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바탕으로, 또는 과학을 넘어서
재까지는 작용-반작용의 역학법칙에 의하지 않고 우주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SF작가들은 몇 가지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SF작가 아서 클라크는 이러한 미지의 우주비행 원리를 총칭하는 말로 ‘우주 추진(space driv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반중력(反重力) 장치 등이 우주 추진의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을 쓸 수 있다면 우주선에 연료 탱크를 달 필요가 없어지므로 매우 획기적인 우주여행 수단이 될 것입니다.
로켓을 사용하더라도 빛의 속도에 가깝도록 빠르게 날아가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진공 상태인 우주공간에서는 사실상 마찰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가속을 거듭하면 속도는 계속 올라가기 마련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속도로 관성 비행을 하면 장거리 여행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아인슈타인이 밝힌 상대성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몇 백 광년의 머나먼 거리를 여행하려면 탑승자가 인공동면에 들어간다든가, 우주선 안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아이를 낳고 길러 몇 세대에 걸쳐 여행을 하는 ‘세대우주선’을 탄다든가 하는 일이 필요하게 됩니다.

아서 클라크가 197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사진 위 오른쪽)에는 SF문학사상 과학적으로 가장 치밀하게 묘사된 것으로 꼽히는 외계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22세기의 어느 날, 지구로 접근하는 미지의 외계 물체가 포착되어 ‘라마’라는 이름이 붙여진 채 엄밀한 탐사의 대상이 됩니다. 라마는 놀랍게도 길이가 5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인공물체인데, 자그마치 20만 년 이상을 막막한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온 외계의 우주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요.
아서 클라크가 앞서 언급했던 미지의 우주 추진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라마는 이 작품에서 역학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원통이 길이 방향을 축으로 삼아 자전하면서 내부의 안벽에 인공중력이 생겨나며, 내부의 모든 구조물들은 진행 방향의 최고가속도에 알맞도록 정확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선 안에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지요. 마침내 탐사대원들은 라마가 하나의 거대한 로봇처럼 움직이는 인공 천체라는 결론을 내린 채, 시시각각 태양으로 다가가는 라마에서 탈출해 나옵니다.
<라마와의 랑데부>는 장대한 시각적 묘사와 치밀한 과학적 논리구사에 힘입어 외계 문명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SF용어인 ‘최초접촉(first contact)’ 분야에서 오늘날 교과서나 다름없는 본보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진 위는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호 그림>

한편 SF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선을 꼽으라면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엔터프라이즈 호가 단연 1등일 것입니다. 1964년에 미국의 진 로덴버리에 의해 TV연속극으로 처음 선을 보였던 최초의 <스타 트렉> 시리즈는 오늘날 이미 전설적인 고전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현재는 그 후속편이 영화와 TV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스타 트렉>의 열광적인 팬들을 일컬어 ‘트레키(trekkie)’라고 부르는데 - 이 말은 오늘날 영어사전에까지 올라 있지요 -, 이들이 엔터프라이즈 호에 쏟았던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하는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있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처음으로 우주왕복선을 개발해냈을 때, 그 우주선의 이름을 엔터프라이즈 호로 짓도록 압력을 넣으라는 편지가 자그마치 40만 통 가까이 워싱턴에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미항공우주국으로 직접 날아간 편지들은 제외하고 어림한 것이라고 하니까, 당시 트레키들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지요.
SF작가들의 상상력은 단순히 미래의 우주선을 고안해 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우주선이 실제로 어떤 문제점을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세부적인 사항에까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해나갑니다. 미국의 SF작가 폴 앤더슨은 자신이 SF잡지에 연재했던 작품 하나를 1970년에 단행본으로 펴냈는데, <타우 제로>(아래 왼쪽 사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장거리 우주여행을 다룬 분야에서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몇 세기 뒤의 미래, 태양에서 33광년 떨어진 성좌를 목적지로 삼고 각기 50명씩의 남녀로 구성된 대규모 이민탐사대가 지구를 떠납니다. 그들이 타고 가는 우주선은 항성간 램제트(ramjet) 엔진을 단 것으로, 우주선 주위에 100만 킬로미터 정도 길이의 강력한 전자유체역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역장을 통해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극히 미소한 양의 성간물질들을 끌어 모아다가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 역장은 성간물질과의 마찰도 자동적으로 없애주며 외부의 강력한 방사선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런 시스템에 의해 우주선은 일정한 가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33광년의 거리를 우주선 시간으로 5년 안에 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진 왼쪽- 소설 타우제로 책표지>

그런데 여정의 절반쯤에 이르러 감속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그만 외계 천체와의 충돌로 감속시스템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를 수리하려면 외부 역장을 제거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역장을 제거하면 감마선 때문에 승객들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성간물질의 밀도가 극도로 희박한 곳까지 우주선을 이동시켜야만 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처럼 완벽한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을 찾아 방향을 돌립니다. 그러한 진공 상태는 은하들이 전혀 없는 머나먼 바깥 우주에만 존재하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은하계 밖으로 기수를 돌려 4,000만 광년 저편의 까마득한 섬우주 하나를 목표삼아 비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득한 우주공간 저편에 이르러 감속장치는 겨우 수리할 수 있었지만, 이미 가속도는 광속에 가까운 정도까지 도달한 뒤라서 감속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뒤였습니다. 또 엄청난 가속도로 인해 우주선 안의 시간도 외부세계보다 수천수만 배나 늘어나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지구의 역사와 영원히 격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정처없이 우주공간을 방랑하기 시작합니다. 전방에 자신들이 탄 우주선의 속도를 흡수해 줄 거대한 천체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면서.
순수한 과학적 추론만을 전개하여 놀라운 스케일로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대단원도 장대하게 맺어집니다. 그들은 이 우주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전환하고 그 다음 팽창으로 대우주의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 비행하다가 마침내 다음 우주에서 안주할 땅을 찾게 되지요. 과학적 논리 구사에 중점을 두는 ‘하드SF(hard SF)’의 걸작다운 결말인 셈이지요.

우주로 떠나는 환갑여행, 신혼여행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0년대에 발표한 <달을 판 사나이>(사진 오른쪽)에서는 달에 가는 것을 일생의 소망으로 삼고 한평생 갖은 노력을 다하는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업적으로 달에 우주선이 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남들이 달 여행 가는 것을 그저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로켓을 타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걸고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달 여행을 한 뒤 달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처럼 우주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실제로 미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우주비행사를 선발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워서, 심신이 매우 건강한 사람들 중에서 엄격히 가려 뽑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오늘날 비행기를 타는 정도로 간단하게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우주선이 머잖아 등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주관광여행도 가능할 것이고, 어쩌면 지금의 20-30대 연령층은 환갑여행을 달로 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아들딸들의 신혼여행과 함께.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달에 갈 수 있게 되더라도 태양계 밖의 머나먼 별세계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동경의 대상으로만 남게 될 테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지요. 인류의 우주 진출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우주공간의 까마득한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사진 위는 다이달로스 프로젝트 관련 그림)

1970년대 초반에 영국행성간협회(BIS:British Interplanetary Society)에서는 ‘다이달로스 프로젝트’라는 우주선 건조계획을 입안한 바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현재의 과학이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우수한 로켓을 설계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핵융합 로켓엔진을 이용한 항성간 우주선인 다이달로스 호의 설계도를 내놓았지요.
이 우주선은 항성간 여행, 즉 태양계를 벗어나 아득한 우주 저편까지 날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먼 옛날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테섬을 탈출했듯이, 지구와 태양계를 벗어나 대우주로 진출하려는 인류의 궁극적 꿈을 실현시켜줄 야심찬 계획인 셈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우주선은 아직 대략적인 설계도밖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이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우주선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핵융합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행기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당시의 과학기술이 부족해서 만들지 못했던 것처럼, 다이달로스 우주선 역시 앞으로 150년쯤은 지나야 실제로 제작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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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의 초창기이던 1906년, 프랑스에서는 <별나라 여행>이라는 한 편의 재미있는 SF영화가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흑백에다 무성영화였으며 길이도 8분 정도에 불과한 아주 짧은 작품이었는데, 어떤 늙은 천문학자가 평생 동안 동경해오던 별로 우주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아마도 SF영화사상 가장 환상적이라 할 수 있는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달밤에 거대한 비누거품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사진 왼쪽은 줄 베르느의 달여행 기념우표 >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또 아직까지는 유일한 우주여행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로켓입니다. 로켓이란 분사추진(噴射推進)식 엔진을 써서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전진하는 비행체를 의미합니다. 효과적인 우주여행 수단으로서 로켓에 처음으로 주목했던 사람은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1857-1935)였지요. 그가 1898년에 발표한 <로켓에 의한 우주공간의탐구>라는 논문에는 강력한 액체연료 로켓에 의해 장거리 우주여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액체연료나 고체연료를 이용한 로켓들이 실제로 개발되었으며, 특히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수 천 대의 V-2 로켓을 제작하여 전쟁무기로 사용하기까지 했었죠. 1957년에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을 때나 1969년에 미국인들이 사상 최초로 달에 갔을 때에 이용한 수단도 모두 로켓이었습니다.

SF작가들이 우주여행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근대 이전의 서양문헌들을 보면 앞서 언급했던 비누방울이나 대포알 우주선 외에도 기기묘묘한 아이디어들이 백출했던 사실이 잘 나타납니다. 몸에 날개를 단 이카로스가 하늘높이 날아올랐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나머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신화이지요. 1638년에 영국의 프란시스 고드윈이 발표한 <달의 사람>의 주인공 도밍고 곤잘레스는 새들을 끈으로 연결하여 달까지 날아가며, 또한 1662년에 프랑스의 시라노 드 베르주락은 <달여행>이란 소설에서 우주여행 수단으로 거대한 연을 이용합니다. 이상의 묘사들은 원리상 이카로스와 마찬가지로 우주공간에도 공기가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발상이었지요.
1865년에 프랑스의 주울 베르느가 발표한 소설 <지구에서 달로>에는 기차처럼 생긴 우주선의 그림이 등장하는데, 이 경우는 공기가 필요 없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SF작가들은 그 풍부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온갖 우주선들을 발명해냈습니다. 초창기에는 로켓 엔진을 이용한 우주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론물리학이 발달함에 따라 SF작가들의 발상도 점점 대담해져갔죠.
소설의 주인공이 수 천, 수 만 광년의 아득한 거리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려면 필연적으로 그러한 우주여행이 가능한 우주선을 등장시켜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채택된 대표적인 방법이 이른바 와프(warp) 항법이라는 것으로서, 오늘날 이 말은 가장 널리 쓰이는 SF용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와프 항법이란 일종의 초공간(超空間) 비행법을 의미하는데, 정상적인 우주공간이 아니라 휘거나 구부러진 초공간을 통과하여 실제 목적지까지의 3차원적 거리보다 적은 부피의 시공간만을 통과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초공간이란 개념은 순전히 SF적인 발상이지요. 그러나 과학자들에 의하면 블랙홀 등의 강력한 중력체에 의해 우주공간의 왜곡 현상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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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눈에 비친 지구? '아이스 월드'
1950년대에는 이른바 ‘하드(hard)SF’분야의 실력자로 손꼽히는 할 클레멘트가 등장합니다. 하드SF란 엄밀한 과학적 논리 구사에 중점을 두는 작품 경향을 의미하는데,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아서 클라크가 바로 하드SF의 대가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할 클레멘트는 1953년에 <아이스월드>라는 장편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외계인 수사관이 범인을 쫓아 지구로 온다는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 외계인의 고향 행성에 대한 묘사가 매우 독특합니다. 외계인의 고향별은 기온이 섭씨 400도에 이르는 초고온 세계이며, 그들은 규소, 즉 실리콘을 기본으로 하는 신체 신진대사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생물들은 탄소를 기본으로 하는 유기물 생체조직을 갖고 있지요.
그가 범인을 추적하여 지구로 와 보니, 고향별에 비해서 엄청나게 추운 무시무시한 ‘혹한의 행성’이었습니다. 심지어 유황이 가스가 아니라 고체 상태로 ‘얼어붙어’ 있을 정도이지요. 그래서 그 외계인은 강력한 방한복으로 완전무장한 채 수사에 임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외계인 입장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우리 지구를 또 다른 외계로 묘사한 점이 돋보인 수작이었습니다.

수소로 호흡, 암모니아는 신진대사 기초, 독자문명도 ...
그런데 클레멘트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1953년 봄부터 <어스타운딩>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중력의 임무>(사진 오른쪽)입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백조자리 61번 별 주위를 도는 가상의 행성 메스클린입니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이 이 61번 별의 운동 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광학망원경으로 관찰되지는 않지만 목성보다 몇 배의 질량을 지닌 행성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스클린의 질량은 목성의 16배이지만 자전주기가 17분 45초로 매우 짧기 때문에, 원심력에 의해 납작하게 찌부러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극지방과 적도 지방의 중력가속도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지요. 또한 그 행성의 표면은 고농도에 고압인 수소 대기와 메탄의 바다로 뒤덮여있으며 기온은 섭씨 170도에 달합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지구의 기준으로 볼 때 도저히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작가는 수소를 호흡하고 메탄과 암모니아를 신진대사의 기본물질로 삼는 지성생물을 창조해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중력에 적응하기 위하여 납작한 모양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높이’라는 개념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서 지구 탐험대와 감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습니다.
이 작품이 채택하고 있는 엄밀한 과학적 가설 중의 일부는 허점이 없지 않다는 지적도 나중에 제기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철저한 과학적 추론의 본보기로 삼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래서 클레멘트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하드SF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우주공학 이론은 발달을 거듭하여 우주왕복선을 대체할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라든가 대규모 우주정거장 겸 우주도시 등의 구체적인 청사진들이 속속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개념들은 거의 예외 없이 SF작가들의 손에 의해 소설 속에서 형상화 되었는데, 비용 및 부수적인 문제점들만 해결되면 오늘날의 기술로도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과학적 타당성 갖춘 천문학적 규모 인공세계
1970년에 래리 니븐이 발표한 장편 <링월드>(사진 왼쪽)는 하나의 독립적이고 완전한, 그러면서도 글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인공세계를 등장시켜 SF팬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링월드(Ringworld)’라는, 글자 그대로 반지 모양의 거대한 인공물이 등장합니다. 어떤 태양의 둘레를 반지름 1억 5천만 킬로미터로 돌고 있는 폭 60만 킬로미터의 어마어마한 인공 테가 바로 그것인데, 이 테의 두께는 겨우 50피트밖에 안 되지만 특수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성미자나 운석 같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도 끄떡없이 견딥니다. 또한 이 테는 가장자리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회전원심력에 의해 대기가 우주공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머물러 있으며, 테의 안쪽에 바다나 산맥 같은 것을 조성해놓아서 완전한 거주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즉, 지구와 같은 공 모양의 자연적인 행성이 아니라 거대한 반지 모양의 인공 세계인 것입니다. 나중에 비판적인 독자들에 의해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이러한 구조물은 실제로 과학적인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하루는 지구의 2천 7백년
이테크 시대로 접어든 1980년대에 이르게 되자 SF작가들도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고난도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등장한 가장 인상적인 외계의 묘사는 아마도 로버트 포워드의 <용의 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물리학자 출신으로 앞서 언급했던 니븐이나 클라크 등 기라성 같은 SF작가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왔던 사람인데, 나이가 쉰에 가까운 1980년에 늦깎이 SF작가로 등단하면서 내놓은 처녀작이 바로 <용의 알>입니다.

<용의 알> (사진 오른쪽)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외계 세상은 중성자성입니다. 중성자성이란 태양과 같은 항성이 수명이 다하여 폭발한 뒤, 그 때의 압력에 의해 극도로 압축된 중성자 덩어리지요. 이러한 중성자별은 크기가 겨우 수십 킬로미터밖에 안 되지만, 엄청난 밀도 때문에 질량은 태양과 맞먹을 정도이고 표면중력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용의 알>에 등장하는 중성자성은 표면중력이 무려 지구의 670억 배나 되는데, 인간의 탐사선이 이 별에 접근하여 관측해 본 결과 놀랍게도 그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지구인들에 의해 ‘체라’라는 이름이 붙은 이 생물체는 중성자별의 특성상 자기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조금만 이동을 해도 몸의 모양이 급격하게 변화하며, 에너지 신진대사의 방식도 지구상의 생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놀라우리만치 빠릅니다. 그래서 체라는 인간보다 100만 배나 빠른 시간척도로 인해 처음 지구인과 접촉한 뒤 불과 하루 만에 지구에서의 2천 7백년에 해당하는 정도의 문명 발전을 이룩해낸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제는 원시시대였는데 오늘은 벌써 우주선을 만들어 낼 정도로 발전해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시간 척도는 우리 지구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우주여행 못 가지만 SF 통해 원대한 꿈을...
이렇듯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머나먼 우주와 외계의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은, 인류가 원초적으로 타고난 호기심의 발로입니다. 바로 이러한 호기심과 열망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기술 문명사회를 이룩해낸 것이지요.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펼쳐지는 가없는 별세계의 장관에 접하며 살아왔고, 그 우주를 향하여 꿈을 키워왔습니다. 직접 가 볼 수 없는 그 수많은 별세계들을 상상하며 온갖 전설을 창조하고 별자리 이름들을 붙였지요.

인류가 머나 먼 은하들로 우주여행을 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겠지만, SF작가들의 힘을 빌려 별세계의 풍경들을 마음껏 그려보면 조금은 아쉬움이 달래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원래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인 만큼, 별세계의 풍경들과 외계인들을 상상해보는 것은 결코 실없는 몽상가의 백일몽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의 꿈은 소박할지언정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꿈은 저 드넓은 우주로 뻗어나가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원대한 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SF야말로 그러한 꿈을 가장 구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장르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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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나온 첫 번째 <스타워즈> (사진 위쪽)영화를 보면, 주인공 루크가 살고 있는 타투인 행성에선 두 개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또 휴머니즘이 진하게 배어 있는 영화 <스타맨>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고향 행성은 칠흑처럼 검은 빛에 가스구름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지요. 그런가 하면 밤하늘에 둘 이상의 달이 떠 있는 광경은 외계를 다룬 SF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SF작가들이 외계의 세상을 상상할 때 가장 먼저 착안하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지구와는 전혀 다른 천문물리적 환경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푸른색 태양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블랙홀 주변을 불안하게 공전하는 위기의 별세계를 가정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외계 환경’에 대한 상상력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케플러의 법칙’등의 천체역학 이론을 규명해내어 천문학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긴 17세기 독일의 과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신이 직접 SF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그는 1634년에 달과 그곳에 사는 생물을 묘사한 <솜니움>이란 작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작품에 나오는 달의 모습은 역시 동시대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오가 달을 자세히 관측한 기록과 거의 일치하기는 하지만, 달에도 물과 대기가 있다고 묘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도 하지요.

또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원래 신랄한 사회 풍자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사실 은 SF문학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높이 평가받는 걸작입니다. 왜냐면 이 소설에는 반중력 개념이 등장하는가 하면, 화성의 달이 두 개라는 사실을 예측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태양도 하나, 달도 하나라는 것이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지던 시대에는 이 정도의 상상력도 꽤 파격적인 것이었지요.

태양은 여섯개, 별은 천년에 한번 출현?
20세기에 접어들어 대중오락 소설로서 SF가 크게 각광을 받게 되자, 작가들은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온갖 가능한 형태의 외계 풍경들을 창조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SF문학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아이작 아시모프는 약관의 신인 시절에 이미 SF작가들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놀라운 외계 세상을 창조해낸 바 있습니다. 1941년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SF잡지였던 <어스타운딩(Astounding)>지 9월호에는 <전설의 밤> (사진 아래 왼쪽)이라는 단편이 실렸는데, 스물한 살에 불과한 청년작가 아시모프는 이 한 편으로 순식간에 쟁쟁한 SF작가의 대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아시모프는 그에 앞서 3월에 <어스타운딩>지의 편집장인 존 캠벨과 새로운 작품의 구상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머슨의 <자연론> 제1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부분은 ‘만약 별이 1천 년에 하룻밤씩만 모습을 드러낸다면 사람들은 모두 별을 우러러 받들며 몇 세대에 걸쳐서 종교적 계시나 전설처럼 추앙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시모프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조건들을 얘기했고, 이에 캠벨은 그것을 소설로 형상화해볼 것을 권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전설의 밤>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밤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는 무려 여섯 개의 태양이 있어서 그 중에 최소한 하나 이상은 언제나 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별의 주민들은 고도의 과학문명을 이루었지만 천문학만큼은 예외여서 온 우주가 별들로 충만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자기들의 세계와 하늘의 여섯 태양만이 우주의 전부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에는 불가사의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었지요. 1천 년에 한 번 온 세상에 어둠에 묻히고 하늘에는 ‘별’이라는 것이 온통 가득차는데, 그 때가 오면 세상은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별의 문명은 주기적인 흥망성쇠를 거듭해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전설에서 말하는 그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한 천문학자는 그 전설이야말로 여섯 개나 되는 태양 때문에 겨우 1천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개기일식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천문학자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1천년에 한 번 찾아오는 밤은 단순히 개기일식이라는 천문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라는 낯선 어둠에 휩싸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마구 불을 지릅니다. 환하게 불을 지펴서 어둠을 몰아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지요. 결국 이 별의 문명이 1천년에 한 번씩 멸망과 재건을 거듭한 이유는, 이처럼 일식에 놀라 스스로 낸 불 때문에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뿐이 아니다’라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착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일뿐더러, 나중에 천문학자들에 의해 우주에 그런 태양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지요. 현재 알려지기로는 우리 태양계처럼 항성이 하나뿐인 경우보다는 오히려 2연성, 3연성 등 둘 이상의 항성들이 모여서 태양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작년에 폴란드의 한 천문학자가 백조자리에서 태양이 세 개인 행성을 발견하여 ‘타투인’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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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사회에 대한 은유와 풍자 역할도
그러나 1930년대 이후 SF에서 묘사된 외계인들은 주로 지구를 침략하는 악역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 괴물’이라고 해야 어울릴 만한 모습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또 이러한 경향은 영화에도 반영되어 1950년대부터는 외계의 괴물을 등장시킨 공포영화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1950년대는 서구 영화계에서 SF라는 장르가 도약기를 맞은 시기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특히 미-소 양국 간의 긴장된 냉전 분위기가 지배했던 당시의 국제 정세를 반영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았지요. 이러한 영화들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이전까지의 만만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관객들로 하여금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모습을 지니고 나타났는데, 대부분은 SF소설로 먼저 발표된 것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 중 흔히 두 편을 대표적으로 꼽습니다.
1951년에 발표된 <괴물(The Thing)>(사진 왼쪽은 영화 괴물 포스터 그림)과 1956년에 처음 선을 보인 <신체강탈자들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이 그것입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원작 SF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1970년대 및 80년대에 새롭게 다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괴물>은 미국의 탁월한 SF편집자이자 작가였던 존 캠벨의 단편 <거기 누구냐!(1938)>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외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인간의 몸속에 잠입하여 겉모습은 인간 그대로지만 정신은 외계인의 것이라는 설정이 전개됩니다. 또 <신체강탈자들의 침입>은 미국의 잭 피니가 1955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 <괴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외형을 그대로 지니는 외계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의 외계 생물은 인간의 육체를 똑같이 복제해내는 능력을 지녔지요.

위의 두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예리하게 풍자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SF의 외계인들이 단순히 지적 유희에 가까운 상상력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었다면, 위 두 작품의 외계인들은 인간 사회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고도의 의미심장함을 지니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겉모습은 인간과 전혀 구별이 안 되는 멀쩡한 사람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숨기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외계인들은, 그 이전의 흉측한 외모를 지닌 외계의 괴물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공포를 제공했습니다. 갖가지 이데올로기며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했던 당시의 시대상은 이처럼 대중문화 분야에도 예외 없이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된 외계 괴물의 전통은 그 뒤 소설이나 영화 분야 모두에서 하나의 확고한 틀로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도 같은 구성의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SF 영화사상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고 일컬어지는 <에일리언(1979)>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아마도 SF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외계 괴물일 것입니다.. 또 1985년에 발표된 <우주의 뱀파이어> 역시 우주를 방랑하는 괴물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의 몸과 혼을 앗아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작가인 콜린 윌슨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지요.

1960년대부터는 SF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모습이 지구인이나 지구상의 다른 생물과 비슷한 외형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외계인이라는 상황 설정을 통해 일반 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희로애락을 풍자하고 은유해보려는 작가들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SF문학이 나름대로의 문학성을 쌓아나가는 데 적잖이 이바지하게 된 경향입니다.(사진 오른쪽-인간보다 착한 파충류 외계인이 나오는 <양심의 문제> 책표지) . 제임스 블리쉬가 1958년에 발표한 <양심의 문제)에서는 지구에서 파견된 성직자가 외계 행성에서 사악하게 생긴 파충류 모양의 외계인들을 만나는데, 그는 그 외계인들이 지구인보다 훨씬 더 착하고 고운 심성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과연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에 빠집니다.

또 미국의 월터 테비스가 1963년에 발표한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선 지구인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지닌 화성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사멸해가는 자신의 고향별을 구할 방법을 찾고자 지구에 왔지만 인간 사회에서 부대끼고 시달린 끝에 결국은 폐인이 되고 말지요.

<사진 위는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괴물외계인의 모습 >


외계인은 실제로 있지 않을까?
한편 우주의 어느 곳인가에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노력 역시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왔는데, 지금은 하나의 용어로 굳어버린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 즉 지성을 가진 외계인과 최초로 접촉한다는 주제는 모든 SF팬들의 변함없는 열망이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영화 쪽에서 거의 교과서적인 모델이 제시된 바 있지요. 헐리우드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77년에 발표한 영화 <미지와의 접촉(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이 바로 그것으로,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적 묘사와 빼어난 영상 등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인간처럼 두 팔, 두 다리가 달린 휴머노이드 형의 몸체에 머리는 크고 키는 작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1985년에 나온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 역시 과학적으로 탁월하게 묘사된 외계 문명과의 접촉 이야기입니다. 1997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외계 문명이 수학에 바탕을 둔 우주 공통의 논리 언어로 지구 인류에게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아쉽게도 외계인의 실체는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지만요.

1980년대 들어 국제 정세가 서서히 긴장 완화의 데탕트 시대로 바뀌면서 무시무시한 괴물 외계인 대신 우호적이고 친근감을 주는 외계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982년에 발표된 영화 는 우스꽝스런 모습의 땅딸보 외계인이 홀로 지구에 낙오하면서 지구인 어린이와 감동적인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로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끔찍한 외계인은 괴물로서는 가장 유명할지 모르지만, 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아마도 모든 SF영화, 소설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외계인 캐릭터일 것입니다. 또한 1984년에 발표된 <스타맨>이나 1985년에 발표된 <코쿤> 등의 영화는 모두 따듯한 심성을 지닌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했다가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영화인 <맨 인 블랙> 같은 경우는 온갖 외계인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외계인 만물상 같은 코미디였지요.

지금까지의 외계인들은 어떻게 보면 독립된 생물 개체라는 관점에서 지구 인류와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SF적 상상력을 확장해 보면 외계 생명체가 반드시 그런 식으로만 존재하라는 법은 없겠지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에서는 한 외계 행성의 바다 전체가 하나의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나오고, 영화 <스타 트랙> 극장판 1편에는 로봇 생명체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지구상의 생물들처럼 탄소에 기반을 둔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 즉 쉽게 말해서 반도체가 생명체로 진화해 나간다는 설정이지요. 그런가 하면 영화 <에볼루션>에는 어떤 형태로도 순식간에 진화해나가는 무시무시한 환경적응력을 지닌 외계생명체도 등장합니다.

과연 미래에는 정말로 외계 문명인과 조우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그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들로서는 그때까지 하나뿐인 지구를 잘 보존해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일방적으로만 내달리다 보면 인류 자체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런 문명의 위기를 이미 슬기롭게 극복한 외계인들이 지금 우주 저 멀리서 자신들도 은하 문명의 일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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