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50명의 여성과학자 이야기
달렌 스틸 지음, 김형근 옮김 / 양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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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 과학자라기보다 ‘미국’ 과학자 이야기
 [잠깐 읽기 19] 달렌 스틸,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책이름 :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글 : 달렌 스틸
- 옮긴이 : 김형근
- 펴낸곳 : 양문 (2008.10.17.)
- 책값 : 14500원



 (1) 딸아이를 생각하며 읽은 책


 이제 석 달을 지난 딸아이가 뒷날 커서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을 펼쳐듭니다. 화석연구가, 조류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화학물리학자, 생화학자, 식물학자, 언어학자, 핵물리학자, 신경의학자, 우주비행사, 동물학자, 컴퓨터 과학자, 고고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의료물리학자 들을 아우르며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려간 삶을 아이가 나중에 하나하나 펼쳐넘기면서 살펴본다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길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 펄서를 발견한 후 조슬린은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1968년 결혼한 조슬린은 열정을 다해 매달렸던 전파천문학계를 떠나야 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근무처를 옮길 때마다 함께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슬린은 열 살 때 소아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파트타임으로 천문학과 교육 분야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  (조슬린 벨 버넬/37쪽)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쉰 사람은 모두 ‘여성이라서 안 돼!’ 하는 덫에 치입니다. 걸림돌에 막히고 울타리에 갇힙니다. 대학 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못하도록 막힐 뿐더러, 중고등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저 더 배우고 싶다는, 더 알고 싶다는, 더 깨닫고 싶다는, 자기가 디딘 이 땅과 세상에 무언가 자기 앎과 슬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소담스런 꿈 하나를 믿고 눈물어린 땀을 흘리면서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를 돌아본다면, 이제 그 어디에도 ‘여자가 어디 대학을!’ 하는 덫이나 울타리는 없습니다. 여자니까 초등학교만 보내도 잘 가르친 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법이나 무역이나 경제나 정치를 다루는 학문에서는 남자만 득시글거리지만, 여자라고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별을 못 달게 하고 야전장교는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여군도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곤 합니다. 책마을을 보면 여사장이 있는 곳이 많을 뿐더러, 여자 혼자 모든 일을 꾸리는 1인 출판사도 제법 됩니다.


.. 루스의 연구경력 가운데 대부분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루스가 죽자 인류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판했다. 근거가 약하고 무익한 연구였다고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루스가 주장했던 문화의 인성화가 막연한 느낌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류학자들은 루스의 독특한 인류학적 접근의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스가 주장한 바처럼 개인적이고 고정적인 상황 모두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론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루스 베네딕트/42∼43쪽)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여자한테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자가 어떤 일이건 마음이 닿고 뜻이 닿고 생각이 닿아서 온몸 내던져서 즐거이 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많이 넘친다고 하지만, ‘옛날과 견주어 많이 넘치는’ 셈이지, 참 자유와 참 평등으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막상 우리 딸아이를 낳고도 그럽니다. 본가든 친정이든 ‘애 엄마가 애를 돌보고 애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레 이웃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살붙이와 이웃만 그러하겠습니까. 동무들도, 또 저를 안다고 하는 분들도 이러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애를 어르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애를 씻기고 이불을 빨고 털고 말리고 하는 둥, 온갖 집안살림을 도맡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백일도 안 된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살갗으로 느낀다면, 둘 모두 백일이건 돌을 맞이할 때까지건 몸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음을 당신들도 뻔히 겪어 보았음에도 현실에서는 다릅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서 잊고,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일찌감치 손을 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를 배면 달마다 때맞춰 병원에 찾아가 내진을 받아야 하고, 초음파사진을 찍어야 하고, 아기한테 장애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성별을 알아내고, 비타민과 철분제를 먹어야 하고, …….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할 만한 일들이 우리 삶터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예방접종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하는 줄, 또 산부인과에서 회음부 자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여기면서 이런 아기낳기가 마치 ‘자연분만’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한편, 촉진주사와 무통주사를 놓아 아기를 낳게 하다가, 의사들끼리 힘들면 배를 쭉 째서 끄집어내고, 갓난아기 태지를 함부로 박박 벗기는데다가 형광등 불빛을 쐬도록 내버려두고, 갓난아기한테 엄마젖이 아닌 분유를 먹이지 않나, 아기 낳은 엄마들을 몇 분조차 쉬지 못하게 하며 일으켜서 걷게 하지를 않나, ……. 모두 가슴이 서늘할 만한 일들이 우리 세상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취업 제의도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편 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티에게 취업을 제의하는 기관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들어온 제의에 응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에도, 거티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는 ‘비정상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1931년 미주리에 있는 워싱턴대학이 코리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의했다. 칼은 약학과 학과장이 되었지만, 거티는 보조 연구원으로 만족해야 했다 ..  (거티 코리/67쪽)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고 하는데, ‘시대를 뛰어넘었다’기보다는 ‘남녀 불평등’을 딛고 일어선 여성과학자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미국에서 남녀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을 때, 어려움을 딛고서 저마다 다 다른 갈래에서 학문을 새롭게 일으켰다’고 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세상 수많은 남자들은 ‘새로운 학문으로 넓히기’보다는 돈벌이를 하려고 제 밥그릇을 지키는 학문에 매여 있을 때, 여성과학자들은 ‘먹고살자면 돈도 벌어야겠지만, 오로지 그 학문이 마음에 티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좋아서 파고드는’ 가운데 남자 과학자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캐내고 알아내고 밝혀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메리 휘트니는 수학을 아주 잘했다. 똑똑하고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그녀에게 선생님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휘트니가 갈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1865년 뉴욕 포킵시의 바서대학이 여성들에게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 가운데 여성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다 ..  (메리 휘트니/295쪽)


 어쩌면 터무니없는 울타리가 높고 어처구니없는 덫이 곳곳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더 힘을 쓰고 마음을 바치고 땀을 흘리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봅니다. 걱정없이 학문을 하지 못했고, 어려움없이 학문에 온몸 바칠 수 없었기에, 스스로 더욱 훌륭해지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밭길은 한 사람을 몹시 괴롭히지만, 괴롭힘으로만 끝내지 않고 더 단단하게 여미어 줍니다. 더 힘있게 끌어올립니다. 더 야무지게 다스려 줍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스스럼없이 맞이한다면, 얼마든지 껴안으면서 걸어간다면.

 좋은 조건 하나 없는 가운데 더 빛나는 꽃을 피우고, 넉넉한 터전 하나 없는 가운데 더 싱그러운 잎을 틔우며, 따뜻한 품 하나 없는 가운데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2) ‘여성’ ‘과학자’란 어떤 ‘사람’일까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오래오래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기는 했지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슷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여성과학자를 빼고는 퍽 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앨리스는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동안 부동산에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앨리스는 교직을 그만두고 식물 채집을 위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앨리스 이스트우드/87쪽)

.. 부유한 틸리의 가족은 그야말로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중요했다 ..  (틸리 에딩거/90쪽)

.. 당시 윌리어미나는 임신 중이었으나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여성으로서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녀나 가정부 자리를 찾아나섰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은 계기는 하버드천문대 소장이던 에드워드 피커링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이 된 것이었다 ..  (윌리어미나 플레밍/100쪽)



 생각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과학이라는 데에도 좀더 눈을 뜨면서 학문을 즐기거나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있는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이름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대를 뛰어넘은’ 과학자가 된 분이 참으로 많다고 느껴집니다.

 학교라는 데를 발도 디디지 못했을 수많은 여성들, 학교에서 배울 권리를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숱한 여성들, 학교가 아닌 집에서라도 세상을 배우거나 부대낄 자리를 한 번이나마 얻어 보지 못한 셀 수 없는 여성들, 집에만 갇혀 집살림에만 마음을 쏟도록 내몰린 어마어마한 여성들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오롯한 한 사람이 되자면, 이이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 사느라 일굴 논밭이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밥하기와 치우기쯤은 스스로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옷을 깁든 빨든 다리든, 집을 꾸미든 고치든 손보든, 남한테 삯을 주어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이름은 우리한테 무엇일는지, 우리 딸아이한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앞으로 자라는 동안, 머리는 굵지만 다리는 가느다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가 비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알맞춤하게 튼튼하면서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자면, 아버지 된 저부터, 어머니 된 옆지기부터 삶을 바꾸어야 할 테지요. 아니, 삶을 바꾼다기보다 옳게 추슬러야 할 테지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몸가짐과 살림살이까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할 테지요.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을 쓰신 분께서는 구태여 이런 대목을 짚을 까닭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니 과학밭에 굵직하게 발자국을 남기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발자국 굵직한 분들만 골라서 이야기를 펼치면 된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꼭 미국 울타리에서 ‘여성과학자’를 살피면 넉넉하다고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든 문학가든 정치꾼이든 예술가든 어느 누구이든, 학문으로 남긴 발자국만으로 ‘시대를 뛰어넘은’이라는 꾸밈말을 앞에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꾸밈말을 손쉽게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란 무엇이고 ‘뛰어넘기’란 무엇인지, 여기에 ‘여성’이라는 이름과 ‘과학자’라는 이름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4341.1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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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아찔한 세계사 박물관 1
리처드 플랫 지음, 김은령 옮김, 노희성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본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을까?


- 지은이 : 리처드 플랫
- 옮긴이 : 김은령
- 그림 : 노희성
- 펴낸곳 : 푸른숲 (2008.8.15.)
- 책값 : 9500원



 함께 책장을 넘기던 옆지기가, 책을 덮은 뒤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본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어 할까요?”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 그렇겠구나 싶습니다. 햄버거라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온갖 공정을 꼼꼼히’ 말해 주지는 않으나,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몸속에 집어넣는 먹을거리로 무엇이 있고, 또 햄버거 같은 화학약품에 찌든 조합물하고 지난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몸속에 알뜰히 넣었던 먹을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어요. 우리한테 익숙한 먹을거리가 꼭 몸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아닌지, 우리한테 낯선 먹을거리라면 우리 몸에 나쁜 먹을거리일지 아닐지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끕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큰 문제를 아주 짤막하고 손쉽게 풀어내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가 날마다 먹는 밥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에서는 애써서 책 하나로 묶어내어 아이들한테 선물을 해 주는데, 우리 나라 서울대학 출판부나 연세대 출판부, 또 고려대 출판부를 비롯해서, 이화여대 출판부, 숙명여대 출판부, 그리고 나라에서 스스로 내로라하는 대학교 출판부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집니다. 또 대학교수님들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한편,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출판사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선물해 주려고’ 땀을 흘리는지 궁금합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우리 음식 발자취”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일지요. (4341.9.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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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유승호 지음 / 일신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는 ‘재개발’ 아닌 ‘사람사랑’ 먹어야 자란다
 [잠깐 읽기 15] 유승호, 《문화도시》



- 책이름 :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 글쓴이 : 유승호
- 펴낸곳 : 일신사 (2008.7.9.)
- 책값 : 2만 원



 (1) 버린 삶, 거두어들인 돈


.. 문화도시는 ‘고립’이 아닌 ‘고독’을 즐기면서 세계와 평평히 연결되는 것이다. 미국의 아르코산티도,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도 모두 작고 ‘고독’한 도시들이나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인생과 세상을 함께 호흡한다 ..  (머리말)


 우리 나라 서울은 너무 큰 도시입니다. 남쪽에 있는 부산도 너무 큰 도시입니다. 가 볼 수 없어 모르지만, 북녘땅에서 평양도 너무 큰 도시가 아니랴 싶습니다. 서울이나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대전과 대구도 큰 도시입니다. 인천과 광주와 울산도 그에 버금가는 큰 도시입니다. 수원, 천안, 부천, 춘천, 안양, 구미, 마산, 통영, 진주, 전주, 익산도 자꾸자꾸 커다란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크게 되고자 하는’ 도시는 밖에서 내다보는 크기로는 커다랗게 되기는 할 터이나, 도시다운 빛깔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다른 도시라는 빛깔, 이곳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빛깔, 강원도면 강원도 전라도면 전라도 충청도면 충청도라고 하는 빛깔을 거의 보여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서울 빛’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부산 맛’이란, 대구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대구 냄새’란 무엇일까요. 따로 있을까요. 따로 있는가요. 부산에서 고갈비를 먹고 인천에서 삼치를 먹는들, 부산다움과 인천다움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천안은 왜 천안이고 청주는 왜 청주이며 남원은 왜 남원일까요.

 가만히 보면 도시만 도시빛이 없지 않습니다. 시골도 시골빛을 잃습니다. 시골사람 농사짓기는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어들이는 데에 뜻이 있지 않았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와 살림살이는, 시골도 시골답지 않게 도시도 도시답지 않게 바꿔 놓습니다.


.. 나폴리는 우리 나라의 부산과 달리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도시 내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하였다 … 도심재생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볼로냐는 1985년부터 도심을 6구역으로 나눠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 활용방안을 세밀하게 수립한다 ..  (18쪽)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만, 시골 기차역(간이역)은 시골 기차역이었기에 좋았습니다. 건물을 비슷비슷하게 지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시골 기차역은 가는 데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요 저마다 다른 빛깔이요 곳곳이 다른 냄새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고속철도가 뚫리지 않던 때를 돌아보고, 고속도로가 나지 않던 때를 헤아려 보면, 우리 나라 전국 어디를 가도 ‘사람마음이 따뜻했다’고 했습니다. 한자말로 하면 ‘인심(人心)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돈 한푼 없이도 전국을 걸어서 돌아보았다는 말을 곧잘 들었고, 잠자리가 마땅하지 않아도 곁방 하나 어렵잖이 얻어서 지낼 수 있었다는 소리를 퍽 들었으며,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된다는 밥나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전국 어디를 가도 돈이 없으면 이야기동무도 잠자리도 밥도 얻기 어렵습니다. 돈이 없으면 만나 주지 않고, 돈이 없으면 손사래치고, 돈이 없으면 거지를 왜 먹여살리느냐는 소리가 나옵니다.

 틀림없이 오랜 옛날과 견주어 우리들 살림살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아졌으며, 우리 주머니는 그지없이 넉넉해졌고, 우리들 집크기와 차림새는 참으로 말쑥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물질만큼 우리들 마음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들 마음은 더 나아질 꼭대기가 없이 서로 오붓하고 조촐했을지 모르는데, 이 마음을 우리 스스로 버리고 주머니 채우기에만 바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유럽문화도시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면,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유럽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국에 문화도시를 지정함으로써 지역분산화를 이루었다 … 문화도시의 시초는 자연환경과 문화재를 바탕으로 눈에 띄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서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객들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 바스크정부가 장기간 수립한 도시 재개발 전략은 고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주거 지역을 보호하면서 관할 15개의 크고 작은 중소도시들을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게 특화하는 균형적 발전을 유도했다 ..  (74, 93, 97쪽)


 지붕이 낮을수록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인사가 오가게 됩니다. 아파트로 바뀌어 층수가 올라갈수록 이웃과 멀어지게 되고 남남으로 갈리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없이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자기 마을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게 되고 꼼꼼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빨라질수록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지게 되고 동무조차 나 몰라라 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가난하니 나만큼 주머니가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두둑한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리거나 키울까 하고 마음을 쏟게 됩니다.

 배운 것 많지 않으니 못 배운 대로 꾸밈없이 말하고 쉽게쉽게 풀어 나갑니다. 배운 것 많으니 배운 대로 꾸며서 말하고 갖가지 지식 섞인 말로 어렵디어렵게 비비꼽니다.

 낮은자리에 있으니 낮은자리 동무나 이웃을 눈여겨보며 서로 돌보고 서로 보살피게 됩니다. 높은자리에 있으니 높은자리 경쟁자 눈치를 살피며 서로 선물을 돌리고 서로 다른 이 자리에 눈독을 들입니다.

 돈을 얻고 싶으면 사랑을 버리라 했고, 힘(권력)을 얻고 싶으면 믿음을 버리라 했으며, 이름값을 높이고 싶으면 이웃과 나누지 말라고 했습니다. 돈하고 사귀니 사람하고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힘(권력)하고 사이가 좋으니 사람들과 믿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이름값에 따라 움직이니 이름없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고 맙니다.


 (2)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는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즐거움의 공간이 공존하는 도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일상적인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  (260쪽)


 제가 사는 동네는 몇 해 앞서부터 ‘재개발’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고향 삶터만 바람 잘 날이 없지 않습니다. 서울도 부산도 대구도 제주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재개발이 수없이 있고, 재개발에 따라서 보상을 해 주느니 분양값이 어떠느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떠돕니다. 여태껏 당신들 집자리를 보금자리로만 여겨 온 분들이 몇몇 사람 쑤석거림에 하나둘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서, 이제 ‘집 = 보금자리’가 아니라 ‘집 = 돈굴리기 투자대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살 집이 아니라 좀더 비싸게 내다 팔 투기대상이 되어 가면, 자연스레 잃어버리는 집다움입니다. 집이 집다움을 잃은 마을에서는 사람이 오가는 길이 길다움을 잃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집과 학교를 오가며 느긋하게 걷던 골목길마다 짐차며 학원차며 자가용이며 마을버스며 끊이지 않고 오락가락합니다. 동무와 손잡고 나란히 걷던 길이, 골목집 담벼락에 바싹 붙어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때때로 아예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무섭고 메마른 길이 되고 맙니다. 시골길에도 길섶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읍내나 면내 마실을 다니기 어렵지만, 도시 골목길에도 넉넉한 거님길이 없어지면서 어르신뿐 아니라 어린이도 젊은이도 아슬아슬한 찻길이기만 합니다.


.. 이렇게 바스 시는 온천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개발해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향유하게 하였다. 이 같은 사례는 현재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산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하여 이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물질적인 자산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148쪽)


 지금도 찻길이 많지만 더 많은 찻길을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찻길을 댈 수 없음에도, 차를 줄이기보다 찻길을 늘립니다. 자꾸자꾸 새로운 차를 만들어서 자꾸자꾸 길바닥에 굴리게 해야 세금도 많이 걷히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지금도 빈 아파트가 많지만 더 많은 아파트를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쏟아지는 빈집에 들어갈 사람이 모자람에도, 작고 소담스러워서 돈적은 이들도 걱정없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부동산 값 뻥튀기하는 데에 쓸모 많은 층수 높고 평수 넓은 비싼 아파트만 끝없이 지어대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해야 예산도 많이 쓰고 떡고물도 많이 나오고 세금도 자연스레 많이 걷힐 뿐더러 경제가 산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아파트만 올라서는 땅에는 아무런 문화가 서리지 못합니다. 자동차 문명과 아파트 문명은 있을 테지만, 사람 사는 문화와 마을이 엮어내는 문화란 깃들지 못합니다.

 자동차와 아파트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모두들 똑같은 회사원이 되고,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사무직으로만 일한다고 할 때에, 그 도시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대물림하여 구멍가게를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개성이 있습니다. 대물림하여 이발소를 꾸리고 대물림하여 과일집을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빛깔이 생깁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역사 깊은 기와집이나 벽돌집을 잘 손질해서 동이나 면 하나마다 조그맣게 꾸리는 도서관이 될 때 비로소 마을 문화가 서리게 됩니다. 교보문고 무슨 지점과 영풍문고 어디 지점이 아니라, 동네에 고유한 작은 새책방과 헌책방이 골골에 뿌리내릴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을 문화가 싹트게 됩니다.

 영어만 내세우는 특성화 고등학교나 영재 고등학교가 지역 교육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지역 문화를 북돋우겠습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집값이 넘실거리는 ‘새로 재개발하여 꾸미는 도심지’가 생명력을 품에 안을 수 있겠습니까. 길어야 열 해나 스무 해 지나면 다시 낡아버려서 또 재개발을 해대는 통에 길이 막히고 먼지 풀풀 날리게 되는 그 ‘새도시(신도시)’가 무슨 중심지가 되고, 무슨 일류도시 거점이 되겠습니까.


.. 어느 도시가 아름답다고 한다면, 이것은 도시의 어떤 특정한 부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  (240쪽)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입니다. 공사를 하든 개발을 하든, 사람이 사는 곳을 ‘그동안 살던 사람’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이 즐겁고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자리로 가꾸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살 수 있는 살림터가 아니라 돈이 적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한테만 즐거운 살림터가 아니라 적게 배운 사람한테도 살가운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자가용 모는 사람한테만 마음 기울이는 살림터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 걱정없이 오갈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3) 더 깊이 엮어내지 못한 책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겠다면서 나온 책 《문화도시》를 읽습니다. 읽다가 몇 번씩 책을 덮고 책상맡에 밀어 두게 되었는데, 마지막 쪽을 넘기고 이제 더는 펼칠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여느 사람들이 읽을 책이 아니라 대학교재로 쓰려고 엮은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9월에 읽을 만한 책’ 열 가지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한 책입니다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이 책을 누구한테 추천하고 누구한테 선물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라기보다는 유럽과 미국과 일본)에서 ‘문화도시’라 할 만한 곳을 몇 군데 뽑아서 짤막하게 소개해 주면서, 그 도시들이 어떠한 대목에서 훌륭하고 어떠한 대목에서 모자란가를 다루어 줍니다. 그러나 이 소개와 풀이가 여태까지 여러 가지 낱권책(다른 사람들이 쓴 낱권책 또는 논문)에서 찬찬히 다루어진 이야기를 간추렸다는 느낌이 들 뿐, 그 문화도시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우리 사는 이곳에서는 ‘우리 나름대로 어떤 길을 찾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문화도시는 그 나라에서 어떤 값과 뜻으로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짚어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학문 열매로 ‘문화도시’를 풀이내리겠다는 글쓴이 마음은 읽을 수 있습니다만, 지금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한국문화와 한국도시’를 바라보는 눈썰미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문화를 보지 못하면서 한국도시를 꿈꿀 수 없고, 한국사람 문화와 삶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문화도시’가 나아갈 길을 짚을 수 없을 텐데, 왜 이러한 대목에서는 글쓴이 스스로 자기 길을 열지 못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나라밖 학자들 학설을 소개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낱권책 여러 권과 논문으로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 짤막하게 간추려서 모두어 보여주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이름부터 《문화도시》라고 내걸고,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겠다고 내세우고 있다면 아니지요. 두루뭉술한 학문탐구로, 또 나라밖 사례 가볍게 소개하기로 272쪽을 채우기에는 너무 모자라거나 엉성하거나 어설프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판권을 살펴보니, “이 책의 출판은 교육부 누리사업의 교재출판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굵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렇군요. 대학교재 맞군요. 그러면 대학생들한테 읽히려고 쓴 책이라는 소리인데, 대학생들은 이 교재를 읽으면서 ‘문화도시’를, ‘한국문화’를, ‘한국도시’를, 그리고 ‘한국땅에 걸맞는 문화도시’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받아들여야 할까 걱정스럽습니다. ‘문화도시’는 책상 앞에 앉아서 넘기는 책과 자료에 있지 않을 텐데요. (4341.10.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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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두 바퀴 이야기
김세환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 세상이지만
 [잠깐 읽기 1] 김세환,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책이름 :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
- 글쓴이 : 김세환
- 펴낸곳 : 헤르메스미디어(2007.4.5.)
- 책값 : 9800원



 (1)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 세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한 소리를 듣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실업자는 실업자대로 한 소리를 듣고,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농사꾼은 농사꾼대로, 글쟁이와 사진쟁이는 글쟁이와 사진쟁이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한 소리를 듣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아이들대로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직 어려서 찻길에까지 나오면서 자전거를 타면 차에 치일까 걱정이라고 합니다. 골목길에서도 씽씽대며 자동차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쉴새없이 빵빵질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욕지거리 퍼붓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아이들대로 학교까지 자전거로 다니기 어렵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험공부에 시달려서 몸이 고단하기도 합니다. 자전거로 다닐 시간에 부모님이 자가용에 태워서 씽 보내주어야 몸이 덜 고단하고 공부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많다고들 이야기를 한답니다. 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학점따기 공부나 동아리 활동이나 사랑놀이나 온갖 일거리에 바쁘니 자전거 탈 겨를을 마련하기 힘듭니다. 일터를 나가는 사람들은 일터에 나가는 사람대로 치이고 볶입니다. 더욱이 저녁에는 툭하면 술자리인데 어느 세월에 자전거를 타겠습니까. 아침에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길을 나서니 자전거를 타고다닐 엄두는 도무지 내지 못합니다.


.. 내가 처음 산악자전거를 탄 것은 내 나이 마흔을 넘긴 시점이었다.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그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타기 어렵다는 산악자전거를 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놀라는 반응을 보내 왔다. 그런 시선들 속에는 부러움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현란한 복장과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것이, 나이로 보나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열망이 그 모든 부정적인 반응보다 강렬했다 ..  (77쪽)


 자전거 타기 힘든 세상, 아니, 가만히 살펴보면, ‘자전거는 타고다니지 말라는 세상’입니다. 지금 아이들 교육 얼거리를 보면, 참다운 사람으로 크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아닙니다. 더 높은 대학교에 가도록 시험점수 잘 받게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일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는 까닭이, 아이가 ‘착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뜻인가요? 아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재주를 기르라’는 뜻에서 가르치는 영어가 아니던가요? 한자를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를 가르칠 때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푸대접도 아닌 똥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한둘이 아닐 테지요.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사람 아니게’ 살도록 내모는 사회 얼거리가 갈수록 깊어지기 때문에 인문학은 똥대접, 찬밥대접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느긋하게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가꾸도록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두 다리로 우리 땅을 디디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일깨우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자기 몸뚱이를 움직여서 일하는 기쁨과 땀흘리는 맛깔스러움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들이마신 산소는 몸만 정화시킨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받은 온갖 스트레스와 걱정까지 날려 주곤 했다 ..  (8쪽)


 자전거는 취미일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삶입니다. 손빨래를 취미로 하는 분도 없지는 않을 터이나, 손빨래는 어디까지나 삶입니다. 1회용 기저귀를 안 쓰고 천기저귀를 쓰면서 손빨래를 하고 삶아서 빨랫줄에 널어서 햇볕에 말리는 사람들은 그저 환경운동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새로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좀더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1회용 나무젓가락을 안 쓰고 쇠젓가락을 쓰거나, 나무젓가락을 깨끗이 씻고 말려서 다시 쓰는 사람들도 그래요. 한낱 환경운동으로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을 가꾸고 보듬으려는 마음이라서 이렇게 합니다. 내 이웃과 내 식구들, 그리고 내 자신까지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1회용품 한 가지로도 우리 삶터를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자전거입니다. 자가용도 안 몰지만, 또는 자가용을 모는 분들이라 한다면 조금 덜 몰지만, 내 몸뚱이를 움직여서 내 힘으로 내 사는 이 나라 이 터전을 밟는 자전거입니다.


.. 편안한 복장 때문에 마음까지 가벼웠고, 페달을 밟는 다리에 더욱 힘이 갔다. 역시 나에게는 갇힌 공간인 자동차나 목을 누르는 넥타이보다 이렇게 자유로운 복장과 자전거가 제격이었다 … 정장을 벗고 자동차를 버렸던 그날, 내가 풍경을 즐기면서 가장 빨리 도착점에 이르렀던 것처럼 … “이런 오르막길을 어쩌면 그렇게 잘 오르세요?” 웃음으로 답하지만, 사실 나의 비결은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내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다. 빠르게 올라갈 자신은 없지만 지치지 않고 오래 올라갈 자신은 있다 ..  (41∼42쪽, 50쪽)


 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눈 비 바람 햇볕 어느 때에나 자전거로만 움직이면서 지난 몇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자동차꾼들이 일으켜 주신 ‘뺑소니 사고’ 여러 차례에 몸이 망가져서 팔다리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그리운 자전거가 먼지 먹는 모습을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걸레질만 해 줍니다. 아무래도 자전거 세상이 아닌 자동차 세상인데, 이런 세상을 거스른 탓일까요. 더 높은 학교를 다니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크고 빠른 차를 몰면서 살아야만 ‘내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인데, ‘위로 올라갈’ 생각은 않고 아래에서 자전거만 타고다닌 보람일까요.


 (2) 김세환 님, 다음에는 부디 ‘행복한 자전거’ 이야기로 …


 연예밭에서 일하는 김세환 님은 1986년부터 자전거를 탑니다. 그리고 2007년, 당신이 스무 해 남짓 즐겨 온 자전거 이야기를 책으로 하나 묶어냅니다.

 김세환 님이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 몰기로 당신 길을 걸었다면, 이렇게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을 수 없었을 겝니다. 그래도 당신 자서전을 쓰기는 쓰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만, ‘자동차와 살아온 발자국’만으로 펴낸 자서전이었다면, 우리 눈길을 그다지 사로잡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 어찌된 일인지, 좋은 자전거를 사면 다들 윌리부터 시도하려고 한다. 좋은 장비를 갖췄으니 뭔가 그에 걸맞은 멋진 기술을 구사해 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러나 산에서 자전거를 탈 때 기술은 곧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겸손하게 하나씩 단계를 밟아 배우겠다는 마음가짐부터 가져야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  (154쪽)


 그러나,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는 못내 아쉽습니다. 김세환 님 당신이 스무 해 넘는 세월을 자전거와 함께 살면서 ‘행복했다’고 말씀을 하지만, 얼마나 어떻게 ‘행복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행복한 자전거’를 말하는 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자전거 풋내기한테 알려주고 싶은 선배 도움말’ 몇 가지에다가, ‘아직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한테 해 주고 싶은 말’ 몇 가지에다가, ‘산타는자전거를 즐기고픈 이한테 미리 알려주는 말’ 몇 가지에 무게가 지나치게 쏠려 있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너무 적게 들어가 있고, 책에 담은 글은 ‘자전거에 앉아서 땀흘리며 쓴’ 글이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며 쓴’ 글이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김세환 님 자전거 삶 스무 해를 헤아려 본다면, 알맹이가 빠져 있다고 할는지요,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고 할는지요. 한편, ‘행복한 자전거’를 알뜰하게 채우지 못하는 가운데 책끝에 ‘김세환 님 자서전’ 비슷한 이야기를 달아놓습니다. 김세환 님을 좋아하는 분들한테 드리는 선물 같은 꼭지라고 보아도 좋을 수 있으나, 이 또한 ‘행복한 자전거’하고는 너무 멀리 떨어지고 맙니다.

 책을 읽으며 별 숫자로 점수를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만, 부디 김세환 님이 다음에는 좀더 ‘행복한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별 다섯 만점에서 둘 반을 드립니다. (4341.3.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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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2월
품절


학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 팔려나갈 노동력을 짜임새있게 길러내는 곳이다. 여기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거의 스무 해라는 긴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한마디로 ‘쓸모’있는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무 해 남짓 교육을 받는 동안, 수많은 잠재력과 고유한 꿈과 뜻을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생산요소’ 한 가지로 쫄아들어 버리고 만다. 시험과 점수가 엄청난 통제 수단이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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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바라는 일꾼을 대학교에서 기르고, 대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고등학교에서 기르며, 고등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중학교에서 기릅니다. 초등학교 또한 중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기릅니다. 우리 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초등학교에 넣기 앞서 초등학교가 바라는 아이가 되도록 기릅니다. (4340.7.1.해.ㅎㄲㅅㄱ)-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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