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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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타협하지 않음. 저널리스트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이지만, 작가도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하나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아간 오리아나 팔라치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라.


사실과 진실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이 사람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은 동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두 생활에서 글쓰기 방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데서는 차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외국 기자를 알 수가 없지. 그껏해야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이나 들어봤지, 우리나라 기자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탈리아 기자, 그것도 세상을 뜬 지 십 년도 더 된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현대 작가들이 쓴 이탈리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 오리아나 팔라치를 검색해 보니, 소설 작품도, 또 그에 대한 소개한 책도 제법 있다.물론 소설은 절판이거나 품절인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로서 또 작가로서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자, 작가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고, 또 특정 정파의 이익에 따라 사실을 짜깁기 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많이 보아온 터에 침묵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삶, 불편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레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널리즘이 상실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이 책은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자서전이 아니다. 죽은 뒤 그가 쓴 글들에서 뽑아 편집한 책이다. 하지만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글이니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우선 침묵하지 않는 삶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다.


작가나 기자는 사랑받고 환영받고 칭찬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과 잘되는 것을 들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나 기자의 임무는 나쁜 것과 문제가 되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미움받고 공격당하고 모욕받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76쪽)


기자만이 아니라 작가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작가는 허구를 창조하는 사람이기에 진실에서 멀어질 것 같지만, 아니다. 작가는 사실들을 간략하게 전달하는 기자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작가 역시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진실과 멀어진 작가의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왜 작가 역시 진실되어야 하는지 오리아나 팔라치의 말을 보자.


회고록이나 자서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으므로 소설 형식이 필요했다. ... 일대기에서 끌어내어 정교하게 다듬고 재창조하여 더 심오하고 더 큰 진실로 옮겨놓은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일화는 객관적인 잣대로 설명될 수 없다. 저널리즘은 축소하지만 소설은 확장한다. ... 소설은 시와 같다. 그 시간과 그 장소, 그 사람을 초월해서 내일과 모레에도 유효하게 남아 있으며,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야기이다. (197-198쪽)


이렇게 진실을 말하려면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편안함만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불편해져야 하고, 남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강하게 주장되기 전에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도 했다. 세상을 자유롭고 진실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남자들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적이고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여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해부학상의 어떤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체의 차이와 더불어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터부를 말하는 것이다. (79쪽)


당신이 남편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을지라도 그는 당신이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준비하고, 먼저 집에 달려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당신 기분과 관계없이 그의 기분에 따라 장단을 맞춰야 한다. (185쪽)


이 말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을 불편하게 보기 힘든 사람이다. 세상의 절반이 선천적인 조건으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여성의 문제를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호메이니를 인터뷰할 때 겪는다. 그 과정을 읽어보면 오리아나 팔라치가 이렇게 말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109쪽)


이 말 때문이라도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위 기레기들이 자신이 들은 말의 앞뒤를 자르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말들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내보내는 행태와 비교하면 새겨들어야만 한다.


내가 증오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터뷰이가 내게 한 말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주의를 기울였다. (127쪽)


가장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자세다. 이렇게 사실을 통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멀리하려 하지만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므로, 이런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진실은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나는 불편한 것을 말하는 불편한 여자이자 불편한 이야기를 쓰는 불편한 작가이다. (196쪽)


불편한 작가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오리아나, 자신의 자유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거부할 수 있었던 사람. 어떤 정권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쓰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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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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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떠올렸다. 자연 속에 스스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명랑한 은둔자 아니겠는가.


사람들사이에서 살아가는 일도 좋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활을 하는 삶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했다. 그러니 이 책 역시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가꿔가는 사람이야기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 책은 사람들을 떠나 자연에서 사는 삶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는 사람의 이야기다.


함께 살지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 이를 고립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고독이라고 하면 괜찮을 듯하다. 고립은 외로움을 낳고, 외로움은 결국 자신을 가두게 되지만, 고독은 자신의 세계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만남의 일시 정지라고 할 수 있으니...


캐럴라인 냅. 참으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알콜 중독에도 빠졌었고, 거식증에 빠져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런 과정을 솔직하게 써내려 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중독에 관해서 이런 말이 있다. 명심해야 할 말이고, 캐럴라인 냅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중독이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행동이 당신을 통제하게 된다.(162쪽)


그렇다. 자신을 놓아버리는 단계까지 이르면 심한 중독이 된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 그 전에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이 책은 이렇게 내밀한 자신의 생활을, 감정을 가감없이 잘 드러내고 있어서 캐럴라인 냅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들이 단순한 인간이 아님을, 아주 복합적인 존재임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단지 자신의 내면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쓰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성추행에 관한 글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캐럴라인 냅이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오용'이란 글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어떤 글에서는 너무 예민한 것 아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읽다보면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다. 섬세한 마음결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 그 다름과 함께 하는 일. 그것은 함께 하되 홀로일 수 있는 시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이 책 읽을 필요가 있다. 읽으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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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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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데, 사실 말로만 심각하다 심각하다 하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고, 정부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읻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나 과학재단들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쪽)

 

그러니 기후 위기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카산드라의 예언밖에는 되지 못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해줘도 누구도 믿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는 그런 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책의 또 다른 쪽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또는 식물을 많이 심으면 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387쪽)

 

공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느라 힘을 그쪽으로 써버리는 식물들이 영양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식물은 땅과 하늘, 양쪽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만 지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활의 전환 없이 기후 위기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런 호프라는 과학자가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식물과학자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식물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113쪽)

 

바로 다르게 보기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래야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거리두기. 어쩌면 식물을 인간의 일부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다르다. 모든 대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다 다른 대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무기물이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르게 보기는 곧 함께 살기다. 함께 살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런 호프 역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학위와, 외모, 그리고 말투까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어디 성차별뿐이랴. 모든 차별이 바로 이렇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자가 과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 과학계의 차별뿐만 아니라 연구 기금 부족까지 이겨내야 한다. 자런 호프는 이 과정을 이겨내고 식물에 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접어든다.

 

그 지난했던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척 흥미롭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이를 대하는 자런 호프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367쪽)

 

이 말을 과학으로 바꾸어보면 자신의 성과(결론-주장)를 놓아줄 수 있는 과학자,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가 좋은 과학자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식을 놓아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과학자 역시 좋은 과학자일 수 없다.

 

자런 호프는 이런 것을 식물, 나무의 입장에서 깨닫게 된다.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려는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서전에 그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게서 배워가는 과정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또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닥터 두리틀'이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어떤 영장류 학자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고. 과학을 어렵게만 여기고, 재미없게만 여기는 사람, 이런 책들을 읽으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과학을 무슨 공식만으로 교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선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행동.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이 책은 적절하다. 단지 과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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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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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데, 사실 말로만 심각하다 심각하다 하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고, 정부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읻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나 과학재단들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쪽)

 

그러니 기후 위기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카산드라의 예언밖에는 되지 못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해줘도 누구도 믿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는 그런 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책의 또 다른 쪽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또는 식물을 많이 심으면 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387쪽)

 

공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느라 힘을 그쪽으로 써버리는 식물들이 영양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식물은 땅과 하늘, 양쪽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만 지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활의 전환 없이 기후 위기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런 호프라는 과학자가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식물과학자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식물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113쪽)

 

바로 다르게 보기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래야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거리두기. 어쩌면 식물을 인간의 일부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다르다. 모든 대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다 다른 대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무기물이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르게 보기는 곧 함께 살기다. 함께 살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런 호프 역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학위와, 외모, 그리고 말투까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어디 성차별뿐이랴. 모든 차별이 바로 이렇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자가 과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 과학계의 차별뿐만 아니라 연구 기금 부족까지 이겨내야 한다. 자런 호프는 이 과정을 이겨내고 식물에 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접어든다.

 

그 지난했던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척 흥미롭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이를 대하는 자런 호프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367쪽)

 

이 말을 과학으로 바꾸어보면 자신의 성과(결론-주장)를 놓아줄 수 있는 과학자,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가 좋은 과학자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식을 놓아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과학자 역시 좋은 과학자일 수 없다.

 

자런 호프는 이런 것을 식물, 나무의 입장에서 깨닫게 된다.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려는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서전에 그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게서 배워가는 과정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또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닥터 두리틀'이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어떤 영장류 학자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고. 과학을 어렵게만 여기고, 재미없게만 여기는 사람, 이런 책들을 읽으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과학을 무슨 공식만으로 교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선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행동.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이 책은 적절하다. 단지 과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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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슬픈 열대
폴 고갱 지음, 박찬규 옮김 / 예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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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고흐다. 그리고 장소로는 타히티다. 또 그를 떠올리면 소설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읽은 것 같은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설. 어쩌면 제목만 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해설만 읽고 넘어갔을 수도 있고. 아님, 어릴 때 읽었는데, 기억에서 사라졌는지도... (이 참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여간 고갱이라는 사람은 요즘 컴퓨터 검색 용어로 치면 연관 검색어에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 파리라는 대도시의 삶을 견디지 못해 타히티라는 원시성이 강한 곳으로 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

 

고흐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불화로 헤어졌지만, 고흐에 관한 그의 글을 읽어보니, 고흐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가족과 헤어져 살았는데, 어찌보면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가족과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 많다.

 

그렇게 헤어져 살고 있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았던 고갱. 부인인 마테에게도 타히티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홀로 타히티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갱.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림은 잘 안 팔리고, 그래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타히티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하니... 고흐 역시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이 책에서 고갱이 쓴 편지글을 보니 자살 시도를 했지만 비소(?)를 너무 많이 먹은 바람에 다 토해서 살아났다는 것.(223쪽)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심장마비(이게 사인이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216쪽)로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고생은 현세에서의 삶은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정 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견뎌내야 했으니...

 

하지만 그는 역작을 남겼다. 제목도 철학적인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자기 작품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전에 그린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우리라고 믿네.

  죽기 전에 내게 남은 모든 힘과 극한상황에서 나오는 고통스런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순수하고 티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네. 그래서 작품의 미숙함은 사라지고 삶이 솟아올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

  이 그림은 모델과 기교를 배제하고, 그림이 내세우는 규범들을 무시해버렸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터 이런 것들을 뛰어넘고 싶었네. (223쪽- 226쪽) 

 

이렇게 그는 우리에게 작품을 남겼다. 그가 살던 곳을 과연 슬픈 열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남긴 곳인데... 슬픈 열대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안식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슬픈 열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고갱이 살아가던 그곳이 다른 식민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곳에 불과했다는 것.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고갱이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는 말년에 탄압받는 원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려 했다고 한다. 탄원서도 내고. 그에겐 그곳이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무시 당하는 그런 곳이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일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자신의 예술을 지속하게 해준 그곳을 그는 적어도 동등하게 대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갱 자신이 직접 쓴 글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고갱의 글을 읽음으로써 고갱의 작품에 더 많은 의미가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글만큼 고갱의 그림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고갱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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