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이 만만하지 않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둔 책이 얼마 전에 도착했다. 조금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한국사 개설서를 읽는 건 오랜만이다. 새로운 연구 경향이 반영되어있다니 전공자 출신인 사람으로 더욱 반갑다. 책이 일반 도서보다 훨씬 커서 인상적이었다. 역사 전공 새내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날마다 조금씩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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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른에게는 자신을 어린아이로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그건 가족일 수도,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스스로일 수도 있다. 그런 존재가 없는 인생은 버티기 힘들 것 같다. 난 언니들이 있어서 이만큼 산다. - P14

라디오를 듣다가 청취자가 보낸 고민 사연에
‘매사에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은 곧 마음을 그렇게밖에 못 먹는 네 잘못이라는 얘기잖아.
이 세상에 마음가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만 불행해진다.
나는 왜이럴까, 나는 왜 이모양일까 하면서.
마음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라는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어디 있다고.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은 정작 자기 마음 간수는 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말한 것처럼 잘 안 될걸?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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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북학의 - 조선의 개혁.개방을 외친 북학 사상의 정수
박제가 지음, 안대회 엮고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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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조선을 일으키기 위해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학자들이 있었다. 하나는 농업을 강조한 무리였으니,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중농학파라고 부르는 유형원·이익·정약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를 비롯한 상공업 진흥을 강조한 중상학파였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서자 신분으로 태어난 박제가는 19살에 연암 박지원의 제자가 되면서 북학파(중상학파) 학자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29살에는 친구 이덕무와 청나라에 다녀온 후 책을 저술했으니, 바로 《북학의北學議》 다. 


나는 고전 번역으로 저명한 안대회 교수가 엮은 『쉽게 읽는 북학의』를 골랐다. ‘북학의’에서 ‘북학北學’은 당시 조선의 북쪽에 있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것이다. 당대의 주류 유학자들은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겨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박제가는 조선이 경제, 국방, 문화,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낙후되어 오직 더 발전한 국가에서 배워야 조선이 살아남고,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북학의》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 청과 조선을 대조하며 조선의 낙후된 모습을 묘사한다.


부강한 청나라와 비교해서 참혹한 조선의 현실에, 박제가는 다음 글귀와 같은 비유로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비가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은 비단 자본주의 사회만의 일만은 아닌가 싶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보통은 사치 때문이지만, 박제가는 조선이 망한다면 그건 지나친 검소함 때문이라고 보았다.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이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차지만 길어 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 버린다. 마찬가지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로 여성의 기술이 피폐해졌다. 조잡한 그릇을 트집 잡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기교를 숭상하지 않기에 나라에는 공장工匠과 도공, 풀무장이가 할 일이 사라졌고, 그 결과 기술이 사라졌다. 나아가 농업은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이 형편없고, 상업을 박대하므로 상업 자체가 실종되었다. 사농공상 네 부류의 백성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곤궁하게 살기에 서로를 구제할 길이 없다. (196쪽)


가난한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상공업을 진흥시킬 것을 외쳤던 박제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놀고먹는 사대부를 ‘좀벌레’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대부에게도 상업을 권장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을 펼친다.


신은 수륙의 교통 요지에서 장사하고 무역하는 일을 사대부에게 허락하여 상인 명단에 올릴 것을 요청합니다. 밑천을 마련하여 빌려주기도 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장사하게 하며, 그중에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권장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날마다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 점차로 놀고먹는 추세를 줄입니다. 생업을 즐기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며, 그들이 가진 지나치게 강력한 권한을 축소시킵니다. 이것이 현재의 사태를 바꾸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28쪽)


하지만 그 역시 농본주의 국가인 조선의 유학자였기에 농업을 경시하지는 않았다. 이는 다음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농사는 비유하자면 물과 곡식이고, 수레는 비유하자면 혈맥血脈입니다. 혈맥이 통하지 않으면 살지고 윤기가 흐를 도리가 없습니다. 『의서도인』醫書導引에 따르면, 약의 이름에 하거河車(탯줄)란 것이 있는데 이러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수레와 화폐는 농사에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농사에 도움을 주므로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급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41쪽)


이밖에도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서 조선의 군사제도, 과거제도, 외국어 교육, 도로, 통상, 건축, 상업, 공업, 농업, 목축 등 조선의 총체적인 개혁을 역설한다. 


안대회 선생이 편역한 『쉽게 읽는 북학의』를 읽으며 놀라운 점은 우선 두 가지다. 하나는 박제가가 아무리 중상학파였지만 사대부들에게도 상업을 권장할 것을 언급한 급진성이고, 다른 하나는 당대 선진국이었던 청나라와 대조되는 조선의 비참한 현실이다. 특히나 전자는 지금 봐도 놀라운데, 당시로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주장이었을까. 모두 알다시피 당시는 사농공상의 신분질서가 엄존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사농공상의 꼭대기에 있는 사대부에게 제일 말단의 상업을 권하다니. 후자는 그래도 당시가 우리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정조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박제가는 이런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뱃길을 통해 여러 나라들과 통상할 것을 간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박제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식민지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기회가 적어도 두 번은 있었다. 처음 한 번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서양과학 기술에 눈을 뜬 소현세자 때였고, 마지막 한 번은 실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정조 때였다. 적어도 박제가가 《북학의》를 썼을 당시에 우리가 스스로 무역의 빗장을 열었더라면, 우리의 이후 역사는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금은 박제가가 살던 수백 년 전의 시대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굉장히 폐쇄적인 무역 구조를 지녔던 당시와는 다르게, 오늘날 한국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와 교역을 하고 있다. 지금은 당시의 조선과는 정반대로 과도한 무역의존도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또한 그때의 조선이 상업을 천시했다면, 오늘날 한국은 자본가들이 사회의 중심인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현시대 우리 농촌의 현실은 지방 소멸의 위기에 몰려있을 정도로 위태롭다. 만일 박제가가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상공업보다는 농업 진흥과 농촌의 부흥을 더 강조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우리 시대에 맞는 《북학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미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개혁에는 적기(適期 : 알맞은 시기)가 있는 법이다. 다시는 개혁의 적기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이고, 우리가 《북학의》에서 읽어내야 할 메시지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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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한용운 지음, 이성원.이민섭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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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은 명나라 신종(1573-1619) 때의 유학자 홍자성이 쓴 책이다.  홍자성의 행적은 몇 가지 인적사항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채근담》의 원전은 전·후집 합계 356장의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유학자가 쓴 책이지만, 내용 중간중간에 불교와 도교 철학도 가미되어 있다. 인문학도 출신답게 《채근담》 완역본을 읽으면 좋겠지만, 내 수준을 고려하여 해설이 있는 책이 좋겠다 싶었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것은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였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승려였으며,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바로 그 한용운이 맞다. 책의 원제는 《정선강의 채근담 精選講義 菜根譚》이다. 홍자성의 《채근담》을 한용운이 번역하고 해설을 달아 펴냈다. 하지만 한용운의 문장도 거의 한문으로 되어 있어 편역자들이 현대 한글로 다듬어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로  펴냈다고 한다.


옛날에 읽을 때는 별로 감흥 없이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나이를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그런지 다시 보니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다음 구절이다.


하늘이 사람에게 화를 내릴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복을 주어 교만하게 만든다. 따라서 복이 왔을 때에는 기뻐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함께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릴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화를 내려 경계하게 한다. 따라서 화가 닥쳐왔을 때는 근심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함께 보고 헤쳐 나가야 한다. (138쪽)


책에는 한용운의 해설이 달려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니 여기에 덧붙일 필요는 없을듯하다. 복이 왔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고 경계하고 몸가짐에 신중하고, 화가 닥쳐왔을 때라도 근심만 하고 넋 놓고 있지 말고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면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바르게 처신하며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해서는 안 된다. 큰 불이 쇠를 녹여도 맑은 바람처럼 의연해야 하며, 매서운 서리가 만물을 시들게 해도 부드러운 바람처럼 온화해야 하며, 하늘이 흐려지고 흙비가 내리는 상황이 되어도 해가 밝게 비추는 것과 같고, 사나운 파도가 바다를 뒤엎더라도 지주가 우뚝 솟아있는 것과 같아야 한다. 이와 같아야 우주적인 참다운 인품이라 할 수 있다. (132쪽)


이에 대해 만해 한용운은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바르게 처신하며 세상을 살아가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맑은 바람과 같이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며, 어떠한 황량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봄의 따뜻한 기운과 같이 화평한 기상을 가져야 한다고. 만해는 이 글귀를 번역하며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의연한 자세로 일제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독립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살펴보면 《채근담》은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논어》, 《맹자》, 《도덕경》이 각각 유가와 도가라는 사상을 담은 경전이라면, 《채근담》은 인생에 대한 잠언집이면서 처세·실용서에 가깝다. 다음 대목을 보자.


세상을 살면서 내 은혜에 감동하게 하는 것이 바로 원망을 사라지게 하는 길이며, 일을 당하여 남을 위해 해악을 제거해주는 것이 바로 이익을 거두는 기회이다. (110쪽)


현대인이 보기엔 이 또한 도덕 교과서 같은 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채근담》에서는 남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장의 잔재주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기보다, 비록 지금은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나중에는 큰 이익을 보는 행위가 진짜 처세 아닐까. 때로는 즉시 써먹을 수 있는 처세·실용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인생을 좀 더 길게 보면 당장의 필요를 넘어 몸과 마음을 닦고 더 큰 처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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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말 -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고 새롭게 보는 눈
천인츠 지음, 문현선 옮김 / 미래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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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돋보였던 경세가들 중에 ‘도가’가 있었다. 도가를 먼저 연 인물은 노자였고, 장자가 이를 계승했다. 장자는 노자를 참다운 인간, 즉 ‘진인(眞人)’이라 생각했으나 노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道)를 이야기한다. 《도덕경》에 보이는 노자의 방식이 간결하고 압축적이라면, 《장자》에서는 장자만의 비유와 상상력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장자는 《장자》의 글머리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무척이나 커서 몇천 리가 되는지 모른다. 곤은 새로 변하는데, 그 새의 이름이 붕이다. 붕의 등도 너무 넓어서 몇천 리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붕이 날개를 떨치며 날아오를 때, 그 날개는 마치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구름처럼 그림자를 드리운다. 곤이 변하여 된 붕은 바다에 너울이 이는 때를 노려 남쪽 바다까지 날아간다. 남쪽 바다는 그야말로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크나큰 물이다. 『제해』라는 제목의 책에는 이상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붕이 남쪽 바다로 가는데 물을 삼천 리나 쳐 내면서 핑그르르 돌아 몸을 솟구쳐 구만 리를 날아오른다. 하늘에 올라 바람을 타면 여섯 달 동안이나 바람을 타고 간다.” 

-「소요유」


우리의 조력자인 『장자의 말』의 편역자 천인츠 교수는 위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곤붕과 같이 우주까지 높이 날아올라 인간 세상을 바라보면 인류의 행위들이 가소로워 보이지 않겠느냐고. 천리까지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한층 더 높이 올라 탁 트인 마음으로 더 넓고 밝게 보자고.


장자가 복수 강가에서 낚시를 했다. 초나라 왕은 대부 두 사람을 먼저 보내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건대 초나라로 와서 힘써 주시오!” 장자는 낚싯대를 들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내가 듣기로 초나라에는 신성한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삼천 년이 되었다고 하더이다. 초나라 임금께서는 천으로 고이 싸서 그것을 사당 위에 모셨다고 하고요. 그 거북이가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해지고 싶었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탕 속으로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었겠습니까?” 두 대부가 말했다. “그거야 살아서 진흙탕 속으로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었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가십시오! 저는 진흙탕 속으로 꼬리를 끌고 다니렵니다.

- 「추수」


장자는 자신에게 벼슬자리를 제안하는 초나라 왕의 제안을 위와 같은 말로 사양한다. 장자 자신을 거북이에 빗댄 특유의 비유법이 재밌다. 이미 대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장자에게 인간 세상의 벼슬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장자는 생명을 가진 존재가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당대를 난세라고 생각했던 장자는 잠깐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귀중한 생명을 해치기보다는,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거북이가 죽은 후에 귀하게 대접받기보다는 살아서 꼬리를 끌고 다니길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수나라 군주의 보배로 천 길 떨어진 참새를 쏘았다고 하면, 세상은 틀림없이 그를 비웃을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그가 쓴 보배는 귀중한 것이요, 그가 원한 것은 하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양왕」


세상 어떤 귀중한 것들보다 생명과 본성을 소중히 여겼던 장자의 생각은 위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귀중한 보배를 총알로 삼아 참새를 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부와 명예 같은 하찮은 것들에 자신의 생명을 내걸지 말라는 뜻이라고. 그런데 군주의 보배가 아무리 귀하다 한들 참새의 생명보다 더 귀중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우나 ‘장자’가 전하고 싶어하는 바는 알겠다.


이처럼 다양한 비유와 고사로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는 장자였으나, 장자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통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장자의 말』에도 실린 《장자》 속 고사를 요약하여 소개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제나라의 군주인 환공이 성현들의 말이 적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수레바퀴를 만들던 윤편이라는 이름의 장인이 그를 보고, 환공이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얼의 쭉정이와 찌꺼기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화가 난 환공이 이유를 묻자 윤편은 대답했다. 자신이 만들고 있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은 구멍을 깎을 때 너무 많거나 너무 적게 깎아서는 안 되는데 그 오묘함을 자식에게 도저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공이 읽고 있는 책 또한 성현이 문자로는 미처 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테니 ‘쭉정이와 찌꺼기’라는 것이다. 장자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그렇게 보면 사실 고전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책은 작가가 남긴 ‘찌꺼기’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장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찌꺼기'라고 해서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 옛사람이 찌꺼기라도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성현이 남긴 지혜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다만 ‘장자’가 말하는 바는, 책을 읽되 ‘책’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책이 《장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자유로운 이야기꾼이었던 장자는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비단 성현만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쓴 책이라도 거기에 얽매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이 남긴 찌꺼기에, 뼈에 어떻게 살을 붙이는지는 읽는 사람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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