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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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4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춘기  
 

우리는 젊음을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사춘기(思春期)이다.
말 그래도 성난 바람과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처럼 
주체할 수 없는 청년의 감정 상태를 뜻한다.
이성에 사랑에 빠지게 되면 평소보다 더 열정적이게 되며
폭풍우가 그치듯이 사랑의 열정이 식어지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와 여러 가지 상황들에 민감하여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의 변화가 잦다.
사춘기가 찾아오면 청년은 쉽게 기뻐하며, 쉽게 절망한다.
사춘기는 정신적인 변화 이외에도 성인이 되는 육체적 변화도 포함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춘기는 정신적인 변화로만 보고 있다.
15~20세가 되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춘기가 항상 이 나이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심신 발달은 계속 된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정신 발달 속도도 다르다.
사춘기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겪는 사람이 있으며
성인으로써의 신체적 발달은 이루었지만 조금 늦은 나이에
정신적인 사춘기를 겪는 사람도 있다.
나이는 먹더라도 정신만은 아직 젋고, 여전히 생기(生氣)가 넘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40년 동안 함께 결혼 생활하고 있는 부인이
여전히 사랑스러워서 젊었을 때의 그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낀다는
어느 60대의 애처가의 말처럼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지내는 것은
로맨시스트들의 소원일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인 사춘기가 늦은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다거나
또 한 번 느꼈던 사춘기가 또 다시 찾아온다면 좋은 것일까? 
 

  

 

 죽어도 못 보내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비운의 남자,
‘베르테르’ 도 어떻게 보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춘기의 희생자이다.
베르테르가 25세가 되던 해에 로테를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인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없어서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다. 
그녀가 사랑하고 있는 약혼자의 존재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한다. 그런 괴로움을 주체할 수 없어서인지,
그는 빌헬름이라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사연들을 애애절절하게 풀어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베르테르는 사랑의 폭풍우를 겪게 된다.
로테가 자신에게 조금이라고 호감 가는 말이나 태도를 보이면
베르테르는 집에 돌아와서 혼자서 그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암묵적으로 추파를 던져보나
로테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갑자기 불이 타오르듯 절망과 자괴감에 휩싸인다.
로테 곁에 약혼자가 있는 것을 목격하면 절망과 동시에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듯, 베르테르의 롤러코스터식 심정 변화를 기록된 편지들을 보게 되면
마치 어느 정신병자의 수기를 보는 거 같다.
아니, 베르테르는 너무 지나친 ‘일루전 증후군(Illusion Syndrome)’ 의  

증상이 보이고 있다. 일루전 증후군의 특징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호감이 가는 사람이 조금만 잘해줘도
착각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적인 혼란 상태를 겪게 된다.
그리고 하루 내내 그 사람이 생각나 머리가 깨지듯이 아프며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일루전 증후군은 정신병은 아니다.
일루전 증후군은 지극히 우리가 살면서 겪는 정상적인 심리적 현상이다.
그리고 이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은
증후군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자신의 의지로 기억에서 지우면 된다.
그러나 베르테르처럼 너무 지나치게 증상이 계속되면 문제가 있다.
오히려 베르테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로테에 대한 사랑을 지울 의지도 없다.
자신이 지금 하나의 여자 때문에 미쳐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 스스로 사랑의 늪에 뛰어 들어가 고통에 시달린다.
그리고 결국 그 늪에 들어간 대가(代價)는 자살이라는 죽음을 맞게 된다. 
 

 

 

 젊은 88만원 세대들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발표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출간 이후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젊은이가 많았다고 하며
나폴레옹도 이 책을 즐겨 읽었단다.

그런데 나는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대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베르테르처럼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감정 이입이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간혹 읽다가 사랑에 관한 의미심장한 구절도 있긴 있었지만,
베르테르가 자신의 심정을 이러쿵저러쿵 쓴 편지들을 읽어나갈수록
오히려 읽고 있는 내가 베르테르의 꼴이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보면 편지를 읽는 대상자인 빌헬름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친구가 기껏 한 여자 때문에 어린애처럼 투정부리는데도
정신의사가 자신의 환자들의 사연을 귀담아 듣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 편지들을 읽어나간다. 그리고 베르테르가 죽고 나서도
많은 편지들을 모아서 기록하여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한다.

그리고 내가 이 작품에 큰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작품 속 시대의 ‘사랑’과 현재 시대의 ‘사랑’ 사이의 괴리감(乖離感)이다.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
즉, 로테가 있기에 나도 살아 있다는 점이다.
해바라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항상 해를 쳐다보듯이
베르테르는 로테에 향한 사랑의 감정을 통해
사랑 앞에서 울고 웃는 청년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창 괴테가 살던 독일은 낭만주의가 꽃이 피기 시작했을 때이다.
사회 흐름의 분위기에 탄 젊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사랑은
인간으로서 꼭 누려야 하는 정신적인 교감이었다.
괴테의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런 베르테르를 이상적(理想的)인  

젊음의 표상으로 추앙하였다.
요즘 시대와 비교하자면 ‘아이돌(Idol) 스타’ 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젊은 우리들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장정일의 시 구절처럼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라디오’ 와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금방 사랑하고 금방 헤어진다.
그리고 지금 88만원 세대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낭만을 누릴 여유가 없다.
20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취업 전쟁에 뛰어들면 자기 먹고 살기가 급급하다.
그리고 자신의 풍족한 삶을 위해서 사랑보다는 돈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사회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녀가 서로 다른 부(副)의 차이가 나게 되면 평생 지속될 사랑은 누릴 수가 없게 된다.
사랑이란 그냥 돈 많은 사람을 만나야 잘 사는게 장땡인 것이다. 
 

  

 더욱 더 슬픈 베르테르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면 베르테르 이외에도  

사랑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열의 사나이들이 있다.
자신의 가문과 라이벌 가문의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기어코 몰래 그녀를 찾아가 그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로미오,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애인을 되찾기 위해 주류 밀매로 부자가 되어
옛 애인에게 찾아가 접근을 하는 'The Great' 개츠비,
비록 운명은 베르테르처럼 비극적이지만 지금도 그들의 사랑에 대한 열정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베르테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슬퍼하는 마당에
자신이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슬퍼할 것이다.
우리가 ‘베르테르’ 라고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베르테르 효과’ 일 것이다.
베르테르처럼 소설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연쇄적으로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안타까운 사랑의 희생자라기보다는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자살 유발자로 인식하게 된다.
아마도 그의 이름은 ‘자살 유발자’ 라는 오상(誤象)의 이미지가 지속될 것이다. 
 

 

 Don't Read this at home! 
 

감정이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도
베르테르의 연애담을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가치는 여전히 있다.
지금도 베르테르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예전의 젊었을 때의 그 뜨거운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은 중년층들도 있을 것이다.

단, 사랑으로 인한 열병 말기 환자들에게 절대로 이 작품을 읽지 말기를 경고한다.
베르테르의 회의적인 감정에 쉽게 몰입이 되어  

당신들의 증상은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
괜히 이 책 읽다가 베르테르처럼 자살하지는 말기를.
자살을 하면 베르테르가 당신을 원망할 뿐이다.
그리고 당신의 고귀하고 유일한 생명을 한 순간의 선택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당신을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을 더욱 더 슬프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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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미술관 - 비즈니스에 감성을 더하는 Morning Art 아침 미술관 시리즈 1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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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명화 한 점. 아침에 우유를 마시듯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열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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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 이규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3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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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이의 죽음

이규보.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이던가,  

한 페이지를 자리잡고 있던 <슬견설(蝨犬說)>이라는 수필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규보의 지인(知人)이 개가 사람한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봤는데 가엾었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규보도 아주 조그만 이도 불태워 죽고 있는 게 가엾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머리털에 기생하여 피를 뽑는 해충이다.
그런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사람의 손에 의해 죽는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듣는 입장에서는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이규보는 지인에게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논리 있게 설명한다. 
 

 당신의 열 손가락을 한 번 깨물어 보시구려.
 어디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디까?
 한 몸에 있는 것이라면 크고 작은 마디 하나하나에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아픈 것이지요. 하물며 하늘로부터
 제각각 숨과 기(氣)를 부여받은 존재로서, 어느 것은 죽음을 싫어하고
 어느 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가 있겠소?  

 

정말 훌륭한 비유이다.
그리고 논리 전개도 뛰어나다.
하나의 사물(正)에서 부정(反)을 발견하고, 다시 이 부정론을
보다 높은 새로운 사고(合)로 만드는 변증법적 전개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길지 않은 문장에도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생명체가 크던 작던 다 살려고 하는 생명력이 있으며
더 넓게 말하자면,  

하나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이 글의 전개 방식과 교훈이 인상 깊었고,
그 이후로 이규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활의 발견

비록 선집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슬견설> 이외에도 시와 산문들은 참신한 발상과 의미 있는 교훈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글은 자신이 겪은 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나타나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글이지만,  

그의 글들은 기업들이 원하는 경영술을 보기도 하고
사회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풍족한 삶을 위한 처세술로 읽기에도 유용하다.

그가 쓴 시의 내용 중에서는
항상 글을 쓸 때 없어서는 안 될 벼루와 몽당 붓에게
공(功)을 인정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 하자는 의리를 보이기 한다.
(p 48. <몽당 붓> & p 254. <조그만 벼루>)
보잘 것 없는 사물일지라도 한 가지라도 유용한 능력이 있으면
인정을 해주는 그의 포용력은
요즘 유명 기업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정(情)을 강조하는 노사관계의 성격을 띄고 있다.
단순히 직원을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기계’ 가 아닌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도 가족 같은 임원’ 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이라도, 아니면 친구, 심지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자신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칭찬을 해라.
나 자신도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칭찬을 듣고 나면 마음 속에 있던 고래가 기쁜 마음에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그의 산문 중에는 <온실에 반대한다>(괴토실설 壞土室說, p 172)라는 글이 있다.
이규보는 자신의 자식들이 겨울에도 식물이 자라날 수 있게 온실을 만든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온실을 만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는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온실을 허물어뜨리라고 말하고,
만약 자기의 말을 어기면 혼내줄 것이라는 엄한 아버지로써 비춰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중요시하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즘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친(親) 환경적인 사회의 기본적인 코드가 비슷하다.
그리고 이규보의 자식이 만든 온실
한창 떠들썩하고 있는 ‘4대 강 사업’ 과 똑같이 느껴진다.
4대 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4대 강 사업으로 인해
환경 오염을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치치 않은 순수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말한다.
만약 이규보가 살아 있다면 그도 4대 강 사업을 반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슬견설>처럼 하나의 현상을 비유하여 올바른 삶의 방식을 제시한 수필이 많다.
<집을 수리하고 나서>(이옥설 理屋說, p 174)에는 제목 그대로
집을 수리하면서 느낀 것을 쓴 것이다.
이규보의 집은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두 칸은 비가 새나 고치지 못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칸에도 비가 새게 되어 한꺼번에 집을 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 샌 지 오래 된 두 칸은
집을 구성하고 있는 서까래, 기둥, 들보가 썩어서 못 쓰게 되어  

새로운 재료에 많은 돈이 들었다.
반면, 최근에 비가 새고 있는 한 칸의 기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아직 쓸 만 했었다.
결국,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치 않은 결과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는데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번의 잘못을 해도 다시 쓸 수 있는 기둥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결(結)에는 포괄적으로 ‘나라의 정치’ 도 이와 마찬가지임을 말하면서
당시 민심과 국정에 대한 고려 정치인들의 수수방관(袖手傍觀)적 태도를 꼬집기도 한다. 
 

 

  

 고려의 모럴리스트(Moralist)

그의 글들은 도덕적인 내용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호인 백운거사(白雲居士)가 ‘흰 구름에 사는 선비’ 라는 뜻을 보여주고 있듯이
자연을 사랑했으며 그 감정들을 아끼지 않고 글로 표현했다.
그리고 <슬견설>에서 나온 생명 존중 사상은
작은 해충 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항상 타고 다니던 말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한다.(p 144, <말의 죽음>)
그는 어떻게 보면
고려의 모럴리스트(Moralist)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글로
자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주위 사람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현자(賢者)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출판계에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많은 처세술 도서에는 분명 좋은 책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많은 책들 중에 가치가 있고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을 찾기가
백사장에 바늘 찾기이다.
넓은 서점에서 그런 책을 찾는 것은 오히려 시간낭비일뿐이다.
차라리 우리나라 옛 위인들의 옛 글을 읽는 것이 났다.
옛 선인들의 글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관록(貫祿)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읽는 사람 맥 빠지게 사례의 장괄설을 펼치다가 마지막에 결론짓는  

요즘의 처세술 도서보다는
참신한 비유와 사례로 콕 집어 말하는 옛 선인들의 글 속에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처세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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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 이규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3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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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슬픈 일은
오늘이 흘러 어제가 되는 것.
어제가 모이면 곧 옛날이 되어
즐거웠던 오늘을 그리워하리.
훗날 오늘을 잊지 않으려거든
오늘을 한껏 즐기자꾸나

- '오늘이 가면' (음주유작시좌객) 전문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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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 이규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3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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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사람으로부터 소나 말, 돼지와 염소,
개미 같으 곤충에 이르기까지,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을
같은 법이라오. 어찌 꼭 큰 생물만이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생물은
그렇지 않다 하겠소?
.....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당신의 열 손가락을 한 번 깨물어 보시구려.
어디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디까?
한 몸에 있는 것이라면 크고 작은 마디 하나하나에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아픈 것이지요. 하물며 하늘로부터
제각각 숨과 기(氣)를 부여받은 존재로서, 어느 걸은 죽음을 싫어하고
어느 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가 있겠소?

- '이와 개에 관한 명상' (슬견설) 중에서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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