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이름 : 행운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김현우
 - 펴낸곳 : 눈빛(2004.11.11.)
 - 책값 : 9000원


 시골의사와 나누는 ‘행운’
 - 존 버거, 장 모르 함께 만든 《행운아》


 〈1〉 환자를 알아주어야 할 의사


.. 실제로 좌절한 사람에게 ‘좌절’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환자 자신의 목소리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알아줌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 〈82쪽〉


 영국 어느 시골에서 수수하게 의사로 살아가는 ‘사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이는 이 시골에 오직 하나 있는 의사이며, 마을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도 하고 좋은 말동무가 되기도 하며, 어려움을 풀어 주는 사람이기까지 합니다. 다만, 마을사람들은, 여태까지 만난 다른 의사와는 사뭇 다른 이 사샬한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아주 자기들과 하나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 이러한 개인적이고 매우 친밀한 알아줌은 신체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양쪽 모두에서 요구된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진찰의 기술이다. 진찰을 잘하는 의사는 드문데, 이는 그 의사에게 의학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관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실들 ― 단순히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역사적, 환경적인 것까지 ― 을 고려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의 진실, 다양한 양상을 암시할 수 있을 환자의 진실 대신에 특정한 양상만을 찾는다 .. 〈79쪽〉


 의사가 환자를 알아주는 일은 환자한테 ‘어떤 병이 어디에서 나서 얼만큼 번졌고, 어떻게 손을 쓰고 무슨 약을 쓰면 된다’ 하는 의학지식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오래지 않아 컴퓨터가 모두 알아서 해 줄는지 모릅니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기계와 같이 착착착 지식을 뽑아내고 처방을 내리는 일이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74쪽)”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는군요. 이런 마음과 느낌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우리 자신이나 식구나 동무나 둘레 사람들이 병원에 참 자주 가고 많이들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 ‘아주 좋다’고 하는 의사를 어렵지 않게 만나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그저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다니면 좋을 텐데, ‘좋은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이 ‘좋다’는 의사란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요. 또,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는 ‘좋다’는 의사를 만날 수 없는가요.


 〈2〉 좋다고 할 만한 의사

 제 나름대로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흰 가운을 입고 눈이 부신 빛을 쏘는 기계가 옆에 줄줄이 늘어선 병실에서만 만나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처럼 수술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일종의 움직이는 일인 병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식탁 위에서 충수염이나 탈장 수술을 한 적도 있고, 승합차에서 아기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61쪽)”었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 의사를 볼 수 있을까요.

 둘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자기가 다스린 환자의 식구나 동무들, 또는 자식들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마침내 그는 사람들이 변해 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삼 년 전에 홍역을 치료해 줬던 여자아이가 결혼을 해서는 첫 번째 출산을 위해 찾아오는가 하면, 한 번도 앓은 적이 없었던 남자가 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 버리는 일도 있었다(61쪽)”고 합니다.

 셋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환자가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자기 집에 있는듯(그래서 의사를 형이나 언니처럼 느끼듯) 마음 가벼이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이 꾸린 진찰실은 “병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응접실보다 더 깔끔했으며, 작은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널찍해 보였다. 그곳이 바로 환자들이 진찰을 받고, 처방과 진료를 받는 곳이(53쪽)”었다고 합니다.

 넷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크지 않은 병원에서 일하거나 크지 않은 차를 타거나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병원은 차고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다. 대기실과 두 개의 진찰실, 그리고 약제실이 있었다. 숲이 우거진 계곡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계곡의 다른 쪽에서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49쪽)”인 곳에서 일하고 있었답니다.

 다섯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라면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식구들 앞에서 돈이 얼마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느니, 장례비용이 얼마라느니, 얼마를 안 내면 주검을 내주지 않겠다느니 하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음처럼 움직입니다.


.. “참 별일이네요.” 노인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심장이 안 좋다가, 이제 폐렴까지… 별일이잖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말입니다.”
 노인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가 울 때처럼 매우 조용한 울음이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벌써 왕진 가방까지 싸 들었던 의사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딸이 차를 끓이는 동안, 두 남자는 집 뒤편에 있는 과수원과 올해 사과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딸이 차를 가지고 왔을 때는 노인의 류머티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31쪽〉


 환자인 여인은 늙은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이튿날 숨을 거두었고, 할아버지는 내내 발 구르기를 멈추지 않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더 사셨더라도 고통 속에 사셨을 겁니다. 훨씬 더 힘드셨을 거예요.”라고만 짧게 말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행운아’란?

 권정생 님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1996)》이라는 책에서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겠다는 어린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특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이란 생각이다. 그런 어린이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4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의사 되기란 참 어렵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의사’가 되기도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의학지식 쌓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비뚤어진 이기심을 품지 않도록 마음 다스리기에도 애써야 합니다.


.. 사샬의 특권에 대한 마을 사람이나 숲 사람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그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좋은 머리로…” 그때 사샬이 그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시골의사로 활동하기로 한 그의 선택까지도 일종의 특권을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공에 무관심할 수 있는 특권. 이제 그의 특권은 어느 정도는 그들의 특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동시에 그를 보호하려 든다. 마치 그의 선택이 은연중에는, 머리가 좋다는 것이 약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종종 사람들은 그를 매우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그를 의사로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 그가 좋은 의사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그런 의사가 보기 힘든 의사인지 아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의사인지는 모르고 있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은 그의 생각하는 방식을 자랑스러워하고,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하여금 자신들과 함께 머물도록 선택하게 해 준 그의 정신을 자랑스러워한다 .. 〈117쪽〉


 이리하여 시골의사 사샬은 ‘행운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샬에게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가 되어요. 외진 시골로 가서 성공에는 얽매이지 않고 의료 봉사를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일은 한편으로 ‘특권’이지만, 이런 일을 자기 몸을 낮추고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일은 특권이 아니라 ‘부지런히 애써서 얻은 열매’입니다. 사샬한테 특권만 있었다면 시골사람들은 그저 그런 의사 하나쯤으로 보고 조금은 고마워했겠지만, 자기들과 한 마을에서 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안타까운 합병증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사샬은 실수라고 생각(142쪽)”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가만히 돌아다보면, ‘의사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고 ‘합병증’이라느니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데까지 왔다’느니,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느니 하면서 온갖 핑계와 구실을 대며 책임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돌리는 직업인만 많아 보입니다.


.. 의사는 여러 직업들 중에서 가장 이상화한 직업이지만, 그것은 추상적으로 이상화했을 뿐이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몇몇 젊은이들은 초기에 그 이상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많은 의사들이 환상을 깨고 냉소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그러한 이상이 엷어졌을 때, 자신이 다루는 환자의 실제 삶의 가치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격이 둔하거나 비인간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알아볼 능력이 없는 사회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 〈177쪽〉


 〈4〉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

 시골의사 사샬 이야기를 옆에서 살피면서 《행운아》란 책을 남긴 존 버거는 우리한테 묻습니다. “사샬은 25년 동안 의료 활동을 펼쳐 왔다. 지금까지의 치료건수는 10만 건이 넘을 것이 분명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기록처럼 보인다. 그가 1만 건만 다루었다고 해서 ‘덜 괜찮은’ 기록일까? 그가 머리만 좋고 부주의한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한 번의 사례를, 혹은 열 번, 백 번의 사례를 부주의하게 다루었다는 이유로 그의 기록에서 그만큼을 제외해야만 하는가? 반대로 머리가 좋고 대단히 헌신적인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기록에 얼마를 더해 줘야 하는가? 그래서 그가 얻게 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175쪽)” 하고요.

 “고통의 치료가 가지는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구해 낸 생명들이 가지는 가치는?”, “대단히 어렵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 주는 것은 위대한 작품을 그리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까?”, “의사는 전문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이야기도 묻습니다. 자, 이런 물음을 들은 우리들은 무어라고 대꾸해야 좋을까요. 아니, 이런 물음을 들어 보기나 했을까요,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요, 참다운 의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는지, 의사를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참다운 사람, 참다운 일, 올바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이나 해 보고 있기나 할까요?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13쪽〉


 생명을 얻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은 누구한테나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신이 축복받은 일과 행운을 얻은 일을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틀림없는 행운아이고, 사샬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입니다. 이런 사샬을 취재하고 만난 존 버거와 장 모르도 행운아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엮은 책을 읽는 우리들도 행운아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우리 스스로 느껴야 행운이지,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우리가 살갗으로 느껴야 비로소 아픔, 기쁨, 슬픔, 즐거움이 됩니다.

 《행운아》라는 책은 언뜻 보면 남다르다고 할 만하게 살아가는 시골의사 한 사람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책 한 권 읽으며 ‘보람차게 살아간 한 사람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시골’과 ‘의사’를 넘어서서 ‘한 사람이 고즈넉하게 걷는 길’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책 《행운아》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거나 살필 수 있고, 자기 삶을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 나름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 저마다 소중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 저마다 자기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삶’과 이야기를 느끼면서. (4338.6.13.달.처음 씀/4340.3.9.고쳐 씀.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손수건 -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보내는 이용남의 포토에세이
이용남 지음 / 민중의소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2004년에 처음 쓴 글인데, 다시 읽어 보니 너무 섣불리 쓴 대목이 많아서 크게 고쳐서 아주 새로 썼습니다. 이용남 씨가 음독자살을 꾀한 날 부랴부랴 쓰느라 어설픈 데가 많을 수밖에 없겠더군요. 모쪼록, 이 소중한 사진이야기책이 제대로 알려지고 읽히고 가슴에 새겨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겉똑똑이 아닌 속똑똑이로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이용남 씨는 2004년 5월 25일에 효순이와 미선이 추모비 앞에서 음독자살을 하려 했으나, 다행스레 목숨이 끊어지지는 않고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

 - 책이름 : 어머니의 손수건
 - 사진+글 : 이용남
 - 펴낸곳 : 민중의소리(2003.3.15)
 - 책값 : 35000원

 미선, 효순을 그리며 부른 슬픈 사랑노래
- 이용남 씨가 담은 《어머니의 손수건》


 〈1〉 이용남 아저씨, 살아나셔야 합니다


 슬프다. 안타깝다. 괴롭다. 끔찍하다. 씁쓸하다. 눈물이 난다. 창피하다. 가슴이 탄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넘어온다……. 이용남 씨가 파주에서 살면서 담아낸 ‘미군부대 만행과 이 땅 보통사람 역사와 삶’ 이야기인 《어머니의 손수건》(민중의소리,2003)이라는 사진책을 본 제 느낌입니다. 흐지부지되고 있는 ‘소파 개정’ 문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이 없는 미군범죄 사실을 밝히는 어려움과 이런 데에는 눈길도 안 두는 우리들 모습, 여기에다가 이 모든 현실에 마음아파 하고 안타까워 하다가 끝내 자기 목숨까지 놓으려고 한 이용남 씨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느낌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제 눈가에 눈물이 핑 돕니다. 왜 이럴까요. 왜 이렇게 힘들까요. 왜 이렇게 촛불 하나도 함께 들지 못하고, 왜 이렇게도 ‘뚜렷하게 보이는 주한미군 범죄’를 범죄라고 말하지 못할까요? 지난날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지 못한 슬픔을 안고 살았다는데, 우리는 ‘주한미군 범죄를 범죄라 하지 못하는 아픔’을 안고 사는 게 아니냐 싶습니다.

 모쪼록 이용남 씨가 건강을 되찾길 바랍니다. 지금은 가슴아파하며 쓰러졌어도 다시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서 더 꿋꿋하게, 더 힘차게, 더 가멸차게, 더욱 입술 질끈 깨물며 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들은 우리가 이렇게 쓰러지기를 바랄 테니까요. 저들은 이런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에 지쳐서 우리 스스로 나가떨어지기를 바랄 테니까요. 저들은 바로 우리들끼리 이렇게 아파하고 괴로워하다가 농약 먹고 죽기를 바랄 테니까요. 살아남아서 더욱더 사진기에 힘을 싣고, 손가락에 힘을 싣고, 두 눈 부릅뜨고 이 세상을 똑바로 보고, 사진으로 올곧게 담아내야 합니다.


 〈2〉 《어머니의 손수건》이라는 책


 저는 아직 《어머니의 손수건》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책을 보는 동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너무 아파서 빨리 읽을 수 없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보면서, 참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어쩜 이런 일이 고쳐지지 않고, 우리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을까,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끼리 서로 생채기를 보듬지 못하는가…… 하고 느낍니다. 다 읽으려면 1/4을 더 읽어야 하지만, 이용남 씨 슬픈 소식을 들은 뒤, 여태껏 읽은 느낌만으로라도 서둘러 알려야겠다, 이 책을 사람들이 많이많이 사서 보고, 미선이와 효순이 일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이 저지른 온갖 범죄와 만행을 제대로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 촛불이 광화문 네거리에 멈춰 섰습니다. 재벌 수구언론으로 불리는 신문사의 건물이 양쪽에서 내려다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월드컵 때문에 여중생 사건이 그냥 묻힐 뻔했다고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월드컵이 없었어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대한민국 언론이 해 온 일을 보면 알 수 있지요 ..  〈171쪽〉


 월드컵 축구 바람이 한창이던 때, 경기도 어느 시골길에서 중학생 둘이 장갑차에 치여서 죽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냥 친 게 아니라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주검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었다지요? 시골길이라 사람이 안 보니 그렇게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요. 자취를 없애 버리듯 짓밟으면 누구인지 모를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용남 씨 말마따나 두 여중생이 죽은 일은 ‘월드컵이 아니었어도’ 보도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월드컵에 묻혔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이 제대로 안 다루고 지나쳤는데, 그렇게 크게 불거져 나온 모습에 깜짝 놀라며 내뱉는 핑계입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에 끄집어낸 핑계입니다. 하긴, 기자들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기사로 나왔어도 우리들 가운데 제대로 눈길을 둘 사람이, 마음쓰며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기자나 우리들 보통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힘겹고 바쁘다는 핑계를 날마다 내뱉으면서 ‘아유, 그런 데까지 어떻게 마음써요?’ 하고 둘러댑니다. 꽁무니를 뺍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연속극 볼 시간은 잘만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부를 시간은 잘만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가 다 끝난 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던 즈음입니다. 두 가녀린 중학생을 기리는 촛불집회가 슬금슬금 일어납디다. 2002년 12월 7일 촛불시위는 고빗사위였습니다. 이 고빗사위에,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때, 대통령후보로 나온 세 사람이 촛불시위 현장에 왔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참으로 두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자 왔을까요? 아니면, 표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왔을까요? 이날 촛불시위를 하는 광화문에 들어오려는 대통령후보 세 사람(노무현, 이회창, 권영길)은 끝내 마이크를 잡는 ‘영광’이라든지 무대 앞쪽에 다가가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네들 ‘선거 홍보 차’가 못 들어오게 막았으니까요. 적어도 월드컵이 끝난 뒤에 한 번이라도 코빼기를 비쳤다면 모르되, 뻔히 다 보이는 꾐수를 썼으니까요.

 불평등으로 이루어진 한미 여러 조약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더 얄궂은 불평등 조항을 담은 새로운 조약이 다시 맺어질 판입니다. 애꿎은 목숨을 죽여 버린 살인자는 어떠한 조치도 제재도 벌도 안 받은 채 고이 잘살고 있습니다. 외려 그 병사가 피해자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라크에서 학대받은 포로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어쩌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핑계를 댑디다. 하지만 따져 보셔요. 지구 곳곳 어디든, 미국 발길이 닿는 어느 곳이든, 이렇게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와 학대를 받으면서 죽거나 다치지 않는지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아이티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3〉 왜 문제인가?


.. 주민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며 탱크 앞에서 연좌했다. 윌시 참모는 다시 주민들에게 “우리 병사들이 훈련에 지쳐 빨리 부대에 돌아가 목욕을 하고 잠을 자야 한다”며 비켜 줄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의 감정이 폭발했다. “뭐라구? 피곤해서 목욕을 해야 한다고…” ..  〈22쪽〉


 주한미군은 말 그대로 고생입니다. 고향을 멀리에 두고 말도 물도 낯선 나라에서 훈련을 받으며 사니까요. 게다가 ‘훈련 좀 하겠다’는 자기들이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게 가로막는 ‘무식한(?)’ 주민까지 있습니다. 미군들이 보기에 참말 골때리겠지요. 은혜도 모르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라크에서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재건’을 시켜주겠다는데, 사람들이 제대로 안 알아준다며 투덜투덜대고 있겠지요?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미군은 한국땅에서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애먹으면서, 욕먹으면서 한국땅에 있으려 합니까. 구태여 먼 나라에 와서 고생할 것 없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됩니다. 자기 나라에서 즐겁게(?) 군사훈련을 하고, 자기 나라 땅에서 즐겁게(?) 사격장과 폭격장을 만들어서 미사일과 총알을 쏘아대면 됩니다. 굳이 이라크에 있을 까닭도 없습니다. 제 나라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루도록 힘쓰면 됩니다.


.. 미2사단 민사참모 윌시 소령이 냉랭한 표정으로 불만을 털어놨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이곳에 왔다. 훈련을 가로막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19쪽〉


 문제 고갱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국땅으로 왔다는 미군이 참으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사(?)다운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느냐입니다. ‘평화로운 군사훈련이나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요?

 왜 군대가 있어야 하고, 왜 무기를 만들어야 할까요. 왜 군인은 ‘민간인’을 그토록 괴롭힐까요. 민간인들이 이렇게 괴로움에 시달리고 들볶여야 한다면, 민간인들이 누려야 할 ‘평화’란 무엇일까요. 아니 처음부터 평화란 아예 없는 것, 누릴 수 없는 것 아니었을는지요.


.. 두 여중생의 죽음은 우연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이었다. 여중생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탱크 피해를 참다못한 파주 주민들이 탱크를 몸으로 가로막자 “민간인은 깔아 죽여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 미군 장교의 망언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7쪽〉


 이용남 씨는 《어머니의 손수건》이라는 책으로 우리들한테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가장 큰 발판은 ‘미군 장갑차가 짓밟아 죽인 두 여중생’이지만, 정작 큰 문제, 말썽거리, 아픔과 슬픔은 ‘전쟁무기에 길들어 버린 우리들’, ‘전쟁을 몰아내고 평화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데까지 마음을 안 두고 있는 우리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이야기를 건넵니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한국땅에서 주한미군 범죄에 시달렸나요. 얼마나 넓은 우리 삶터가 주한미군 군사훈련으로 더럽혀지고 망가지고 무너졌는가요. 한국땅에서도 이러할진대, 나라밖 다른 곳에서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날까요. 이라크에서 일으킨 전쟁 소식만 들어도 그렇잖습니까. 이번 전쟁으로 이라크는 역사와 문화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유적지도 무너지고 박물관도 부서지고 학교며 우체국이며 발전소며 주유소며 약국이며 자전거가게며 구멍가게며, 모든 곳이 싸그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미군이 말하는 그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4〉 미선이와 효순이뿐일까


.. 엄마의 손에는 손수건이 꼭 쥐여 있습니다. 딸이 세상을 떠난후 손수건은 늘 엄마와 함께 있습니다. 손수건에는 딸의 내음이 흠뻑 배어 있습니다. 딸의 서랍게 곱게 접혀 있던 손수건이 엄마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  〈57쪽〉


 효순이 어머님은, 또 미선이 어머님은 사진에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실 테지요. 죽은 자기들 딸내미 때문에 눈물을 흘리겠지만, 자기들 딸내미 말고도 죽은 아이들 때문에, 또 앞으로도 죽을 수밖에 없을 또다른 아이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또 손수건으로 그 눈물을 훔쳐낼 테지요.

 당신들 딸내미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을 보고, 걸상을 보고, 물건을 보고, 자수를 보고, 사진을 보면 눈물만 나고 한숨만 나온다는 어머님. 그래서 걸상을 태우기도 하고, 딸내미들이 쓰던 물건을 버려 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가슴에 사무친 아픔까지 사라질까요.


.. 논 한가운데 경고 팻말이 박혀 있다. ‘대포 및 소총 사격 지역’이라는 내용이다. 이 스티커를 벗겨내면 ‘미국 정부 재산’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 땅은 등기까지 되어 있는 개인 땅이다. 그런데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준 땅이라며 ‘미국 정부 재산’이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재산세는 농민이 내고 사용은 미군이 하는 스토리사격장의 풍경이다. 농민이 수없이 항의를 해 보지만 그럴 때마다 ‘주의’자가 하나 붙는다. 이른바 반미주의자. 끽소리 못하고 이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  〈69쪽〉


 《어머니의 손수건》은 미선이와 효순이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미선이와 효순이보다 더 끔찍한 아픔과 생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더 끔찍한 아픔과 생채기를 안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두 팔과 다리를 모두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한 해 만에 죽은 이한테 미군은 달랑 60만 원 던져주며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지요?

 주한미군 사격장은 쉴새없이 ‘중금속 오염 폐수’를 쏟아붓습니다.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쓰는 미군이건만, 중금속 오염 폐수는 그냥 논과 밭과 도랑으로 흘려보냅니다. 가을에 벼를 베어 길가에 널어 두면, 미군 차량과 장갑차와 탱크는 ‘보란 듯이’ 그 널어 놓은 벼를 짓밟고 뭉개 놓은 채 지나갑니다. 길이 좁아서 밟는 게 아니라,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와서 ‘착실하게 밟아 주고’ 가던 길을 다시 간답니다. 거짓말 같다고요? 그래, 거짓말 같으면 파주에 가 보셔요. 파주에 가서 그곳 농사꾼들을 붙잡고 물어 보셔요. 파주 농사꾼들 말이 믿기지 않으면 주한미군이 군사훈련을 할 때 몰래 지켜보셔요.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셔요.


..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미는 이념적 반미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짓밟는 주한미군의 횡포에 대한 저항, 즉 ‘민중적 반미’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71쪽〉


 〈5〉 할 일 많은 이용남 씨와 우리들


 이용남 씨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주한미군 범죄 끝내기와 사과 받기와 배상 받기와 재발 방지’는 아닙니다. 혼자서는 달걀로 바위 치기입니다. 하지만 이용남 씨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 어깨동무하고 일어선다면 달걀로도 바위를 깰 수 있습니다. 깨고 말고요.


.. 주한미군은 25일 이렇게 말했다.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방관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여중생이 누려야 할 삶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고도 주한미군은 오히려 자신들만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130쪽〉


 우리는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참말로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반딧불(촛불집회 하는 사람들)이 버거킹(교보문고 앞 2층에 있는)을 향해 소리쳤다. 나와라! 버거킹 창 옆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밖을 내다보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안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우리 한번 불러 보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당신들이 있기에 효순이, 미선이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  〈145쪽〉


 주한미군 범죄, 한미주둔군지위협정(한미SOFA),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 여기에 수많은 조약들. 이 모두는 우리들이 풀어나갈 일입니다. 좋은 쪽으로든 궂은 쪽으로든 우리들이 풀어나갈 일입니다. 이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이 땅, 한국땅에 온갖 무기를 가져다 놓고 우리를 윽박지르는 미군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둘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둘레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야 합니다. 책이란,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주는 길잡이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어머니의 손수건》은 주한미군이 저지르는 범죄가 무엇인지, ‘소파’라고 하는 조약이 어떤 말썽거리를 담고 있는지 느끼도록 하고 알도록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이런 책을 손수 찾아서 읽지 않는다면 말짱 헛것, 도루묵입니다.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주한미군 범죄로 몸서리를 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소파 협정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효순이와 미선이 아픔을 느끼겠어요. 촛불 하나 함께 든다고 다 풀어질 일일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면,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우리들 소중한 딸내미와 아들내미가 미군 장갑차에 떡이 되듯 짓밟혀 죽고, 미군 폭격기에 산산조각 부서져 죽겠지요. (2004.5.25.처음 씀/2007.2.12.고쳐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2005년 5월, 전민조 선생 전시회를 보고 난 뒤 쓴 글입니다. 이래저래 검색을 해 보다가, 이 좋은 사진책 하나가 제대로 빛을 못 받고 있구나 싶어서, 예전에 써 두었던 소개글을 살짝 붙여 봅니다.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고, 우리 삶터를 살가이 돌아보는 눈길을 쓰다듬어 주는 사진이 묻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간직한 '섬' 사진
- 전민조 사진책 <섬>을 보다



<1> 고무신을 신은 사람들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서해안 백령도, 홍도, 소흑산도, 성남도, 진목도, 대마도, 소마도, 라매도, 조도, 관매도, 여서도, 우도, 연화도, 연대도, 수우도, 오륙도, 울릉도, 독도… 들을 두루 다닌 전민조 님 사진책이 나오고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에 있는 전시장에서 조촐한 강연자리도 있었습니다.

사진책은 진작에 눈빛 출판사 인터넷 누리집에서 소식을 들었고, 성균관대 앞 <풀무질>에서 책방 아저씨와 함께 구경했지만, 아직 사 놓지 않았습니다. 전민조 님 강연자리에서 말씀을 들은 뒤, 그날 그 자리에서 사면 책에 서명을 해 준다고 해서요.

사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맨 처음으로 우리를 반기는 사진은 어린 계집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풀로 엮은 자리에 눕혀 놓고 재우는 모습입니다. 동생은 궁둥이가 트인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풀자리(짚이 귀하고 가난한 집에서는 들과 산에서 나는 풀을 베어다가 자리를 엮었다고 합니다) 옆에는 누나가 신는 듯한 검정 고무신과 어린 동생이 신는 듯한 꽃신이 흩어져 있습니다. 둘이 있는 풀자리 앞 돌담 위에는 까만 돼지가 둘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벽에 차례차례 걸린 사진을 봅니다. 하나같이 수수한 옷차림에 얼굴 까맣고 눈 맑은 사람들 모습입니다. 섬사람들 사진인 터라 사진이 찍힌 곳도 바다나 바닷가, 갯벌, 배 위나 배 둘레입니다. 섬에서는 텃밭 하나도 소중하기에 손바닥 만한 밭 하나도 일구려고 힘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렇게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을 보니, 거의 다 고무신을 신습니다. 맨발인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은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좀더 거슬러 올라간 옛날엔 고무신도 드물고 짚신이 훨씬 많았겠죠?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고무신을 신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일할 때만 신었는데 이제는 서울로 갈 때도 고무신을 신습니다. 한동안 고무신과 제 발이 맞지 않아 뒤꿈치가 긁히고 살갗이 벗겨졌지만, 이제는 하루 내내 고무신만 신고 다녀도 발이 긁히거나 아프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어느새 고무신과 제 발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야윈 소를 먹이는 아이


사진책 <섬> 겉을 수놓은 사진은 바다가 보이는 섬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 아이 모습입니다. 등에는 자기 키 만한 지게를 진 아이도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소는 눈이 퀭해 보이는데 등이 칼날처럼 곧습니다. 갈비뼈도 보입니다. 배가 홀쭉하군요. 섬사람들도 배불리(또는 마음껏 많이) 먹기 어려웠을 테니, 이 섬사람들이 기르던 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고 보니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넘겨보았을 때 '살이 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모두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합니다. 먹을거리가 많지는 않았어도 서로 나누며 살았기에 이렇게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해 보일까요? 다시 사진책을 넘기며 옷차림을 주욱 살피니 입성도 비슷합니다. 옷도 신도 몸도 비슷한 이들은 마찬가지로 비슷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방에서 살아갑니다.

어린 계집아이가 홀로 툇마루에서 밥을 먹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숟가락도 한 손으로 꼬옥 쥐지 못하는 어린 아이인데, 살이 통통합니다. 그렇다고 살이 찐 몸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살짝 통통한 편입니다. 보리밥에 물만 반찬으로 먹는 아이인데도 몸이 이러하군요. 먹는 밥은 넉넉하지 못해도, 넉넉한 바다와 공기와 물과 바닷것이 있기 때문일까요?

고깃배가 가득가득 넘쳐서 돌아왔습니다. 어른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잡은 고기들을 부려 놓습니다. 그 옆에 발가벗은 사내아이도 일손을 거듭니다. 이어지는 사진에서도 발가벗은 아이가 나옵니다. 반바지만 입은 아이하고 갯벌에서 놀다가 사진 한 장 찍혔습니다. 반은 발가벗은 채로 엄마가 일하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보입니다. 어머니처럼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싶은지 텅 빈 바소쿠리를 이고 엄마 앞에서 길을 이끕니다. 그 뒤로는 엄마가 있고, 그 뒤로는 어린 누나가 머리에 짐을 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뭍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섬 안에서 맴돌지만, 이 섬에서도 저희들끼리 즐겁고 놀고 즐겁게 어울리며 즐겁게 일을 합니다(그렇지만 늘 '즐겁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바쁠 때면 그지없이 고단하고 고달픈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밥값을 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자기 몸에 맞는 지게를 지고 땔감이고 풀베기고 무엇이고 해야 할 테니까요). 요새로 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한 나이에도 어른과 함께 일을 하고,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 삶터를 오롯이 들여다보기


전민조 님이 담은 '섬 사진'에 드러나는 모습은 섬사람들 삶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삶입니다. 뭍이건 섬이건 가릴 것 없이 보통으로 우리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보통으로 살아온 사람은 우리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남기지 못합니다. 남길 틈도 없고, 남길 만한 장비(사진기, 필름 따위)도 없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처럼 사진기자가 되어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영영 잃어버리거나 잊혀진 모습이 되었을 '우리들 삶터 사진'이에요.

사진책 <섬>은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빛이 바래는 한편, 도시사람들 구경거리와 놀이터로 무너져 버린 섬 모습을 아직은 깨끗한 채로 있을 때를 비추어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고이 남은 몇 안 되는 소중한 발자취이자 생활문화 역사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섬사람들 삶으로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대목. 전시회 사진과 사진책 사진에는 미처 들어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섬사람들 살림살이, 집안 구석구석,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고된 일을 하는 모습이 좀더 낱낱이 드러나지 못했다는 대목이 아쉽습니다. 일하는 어른들 모습도 좀 멀찍이 떨어져서 살펴본 구경꾼 눈이라는 대목도 보입니다.

그러나 전민조 님을 다른 구경꾼하고 똑같이 여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잠깐 들렀다 가지만 앞으로 다시 찾아올 뭍손님입니다. 섬에서 섬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아니지만, 살갑게 찾아와 부드럽게 손을 맞잡고 한 밥상에서 보리밥을 나눠 먹는 고맙고 반가운 뭍손님입니다. 섬에서만 사느라 뭍 소식을 모르고 뭍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뭍 소식과 뭍 세상을 차근차근 일러 주는 이야깃손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섬 소식과 섬 세상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 주는 사랑손님이 되기도 할 테고요.


.. 수평선을 바라보며 염소와 송아지를 모는 귀여운 아이들, 물동
이와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소녀들과 아낙네들의 표정은 너
무나 평화로웠다 .. <전민조 님 말>



강연자리에서 전민조 님은 "어린이를 천사로 봤어요. 꾸밈이 없어요. 그런데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은 꾸밈이 많아요. 각색이 되고 조작이 되고… 어린이들이 어른한테 표정을 꾸미고 해서 만들 수 없잖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섬사람들 얼굴에서 느낀 평화로움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지 싶습니다. 남 앞에서 꾸미거나 가릴 것이 없이 착하게 사는 모습, 서로 살가운 이웃으로 여기며 길손한테도 밥상 하나 차려 주는 마음씀, 이런 평화로움이겠지요.

그런데 1970년대 첫머리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두루 평화로움을 잃었습니다. 이 '평화로움을 잃음'은 바로 오래된 봉건통치 사회를 거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몇몇 독재정권까지 이어오는 동안 짓밟히고 짓눌리고 시달리느라 마음이 다치고 곪고 병들어 버린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생겨 버린 사회이자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세상이 팍팍하고 사람들 마음씀도 거칠어질 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민조 님이 찾아다닌 섬에서 만난 사람들한테서 느낀 수수함과 살가움은 사진마다 고이 남고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지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시골집에 있을 때는 쉬를 할 때 꼭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가서 산기슭이나 감나무 밑이나 밭둑을 찾습니다. 뒷간에서는 똥만 누고 오줌은 곧바로 이 산 저 들에 돌려 줍니다. 예부터 ‘감나무 밑에 개를 매어 놓으면 감이 맛있게 잘 익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자리를 바꾸어 가며 오줌을 누니까 감나무가 썩 잘 자라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어제부터 그믐이지 싶습니다. 달력을 봅니다. 맞네요. 그믐이 되겠네요. 밤에 쉬하러 밖에 나오면 캄캄 어두움이더니만. 제가 사는 바로 옆집은 불이 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더 깊은 산속에 하나, 마을로도 한참 떨어진 곳에 또 하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깊은 밤에 불을 다 끄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어둠뿐입니다. 둘레에 불이 하나도 없으니 밤하늘이 아주 잘 보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예부터 추운 날은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했는데, 별이 막 떨어질 듯이 보인다고 했는데, 안경을 안 써서 잘은 모르겠으나 참말 별이 잘 보입니다. 어제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아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사냥철이 끝나가는지, 사냥꾼들 총부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멧새가 밤에 조용조용 몰래몰래 우는가 봅니다.


.. 사진이란 어떤 예술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 복합적인 인생과 자연을 대상으로 거기에서 깨달은 내 생각, 내 느낌을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 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사진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사진을 해야 한다 ..  〈62∼63쪽〉


 고요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일이란 큰 고마움이자 아름다움이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제 스스로 몸을 놀려야 살아갈 수 있고, 사람 아닌 온갖 소리와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람 목소리와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런 소리와 움직임에서 멀찍이 벗어나 나한테서만 나는 소리와 움직임으로, 또 사람 아닌 소리와 움직임을 부대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일는지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데, 자연을 못 느끼고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멀리하는 요즘 아닙니까. 더욱이, 이제는 태어나기를 시멘트집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시멘트집에서 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흙하고는 동떨어졌달까요. 인연이 없달까요. 흙이 뭔 줄도 모른달까요.


.. 예술은 황무지에 길을 내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 이미 닦여진 길은 그냥 걸어가기에는 편하지만, 그것은 남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예술가란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149쪽〉


 지지난주부터는 물이 아예 안 나옵니다. 그나마 그사이 날이 풀리며 두 번 녹은 적 있는데, 그 뒤로는 안 녹네요. 이제부터 참 겨울이구나 싶습니다. 뭐, 물이 안 나와도 그동안 미리 받아 둔 물이 있으니 밥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씻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산골짜기에서는 씻지 않아도 때 탈 일이 없으니까, 몸 더러워질 일이 없으니까, 안 씻는다고 몸에 나쁠 일이 없습니다. 외려 씻는 일이 도움이 안 된달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구나 하고, 창밖이 밝아지며 날이 새면 아침이 오는구나 합니다. 아침마다 박새와 콩새가 조잘조잘 지저귀며 창가에까지 날갯짓을 합니다. 사람이 있으니 먹잇감이 둘레에 있을까 싶어 오는구나 싶은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 새들한테 줄 만한 먹이가 없군요.

 제 사진기는 헌책방에서만 움직입니다. 시골집에 있을 때는 가방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가끔, 제 살림집 둘레라든지 책상맡이라든지 사진으로 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 디지털사진을 찍곤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며 밤참으로 먹던 날고구마를 한 장 찍었습니다. 필름값이 두려운 저로서는 가볍게 즐기고픈 사진은 디지털을 씁니다. 필름값이 두렵기는 하지만 헌책방 삶터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기에, 헌책방을 찍을 때만큼은 필름을 씁니다. 거의 아낌없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가꾸며 즐길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저는 저대로 사람 발길 드문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자전거를 타고 헌책방 나들이를 떠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이라면 이런 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겠지요. 제가 찍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저부터 제 삶이 반가워야 할 테고 즐거워 할 테며, 기쁜 마음으로 가꾸어야지 싶어요. 뭐, 예술이 안 되더라도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제 목소리를, 제 움직임을, 제 마음을, 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테고요. (4340.1.1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전 풍경
김기찬 지음 / 눈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진책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


- 책이름 : 역전 풍경(서울역 부근 1968~1983)
- 사진찍은이 : 김기찬
- 펴낸곳 : 눈빛(2002.10.1.)
- 책값 : 2만 원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처음 본 때는 2002년. 네 해가 지난 지금, 이 사진책을 다시 펼쳐 봅니다. 성냥팔이 아줌마, 빗장수 할아버지, 호떡장수 아저씨, 생선장수 할머니가 보입니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한 질감이 새삼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좀 떡이 되거나 허옇게 날아간 곳이 보이네요. 밝고 어두운 곳이 아주 잘 맞은 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사진재주에서는 어느 만큼 모자랄 수 있지만, 사진에 담는 마음과 손길이 살갑거든요.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사람들과 서울역 둘레 삶터가 애틋하거든요. 멀거니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좋군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좋은 사진’만 몰래몰래 찍으려는 손놀림이 보이지 않아 반갑네요. 네 해 앞서 이 사진책을 사 두기 참 잘했습니다. 그때, 이 사진책을 죽 둘러보고 짤막하게 쓴 글이 있는데, 살을 붙이고 다듬어서 새로 이 사진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을 보았습니다. 책값 이만 원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지만(2002년에는) 책방에서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구경하는 동안, 이만 원이 아닌 삼만 원이었어도 사서 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산 뒤 혼자서 집에만 놓고 보지 않고, 틈틈이 갖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만나는 동무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장님에게도 보여드리며 좋은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가방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좋은 사진을 두루 구경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보람이 훨씬 큽니다.


.. 처음 사진에 입문할 즈음에 나의 사진 주제는 행상이었다. 처음부터 행상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길에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풋과일이 잔뜩 담겨진 함지박을 인 아낙네와 어떤 노인은 어깨에 싸리비를 메고 또 어떤 이는 열쇠꾸러미를 가슴에 앞치마 두르듯 두르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한 권 책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주말이면 뛰쳐나갔던 곳이 바로 서울역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전엔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것은 변함없지만 한두 시간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면 30여 년 전 내가 사진기를 메고 처음 드나들던 역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  〈책끝에 붙인 말〉


 〈교보문고〉는 웬만하면 안 갑니다만, 이곳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들여다보는 곳은 한두 군데 있고, 이 가운데 한 곳이 ‘사진’ 칸입니다. 일 때문에 어린이책 칸도 꼼꼼이 살펴보지만, 책값이 비싸서 좀처럼 사보기 어려운 사진책 칸은 부지런히 둘러봅니다. 짧은 동안에 더 많은 사진책을 구경하려고 애씁니다. 삼만 원짜리 사진책을 그날 하루에 열 권을 본다면 삼십만 원이 굳은 셈이고 스무 권을 보면 육십만 원이 굳은 셈이거든요. 사진책은 한 번만 보고 그치는 일이 없습니다. 으레 백 번 이백 번쯤은 다시 보고 또 봐요. 그렇게 보며 이 사진이 어떻게 나왔고, 사진에 나오는 모습은 무얼 담았는지, 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무얼 생각했는가를 가만가만 짚습니다.

 사진 한 장이 대단해서 그렇게 살피지는 않습니다. 글 한 줄이 대단하지 않듯 사진 한 장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게 있다면 바로 우리들 삶이에요. 그러니까, ‘대단한 우리들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우리들 삶이 지닌 궂거나 좋은 모습을 가리거나 속이거나 감추거나 비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우리한테 새로운 기운과 힘을 준다면, 참으로 훌륭한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찾아봅니다. 아무것 아니고 그냥 한 번 쓱 보고 말면 되는 사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 사진 한 장을 몇 분쯤 그대로 들여다보셔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 그리고 온갖 푸나무와 짐승과 자연과 하늘과 땅이 가슴으로 살며시 파고듭니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낯빛이 없는 사람, 찌푸린 사람, …… 온갖 모습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지금은 어떠하며 앞으로는 어렇게 달라지고 바뀌는가도 찬찬히 짚어 봅니다.


 - 2 -

 지난주에 〈교보문고〉를 찾아갔을 때, 새로 막 나와서 책꽂이 한쪽에 곱게 자리하고 있는 《역전 풍경》(눈빛,2002)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옆에 있는 보기책(견본)을 펼칩니다.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넘깁니다.

 1969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사진쟁이 한 사람이 바라보고 느끼고 부대끼며 담아낸 모습이 펼쳐집니다. 서울역으로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어딘가에서 와서 서울역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서울역 둘레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을 붙들고 장사를 하는 사람, 1980년대까지 있던 ‘냉차’를 파는 아지매와 그 아지매를 따라 장사 나와서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는 계집애와 사내애. 비 오는 날 비닐우산을 팔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서울역 앞에 멀거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가 비를 긋는 꼬마. 치마저고리를 벗어서 우산처럼 걸친 할머니, 바지저고리가 젖을까 봐 위로 잔뜩 치켜올리고 걷는 할아버지, 학교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꾹 찔러놓고 성큼성큼 걷는 학생,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손수레를 밀며 장사 나오는 아줌마, 추운 겨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길손이 껌 한 통 사 주길 기다리는 할머니, 짐자전거에 두 길이 넘는 많은 짐을 묶느라 애쓰는 일꾼들, …….

 내 모습이고 네 모습이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가 간직했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흔한 모습이고 흔했던 모습입니다. 이 사진에 담긴 모습은 1960∼1980년대 모습이지만, 지금은 또 지금대로 2000년대 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모습을 그냥 흘려넘길 뿐, 지나쳐갈 뿐, 붙잡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우리들이라서, 지금 우리 모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들이라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도 마음을 쓰지 않고, 우리 정치나 문화나 경제가 어떻게 뒤집어져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정작 소중한 삶은,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삶은 우리 곁에 있는데, 아니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말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모습이며, 이런 우리 삶이 차곡차곡 사진에 담겨서 좋은 이야기를 건네거나 나누기 마련인데.

 사진책 《역전 풍경》에 나오는 모습은 아스라한 옛일일까요. 앞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습일까요. 또, 이런 모습이 옛날 모습이면 어떻고,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면 어떨까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우리 삶이요,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 삶터며, 언제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바삐 움직이는 우리 세상이잖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해묵은 모습이라 할 서울역 둘레 모습, 서울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책 하나는 무엇일까요.


 - 3 -

 고속철도(KTX)를 놓는다며 서울역 너른터를 없앴습니다. 용산역 너른터도 없앴습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삐쩍 마른 나무를 돈 주고 사다 심었습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용산역 너른터에서는 풍물마당이 펼쳐지며 사람들이 북적이며 막걸리잔을 부딪히기도 했는데, 이런 놀이판마저 사라졌습니다. 틈틈이 노동자 집회가 있던 역앞인데, 수천 수만에 이르는 노동자 물결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높다랗고 커다란 전자상가 새 건물이 들어섰고, 불빛 번득이는 성탄절 장식이 가득합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너른터를 없앤 까닭은, 집회를 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꿍꿍이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까닭이야 어찌 되었든, 서울역이고 용산역이고 청량리역이고 하루하루 너른터가 줄거나 사라지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안 둡니다. 서울역이 서울역다웠을 때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우리다웠을 때를 잊어버립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잊습니다. 그저 코앞에 보이는 얕은 이익에만, 눈손아귀에 쥘 수 있는 돈-이름-힘에만 매달립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서울역에서, 손바닥만큼 줄어든 좁은터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과 어딘가를 오가는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이제 서울역 앞 너른터는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쉴 수도, 모일 수도, 무엇을 즐길 수도 없이 되었습니다. 쉬고 싶으면 ‘돈 내고 어느 가게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돈 내고 들어가는 가게에도 ‘돈을 펑펑 쓰지’ 않으면 눈치를 주기에 서둘러 일어나야 합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지는 서울역 앞입니다. 서울역 앞에 있던 수많은 헌책방은 자취를 감추어 딱 한 곳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로이 북적이던 1960∼1980년대 서울역은 책도 자유로이 오가며(하지만 못 읽게 하는 책도 많았습니다) 헌책방도 넉넉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기차를 기다리며 헌책방에서 책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헌책방에서 책 하나 살필 틈조차 내다 버린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 앞은 소주 몇 병을 안주 없이 들이키고, 길바닥이고 걸상이고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자는 한뎃잠이 차지가 되었습니다. 용산역 앞은 이마트 주차장이 떡하니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돈-이름-힘에 푹 빠지면서 세상 밖으로, 사회 밖으로 내몬 사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돈 먹는 재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임자가 되어 서로 복닥이기도 하고 부대끼기도 하던 서울역이, 어느새 사람 발길 뚝 끊기고 사람냄새 사라지며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뒷골목처럼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는 서울역 사람냄새입니다.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역 사람들 웃음입니다. 앞으로도 이처럼 사진으로만 서울역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을까요? 사진이 아닌 삶으로, 사진에 담긴 얼굴이 아니라 맨눈으로 바라보고 함께할 얼굴은 이제는 끝일는지요.

 지난날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고 할 수 없고, 지금은 안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아름다움이 어찌 달라질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독재자 세상은 사라졌지만, 먹고살기 팍팍함은 많이 줄었다지만,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세상 또한 어디론가 사라졌고, 먹고살기 수월해진 사람이 늘어났어도 넉넉해진 마음과 살림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즐거운가요? 살 만합니까?

 서울역은 개발독재가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구실로 나다움과 사람다움을 기꺼이 내팽개친 우리들이 무너뜨렸습니다. 사진책 《역전 풍경》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고 느낍니다. 아니, 말을 걸고 있습니다. 김기찬 님은 우리한테 《골목안 풍경》과 《잃어버린 풍경》을 남겼고, 여기에 《역전 풍경》까지 하나 더 남겼습니다. 김기찬 님이 계실 하늘나라는 사람냄새 가득한 아름다운 곳일는지요? (4335.12.14.흙.처음 씀/4339.12.25.달.고쳐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