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기도 - 무력한 심령을 만지는 성령의 도우심 오 할레스비 가들리 북스 1
오 할레스비 지음, 조계광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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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오 할레스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신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나치정권에 항거하다가 2년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건의 실천을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진지하게 추구할 것을 역설했다. 이 책은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어렵지 않으며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이자 특권임을 쉽게 설명해 준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기도의 가장 큰 비결이다. 예수님께 마음 문을 열어드려 바짝 마르고 시들어가는 영혼에 예수님을 모시는 기능을 한다. 기도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기도를 인간과 친밀하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수단으로 삼으셨다. 


사람은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사용하고 나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 기도에 의지하게 된다. 무력함은 기도하는 심령의 자세이며 진정한 기도를 하기 위한 기본 상태이다. 생각은 온통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찬 것 같고 마음은 죄로 인해 더럽혀진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과 관계한 것들은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죄를 하나 추가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아기의 무력감이 어머니의 모성을 자극하여 아기의 필요를 채워준다. 아기처럼 더 이상 입으로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 마음속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무력감이 하나님의 긍휼과 부성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하나님은 그 심정을 헤아리시고 소리 없이 외치는 진실한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 자비하시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우리가 무력한 가운데 열어놓은 마음 문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신다. 무력감은 우리의 자만심과 자기만족을 부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이다. 오직 우리가 무력할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 문을 열어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도록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표현할 수 없는 만큼 강하게 의지하게 한다.


우리 자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려움과 장애 요소를 갖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거나 마친 뒤에 종종 의심과 불안을 느끼곤 한다. 믿음으로 인해 고뇌하거나 시련을 격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믿음과 의심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고 심지어 믿음은 적고 의심이 많을지라고 그냥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연약함까지도 솔직하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기도의 응답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협조할 것은 따로 없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무엇을 더 보태야 기도를 들어주실까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의뢰하고서 기도 응답의 때와 방법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조급함으로 간섭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자신이 계획했던 방법대로 응답을 기대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것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다.

기도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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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상을 믿습니다
케네스 해긴 지음, 김진호 옮김 / 믿음의말씀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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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1917년 8월에 텍사스 시골에서 태어나 17살 소년 설교자로 시작하여 2003년 10월에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1917년 8월 20일에 1키로도 안되는 0.9kg도 안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어떤 생명의 징후도 없어 희사는 아이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외할머니 손위에 올려진 채로 뒷마당에 뭍으러 갔다. 그 당시 의학기술로는 아이가 도저히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지만 약간의 생명의 조짐이 감지되었다.

의사는 죽었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아이가 살아있다고 말해 의사는 유아용 유동식 샘플 봉지를 주었다. 유동식 음식을 타서 먹이다가 안약 넣는 기구로 우유를 먹였다. 그렇게 살아났지만 기형심장을 갖고 태어나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약간의 움직임은 가능했지만 활동은 극히 제한되었다.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허약함으로 인해 놀림받고 따돌림 당하였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는 엄마와 아이들 남겨두고 떠났고 9살이 되었을 때는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외갓집에서 살게 되었다. 15살부터 부분적으로 마비가 찾아와 완전히 병상에 누웠다. 다섯 명의 의사가 담당을 하였는데 의사들은 모두 희망이 전혀 없다고 했고 살아날 가능성이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은다고 했다. 전신 마비의 문턱에 있으며 결국 완전히 마비되어 16세를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집에서 장례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거의 듣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병상에 눕던 첫 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으로 믿었다. 1933년 4월 22일 토요일 오후 7시 40분에 심장 박동이 멎었고 몸 안에 있던 영의 사람이 몸을 떠나게 되었다. 눈동자는 고정되었고 살은 차갑게 식어갔다. 맥박도 멎어버려 실제로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다. 기절했거나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는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 때 지상의 빛이 어두워져 사라질 때까지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점점더 어두워져갔고 주위의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더 내려가게 되니 뜨거워지면서 숨이 막히게 되었다. 바닥에 닿았을 때 어떤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물과 같은 형체를 한 존재는 팔에 손을 얹고는 안으로 끌고가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지상 저 위에서, 하늘 저 위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보이지 않은 어떤 힘에 의해 어둠과 불의 열기에서 멀리 끌어당겨졌다. 그리고는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되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의사들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말하여 시간을 아끼끼위해 성경을 읽을 때 신약부터 읽었다. 마태복음을 다 읽고 마가복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인생을 변화시킨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 마음에 의심도 들었고 육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은 어느정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하체는 사용하지 않아 근육도 없고 뼈만 있는 상태였다. 의심의 생각이 들면 믿음은 사라졌고 다시 어둠 속에 있게되었다. 그 당시 믿음에 대해서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았다.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심령으로 믿거나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않았다. 1934년 8월에 말씀을 아는 지식이 마음에 비추었고 믿음이 생겨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심령 가운데 그것에 관한 계시가 일어나야 한다 .

믿고 난 후에 치유가 되는 것인데 반대로 하고 있었다. 먼저 치유가 된 다음에 믿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더라도, 여전히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더라도, 심장이 나았다고 믿어야 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동안에도 마비증세가 없어졌다는 것을 믿어야 했다. 마음 속에 내적 증거가 생겨나서 고침 받았다고 믿었고 고침받아서 침대 밖으로 나가야 겠다고 했다.

그렇게 침대 기둥을 잡고 몸을 일으켰는데 16개월동안이나 누워있어서 그런지 방이 빙빙 돌았다. 눈을 감은채 몇 분 동안 있엇다. 빙빙 돌던 것이 멈췄고 마침내 눈을 떴다. 그리고 걸을 수 있다고 선포한 순간, 두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경이 다시 살아나 2백만개의 핀이 콕콕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통증은 사라지고 정상으로 되었다. 걷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겠다 생각해서 침대 기둥을 잡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더 떼고 가구들을 의지한 채로 방을 한 바퀴 걷게 되었다.

1934년 8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혼자 걸어서 법원 광장에 나갔다. 거기 섰을 때 눈물이 뺨을 흘렀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에 그것이 참 진실임을 발견했다. 얼마 후 의가사 심장을 진찰하고는 더 이상 심장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이런 경우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 낫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심장과 관련하여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젊은 침례교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고 지역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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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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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재창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해야할 일, 만나야 할 사람, 끝내야 할 과제, 지켜야 할 약속이 언제나 남아 있다. 그리고 많은 현대인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염려를 갖고 살아 간다. '염려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과 장소를 두려움과 걱정거리로 채운다는 뜻이다. '혹시'라는 생각으로 인해 불안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을 잘 살지 못한다.


우리의 외면과 내면 생활은 염려가 넘치고 있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삶을 재창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다. 현대인의 특징중 하나는 많은 일로 분주하지만 진정한 만족과 평안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 결과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 내고 우울해 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관심의 초점을 옮겨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것 같아도, 사실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신 것은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인도하여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영적인 삶을 살기위해서는 심령의 변화, 회심이 필요하다. 회심은 거룩한 삶에 참예하는 자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간다.


영적인 삶은 훈련이 필요하다. 고독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공동체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함께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곳이 바로 거룩한 공간이다.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를 재창조하실 수 있도록 맏겨 드리는 것이다.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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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예수 - 직장의 성스러움과 진정한 가치에 대한 묵상
진 에드워즈 지음, 박선규 옮김 / 미션월드라이브러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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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출생장소를 마구간으로 선택하시고 그의 직업은 목수로 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학업 배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전까지 성경학자의 길도 아니고 제사장의 훈련도 아닌 나사렛이라는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셨다.


지혜로는 엘리트 과정을 수료하기에 충분했고 신분으로는 금으로 장식된 궁전에 살아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신데 가난한 동네에서 나무를 자르고 깎으며 많은 시간을 노동자로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며 어떤 제사장보다 탁월하신고 어떤 성경학자보다 지혜가 많으신데 직업은 고된 업무로 땀을 흘리는 노동자였다.


한 번뿐인 삶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 요셉이 죽고 나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수 일을 하셨다. 한 손에는 나무를 들고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오랜 시간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거룩한 훈련을 준비시키지 않고 나사렛에서 목수의 일을 하며 준비시키셨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기에 특별해 보이고 높아 보이고 귀해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목수와 같은 육체 노동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노동자의 삶이나 종교적인 활동이나 모두 가치있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냄새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셨고 노동자의 삶을 살게 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 멋진 테이블과 튼튼한 의자를 잘 만드실 수 있다. 부활하신 구분의 손에는 못자국과 함께 굳은살이 남아있다. 그분은 화이트 칼라의 삶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블루 칼라로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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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한길님 서재에 2021년 연하장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세 왕 이야기 - 개정 2판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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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 왕의 이야기를 2막으로 소개한다. 나이 든 서울 왕과 젊은 다윗 그리고 나이 든 다윗과 젊은 압살롬.


사울은 백성들을 연합하여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 초대 왕이다. 용감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적을 무찔렀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악신이 들려 미쳐갔고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시기하여 창으로 죽이려고 하였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제거하려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살았고 깨어진 마음을 갖고 있다. 8명의 형제중 막내로 양을 치는 목동에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웅이 되었다. 사울을 향하여 반기를 들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왕이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혼자 떠나갔다. 실패자로 패배자로 보이는 그 때 깨어진 사람이 되고 있었다.


나중에 사울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다윗이 사울의 나이쯤 되었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청년의 다윗의 나이쯤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스라엘 나라에 반란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의 친아들이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하나님의 나라를 도둑질 하려고 한다.


다윗은 사울처럼 권력을 사용하여 반란군을 제압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왕으로 남기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순복하고 깨어진 마음으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간다. 청년의 때와 같이 혼자서 조용히 왕궁을 떠난다. 그렇게 다윗은 끝까지 사울이 되지도 않았고 압살롬이 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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