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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쿠루사 지음, 최성희 옮김 / 동쪽나라(=한민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 글 : 쿠루사
- 그림 : 모니카 도페르트
- 옮긴이 : 최성희
- 펴낸곳 : 동쪽나라(2003.10.15.)
- 책값 : 6800원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꾸는 동네 놀이터
 [그림책이 좋다 42] 쿠루사 + 모니카 도페르트,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



 (1) 눈과 길


 밤부터 눈이 내립니다. 소록소록 내리는 눈발은 멎지 않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며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입니다. 요 가까이에 있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일방직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도, 동국제강과 인천제철에서 내뿜는 연기도 잠재우면서 눈이 내립니다.

 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철길에도 눈이 쌓입니다. 서울로 들어서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에도 눈이 쌓일 테지요. 걸어가면 코 닿을 자리에 있는 인천 제2부두, 제3부두, 제4부두, 만석부두, 화수부두에도 눈이 쌓일 겝니다. 얼마 앞서까지 유리공장이 있던 터에도 눈이 쌓일 터이고, 골목집을 쓸어내고 우뚝 솟아 버린 아파트 지붕에도 눈이 쌓이겠지요.


..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칼리토스의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였을 때만 해도, 베네수엘라의 산에서는 퓨마가 울부짖었습니다. 당시의 산은 거의 원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과 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숲속에는 계곡이 뻗어 있고,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습니다 ..  (1쪽)


 아침에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건너편 빈집 3층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 오들오들 떨며 옹크리고 있습니다. 그러게, 참. 이렇게 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날짐승들은 어떻게 먹이를 얻지? 어디에서 따순 잠자리를 마련하지? 보금자리 틀 나뭇가지 하나 찾을 수 없는 도심지에서, 보금자리 틀 키큰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심지에서, 짓궂은 사람들 손길을 안 탈 만한 조용하고 호젓한 자리 하나 찾을 길 없는 도심지에서, 비둘기며 까치며 참새며 박새며 어떻게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담.

 비둘기가 자주 앉아서 쉬는 창턱에 옆지기가 빵조각을 뜯어서 놓곤 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이 빵조각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앉았다 떠날 뿐입니다.


..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각지의 소도시와 농촌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와 산기슭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집을 짓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거나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널찍한 공터를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  (5쪽)


 눈이 쌓이니 자동차는 하나같이 굼벵이가 됩니다. 이런 길에는 아예 차를 못 몰겠다며 투덜거리며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대중교통 타야겠구나 하며 일찌감치 길을 나설 분이 있을까요.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쉬는 아이들은 방학숙제며 학원숙제를 잠깐이마나 제쳐놓고 동무들한테 사발통문을 돌려서 ‘눈싸움 하자!’고 들떠 할까요. ‘먼 놈의 눈이 이렇게 와?’ 하면서, 골목집 사람들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쓰윽쓰윽 쓸고 있을까요.

 저도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살그머니 골목길 마실을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눈발 날리는 골목길에서 뒹굴며 노는 아이가 있는지, 눈발이 멎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언손 녹여가며 골목길 쓰는 어르신이 있는지 살펴보러.


.. 예전에는 계곡 아래가 풀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높다란 건물들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언덕배기는 집들로 빈틈없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큰길은 고속도로가 되어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산에는 나무 몇 그루만 겨우 남아 있었고, 그 많던 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11쪽)



 (2) 종합건설본부 공무원과 길


  어제, 1월 10일 낮 세 시, 인천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주민 몰래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중구 삼익아파트 앞부터 동구 동국제강까지 2.51킬로미터 길이에 너비 50미터가 넘는 산업도로를 뚫겠다는 생각을 그예 밀어붙이려고만 했습니다.

 어제 ‘주민설명회’라는 자리를 하기 앞서, 종합건설본부는 인천 동구청과 동구에 있는 동사무소에만 7일날 깜짝통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이 산업도로라는 길이 뚫릴 때 피해를 입게 될 주민들한테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귀띔도 알림글도 공문도 걸개천 같은 것 하나 없이 몰래 하려다가 주민대책위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허울로만 주민설명회를 열었다고 내세우면서 막공사를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이런 짓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종합건설본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설명회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협조와 의견수렴을 거치고자 했다. 그러나 필요성을 알리려 해도 도저히 설득이 안돼 답답할 따름”이라고(경인일보 2008.1.11.).


.. 아이들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계단에 앉아 각자 자기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놀 만한 장소가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야.” 맨 먼저 말한 아이는 키가 큰 카밀라였습니다. “그런 장소는 없을 것 같아. 차라리 시장님을 만나서 우리한테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자.” 한 아이가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시장님 집이 어딘데?” ..  (22쪽)


  인천시 공무원은 말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계획안을 내놓기 전에 이미 많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다음 주민설명회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시가 세운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인천일보 2008.1.11.).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지난 달, 동 자치위원들과 도로개설에 따른 소음방지를 위한, 터널 확장, 녹지조성 등 여러 대안과 관련해 설명하는 자리에서 설명회 요청이 있어 이번에 개최하는 것 … 이미 행정절차는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절차적인(요식적인) 설명회를 열 이유는 없다”고(인천신문 2008.1.11.).

 그러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열려고 했을까요. 게다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회를 왜 몰래 하려고’ 했을까요. 종합건설본부와 시청 공무원들이 만난 ‘주민’은 참말로 어디에서 뭘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이들은 ‘주민’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또한, ‘주민을 부르지 않으면’서 왜 ‘주민설명회’라는 이름을 내걸었을까 모르겠습니다.


.. “네, 그래요. 저희들은 시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러 왔어요. 저희들은 놀이터가 필요해요.” “아저씨,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한가하게 너희들을 만나 줄 사람은 이곳에 없다. 그러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거라.” 경비원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돌아가라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어서 돌아가! 여기에서 얼쩡거리면 경찰을 부를 거다!” “아저씨, 저희들은 이런 놀이터를 갖고 싶어요. 자, 보세요!” 가장 어린 칼리토스가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였습니다 ..  (31쪽)


 사람이 사는 곳이니 집을 마련해야 하고, 길도 내야 하고, 가게도 들이고, 일자리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논밭 일굴 땅이 남아야 하고, 숨쉴 바람을 마련해 주는 숲이 남아야 합니다. 숲에서 베어내는 나무는 우리들이 날마다 엄청나게 써대는 온갖 종이로 바뀝니다. 그러니 숲에는 나무도 많이 남아 있어야 하고, 우리들이 나무를 베어내는 만큼 새 나무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또 새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지켜야겠지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집을 마련하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는 길이 얼마만큼 있어야 하나요. 우리 동네에는 가게가 몇 군데쯤 있으면 좋을까요. 우리 동네 일자리는 몇 가지쯤 있어야 할는지요. 우리 동네에는 쉼터와 숲이 얼마만큼 남아 있어야 하며, 우리는 동네 숲을 얼마만큼 간직하면서 가꾸어 나가야 좋을까요.


.. 시장과 직원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안내해 드릴게요.” “거기가 어딘지 함께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사서 선생님이 시장과 직원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글쎄요, 지금은 좀…….” 직원이 말을 흐렸습니다. “으흠.” 시장이 헛기침을 하고 슬그머니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  (40쪽)


 우리 사는 이 땅에는 나라밖으로 내다 팔 물건을 실어나를 길만 있으면 좋은가요. 우리 사는 이곳에는 하루하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으로 부자를 만들어 주는 크고 높은 아파트만 있으면 되는가요. 우리 사는 이 동네에는 흙 한 줌 밟지 않고도, 풀 한 포기 쓰다듬지 않고도, 나무 한 그루 돌보지 않고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가요.


.. 카밀라의 말이 맞았습니다. 몇 주일이 흘러도 시청 사람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공터는 갈수록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온갖 잡동사니들만 쌓여 갔습니다. 놀이터가 들어설 만한 자리 같지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어느새 그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  (52쪽)



 이른아침부터 방송차가 다니면서 ‘눈이 많이 오니 집 앞 눈을 쓸자’는 이야기를 외칩니다. 그러나 이런 방송차가 다니지 않아도 골목집 사람들은 알아서 집 앞 눈을, 골목길 눈을 씁니다. 골목집 사람들 문간에는 언제나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마련해 놓고 ‘청소부가 치울 쓰레기’도 먼저 치우고 쓸며 살아왔거든요.





 (3) 책과 길


 아침나절, 창영동과 금곡동과 숭의동을 두루 돌아봅니다. 눈 덮인 길을 걸으며 돌아봅니다. 한 번 쓸어 놓은 길, 두 번 쓸어 놓은 길, 세 번째 쓸려고 사람들이 나와서 일하고 있는 길,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며 눌러 놓은 길을 어기적어기적 걷습니다.

 골목집 사람들은 비질을 하며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놓습니다. 동사무소 사람들은 염화나트륨까지 뿌리며 아예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을 거닐며 눈을 뽀도독뽀도독 소리나게 밟습니다. 차가 오가는 조금 넓은 길은 눈녹은 질퍽거림을 잔뜩 느낍니다. 시커멓게 바뀌어 가는 얼음물이 바지로 튑니다.


.. 어느 날 아이들이 거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식료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습니다. “얘들아, 저리 비켜! 왜 길에서 노는 거야!” 트럭 운전사가 소리쳤습니다. “왜요? 길에서 놀면 안 돼요?” 아이들은 그렇게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럭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크고 힘도 셌습니다. 화가 난 운전사가 아이들 쪽으로 트럭을 몰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그곳을 피해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  (16쪽)


 두 시간 남짓 동네 마실을 하고 집 앞에 닿습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가까운 헌책방 한 곳에 들어가서 손을 녹입니다. “모처럼 눈이 많이 오는데 눈 구경 안 하셔요?” “저희는 (책방에 일하러) 오는 길에 했지요. 이제 눈 구경 가시려고요?” “아니요, 아침부터 죽 돌고 이제 막 들어오는 길이에요. 조금만 늦으면 눈을 다 쓸어내서 없으니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리면서 녹이고 있을 무렵,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들어와서, “《궁》 있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요, 없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은 돌아나갑니다. 바라는 만화책 한 가지만 물어 보았습니다. 이웃가게에 들러서도 똑같이 물어 볼까요? 그러다가 아무 헌책방에도 자기들이 바라는 만화책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가까운 새책방에 가서 살까요?


.. “음, 좋은 의견이구나.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사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문제는 어른들이에요.” 카밀라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만약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좋고 훌륭한 의견을 내놓으면 뭐 해요? 실행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 “어른들이 너희들과 함께 시장님을 만나러 가지 않으려고 하시니?” “어른들은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끼리 가지 그러니? 그럴 생각은 없나 보구나?” ..  (28쪽)


 모든 아이들, 또는 모든 어른들이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만 물으며 그 책이 없으면 돌아나가지는 않습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은 자기가 살 참고서나 문제모음도 꼼꼼히 살피고 들여다보면서 고릅니다. 적잖은 어른들도 자기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고르려고 짧으면 한두 시간, 길면 서너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동안 다리아픔도 잊은 채 서서 책을 고릅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찾습니다. 자기한테 낯선 사람이 쓴 책, 낯선 출판사에서 펴낸 책,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 붙은 책은 코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으며 꺼내어 들춰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다고 하여 우리 자신한테도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거나 읽을 만할까요. 우리가 책 하나를 고르거나 사는 잣대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보는 책’이나 ‘두루 사랑받는 책’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 “와, 우리에 대한 기사다!” 케오가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신문에 나오다니, 우리는 이제 유명한 사람들이네!” 칼리토스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여전히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 카밀라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  (48쪽)



 지금 꼭 《궁》이 보고 싶으니까 《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픈 그 《궁》이 없으면 어쩌지요? 언제까지나 《궁》만 찾아야 할까요.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도 눈길이 갈 만하고, 《조폭 선생님》도 손길이 갈 만하고, 《테르미도르》도 마음길이 갈 만합니다. 때로는 《교도관 나오키》에, 때때로 《어시장 삼대째》에, 가끔은 《태일이》에 손을 뻗어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위안부 리포트》에, 내일은 《따끈따끈 베이커리》에, 모레는 《요츠바랑!》을 펼칠 수 있겠지요.

 학교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십시오’ 하는 숙제를 낸다고 해서 꼭 ‘이런저런 책’만 읽고 느낌글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런저런 책’은 그다지 마음이 안 가고 재미도 없을 듯하며 읽은 보람이 없다고 느낀다면, 손수 책방 나들이를 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든 다음, 이 책을 차근차근 읽고 자기 깜냥껏 느낌글을 써서 내도 좋아요.

 ‘1 + 2 = 3’이라고 맞는 답만 적어서 내야 숙제를 잘하는 셈은 아니거든요. ‘1 + 2 = 4’라고 적으면서 틀릴 수 있는 숙제이고, 자기는 다르게 생각하서 다르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좋은 숙제입니다.


.. 어느 날, 칼리토스는 삼촌이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장이나 시청 따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뭐 있어? 우리끼리 힘을 합쳐 만들면 돼.” 삼촌이 탁자를 ‘쾅!’ 소리나게 치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의 친구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신나간 소리하지 마. 무슨 힘을 합친다는 거야? 자기 집 앞 골목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 놀이터를 만들기나 하겠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야.” ..  (55쪽)


 (4)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


 그림책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을 고르던 책방에서 한 번 읽고, 책을 사들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길에서 한 번 더 읽습니다. 집으로 와서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이웃집에 놀러가서 ‘동네사람끼리 모여서 책읽기 모임을 해 볼까요?’ 하고 말문을 열면서 또 한 번 넘겨봅니다.


.. “시장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들끼리 놀이터를 만들면 안 될까?” 칼리토스가 말했습니다. “놀이터를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줄 아니? 그건 아주 복잡한 일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끼리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호세 아이들은 저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형이나 누나들을 모았는데, 나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들까지 나섰습니다 ..  (53쪽)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차근차근 그림책으로 엮어내 보여주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입니다. 달동네 아이들은 자기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집안 어른들한테 놀이터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모두들 ‘바쁘다’는 핑계로 손사래를 칩니다. 시청 공무원들도 말로만 다짐을 하고 자기들 다짐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놀이터였던 골목이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곳이 되어 버리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신나게 뛰어놀던 빈터에 빌라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도로로 바뀌면서 자꾸만 산꼭대기로 쫓겨나고 있는데, 아이들은 마냥 팔짱을 끼거나 나 몰라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놀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손으로 놀이터를 만듭시다!” 이렇게 주장한 사람들은 칼리토스의 삼촌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  (58쪽)


 어른들은 일을 해야 하니 바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왜 일을 하지요? 무엇 때문에 일을 하지요? 누구 때문에 일을 하지요? 일을 해서 얻은 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요?

 아이들은 바로 지금 놀고 싶어합니다. 놀이동산에 가자는 소리가 아니라, 동네에서 동무들하고 웃고 떠들고 울고 복닥이면서 놀고 싶어합니다. 미끄럼틀이나 시소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터만 있으면 됩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터, 못이나 병조각이 흩어져 있지 않은 터, 차가 함부로 들어와 빵빵거리지 않는 터, 맑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땀흘려 뛰고 구를 수 있는 터를 바랍니다. 키 크고 굵은 나무가 있어 그네를 맬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잎 많은 나뭇가지 그늘이 있으면 한결 좋겠지요. 팽이를 치고 연을 날리고 구슬을 치고 땅따먹기를 하고 고무줄을 뛰며 오재미나 오징어도 하고 빗돌치기나 자치기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함께 놀거나 곁에서 수다 떨면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놀이터를 바랍니다. (4341.1.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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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인간 - 해나라 어린이책 8
페르난도 알론소 글 그림, 권미선 옮김 / 해나라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종이 인간
- 그림ㆍ글 : 페르난도 알론소
- 옮긴이 : 권미선
- 펴낸곳 : 해나라(2002.7.30.)
- 책값 : 6000원

 

― 대통령 후보도, 언론도, 유권자도 ‘찌질이’
[그림책이 좋다 41] 페르난도 알론소, 《종이 인간》


 

 〈1〉 빨래


 그제부터 큰 통에 담가 두고만 있던 이불을, 아침에 가루비누를 풀어서 살짝 헹군 뒤, 두 시간 그대로 두었다가 빱니다. 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려서 물짜기는 고되었지만 옆지기 도움을 받으며 어느 만큼 짠 다음, 마당으로 들고 나와 탁탁탁 털어서 담벼락에 널어놓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집을 다시 옮기면서 살펴본 대목 가운데 하나는 씻는방이 얼마나 넓으냐였습니다. 그동안 혼자 살아온 살림집에서는 씻는방이 없거나 아주 좁았습니다. 마음놓고 이불빨래를 할 수 없었어요. 이불빨래는 손빨래 가운데 가장 힘들다지만, 힘든 만큼 가장 즐겁고 뿌듯합니다. 어쩌면 손이 덜 가는 빨래일 수 있고, 담벼락에 널어놓고 물방울이 줄줄줄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흐뭇해지는 빨래입니다. 이제 저 빨래가 맑은 햇볕을 받아 뽀송뽀송 마르면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아주 포근하겠구나 싶어 한결 즐겁습니다.

 씻는방이 넓기를 바란 까닭은 이불빨래 때문만은 아닙니다. 뒷날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할 때 이 씻는방에서 함께 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이불이며 다른 빨랫감이며 바닥에 죽 깔아 놓고 함께 씻으면서 빨래를 적실 수 있고, 하나하나 아이들과 함께 손빨래를 하면서 놀 수 있겠지요. 저는 한쪽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한쪽에서 씻는방 바닥을 빗솔로 북북 비비며 닦고. 이불빨래를 때로는 바닥에 쫙 펼쳐서 손으로 비빔질을 해서 함께 빨 수도 있고.


.. 종이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어요. 그렇지만 종이 인간이 들려주는 얘기는 모두 전쟁과 갑작스런 사고나 가난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어요. 아이들은 종이 인간이 해 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아주 슬픈 얼굴이 되었어요. 몇몇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어요 ..  〈20∼24쪽〉


 제 어릴 적을 돌아보았을 때, 이불빨래 하는 날은 밖에 나가서 동무들과 놀 수 없어서 짜증스러웠지만, 이맛살 찌푸린 채 시키는 대로 밟고 비비고 하다 보면 어느새 이맛살이 스르르 풀리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온몸이 비누거품이 됩니다. 옷을 하나둘 벗어던지고 몸씻기까지 같이하고야 맙니다. 밖에 나가 놀자던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형하고 어머니와 낑낑거리며 물을 짰고, 툇마루 난간에 이불을 쫙 하고 널면! 또는 동네 빈 담벼락이나 울타리에 널면!


 〈2〉 옷


 아침에는 모처럼 보일러를 돌려서 몸을 씻었고, 밀린 바지 빨래 석 점을 해치웠습니다. 가을 날씨까지는 손빨래를 신나게 즐기는데, 쌀쌀해진 날씨에는 손이 얼어붙기 때문에 한 점 두 점 밀리기 일쑤가 되고, 더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빨래손을 확 붙잡으면 손이 얼어붙으면서도 어느새 두 점 석 점 해치우게 됩니다. 얼얼한 손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녹이는데, 그러면서도 웃습니다. 좋아서. 오늘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따순 물을 썼습니다. 따순 물로 빨래하니 손도 따숩고 빨래도 금세 되고 좋네요.


.. 빨래방 간판이 보였어요. 종이 인간은 너무 좋아서 깡충 뛰었어요. 그리고는 굳게 마음을 먹고 빨래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어요. ‘여기서는 내 몸에 쓰여진 것들을 모두 지울 수 있을 거야. 그건 모두 다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뿐이야’ ..  〈28∼31쪽〉


 혼잣살림을 하거나 시집장가를 가서 살림을 하거나, 제 또래동무며 손위나 손아래 동무며, 어르신들이며 모두들 빨래기계를 집에 들여놓고 삽니다. 손빨래로만 살아가는 분은 딱 한 사람 만났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호호 손을 녹이며 손빨래를 하신답니다. 그분 차림새를 보면, 멋을 아예 안 차리지는 않지만 자기 깜냥과 주제에 맞는 멋에 맞출 뿐, 구태여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갈 까닭도 없겠지요. 자기 옷차림이란 자기가 입어서 좋을 옷을 자기 몸이 좋아하는 대로 갖추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자기 옷은 자기가 빨아서 입어야 하는 만큼, 옷 아낌새도 남다릅니다. 돈 몇 푼으로 사서 입다가 유행이 지나면 재활용수거함에 휙 던지거나 ‘아름다운가게’ 같은 곳에 슥 기부하고 마는 옷이 아니거든요. 참말로 자기가 아끼며 입을 수 있는 옷,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옷, 두고두고 오래오래 입을 수 있는 옷, 뒷날 자기 딸아들한테 물려주거나 좋은 동무한테 선사할 수도 있는 옷만 알뜰히 마련해서 적은 숫자로 갖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한테는 옷이 몇 가지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들한테는 책이 몇 권이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들한테는 은행계좌 남은돈이나 달삯으로 벌어들이는 돈크기가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집터는 몇 평이나 되어야 할까요.


 〈3〉 돈과 집


 우리 도서관이나 살림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은 평수가 꽤 넓은 모습을 보며 놀랍니다. “돈 많이 벌었나 봐요?” “아니에요. 이 동네가 싸요. 다들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고, 번화가 도심지 가까이 살려고 하고, 아파트숲에서만 살려고 하니, 자기 살림터를 넉넉하게 즐길 수 없잖아요. 흔한 말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들 하는데, 시골에 살 때에도 욕심을 안 내면 빈집을 아주 적은 돈만 치르고도 얻어서 쓸 수 있어요. 크고 넓은 집이 아니라, 온갖 물질문명을 다 갖추어 쓸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을 아늑하게 다스리면서 살고 싶은 집,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많은 자기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집, 남한테 잘 보이려는 집이 아니라 자기 몸에 알맞고 동네사람들하고도 오순도순 복닥이고 싶은 집에서 살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값도 싸면서 괜찮은 집을 마련할 수 있어요. 뭐, 서울에서 산다고 할 때에도, 집에서 전철이나 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서 십 분이나 이십 분쯤 나가야 하는 안쪽 깊숙한 데로 얻으면 싸고 괜찮아요. ‘걸어다닐’ 생각이나 ‘자전거 타고다닐’ 생각을 하면 말이에요.”


.. 그렇지만, 종이 인간이 말하려고 하자…… 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종이 인간은 자신의 몸이 온통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  〈41쪽〉


 돈으로 사는 집은 돈으로 잃습니다. 돈벌이 잘되는 나라는 돈벌이로 무너집니다. 사랑으로 나누고 믿음으로 함께하며 나눔으로 웃고 울 수 있을 때, 백 해를 꽉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우리 삶일지라도 그 백 해쯤 되는 세월을 ‘나, 이 땅에서 잘살다가 떠나네. 아무 아쉬움도 없이.’ 하고 말하며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무엇을 물려받으면 좋을까요? 큰 집? 빠른 차? 넉넉한 돈? 높은 이름?

 우리들은 우리 딸아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면 좋을까요? 영어 솜씨? 한문 재주? 일류대 졸업장?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


 〈4〉 사진 찍기


 사진기 하나 어깨에 메고 동네 마실을 다닙니다. 예전에는 가방에 넣고 있다가 찍을 때만 꺼냈는데, 이제는 스스럼없이 어깨에 둘러멘 채 돌아다닙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찰칵찰칵 찍습니다. 다만, 언제나 대놓고 찍지는 않습니다만, 같이 어울리고 있는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집어듭니다. “사진을 왜 찍으셔요?” “지금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요.” “아유, 나 같은 사람을 뭐 하러 찍어요?” “할머니 같은 분이니까 찍지요.” “이 쭈그렁 주름살은 나오게 하지 말아요.” “그 쭈그렁 주름살이기 때문에 곱잖아요.”

 

.. 너무 슬퍼서 다시 길을 떠났어요. 종이 인간은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들판으로 나왔어요. 들판으로 나온 순간, 종이 인간은 너무 행복했어요. 종이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종이 인간은 자기 호주머니에 새 한 마리가 들어 있다고 상상하며 활짝 웃었어요. 그리고는 들판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색으로 온몸을 물들였어요 ..  〈42∼44쪽〉


 사진기는 늘 들고 다니지만, 단추를 누를 때까지는 시간을 퍽 두어야 합니다. 기다립니다. 제 마음이 맞은편 마음 한 자리까지 스며들도록 기다립니다. 사진기를 늘 들고 다니고 있음을 맞은편에서도 느끼게 한 다음, 이 사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그때 바로 집어듭니다.

 사진에 담기는 분들은 모두 내 이웃이요, 그분들한테 저 또한 이웃입니다. 사진에 담기는 분들은 모두 내 식구이자 동무일 수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귀담아듣고, 저도 제 나름대로 제 삶을 가만히 이야기로 들려드립니다. 오고 갑니다. 가고 옵니다.


 〈5〉 《종이 인간》이라는 그림책


 그림책 《종이 인간》을 봅니다. 꼭 알맞는 길이로 글이 담겼고 그림이 실렸습니다. 어린아이들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을 만치 가볍게 그렸습니다. 가벼운 그림이면서도 오래도록 이 땅 아이들을 살펴보지 않았다면, 차근차근 이 땅 삶터와 세상을 헤아리지 않았다면 빚어낼 수 없었을 그림입니다. 가벼운 그림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기도 할까요?

 ‘종이 사람’이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문’이기도 하고 ‘글쟁이’이기도 합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종이 사람’,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자면 ‘언론’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요. 이 ‘언론’에 담기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우리 삶을 헤아리고 있을까요. 우리 삶터와 세상은 얼마나 굽어살핀 뒤 담아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이 땅 사람들 가까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요.

 ‘언론’에 마주하는 우리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나요. 어떤 이야기를 찾고 있나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가슴으로 받아안나요. 우리들은 ‘언론’에 무엇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어떤 모습이 언론에 담길 만하다고 느끼나요.


..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머리속을 채워 나갔어요 ..  〈45쪽〉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누가누가 당선가능성이 높다느니 지지율이 얼마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지난 선거에도, 지지난 선거에도, 지지지난 선거에도, 지지지지난 선거에도 그랬습니다.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일까요? 다다음 선거도 판박이일까요? 다다다음 선거도 돌림돌림이 될까요? 다다다다음 선거도 한결같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잘산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돌아보고 내다보고 톺아보며 함께 얼싸안거나 부둥켜안거나 껴안을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대통령 후보는 없을까요. 아니, 대통령 후보가 이런 말을 꺼내지 못한다면, 대통령 후보들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록 간지럽히거나 꼬집거나 들쑤실 수 있는 ‘언론’은 없을까요. 아니, 언론이 대통령 후보를 파헤치지 못하는 모습을 깨닫고는, 언론이 언론다울 수 있도록 다그치는 우리들, 백성들, 시민들, 서민들, 국민들, 민중들, 보통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4340.11.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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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면 어때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마빡이면 어때
- 글ㆍ그림 : 쓰치다 노부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20.)
- 책값 : 8000원



― 왜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아이들한테 읽히나?
: 쓰치다 노부코, 《마빡이면 어때》를 보면서



 〈1〉 수수한 이야기 하나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주인공 데코는 일요일 아침 머리를 자릅니다. 어머니가 손수 잘라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뺀 집안 식구들이 아이 머리를 보면서 ‘이마가 너무 넓다’면서 하하호호 웃습니다. 집안 식구들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웃음일 텐데, 아이로서는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몸이 움츠러들고 모든 일에서 짜증만 쌓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런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못 헤아렸는지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려움을 풀어나가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 오빠도 동생을 감싸기보다는 짓궂게 놀리기를 즐길 뿐입니다. 다만, 아이 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려 냅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도 괜찮은 이마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예전 이마보다 훨씬 괜찮은 이마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 언니는 대단한 요술을 부리지 않았으나, 그 마음씀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로 동생 마음뿐 아니라,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동무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참 수수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참으로 잘 잡아챘네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일본사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문득,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을 겪으며 잔뜩 심통을 부렸는데, 자기 언니가 ‘그 어린 나이로서는 요술을 부렸다’고 느낄 만한 어떤 일 하나를 해 주었고, 그 일 덕분에 여태까지 즐겁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 언니와 어머니와 식구들과 동무들한테 이런 자기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책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형과 제 머리는 늘 어머니가 깎아 주셨습니다. 머리 깎는 집에 갈 돈을 아낄 셈이었지요. 없는 살림에 머리 깎을 돈까지 쓰기란 얼마나 힘들었던가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집 어머니들도 당신 딸아들 머리를 손수 깎아 주었습니다. 머리 깎는 가위는 몇 없어서, 가위 하나로 온 동네 어머니들이 서로 빌려 가면서 깎곤 했습니다. 머리집 머리가 아닌 어머니 머리라서 우둘투둘 깎인 아이도 있어서(제 머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로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눈썹 위로 싹둑 하고 많이 깎는 까닭이라면, 머리가 눈을 찌르기 때문이지요. 훤히 드러나는 자기 이마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라면, 또 이렇게 훤한 이마를 놀리는 동무들이라면, 사람을 겉모습으로 먼저 살피는 마음이 벌써부터 물들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살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좋으며, 머리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서로를 생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는 이런 데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아 주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머니가 좋은 뜻에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해도, 아이가 바라는 머리 모양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지요.


 〈2〉 아쉬움


 퍽 괜찮다고 느낀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몇 번 다시 넘겨보다가 덮으며 생각합니다. 일본땅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 만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혀 주거나 보여줄 한국 어머니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글쎄, 저는 이 그림책을 한국땅 어머니들한테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썩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곳곳에서 아쉬웠습니다.

 먼저, ‘마빡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아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서 책이름으로 삼고, 책 곳곳에 ‘마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펴낸 일본에서는 《데코짱》이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고 말하듯 그림책에서도 ‘마빡이’를 말하면 훨씬 잘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하겠지만, 익살꾼 유행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마빡이’가 참 잘 붙인 이름이라 하겠지만,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잘 붙인 이름으로 이어갈까요? 그때 아이들은 ‘마빡이’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번역 그림책을 한두 해만 아이들한테 읽힐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음 아쉬움으로, 나오는 사람들 이름. 주인공은 일본 이름인 ‘데코’를 쓰지만, 마을 가게 이름이며 유치원 이름이며, 유치원에서 어울리는 동무들 이름이며 모두 한국 이름입니다.

― 경아, 세은, 대현, 주희, 순화, 고은, 연우, 성은, 가람, 금미, 혜원, 정화

 왜 주인공 아이만 일본 이름을 쓰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모습이며 학교 모습이며 아이들 놀잇감 모습이며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 모습이며 모두 ‘일본 문화와 사회’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데코’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본사람 이름임을 천천히 알아갈 텐데, 갑자기 마을 분위기나 유치원 동무들 이름을 이렇게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놓으면 더 헷갈리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런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얄궂게 쓰고 만 낱말과 말투들. 몇 가지 다듬어 봅니다.

 ┌ 데코의 머리를 잘라 준대요
 └→ 데코 머리를 잘라 준대요

 토씨 ‘-의’를 붙였지만, 책 뒤쪽에 보면 “데코 이마”로 적은 대목이 보입니다. “데코 이마”로 쓰듯이 “데코 머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이렇게 하면 어때?

 ‘것’을 붙여서 말을 늘여뜨립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이런 말투를 씁니다. 자꾸자꾸 퍼집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처럼도 씁니다.

 ┌ 자, 귀여운 이마로 변신!
 └→ 자, 귀여운 이마로 바뀌어라!

 ┌ 으, 얼굴 심하다
 └→ 으, 얼굴 너무한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합체로봇’을 좋아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장난감을 쥐어 주고 싶어하며, 어떤 말과 글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언니 주문이 진짜 통했나 봐요
 └→ 언니 주문이 진짜 들었나 봐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거울 속에 내가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으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자면, “거울에 비친 이마”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마빡이 주문은 점점 퍼져 나가서
 └→ 마빡이 주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서

 ‘점점(漸漸)’이나 ‘점차(漸次)’나 ‘차차(次次)’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라 해서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차츰-자꾸-꾸준히-지며리’ 들이 있음을.

 또다른 아쉬움을 들자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2000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7년에 번역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데코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 일을 돕’습니다. 그 옆에서 데코네 오빠는 ‘자기 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주인공 훤한 이마 문제를 언니가 풀어 준 아침 모습에서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아버지 되는 분은 늦잠을 잔 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을 테고, 양복을 차려입고(이때에도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 주고 옷을 입혀 주고) 회사에 가겠지요. 그 뒤 어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을 한 다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사겠지요.

 이야기 무대는 ‘옛날이 아닌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집식구들 모여 있는 자리라든지, 서로 맡은 일이라든지 이렇게 그려야 했을까요. ‘여자 = 부엌데기’, ‘남자 = 바깥양반’이라는 낡은 틀을 그대로 이어가야 했을까요.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습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에 담긴 줄거리나 느낌이나 뜻이나 즐거움은, 그림책 작품으로 보자면 참 괜찮구나 싶은데, 우리가 굳이 이런 일본 그림책까지 한국말로 옮겨서 펴내야 할까 싶어요.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일본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이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깊이와 너비를 담은 그림책쯤이라면, 한국 그림책 작가가 우리 터전과 아이들 문화를 헤아리며 스스로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활 이야기 그림책’조차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요? 출판사에서는 ‘손쉽게 번역하는 길’만 좇을 생각인가요?

 그림책 번역은 다른 번역보다 품이나 시간이 적게 듭니다. 금세 옮겨서 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하나를 창작하자면, 제대로 된 그림책 하나 빚어내자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할 만한 그림책 하나 엮어내자면, 그림을 그려내는 분도 짧지 않은 시간을 땀흘려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편집을 하면서 품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게다가, 애써 펴낸 창작 그림책이 두루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 그림책 작가가 못 빚을’ 만한 이야기책도 아니요, 우리 둘레에도 참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한편으로, 또는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픈 젊은이를 알아본 다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우리 형편에 맞게 그려 보면 어떨까요?’ 하고 주문을 하고 자료를 대어 주면서 창작을 불태울 수 있게끔 뒷배해 주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기에, 먹고사는 길을 헤아려 ‘좀더 많이 팔릴 만한 책’, ‘계약금과 인세 낸 돈을 거두어들일 만한 책’을 빨리빨리 번역해 내는 일은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내서는 우리 아이들 앞날이 밝을 수만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름대로 꿋꿋하게 발판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지붕을 튼튼히 마련할 수 없잖습니까. 뿌리가 깊은 나무여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보는(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보는 책이 어린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커 가는 어린이들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심어서 앞으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옆에서 손을 내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굴뚝같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는 ‘좋은 그림책 만 권’이 반가울까요?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날마다 여러 번씩 읽어 줄 ‘수수한 그림책 열 권’은 안 반가울까요?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책보다는 더 많은 부모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림책을 엮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좋은 책’을 베풀어 주려는 마음보다는, ‘수수하고 멋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으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는 밥과 같은 책을 딱 한 가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나으리라 봅니다.

 돈 많은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책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행복할까요? 펴내는 책 가짓수가 많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곳일까요? 일본책 이름 《데코짱》을 《마빡이면 어때》로 이름을 고쳐서 낸 이 그림책은, 별 다섯 만점에서 넷 반을 주고 싶으나, 이 책을 번역해 낸 마음씀과 움직임을 헤아렸을 때에는 둘 반만 주고 싶습니다. (4340.10.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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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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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글ㆍ그림 : 이세 히데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10.)
- 책값 : 1만 원



― ‘버려진 책’이 가꾸어 준 내 삶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덮으면서


 

 〈1〉 내가 좋아하는 책


 지난 월요일,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의 전도자 6인》(1976)을 서울 돈암동 헌책방에서 찾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찾고 있던 책을 이제야 만납니다. 진작 판이 끊어진 책이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웬만한 책은 다 갖추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기독교의 전도자 6인》은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라디오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는 《a pictorial history of RADIO》(Citadel press,1956)를 서울 홍제동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나라밖에서 라디오가 처음 만들어지고 방송이 퍼지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나라밖이든 나라안이든, 라디오라는 물건이 만들어지고 라디오 방송이 우리 삶으로 파고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교보문고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을까요.
 

―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56쪽)


 지난달, 《토트 티아메르-청소년의 순결》(가톨릭출판사,1963)이라는 책을 서울 연세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고 있습니다. 책도 묵었고 줄거리도 묵었지만, 처음 나온 지 마흔 해가 지난 이즈막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대목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산시선》을 읽어도, 《목민심서》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북학의》나 《을병연행록》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뿐 아니라 《파브르 식물기》도, 시튼이 쓴 동물 이야기도 세월이 묵을수록 빛을 더해 간다고 느낍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 또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지난다 하더라도 책상맡에 놓고 짬짬이 다시 돌아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피의 나무들”. 책 제목을 새롭게 붙였네! 아카시아 그림은 표지로 다시 태어났고, 내 이름이 그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53쪽)


 지금은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저입니다. 책을 엮고 책을 쓰는 일을 하는 한편, 책을 가꾸고 지키는 도서관 일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하나둘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이 제법 되고, 앞으로 세월이 좀더 지나면 ‘헌책방에서마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책’도 꽤 되겠지요. 이런 책들을 돈 값어치로 셈한다면 ‘값나가느니 값 안 나가느니’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장만할 때 돈이 들어간다뿐, 책을 읽을 때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꾸리는 도서관에 와서 책을 구경하거나 읽는 분들한테도 돈이 들어가지 않겠지요.

 1979년 4월에 나온 잡지 《현존》 100호를 돈으로 따져야 할까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포토그라피》라는 사진잡지를, 《사진문화》라는 사진잡지를 돈셈으로 헤아려야 할까요. 종로서적이 무너지면서 함께 사라진 책들 가운데 하나인 《인권운동》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값나가는 보기드문 책으로 쳐야 할까요. 삼성출판사에서 1970년대에 손바닥책으로 엮어낸 ‘한국문학전집’을 돈값에 따라 바라보아야 할까요.


―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45쪽)


 ‘우라느스키’라는 분이 쓴 《무신론자의 바이블》(정음문화사,1984)을 읽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노후의 생활도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해 나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신체 장애자의 경우도, 힘껏 공부해서 가능한 한 자기의 힘으로 살아야 하리라. 사는 권리란, 자기 자신의 의사와 능력으로 사는 권리이며, 타인에게 의뢰하며 사는 권리가 아니다.(142쪽)”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다가, 문득 ‘우라느스키’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책에도 소개가 없고, 인터넷에서도 이이 발자취를 살필 수 없습니다.

 1960∼70년대에 우리 나라에 곧잘 소개된 ‘무샤고오지 사네아쓰’라는 일본 철학가 발자취 또한 인터넷 찾아보기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1961년에 번역된 《젊은 날의 철학》(백문사)을 읽으면, “좋은 문학에 접하면 자기를 살리는 방법, 어떻게 하면 자기 완성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의 사는 목표를 볼 수 있게 된다.(29쪽)”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1961년에 이이 철학책 묶음이 손바닥책으로 여섯 권 나왔습니다만, 마흔 해 남짓 지난 오늘에 와서는 책은커녕 발자국조차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 “책이 이리 되도록 많이도 봤구나.  좋아, 어떻게든 해 보자꾸나.” “전 나무가 좋아요. 이 책엔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24쪽)


 사람들이 저한테 “헌책방이 뭐 그리 좋아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볼 수 있나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만난 보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제 책상맡에 있는 책을 휘 둘러보다가 요즈막에 장만한 책을 집어서 보여줍니다. “지금은 비록 판이 끊어진 책이거나, 출판사가 문을 닫아서 사라진 책입니다만, 세월이 흘러도 우리한테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에요.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는 책이에요. 세상흐름을 잽싸게 옮겨타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으려 하지 않은 책이라면, 지금은 새책방 진열대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헌책방에서 다시 빛을 보기 마련이에요. 저는 헌책을 보거나 새책을 보지 않고 그냥 ‘책’만 보고 있어요. 헌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하는 이름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책을 살필 수 있어 좋아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칭찬을 하거나 북돋워 주네 하는 이름에 따라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있어 좋아요. 그 어느 평론가나 책소개꾼들도 알아채지 못한 책이라 하겠지요. 누구보다도 샛장수 아저씨들이 고물상에서 건져낸 책이고, 헌책방 일꾼이 솎아낸 책이에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그래서 헌책방 일꾼은 허파가 안 좋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책에 담긴 줄거리는 모르실 수 있으나, 누군가한테 꼭 쓸모가 있구나 느껴서 하나둘 그러모은답니다. 저는 이렇게 솎여진 책에서 제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책을 가만히 살피면서 즐겨요. 더구나 주머니가 후줄근한 날에도 돈 몇 천 원이면 마음을 살찌우는 책 하나를 고맙게 얻을 수 있으니 좋지요. 책에 낀 먼지는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박박 문지르거나 살살 쓰다듬으며 닦으니 더 좋아요. 깨끗한 책을 싫어하지 않아요. 조금 지저분해진 책을 깨끗하게 추슬러 주면서 겉보기를 넘어서는 속살을 읽을 수 있으니 사람을 보는 눈매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더 살필 수 있게 되잖아요.”


― 책방에는 새로 나온 식물도감이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난, 내 책을 고치고 싶어.” (8쪽)


 누군가 묻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 많이 보셨겠네요?” 싱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요. 어릴 적에 책이 어디 있어요. 다만,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여서 ‘교사용 문제집’은 잔뜩 얻어와서 숙제라며 안겨 주셨어요. 그 문제집 푸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푼 적은 거의 없어요.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기 바빴는걸요. 그래도 교사 집안이라고, 또 형이 어릴 때에 똑똑해서 책을 읽힌다고 딱따구리 무슨 전집이 하나 있었고, 삼국지하고 한국역사 전집 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월부책장사한테 산 책일 테지요. 때때로 이 책들을 조금 들춰보기는 했지만, 형하고 저하고 가장 많이 본 책은 클로버문고 같은 만화책이었고(어머니 몰래 사서 모았습니다), 《소년중앙》이었어요. 《보물섬》은 돈이 없어서 빌려서 보았어요. 《소년중앙》에는 만들기 별책부록이 많아서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꼬박꼬박 사서 보았지요. 몰래 모은 이 만화들을 어머니께서 동네 쓰레기통에 죄 갖다 버리셔서 하나도 안 남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교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던 그때까지는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좋아요.”

 
 〈2〉 책은 나한테 무엇이 되었는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에 나오는 ‘소피’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를리외르 아저씨 같은 사람도 없었고, 소피처럼 두툼한 식물도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떠올릴 수 있던 어릴 적 제 책이라면, 어머니가 몇 차례 갖다 버리셨어도 다시 사고 또 다시 사서 갖추었던 《번데기 야구단》(까치) 같은 만화책입니다.

 글쎄, 뒤늦게 책을 깨닫고 지금은 책과 함께 살아가는 제가 된 바탕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을 버리신 어머니’ 덕분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어머니로서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될 만화책’이어서 버리셨겠지요. 형과 저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었을 테지만. 어머니가 책을 버리신 덕분에,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이 없는 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 만화책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면, 클로버문고뿐 아니라 수많은 1970∼80년대 만화책들이 잘 간직된 채로 부천만화박물관이라든지 어디엔가 바침책으로 드릴 수 있었겠지요. 또는 제가 인천에 연 도서관 책꽂이 한쪽을 아름답게 채우거나요.

 하지만, 형과 제가 없는 용돈을 10원짜리 하나까지 아끼며 사서 모았던 책이 버려졌기 때문에, 그것도 여러 차례 버려졌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나이부터 다닌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을 좀더 애틋하게 돌보거나 바라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나는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으려 한다’는 매무새를,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을 이제부터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잘 간직해서 내 딸아들, 또는 내 딸아들이 낳아 기를 딸아들과 그 뒤 사람들한테까지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는 꿈을 가슴 한켠에 새길 수 있었지 싶어요.

 《월간 목회》 1978년 5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이원수 님. 이 조그맣고 낡아빠진 책에 실린 이원수 님 동화는 ‘깨끗하고 반듯하고 큼직한 판에 글씨도 큰 새로 나오는 책’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78년 어느 잡지 별책부록으로 당신 동화를 한데 그러모아 펴낸 이원수 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아버지와 아들〉이 좋습니다. 이원수 님은 머리말에 “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읍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내 마음속에 그냥 가두어 두고는 배길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나의 동화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암과 싸우며 시름시름 앓고 있던 이원수 님은, 아픔을 온몸으로 삭여내며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쓰셨습니다.

 동화 줄거리만 헤아리자면 요새 나오는 판으로 읽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저는 동화 줄거리만 얻고자 책을 읽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묵은 책으로 굳이 찾아서 읽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처음 나오던 때 느낌을 함께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헤아려 볼 수 있어요. 그때 이 책이 책방에 깔리며, 또 그때 사람들 손에 쥐어지면서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가만히 톺아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보물이 아닙니다. 늘 옆에 있는 고마운 지기처럼 살가운 동무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오래되어 값나가는 보물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고운 속살을 내보이면서 마음빛이 바래지 않도록 어깨동무를 해 주는 맑은 벗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남 앞에서 뽐낼 만한 장서가 아닙니다. 오래도록 제 삶을 밝히고 가꾸어 주는 가운데, 제가 숨을 거두고 사라진 뒤에는 또다른 누군가한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훌륭한 이슬떨이입니다.


 〈3〉 티끌 같은 아쉬움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읽으면서, 또 보면서, 또 곰곰이 되새기면서 제 책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두루 얻는 한편으로, 몇 군데 아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 아이들이 볼 그림책인 만큼, 옮긴이는 아이들 말씨와 눈높이를 조금 더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오래오래 책과 가까이하기 바라는 마음이라면, 이런 책에 담기는 말과 글은 좀더 추스르거나 다독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에 뜨이는 아쉬운 글월을 몇 가지 뽑아서, 딱 한 가지로만 손질해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로만 손질했지만, 저마다 다 다른 말씨를 살리면서 손질하여 다시 쓰면 더 좋겠습니다.


 ┌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나무 이야기는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이 표지는 제 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껍데기는 제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추는 거야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춘단다

 ┌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빠뜨리셨어요
 └→ 그림이 있는 종이를 빠뜨리셨어요

 ┌ 아까 그림 속의 그 사람이야
 └→ 아까 그림에 그려진 그 사람이야

 ┌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 실 당김도, 가죽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고르기도

 ┌ 아버지 손은 마법의 손이에요
 └→ 아버지 손은 마법 손이에요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는” “나만의 책”을 품에 안게 해 준 를리외르 아저씨는, 아이한테 책을 가꾸고 돌보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린아이 스스로 살갗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보던 책 줄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고, 또 알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손질하는 책을 보는 사람이 그 책을 아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읽어내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당신 손으로 책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지요. 아이는 이 숨결을 느끼면서 자기가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에 담은 이야기임을 차츰 깨닫습니다. 부드러운 그림결로 두 사람 삶을 차분히 담아낸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하지만, 책날개를 두 가지나 붙여서 만들어야 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값으로 1만 원이나 붙게 한 만듦새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사람 마음까지 속깊이 헤아리지는 못한 듯합니다.

 찬찬히 적었어야 할 옮김 말투와 함께 ‘지나친 꾸밈새가 되어 버린 책날개나 만듦새’를 되짚거나 다스릴 수 있다면,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그림책은 더 많은 아이들한테 살뜰한 벗으로, 또 지기로, 또 길동무로, 또 이웃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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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07-10-05 11:49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번역문장으로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마구 공감이 가네요.
 
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다섯 손가락 이야기
- 글 : 카미유 로랑스, 장 드베르나르, 미카엘 글뤽, 로랑 고데, 엠마뉘엘 다를레
- 그림 : 마르탱 자리
- 옮긴이 : 백선희
- 펴낸곳 : 산하(2007.5.5.)
- 책값 : 8500원


― 다섯 사람한테는 다섯 빛깔이
 :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읽으며



 다섯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발걸음 너비며 팔 젓는 매무새며 얼굴빛이며 다섯 모습입니다. 열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열 가지 모습이고, 백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사람 눈에는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나, 참새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면 다섯 모습이고, 열 마리가 모이를 쪼면 열 가지 모습이며, 백 마리가 모이를 쪼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잖은 그림쟁이나 만화쟁이들은 천 마리도 아니고 백 마리도 아닌 열 마리나 스무 마리 개미나 잠자리를 그릴 때 틀에 박힌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들에 핀 꽃들이 같은 갈래라 해도 백 가지 꽃이 피었으면 꽃잎 크기부터 모양새까지 하여 똑같은 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이 다름을 느끼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적부터 제도권 입시교육으로 치달으며 우리 생각과 마음을 좀먹는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니까 자꾸만 다 다름(다양성)을 잃고 어슷비슷 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요. 자기 줏대를 가꾸지 못하니 유행에 휩쓸리게 되면서,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을 알맞게 사서 쓰거나 손수 마련해서 쓰지 못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되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에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연고대나 이화여대에 안 가면 사람 구실을 못할까요. 서울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천도 안 되는데, 팔십만∼백만에 이르는 수험생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갔다는 까닭 하나로 사람 대접을 못 받아도 될는지요.

 키가 큰 동무는 키가 큰 대로 반갑고, 키가 작은 동무는 키가 작은 대로 좋습니다. 오른손잡이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왼손잡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살림이 한껏 부풀어올라 세계 몇 손가락에 들 만큼 부자나라가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과 거지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잘산다고 다른 모든 나라가 잘살 수 있을까요. 우리들 모두는, 자기 깜냥대로 자기 발걸음대로 자기 몸피와 마음밭대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야기책 《다섯 손가락 이야기》는 사람마다 두 손에 걸쳐 열씩 있는 손가락이 모두들 어떤 노릇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엄지는 엄지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새끼는 새끼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지는 검지이기 때문에 훌륭하고 가운데는 가운데이기 때문에 멋지다고 이야기해요.


..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 연극은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연극을 해 보면, 손잡고 함께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거든요. 어른이 되더라도 말예요 ..  〈68쪽 / 미카엘 글뤽〉


 미국이 참말로 평화를 사랑하며 우리 나라하고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면, 한국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끔찍한 피울음을 울게 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억지로 맺으려고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태여 한국땅에 수만 미국 군대를 앉힐 까닭이 없는 한편, 미국에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공장을 ‘생필품 공장’으로 고칠 테고요. 뭐, 미국만입니까. 러시아도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일본과 북조선과 남한 모두 마찬가지예요. 중국과 대만과 인도와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4340.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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