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평은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이지만 읽은 사람은 거의 찾기 힘든...]이라는 것과 이책 서두에 있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고전]인 것 같다. 이는 [신곡]에 대해 볼테르의 평인 [아무도 읽지 않고 오랫동안 칭찬받고 있으므로, 이 칭찬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과도 닮았다. 그런데 만화책으로 이 책이 나와있었다(!) 그럼 함 읽어보자.

1권은 능청스럽게도 앞으로 그렇게 길게 쓸거면서,절대 기억이 안 떠오른다고 시작한다. 그러다 홍차속의 마들렌느 과자와 함께 시작되는 기억의 여행...2,3권 엮이기 시작하는 스완,블로크, 샤를뤼스, 게르망트 가문이 등장인물 소개처럼 등장한다. 기억속 어린이 세계의 중심은 역시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모의 칩거, 삼촌의 애정행각, 자기에게는 친절하나 타인에게 끔직한 하녀,동성애의 목격,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르그랑댕씨와의 만남이나 마르텡빌의 종탑의 느낌들.

2,3권은 단연 청년시절의 두가지 관심사이다. [계급과 이성]. 상류층에 편입코자 하는 속물근성과, 사랑이 아닌줄은 알지만 여섯여자가 다 좋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할 이유가 있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좋아한다는 행위자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젊은 치기. 그의 발벡은 이런 기억으로 저문다.

[우리들이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이 실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렇게 신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사실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하게 되는 경험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이런 관점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리 권장할만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러한 관점을 취할 때 마음의 고통은 훨씬 누그러들고 죽음의 순간이 와도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의 병상에 누워 삶의 순간순간에 깃든 아이러니와 그나름대로의 재미와 영롱한 빛들을 본다. 접근키 어려운 프루스트를 10년에 걸쳐 만화로 쓰는 까닭은 이런 진솔하고 영롱하기까지 한 인생의 이야기를 책꽂이에 묻혀 있게 할 수 없는 스테판 외에의 마음 때문이리라.나는 절대 내년 4판까지 못 기다려 소설로 나머질 보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침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언제 나는 그 고요를 맛보았던가? 매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 여름 오후, 끓어 오르는 길 위로 흐르는 정적. 흰 눈이 소복히 쌓인 어느 산속,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의 고요함. 우리는 이 기쁨들을 잃었다. 거리에는 넘치는 말소리들, 지금도 사방에서 흘러넘치는 음악소리들, 기계, 자동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뱉아 내는 라디오 앞에서 우리 삶은 헝클어지고 부서져 내리고 있다.

오직 사람은 침묵에서 그 영양분을 얻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살고 있나? 하루 종일 사람들이 쏟아내는 수 많은 말들, 술자리에서의 똑같은 대화들, 소음의 홍수에 치어 집으로 돌아오면 텔레비젼에서 소리지르는 드라마의 주인공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정작 중요한 말들을. 아이의 고민, 아내의 사랑, 친구의 속사정, 동생의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리지가 않는다. 우리 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기에는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침묵은 우리 삶을 치료해 줄 수 있다. 시계 바늘소리 하나 없는 긴 침잠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어디선가 틀어진 나의 삶의 궤도, 정작 중요한 사람들, 삶에 가장 소중한 시간들. 이것들은 떠들고 있는 동안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느 겨울날 혼자 오대산 자락을 누비다 돌아오던 날 느꼈던 마음의 잔잔함을 다시 맛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연초
요시다 겐코 지음, 채혜숙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도연초는 정보를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최근 많이 읽히는 책은 정보전달이 주목적인 경우가 많다. 돈 버는 법, 건강하게 사는 법, 아이의 육아, 심지어 수양하는 법까지. 사람들은 정보를 원하고 또 그런 책들이 잘 팔린다. 도연초는 '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무료하고 쓸쓸한 나머지 ...상념들을 두서없이' 적은 글이다. 7세기전의 일본 승려의 글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이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 삶에 대한 해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도연초는 700년전보다는 지금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겐코는 당시 일본황실에서 승지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출가한 사람으로 바쁜 생활, 꽉 짜여진 계급체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출가하여 여유롭게 세상을 보며, 자연을 즐기고, 삶을 기뻐하는 수필을 쓴 것은 오히려 2002년 출퇴근, 직장상사, 야근으로 삶을 흘러보내는 우리를 위한 것처럼 보인다.

도연초는 나중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수양을 미루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말한다. 병자가 자신의 병세가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죽음을 맞듯이 우리 인생도 죽음의 의미, 인생의 뜻, 삶의 환희를 찾지 않고 산다면 후회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이가 든 후 정보를 주는 책이 더 필요 없어지고, 바쁜 생활이 모두 끝나 할 일 없어졌을 때, 그때는 되집어 보며 살 인생이 얼마남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