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김경미.조혜란 지음 / 돌베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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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가 쓴 '꽃'이라는 시, 이름이 붙는 순간 존재하게 되는, 아니 존재하고 있지만 내게 의미가 없던 존재가 이름을 갖는 순간 내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는 것.

 

아마도 여성들의 삶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름 없이, 아무개의 딸로, 아무개의 아내로, 아무개의 어머니로 살다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여성들은 이 책에서 말한 대로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남녀 평등, 아니 성적 지향성을 불문하고 평등할까? 그렇지 않다. 아직도 성적 지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남녀라는 성 구분에 따라서도 받는 불이익들이 많다. 그렇게 세상은 많이 변해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이 변하지 않았는지, 그 사회 속에 푹 빠져 사는 사람에게는 인식되지 않는다. 적어도 한 발 비껴서 있는 사람에게 변하지 않은 부분, 변해야 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발 비껴서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책이 하는 역할이다. 사람들의 생각, 삶,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사회 속에 파묻히지 않고,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여성들을 불러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한다.

 

유교가 지배하던,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로 취급되던 그 시대에 자신의 주장을 떳떳하게, 당당하게 펼치던 여성들이 있었음을, 그럼에도 그들이 후대에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다시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우선 그들의 이름부터 보자. 몇 명이나 알고 있나? 아니, 이들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이옥봉, 안동 장씨, 김호연재, 임윤지당, 김만덕, 김삼의당, 풍양 조씨, 강정일당, 김금원, 바우덕이, 윤희순

 

아마, 현모양처의 상징인, 오만 원 권에 등장한 신사임당과 허균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시를 잘 썼다는 허난설헌, 그리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김만덕은 잘 알고 있으리라. 물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들 삶의 한 면뿐이겠지만. 어쩌면 안동 장씨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문열이 소설 '선택'으로 불러낸 안동 장씨(이문열이 불러낸 안동 장씨와 이 책에 나오는 안동 장씨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성의 시각에서 불러낸 여성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혹, 이문열의 선택을 읽은 사람은 꼭 이 책, 안동 장씨 부분을 읽어야 할 것이다), 남사당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사람은 바우덕이도 알지 모르겠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도 생소하다. 그만큼 여성들은 이름을 남기기 힘들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이미 자신의 삶보다는 다른 사람(양반 남성)의 시선(생각)에 갇힌 삶을 살아야 했으니. 그만큼 부자유한 시대였다. 여기에 한미한 집안이나 또는 평민, 서얼로 태어났을 때에는 더더욱 힘든 삶을 살아야 했고.

 

이 부자유를 깨닫고 여성이라는 한계에 갇히기를 거부한 사람들. 특히 임윤지당 같은 경우는 남성 양반들과 동등하게 성리학을 논할 수준이었고, 자신의 책에서 남성과 여성이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으니, 이런 깨어있던 사람들을 지금 우리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강정일당 같은 경우는 남편이 오히려 스승으로 여기고 죽은 뒤에 문집을 내줄 정도였으니, 부자유한 시대에 비범했던 사람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들은 지금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 우리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잘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신사임당에 관해서, 현모양처라고만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쳐야 한다.

 

신사임당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산 사람이라는 것. 여성으로서 그림을 잘 그렸다가 아니라, 화가로서 수준이 높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었다는 것.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라는 틀에만 가둬두는 것은 조선시대 남성-양반들이 만들어낸 틀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임윤지당이 사람으로서 동등함을 주장했지만 어디, 임윤지당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이름을 들어도 사실, 사임당이니 윤지당이니 하는 이름은 누구를 본받는다는 말, 중국 문왕, 무왕의 부인을 본받는다는 말. 여기서 어쩌면 현모양처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 이름을 쓴 것은 성인이 되는 것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여성도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이름을 통하여 추구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들을 여성으로 가둬두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중국보다도 더 꽉막힌 유교 윤리가 지배적이었던 조선에, 여성으로 태어나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바랐던 여성들. 그들의 삶을 지금 불러내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유리 천장을 이 책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것을 깨야 함을, 걷어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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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난 별들
장재선 지음 / 작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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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난 별들'이다. 저자가 만나온 스타들을 시로 쓰고, 그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 책이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스타부터 지금도 만나고 있는 스타들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들에 대해서 시로 써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도 했고. 마치 고은이 쓴 "만인보"를 읽는 느낌도 있지만, 너무도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라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좋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별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 가까이에서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던가. 그 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얼마나 많던가.

 

또 별들은 저 멀리에 있기에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지도 모른다. 스타들의 민낯을 만나는 것보다, 그냥 스타로서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더 좋은지도. 그러니 굳이 그들을 시로 쓰고 그들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좋지 않은 점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또한 스타는 이미 세상을 떴어도 우리에게 그 빛을 여전히 전달하고 있다. 마치 안드로메다 성운의 별들이 이미 사라졌더라도 우리는 백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별을 여전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에 나온 별들의 이름을 적어 본다.

 

황정순, 최은희, 신  구, 임권택, 패티김, 김지미, 최불암, 박상규, 조영남, 이장호, 조용필, 최백호, 안성기, 현  숙, 최성수, 송강호, 차인표, 엄정화, 김윤진, 김정은, 하지원, 수  애, 전지현, 강예원, 성유리, 손예진, 하석진, 문채원, 박하선, 김옥빈, 윤두준, 소녀시대 

 

어떤 이들은 이들을 보면서 이들과 같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하겠고, 어떤 이들은 이들에게서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이 별이 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이런 별들이 찬연히 빛나기에 세상은 좀더 밝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로 만난 별들"

이 책을 읽으면 이들에게서 빛만이 아니라 따스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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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5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ff 시리즈 2
시몬 베유 지음, 길경선 외 옮김 / 꿈꾼문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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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테옹'은 프랑스 위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시몬 베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시몬 베유가 세상을 뜨고 처음부터 이곳에 안장된 것이 아니고, 프랑스 사람들이 청원을 해서 옮긴 것이라고 하니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프랑스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프랑스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정치인. 그냥 정치인이 아니라 세상을 좀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니...

 

시몬 베유가 여러 곳에서 연설한 말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위한 투쟁, 유럽을 위한 투쟁,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으로 나누어 수록했는데, 이들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를 기억한다는 것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고, 더 나은 사회에서는 당연히 남성과 여성 또는 다른 성적지향성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모두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이 되는 것이다.

 

평생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헌신한 사람, 그 사람을 기린다는 것은 그가 하려고 했던 일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있으니, 시몬 베유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를 팡테옹에 안치하도록 청원을 한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도는 아닌 시몬 베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지만 독일에 대한 증오보다는 독일과 프랑스가 평화를 유지하고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한 시몬 베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시몬 베유.

 

인권의 차원에서도 교도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또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서도 아낌없는 노력을 한 시몬 베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온갖 노력을 한 시몬 베유.

 

그가 한 말들, 그의 사상들이 담겨 있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런 사람을 읽는다는 것, 시몬 베유를 기억하는 것이고, 단지 기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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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몬 베유 - 여성, 유럽, 기억을 위한 삶
시몬 베유 지음, 이민경 옮김 / 갈라파고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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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책에 있는 말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 이 말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게 시몬 베유는 시몬느 베이유라고 알고 있는 사람과 헷갈리는 존재였다. 도대체 아주 예전에 세상을 뜬 사람이 왜 지금에야 다시 언급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몬 베유가 두 명이었어 하는 의문을 지니게 했다.

 

[중력과 은총]을 쓴 시몬 베유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사망했는데 (1909-1943) 유대인이기도 했다. 프랑스인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려고도 했다는데, 참여하기 전에 사망했고, 그가 쓴 글들이 나중에 책으로 엮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고 한다. 이렇게 시몬 베유라는 사람이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 사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나, 시몬 베유]란 책의 주인공은 또다른 시몬 베유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고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시몬 베유는 1927년에 태어났으니, 앞에서 말한 시몬 베유보다는 18년이나 늦게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몬 베유는 2017년까지 살았으니 바로 우리 시대에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927년생 유대인이라면 2차세계대전 때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시몬 베유의 가족도 수용소로 가게 된다. 아버지와 오빠는 수용소에서 죽었을 거라고 추측이 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니, 어머니도 수용소에서 죽게 된다. 바로 위 언니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되고, 맏언니와 시몬은 수용소에서 함께 지내다 풀려나게 된다.

 

이것이 2차 세계대전 때 시몬 베유가 겪은 일이다. 그런데 이 경험을 미화하지 않는다. 물론 잊지도 않는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수용소에서 겪은 비극에 대해서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자신들을 박해했던 사람들과 그럼에도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수용소 생활을 했건만 그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딛고 공부하고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책에 나와 있다. 남편을 만나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그것도 셋아니 결코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베유.

 

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판사로 일하다 정치권과 연이 닿아 보건부 장관이 되어 프랑스 임신중단법을 이끌어 낸다. 유대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권리를 찾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럽의회로 나아가고, 다시 보건부 장관이 되기도 하고, 헌법평의회 위원으로 다시 법에 관련된 일을 한다. 그러니 이 책에 나와 있는 작은 제목이 이 책을 너무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일, 그리고 프랑스가 아니라 유럽으로 자신의 활동을 넓혔던 일, 그런 삶들을 결코 잊지 않아야 인류가 살아가는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 즉,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렇게 해야 을 시몬 베유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여성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게는 그만큼의 고통도 또 그만큼의 반대로 있었음을 잊지 않게 해주고 있는 책이다.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시몬 베유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뿐만이 아니라 젠더적인 차이가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 국경에 갇혀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는 지구촌이 되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그런 과제들과 더불어 이제는 자연과도 공생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는 것.

 

이 책 [나, 시몬 베유]를 읽으며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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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의 자장가 - 내 아버지 최인훈과 함께했던 날들
최윤경 지음, 이은규 그림 / 삼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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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믿음을 주는 작가가 있다. 이유도 없이 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하는 작가,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읽지도 못하고, 내용을 잘 이해도 하지 못하지만 그냥 마음에 들어하는 작가가 있다. 내게 그런 작가는 바로 최인훈이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광장"보다도 "가면고"에 더 끌리기도 했고, "라울전"을 읽으며 종교적 깨달음과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고, "총독의 소리"를 읽으며 우리는 일본을 완전히 극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또 "태풍"을 읽으며 일제시대가 조금 더 길어졌더라면 어쨌을까 하는 위기의식도, 그의 장편 "화두"를 읽으며 최인훈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많은 작품들, 또 그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였다. 작년에 세상을 떠서 이제 그의 새로운 작품은 읽을 수가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딸이 아빠인 최인훈에 관한 글을 썼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최인훈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정 생활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서 최인훈에 대해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여전히 이 문구가 삭제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 책이 많이 읽히면 이 책에 있는 내용이 추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최인훈은 생활이 거의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예전에는 강의라도 나갔지만 정년퇴임 후 요즘은 그마저도 무소식이라고 《나무위키》에 적혀 있다. (272쪽)

 

《나무위키》에는 뒤에 몇 문장이 더 있다.

 

특히 최인훈의 가족같은 경우는 언론에 공개된 적이 아예 없다시피한 수준. 서울예대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교수님 A같은 느낌이었다 카더라. 고. 그러니 이 책이 나온 지금에는 뒷 얘기에 이어 많은 것들이 덧붙여질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작가로서 최인훈은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본 딸이 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와의 일을 쓴 것도 의미가 있다.

 

읽으면서 최인훈이라는 작가를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쩌면 글과 삶이 일치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자식들 처지에서는 참 힘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책에 나타난 아버지 최인훈의 모습은 딸에게 너무도 관심이 많은 아버지였다는 생각을 한다.

 

딸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겠고... 자신이 쓴 소설을 가족들이 읽게 했다는 것, 함께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또 가족의 일에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도 있었다는 것 등등 최인훈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알게 되어 좋았다. 

 

이 일화를 너무도 잘 드러낸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중에 '크리스마스 캐럴'(128-134쪽)이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같은 글이지만, 아버지 최인훈의 모습,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소설을 통해서 하는 작가로서의 최인훈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책의 끝부분에 손녀가 그린 최인훈의 초상화가 있다. 그만큼 그는 손녀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손녀가 벌을 세우면 손 들고 벌 서면서도 한없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는 다정한 할아버지의 모습.

 

  자식들을 키울 때는 책임감이 있었거든. 야단도 쳐야 하고. 손녀들은 예뻐만 하면 되지. ... 할아버지는 그냥 예뻐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좋으냐. 최고지. (194쪽)

 

  이렇게 말하는 할아버지 최인훈. 그는 자신의 작품을 손녀들을 보듯이 하지 않고 아마도 자식들을 키우듯이 했을 것이다. 책임감이 있는. 그래서 자신의 작품이라도 야단을 쳐야 하는.

 

  "광장"을 여러 차례 개작을 한 이유도 아마 그러한 이유였으리라. 자신의 자식이었으니까.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랐으니까.

 

이렇게 최인훈은 작품이라는 많은 자식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작품을 통해서 그를 만나야 한다.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삶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최인훈이 세상을 뜬 지 이제 한 해가 넘어간다. 우리는 최인훈 작품을 그가 손녀를 대하듯이 대하면 될 것 같다.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삶에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것들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딸이 본 아버지 최인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최인훈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중한 책이다.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요즘, 최인훈이 쓴 "총독의 소리"와 "주석의 소리"를 다시금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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