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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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객원교수인 진 네베바는 좁은 사무실에서 광고를 보고 지원한 세 학생과 마주하고 있다.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한 지원자였던 그녀를 조수로 택했다.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해서 알든 모르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깐.

그리고 우린 일명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통해 객원교수인 진 네베바의 입장에서, 조수인 비올렌의 입장에서, 당사자인 퍼트리샤의 입장에 빗대어 시간의 흐름을 타볼 것이다.


저자, 롤라 라퐁은 소설가이자 음악가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프랑스 소르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첫 번째 소설 「협상 불가능한 열벙」을 발표한 이후, 「나는 그것으로 위안받네」, 「우리는 폭풍을 예감하는 새들이다」, 「절대 웃지 않는 작은 공산주의자」, 공쿠르상 후보작 「전복시키다」 등 여러 작품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1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에스트프랑스문학상, 쥘리메상, 베르시옹페미나상, 랑데르노상을 비롯한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자네는 분노하지 않는 이 세계에 더는 머무를 수 없어.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오직 돈만이 오고 가지.

하지만 이 세계의 마음은 나뉘어 있어. _≪음모 La Conspiration≫




퍼트리샤 허스트의 납치


신원불명의 3인조에 의해 한 재벌가 딸이 납치되었다. 잡지 열 몇개, 텔레비전 방송국, 라디오 방송국 등 언론 제국을 이끌어가던 집안이었다.

함께 있던 약혼자를 내려치고 단 몇 초 만에 퍼트리샤를 납치했다.

이내 신원불명의 납치범들은 스스로를 SLA 소속이라 했으며 각 언론사에 성명서를 보냈지만 희한하게 몸값을 요구하진 않았다.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을 바라보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의 관점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퍼트리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교수는 비올렌에게 사진 여러 장을 꺼내 붙이라 했고 비올렌은 하나 하나 압정으로 고정시켜가며 붙였다.

퍼트리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사진들을 보면 어린 시절의 그녀는 지극히 평범했다.

공을 들고 있는 어린 퍼트리샤의 행복한 모습이 묻어난 사진에서 부족한 점을 하나 꼽자면 그녀의 치아뿐이었다.

또 다른 사진,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은 그녀는 긴 밤색 머리에서 수수한 아름다움과 살짝 무미건조한 부드러움이 풍겨났다.

또 다른 사진, 히피 유행은 따르되 나팔바지와 밤색 혁대, V자 모양의 옷깃 등 여느 대학생들의 유니폼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 드레스 입은 자매들에게 둘려싸여 찍은 그녀의 약혼식 사진이었다.

특이하다면, 콧수염이 있는 그의 약혼자는 퍼트리샤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컸으며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는 반면에 퍼트리샤는 허공을 응시하며 얌전하게 웃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고선 비올렌은 말한다. 퍼트리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내일은 더 요약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 비올렌이 앞으로 읽게 될 글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를 바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 사진들은 틀림없이 허스트가가 고른 것이다, 퍼트리샤는 세계도 받았고 대학생이고 치어리더이고 약혼도 했다, 그러니 곧 우리의 딸이나 여동생, 혹은 그 누군가의 여자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퍼트리샤를 납치한다는 건 용서 못 할 폭력이다, 라는 식으로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은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요약하는 것일까?




퍼트리샤인가, 타니아인가, 무엇이 진짜인 것일까


앞서, 퍼트리샤 납치 사건을 이어 말하자면 한 은행에서 강도 사건이 벌어졌는데 CCTV 분석 결과 의외의 인물을 포착한 것이었다. 바로 납치되었던 재벌가의 딸, 퍼트리샤였다.

그리고 몇 달 후, 납치범들과 퍼트리샤가 체포되었다. 퍼트리샤 또한 처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과 변호사는 그녀가 세뇌당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알다시피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증거'와 '증인'이다.

변호인단은 퍼트리샤가 세뇌당했다는 것을 전문가에게 자문받고 싶어 알아봤지만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오히려 SLA의 여왕이었다."

결국 변호인단은 대학교수 진 네베바에게 무죄를 입증할 보고서를 청하게 되었고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사건을 정리하고 요약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비올렌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몸값 요구가 없었느냐였다.

왜 그들은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라고 했을까?

이후 듣게 되는 녹음 테이프는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게 사실이다.

퍼트리샤가 직접 말한다.

"엄마, 아빠, 전 잘 있어요. …… 절 굶기는 사람도 없고, 때리거나 겁주는 사람도 없어요. …… SLA 대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며 굉장히 불쾌해한답니다. 전 경찰이 오클랜드 집에 일제사격을 하며 공격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났답니다. …… 이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아니에요. 그들은 정직하고 제게도 분명한 태도를 취했어요. …… 하지만 저는 잘 있어요! 저는 전쟁포로이고, 제네바협정에 따라 대우받고 있답니다. 요컨대 저는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재판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제가 지금 이렇게 붙잡혀있는 건 우리 가족이 지배계급에 속해서 그런 거니 엄마, 아빠가 그 사실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퍼트리샤는 자신을 타니아라고 지칭했으며 스스로 달라지고 성장했음을 주장했다.

비올렌은 교수에게 퍼트리샤가 퍼트리샤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다른 사건이 있었다. SLA가 한 스포츠용품점을 털기 위해 들어갔을 때 차 안에 퍼트리샤 혼자 남아 도망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가게 안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졌고 심지어 퍼트리샤가 차 안에서 경비원에게 총을 쏘면서 대원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일조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SLA 대원들과 함께 체포될 당시에도 오히려 안도와 환희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Stockholm Syndrome, 즉,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의미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패트리샤 허스트라는 인물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 1974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인데 당시 좌익 과격파인 공생 해방군(Symbionese Liberation Army, SLA)에 의해 납치되었었다.

며칠 후, SLA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가족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이 습격을 당했었는데 SLA의 짓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은행 CCTV에 허스트가 소총을 들고 은행 직원과 고객들을 당당한 태도로 협박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FBI가 이들의 근거지를 급습하여 조직원 일부를 사살하자 허스트는 타냐라는 이름을 걸고 부모 및 사회를 공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왔다.

결국 FBI와의 총격전 끝에 드디어 허스트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웃긴 것은 바로 이 뒤부터다.

재판에 서게 된 허스트는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조직원들에게 세뇌당해 어쩔 수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것이 많았던 허스트에게 배심원들은 징역 35년형의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거대한 '부'를 지닌 부모 덕에 2년도 안 되어 가석방되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부'를 가진 자들은 모든 것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언론 제국을 거머쥐었던 부모의 빽이 없었다면 엄청난 변호인단의 변호를 받을 수도 없었을테고 무엇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녀를 가석방시켜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이다.

즉, 학대받은 이들이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뜻한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바로 '아동 학대'이다.

일부 아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도움을 구해 결국 그 가정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한다. 왜일까?

때린다 할지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세상과 연결지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매달리고 더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동뿐만 아니라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순간 학대에 스며들면서 가해자가 나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고 단정짓기 때문이다.

실제 정신적 구속이 신체적 구속보다 그 파급력이 강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를 줄 지는 수치상으로 측정할 수 없다.


아, 그렇다면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가스라이팅과 스톡홀름 증후군은 동일하다고 봐야할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스스로 피해자가 의식하며 가해자에게 긍정적인 감정 이입을 통해 내뱉지만,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가스라이팅과 스톡홀름 증후군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한 배우 때문에 가스라이팅이 연일 뜨거운 감자로 오르고 있는데 기사에 나온 그 문자들이 사실이라면 가스라이팅의 적절한 예시로 볼 수 있겠다.

가스라이팅 하는 이들의 특징이 '"너를 위한 거야.",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야."'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이는 당연히 교묘한 정서 학대로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조작되어진 심리 속에서 행동을 조종당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 그리고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면 솔직히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이를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게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마음 거리두기'라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봤던 대목이 떠오른다. 관계에 있어서 적정선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타니아로 지칭했지만 막상 재판에 서고나선 자신이 자신이 아니었다고 했던 패트리샤 허스트.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대로 감옥에서 몇 십 년이고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부모가 있었으니 수감 생활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가석방되고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된 것만 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책의 줄거리를 다 담을 순 없어 대부분 알고 있는 실화 내용을 기본 삼아 짤막하게 줄거리를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비올렌의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을 읽을 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순간적으로 헷갈릴 수 있으니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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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4-15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표지가 강렬하네요! 스톡홀름 증후군과 가스라이팅의 차이점이 애매모호했는데 하나님께서 쉽고 명확히 설명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었어요ㅎㅎ 아직 쌀쌀한 날씨 따뜻한 저녁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04-19 00:37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께 쉽게 이해가 되었다니 기쁘네요:) 낮에 해가 쨍쨍하긴 해도 꽤 쌀쌀한 것 같아요ㅎ 미세먼지도 너무 나쁘고요ㅠ 이번 주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온도차는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다행히 미세먼지는 살짝 걷히는 것 같아요! 파이버님,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첫 집 연대기 - 일생에 한번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찾는 경이로운 시간
박찬용 지음 / 웨일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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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오롯이 내가 꾸민 내 집에서 살기는 모두의 꿈이다.

허술하면서도 결국은 완성도있는 독립 라이프를 읽고나면 오롯한 나만의 독립을 꿈꾸게 될 것이다.


저자, 박찬용은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부터 쭉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2009년 말부터 라이프스타일 잡지업계에서 일했다.

여행잡지, 시계잡지, 남성잡지 등에서 에디터 직무를 수행하며 2010년대 종이 기반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의 급격한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요즘 브랜드」, 「잡지의 사생활」,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를 냈다.



자가 보유 유무에 따라 타인의 재산을 판가름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아가, 작은 것보단 크면 클수록 좋고 소박하기보단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다.

그렇게 변해버렸다, 세상이.


어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집 장만하는 것은 '꿈'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룰 수 있는 목표라기보단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 말이다.

이는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분명 있다.

몇 년 전, 한 변호사가 자신과 가족의 명의로 123채의 오피스텔을 보유한 기사를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돈 좀 있는 사람이라면 다 그런 부류일테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현재 뜨겁게 달구고 있는 LH 투기사건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문제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도 모두가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내 집을 꼭 장만하리라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제가 사실은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 사는데요…."


저자는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대학가 원룸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매물을 알아보다 그 집을 택하게 되었고 보증금 이상의 공사비와 몇 달 치의 월세를 들여 공사를 하게 된다.

잡지 마감이라는 일에 부딪히면서도 공사를 동시에 진행한 저자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에 딱 들어맞는 셈이었다.


대한민국하면 편리함과 신속함을 자랑하지 않는가!

요새는 집 구하는 어플들 또한 너무 잘 나와있어 다방, 직방 등의 앱을 통해 여러 매물들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로 종로구,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 마포구, 서대문구를 세심하게 살피게 되었고 책에도 나와있듯이 각 구의 특징이 현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대목이었다.

그렇게 저자의 눈에 들어온 한 집이 결국 낙점되었고 저자는 공인중개사 사장님께 이렇게 말한다.

"그냥 오늘 한번에 다 드릴게요."

보통 계약을 하면 1/10을 계약금으로 내고 입주 후에 나머지를 내는 것이 맞는데 어차피 들어와 살 것이고 무엇보다 귀찮다는 이유에서 저자는 한 번에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작 그렇게 못 할 것 같다. 어떤 변수가 생길 지도 모르는 것이기에.



생각만큼, 아니, 생각보다 낡았기에 고쳐야 했다. 그런데 이는 '허락'이 필요했다.

집을 수리하고 싶은 저자는 1층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화가 많으신 분이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그렇게 할머니의 이런 저런 이야기까지 들으며 본론을 조용히 꺼낸 저자에게 건넨 답은 실로 명료했다.

"응, 그렇게 해."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저자는 마루에 깔 바닥 재료부터 벽지, 화장실 그리고 전기까지 손 봐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2부의 【고치기】를 읽다보면 저자와 함께 인테리어 보러 다닌 기분이 절로 들 것이다.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매우 많아 내 손으로 인테리어하는 것도 위시리스트 중 하나이다.

특히나 호텔, 카페 혹은 박물관 등을 갈 때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사진으로 남기거나 잘 기억해 뒀다가 스케치를 한다.

꼭 그렇게 꾸미겠다는 마음보단 정말 재미있어서랄까.

그래서 외국 채널에서 나오는 인테리어 소개 영상들을 자주 보는 편이고 특히 잡지를 많이 보는 편인데 (국내 잡지인) 메종, 까사리빙 외에 영국, 미국 잡지 위주로 보고 있다.




혼자 사는 건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집에 들어갈 걸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았고 내 예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열심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질문은 크게 둘이었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 중 이 집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 독립을 생각했을 때 저자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꿈꾸었다.

변했을까? 아니면 그대로일까?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한다.

동선이 바뀌니 택시를 덜 타게 되었고 무엇보다 버스를 타면서 자연스레 책 읽는 빈도수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인테리어 세계가 얼마나 넓은 곳인지 눈을 뜨게 되었고 취향은 둘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꾸민 이 집에 대한 만족감이었던 것이었다.

삶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기쁨들이 있듯이,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결정한 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 힘껏 꾸민 이 집에 사는 것이 그와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 집이라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마음 푹 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이자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원한다면 자신의 취향 한 스푼을 담아) 최대한의 좋은 자재들로 꾸민 집이야말로 나에게 오롯이 주는 집이 아닌가싶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긴 하지만 자가는 아니다. 오래된 집이라 손 봐야 할 곳이 많다.

문득 책을 읽고나니 손봐야 하는 몇 군데들이 머릿 속에 떠올라 여름이 오기 전에 꼭 페인트를 사서 동생과 함께 칠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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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거리를 두는 게 좋아 (특별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고양이의 행복 수업
제이미 셸먼 지음, 박진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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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의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며 한밤이 되었을 때, 책장에 가만히 몸을 기대어 있으면 참 조용하다.

파스텔톤의 핑크빛이 가득한 머그컵에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기대었던 책장에 잠시 떨어져 눈길을 준다.

그리곤 몇 십분만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을 꺼내들어 하루를 마무리한다.

책장에 기대어 앉는 그 위치에는 생각날 때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로 선별하여 꽂아놓곤 하는데 『사랑한다면 거리를 두는 게 좋아』 또한 그 자격이 충분하다.


저자, 지은이 셸먼은 뚱뚱한 고양이와 좋은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가진 예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로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온라인 문구류와 기발하고 독특한 고양이 디자인이 특징인 'The Dancing Cat'이라는 이름의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마다 창가에서 내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고양이 브룩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또다시 들어와 나의 뮤즈로 활동하고 있다.



네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 알지?

오늘은 유난히 신경 쓸 일 많았잖아.


이젠 쉴 때야.

널 위해서.


낮잠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여유니까.



무조건 달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어렸었던 나의 '착각'이었다.

달리면 달릴 수록 기름이 소진된다는 것은 당연한데 기름 채울 시간없이 억지로 달렸으니 고장날 수밖에.

교수님께도 들었던 말이 '낮잠'인데, 막상 쉬려니 양심상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그런 생각은 일단 접고 요새는 꼭 휴식을 취하곤 한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휴식도 '꼭' 필요하다.



멋지다고? 당연한 말씀!


난, 늘 단정하지?

뭐든 준비하고 있으면

삶이 훨씬 쉬워지는 법이거든.



깔끔쟁이인 고양이들은 항상 단정하게 준비한다, 핥고 또 핥고.

어떤 면에서 보면 피곤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깔끔하게, 단정하게 준비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뒷말처럼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니깐.



햇빛에 흠뻑 젖어봐.


충전하듯이.

저 찬란한 태양이 널 위해 떴다는 사실.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이따금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곤 한다.

숲이 우거진 곳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나무와 흙이 있는 곳 말이다.

항상 시골에 가면 자연 그대로의 냄새가 좋아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을 맞기 위해 몇 시간이고 동네 주변을 산책한다.

그 순간은 햇님과 바람 그리고 나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코로나때문에 꺼려져 낮에는 마당만 돌아다니고 대부분 한적한 저녁이나 밤에 나가곤 했다.

그렇게 햇빛을 못 받아서 그랬는지 비타민 수치가 또 떨어지는 바람에 작년부터 비타민D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고 있다.

충전하듯이, 햇빛에 흠뻑 젖는 것도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나아가, 살면서 힘듦과 위기의 순간에 부딪히는 것이 다반사지만 자신을 지지해주는 '편'이 없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글에 나와있듯이, 어쩌면 찬란한 태양이 나를 위해 매일같이 떠주고 있으니깐.



친구들 많이 사귀라고 강요하지 마.

내가 꼭 그래야 해?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잖아.


차라리 혼자가 되겠어.

뭐 어때!



배구선수 쌍둥이 자매를 시작으로 요새 유명인들의 '학교폭력'과 관련된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단순히 말다툼이라면 이는 진정한 사과로 끝낼 순 있겠지만 예로서 쌍둥이 자매들의 만행을 읽고나면 그런 생각은 절로 접어진다.

본인이 뿌린 씨앗은 본인이 그대로 거두는 법이 있듯이, 뒤로 감춰뒀던 무섭고도 못된 인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을 보면 이는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들 스스로 자각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각하지 못한다.

(심리학에서 이에 대해 공부했던 내용을 빌리자면) 그들은 단순하게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괴롭히는 내내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이후, 나이를 먹고 그 때의 일을 물으면 단순히 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분명 기억이 있지만 자신의 현 상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피해자들은 그렇게 아픔과 상처를 가진 채 꼭 꼭 숨고 스스로 삼켜야 한다, 평생.

용기내어 살짝 언급하자면 나 또한 잠깐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분명, 지금의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불과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였는데 친구들을 선동하며 대놓고 따돌림을 시키고 온갖 무시를 당했었다.

그 때, 엄청난 스트레스로 학교에 가기 싫었고 난생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었다.

그렇다고 거기에 내가 지고 싶진 않았다.

책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오히려 소수의 다른 무리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그들은 그 무리마저도 포섭하며 따돌림시키려 했었다.

다행히도 그 때가 학년이 끝날 때라 그렇게 길고도 긴 힘든 시간을 끝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이유가 황당했는데 (당시 반에서 회장이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너무 아껴하셔서 질투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나열하면 괜스레 마음 아프고, 무엇보다 떠올리기 싫으니 언급하진 않겠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들은 절대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친구, 저 친구 다 사귈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면 충분하다.

그들은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 한 책을 읽고선 마음을 다잡았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 때 마음 속에서 외쳤던 말이 '차라리 혼자가 되겠어. 뭐 어때!'였다.

그 덕분에 더 진국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외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고민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바로 '교우관계'였다.

물론, 삶에 있어서 인맥은 가장 중요할 수 있으나 걸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더러운 흙탕물에서 손을 내미는 친구의 손을 맞잡으면 그대로 흙탕물에 같이 들어갈 수 있으니, 그럴 바엔 혼자가 낫다.



난 다시 뛰어볼까 해.


물론 그 전에 소중한 걸 잃을 염려가 없는지

확인부터 해야지. 꼭!


나의 사전에 '후회'라는 단어가

올라가는 걸 원치 않으니까.



점프하고 또 점프한다.

숙련된 집고양이들은 점프할 때 가급적 물건에 닿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나아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도달하지 못해도 언제나 뛰고, 또 뛰어야 한다.

단, 망가지지 않게, 깨지지 않게,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게 말이다.


지쳐있는 삶에서 고양이가 건네는 메시지는 참 간결하고도 분명하다.

'나'를 찾기 위해,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새로운 배움으로 채워넣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짤막한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병원 가는 길에도 핸드백에 책을 넣어 가는 길에도 읽고 또 읽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와 일 그리고 사랑, 우정, 인간관계까지, 우리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치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자격이 있는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메시지는 분명 필요하다.

이 책은 몇 권 더 구입해 힘든 이들에게 꼭 건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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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3-04 0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장님, 꽃이 있는 사진 투명한 유리병이 깨끗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잘 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03-17 16: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오늘 하루 행복하게 마무리하세요♡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리 우드러프 외 지음, 린지 미드 엮음, 김현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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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언젠가 나도 40대가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나이를 잊은 채 아직 내가 열일곱 살인 듯, 스무 살인 듯한.

특히 친구들을 만날 때면, 지금의 나이를 어느 순간 잊어먹게 된다.

열아홉 때까지는 안 그랬는데 스무 살이 딱 되고나서는 브레이크 없는 시간이 흐르는 듯 했다.

지금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뭐랄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마음에서 나오는 일종의 투정이랄까.

열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풀어낸 마흔의 이야기를 접해보니 '멋진 마흔'을 마주하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 같다.


저자, 린지 미드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영어학 학사를,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수료했으며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그 외 열 네명의 저자들이 있다.



소울메이트, 옷으로 쓰는 우리의 연대기 _캐서린 뉴먼


저자, 캐서린 뉴먼은 소설가로 월간지를 비롯해 「뉴욕타임즈」, 「오프라 매거진」, 「보스턴 글로브」 등 여러 간행물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1972년

나는 청 나팔바지, 그리고 모자에 인조털이 달린 물려받은 파카를 입고 있고, 내 친구는 빨간색과 흰색 체크무늬 바지에, 내가 엄청 탐내는 빨간색 고급 코트를 입고 있다.


1975년

우린 가장자리에 술이 달린 스카프에 샤워커튼 고리를 주렁주렁 꿰매 달아 머리에 두르고, 분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1978년

우리는 얼굴에 계란을 바르고 있다. 아니, 흰자만 바른 것 같다. …… 우리는 '고래를 구해요!'배지를 달고, 줄무늬 스니커즈를 신고, 본벨 화장품에서 출시한 케이크 향, 그리고 소다 향 립밤을 줄에 달아 목에 달랑달랑 걸고 있다.


1980년

나는 무지개 멜빵을 하고, 무릎 보호대를 차고, 반짝거리는 빨간 바퀴가 달린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앞머리를 내리고 머리는 땋았다.


1981년

바르미츠바에 갈 때, 우린 아주 얇은 골지의 카키그린 코듀로이 바지에 하얀색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통굽 샌들을 신었다.


1983년

우리는 발목에 지퍼가 달린 청바지를 입고 있다.


1986년

우리는 그룹 R.E.M.의 티셔츠를 입고 빈티지 라인석 액세서리를 하고 마돈나 스타일의 머리띠를 머리에 둘렀다.


1989년

사진 속에서 친구는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색 미니스커트, 그리고 예일 대학 스웨트 셔츠를 입고 있다.


1990년

우리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입고, 정치적인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침묵=죽음) 아래에는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입고 있다.


1994년

뉴욕에 사는 친구는 닥터마틴 신발을 신고 유명한 브랜드의 짧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다.

캘리포티나에 사는 나는 싸구려 군화를 신고 중고 가게에서 산 짧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었다.


1996년

난 여전히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스에 살고 있다. …… 친구도 여전히 뉴욕이다. …… 우리는 서로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둘이 같은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2003년

친구는 내가 입던 검은색 임부복을 입었다. 그 옷은 친구의 첫 아이를 감싸고 있다.


2007년

우리는 참을성이 바닥나는 걸 느끼며 억지로 좋은 척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함께 호텔 방을 쓰고 있는데, 아기는 울어대고 잠이 깬 큰애들은 기분이 안 좋고, 우리는 서로 '저런 건 참 저렇게 안 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나처럼 헐렁한 탱키니를 입고 있는 건, 이 나이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아줌마 뱃살을 감추기 위함이지 소변 주머니나 항암 치료를 위한 케모포트, 그리고 여러 차례 수수릉ㄹ 받고 생긴 수술 자국 같은 것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다.


2015년 2월

나는 사흘째 똑같은 회색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있다. 친구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의료용 압박 스카팅을 신고, 폴리 재질이 섞인 환자복에 정맥 주사를 꽂고 있다.


2015년 6월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 모두가 차례로 말한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옷이라는 게 영 기분이 이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전부 다 갖고 싶다.




이렇게 보면 '일기'라는 것은 단순히 기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는 단위로 환산할 수 없다고 자부한다.

무엇을 입고 다녔는지에 대한 짤막한 일기에 불과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괜스레 서글픔이 몰려오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나의 스타일을 직,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옷'이다.

옷 입는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평소 성격이나 취향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일기를 보면 성격 외에 환경 또한 스타일의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서, 코미디언 박나래님을 보면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그녀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옷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반면에 그 옷을 내가 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밝고 웃음도 많다. 그러나 박나래님의 활기찬 성격의 턱 끝에도 못 미치는 나는 평소 깔끔하고 단아하게 입는 편이다.

외출할 때 열에 아홉은 거의 정장식으로 입고 아주 가끔씩 캐쥬얼하게도 입지만 대부분은 블라우스, 치마, 슬랙스 혹은 원피스가 전부이다.

좀 웃길 수도 있긴한데 집에 있을 때도 깔끔하고 예쁜(?) 홈웨어를 입고 있는 편이다.

엄마의 앨범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닮은 것 같으면서도 살짝 안 닮은 듯한.

엄마도 내 나이 때에 대부분 입었었는데 프릴이 있는 예쁜 원피스 혹은 깔끔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정작식 원피스가 대부분이었다.

여기까지 엄마를 꼭 닮긴 했는데 90년대의 도전적인, 패셔너블한 옷을 걸친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마주해 볼 때면 내가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아, 그 부분은 아마 둘째 동생이 엄마를 닮은 듯 하다.)

극중 저자의 마지막 일기를 보자.

저자는 친구의 옷을 가져왔을까? 아님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녀는 친구의 줄무늬 튜닉을 입고 출근하며 잠자리에 들 때는 친구의 잠옷을 입는다.

다른 친구들이 행복하냐고 의아해하며 물을 때면 그녀는 행복하다고 답한다.

농담을 잘하는 다정한 그녀의 십대 딸이 "절친이 난소암으로 죽고, 내게 남은 건 이따위 티셔츠뿐."이라는 글씨를 찍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만 남긴 것이 아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누군가와의 영원한 이별을 몇 번이고 맞게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다가올 40대에도 누군가와 이별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몇 주 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침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주셨다. (선생님은 누가 봐도 30대 같은 40대의 예쁜 선생님이다.)

살아보니 인간관계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물론 넓은 인맥을 가지는 것이 능력 중 하나이니 어떻게든 다 챙겨주려고 하지만 내가 준 마음을 돌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상처로 답하는 이들도 분명히 많다고.

꾸려진 가정 때문에 혹은 바쁜 일 때문에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끝까지 남는 친구는 분명히 있다고.

그들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이다.




꼭 다가오는 40대 혹은 40대가 그 대상은 아니다.

그저 살아오는 이야기가 한 책에 묶여 있어 '인생'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언니, 오빠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여자 나이, 서른은 이제 아이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인생에서의 시작은 20대가 아닌, 이제는 30대, 조금 늦어지면 40대가 될 수 있으니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덧붙여준다.

마흔이라는 나이의 기점을 맞으며 가족, 친구, 결혼, 일과 꿈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가득 담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한숨 쉴 겨를 없이 나는 내일도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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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03 1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아보니 인간관계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넓은 인맥 관리하다가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홀하게 되고 어떻게든 다 챙겨주려고 하지만 내가 준 마음을 돌려주기는 커녕 상처로 답하는 이들이] 정말 많아요!
그냥 뭐든지 누구든지 적당히 거리두기 !
비대면시대에 인간관계도 미니멀리즘으로 ㅋㅋ
하나님 오늘하루 화사하게 보내세요 ^ㅎ^

하나의책장 2021-03-17 16:22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마음 그대로 받는 걸 바라지도 않는데 도리어 상처로 주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인연들은 과감하게 끊어내니 오히려 더 편하더라고요. scott님 말대로 누구든지간에 적당히 거리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ㅎㅎ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리 우드러프 외 지음, 린지 미드 엮음, 김현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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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나이대의 이들에게 층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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