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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동물의 자매다. 식물도 동물처럼 먹이를 먹고 자손을 낳으며 살아간다. 식물을 알고자 하면 동물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고, 동물을 이해하자면 식물의 본성을 살피는 것만큼 빠른 방법이 없다.


"식물은 폴립으로 이루어진 폴립 모체와 같다." 식물은 단일 존재가 아닌 집합적 존재다. 끈끈하게 결합하여 하나로 이어진 개체의 연합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전체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공동체다. 식물도 산호처럼 살아 있는 벌집이며 모든 일원이 공동의 삶을 살아간다.


노동은 모두 잎이 무성한 새 가지, 즉 그해에 돋아난 가지에 온전히 맡겨진다. 이 가지가 공동체를 부양한다. 뿌리를 통해 흙에서 빨아올리고 잎을 통해 대기에서 끌어내린 원료를 배합해 끈적한 수액을 만든다. 식물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이 수액으로 창조된다. 해가 바뀌면 한 해 동안 수고한 가지는 말하자면 은퇴를 선언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의 눈이 잎과 가지로 자라서 이듬해 새로운 눈이 대체할 때까지 부지런히 공동의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나무는 여러 세대가 해마다 차례대로 업무를 이어받는 조직체와 다름없다.

나무의 세대는 몸통인 줄기에서 시작해 큰 가지를 거쳐 가장 최근에 자라난 잔가지까지 단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잎을 달고 있는 새 가지는 현제 세대다. 식물의 주요 업무가 모두 이 세대에서 일어난다. 다음으로 눈은 가까운 장래에 모습을 드러낼 미래 세대다. 나무가 지금 고생을 자처하는 것도 다 이들을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나무줄기와 그 아래쪽의 굵은 가지들은 과거 세대다. 이 한물간 세대는 활동을 멈추었다. 심지어 죽은 것도 있다. 하지만 산호로 따지자면 폴립의 모체와 같아서 젊은 세대를 위한 토대 역할을 기꺼이 자청한다.


세포는 식물을 건설하는 벽돌이다. 특별한 순서에 따라 모아놓으면 식물의 어느 부위든 문제없이 만들 수 있다.

…… 예를 들어 강낭콩은 한창 자랄 때면 한 시간에 최소한 2,000개의 세포를 만든다. 생산된 세포는 곧장 적절히 포장되어 적재적소에 분배된다. 호박은 하루에 무게가 1킬로그램도 넘게 늘어난다. 세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갱이가 매일 1킬로그램씩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오직 식물만이 최초 공급원에서 재료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 식물은 먹을 수 없는 것들에서 먹을 것을 만든다. 식물은 숯과 공기와 물을 먹고 기적처럼 동물의 식량으로 바꾼다. 그러므로 탄소, 산소, 수소, 질소를 조합하여 유기물질을 만들고 지구의 모든 창조물에 꾸준히 성찬을 베푸는 것은 바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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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줄기가 복잡한 미로가 되어 암흑의 땅속 깊은 곳을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실 또한 우리 내부에서 몇 갈래 길로 나뉘어 나아가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이 지상에 정지한 쇠공일 뿐이다. 매우 묵직하고 구심적인 쇠공이다. 나의 사념은 그 안에 단단히 갇혀 있다. 겉보기는 볼품없지만 중량만은 충분히 갖추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힘껏 밀어주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다. 어느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나는 몇 번이고 나의 그림자를 향해 묻는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그러나 그림자는 대꾸해주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일한다.

하지만 어덯게 그 일자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오랫동안 서적 배본 및 유통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지만 도서관 쪽은 전담 부서가 다로 있어서 거의 접점이 없었다. 그리고 기억하는 한,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단 시설을 이용해 본 적도 없다.


이렇게 좁은 동네이니 도서관장이 고야스 씨에서 나로 바뀐 얘기는 다들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정보가 퍼지지 않았을 리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렇게 들고 나는 사람이 적은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도시에서 온 외부인에게 호기심을 품지 않을 리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그럴사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하긴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불편한 것도 아니다. 고야스씨와 소에다 씨의 도움을 받아 나는 순조롭게 업무 요령을 익혀가고 있다. 그러니 '뭐 어때, 곧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겠지'라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고야스 씨 말마따나 모든 것이 차차 선명해질 것이다.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너의 손에 닿는다. 그리고 그 손을 잡는다. 너도 내 손을 잡는다.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나의 젊은 심장이 가슴속에서 메마른 소리를 낸다. 나의 기억이 선명한 예각을 지닌 쐐기가 되고, 나무망치가 그것을 올바른 틈생에 정확히 박아넣는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느새 내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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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진짜 너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에 있다. 그곳에는 냇버들이 늘어진 아름다운 모래톱이 있고, 몇 군데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외뿔 달린 과묵한 짐승들이 곳곳에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공통주택에 살면서 간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한다. 짐승들은 도시에 자라는 나무 잎사귀와 열매를 즐겨 먹지만, 눈이 쌓이는 긴 겨울 동안 많은 개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 도시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곳에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다고.


짐승들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사이클과 질서 속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질서는 그들 자신의 피와 맞바꾸어 주어진다. 격렬한 일주일이 지나고 보드라운 4월의 비가 핏물을 씻어낼 무렵, 짐승들은 다시 원래대로 정밀하고 온화한 존재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광경을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너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둘만의 교제를 시작한다.

우리는 연인 사이였을까? 간단하게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될까? 나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와 너는 적어도 그 시기, 일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을 티 없이 순수하게 한데 맺고 있었다. 이윽고 둘만의 특별한 비밀 세계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누게 되었다-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를.


나는 감탄해서 그림자를 보았다. "머리를 쓸 줄 아는구나."

"그거 알아요? 이 도시는 완전하지 않아요. 벽 역시 완전하지 않고요. 완전한 것 따위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요. 어떤 것에나 반드시 약점이 있고, 이 도시의 약점 중 하나는 저 짐승들이에요. 그들을 아침저녁으로 출입시킴으로써 도시는 균형을 유지하죠. 우리는 방금 그 밸런스를 무너뜨린 겁니다."


소리 없는 어둠이 방을 감싸기 시작할 때,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코트 깃을 세운 뒤 강변길을 걸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은 쓰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야 할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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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분해사고는 일과 일상에서나 생기는 문제로 고민할 때 논리적 사고보다 더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단숨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사고법이다.


분해사고의 장점은 무수히 많지만 실제로 문제 해결이나 목표 달성에 직접 적용해봤을 때 누구나 쉽게 경험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누군가의 의견을 밀어내고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생각하면 다른 관점도 중요하다'라는 식으로 제안하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가 쉬워진다.


작게 나누어 생각하는 습관이 없으면 주어진 조건이나 방식 안에서 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과제나 문제를 더 파고 들기 전에 '활동량으로 해결하자',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결론으로 쉽게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분해사고를 사용하면 좀 더 높은 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해결책을 재검토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개인은 사회구성원이며, 사회의 관점은 돌고 돌아서 결국 개인의 관점과 연결된다. 즉 관점을 높여서 생각하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일하다보면 회사의 목적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업무의 목적이나 목표를 생각할 때 개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을 실행하는 에너지나 열정은 오직 자기 안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회사의 규칙을 따라야 해', '돈을 받는 만큼 일해야 해'라는 이유만으로는 한정적인 에너지만 생기고 쓸 뿐이지만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때 훨씬 더 많은, 심지어 무한한 에너지가 샘솟게 된다. 당연히 업무 성과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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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이식 수술의 발상은 뇌와 신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의 관점에 기초한다. 이는 종전의 이원론적 관점, 즉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이원론에서 '뇌와 신체'로 더 정교하게 구분한 관점이다. 종전의 이원론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설 자리를 점차 잃었지만, 뇌와 신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은 오히려 입지가 커졌다. 인간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신체와 결부하는 일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표명한 이원론이 저물고, 정신을 뇌 안에 귀속시키며 또다시 신체에서 애써 떼어놓으려는 이원론이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뇌와 신체를 구분하는 이원론마저 거부하는 추세를 보인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인원, 돌고래, 코끼리 같은 일부 포유류도 자기를 인식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속속 입증되었다.


매 순간 변화하는 신체 상태에 따라 이들 간의 우선순위를 알맞게 배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 · 예방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활용한다. 일생 뇌가 하는 일이란 이렇게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환경을 활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기억하는 이유는 미래를 더 잘 예측하고 통제함으로써 나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정보보다도 나와 관련된 정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가리킨다는 최근 연구가 많이 있지만, 여기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반영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뇌 속에는 일종의 '사회적 계량기'라 불리는 장치가 있어서 주변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수용 혹은 배제의 사회적 단서들을 끊임없이 탐지하고 모니터링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 계량기를 통해 수집된 사회적 단서를 토대로 자존감은 매 순간 수정된다. 다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나의 인식은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나므로, 내 자존감이 결국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나의 인식과 관련 있음을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즉 자기 보고에 의존한 자존감 연구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존감에 관한 뇌과학적 연구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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