을 선사하고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헤아리는 매무새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이리하여 어린이문학 비평을 알뜰하게 열어젖힌 이오덕 님 책은, 어린이문학 비평으로만이 아니라 어른문학을 헤아리는 데에도 길잡이가 됩니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문학을 즐기며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데에도 보탬이 됩니다. 꼭 책이란 것을 즐길 때뿐 아니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건 우리들 몸가짐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은가를 펼쳐 보여주는 고마운 말씀으로도 자리잡아요. (4339.4.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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