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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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죽음의 사막을 뚫은 것은 돈과 신앙이었다. (10) "

 

 작년에 창비에서 돈황 실크로드 원정대를 모집한 적이 있었다.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응모자를 뽑아 약 300만원에 해당하는 비용 지원을 해준다는 공고였는데, 능력이 안되어서 그렇지 한동안 너무 부러워서 공고 게시물을 찾아보고는 했다. 이때 돈황이라는 지명을 처음 유의미하게 인지했는데, 그동안 실크로드라고 하면 죽 이어진 길의 관념으로 생각했으나 도시 거점으로 이어진 것임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자세히 깨닫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중국편의 시작은 꽤 큰 프로젝트로 느껴져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자의 문학적 소양과 어우러진 '누란'의 소개부터 시작되는 3편도 즐겁게 읽었다. 

 

 처음엔 답사기라기보다 역사서에 더 가까운 설명들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세한 설명으로 실크로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할 독자들을 이끌어주고 있지만 현장감이 부족하다고 할까. 하지만 쿰타르 사막의 전경이 나오면서 확실히 동경하는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막의 모래언덕들이 겹겹이 솟아난 모습을 보니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커졌다. 이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산이 존재하고 있는 광활한 땅도, 또 그것을 사륜지프로 오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저런 곳에서 밤하늘을 본다면 어떨까, 불빛의 방해없이 보는 별길이 어떨까 궁금했다. 아주 짧게 등장했지만 저자도 쿰타르 사막에서의 풍광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72)으로 꼽았으니 언제고 사막에 가보리라 생각했다.

 

 읽다가 문득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전시실을 관람하기를 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141) 한국전쟁 때 소장하고 있던 벽화 파편들을 부산으로 피난시키며 보존하려고 노력한 일화가 나와 기록과 보존의 DNA를 가진 것이 분명한 한국인의 모습을 실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한동안 찾지 않았는데, 책을 읽은 김에 다녀와보고 싶어졌다. 이 유물들이 우리나라에 남겨지기까지의 과정이 참 씁쓸하지만 중국으로의 먼 길을 떠나지 않고 책에서 본 로프노르 호수와 소하 유적지, 누란왕국, 호탄, 쿠차 등 서역 각지의 유물들이 망라된 것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찾아가보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달걀 모래찜 구이는 못 먹겠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읽으면서도 넓은 땅덩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광활한 자연에 압도되는 순간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천산산맥의 모습이나, 키질석굴, 키질리아(천산신비대협곡), 사막과 들판이 광대하게 펼쳐진 끝없는 대자연의 모습은 경이와 매혹을 일으킨다. 우리나라를 좋아하지만 압도적인 자연경관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외국의 이런 장소를 향한 여행 욕구가 샘솟곤한다. 그래서 타클라마칸사막 여정이 나오는 부분은 특히 더 재밌게 읽었다. 3대가 공덕을 쌓아 사막의 비를 맞이한(310) 내용은 부럽기까지 했다. 언제고 어느 곳의 사막이든 한번쯤은 찾아가봐야지 마음먹었다.

 

 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화가(221)와 무용가(267) 지인들과의 후일담이나 망자의 치아를 살펴 생전의 나이나 건강상태를 짐작해 본 함께 간 치과의사(127) 분, 간간히 설명을 곁들여 준 최선아 교수(211),  만화가, 스님, 무엇보다 '답사학'으로서의 답사를 이끈 저자 등 함께 한 구성원들의 조화가 참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 삶의 궤적만큼 여행의 색이 풍부해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을 나누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오죽하면 여행사 단체 관광을 기피 1순위로 꼽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싶게, 언제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면 배우는 마음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9장에 이르면 위구르 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최근들어서도 그들이 심한 격리와 산아제한 같은 비인간적인 처우를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터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자 역시 위구르 민족에 대한 애정과 동정을 드러내었다.(388) 카슈가르로 향하는 길은 곤륜산과 향비묘라는 애칭을 가진 야르칸드한국의 '아바 호자' 가문의 공동능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둘 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들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중국보다는 이슬람 분위기가 강하게 엿보여 고성의 풍경을 그전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마침내 파미르고원 설산과 함께 펼쳐진 검은 호수의 풍경으로 답사가 마무리되었을때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매력적인 답사였다.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기록이든 혹은 기념이 될만한 것들을 남겨두는 사람들을 아주 부러워한다. 언제는 일지처럼 꾸준한 일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저녁만 되어도 기억이 가물했고, 좋은 장소에 가면 그림을 그려볼까 했는데 성미에 맞지 않았다. 지도며 영수증, 입장권 같은 것을 현지돈과 함께 모아둔 적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잉크가 이내 옅어져버렸다. 결국 전형적인 한국 여행자답게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기념품가게에 들러 작고 저렴한 기념품이나 하나씩 사오는 것에 머물렀다. 답사기를 읽고 있자니 문득 지난 여행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세상이 전과 같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좀더 그때 그 순간에 충실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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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 일, 관계, 인생의 고민이 사라지는 말 공부
하라 구니오 지음, 장은주 옮김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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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의 표현도 칭찬도 잘하고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그렇지 않았었나 싶어졌다. 상대방에게 전달될만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선에서 '이정도면 됐겠지'싶은 말을 건네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싶다. 아니면 길에서 실수로 부딪힌 사람에게 반사적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듯이 튀어나오는 의미없는 말들이었거나.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 한마디가 진짜 대단한 것이 아닌데 사람사이를 좌우할수도 있다는 걸 새삼 되새겨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때로 아무것도 아닌 말을 실없이 내뱉고나서 후회하기도 하고, 억지로라도 해야할 말을 괜한 오기로 못하겠노라고 어깃장을 놓아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전에는 '말 한마디도 내 마음대로 못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거야' 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웬만하면 말을 줄이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지냈다. 젊을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말이 무겁고 무섭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말이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될 수도 있고, 한번 입 밖으로 떨어지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하면 말을 잘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하라 구니오의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도 말의 중요성을 품고 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도 없었을 것이고, 말을 통해 해결의 물꼬가 트여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같은 칭찬을 하더라도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해서 칭찬하라는 말은 아주 기본적이지만 자주 잊는 것이라, 당장 내일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칭찬을 건넬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갑자기 칭찬을 하면 듣는 사람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을 뜻밖의 칭찬으로 연다면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또,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나 사소한 변화에 대한 작은 칭찬과 관심의 말이 싫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책에는 여러 칭찬 팁들이 들어있는데 집중해서 읽다가도 살면서 이정도는 주변사람들에게 하고 살아야하는 기본적인 것들 아닌가, 근데 이 정도도 못하고 살았었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남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다가 자신을 부정할 뻔 했다. 샴페인 타워를 채우는 것처럼(141) 책에서 본 듣고 싶은 말, 좋은 말들을 나에게도 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좋은 관계맺기는 자신의 안에서 시작된다는 생각도 깊이 공감됐다. 어찌보면 남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을만큼 자신을 채운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특히 요즘은 자신안의 스트레스나 화를 다스리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중요성이 실감된다.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황금비율(155)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많이 쓰이는 '채찍과 당근'의 비율에 대한 내용이다. 이는 사람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80%의 성과를 낸 사람에게 100%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쉽다고 말하거나, 80%나 해냈다니 곧 100%도 기대할 수 있겠다고 말하는 태도의 차이로,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표현을 들었을 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에게 '당근'만을 썼더니 아랫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무골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책의 내용처럼 5:1같은 '채찍과 당근'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겠다.

 

 책의 유일한 단점은 중학생 딸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남자(128)의 사례인데, 재혼한 배우자의 중학생 딸이 마음을 열고 '아찌'란 호칭으로 문자를 보내주었다는 내용에서 아, 다른 말로 번역이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아저씨나 새아빠라고 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아찌란 말을 요즘 여중생들이 쓰는가 모르겠다. 90년대 영화제목같아서 아쉬웠다. 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고 단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명료해서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고 지금껏 책의 좋은점을 말했으니 1개의 채찍은 괜찮겠지 싶다. 책을 읽고 당장 내일부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볼까 생각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며 살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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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툰 : 너무 애쓰지 말고 마음 시툰
앵무 지음, 박성우 시 선정 / 창비교육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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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덕도 탈덕처럼 했다. 십대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은 조금 너무 갔고, 절반정도는 만화였다. 만화가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될지 몰라도 사는데는 도움이 좀 됐다. 만화 많이 본 사람을 알거다. 부모님은 질색하실지 몰라도, 어떤 것들은 솔직히 별로 좋지 않을지 몰라도, 만화도 나름 전문적인 지식도 담고 있고, 문학작품처럼 인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그걸 전공지식과 문학작품으로 채운다면 더 좋겠지만, 만화는 재밌으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까...? 누가 오덕 아니랄까봐 만화 예찬을 하는가 싶겠지만, 사회에 만연한 만화 경시 풍조 때문에 만화를 보면서도 만화를 낮추어 생각했었나보다. '너무 애쓰지 말고'를 두고 시툰이라고 해서 좀 가벼운 내용이겠거니 지레 짐작했었다.

 

 표지에 '서툰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위로, 마음 시툰'이라고 써 있어서 시 몇편이 소개되어 있고, 짤막한 글귀랑 함께 내용에 맞춰서 그림이 조금 들어가 있으려나 싶었다. 그럼 소진된 세대들을 위한 '-해도 괜찮아' 하는 몇몇 에세이들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거기에 시가 같이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낫겠지 싶어서 저녁에 문득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애쓰지 말고'는 내 생각과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었고, 또 내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이라 금새 빠져들어 읽었다. 만화라서 내용이 좀 가벼울거라고 짐작했던 것이 짧은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사장님과 보혜의 인물설정이 너무 차이가 커서 오히려 두사람의 합이 맞는 모습을 보는게 재밌었다. " 사업은 수익을 내는 게 절대 목표 (68)" 라고 생각하는 보혜가 너무 귀엽고, 답 없는 것 같이 있어도 자기 주관대로 살고 있는 영길 사장도 좋다. 다만 부모님이 강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공통점이 아쉽다. 기성세대와 부모님에게 악역을 그것도 전형적인 갈등 형태로 전부 맡겨버리다니. 다른 편에서는 이 갈등이 해소되는 내용이 더 나오려나? 소개되는 시의 범위도 넓다. 시조도 나오고, 교과서에서 봤던 시인들의 시도 포함되어 있어 영 낯선 세계로 초대되지는 않는다. 덧붙여서 배경이 되는 공간이 재즈 카페니까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재즈도 소개해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읽다가 이런 책을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안녕, 해태'라는 책이 떠올랐다. 청소년 마음 시툰이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책이었는데 만화 속 큰 이야기 틀 안에 시가 스며들어 있는 내용이 '너무 애쓰지 말고'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책장으로 가서 살펴보니 싱고 작가의 '안녕, 해태'도 창비*에서 출간한 책이었다. 시가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고, 또 어른이들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니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시를 더 가깝에 끌어오도록 창비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게다가 둘 다 만화 내용도 재밌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들도 좋다. *창비교육 

 

 시툰이라는게 어쩌면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또 처음에 내가 오해했던 것처럼 가볍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막상 접해보면 이 콜라보를 꽤 환영하게 될 것이다. 출간 전에 창비에서 운영하고 있는 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연재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웹툰을 보고 웹툰이 출간되면 독자들이 책으로도 구매하는 것처럼. 읽는동안 즐겁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용과 시가 함께 어우려져 마음에 와닿는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진다. 만화 좋아하는 독자와 시 좋아하는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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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랑하기로 했다 - 지금 사랑이 힘든 사람을 위한 심리학 편지
권희경 지음 / 홍익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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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느낌의 책이라 처음에는 가볍게, 재밌게 읽었다. 연애 부분은 십대 때나 이십대 초반쯤에 읽었던 잡지 상담 부분만 떼어온 모음집 같았다. 원래 잡지에서는 연애와 성 관련 고민글이 가장 재밌는 길티플레져 같은 법이다. 불량식품 같은 맛? 남몰래 즐기고픈 비급의 정서? 하지만 '에디터 K가 전하는 사랑의 충고'나 '연애상담소' 같은 수식을 단 잡지가 떠오른다는 건 장점이 아니다. 저자의 경력을 보면 나름의 빅데이터를 보유한 내공이 있지 않을까 짐작되지만 책 내용 초반에는 아쉽게도 그런 면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연애편에서는 짤막한 사연소개와 덧붙이는 조언글로 되어 있는 구성이 솔직히 깊은 내용은 아니라 내면 심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거나 깊이있는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아쉽기는 한데 한참 '사랑' 속에 빠져서 잠겨 죽을 것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선택지가 되어줄수도 있을 것 같다.

 

 읽다가 급정거하게 된 부분이 있었는데, '성욕 관리는 인품(67)', '가짜 사랑에 눈이 멀다(75)'가 연달아 나오면서 당황스러웠다. " 점점 그녀가 좋아졌는데, 그녀는 성관계를 하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면서 키스나 포옹하는 것 외에 어떤 성적 행동도 거부했다(73) "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럼 사연자 뿐 아니라 상대방도 어딘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에는 사랑을 몰라서 육체적 성욕에 연연했는데 지금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없는 섹스를 하면 기분이 찝찝할 것 같다고 마무리된다. 상황적으로 보면 너무나 둘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한쪽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며 짝짝짝 마무리한 반쪽짜리 상담이 아닌가. 오히려 찝찝해하다가 다음 내용에서 더 당혹스러웠다.

 

 " 유부남과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진정한 사랑에 유부남, 유부녀가 따로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그녀들이 유부남보다 더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78) "  " 유부남과 만났을 때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그 사랑의 피해가 누구에게 오는지 봐야 해요. 그 사랑의 끝에 상처받는 쪽은 아마도 당신일 거예요.(82) " 사랑에 몰입해 다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랑주의자의 말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 좋을지 모를 말들이 연타로 이어져 답답했다. 불륜을 금지된 사랑으로 부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을 말이겠다. 피해는 엄한 배우자가 제일 많이 받는거고요? 사랑이란 말에 배우자 지우기가 기본값이 되어서 놀라 뒷걸음질쳤다.

 

 " 사실,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에는 자식 기죽이는 친정엄마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었다. (105) "처럼 사랑이 힘든 이유가 대부분 어린시절에 경험한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내용이 많아서, 읽으면서 어린시절을 원만하게 보내고 성인이 돼서 큰 심리적 불안없이 인간관계 잘 조절하기가 하늘에 별따기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린시절이 영향력이 크고 중요하긴 한데,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게 과거 때문이라고 귀결되는 관점도 좀 찝찝했다. 인생 어느정도 살고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완벽하게 양육되어 성장한 사람은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거에 발목잡혀서 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 그럼 어차피 이 책을 안 읽으려나.

 

 하지만 부부편 내용이 나면 초반의 가벼움이 좀 상쇄된다. '00에게'라고 되어있는 조언 꼭지도 없어지고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내용이 나온다. 아마 이쪽 연령대의 상담이 저자에게 더 특화되어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앞서나온 불륜 내용에 뒷걸음질쳤던 만큼 '외도 그 이후, 믿음을 찾다 (194)' 부분도 집중해서 읽었는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는 상간녀 감싸주기식 내용이 아니라 읽기 조금 나았다. 파트 1은 그냥 재미로 가볍게 보고 파트 2부터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쨌든'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이 복선이었을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어떨때는 인류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사랑만 없으면 세상만사 걱정이 없겠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찌됐든 사람이 사는데 사랑이 어떤 식으로는 크게 영향을 끼치기는 하는 모양이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결혼하기 싫은 사람, 결혼에 대해 생각이 많은 사람, 결혼한 사람 등등 연애보다는 결혼과 관련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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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Signature -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나만의 경쟁력
이항심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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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니처'에 대해 표면적인 예상만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요즘 자신에 대해 하던 고민과 비슷한 맥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고여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에는 그런 성향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나이를 먹고부턴 잠깐 사이에도 확 뒤쳐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세상 변하는 것을 느끼며 '요즘은 저런단 말이야?'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어느새 '너무 뒤쳐졌나?' 할 때가 종종 생겼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래의 전망은 밝지 않은데, 이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나가려면 고여있음에서 벗어나 나도 좀 달라져야 되는게 아닐까싶었다.

 

 " 생각보다 '인사 건네기', '자기소개 하기'. '이메일 보내기'와 같이 아주 작은 행동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기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으로 백날 생각해도, 아주 작은 행동 하나로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84) " SNS를 활발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어진다. 자신에 대한 표출도 잘하고,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향해 선뜻 말을 건넨다. 선별해서 보일 수 있는 가장 밝고 좋은 모습일뿐이라 하더라도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을 이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실제로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을 보기도 했으니까.

 

 책에 나온 지아 지앙의 '100일간의 거절을 통해 배운 것들'이라는 테드 강연(93)은 매우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도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지금은 저 정도의 패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가급적이면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한번쯤 물어볼 수도 있는 요구사항을 그냥 참고 넘기고, 사과의 말을 불필요하게 많이 쓰고 있었다. 최근에 가게에서 간단한 요청을 하려다 민폐가 되면 어쩌지하고 불편을 감수하려는데 일행이 '물어만 보는게 뭐 어때' 하고 얘기하자 아주 쉽게 일이 해결된 적이 있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도 필요하다고 머리속에 기억해둬 보았다.

 

 30대 이상인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니에요,'하고 부정하는 것을 지적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낮추면서 겸손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편이었는데, 몇년전 90년대생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서 칭찬을 받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받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운 한편, 굳이 나도 상대방의 호의에 나를 낮추는 말로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져 조금씩 마음을 바꾸게 되는 일이 있었다. 4장에서 나오는 '반사된 효능감'(121)부분을 읽다보니 신뢰를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연습(129)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칭찬도 하고 응원하고 하고 또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책에서 제시하는 기준들이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는 달라져있었다. 노하우가 런하우로, 실패라는 리스크가 성장 원동력으로, 회사에서의 존재감이 무에서 유로. 일터에서는 특히 회의시간에는 가급적 존재감없이 마치 의자나 책상이 된 것처럼 물아일체되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존재감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보니 어색했다. 다른 내용들은 많이 수긍하며 읽으려 노력했는데,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산을 만난 느낌이었다. 워라밸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는 내용도(237) 아직 강제적으로라도 도달해야 할 밸런스의 근처에 가지도 못했는데 그 뒤의 문제부터 너무 빨리 끌어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또 하나, 직감(69)을 따르라는 내용은 좀 부담스러웠다. 몰입해서 읽다가 갑자기 너무 불확실한 키워드가 등장해서 흐름이 끊겼다. 직감을 이유로 좀 더 편한 길로 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핑계를 댈수도 있다. 차라리 어떤 기준을 세우도록 조언해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책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릿, 살롱문화에 대해서도 나오고 공간의 변화(211)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계발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좀 더 넓혀서 시대의 변화를 함께 짚어낸다. 그런 다양함이 같은 내용만 반복하지 않도록 해줘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시그니처'에서 제시한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자세들을 많이 수용하면서 읽으려고 했는데도 열정이 지나치게 담긴 내용이라 읽으면서 때로 마음이 부담스러워졌다. 몇개의 키워드만 잡아서 노력해도 충분히 좋은 시그니처를 가진 인재가 될 수 있을 내용이니 잘 걸러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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