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자연사 -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
마크 버트니스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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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사(natural history)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이나 인간 이외의 자연 발전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자연사의 사전적 의미에 인간 생존의 역사, 인류사가 빠져 있다. 자연사와 인류사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있는 한 쌍의 단어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을 자연 세계의 일부로 이해한다면 자연사와 인류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두 발로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짜 자원으로 활용했다. 자연을 개발 대상으로 인식한 인간중심주의가 득세하면서 자연 파괴 문제가 심각해졌다. 진화론에 심취한 지식인들은 인류의 문명, 특히 서양 문명이 진보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작동된 무한경쟁 세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보다 열등한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이 있던 자리에 문명을 세운다.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문명사는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


문명의 자연사: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는 문명을 만든 인간을 치켜세우며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를 거부한다.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만 바라보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보는 관점도 따르지 않는다자연사를 논할 때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에 지나치게 쏠린 채 바라보면 인간은 지구에 민폐만 끼치는 동물로 비친다. 맞는 사실이지만, 자연을 약탈하는 인간의 폐해만 강조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명을 만든 인간의 능력이 간과된다이 책을 쓴 생태학자 마크 버트니스(Mark Bertness)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본다. 인간을 자연 속의 일부로 보는 문명의 자연사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엮어진 지구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집합체다.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24







이유 이유





* 54

 




폴 에얼릭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주]




* 뒤표지







[]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폴 에얼릭(1854~1915)인간의 본성()(이마고, 2008)의 저자이자 이 책의 추천사(책 뒤표지)를 쓴 미국의 생물학자 폴 에얼릭(Paul R. Ehrlich, 1932~ )과 동명이인이다. 인간의 본성()을 쓴 생물학자는 1964년에 자신의 논문에 공진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노벨상을 받은 폴 에얼릭은 독일 사람이다. 그러므로 ‘Paul Ehrlich’를 영어식이 아닌 독일어식으로 표기하면 파울 에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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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않은 깊은 산 - 블랙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베키 스메서스트 지음, 하인해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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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블랙홀(black hole)은 이름이 많다우리에게 친숙한 블랙홀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블랙홀의 첫 번째 이름은 검은 별(Dark star)’이었다.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블랙홀에게 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영국의 성직자 존 미첼(John Michell)이다. 그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상상한 검은 별은 태양보다 무겁다. 검은 별은 질량이 매우 커서 빛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세다미첼은 우주 어딘가에 검은 별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검은 별을 관측하지 못했다. 렌즈와 거울을 개량한 망원경으로 더 깊숙한 우주를 바라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검은 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블랙홀을 가르강튀아(Gargantua)’라고 부를 것이다가르강튀아는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가 쓴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다블랙홀도 한자어 이름이 있다. 黑洞.[주]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흑동? 흑통?은 두 가지 뜻을 가진 한자라서 음()도 두 개다. 골짜기를 뜻하면 골 동’, 밝음을 뜻하면 밝을 통이 된다.


베키 스메서스트(Becky Smethurst)는 블랙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천체물리학자다. 그녀는 블랙홀이 태양계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소원을 끔찍한 재앙으로 여긴다. 블랙홀을 사랑하는 천문학자는 자신의 소원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녀가 블랙홀의 또 다른 이름 黑洞을 알게 된다면 매우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黑洞은 블랙홀의 진짜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그녀가 쓴 검지 않은 깊은 산블랙홀을 둘러싼 오해를 풀어주는 책이다저자는 블랙홀은 이름과 다르게 검지 않으며 거대한 구멍으로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책 제목인 검지 않은 깊은 산은 저자가 평소에 블랙홀을 소개할 때 쓰는 표현이다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만 하는 천체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들은 모조리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블랙홀 주변에 빛을 포함한 물질들이 중력에 이끌려 궤도 운동을 한다이때 빛은 휘어진 상태가 된다블랙홀 주변에 맴도는 물질들이 점차 쌓이면 거대한 산이 된다. 물질로 이루어진 산들이 솟아나면 골짜기(洞)가 생긴다. 우리는 아주 멋진 광경이 펼쳐진 우주의 산골짜기를 가까이 볼 수 없지만, 그곳은 우주에서 가장 밝은(洞) 곳이다


검지 않은 깊은 산은 상상의 검은 별’이 정식으로 블랙홀로 인정받기까지 수백 년에 걸친 모든 연구의 여정을 보여준다. 블랙홀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연구의 역사에 너무나도 유명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그는 죽을 때까지 블랙홀의 존재를 부정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등이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남성 과학자들의 명성에 가려진 여성 과학자들도 주목한다.


책 속에 오류라는 구멍이 보인다. 독자가 금방 눈치챌 정도로 커다란 구멍은 아니지만, 사실과 다르므로 저자나 편집자 또는 번역자가 이 구멍을 메꿔야 한다.



* 91~92





 러더퍼드1907년 맨체스터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방사능 원소가 붕괴하면서 내보내는 물질들을 계속 연구했다. 그는 이미 세 가지 방사선을 발견하여 각각 알파, 베타, 감마(빛의 감마선도 여기에서 비롯된 용어이다)라고 불렀고, 붕괴가 일어나면 원자가 자발적으로 다른 종류의 원자(다른 원소)로 변형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이 발견으로 190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원문]


 In 1907, he moved to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where he continued to study what was emitted by radioactive elements when they decayed. He had already identified three different types of radiation, which he dubbed alpha, beta and gamma rays of light get their name from), and showed that when the decay happens an atom spontaneously transforms into another type of atom (another element). It was for this that he won the Nobel Prize in Physics in 1908.



저자는 러더퍼드를 노벨 물리학상수상자로 착각했다. 러더퍼드는 노벨 화학상(Nobel Prize in Chemistry)’을 받았다.




* 100~101





 과학자들이 블랙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결정적인 사건은 1967년에 전파천문대에서 조셀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마틴 휴이시와 함께 초마다 진동하는 미지의 전파 신호를 발견하면서 일어났다. 이듬해에는 1054년에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기록한 초신성 잔해인 게성운의 중심에서도 같은 전파 진동이 발견되었다. 1970년까지 50곳에서 발견된 이러한 전파 진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과학자들이 가장 크게 수긍한 설명은 중성자별의 회전이다. 이처럼 전파를 내보내는 별인 펄서(pulsar)는 별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지에 관한 퍼즐을 완성할 잃어버린 조각이었다.



펄서를 발견한 학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마틴 휴이시가 아니라 앤터니 휴이시(Antony Hewish)’저자가 휴이시를 펄서 공동 발견자인 천문학자 마틴 라일(Martin Ryle)과 혼동했다. 





[주] 위키백과 블랙홀’ 항목. 위키백과에 적힌 참조 주석에 따르면 黑洞의 출처는 한국천문학회가 편찬한 천문학 용어집》(서울대학교출판부)이다. 하지만 2013년에 출간된 천문학 용어집개정판에 블랙홀’은 있지만 黑洞’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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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차원의 세계 포스트 사이언스 (POST SCIENCE) 18
신카이 유미코.하인츠 호라이스.야자와 키요시 지음, 전재복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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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

 

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기 있다.


 

-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 주제가(1984KBS 방영) 중에서 -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Euclid)차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속이 꽉 찬 입체를 자르면 단면이 생긴다. 단면을 한 번 더 자르면 이 생긴다. 선을 자르면 이 된다. 입체는 3차원이다. 이 세상은 3차원 공간으로 되어 있다. 3차원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가로, 세로, 높이를 규정할 수 있다면은 2차원이다. 가로와 세로만 있다. 선은 1차원이다. 선 한 개 표시하면 위치와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점은 0차원이다. 점은 도형이 아니다. 공간도 아니다. 길이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는 차원의 정의를 설명할 때 입체가 아닌 점부터 시작한다. (0차원)을 아무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면 선(1차원)이 생긴다. 선이 가로와 세로 방향으로 움직이면 면(2차원)이 된다. 면을 위아래로 움직이면 입체(3차원)가 된다푸앵카레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3차원에 차원 하나가 추가된 ‘4차원을 상상했다.


수학자들이 공통으로 정의를 내린 차원(0~3차원)공간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추가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합친 4차원을 제시한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개념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4차원에 뉴턴(Isaac Newton)이 믿은 절대 시간절대공간이 없다. 뉴턴은 어느 장소든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절대 시간), 시간이 지나도 공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절대공간).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상태로 된 차원의 정의를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내세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관찰하는 사람의 시간은 느리게 지나간다. 그런데 운동하는 물체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이 주변 환경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은 관찰하는 사람의 위치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주장했다. 시간은 어디서든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아인슈타인 이후에 활동한 물리학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다차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칼루차(Theodor Kaluza)클라인(Oskar Klein)은 상대성이론과 전자기학을 융합한 ‘5차원 시공간을 제시했다. 두 사람이 제안한 5차원 시공간은 크기가 아주 작은 둥근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관측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는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인 차원이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차원은 생각보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개념이다. 나처럼 차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학에 접근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수학자가 바라보는 차원과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차원은 차이가 있다. 수학자는 수식과 이론을 이용하면서 차원을 설명한다면, 물리학자는 관찰하고 검증하면서 차원을 이해하려고 한다.


물리학과 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차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와 같은 입문서를 읽으면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 두 명과 독일 출신의 저자가 함께 썼다.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수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다. 과학책을 읽기 전에 제일 먼저 원서가 출간된 연도를 확인해야 한다. 출간된 지 오래된 과학책은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 13년 전에 나온 책이다. 오래된 외국 과학책을 출간하려는 번역자와 편집자는 새로 발견된 연구 성과를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신비로운 차원의 세계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책에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았고, 책의 빈 곳을 역자와 편집자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은 중력파(gravitational wave)검증되지 않은 것이라고 썼다(122). 책이 나온지 4년이 지난 2015년에 중력파를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저자들은 힉스 입자로 알려진 힉스 보손(Higgs boson)’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입자라고 소개했다.



* 165~166

 




 이론물리학자들은 표준이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아직 미지의 입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입자에 힉스 보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략) 많은 물리학자나 우주론 학자는 이 거대한 장치가 성능을 발휘해서, 힉스 보손의 존재가 확인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힉스 입자는 중력파와 함께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오래된 숙제 중 하나였으나 2013년에 CERN(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이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1112월에 힉스 입자의 존재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먼저 공개했다.


책의 편집 상태도 좋지 않다. 오류와 오탈자가 너무 많다. 정오표 작성은 생략하고, 오류만 언급하겠다. 







96쪽에 아인슈타인의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80년에 태어나서 1952년에 사망했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1879년에 태어나서 1955년에 태어났다. 1880년에 태어나서 1952년에 죽은 아인슈타인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6촌 동생이자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귀화한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이다.







133쪽 각주에 있는 닐스 보어(Niels Bohr)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연도가 틀렸다. ‘1926이 아니라 ‘1922이다. 192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장 바티스트 페랭(Jean Baptiste Perr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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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0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상한 나라 폴! 너도 알고있니? 근데 84년이라고? 더 됐을 것 같은데. 나 초등학교 때 본 것 같은데. 암튼 내 최애 만화영화였지. ㅋ

cyrus 2024-05-04 19:25   좋아요 1 | URL
나무위키에 ‘이상한 나라의 폴’ 국내 방영 역사가 나오는데요, 1977년 TBC에서 처음 방영했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돼서 오프닝 영상이 남아 있지 않고요, 1984년 KBS판 만화 오프닝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요. 이때 나온 주제가가 저도 아는, 그 노래에요. 만화가 생각보다 진짜 오래됐어요. 저는 1996년에 나온 SBS판을 봤거든요. ^^

stella.K 2024-05-04 20: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이게 버전이 여럿 있구나. 96년도에도 있었다니 몰랐네. 난 오리지널 버전으로 본 거지. 진짜 어릴 때 생각난다. 😭

그레이스 2024-05-0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폴, 저도 봤죠. 신밧드의 모험을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맜던듯 해요^^

cyrus 2024-05-04 19:27   좋아요 0 | URL
<신밧드의 모험>, 이 만화도 제가 초등학생 때 봤어요. KBS에 방영했어요. ^^
 




314일은 파이 데이. 파이는 그리스 문자 π이며 원주율을 뜻하는 수학 기호다원주는 원의 둘레를 뜻한다. 원주에서 원지름을 나누면 원주율이 나온다. 원주율은 끝이 없는 값이다. 3.14로 시작해서 숫자가 계속된다. 근삿값인 3.14가 원주율이다. 수학자들은 3.14와 숫자가 같은 314일을 원주율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다.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20개월이라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1년이 금방 지나간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빠르다. 다음 달이면 5월이다. 달 수가 많아지면 나이 한 살 먹는 속도가 덜 빠르게 느껴질까? 갑자기 궁금하긴 한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해서 상상의 나래를 ‘1년은 20개월’, 딱 여기까지만 펼치겠다.


1년이 20개월인 세상에서 ‘1729은 파이 데이와 더불어 수학자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다1729.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수다. 하지만 이 네 자리 숫자는 수학자들에게는 뜻 깊은 수다1,729의 숨은 의미를 꿰뚫어 본 수학자가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이다라마누잔은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수학자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라마누잔은 스스로 수학을 공부했으며 복잡한 수식을 공책에 적어 가면서 계산했다
















* 로버트 카니겔, 김희봉 옮김 수학이 나를 불렀다: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사이언스북스, 2000)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풀어서 증명한 수식과 정리들을 편지에 써서 영국의 수학자들에게 보냈다그의 비범한 능력이 영국에 알려지지만, 오만한 제국의 수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드프리 하디(Godfrey Harold Hardy)는 생각이 달랐다. 당시 하디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하디는 생소한 증명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인도 청년을 영국으로 초청한다. 하지만 라마누잔은 단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떠나본 적 없는 힌두교 신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라마누잔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라마누잔은 하디와 함께 연구했고, 하디는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오만했으며 유독 라마누잔에게 쌀쌀맞게 구는 제국이었다. 라마누잔은 채식주의자여서 영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영국의 쌀쌀한 날씨는 라마누잔을 괴롭혔다. 몸은 얼어붙어 있어도 정신만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열정은 수식과 기호로 가득한 라마누잔의 삶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데워 주었다.
















* G. H. 하디, 정회성 옮김 어느 수학자의 변명: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세시, 2016)




몸이 허약해진 라마누잔은 병원에 입원했고, 자주 병문안을 온 하디와 수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하디는 병원에 가기 위해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였다고 말했다. 하디는 1,729를 평범한 택시 번호라고 했지만, 라마누잔은 매우 흥미로운 수라고 생각했다1,729서로 다른 두 개의 수를 세제곱 해서 더하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1,729를 눈여겨본 라마누잔에 대한 일화는 하디의 자서전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 나온다. 수학자들은 1,729 하디-라마누잔 수또는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 부른다.

















* 스토 야스시, 전종훈 옮김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우주의 수학》 (플루토, 2024)


* 콜린 스튜어트, 오혜정 옮김 《숫자로 끝내는 수학 100: 100개의 숫자로 이해하는 수학!》 (지브레인, 2016)




1,729가 유명해지면서 라마누잔은 천재 수학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또 원주율을 구하는 수식을 발견했는데, 여전히 수학자들은 그가 어떻게 수식을 생각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의 책 우주의 수학에 라마누잔이 증명한 원주율 구하는 식이 나온다. 스토 야스시는 이 책에서 수식이 아름답다고 예찬하면서도 라마누잔이 풀이한 수식은 복잡해서 아름다움이 느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극찬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라마누잔의 공책에 온갖 수학 공식과 정리들이 채워져 있다. 수식을 푸는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적혀 있다. 라마누잔은 힌두교에 숭배받는 나마기리(Namagiri)라는 여신이 꿈속에 나타나 수학을 가르치고, 잠에서 깨고 나면 여신이 알려준 것을 공책에 적는다고 했다.


택시 수 1,729와 여신이 가르쳐준 것을 받아 적었다는 공책들. 라마누잔의 비범한 능력을 강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천재성만 보여주는 과학의 신화화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 중에 발생되는 일들(측정 오류, 예상하지 못한 변수 등)을 생략한다. 미발표된 라마누잔의 공책은 총 네 권이다. 네 권의 공책 속에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는 공식들이 있다고만 알려졌는데, 잘못 증명된 공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라마누잔은 1,729가 특별한 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라마누잔의 공책에 1,729를 계산한 기록이 있다.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푼 계산 방식을 기억하고 있어서 하디에게 1,729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729를 하디-라마누잔 수라고 부를 수 없다.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과학 해설자 콜린 스튜어트(Colin Stuart)의 견해에 따르면 1657년에 수학자들이 1,729를 연구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29특별한 수’일 뿐, ‘특별한 수학자의 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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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낯설지가 않네. 언젠가 이 사람 전기영화를 본적이 있는 거 같은데 제목이 생각이나질 않는다. 영화 괜찮았는데.

cyrus 2024-05-01 20:14   좋아요 0 | URL
영화 제목이 <무한대를 본 남자>예요. ^^

stella.K 2024-05-02 09:59   좋아요 0 | URL
아, 맞아. 무한대를 본 남자! 너도 봤나?

cyrus 2024-05-04 11:26   좋아요 0 | URL
영화 안 봤어요. ^^;;

카스피 2024-04-2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이분 저도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더군요

cyrus 2024-05-01 20:16   좋아요 0 | URL
네, 만약 라마누잔이 오래 살았다면 가우스와 오일러에 견줄만한 천재 수학자로 알려졌을 거예요. 영화 제목은 <무한대를 본 남자>입니다. ^^
 




오늘 421과학의 날이다. 이 특별한 날을 맞아 오늘부로 담담 책방과학책방 담다로 새롭게 변신한다담다는 책방 이름 담담과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Darwin)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서울 삼청동에 과학책방 갈다(갈릴레이+다윈)가 있다면, 대구 비산동과학책방 담다가 있다.


419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4419일에 과학 대중화 운동 단체 발명학회 과학 데이를 정했다. ‘과학 데이는 우리나라 최초 과학 기념일이다.
















* 이오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제철소, 2023)




과학책방 담다를 책임질 주인장은 바로 나, 과학책에 미친 해성이나는 문과 남학생으로 살아왔지만, 어린 시절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1.5g 정도 남아 있다과학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주 작은 꿈이다. 그래도 이 꿈은 내겐 매우 소중하다이 꿈이 다 녹아서 사라졌다면 과학책을 펼쳐 보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은 개꿈으로 취급받는다. 제대로 펼치지 못한 꿈은 그 꿈을 소중히 간직했던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차갑게 식어 버린 꿈은 흐르는 시간에 씻겨서 사라진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꿈을 반쯤 펼쳐라. 내 수준에 맞게 꿈 이름을 바꾼다면 접힌 꿈을 반 정도 펼칠 수 있다. 나는 과학자가 되는 꿈’을 과학책방 주인장이 되는 꿈으로 바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과학책방 담다를 만들었다. 내 꿈을 이루게 해준 담담 책방’ 책방지기 정의식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













과학책방 담다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추천 도서 총 여섯 권이다. 까다롭게 책을 좋아하는 나의 추천 도서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산 책들. (2) 알라딘에 내가 쓴 서평이 있는 책.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추천 도서 한 권만 서평을 쓰지 않았다. (3) 많이 알려진 책들은 제외했다. 모든 책방에 베스트셀러과학책이 한두 권 있다. (4) 독자들의 손길과 시선을 많이 받지 못한 책들. 언젠가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책들(5) 그래서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신간 도서를 두 권 이상 고를 것. (6)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볼 수 있는 편안한(책방 주인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과학책이다. 책방의 넓은 책상에서 편안하게 읽어도 된다.



















* 칼 세이건, 홍승효 옮김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2020)


<서평>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회의주의자의 올바른 자세] 202122일 작성




과학이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과학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겠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대표작 코스모스가 책장에 꽂힌 책방은 많다. ‘담담책방코스모스가 두 권이나 있다. 그런데 과학책방 갈다를 제외한 다른 책방에 왜 브로카의 뇌, 이 책은 없는 것일까


브로카의 뇌코스모스(1980년 출간)보다 일 년 먼저 나온 책이다. 다양한 주제로 한 에세이를 모은 책이라서 틈틈이 읽기 좋다세이건과 친해지고 싶은데 많이 팔린 과학 벽돌 책’ 코스모스완독이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브로카의 뇌를 만나면 된다.

 

과학자는 가설이 타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관찰하고 실험한다. 가설이 진리로 확정되었더라도 새로운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한번 실험한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하는 상당히 느린 학문이다. 세이건은 이런 과학을 좋아하는 태도를 과학적인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브로카의 뇌를 읽는다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학(을 좋아)하는 마음한 움큼 쥘 수 있다.


[책 관련 주제] 과학, 사이비 과학(유사 과학), 회의주의

 

















[4월에 태어난 신간 도서]

* 텔모 피에바니, 김숲 옮김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북인어박스, 2024)


<서평>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2024년 4월 5일 작성



완벽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서기 위해 힘겹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과학책. 불완전한 존재들은 완벽주의자의 지친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말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전보다 더 나은 상태인 지금도 완벽하지 않아.” 이 책은 진화가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과정이 아님을 보여준다모든 존재는 진화를 통해서 자신의 결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결함을 안고 살아간다.

 

완벽한 상태완전한 상태를 선호하는 인간은 결함과 오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을 불편하게 만든 결함과 오류는 늘 환영받지 못한다. 다윈을 지지한 자칭진화론자들은 인간은 진화를 거쳐 지구상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믿었다. 정작 다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너무나도 단순한 믿음만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불완전한 존재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자칭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불완전한 존재는 제대로 진화하지 못한 실패한 존재이며 완벽하지 않다. 또한 이 세상이 발전하는 데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봤다. 자칭 진화론자들은 우생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불완전한 존재일 순위로 장애인을 지목한다. 대중, 학자들, 정치인들 모두 우생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에 열광한 사람들은 장애인을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우생학을 지지한 정치인들은 장애인을 따로 격리하여 수용소로 보내거나 장애인 학살을 허용하는 국가 정책을 내세웠다. 우생학은 사라졌어도,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일상 곳곳에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그런데 달력에 왜 장애인의 날이라고 적혀 있지? ‘장애인을 위한 날은 아닐 텐데.

 


[책 관련 주제] 진화, 다윈


















[3월에 태어난 신간 도서]

* 레이철 E. 그로스, 제효영 옮김 《버자이너: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 나선》 (휴머니스트, 2024)


<서평>

[내 이름은 버자이너 울프] 2024년 3월 13일 작성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브 엔슬러의 희곡 버자이너 모놀로그 중에서, 류숙렬 옮김, 북하우스, 2009, 22)




버자이너(Vagina)’는 한 권의 과학책이 되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사랑한다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달라고. ‘거기’, ‘아랫도리가 아니라 ()이라고.



 “내가 자주 가는 책방들을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책방에 이 책 한 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방에 이 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담다주인장이 알라딘에 남긴 버자이너100자 평)

 


[책 관련 주제] , , 자궁, 출산, 의학, 건강, 페미니즘

 









 











* 여인형 《여인형의 화학 공부: 완전히 새로운 화학 입문》 (사이언스북스, 2023)


<서평>

[교과서 같지 않은 화학 교과서] 2024년 1월 24일 작성




여인형 교수는 대학생들을 위한 화학 교재를 쓴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자신이 쓴 교재나 우리말로 번역된 어려운 외국 교재를 보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민한다. 화학 전공 학생들과 과학 비전공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화학 교재를 어떻게 써야 할까? 저자는 우리 일상 곳곳에 흔히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예로 들면서 화학 법칙을 설명한다그리고 반드시 외워야 할 화학 지식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암기법을 소개한다.

 

생긴 건 벽돌 책이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물론 화학에 관심이 있으면 완독해도 좋다). 알고 싶은 화학 용어가 있으면 책 뒤쪽에 있는 찾아보기를 먼저 보라. 화학 용어가 언급된 쪽수를 확인했으면 그 부분을 찾아서 읽는다. 분량이 얇든, 두껍든 간에 과학책을 무조건 완독해야 한다는 믿음은 버리시길.


[책 관련 주제] 화학, 원소, 주기율표



















* 레이 브래드버리, 조호근 옮김 《레이 브래드버리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 (현대문학, 2015년)


<서평>

[우주를 가린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을 걷어라!] 2017921일 작성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미국의 SF(과학소설) 작가다. 그가 쓴 소설에 묘사된 과학은 상상력을 한가득 품은 과학이다. 레이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당황할 것이다. “이 글, 정말 SF 맞아요?” 과학 법칙에 소재로 한 SF를 즐기는 독자는 레이의 글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칼 세이건과학스러운 과학소설을 높이 평가했다. 유사 과학을 비판한 학자답게 과학소설 속에 묘사된 유사 과학을 경계했다그의 견해는 브로카의 뇌에 수록된 SF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SF라고 해서 무조건 과학적인 사실이 묘사되어야 하나? 이 견해에 동의하는 독자가 있으면 따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SF를 안 봐요‥….

 

과학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한 입 깨물면 씹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다.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면 과학이 맛없어 보인다. 과학을 제대로 씹는다고 해도 그 맛은 엄청 맵다. 그래서 내가 과학의 매운 맛을 좋아해서 심각한 중독(中毒/) 수준에 이르렀다. 매운 과학책을 계속 눈으로 먹으면 지겨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달콤한 맛이 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뇌에 에너지를 보충해 보자. 단편 선집 레이 브래드버리: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은 과학책이나 과학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를 위한 아이스크림이다. 일명 레이 브래드버리 32’. 단편 선집은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32편의 단편을 매일 한 편씩 읽는다면 당신은 레이 브래드버리 아이스크림의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이름에 브래드가 있지만, (bread)’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소설을 빵으로 비유하면 허니브레드.


[책 관련 주제] SF, 우주

 


















* 후지하라 다쓰시, 박성관 옮김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사월의책, 2022년)




불완전한 존재들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의 짝꿍이 될 만한 책 한 권이 생각났다. 그 책이 바로 분해의 철학이다. 이 책은 2022년에 샀다. 다 읽긴 했는데, 서평을 쓰지 못했다.


진화의 의미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진화에 완벽히 성공한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화가 늘 항상 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과정이 아니다. 퇴화도 진화의 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진화를 거친 모든 존재는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

 

불완전한 존재들결함을 인정하고, 결함이 주는 불편함에 적응하기 위해 땜질하는 진화를 강조한다면, 분해의 철학부패발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물건을 못 쓰게 되면 쓰레기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 상태가 좋았던 물건은 점점 낡아지고, 결국에는 분해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노화가 진행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만약 지구에 쓰레기의 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아지고, 그 많은 쓰레기 전부 썩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디스토피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소설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이 아니다. 썩지 않은 플라스틱이 지구에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쓰레기를 버릴 줄만 아는 인간은 부패 현상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 있다. 인간은 썩어가는 과정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자연은 부패와 분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죽은 동물의 사체는 또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미생물과 곤충은 사체의 부패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미생물과 곤충은 크기가 아주 작은 존재들이지만, 지구를 살리는 그들의 존재감은 크다.

 

분해의 철학이라는 제목만 보면 철학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태학을 다룬 책이다. 생태학의 정의를 쉽게 말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과학이다. 생태학은 부패와 발효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분해의 철학을 추천 도서로 정했다.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그것뿐만 아니다. 분해의 철학을 펴낸 출판사 이름이 사월의 책이다.


[책 관련 주제] 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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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4-04-2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서점주인이 된 거에요?? 축하!!!!!!

cyrus 2024-04-22 05:47   좋아요 1 | URL
책방 주인이 된 건 아니구요, <담담 책방>에서 특별히 과학 도서 큐레이팅을 한 거예요. <과학책방 담다>라는 책방은 없어요.. ㅎㅎㅎ 장난스럽게 글을 썼는데 제가 오해를 불러일으켰어요. ^^;;

transient-guest 2024-04-22 06:15   좋아요 1 | URL
모두 비슷한 취지의 댓글이 ㅎㅎㅎ 큐레이팅도 응원합니다

cyrus 2024-04-22 06: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어제는 21일에 ‘2’를 지운 만우절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ㅎㅎㅎ

blanca 2024-04-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책방 여신 거예요? 진짜 축하드리고 정말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cyrus님의 전문적인 식견과 취향 등이 잘 반영된 과학 담당 책장, 대구 독서가들의 성지가 되기를....

cyrus 2024-04-22 05:48   좋아요 0 | URL
<과학책방 담다>는 과학 도서 큐레이팅 이름이고요, 책방을 연 건 아니에요.. ^^;;

stella.K 2024-04-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소리없는 반전이군. 하지만 난 어느 정도 예견했다.
책을 그리 좋아하니 언젠가 서점 낸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ㅎㅎㅎ
그런데 그런 말도 있더군. 책 좋아해서 서점을 냈는데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나 뭐라나.
책을 좋아하는 거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거 하곤 좀 다르다고도 하던데
난 솔직히 책만 좋아했지 독서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서점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말야. 요는 힘들면 언제든지 책 읽는 사람으로 돌아오라는 거지.
이거 뭐 신장 개업한 사람한테 할 소린 아니지? ㅋㅋㅋ
암튼 축하한다. 컨셉이 좋으네. 서점 내부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서점에서 독서토론도 하고 그러겠다. 기대되네.
가까우면 한 번 가 볼 텐데. 혹시 대구 갈 일 있으면 기별하마.
번창해라. 다시 한 번 축하해!^^

cyrus 2024-04-22 05:52   좋아요 1 | URL
누님, 죄송해요. 책방을 열지 않았고요, <담담 책방>에서 과학 도서 큐레이팅을 한 거예요... ㅎㅎㅎ 저는 책 파는 사람보다는 책 읽는 사람이 되는 게 좋아요. ^^

stella.K 2024-04-22 09:50   좋아요 1 | URL
ㅎㅎㅎ 너 주거써!!

서니데이 2024-04-2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점 시작하신 건가요. 본문 내용 읽을 때에는 서점 내에 부분 코너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이웃분들 댓글을 보니까 서점을 여신 것 같기도 해서요.
어느 쪽인지 잘 알수 없지만,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24-04-22 05:55   좋아요 1 | URL
<담담 책방>에서 특별히 과학 도서 큐레이팅을 해봤어요. <과학책방 담다>라는 서점은 없어요.. ㅎㅎㅎ

카스피 2024-04-2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서가나 책방을 갖는것을 누구나 꿈꾸는 것 같은데 cyrus님이 그걸 해내셨다니 넘 부럽습니다^^

cyrus 2024-05-01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책방을 차린 건 아니고요, 마음씨 고운 <담담책방> 책방지기님 덕분에 북큐레이팅을 하게 되었어요. ^^

책친놈 2024-04-2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과학책 읽어보려고 했는데 ㅎㅎㅎ 큐레이팅 해주신 책중에 읽어봐야겠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ㅎㅎㅎ

cyrus 2024-05-01 20: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추천한 책 중 한 권이라도 책친놈님이 좋아할만한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