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크립티드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
엠제이 드마코 지음, 안시열 옮김 / 토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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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기개발 서적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리뷰로 남긴 적은 드물었다. 지금까지 블로그에 주로 남긴 서평들은 대부분 인문학, 철학, 역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이제 경제와 경영, 그리고 자기개발 서적도 간간이 올릴까 생각한다. 그 첫 타자로 베스트셀러였던 《부의 추월차선》의 후속작인 《부의 추월차선 완결편 언스크립티드》를 리뷰해볼까 한다. 이 책은 전작인 《부의 추월차선》의 확장판이자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과 이번 작의 관계를 표현해보자면 전작은 부에 대한 커다란 시각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편은 전작의 거시적인 관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디테일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전작은 총론이라고 볼 수 있고, 이번 책은 각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저자인 엠제이 드마코는 30대에 커다란 부를 성취하고 은퇴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부를 이룬 배경을 전작인 《부의 추월차선》에서 밝혔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에 만연한 통상적인 관념들을 거부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추월차선으로 갈아타라.'라는 것이다. 전작에서 저자는 인생에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가난을 만드는 인도, 평범한 삶을 만드는 서행차선, 부자를 만드는 추월차선이 있으며,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재빠르게 추월차선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전작의 경우는 저자가 말하는 '부의 추월차선'에 대하여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의 윗세대 관념으로 생각해보자면, 인생에 있어서 부를 이루는 시기를 보편적으로 (물려받은 부가 없다는 가정 하에) 50 ~ 60세 정도로 꼽는다. 그때가 되면 자식들도 모두 출가했고, 저축을 많이 해둔 결과가 이 시기부터 빛을 발휘하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경제구조와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했다. 금리는 낮아지고, 취업은 힘들고, 퇴직 이후에도 새로운 경제활동을 고민해야만 한다. 이런 급변하는 시기에 30대에 부를 재빠르게 축척하고 은퇴한 저자는 오늘날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꼽힐 수밖에 없다. 노동은 소중하고, 신성한 것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노동보단 놀고먹는 것이 더 즐겁지 않은가. 그러니 이렇게 빨리 은퇴하여 경제적으로 자유를 찾은 저자가 솔직히 부러웠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오늘을 뼈빠지게 소비한 대가로 안락한 노년을 보장받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돈이란 느리고 천천히 버는 것이 아니라 빠른 시기에 폭풍처럼 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저자의 말은 하루하루가 불안한 오늘날에 꿈과 같이 들리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실천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번 신작인 《부의 추월차선 완결편 언스크립티드》를 통하여 자신의 부의 관념을 더욱더 디테일하게 풀어내어 설명했다. 

이 책에서 핏대 높여 강조하는 것이 바로 '조작된 관념과의 결별'이다. 통상적인 관념, 그리고 통속적인 관념, 사회에 만연한 노동에 대한 통설과 보편성 등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어야만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언스크립티드(Unscripted)라는 형용사는 '각본에 따르지 않는'이라는 뜻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지목하는 각본이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관념들이다. 정해진 규율과 각본과의 결별을 강조한 저자는, 그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며 예시로 자신의 관념과 사업 경험 등등을 풍부하게 들려준다. 이런 사례들은 전작인 《부의 추월차선》보다 더욱 풍성했으며, 더욱 디테일했다.

결국 저자는 두 권의 책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부의 추월차선》을 통하여, 추월차선으로 갈아타서 경제적 부를 이룩하라는 메시지. 《부의 추월차선 완결편 언스크립티드》를 통하여, 그런 부의 추월차선으로 갈아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조작된 각본이니, 익숙한 각본과의 결별을 과감히 시도하라는 메시지. 두 메시지는 이렇듯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피나는 저자의 노력이다. 이 시리즈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책을 보고 그저 그런 인물이 얄팍하게 쓴 책이겠거니 했었는데, 실제로 책을 읽어본 결과 저자는 부를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었다. 많고 많은 저자의 노력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점은 바로 독서였다. 저자는 경제적 부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나태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는 바로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하다는 부분이다. 운 좋게 떼돈을 벌어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쓴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저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각했던 자신의 주관적인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기만의 색깔이 너무 뚜렷하기에,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저자의 철학을 읽으며 많은 부분을 배웠던 것 같다.

끝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을 때에는 책의 내용을 모두 믿기보다 의심하며 읽어나가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적을 남길 때, 자신의 행위를 은연중에 미화하거나 과장하여 부풀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질적인 단점이 있지만, 읽어본 바로 다른 부자들의 책보다는 자화자찬이 비교적 덜한 것 같았다. 모쪼록 부에 대한 마인드 정립, 그리고 돈벌이에 대한 관념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전작인 《부의 추월차선》을 읽지 않더라도 《부의 추월차선 완결편 언스크립티드》를 읽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기에, 굳이 한 권만 본다면 《부의 추월차선 완결편 언스크립티드》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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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본능 - 슈퍼리치가 되는 9가지 방법
브라운스톤 지음 / 토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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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나 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인드다. 이쪽 분야에 익숙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설픈 의욕을 앞세워서, 무리하게 실전 투자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투자와 재테크가 아닌 투기이자 도박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당장 돈이 필요하고 돈으로부터 자유를 원한다면 성급하게 투자하거나, 기교적인 부분을 배우기보단, 투자 마인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이 좋다고 고수들은 말한다.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초를 지루하게 생각하듯, 투자에 있어서도 투자 마인드를 다룬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투자 마인드가 잡히지 않는다면, 운이 좋게 벌어들인 돈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세우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에는 투자 마인드, 투자에 관한 시각을 다룬 책이 숱하게 나와있다. 과거에는 투자에 대한 지식이 공유되지 않던 금단의 지식으로 치부되어서, 이쪽 분야의 양서를 구하기가 힘들었다면, 요즘은 너도 나도 전문가라고 말하며, 투자에 대한 책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지식의 홍수 속에서 폭탄을 피하는 방법은 과거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던 양서를 선택하는 편이 그나마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셈인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 리뷰하려는 《부의 본능》은 가장 안성맞춤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브라운스톤이라는 익명을 쓰고 있는데 한때 개미들을 위한 투자 카페를 운영했었고, 자신 스스로도 파산과 부의 축적을 번갈아 경험한 결과, 최종적으로는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 40대 초반에 직업으로부터 은퇴했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고찰한 투자에 대한 마인드를 역설하고 있었다.

책에서는 주장한다. 부의 핵심은 바로 9가지의 생물학적 본능을 극복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그 9가지 핵심은 다음과 같다. 무리 짓는 본능, 영토 본능, 쾌락 본능, 근시안적 본능, 손실 공포 본능, 과시 본능, 도사 환상, 마녀 환상, 불완전한 인식 체계. 열거한 아홉 가지 오류는 태초의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성장하면서 가지게 된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몇몇의 사례는 비약적인 해석이 있는 점도 있었지만, 타당한 부분도 많았다. 저자의 요점은 아홉 가지 오류가 생기게 된 원인은 바로 '수렵시대와 농경시대'에 적응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집단적, 농경사회적, 원시 협동적인 마인드는 오늘날 개인이 강조되는 투자 체제에서 커다란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를 축척하기 위해서는 원시 시대 이래로 습득해왔던 생물학적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투자서에서 누차 이야기하듯, 투자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군중심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지만, 막상 행동해야 할 때가 오면 군중의 눈치를 보거나 군중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에 돈을 벌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자를 한다면, 우물쭈물 타인이나 환경에 의지하기보단, 확고한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아홉 가지 오류는 사실 투자 분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덕목들이다.

책은 투자 마인드를 다루는 저서답게 평이하게 잘 쓰였다. 이쪽 분야에 대해서 초짜거나, 아는 바가 없더라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며, 투자를 함에 있어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저자의 아홉 가지 오류를 경청하며 자신 속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투자에 관련된 책은 유통기한이 짧은 것이 특징이라고들 하는데, 이 책은 투자 마인드를 잡아주는 기본서와 같은 책이기에, 10년 20년이 가도 내용은 유효할 것 같다. 실질적인 테크닉과 기술, 그리고 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기교를 원하는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다고 할 법 하겠지만, 투자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투자를 돌아보려는 중수에게는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완독하며, 나 역시도 생물학적 본능을 최대한 통제하며, 내 안에 숨겨진 부의 본능을 일깨우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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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9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9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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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의 핵심은 바로 붕당 견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태종은 이해에 군권에 집착하고, 양위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런 사건들은 결국 '신료들의 사사로운 붕당을 견제'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흔히 태종의 2차 양위 소동을 민씨 형제들의 처벌을 목적으로 한 정치적 행위라고 해석하는데, 내가 읽어봤을 때 이해의 태종은 민씨 형제를 넘어서, 신료들의 붕당 자체를 근절시키려는 목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된 표적은 민씨 붕당이었지만, 그와 함께 이숙번의 당여들에게도 경고를 날린 점을 살펴보면, 애초에 태종의 2차 양위는 신권의 붕당 자체를 근절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권은 유독 '정치 9단 태종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민씨 붕당을 꾀어내어 잡아들여 처벌하는 모습도 그렇고, 벼르고 벼르던 기회주의자 이무를 단칼에 죽인 모습도 인상적이다. 태종의 은밀한 '처벌 가이드라인'을 확인한 대간은 민씨에 붙었던 역당들을 굴비 두릅처럼 엮어서 모두 역모로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태종의 반응이다. 언관들을 유도하여 민씨 일당에 붙었던 인물들을 대거 재판장으로 끌어낸 태종이지만, 처벌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미온적으로 반응했다. 언관들은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형으로 다스릴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태종은 주모자들을 처벌하는 선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붕당을 이룬 중심세력일 뿐이지, 부화뇌동하며 붙은 잔챙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 셈이다.

  사실 《태종실록》을 읽다 보면 태종은 공신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같은 죄를 지어도 공신의 자제들은 쉽게 용서해주고, 솜방망이 처벌을 했던 것이 일상적인 관례였기에, 이무와 같은 공신이 민씨 일당으로 거론됐을 때에도 조정 신료들은 습관적으로 사형을 주장했지만 속으로는 '공신이니까, 용서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무와 친했던 하륜도 이무를 두둔하며 살려줄 것을 주장했는데, 그런 하륜에게 태종은 '너도 행실 똑바로 해, 너도 역모로 다스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라고 일갈하며, 이무를 사형시켜 버렸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번 사건은 보통 때와는 반대로 거물급 공신을 죽이고, 잔챙이들을 살려준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태종은 왜 공신 중에 공신인 이무를 죽였던 것일까.

  실록에서 태종은 이무의 기회주의적인 태도, 즉 무인년 방석과 방번, 정도전 일당을 죽일 때, 정도전 쪽과 자신의 쪽을 저울질하며, 붙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이중적인 행동으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행동을 보였던 셈인데,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에도 이무는 민씨 일가들을 주살할 것을 권하면서 뒤로는 귀양간 민씨 일가들의 편의를 봐주고, 민씨 일가들이 죄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이것 외에도 분경 문제, 인사 청탁 문제 등등의 소소한 잘못이 있었지만, 결국 이무가 주살된 주요 원인은 기회주의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태종은 이무를 공신으로 대우하고 굉장히 예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무는 민씨 일가의 붕당에 협조하여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미래 권력인 세자에게 아부했으니 태종의 입장에서는 화가 났던 것이다.

  이무는 태종이 죽인 최초의 고위 공신이었다. 이무의 처결로 인해 태종은 공신들에게, '아무리 공신이더라도 선을 넘고, 왕권을 넘보는 자가 있다면, 신분을 막론하고 베어버릴 것이다.'라며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지금까지는 공신에 관대했던 태종이지만, 아무리 공신이더라도 사적인 붕당을 이룬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을 이무의 죽음을 통해 대외에 선포했다. 흥미로운 점은 민씨 당여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태종이 이숙번의 당여들에게도 일갈했다는 점이다. 또한 태종이 양위를 선언하며 신료들을 꺼릴 무렵, 이숙번과의 독대 과정에서 태종이 은퇴를 이야기하자 이숙번은 '50살에 이르러 은퇴를 해도 늦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태종은 그럴듯하게 여기고 정사에 복귀한다. 여기서 이숙번의 대화는 관점에 따라서 신하의 입장에서 군주의 은거 시점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역모에 해당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태종은 그런 이숙번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훗날 이숙번은 정치적으로 실각하는데, 그때가 바로 태종의 나이가 50살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아마 태종은 이때의 이숙번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종이 공신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나는 광해군의 역모 사건이 떠올랐다. 광해군과 태종은 권력에 대한 정통성이 결여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서자 출신의 광해군보다 태종의 정통성이 높긴 하다만, 장자가 아니라는 점,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두 군주의 정통성은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태종과 광해군은 결여된 정통성을 극복하기 위해 왕권 강화를 주도했다. 그런 왕권 강화에서 신권의 숙청은 필연적이다. 다만 신권을 제압하는 과정은 공통적이지만 방법은 매우 상이했는데, 태종의 경우 붕당을 이룬 주모자를 처벌하고, 붕당의 주변인들은 살려줘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반면, 광해군은 주모자와 주변인 모두를 처벌했으며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건을 확대하여 쓸데없는 희생을 불렀다. 결국 이런 무리한 광해의 숙청은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결국 신료들의 반정으로 이어졌다. 만약 광해가 태종의 숙청을 참고하여, 희생을 최소화하고 상대의 붕당을 포용하는 인사정책을 펼쳤다면,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종은 신권 숙청을 하였지만, 내부적 반발이 거의 없었으며, 특히 이번 민씨 형제들과 이무 숙청을 계기로 강력한 통치체제를 완성했으니, 신권 숙청의 방법론, 그리고 결과로 살펴볼 때 광해의 정치력은 극단적이고 미숙한 반면 태종의 정치력은 노회하고 안정적이다. 아무튼 태종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더욱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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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8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8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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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태조 이성계의 죽음이다. 사실 태종을 이야기할 때 불효는 단짝처럼 따라붙는다. 왜냐하면 정도전과 방석, 방번을 죽였던 무인정사를 비롯하여, 집권기에 조사의의 난까지, 태조와 태종은 부자관계였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대립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선택한 후계자를 실각시키고, 아버지를 권력에서 끌어내린 점, 그리고 뒤늦게 아버지와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사건은 태종을 불효자로 만들기 충분했으며, 태종 역시도 가뭄이 들 때마다 권력의 정통성에 취약함을 괴로워하며, 아버지와 맞섰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며 스스로 시인했다. 물론 태종은 '그런 불효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이 된 것에는 하늘의 명이 있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종국에는 정당화하 했지만...

  태조 이성계와 태종의 정치적 갈등은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잠잠해졌지만, 태종은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에게 심정으로 인정받지 못한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 이성계의 진노를 풀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아버지가 불러주고 술을 따라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아이처럼 좋아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던 태종이지만, 아버지 태조의 기분을 위해 태조가 신경 쓰는 절에 있어서만큼은 탄압을 최소화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태종은 시대적 필요에 의해 유학을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 그렇기에 국왕인 태종은 대소 신민들에게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행동을 그 누구보다도 솔선하여 보여야만 했다.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 중 하나인 《효경》 <천자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님을 공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사랑하고 공격함을 부모님 섬기는데 극진히 한 뒤 도덕적 교화가 백성들에게 전해져 천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천자의 효이다."'

즉 유교적 사회에서 지도자의 치국의 핵심은 효에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태종은 권력을 쟁취하고 얻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노력이 신민들에게 가식처럼 보일까 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어쨌든 태종은 권력을 쟁취한 뒤, 아버지를 무조건 받들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칼을 들고 공격하여도(조사의의 난),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했고, 아버지가 아플 때에는 항상 곁에 머물면서 수발을 들었다. 팔뚝에 심을 지지고, 자신도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며 말을 달려 위중한 아버지를 향해 달려왔고, 아버지에게 편하게 가기 위해 궐내에 길을 뚫기도 하였다. 그렇게 극진하게 모셨던 아버지가 죽자, 태종은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런 태종의 포효는 아마 그렇게 노력해도 진정으로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부자간의 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의미했을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나는 태종이 아버지인 이성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권력을 앞에 두고 부자의 생각이 달랐기에 비극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태종은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아마 두 부자가 일반 백성이나 사대부에서 만족했다면 정말 극진한 관계의 부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태조 이성계도 태종 이방원도 권력과 가까이하기 전에는 부자간의 사이가 매우 좋았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런 돈독한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권력 때문이니, 새삼 권력의 무서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대중들은 태종을 두고 불효자로 인식하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역대 왕들을 통틀어 태종만큼 효에 충실했던 군주도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은 집권자 태종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린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없는 사실을 지어서 만든 기록은 아니기에, 이런 태종의 애정 어린 행동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태상왕 이성계의 죽음과 함께,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태종의 삼촌이라 할 수 있는 이화, 그리고 태종의 장인인 민제도 차례대로 부고 소식을 전했다. 조선을 건국했던 중진들이 하나둘씩 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신생국 조선은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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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7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7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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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의 주요 테마는 바로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숙청이다. 혹자들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처남들을 몰살시킨 태종이 잔인한 군주라고 매도하겠지만, 《태종실록》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강력한 권세를 바탕으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기에, 외척의 발호에 굉장히 민감한 태종이 당연히 숙청하겠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번 권에서 보여주는 태종의 모습은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비교하여 굉장히 정략적이고 모략적인 모습이 강했다. 엄청난 권세, 군부의 핵심을 담당했던 처남들을 쳐내는 작업이기에 아무리 왕권이 강한 태종이더라도, 조심스럽게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죄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정에 약한 군주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경고하고 넘어갔거나, 직첩을 거두고 정계에 퇴출하는 것으로 처벌했을지 모르겠지만, 특히나 외척을 경계했던 태종에게는 이런 애매모호함조차 용납할 수 없는 수위였다. 태종은 왜 그렇게 외척을 심하게 견제했을까. 첫 번째로 아버지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신씨와 관련됐다. 신 씨는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태조를 꼬드겼고, 정치에 있어서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했던 왕후였다. 그래서 막내아들 방석이 세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인 태종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바로 《대학연의》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태종 이방원이 가장 가까이하던 《대학연의》에는 외척에 발호에 대하여, '제가의 요체'에서 심도 있게 논하고 있었다. 태종은 《대학연의》를 읽으며, 읽으면 읽을 때마다 정치의 요체, 그리고 외척의 발호에 대하여 깊은 가르침을 얻는다고 강조했는데, 아마 《대학연의》에 나왔던 외척들의 발호를 읽으며 외척의 강성함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바로 왕비 민씨 일가의 태도였다. 태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민씨 일가의 도움 때문이다. 아내 민씨는 적극적으로 거사를 권장했으며 병장기를 숨겼고, 처남들은 태종을 위해 앞장서서 전장에서 공을 세웠다. 물론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이들은 태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태종의 왕권에 자신들의 지분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태종의 왕권은 태종과 민씨 일가들의 공동 사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권세를 가진 처남들은 다른 권신들보다 조심하지 않았으며, 민씨 역시도 다른 후궁을 들이려는 태종의 행동에 극단적으로 반발했다. 반면 태종은 왕위에 오를 때 도와준 것은 고맙지만, 그렇게 해서 차지한 왕권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태종은 왕권이라는 권력을 누군가와 나누려고 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이런 사소한 생각 차이는 결국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실각, 그리고 이어지는 민무회, 민무휼 형제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사실 태종은 처남들에게 몇 번이나 기회를 줬다. 처남들이 권세를 으스대며 일탈을 할 때에도 칼같이 주시하고 체크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넘어가려고 하였고, 이거이 부자를 숙청하는 것을 본보기로 하여 처남들이 마음을 돌리기를 간곡하게 바랐지만, 처남들은 태종의 이런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태종은 이거이 부자를 숙청한 뒤, 처가로 방문하여 술잔치를 벌이며, 스승이었던 민제에게 '이선달'이라고 자신을 불러달라고 하며 처가와 함께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했다. 물론 이는 민씨 일가 역시 선을 넘을 경우 이거이 부자처럼 실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은근하게 경고한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태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남들은 조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처남들을 숙청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태종은 냉혹한 군주였고, 그랬기에 왕권을 침범하는 신하들을 위아래를 막론하고 처단했지만, 그가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은 아니었다. 그가 사람을 숙청할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었다. 게다가 그는 공신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 잘못이 있더라도 최대한 넘어가려고 했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경우도, 태종은 몇 번이나 기회를 줬다. 그러므로 태종의 숙청을 이야기하려면 결과만을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숙청의 이유, 그리고 숙청의 과정 등등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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